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56. 동산재기(東山再起)

오늘의 쉼터 2014. 6. 21. 12:23

56. 동산재기(東山再起)

 

 

결판이 나지 않자 갈비 화상은 두 눈이 튀어나올 듯했으며 뼈에서 툭툭 소리가 났다.

그는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며 위중평에게 다가왔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그는 몇 십 년 동안에 정수한 공력으로 위중평과의

최후 일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위중평은 이러한 그의 속셈을 뻔히 알아차리고는 흐트러짐 없이 곁눈으로

그를 흘겨 보면서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대했다.

폭풍 전야같은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 속에서 돌연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안 돼!"

 

그러나 갈비 화상은 벌써 그의 장기인 장풍을 뽑아내고 있었다.

위중평도 주저함이 없이 손을 밖으로 힘차게 내치더니

한 가닥의 자주핵 유풍을 발산시켜 사방으로 퍼져 나가게 했다.

갈비 화상의 장풍이 자주색의 유풍 속에 들어가자

장내는 즉시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동시에 강력무비한 힘이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전신이 섬뜩해진 갈비 화상은 재빨리 일 장 밖으로 물러섰다.

마르고 핏기가 없는 얼굴에 몇 번 경련이 일더니

돌연 입가에서 두 줄기의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긴 눈썹의 노승이 소매를 펄럭이며 갈비 화상의 앞에 서더니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어서 감정을 회복시키고 더 이상 화를 내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휴우… 정말 말하기조차 딱하구나."

 

갈비 화상은 즉시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위중평은 이미 노기가 사라져 무표정한 얼굴로 갈비 화상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금루선연에게 말했다.

 

"소림의 절기는 이미 알았으니, 우리 그만 갑시다."

 

금루선연은 쭉 관전만 하고 있다가 기분이 몹시 좋지 않은 듯 입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

 

"조금 전에는 금방 무슨 일이라도 낼 듯 달려들더니 이젠 싸울 생각도 않다니. 흥!"

 

바로 이 때 사방에서 요란한 사람들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중의 두 사람은 허무칠성 중의 문성 조건과 무성 성강이었다.

그녀는 냉큼 소리를 질렀다.

 

"상공! 저놈들은 명명주재의 사람이에요.

저들은 무슨 무성, 문성인가 하는데 아주 나쁜 놈들이에요."

 

문성 조건이 종이 부채를 저으며 껄껄 웃었다.

 

"소림파의 두 고승과 장백파의 장문인인 위소협

그리고 신가보주 선낭자께 특별히 저희 육성을 보내 멀리서나마 마중을 하라 하셨기에

이토록 명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소협들을 만나게 되니 정말 다행입니다."

 

금루선연이 냉소를 쳤다.

 

"여우가 닭한테 인사치레를 하는 것을 보니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야."

 

위중평은 육성이 모두 왔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허무칠성은 무공이 뛰어났고 공력도 명명주재의 바로 밑이었다.

오늘 이렇게 대거 출동한 것을 보니 쉽게 끝나지 못할 것 같았다.

 

"허무전의 칠성이 각기 다른 특기를 지녔다고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한꺼번에 온 것을 보니 틀림없이 무슨 큰일이 생겼는가 본데

솔직히 털어 놓는 게 어떻겠소."

 

문성 조건이 음침하게 웃었다.

 

"귀하께선 매우 시원시원하시구만. 그럼 말을 하겠소.

우리들은 명을 받들어 각 방에서 오시는 무림동도들을 안내해 드리고

또 한편으로는 귀하의 신공절기를 견식하고 싶어서 여기에 온 것이오."

 

위중평은 검미를 세우며 대답을 하려 했다.

 

돌연-.

 

천둥같은 고함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권성 조표가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웬 잔소리가 많소? 막내가 저놈에게 죽었으니 저놈을 죽이면 그만이지…"

 

금루선연이 검자루를 굳게 잡은 채 말했다.

 

"흥! 못생기고 멍청한 자식이 말이 많군!"

