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55. 복수심

오늘의 쉼터 2014. 6. 21. 12:09

55. 복수심

 

 

홍모음효가 그 당시 신주검성이 피살된 경과를 얘기하려고 할 때 하나의 인영이

아주 민첩한 동작으로 공격해 왔다.

홍모음효는 사강의 우두머리로써 공격해 오는 것을 보자 창졸간에 칼을 뽑아들고 응수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공력은 너무나 강하고 빠른 것이라 큰 효과가 없었는지

한바탕 공중으로 붕 뜨더니 육칠 장이나 뒤로 물러섰다.

그 사람이 홍모음효를 후려친 동시에 위중평의 장력도 이미 만만치 않은 세력으로

그 사람의 등 뒤를 공격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커다란 소매를 뒤로 휘둘렀고 순간

한 가다락의 부드럽고 유연한 잠력이 땅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위중평이 내놓은 장력과 맞부딪치자

그는 마치 독사에 놀란 것처럼 급히 옆으로 비켜서더니 신형을 바꾸었다.

알고 보니 홍모음효를 죽인 사람은 다름 아닌 명명주재였던 것이다.

이 갑작스런 사건에 장내의 사람들은 일제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기에게 몸을 바쳐서까지 일했던 적발교주를 죽이다니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명명주재의 놀라움은 어느 누구보다 더했다.

그가 언젠가 허무전(虛無殿) 앞에서 위중평과 비무를 해본 일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아직 애송이였는데 반 년 사이에 이렇게 공력이 늘어서

자기와 맞설 정도까지 성장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적발교도들을 향하여 외쳤다.

 

"홍모음효는 나의 명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화산파에게 원수를 갚으러 왔고,

또 신주검성 후인에게 적대시하였으니 백 번 죽어 마땅하다.

너희들은 그의 명령을 받고 한 일이니 더 이상 죄를 묻지는 않겠다.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할까?"

 

위중평은 명명주재가 말한 것을 듣고 몹시 놀랐으나

그가 영문도 모르고 홍모음효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화가 치밀었다.

위중평은 냉소를 지었다.

 

"여기는 화산의 문수도원(文殊道阮)이지 당신의 허무전이 아니오.

어찌 함부로 명령을 내린단 말이오.

그리고 한 가지 묻겠는데 홍모음효가 막 우리 아버지가 피살되었을 때의

상황을 얘기하려 하는데 무엇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그를 죽인단 말이오?"

 

명명주재는 수십 년 동안 무림의 생사를 조정하며 아직 이렇게 대담스럽게

면박하는 사람은 덜지 못했다.

그의 평소 성질같았으면 그대로 놔둘 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이상스럽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홍모음효는 나의 명령을 어겼으니 마땅히 죽어야 한다.

이놈 너는 태도가 너무 방자하고 무례하다고 생각지 않느냐?"

 

위중평이 정색을 하고 달려들려 할 때 저 멀리서 괴상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런 뜻이 아니겠지.

살인을 해서라도 그의 입을 막으려는 술책이었겠지.

그러나 불행하게도 너의 수작으로는 온 천하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엔 부족함이 많아…"

 

명명주재는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

 

그는 몸을 날려 즉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폭소와 함께 남루한 옷을 입고 손에 개 쫓는 지팡이를 든

텁수룩한 화(化)라고 부르는 노인이 명명주재와 함께 장내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이 늙은이는 몸집이 거대하고 형상이 몹시 기이하게 생겼으며 두 개의 하얀 눈썹이

귀가 있는 곳까지 내려와 몇 개 되지 않은 수염 사이로 살이 보였다.

그는 타구봉(打拘棒)을 흔들며 껄껄 웃었다.

 

"그렇게 쉽사리… 안 되지, 이 백미개선(白尾蓋仙)을 없애려면 한참이나 남았어."

 

장내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이 백미개선은 오래 전에 은퇴한 개방 삼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이는 아마 백 세가 훨씬 넘었을 것 같은데 갑자기 화산에 나타나다니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위중평은 그런 놀라움은 아랑곳없이 잽싸게 몸을 두 사람 앞으로 내달아

백미개선에게 공수를 하며 물었다.

 

"노선배님께서 조금 전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혹시… 저의 가부(家父) 신주검성께서

그 때 당한 일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백미개선은 위중평의 위 아래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큰소리로 웃었다.

