63. 마종(魔終)
위중평은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렇습니다. 이모님."
옥탑단장인은 똑바로 위중평을 응시하여 말했다.
"얘야, 바쁘지 않다면 이 이모가 그 이야기를 해줄까?"
위중평은 급히 앞으로 나서며 이모의 손을 잡았다.
"이모님, 저는 지금 아무 일도 없습니다. 이모님께선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옥탑단장인은 지난 일을 회상하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강호도상의 사람들은 전부가 옥탑단장인 사도를 가리켜 악랄하다느니
살인을 밥먹듯이 한다고 했으나 만약 그들이 그녀의 비참한 처지를 알았다면
절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옥탑단장인의 부친은 한 분의 협의도였다.
그에게 자식이라고는 옥탑단장인 하나밖에 없었다.
그의 부친은 그녀가 어렸을 적에 이미 그녀의 사형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혼사를 올리기에는 나이가 어려 부부의 결실을 맺지는 않았지만
부부라는 이름으로 인하여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다.
그들이 명목상의 부부로 강호에 나섰을 무렵 명명주재는 강호에 나타나
수많은 고수들을 질타하고 있었다.
옥탑단장인의 부친도 결국은 그의 수하로 들어가 흡의시자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 당시 옥탑단장인과 그의 사형은 이미 강호에서 몇 가지 큰 일을 하여 별호가 붙어 있었다.
옥탑단장인은 날수소군(辣手昭君), 사형에게는 풍류자도(風流子都)라는…
그들이 막 명성을 얻었을 때 남편이자 사형은 뜻밖에도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옥탑단장인은 비통함에 이를 갈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이 때 부친이 그녀를 편지로 허무전(虛無殿)으로 불러들였다.
옥탑단장인은 허무전에 당도해서야 명명주재가 부친의 목숨으로
자기의 육체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녀의 정조는 명명주재에게 바쳐졌다.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었지만 강제의 혼인이 행복할 턱이 없었다.
옥탑단장인은 사랑하던 풍류자도의 생각으로 얼굴을 눈물로 적시면서까지 더럽고 추악한
명명주재의 음욕을 만족시켜 주어야만 했다.
옥탑단장인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어느날 그녀의 부친은 우연한 기회에 옥탑장진도와 이궁금약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절대로 명명주재의 감시망에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옥탑단장인에게 넘겨 주었다.
그러나-.
어찌 된 까닭인지 이 소식이 명명주재의 귀에 들어갔다.
명명주재는 즉시 그녀의 부친을 고문하여 장진도와 금약을 내 놓으라고 했다.
그녀의 부친은 죽을 각오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 떼다가는
결국 고문에 못 이겨 한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추혼천녀가 태어났다.
옥탑단장인은 추혼천녀를 데리고 야밤을 틈타 허무전을 빠져 나왔다.
그런 다음 추혼천녀를 어떤 농가에다 맡긴 옥탑단장인은
자신의 장진도와 금약을 가지고 보물을 찾으러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이 존재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법.
강호의 군웅들이 그녀가 두 가지 물건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보물을 찾으러 가기도 전에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옥탑단장인은 추혼천녀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함부로 진기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위중평의 부친이 천신처럼 나타나 군웅들을 물리치고
그녀를 백산목장으로 데리고 갔다.
당시 위중평의 모친은 벌써 고인이 된 후였다.
이 무렵 위중평의 나이는 불과 세 살이었다.
두 사람 사이는 서로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더할 수 없이 친밀해졌으나
결코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군웅들은 어찌 된 셈인지 모두가 위중평의 부친을 비방하고 모욕했다.
당시의 장백파는 한창 세력이 충천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군웅들은 비난을 하면서도 감히 신주검성에게 덤벼 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 소식이 명명주재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는 즉시 구사옥부를 써서 백여 명의 흑백쌍도 고수들을 보내 심야에 백산목장을 기습했다.
결국 장백파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적의 손실도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어서 기습에 가담했던 백여 명의 고수들 가운데
살아서 돌아간 자는 불과 네 명밖에는 되지 않았다.
당시의 상황은 문자 그대로 처참한 것이었다.