 

악성 위음이 옥소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위모와 위소협은 같은 종씨로서 이 낡아빠진 퉁소로 귀하와 겨루고 싶소."

 

장내에는 당장이라도 격투가 벌어질 것 같았다.

순간 묘지 쪽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의 괴성이 들려 오며 홍포를 입은 해골같은 괴인이

휘청거리며 분당(分堂)에서 바람에 날리는 깃털마냥 위중평의 곁으로 곧장 다가왔다.

금루선연이 깜짝 놀라 쨍, 하고 장검을 뽑아들자 위중평이 가로 막았다.

 

"덤벙대지 마시오. 이분은 가목선사이오."

 

그 때서야 시체같은 괴인은 위중평에게 합장을 했다.

 

"가목이 주인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렇게 대령하였습니다."

 

위중평은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고 예를 취했다.

 

"선사의 이런 거동에 소생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악성 위음은 돌연 그 선사의 출현을 보고 가슴이 섬뜩함을 느꼈지만

이왕 뽑아든 칼이라 결판을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위중평이 선사와 얘기만 할 뿐 거들떠보지도 않자 화를 버럭 내면서 말했다.

 

"위나으리께선 내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이오?

도대체 결투를 하려고 하는 거요, 뭐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홍광이 한 차례 어른거리더니

선사는 마치 한 조각의 홍운이 하늘에서 급강하하듯 바람같이 달려와

그의 옥소를 뺏으려고 하였다.

악성은 크게 놀라 옥소를 재빨리 세 번씩이나 휘두르더니

바람에 날리듯 뒤로 삼 척이나 물러섰다.

그러나 가목선사는 신법이 어찌나 경쾌한지 일격이 맞지 않자

다시 다섯 손가락을 고리처럼 구부려서 공격을 취하였다.

지공이 하도 예리하여 악성은 할 수 없이 옥소를 휘두르며 또다시 삼 척이나 물러섰다.

그러나 결코 그는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

두 번째 몸을 뒤로 피하는 순간에 이미 비풍호의 절초를 내 놓았다.

순간 이상한 소리가 일더니 구슬픈 바람에 괴소까지 섞여서 장내를 들끓게 했다.

소림 장미승은 염불을 외우면서 부상당한 갈비승을 끌어올려 부축하고는

십 장 밖으로 물러나갔다.

위중평은 수차 기연을 얻어 공력이 이미 높은 경지에 올라 있어 뭔가 수상쩍음을 느끼자

급히 신공을 운공하여 태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있었으나 금루선연은 그렇지 못했다.

그녀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공력을 운공하여 그 괴음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가슴을 억누르는 것 같아 역기가 쉬지 않고 올라왔다.

그러나 그녀도 굽히지 않는 성격이라 그 자리에서 버티고 물러서지 않았다.

악성의 비풍호를 당해낼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았으나 오늘은 가목선사를 만났으니

재수가 없었다고 하는 수밖에 없다.

가목은 황도(荒島)에서 근 백 년이나 살았으니

이런 괴음이 머리를 뒤집어 논다 해도 별 일이 없었다.

오히려 열 손가락을 고리처럼 구부리며 급소를 향해 계속 공격 했다.

일 초가 끝나기도 전에 그는 벌써 뒤로 팔 척이나 물러났다.

악성은 격노하여 막 초식을 바꾸려고 하였으나 돌연 괴상한 웃음 소리가 나더니

한 자루의 새파란 옥소가 가목의 손에 쥐어졌다.

이어 손가락을 밖으로 내뻗자 한 줄기의 지풍이 머리를 강타하였다.

악성은 옥소를 상대에게 잡힌 것이다.

그러나 강호의 인물이 어찌 자기의 생명처럼 여기는 병기를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수 없이 전신의 공력을 다해 일 장을 내놓자

두 줄기의 장풍이 조금의 여지도 없이 격중되었다.