 

"지금은 자네에게 얘기할 시간이 없어.

먼저 내가 명명주재의 호천구사(昊天九死)의 신공을 받고 나서 얘기해 주지.

지금은 얼마나 공력이 늘었는지 어디 한 번 시험해 봐야지."

 

명명주재가 위중평을 정복하겠다는 일념은 아직 별 변동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신주검성이 피살당한 사실을 위중평에게 들려 주는 것을 꺼리고 있었는데

백미개선이 겨루어 보자는 말을 하자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개방삼노의 이름은 온 세상에 떠들썩한데

오늘 소인이 이런 자리를 얻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위중평은 그 두 사람이 곧 격돌하려 하자 하는 수 없이 옆으로 물러섰다.

일시에 장내의 공기는 싸늘해졌다.

두 명의 절세 고인이 일단 결투를 전개한다는 것은 분명 세상에서 보기 드문

무림의 구경이 될 것이었다.

이 때 명명주재가 천천히 호천구사신공을 운공하였다.

쌍장을 일양과 일음으로 가슴 앞에 모았다. 그것은 바로 태극도식이 되었다.

백미개선은 한 손으로 파란 타구봉을 잡고 우람하게 조철일주향식을 취하였다.

두 사람의 네 손이 마주치자 서서히 좌우로 돌면서 기회만 노리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 장 밖에서 깨진 징소리를 내며 아주 험상궂게 생긴 외다리 늙은이가 들어와

괴상한 웃음을 날렸다.

 

"닭 죽이는 데 뭣하러 소 잡는 칼을 쓰시오?

주재님은 잠깐 쉬시고 이 독각흉신이 백미개선을 대하게 해 주십시오."

 

명명주재는 개명삼로의 무공이 깊어 삼백 초 내에는 결판이 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때가 되면 양측은 승패를 불문코 이미 기진맥진할 텐데 만약 위중평이

또 덤벼든다면 일이 곤란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독각흉신이 나타나자 즉각 물러났다.

백미개선은 갑자기 독각흥신이 끼어들자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쳐들고 광소를 쳤다

 

"너같이 스승을 배반하고 조상에 욕을 먹인 배은망덕한 놈에게 내가 손을 쓰란 말이냐?

자, 이리 오너라. 그 벌을 오늘 받게 해 주지."

 

독각흉신은 본성이 매우 잔인하고 난폭하기 그지없어

백미개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폭갈을 지르며 가슴을 향해 정면으로 일 장을 내놓았다.

백미개선은 미간을 치켜 세우며 말했다.

 

"죽고 싶은가 보군."

 

그가 소매를 뿌리치자 한 줄기의 음풍이 솟아 오르더니

회오리 같은 장풍에 맞부딪쳤다.

 

"펑!"

 

독각흉신은 외다리를 휘청거리며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그 때 아직 나이가 어려 보이는 파란 빛이 어른거리는 소규화가 한 자루의 타구봉을 들고

숲 속에서 달려나왔으며 아주 빠른 동작으로 독각흉신을 향해 연속 칠 초를 공격했다.

독각흉신은 백미개선의 일 장으로 벌써 보이지 않는 골병을 당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 차례 소규화의 공격을 받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섰다.

순간 그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산이 쨍쨍 울리는 폭갈을 질렀다.

 

"이놈이 죽고 싶어 발광이군."

 

하고는 거령장(巨靈掌)을 휘두르며 즉시 아홉 장을 반격했다.

갑자기 뛰어나온 소규화는 바로 화악문에서 독각흉신에게 납치당한 상조화(尙祖華)였다.

그는 개방의 삼로가 구출해 준 후로 삼로에게 무공을 익혀서 그 위력이 대단하였다.

타구봉 하나로 독각흉신과 이십여 초를 겨루어 여전히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것을 보니

그 위력의 정도를 알 만했다.

이렇게 되자 독각흉신은 급한 김에 수 초의 장을 마치 비오듯 퍼부었다.

무서운 장풍으로 주위의 돌멩이와 모래알이 날려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십여 초를 겨루었다.

그 때 명명주재의 노한 음성이 들려 왔다.

 

"독각흉신! 오늘 밤의 일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고 이제 그만 철수하도록 해라."

 

하고는 몸을 돌려 산 밑으로 쏜살같이 내려가 버렸다.

