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58. 늑대와 양

오늘의 쉼터 2014. 6. 21. 13:17

58. 늑대와 양

 

 

갑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너무나 놀란 적미와 구양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려 할 때 공기를 찢는 듯한 비명과 함께

열 명의 유폐된 투림종사가 일제히 숨을 거두었다.

사실 적미노인이 신루과객에게 출수할 때만 해도 위중평은 의문을 참지 못하고 나서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 인이 천공에서 선혈을 뿜으며 죽는 것을 보자 오히려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때 적미노인이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소도사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네가 죽인 게 아니냐?"

 

소도사는 뒷짐을 진 채 천정을 쳐다보며 냉랭히 대답했다.

 

"글쎄올시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적미노인은 성질이 원래 거친 데다 그의 능청스러운 태도를 보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이놈! 감히 사부님 앞에서 이렇게 무례하다니."

 

"펑!"

 

일 장을 후려치자 한 줄기의 거센 장풍이 날아왔다.

소도사는 몸을 피하며 냉소를 쳤다.

 

"누가 너의 제자냐? 흥! 죽음이 바로 눈앞에 왔는데도 모르고 날뛰고 있으니 가엾은 일인지고."

 

적미는 난폭한 성질에 앞뒤를 생각지도 않고 성큼 일 장을 내 놓았다.

그러나 벌써 십대 문파의 장문인들에게 모든 무공을 전수받은 소도사는 장력이 압도해 오자

가소롭다는 듯이 살며시 몸을 피하며 삼파의 무공을 합친 일 초를 정면으로 내 놓았다.

적미는 예상 밖의 반격에 놀란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일 장에 격중당하고 말았다.

구양표묘객이 성큼 한 걸음 파가서며 다그치듯 외쳤다.

 

"너 이놈! 함부로 사부님께 무례한 행동을 하여 죽게까지 하다니. 무공을 전수받은 게 분명하구나."

 

말을 하고 난 구양표묘객은 무엇인가 꺼림직하여 얼른 오 인들에게 다가가서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한 구석에 숨어 있던 위중평은 놀란 표정으로 소도사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낯이 익은 얼굴이라고 했더니

바로 금루선연을 욕보이려던 철적왕손 모조음이 아닌가.

그러나 치솟는 분노를 억제하며 그들의 냉전을 묵묵히 관전할 따름이었다.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어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지 못할까?"

 

자기도 모르게 내놓았던 그 일 초가 적미를 그 자리에서 당장에 숨지게 할 줄이야

생각밖의 일이라 그는 크게 놀랐다.

한편으론 자신의 무공이 이렇게 발전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매우 대견스럽게 생각되었다.

 

"말을 삼가하시오,

누가 누구의 제자인데 사부란 말이오?

난 엄연한 신가보주 사도이고,

또 십대 문파의 장문인에게 모든 무공을 전수받아 장차 십대파의 존장에 오를 것이오."

 

하고는 크게 웃었다.

구양표묘객은 오인들의 몸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자

고개를 저으며 철적왕손을 바라보았다.

 

"이 영감들의 신물은 어찌 하였느냐?"

 

냉소를 치며 철적왕손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 구양표묘객에게

일 장을 후려치며 폭갈을 했다.

 

"염라대왕에게 가서 물어 봐라."

 

조금 전에 멋모르고 내 놓은 삼파의 일 초에 뜻밖에도 적미가 죽자

자기의 무공에 더욱더 자신이 생겨 이번에는 다섯파의 초식을 연달아 내 놓기 시작하였다.

위중평은 그의 무공을 보고는 가슴이 섬뜩해졌다.

한편 구양표묘객은 졸지에 당하는 일이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반격을 가하며

애를 썼으나 너무나도 강한 장풍이 온몸을 휘감아오자 손도 쓰지 못하고 황천길로 떠났다.

철적왕손은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별게 아닌 것들이 나를 부려먹었으니 죽을 때도 좋게 못 죽지."

 

웃음을 그치고 몸을 돌려 다시 통로로 나오려는 순간 모조음의 얼굴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귀신처럼 어느새 나타났는지 위중평이 그의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두 눈에는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렸고 두 손은 시뻘겋게 달아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었다.

더구나 꿈에서라도 만날까 두려워하는 위중평이 이렇게 은밀한 곳까지 찾아들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중평은 상대가 아무 말이 없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모조음! 네놈이 이렇게까지 비열한 놈이냐?

그러고도 신가보주의 사도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있느냐?

오늘 금루선연의 일에 관여치 않는다 해도 십대 문파의 장문인들을 모두 독살을 시키다니

인(人), 신(神)이 분노할 것이다. 자! 각오해라."