펑! 하며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오자

오히려 악성이 거의 사색이 되어 연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가목선사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휘두르자

악성은 옥소와 함께 이 장 밖으로 내동댕이 쳐지며 떼굴떼굴 굴러서

옆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악성이 그렇게 되자 폭갈이 터져 나오더니

권성 조표와 무성 성강이 함께 가목선사에게 달려들었다.

금루선연은 단검을 뽑아 들더니 예리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파렴치한 놈들! 사람이 많다고 한꺼번에 달려드는 거냐?"

 

와황금검(禍皇金劍)이 금망을 번득이며 무성에게 달려들었다.

권성 조표는 권풍을 몰아 가목선사와 이 초를 부딪쳤다.

한편 기성(棋聖) 범통(范通)과 주성(注聖) 여백(黎伯)

그리고 문성 조건이 각기 운공을 시작하였다.

위중평은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세 분께서 만약 몸이 가려우시다면 내가 상대해 드리지요."

 

위중평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나갔다.

 

돌연-.

 

우렁찬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소림파의 장미(長眉)승이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위중평의 곁에 서서 소리쳤다.

 

"소승도 한 번 허무칠성의 신공절기를 구경하고 싶은데."

 

주성 여백이 커다란 배를 움켜 쥐고 껄껄껄 웃어댔다.

 

"대화승께서도 그런 취미가 계셨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이 술주정뱅이가 한 번 상대해 드리는 것이 어떨까요?"

 

장미승은 합장을 하며 대답했다.

 

"먼저 하시오."

 

바로 이 때 한 가닥의 은색 무지개가 번개처럼 장내로 들어오더니

문성 조건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런 비장군(飛將軍)이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오는 돌발적인 사고에

문성 조건은 크게 놀라 부채를 마구 휘두르며 뒷걸음질을 치고는 간신히 몸을 바로잡았다.

위중평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다가 다름아닌 은의소녀임을 확인하자

몹시 놀라는 한편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때 기성 범통의 두껍고 무거운 바둑판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한쪽에 비켜서 있던 장미승과 주성도 칼을 뽑아들고 공세를 취하였다.

금방 열 사람의 고수들이 다섯 패로 갈리어 일 대 일의 싸움판이 벌어졌다.

허무육성은 위중평을 습격하여 죽여 없애려는 생각을 가졌으나 뜻밖에도

음모가 발각되고 악성마저 상처를 당했으니 비분한 나머지 각기 일신의 독특한 공력을 전개했다.

순간 장내에는 무림에서 보기드문 장관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목선사는 근 백 년의 공행으로 조표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그는 주인의 신분을 의식한 탓인지

단지 상대를 장풍 내에서 잡아두었을 뿐 즉시 살수를 쓰진 않았다.

금루선연은 쟁투욕이 강해서 쓰는 초식마다 모두 살초식이었으나 허무칠성으로 불리우는

그들도 보통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녀가 단검을 휘둘러 검광이 번쩍인다 해도 여전히 상황은 비슷하였다.

장미승은 소림 왕패의 신분으로 나섰기 때문에 명명주재와 격투하기를 바랐으나

허무칠성을 대하자 하나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였다.

위중평은 명명주재가 죽이도록 미웠으나 허무전의 사람들에겐 그 정도의 적개심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은의소녀를 자세히 바라본 순간부터 이상한 생각을 금치 못하였다.

그녀의 태도에 어딘가 수상한 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성난 사자처럼 매 초마다 목숨을 생각지 않고 덤벼들기만 하는 것이었다.

 

'저 여자가 대관절 무슨 짓을 하는 것이지?'

 

그가 다른 데에 신경을 쓰고 있는 순간,

기성 범통의 동반(桐盤)이 또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멍청히 있는 그를 향해 덮쳐 왔다.

위중평은 은의소녀의 안부가 궁금하고 또 자신의 처지도 위험하기 이를 데 없자

갑작스럽게 마음이 조급해져 길게 휘파람을 날리며 천룡장풍을 전개했다.