독각흉신의 성질이 제아무리 못되었다 해도 명명주재의 분부는 거역할 수가 없어

즉시 손을 멈추고 뒤따라 내려갔다.

백미개선은 득의양양하게 광소를 쳤다.

 

"얘야! 많이 늘었구나. 그러나 아직도 내력이 충실치 못해…"

 

하면서 시선을 위중평에게 돌렸다.

위중평의 심후한 공력에 찬사를 보내는 것 같았다.

위중평은 즉시 앞으로 나가 겸손하게 예를 취하였다.

 

"가부 신주검성이 당한 결과를 노선배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백미개선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 일에 관한 얘기는 아주 복잡하니 자네는 그 골자만 명심할 뿐

다른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말기를 바라네."

 

그러면서 품 속에서 다 헤어진 청첩같은 것을 꺼내 위중평에게 주었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 명명주재가 영존을 포위 공격하라고

시킨 인원의 명단이니 자세히 보게."

 

위중평이 떨리는 손으로 그 명단을 받아보니 정말 가지각색이었다.

모든 정사 각파의 이름이 거의 다 들어 있는 것이었다.

맨 앞에는 소림파, 그 다음은 십대 문파, 그리고 사강삼흉(四强三兇) 등의 사람들이었다.

보면 볼수록 더욱 격분하여 그는 이를 갈았다.

 

"이런 쓸개없는 강호의 놈들!

그래 이렇게 많은 문파가 명명주재의 명령에 따라 한 사람의 정인군자를 살해했다니

그러고도 어떻게 강호의 사람에게 낯을 대할 수 있단 말이냐?"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했다.

이 때 청허도장이 천천히 그의 곁에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해 주었다.

 

"지나간 일은 생각지 않은 게 좋아.

어쨌든 거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죽었으니

지금은 단지 원흥인 명명주재만 남아서 따지면 되는 거네."

 

위중평이 별안간 무흔검을 뽑아들고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내리치자

바위는 두 동강이가 되었다.

위중평은 그것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만약 명명주재를 죽이지 못한다면 나도 이렇게 되겠다."

 

백미개선은 냉소를 쳤다.

 

"명명주재가 그 사실을 은폐하려고 적발교주에게 독수를 내렸지만

우리 세 늙은이가 그 사실을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네.

사실대로 말해 그 때 우리 늙은이들이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의 음모에 따라 죽었을 것이다."

 

위중평이 조심스럽게 명단을 품 속에다 넣고 물었다.

 

"노선배님은 어떻게 이번 일을 아시고 화산에 오셨습니까?"

 

"노부는 오래 전부터 은퇴를 하여 다시 강호의 일에 관여치 않으려고 하였으나

이놈이 너무 방자게 나온단 말이야.

그런데 다 후면협심 풍진객(逅面俠心風塵客) 두소경(杜少京)과 우내쌍광(宇內雙狂)이

이같은 일을 이야기하자 나도 여기에 오게 된 것이지."

 

이때 청허도장은 문하생들을 시켜 광장을 말끔히 청소하였으며

또 나머지 남은 적발교의 교도들에게 한바탕 훈시를 하고 내보고서야

백미개선에게 다가와 안으로 들어가 쉬도록 권했으나 백미개선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노규화는 아직 그럴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오지."

 

하면서 노규화는 상조화를 데리고 떠났다.

위중평은 명명주재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이라는 사실을 알자

지금 당장 허무전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청허도장이 그에게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라고 타일렀다.

위중평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돌연 낭랑한 웃음 소리가 들렸는데

다름아닌 우내쌍광, 구주풍인, 우주광인, 그리고 후면협심 두소경이었다.

구주풍인은 그를 보자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녀석! 너의 아버지가 피살된 상황을 백미선배님께서 말씀해 주셨느냐?"

 

위중평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사람은 나란히 관내로 들어와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 햇살은 창문을 통해 방안을 환하게 비치었다.

위중평이 자리에서 일어나 청허도장에게 말하였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사형께서는 세 분의 선배님과 함께 며칠 쉬었다가 오십시오."

 

구주풍인이 큰소리로 외쳤다.

 

"아직 시간도 이른데 뭐가 그렇게 급해. 난 아직 술 기분도 나지 않는데."

 

위중평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대답했다.

 

"후배는 이제 더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허무전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지금 떠나가렵니다."

우주광인이 말을 받았다.