 

모조음은 음흉하게 웃으며 철적을 쥐고는 곤륜검법 중의 정화은원 일 초를 내 놓았다.

위중평은 철적왕손을 잡아다가 금루선연에게 인계해 지난번의 치욕에 보복을 하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좌장을 밖으로 비스듬히 밀어내펴 정면으로는 닥쳐온 장풍을 피하고 오른손으로는

섬궁정계 일식을 써서 철적을 잡아갔다.

제아무리 철절왕손이 십대 문파의 무공을 모두 전수했다고는 해도 위중평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철적왕손의 자신의 일격이 헛수고로 끝나자 얼굴에 살기를 띠며 다시 십이 초를 공략하였다.

이것은 자그만치 일곱 파의 공력을 합한 것이었다.

위중평도 이러한 맹렬한 공격에 잠시 멈칫하다가 비스듬히 걸음을 비켜섰다.

철적왕손은 한 차례의 효과를 거두자 더 이상 지체함이 없이 두 일신의 힘을 다 써

일곱 초식을 시도했다.

이번만은 정말 위중평으로 하여금 화가 나게 하였다.

 

"까불지 마라!"

그는 쌍장을 오무렸다 폈다 하며 눈 깜박할 사이에 십일식을 공격하였다.

그 웅장한 장푿에 벽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고

그 바람에 사방에서는 먼지가 일기 시작하였다.

철적왕손은 철적을 급히 휘두르며 큰소리를 쳤다.

 

"너의 그 몇 근 되는 힘으로 너무 으스대지 마라. 이곳은 너무 좁으니

밖으로 나가서 싸우자. 자신있느냐?"

 

위중평은 그의 계략인 줄 모르고 대뜸 말을 받았다.

 

"어느 곳을 선택하더라도 오늘만은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철적왕손이 고함을 쳤다.

 

"허풍떨지 마라."

 

하며 재빨리 통로 쪽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앞을 다투며 마치 유성처럼 사원의 후원으로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우보다 교찰한 철적왕손이 통로를 나오자마자

재빨리 숲 속으로 도망을 가근 것이 아닌가.

돌연폭갈이 터져 나오더니 핑! 하고 숲 사이에서 한줄기의 웅장한 장풍이 후려쳐 나왔다.

화원의 사방에 수많은 십대 문파의 고수들이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철적왕손은 허공에서 돌연 허리를 굽히더니 팔과 다리를 한데 모으고 오무렸다 폈다 하며

순간에 칠팔 척이나 뛰어 오르더니

장풍의 힘을 빌어서 팔 척이나 피해 나가 살며시 땅 위로 내려 섰다.

이것은 형산파에서도 알려지지 않는 비장의 평사낙옹이었다.

어둠 속의 흑영 중에서 누군가가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

이 때 사방에서 수많은 무림의 고수들이 달려와 철적왕손과 우중평을 포위해 버렸다.

철적왕손은 이 사람들이 모두 십대 문파 중의 손꼽히는 고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눈동자를 한 번 굴리더니 소리쳤다.

 

"열 사람의 사부님들이 모두 감옥에서 피살당하셨소.

이놈이 바로 범인이자 명명주재의 사위요."

 

이어 몇 가지의 신물을 꺼내 보이며 다시 말했다.

 

"이것은 여러 노사부님들의 신물입니다.

소생이 각처로 가서 모두 돌려 주려고 하였지만 이놈에게 그만 추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말을 하면서 두 줄기의 눈물을 흘리자 장중의 시선이 위중평에게 쏠렸다.

 

"거짓말 마라. 뭐가 어째고 어째?"

 

위중평이 홀연이 뛰어올라 철적왕손을 잡아채 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러한 거동이 여러 사람을 노하게 만들 줄이야…

즉시 노한 음성이 연발되더니 적시에 여덟 줄기의 다른 장풍이 회오리쳐왔다.

위중평이 상대방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다만 쌍장을 휘두르자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철적왕손은 극히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죽을 힘을 다하여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으로 숨어 들었다.

위중평은 여러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해오자 화가 버럭 치밀어 올랐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어찌 사건의 진상도 모르고 이렇게 덤벼든단 말이오?

그 십대 장문인은 바로 저놈이 죽였단 말이오."

 

철적왕손은 비참할 정도로 가엾게 소리를 쳤다.

 

"그의 말을 누가 믿겠소. 저에게는 노사부님들의 신물이 있고 그분들의 무공을 전수받았는데

제가 어찌 그들을 죽이겠습니까?