신주검성은 전력으로 옥탑단장인을 보호하여 그녀를 검화가 일고 있는 밖으로 내보냈다.
옥탑단장인도 신주검성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비분의 눈물을 뿌리며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나 사전에 친밀한 계획을 세운 명명주재는 결코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명명주재와 그녀는 혈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녀는 삼 초도 못 가서 명명주재의 장풍 아래 중상을 입고 쓰러져 버렸다.
위기일발의 순간-.
때마침 자선마군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 이궁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옥탑단장인의 기나긴 이야기는 끝났다.
위중평은 그제서야 왜 그들 모녀 두 사람이 강호에 나오자마자 도살을 감행했는지 알게 되었다.
위중평은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명명주재, 내 부친과 장백파를 몰살시키다니… 이놈! 어디 두고보자.
만약 비래봉에서 내가 네놈을 죽이지 못하면 사람의 자식이 아니다!"
위중평의 울부짖음은 허공을 뚫고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옥탑단장인은 긴 한숨을 내쉬며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얘야, 복수를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명명주재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니 반드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녀는 한 줄기 가벼운 미풍인 듯 유유히 사라져 갔다.
옥탑단장인-.
늦가을-.
황금빛 오곡들이 풍요하게 익어가는 늦가을의 한밤중.
항주땅 비래봉 위에 섬세한 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구름에 가리웠던 달은 천천히 그 웅지를 나타내며
자애로운 빛살을 대지 위로 뿌려 주고 있었다.
"획!"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며 그의 신형은 단번에 십여 장이나 치솟아 올랐다.
이어 그 인영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를 마치 평지처럼 달리며 눈 깜박할 사이에
이미 봉우리 위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한편-.
봉우리 위에는 체구가 깡마르고 두 눈이 움푹 꺼진 한명의 늙은 화상이 앉아 있었다.
인영은 봉우리 위에 올라서자마자 즉시 노인을 향해 예를 차렸다.
"상인께선 벌써 오셨군요."
노화상은 돌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나타난 인영을 한참 노려보고는 말없이 다시 눈까풀을 스르르 내려감았다.
섬세한 인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위중평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다부진 체격의 인영…
젊음의 패기가 넘쳐 두 눈에 정광이 이글거리는 젊은이 위중평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앉은 노화상은 바로 백공상인이었다.
위중평은 백공상인의 기이한 표정을 보자 이상한 듯이 물었다.
"혹시… 후배의 기색이 어디가 좀 이상합니까?"
"자네는 지난번 천지를 가다가 무슨 기우를 만났느냐?"
"아…"
위중평은 그제서야 백공상인의 뜻을 알았다.
그래서 자기가 칠품선란실을 먹은 결과를 얘기해 주었다.
말을 다 마치고는 품 속에서 선란 잎사귀를 꺼내 백공상인에게 건네 주었다.
백공상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세상에서 좋은 것은 전부 자네가 차지하는군.
이 한 알의 선란과일로 이 갑자의 공력을 얻을 수 있네."
그는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띠고 다시 말했다.
"자네의 지금 내공은 나보다 훨씬 더 높네.
그러니 오늘 그 한편 명명주재는 위중평 마두들도 아마 겁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군."
그리고는 다시 선단 잎사귀를 내려다보며-.
"이 일곱 개의 선단 잎사귀로는 수백 알의 단약을 만들 수가 있으니
나중에 그것을 가지고 세상을 구제하기로 하세."
"모든 것은 어르신께서 처리해 주십시오."
"알았네."
간단하게 대답한 그는 이어 눈을 감았다.
위중평은 조용히 한쪽 바위 앉아 운기조식을 하며 명명주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봉우리 위는 산마루를 스치며 지나가는 스산한 바람 소리만 들릴 뿐
그외에는 아무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돌연,
봉우리 밑에서 세 줄기의 인영이 어두움의 장막을 뚫으며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위중평은 재빨리 일어나 다가오는 사람들을 주시했다.
명명주재와 옥탑단장인, 그리고 한해독부였다.
일세의 마두 명명주재는 웬일인지 복면을 하지 않았다.