 

"지금 소협이 급히 가려고 해도 우리에게 별로 나쁘지는 않지 않습니까?"

 

 

봉숭아 꽃잎이 손가락을 물들이고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사이로 바람이 흩날리자

강남엔 다시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찾아왔다.

위중평과 금루선연은 남쪽을 향해 걸으면서 들뜬 가슴을 억제하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 이 매혹적인 춘색이 젊은 남녀를 유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금루선연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쓸어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위소협은 이번 허무전 대회가 끝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위중평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대회에서 죽을지 살아남을지 아직 장담을 할 수 없소!

그러나 내 생각으로 각파는 아마 헛수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소.

그건 명명주재가 너무 교활하기 때문이오.

만약 그의 소굴인 허무전만 완전히 쓸어 버릴 수만 있어도

이번의 출행은 헛되지 않으련만."

 

"어쩜 그리도 잘 알아요?"

 

위중평은 버들가지 하나를 꺾어 동그라미를 만들고는 다시 말했다.

 

"난 모든 희망을 백공상인께서 약속하신 사강지회(四强之會)에 걸고 있소.

그 어르신께서 틀림없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실 것이오.

나는 믿소.

그 때서야 모든 숙원들도 다 풀리게 될 것이오."

 

금루선연이 갑자기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서의 적은 명면주재와 철적왕손 두 사람뿐이에요.

우리들의 원한이 풀릴 날도 머지않았군요.

그 때에 가서 우리의 일을 진행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 않아요?"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진행하려고 그러는지…

금루선연은 별안간 채찍질을 하며 웃음을 터뜨리고는 앞으로 달려갔다.

서수성에 도착하자 금루선연은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말을 나란히 타고 성 안으로 들어가 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은 장사가 어찌나 잘 되는지 좌석을 차지할 수가 없어

점원이 한참이나 애를 쓰다가 간신히 자리를 하나 얻어 주었다.

옆에는 나이가 한 팔십 이상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늙은 화상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는 백수를 길게 늘어뜨렸고 얼굴이 붉은 게 마치 수성노인 같았고

또 한 사람은 젓가락 같이 뼈만 남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연신 입에다 음식을 집어 넣으면서 지껄이고 있었다.

위중평은 무의식중에 무인도에서 강시괴인 가목선사를 만난 얘기를 하게 되었다.

가목선사가 멀지 않아 자기에게 시중을 들 것을 생각하니

입가에 엷은 웃음이 나왔다.

 

"만약 그 노선사가 오신다면 난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소."

 

긍루선연은 돌연 깔깔 웃었다.

 

"하루종일 그렇게 늙은 중과 같이 있으려면 제법 힘들겠어요."

 

방금 전 대단히 적은 소리로 이야기를 했었지만 금루선연은 기분이 좋아지자

자연히 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갈비같은 노인이 돌연 깔깔거리고 웃었다.

 

"조그만 나이에 그렇게 입을 함부로 놀리면 되는가?

제 명을 다하지 못할려고."

 

선연이 고개를 획 돌리고 말대꾸를 했다.

 

"이 늙은 중들아! 말도 골라서 하라고 했다.

본 낭자는 당신네들에게 얘기한 게 아니라구."

 

눈썹이 긴 화상이 염불을 외우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넌 어느 집의 낭자인데 그토록 교양이 부족하단 말이냐?

언젠가는 혼날 날이 있을 것이다."

 

금루선연이 화를 벌컥 내었다.

 

"당신이 뭔데… 본 낭자는 아직 누구의 훈계를 받아본 적이 없다."

 

위중평은 그들의 언쟁이 심해져 다시 복잡한 일이 생길까 두려워 막 일어나 말리려고 할 때

갑자기 질식할 만큼의 위풍이 몰아쳐 왔다.

그는 곧 갈비 화상이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고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한바탕 웃고는

선천조화신궁을 내놓았다.

대중들의 시선이 많은 객점이기에 쌍방은 모두 소리없는 암장을 사용하였다.

두 줄기의 암장이 서로 부딪치자 갈비 화상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낮게 코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어찌 너희들은 이렇게 안하무인이란 말이냐?

그 조그마한 재주를 믿고들 그러는 모양이구나."

 

위중평은 제자리에서 공수를 했다.

 

"두 분 대화상께서는 보찰이 어디시며 법호는 어떻게 호칭되옵니까?"