전 날마다 기회를 엿보며 서신을 보내려고 하였으나

그 적미라는 놈이 매우 엄하게 감시하고 있어서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저놈이 명명주재의 명령을 받고 나타나 노사부님들을 모두 독살시켰습니다.

흑흑…"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 처량하게 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믿는 눈치였다.

위중평이 화가 치밀어 두 눈에 불을 뿜어내며 두 번째 공격을 시작하려 할 때

아주 괴상하게 생긴 노자가 철적왕손을 가로막은 채 큰소리로 외쳤다.

 

"노부는 철장진삼상 여강이오. 난 저애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조금 전의 평사낙옹 그 일식으르도 본파의 신법이 틀림없는데

어찌 거짓이라 할 수 있겠소."

 

이 때 뚱뚱한 화상이 나서며 말했다.

 

"빈승은 오대 대지선사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나섰다.

 

"소림의 오정선사!"

 

"공동의 윤앙검객 유문풍…"

 

"아미의 철마금과 진자옥!"

 

"곤륜의 영풍도장!"

 

소개가 끝나자 위중평은 싸늘한 눈초리로 고수들을 한 차례 쳐다보고는

갑자기 말할 수 없는 혐오감에 휩싸였다.

 

'이름은 하나같이 다들 좋은데 어찌 이리도 멍청하단 말인가.

일의 내막을 상세하게 알아 보지도 않고 조직적으로 결단을 짓다니 나 원참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냉랭한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아주 반갑습니다.

그러나 전 의문스러운 게 하나 있습니다."

 

철장진삼상이 긴 수염을 매만지며 얘기했다.

 

"무엇이오?"

 

"그 듣기 좋은 아호는 당신들끼리 서로 잘 알아보려고 붙인 것인가요?"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넌 누구냐, 어서 말해라."

 

바로 그 때 한 사람의 괴인이 휘청거리며 위중평의 등 뒤로 날아오자

여러 군웅들은 일제히 놀란 소리를 쳤다.

그러나 군웅들은 자기편이 사람이 많다는 것을 믿고 야유를 하며 대여섯 사람이 그에게 돌격해 갔다.

장풍과 검영이 번득거리며 일제히,

 

"펑!"

 

하는 폭음과 함께 사람들은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한편 강시괴인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며시 위중평의 등 뒤로 다가와서

즉시 두 눈을 강고 마치 미친 듯이 큰소리로 웃었다.

"이런 밥통같은 것들이 무림의 고수라고 불리다니 정말 웃기는군.

제가 대신 여러분께 소개시켜 드리죠.

이 대사님은 바로 백 년 전 장변에서 이름을 날린 밀종파의 장문인이신 가목선사이시오."

이어서 다시 자기를 소개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강호의 말석인 위중평이란 사람이오."

조금 전에 위중평이 가목선사를 소개할 때는 모두 반신반의하며 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건 밀종파가 중원에서 존재가 희미해진 데다가 미소년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공정하지 못하자

이렇게들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소년이 위중평이라 하니 다들 태도가 달라졌다.

하지만 그는 십대 문파의 사람들에겐 좋은 인상을 심지 못했다.

더군다나 옥탈단장인과 왕래가 있었고 또 비록 공개적으로 명명주재와 맞선다고 하였지만

추혼천녀와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철적왕손에게서 명명주재의 사위라는 소리를 듣자

더욱이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대지선사가 염불을 외우며 말했다.

"귀하가 명문의 출신이라면 올바른 행동을 해야지,

왜 그 마녀를 잊지 못하고 명명주재에게 항복을 했단 말이오?

본 노승은 아주 안타깝게 생각하오.

오늘 밤의 일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 우리가 함부로 처리할 수가 없으니

잠시 동안 저 젊은이와 함께 같이 돌아가서 새로 뽑히신 장문인들의 공심을 받고 처단을 해야겠소."

십대 문파의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인상이 나쁘듯이 그도 마찬가지로 십대 문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터무니없이 억울한 누명을 자기에게 씌우려 하고 자신을 범인처럼 데리고 가서

공심을 하고 처단을 기다리라 하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순간 그는 잠재해 있던 옹고집이 발동되어 미친 듯 한바탕 웃어댔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당신네들의 심판을 받아야 말이오?

더욱이 진짜 범인을 옆에다 두고 나에게 죄가를 묻다니

내가 그렇게 어리석게 보인단 말이오. 아니면 당신들 모두가 멍청이란 말이오?"

위중평이 조금의 여유도 없이 그들에게 따지고 대들자 장내의 사람들은 주저하기 시작하였다.

몇몇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소리를 낮춰가며 의논을 했으나 철장진삼상 여강은 끝까지

위중평의 소행이라 고집을 부렸다.