옥탑단장인도 얼굴에 썼던 검은 면사를 벗은 채였다.
그녀는 노년기에 접어 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지난날의 아름답던 자태가 남아 있어
얼마나 미인이었나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었다.
그녀의 이런 면모는 쭈그렁 바가지가 된 한해독부와 강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한해독부는 그녀를 보자 이를 갈며 냉소를 쳤다.
아직도 남아 있는 미모에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낀 것이다.
그러나 옥탑단장인은 코웃음만 칠 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편 명명주재는 위중평을 보기가 무섭게 얼굴에 기이한 표정을 떠올렸다.
후회왁 불안, 그리고 초조와 두려움이 깃들어 있는 표정이었다.
반면 위중평은 명명주재를 발견하자마자 강렬한 인광을 폭사시켰다.
생사가 걸려 있는 일전-.
"휘이익!"
피비린내가 풍기는 듯한 음산한 바람이 한 차례 불어왔다.
이들의 심정은 한결같이 착잡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오늘 밤으로 그들의 명성과 목숨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독 백공상인만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조용히 눈을 감고
정좌를 하여 참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네 사람의 여덟 줄기의 눈빛-
그들의 시선이 맞부딪치는 곳에서는 불꽃이 튈 것만 같았다.
침묵-.
오직 침묵만이 흘렀다.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더디게 흘러갔고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 위기 일발의 숨막히는 침묵은 폭풍 전야 같았다.
그들은 오늘 밤의 약속을 정한 백공상인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백공상인에게서는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위중평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명명주재를 향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사납게 외치며 침묵을 깼다.
"귀하는 과거 백산목장을 피로 물들였소.
이제는 그 피의 대가를 치뤄야 할 때가 되었소."
명명주재의 눈에서도 살기가 뻗쳐 나왔다.
"과거에 나의 인자함으로 너를 키워주었더니
이제 와서는 나에게 피값을 받겠다고?"
위중평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나를 키웠다고?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 치우시오!"
"좋다! 내 너에게 실망을 주지는 않겠다."
위중평은 격분으로 인하여 전신을 가볍게 떨었다.
"나 위모도 당신의 말을 부인하지는 않소.
당신은 확실히 절호의 기회를 놓쳤소.
그래서 나 위모도 그 점을 참작하여 귀하에게 삼 초를 먼저 양보해 주겠소."
위중평은 천천히 진기를 쌍장에 모으며 만일의 사태에 조심스럽게 대처했다.
그러나 위중평의 말을 들은 옥탑단장인과 한해독부는 경악을 치 못했다.
자기네들조차 명명주재와는 상대가 되지 못하는데
더군다나 햇병아리인 위중평이 명명주재와 상대를 하겠다니…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는구나…"
이렇게 판단한 옥탑단장인은 명명주재가 채 슨을 쓰기도 전에 급히 나서면서 외쳤다.
"명명주재, 네놈이 내 부친과 남편을 살해한 일은 어떻게 하겠느냐?"
이 말을 들은 명명주재는 호기롭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이제 보니 다 알고 있었군.
어차피 인생이란 필경 다 죽게 마련이 아니냐?
나 명명주재는 마땅히 내가 뿌린 씨의 수확을 거두어 들이기는 하겠지만…"
여기까지 말한 그는 슬쩍 말꼬리를 흐리며 옥탑단장인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
옥탑단장인은 코웃음을 치며 응수했다.
"왜? 죽기가 겁이라도 난단 말이냐…"
명명주재는 가소롭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 아직 모르지만 당신에게 실력이 있을까?"
옥탑단장인은 발을 구르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이놈!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하는 법이다."
이때 위중평이 갑자기 대갈일성을 내질렀다.
"명명주재, 큰소리 치지 말아라.
네놈의 쥐꼬리만한 실력으로 온 천하를 주름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명명주재는 두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내질렀다.
"이놈! 그렇다면 네놈이 스스로 당해 보면 알 것이 아니냐?"
위중평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좋다! 이 공자님께서 지금 당장 네놈의 호천구사신공을 꺾어 보여 주겠다!"