벌써 현관이 통한 그가 전개하는 천룡장풍은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은 위력을 지녔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구리로 만든 상이 허공으로 날려갔다.

위중평은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몸을 돌려 은의소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돌연 괴성이 울려 퍼지더니 하얀 색과 검은 색의 바둑알이 그의 등 뒤를 강타했다.

이것은 기성 범통이 부상을 입은 후에 한 짓이었다.

위중평은 반응이 영민해서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벌써 자옥선을 수중에 감추었다.

그리고 홀연히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는 한편 추풍낙엽의 회오리 같은 장풍으로 몽을 보호하자

총알 같던 바둑알이 온 하늘을 뒤덮었으나 어느 한 알이라도 그의 몸을 맞추지 못하였다.

그 때 비참한 비명 소리가 나더니 권성 조표는 가목선사의 강과(鋼瓜) 같은 양 손에

두 팔목을 잡혀 갈갈이 찢기우고 있었다.

이어 삼 장이나 힁겨 나가더니

쾅, 하고 분당의 청석에 부딪쳐 금방 머리가 산산조각이 난 채 황천으로 직행하고 말았다.

가목선사는 권성을 해치우고 다시 소리쳤다.

 

"주인님! 나머지 저 두 놈도 없애 버릴까요?"

 

위중평은 은의소녀를 항해 달려가면서 급히 대답했다.

 

"잠시 쉬시오."

 

가목선사는 즉시 눈을 감은 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마치 굳어진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허무육성은 그가 힘으로 권성의 위풍을 꺾고

또 위중평의 명령을 그대로 행하는 것을 보자 몹시 두려웠다.

그래서 무공은 눈에 보일만치 떨어지고 있었다.

문성 조건은 무공이 은의소녀와 비슷하였으나 그 수련의 정도를 말한다면 한 수가 높았다.

그러나 은의소녀의 발광에 가까운 공격에는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 그는 조심스럽게 물러서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중평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자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갑작스런 폭갈을 터뜨리며 정면으로 은의소녀에게 대항했다.

 

"꽝!"

 

하는 폭음 속에 은의소녀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더니

두 다리를 휘청거리며 뒤로 두어 걸음을 물러섰다.

문성 조건이 기세등등하여 십이 성으로 공격을 올려 장심을 내뻗자

한 줄기의 용맹무비한 장풍이 태풍처럼 몰아쳤다.

순간 위중평이 도착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낭자! 고집부리지 말고 비키시오. 내가…"

이렇게 말하고는 일 장을 문성을 향해 격출했다.

그러나 고함 소리를 듣자 그녀는 오만한 성격 때문에 냉랭한 코웃음을 쳤다.

 

"참견하지 말아요."

 

하며 재빨리 일 장을 격출하며 맞섰다.

그러나 상대방의 전격적인 일 격에 은의소녀는 돌연 뒤로 물러섰다.

그 때 위중평의 일 장이 문성을 압도해 갔다.

일순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하나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치솟더니

털썩, 하고 숲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피를 이삼 척이나 높이 토해 내며 숨졌다.

육성 중 이미 세 사람이 죽었고 하나는 부상을 당했다.

주성 여백과 무성 성장이 철수하려고 부상중인 기성을 부축하여 일어날 때였다.

 

돌연-.

 

시체처럼 굳어 있던 가목선사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세 사람의 앞길을 막았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음산하게 말했다.

 

"주인님! 이 세 사람을 어떻게 할까요?"

 

위중평은 은의소녀를 안으며 대답했다.

 

"그대로 보내 주는 게 좋겠소."

 

주성 여백이 천연스럽게 웃고 나더니 말을 받았다.

 

"네 이놈! 너무 으스대지 마라. 오늘의 이 원수는 언젠가 꼭 갚고야 말겠다."

 

하며 두어 번 뛰는가 싶더니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소림의 장미승은 일생 동안 배운 바를 다해서

칠성의 우두머리인 주성과 근 백 초를 겨루었으면서도 반 초의 승리도 얻지 못하였다.