공동파의 윤앙검객이 돌연 위중평의 곁으로 다가섰다.

 

"귀하, 요 최근엔 어디서 오셨소?"

 

"화산의 문수도원에서요."

 

"강남엔 무슨 일로 왔소?"

 

"명명주재를 만나 따지려고 왔소."

 

"오늘 밤에 이곳엔 무슨 일로?"

 

"납치당하신 십대 문파의 장문인을 찾다 여기까지…"

 

"그들은 찾아서 어찌하려고?"

 

"만약 기회가 있다면 그들을 구하려고 그랬소."

 

"마음 한 번 잘 쓰셨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될 텐데…"

 

유문풍이 냉소를 쳤다.

위중평은 새삼스럽게 화가 났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알아서 생각하시오.

소생은 당신네들과 이렇게 입씨름할 시간이 없소이다. 먼저 실례하겠소."

 

그러자 철마금과(鐵馬金戈) 진자옥이 황금빛의 단검을 휘두르며

그의 갈길을 가로막고 껄껄 냉소를 쳤다.

 

"그냥 이대로 가려고… 너무 쉽게 생각했구먼."

 

위중평이 노갈을 했다.

 

"가면 또 어때? 나를 남겨둘 생각이오."

 

철마금과의 얼굴이 순간 살기로 일그러졌다

 

"그렇다고 해둘까?"

 

"당신네 같은 사람들은 아직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 것이오."

 

"그럼 어디 시험을 한 번 해볼까?"

 

"좋지. 그럼 조심하시오."

 

위중평은 벌써 화가 치솟아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경리점화(鏡裡點花) 일식을 재빨리 펴고는 단검을 손에 쥐었다.

진자옥은 그에게 단검이 잡히자 만약 검을 뺏기게 되면 다시 강호에 낯을 들고

나설 수가 없다는 생각에 즉시 팔에다 행공을 하여 그것을 뺏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전력을 다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공격을 하려 하자 이십 근이 되는 단검이 뚝 부러졌고 동시에

그는 휘청거리며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섰다.

한편 위중평은 여전히 한 손으로 부러진 단검의 끝을 잡으며 끄덕도 하지 않았다.

위중평의 성질도 다시 없이 날카로워졌다.

"난 또 무슨 괴물들이시라고. 알고 보니 모두들 도명기세(盜名期世)의 이름을 빌어

세상을 기만하는 놈들이군 한 사람씩 올 것이지 어떻게 일제히 덤벼든단 말인가?

만약 위중평의 삼 초를 받아낼 수 있다면 내가 졌다고 시인하겠소. 어떻소?"

 

철장진삼상(鐵掌震三湘) 여강이 버럭 화를 내며 앞으로 걸어 왔다.

 

"귀하께서 너무 허풍을 떠는데 내가 한 번 받아보겠소."

 

하고는 손을 비비더니 정면으로 일 장을 내놓았다.

이름 그대로 철장진삼상이라 일 장이 나오자마자

즉시 한 줄기의 막강한 장풍이 휘몰아쳤다.

위중평이 가만히 서서 손을 휘두르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장풍이 맞부딪쳤다.

여강은 두 팔을 휘청하더니 뒤로 한 걸음을 물러섰다.

그러고는 재차 몸을 날려 공격하며 연속 일곱 장을 연발했다.

일시에 장영이 하늘을 메우며 위중평은 그 속에 갇히게 되었다.

사실 위중평은 각 문파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장영 속으로 뛰어 든 것이었다.

순간 철장진삼상 여강은 마치 독사에 물린 듯이 흠칫 놀라며 연신 물러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 초도 못 가서 상대에게 양쪽 어래를 잡혀 패하고 말았다.

이것도 그가 관대하게 봐준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필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여강이 패하자 대지선사는 커다란 옷소매를 펄럭거리며 흘연히 천고최명 일 초를 전개했다.

영풍도장과 윤앙검객도 검광을 번쩍거리며 두 개의 원을 그려 공격해 왔다.

바로 이 때 한 차례의 장풍과 함께 죽은 듯이 한쪽에서 있던 강시괴인 가목이 앞으로

다가서며 쌍수를 휘두르자 중인들은 분분히 뒷걸음질을 하였다.

위중평은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노선사님! 이 일엔 관여치 마시고 저를 대신하여 철적왕손만 지켜 주십시오."

 

그제서야 주위를 살폈으나 철적왕손은 언제 갔는지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위중평은 발을 구르며 원통해 했다.

 

"당신들 같은 멍텅구리 때문에 진짜 흉수가 달아났소."

 

몸을 돌려 쫓으려 할 때 장내의 사람들이 그를 저지하며 폭갈을 터뜨렸다.