옥탑단장인은 위중평의 비장한 말투에 할 수 없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더욱이 한해독부가 옆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힘을 남겼다가 그녀를 상대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큰소리로 당부했다.
"얘야, 네 뜻이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절대로 삼 초를 양보해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위중평은 얼굴에 비장한 신념을 떠올렸다.
"이모님, 무공의 고하란 비교를 해봐야 하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명명주재는 음탕하게 냉소를 터뜨렸다.
"으흐흐흐… 나 명명주재가 어떤 사람인데
저따위 새파란 애송이의 양보를 받을 것 같으냐?"
그리고 음산한 눈길로 위중평을 쏘아보았다.
"위중평, 주저하지 말고 공격을 해라!"
"좋다!"
위중평은 이미 조화신공을 십 성까지 끌어올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쌍장을 거세게 내밀었다.
"획!"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필사의 힘을 다한 일 장이 뻗어나갔다.
순간,
주위의 공기는 완전히 고조되었고 짙은 안개에 쉽싸였다.
"엇!"
명명주재는 위중평의 웅후한 장력을 보자 가슴이 뜨끔했다.
그러나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어 즉시 칠 성의 호천구사신공으로 맞서갔다.
"펑!"
경천동지할 폭음이 주위를 울리며 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나 미친 듯이 날렸다.
명명주재는 비틀거리면서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위중평 역시 강한 탄력에 견디지 못하고 땅에 발자국을 새기며 뒤로 세 걸음 밀려났다.
첫번째 결투에서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이자 명명주재는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토록 나이 어린 청년에게 그처럼 고강한 내력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물러설 명명주재가 아니었다.
그는 살기가 치밀어 음침한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이놈, 노부의 일 장을 다시 받아 보아라!"
말을 마친 그는 공력을 십 성까지 끌어올려 쌍장을 비스듬히 앞으로 밀어냈다.
재차 거대한 바위라도 산산조각이 낼 만한 장력이 그의 쌍장을 통해 뻗어 나왔다.
"휘익!"
위중평도 붉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면서 정면으로 응수해 갔다.
"흥!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펑!"
천지가 개벽이라도 하는 것 같은 폭음이 주위의 암석들은 그 장풍의 여력에 의해
기어코 부서져 나갔다.
이어 위중평과 명명주재의 몸도 막대한 압력에 못 이겨 뒤로 네다섯 걸음씩 후퇴하였다.
막상막하-.
두 사람의 살기어린 시선이 한데 엉키었다.
위중평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나서 왼손으로 허공에 원을 그리는 동시에
난석붕운(亂石鵬雲)을 전개한 것이다.
"흥!"
명명주재도 코웃음을 터뜨리며 주저없이 반격을 가했다.
그가 수십 년 동안 연마하여 완성한 호천구사신공이다.
용호상박, 누구 하나 열세에 처하지 않은 팽팽한 국면이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위중평은 힘을 쓰면 쓸수록 자신의 내공이 증가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신이 맑아진 위중평은 숨돌릴 사이도 없이 갈성을 질렀다.
"치앗!"
그러고는 갑자기 허공으로 붕 떠오르며 연속적으로 열다섯 장이나 격출했다.
"어딜!"
날카로운 고함을 지른 명명주재는 즉시 열 장과 거센 일곱 번의 발길질로 맞이해 갔다.
점입가경-.
두 사람의 싸움은 정말로 치열하게 벌어졌다.
벼락같은 고함 소리와 웅후한 장력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치열한 공방전으로 말미암아 달도 빛을 잃고 산천초목도 떠는 것만 같았다.
옥탑단장인과 한해독부는 완전히 넋을 잃고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 보았다
거센 파도가 밀어닥치는 듯한 공방전은 어느새 백오십 초를 넘 어섰다.
사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의 초식은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식이 느려지면 느려질수록 그만큼 위험도 더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는 가운데 위중평의 낭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명명주재, 이번에는 화산파의 장력이 어떠한가 맛좀 보아라!"
명명주재는 눈을 부릅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콰과 쾅!"
말이 막 끝나는 순간, 벌써 펑! 하는 폭음이 터졌다
역시 무승부-.