 

눈썹이 긴 화상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챘다.

 

"우리는 소림파의 지통과 혜통이다. 너희들은 어느 문파이냐?"

 

위중평은 자기 아버지를 죽인 흉수들의 명단을 본 후부터는

무림 각파에 대한 관념이 크게 바뀌어졌다.

그리하여 이 노승이 소림파에서 왔다는 소리를 듣고 위중평은 즉시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난 또 무슨 위대하신 고승이라고, 알고 보니

겨우 남의 등에 붙어서 먹고 사는 앞잡이들이시구만. 하하핫…"

 

그 웃음은 멸시하고 업신 여기는 빛이 역력하였다.

눈썹이 긴 화상은 사려가 깊은지 화해를 찾고 있었지만

갈비 화상은 눈을 부라리며 살기를 잔뜩 띠었다.

두 화상은 바로 소림에서 단 둘밖에 남지 않은 장로들이다.

더욱이 소림의 이십여 가지 절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 위치 또한 더할 나위없이 높았다.

 

"우리들은 강호의 후배들과는 상대를 하고 싶지 않지만

너희들에겐 따끔한 맛을 보여 주지 않으면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넓은지 알지 못할 것 같구나.

자, 성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 하자."

 

위중평은 냉랭한 웃음만 지을 뿐 아무 소리도 하지 않자

금루선연이 벌떡 일어서더니

은 한 조각을 꺼내 상에다 던지고는 위중평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얼굴 표정 하나 변함없이 한바탕의 격투를 결정지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그들을 주의깊게 보지 않았지만

저편 한 구석에 자리잡은 이상스럽게 생긴 두 사람은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따라나오고 있었다.

위중평과 금루선연은 나란히 성 밖으로 나가 조용한 묘지를 찾아서 뒤를 돌아보았다.

두 늙은 노승이 회색 도포를 펄럭거리며 뒤따라 도착하고 있었다.

위중평은 다시 삐뚤어진 성질이 되살아나 평소의 그 침착하고 얌전한 성격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소림파의 노승들을 꼰아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두 분께서 소림파의 마지막 왕패를 지닌 분이시죠?

내가 요행히 고현들을 만나 영광이옵니다.

자, 한 사람씩 오실 건가요?

아니면 두 분이 함께…

참, 그렇지. 당신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공격하는 게 특기지요.

그럼 함께 오시지요.

비록 우리도 두 사람이지만 절대로 협공은 하지 않을 것이오."

 

두 소림의 고승은 그의 이 한 마디에 하마터면 숨이 막혀서 질식할 뻔했다.

갈비 화상은 새파래진 얼굴로 분노에 쉽사였다.

 

"이놈, 너무 건방지구나."

 

그가 커다란 옷소매를 펄럭거리자 거센 강풍이 산을 무너뜨리고

나무를 넘어뜨릴 듯한 위력으로 불어왔다.

위중평은 말을 하면서도 속으론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무림의 대부분을 통솔하고 있는 소림사 내에 단 둘밖에 남지 않은

고승은 절대 무시할 존재가 아니었다.

강풍이 휩쓸어 오자 쌍장을 휘둘러 막았으나 몸을 스치고 자나가자

위중평은 폭소를 터뜨렸다.

 

"이런 기력은 남겨 두었다가 허무전에 가서 사용해야 하는데

만약 여기서 과시하고 싶으면 있는대로 다 내놓아 보시오.

내 눈요기 좀 하게 말이오."

 

갈비 화상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뼈만 남은 손을 교차하여 순간적으로 십여 장을 공격해 왔다.

일시에 장영이 하늘을 메우고 경기가 가득찼다.

이 소림의 심이금강선장의 위력은 정말 강대하고 맹렬했다.

더군다나 갈비 화상의 공력은 정말 놀랄 만하였다.

위중평은 섬뜩한 마음에 소림파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겠다고 다짐하며

길게 웃다가 갑자기 장풍 속으로 뛰어들어 지장을 병용하여 십이 식을 격출했다.

그는 칠품선란실(七品仙蘭實)을 복용한 후에 공력만 정진된 게 아니라

그의 지혜도 증진되어 순식간에 공세를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현구보록과 옥탑무공의 미묘함 또한 터득할 수가 있었다.

눈썹이 긴 화상은 소림에서 가장 높은 장로의 신문으로서 한낱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소년을 당해 내지 못한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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