 

"이것 봐! 이 틈을 타 그냥 빠져 나가려고? 그렇게는 안 돼!"

 

위중평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돌연 광소를 터뜨렸다.

 

"당신들과 끝장을 보지 않으면 안 될 줄 알았소,

만약 꼭 나를 괴롭히려면 그 당시의 상황을 좀 따져 봅시다."

 

그는 몸을 세우고 두 팔을 서로 포개며 냉소를 쳤다.

이들은 장문인들이 모두 독살을 당했다는 소리를 듣고 반신반의하였다.

그런데 위중평이 딱 잡어떼자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들은 폭갈을 터뜨리며 일제히 위중평에게 공격을 해 들어 갔다.

 

"덤벼라! 우선 이놈부터 처치하고 나서 방법을 강구해 봅시다."

 

그러나 위중평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층층의 장영 속에서 난무하고 있었다.

돌연 싸늘한 별빛 아래서 한 가닥의 자색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더니

급경한 냉풍이 일며 협공하는 여러 사람들의 병기가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일도의 금광이 곡선을 그으며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인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쾅! 하는 폭음과 함께 자그만치 서너 사람이 검광 아래서 죽어 갔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은 금루선연이었다.

그녀는 위중평과 성질이 달라서 매 초식마다 전력을 다했고 협공하던 사람은

앞을 다투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돌연 멀리서 처량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위중평은 순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멈추시오. 만약 멈추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네들이 자초한 것이니 용서받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대답은 밀려오는 장풍과 피부를 에이는 듯한 검기뿐이었다.

이런 맹렬한 공력에 강시괴인은 격노한 듯 귀신같은 괴성을 터뜨렸다.

이 괴성은 그가 백 년 동안을 수위한 내공으로 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송곳으로 귀를 찌르는 듯했으며 어찌나 처참하고 음산한지

마치 사신의 상종처럼 황산고찰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괴승이 곧 출수하리란 것을 짐작한 위중평이 급노하여 자옥선을 연신 힘껏 부쳐대자

그를 포위했던 사람들이 모두 뒤로 물러섰다.

"당신네들! 십대 문파의 정영들을 모두 이 고찰에 묻을 작정이오?

솔직히 말해서 나 위중평이 사정을 봐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좋은 상태가 되지 않았을 것이오.

그래도 은혜를 모른다면 이 밀종파의 친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흥!"

장내의 싸움은 정지되었다.

그래도 공기만은 팽팽히 긴장된 상태였다.

십대 문파의 사람들이 들끓었던 갈정을 냉각시키자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림의 오정선사가 합장을 하며 말했다.

 

"십대 문파의 장문인들이 어떻게 독살을 당했는지는 빈승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알아낼 테니

시주께서 만약 누명이라 생각하시면 잠시 동안만 빈승을 따라 소림사에 가셔서

이 일에 진범이 누구인지 알아낸 후에 다시 떠나는 것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오."

 

위중평은 큰소리로 외쳤다.

 

"당신네들의 뜻은 잠시 포로처럼 연금시키겠단 말이오?

어찌하여 그렇게도 일을 판단하지 못합니까?

위모는 그래도 그들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여기에 왔었는데

뜻밖에도 잠시 동안의 불찰로 그분들께서는 그놈에게 독살을 당하게 되었소.

내가 또한 그 흉수를 잡으려고 하는데 당신들이 그의 말만 듣고

그를 도망가도록 놓아 주었으니,

이 일이 도대체 누구의 책임이란 말이오? 어서 얘기나 좀 해보시오.

만약 내가 꼭 소림사에 가야 한다면 거기에 반대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소.

그 하나는 나에게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고 또 당신들은

나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오."

 

대지선사가 앞으로 나오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귀하는 못 가신다 그 말이지요?"

 

"안 가겠다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들과는 얘기도 하기 싫소."

 

윤앙검객이 장검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하는 수 없이 억지로라도 모셔야지."

 

이 때 흑옥인마가 괴소를 치며 뛰어들었다.

 

"난 아직 이렇게 하늘 높고 땅 넓은 줄 모르고 날뛰는 사람은 본 적이 없소."

 

영풍도장은 한 손을 가슴에다 대고 예를 취하며 물었다.

 

"어르신은 뉘시오?"

 

흑옥인마는 오만스레 대꾸했다.

 

"바로 노부이니라."

 

영풍도장은 깜짝 놀라 연신 뒤로 물러서며 두 눈을 크게 뜨고만 있을 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바로 이 때 담장 밖에서 커다란 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하나의 인영이 하늘을 가르며 장내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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