이번에는 명명주재가 먼저 호통을 쳤다.
"네놈도 노부의 허무절학(處無絶學) 맛이 어떤가 보아라!"
말을 마친 그는 쌍장을 교차시켜 일 장을 내뻗었다.
위중평은 가소롭다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으핫핫! 토조음풍장 정도는 나 위모의 안중에도 들지 않는다!"
그는 번개같이 몸을 날리며 일 장을 맞부딪쳐 갔다.
인영이 번쩍하고 교차되는 곳을 따라 두 사람은 다시 일 초씩을 교환했다.
쌍방의 생사가 달려 있는 혈전을 말없이 지켜 보며 옥탑단장인의 냉막한 얼굴에는
긴장스러운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해독부도 자신의 입장을 잊고 손에 땀을 쥐며 위중평의 안전을 위하여 걱정을 하고 있었다.
돌연-.
위중평의 입에서 대갈일성이 터져 나왔다.
"노마두, 벌써 지쳤느냐? 그렇다면 이 공자님의 일 초를 받아 보아라!"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이 그는 허공을 향해 천천히 일 장을 밀어냈다.
자주빛의 장풍-.
그것은 보기에도 극히 느리게 앞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예측하지 못할 흉험함이 무수히 깃들어 있었다.
명명주재는 이 자주빛 장풍의 무서움을 알기에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두 명의 관전자가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는 마당에서
체면상 한낱 후배의 장풍을 피할 수는 없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명명주재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위중평의 장풍을 정면으로 맞받았다.
"쿠쿠쿵!"
"으욱!"
명명주재는 감당할 수 없는 압력에 마치 실이 끊어진 연처럼
허공을 날아 이 장 밖에 나가 떨어졌다.
명명주재는 곧 튕겨지듯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 일 초의 교환에서 심한 내상을 입었는지 울컥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 냈다.
그러나 명명주재는 역시 마두답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고 급히 허공으로 몸을 뽑아올렸다.
한해독부는 자신도 모르게 대경실색하여 소리쳤다.
"조심해라! 저것은 칩준삼박(蟄準三博)이다!"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차앗!"
위중평은 이미 허공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명명주재에게 부딪쳐 갔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위중평이 허공으로 획 떠오르는 자세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옥탑단장인과 한해독부는 헛점 투성이인 위중평의 신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앗!"
그러나 명떵주재는 그의 괴이한 초식에 혼이 난 적이 있는지라
매사에 신중을 기했다.
"펑!"
고막을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은 허공에서 교차를 이루었다.
여기에서 또한번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위중평의 몸이 곧장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뜬 채로 한 바퀴 빙글 돌고는
다시 명명주재를 향해 기습해 가는 것이 아닌가.
위중평의 이 일격은 위력적일 뿐만 아니라 번개처럼 빨랐다.
위중평의 손에서 난석붕운 초식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으악!"
내장을 잡아 뜯는 것 같은 비명 소리가 잇달아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명명주재의 몸은 마치 유성이 추락하는 것처럼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그는 역시 내공의 수련이 심오한 인물이었다.
그는 머리가 땅에 닿기 전에 재빨리 빙그르르 몸을 돌려 몸을 바로 세우려고 했다.
"휘익…"
위중평의 제 이 초가 숨쉴 겨를도 없이 날아와 명명주재는 몸을 바로 세우기도 전에
가슴팍에 억센 장력을 얻어맞고 말았다.
"펑!"
가슴을 쇠망치로 후려치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명명주재의 몸은
그대로 땅바닥에 곤두박히고 말았다
"이놈!"
옥탑단장인은 갑자기 갈성을 내지르며 십 성의 공력으로 다 죽어가는
명명주재를 향해 일격을 가했다.
"퍽!"
고깃덩어리를 바위로 내던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명명주재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숨이 끊어진 것이다.
옥탑단장인의 마지막 일격에 명명주재의 으스러진 시체는
대로 철댁 아래로 떨어져 갔다.
비참한 최후,
일대의 마두도 이렇게 간단하게 자신의 일생을 끝마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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