비록 정신 수양이 깊어 그런 일에 빠져들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뵐 낯이 없어

살며시 갈비 화상과 대꾸 한 마디 없이 그냥 가 버렸다.

이제 장 내에 단지 위중평과 은의소녀, 금루선연 그리고 가목선사 네 사람만 남았다.

은의소녀는 문성 조건의 장력에 상하여 눈을 감고 조식을 한 후 눈을 뜨다가 자기가

위중평의 품에 비스듬히 안겨 있는 것을 보고 화를 버럭 내며 바로 앉았다.

 

"이까짓 상처로는 죽지 않으니 능청떨지 말아요."

 

위중평은 멍청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잘못한 것이라도 있단 말이오?"

 

은의소녀가 냉랭히 웃었다.

 

"당신보다 더 으스대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려고요.

흥! 초대장으로도 납시지 않으니 눈알이 하늘에 박혔담…"

 

하면서 돌연 발걸음을 옮겨 미친 듯이 달려갔다.

위중평은 엉겁결에 급히 소리를 질렀다.

 

"내상을 입었으니 뛰면 안 되오!"

 

목구멍이 터져라고 불러봐도 그녀는 어느 사이에 종적을 감추었다.

금루선연은 서서히 위중평의 곁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왜 그렇게 화를 내죠?"

 

위중평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아!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일을 탓하는 것 같구려.

내가 이번 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소식을 모르고 있겠지."

 

금루선연은 위로하듯 속삭였다.

 

"이 일은 언젠가는 밝혀질 테니까 너무 상심 말고 어서 갑시다."

 

강시괴인 가목선사는 마치 살아 있는 해골처럼 눈을 감은 채 한참이나 서 있더니

별안간 눈을 떴다.

 

"저… 여시주께서 사용한 것이 혹시 와황금검이 아닙니까?"

 

위중평이 말을 받았다.

 

"그렇소. 이게 바로 그 당시 이궁 주인의 유물이오."

 

"그럼 벌써 이궁(離宮) 주인의 전수도 받았겠군…"

 

"그렇소! 우린 옥탑의 무공을 모두 터득했소."

 

"그럼 누가 이궁 주인을 대표할 수 있소."

 

금루선연은 위중평에게서 이 일을 듣은 적이 있어

그의 말투를 듣고 즉시 그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자 노갈했다.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대표할 수 있어요."

 

돌연 가목선사의 무표정한 얼굴에 몇 번인가 경련이 일어났다.

 

"주인님! 이궁 주인을 대표하실 수 있으십니까?"

 

위중평은 살며시 웃어 보였다.

 

"합법적인 대표는 백공상인과 옥탑단잔인이죠.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내가 대표가 될 수도 있소.

혹시 이궁 주인과 같은 수단으로 금검을 도로 찾으려는 게 아니오?"

 

강시괴인은 껄껄 괴소를 쳤다.

 

"당연한 처사요. 난 절대로 백 년의 수위 내력을 겨루지 않을 것이오."

 

위중평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이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일이니

지금부터 한번 공평한 경쟁을 시작합시다.

난 당신의 어떤 양보도 바라지 않소. 있는 대로 다 쓰시오."

 

강시괴인 가목이 합장을 했다.

 

"그럼 가목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동물의 발톱같은 두 손을 밀어내자 뼈를 깎는 듯한 음풍이 이미 밀어닥쳤다.

위중평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쌍장을 앞뒤로 하여 서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강시괴인 가목이 돌연 괴소를 질렀다.

 

"먼저 하십시오!"

 

"그럼 조심해서 받으시오."

 

말과 동시에 몸을 앞으로 내닫으며 질풍처럼 아홉 초식을 연공했다.

모두가 다 옥탑무공이었다.

가목은 양 다리가 굳어져서 구부리기가 어렵지만 절대로 행동에는 영향이 없었다.

가목의 손가락은 열 자루의 예한 단검처럼 위중평의 급소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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