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54. 제삼의 방해자

오늘의 쉼터 2014. 6. 21. 11:44

54. 제삼의 방해자

 

 

위중평은 적발교의 사람들이 침입해 온 것을 보자

눈에 즉시 살기를 띠며 음침한 냉소를 터뜨렸다.

 

"으흐흐흐… 적발교 놈들, 이 어르신네가 찾으러 가기도 전에 스스로 찾아 왔으니

오늘 밤 이 화산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있거라."

 

위중평의 이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예리한 파공음을 가르며 장풍이 업습해 왔다.

이에 위중평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일 장을 내휘둘렀다.

 

"펑!"

 

"으악!"

 

폭음이 터져 나오며 기습을 가해 오던 자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삼 장 밖으로 나가떨어져 칠공에서 검붉은 피를 쏟으며 길게 뻗어 버렸다.

위중평의 이 일 장에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뿔뿔히 도망을 치고 말았다.

위중평이 싸늘하게 냉소를 치며 막 관 안으로 되돌아 가려는데-.

 

"휘익!"

 

바람 소리와 함께 한 줄기 거대한 인영이 곧장 장내로 격사되어 들어왔다.

그 자는 붉은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키가 자그만치 여덟 자나 되는

거대한 몸에 옷은 상당히 짧아 무릎까지 올라가 있었고 금포에 울퉁불퉁한 정강이가

시커멓게 드러나 흡사 야만인과도 같았다.

괴인은 한참 동안 위중평의 아래위를 가늠해 보더니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날렸다.

 

"이놈, 네가 바로 위중평이냐?

흥, 아직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놈을 이 어르신네가 직접 처치할 필요는 없지!"

 

괴인이 막을 몸 돌려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돌연 숲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더니 적발괴인을 향해 공손하게 보고를 올렸다.

 

"조사나으리께 아룁니다.

조금 전에 한단사신과 음산일귀가 바로 저놈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적발괴인은 나타난 자를 훑어보며 험상궂은 어조로 말했다.

 

"너는 교 안에서 무슨 직책을 맡고 있느냐?"

 

"예, 제자는 바로 삼성순회당(三省巡廻堂)의 당주로 이름은 홍사신장(紅砂申掌)

호옥전(胡玉田)이라 합니다."

 

적발괴인은 갑자기 대갈일성을 터뜨리며 욕을 퍼부었다.

"이 밥통같은 놈!"

말을 뱉아내기가 무섭게 그는 거대한 소매를 한 번 떨쳤다.

 

"으악!"

 

대번에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며 홍사신장은 삼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적발괴인의 이런 뜻밖의 행동에 어리등절해진 것은 오히려 위중평이었다

그때 숲 속에서 또 하나의 괴인이 나타났다.

이번에 나타난 괴인은 적발괴인과는 아주 대초적으로 황색장삼이 땅에 질질 끌려

흡사 다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고 들창코에다 사팔뜨기 눈하며

정말 두 번 다시 못 봐줄만큼 추악하게 생긴 자였다.

황삼괴인은 적발괴인을 향해 공손한 어투로 입을 떼었다.

 

"아니, 형님, 도대체 무슨 일로 이처럼 노발대발해 계시는 겁니까?"

 

적발괴인은 대뜸 위중평을 손가락질하며 거치른 목소리로 말했다.

 

"저따위 새까만 후배 놈 하나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이 이 먼 곳까지 초빙받아 왔으니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얘야, 너도 한 번 생각을 해보아라. 우리 옥문쌍기(玉門雙奇)가 저따위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와 싸우게 되었나를…"

 

나타난 이 두 사람은 바로 적발교주의 사부이며 세외(世外)에서도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흉마 옥문쌍기였다.

옥문쌍기의 첫째는 적발령관(赤髮靈官) 주불(周佛)이라고 하며

둘째는 납탑랑중 장풍(莊風)이라고 했다.

옥문쌍기는 일신의 열부사공(裂膚死功)을 거의 십 성에 달하도록 연마해 내었을 뿐 아니라

그 성격들도 심히 포악하고 잔인했으며 또 괴팍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돌연 납탑랑중이 음침한 괴소를 터뜨리며 입을 떼었다.

 

"흐흐흐흐…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애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좀 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더니 손을 들어 위중평을 가리켰다.

 

"더구나 저놈을 보니 꽤 똑똑한 것 같으니 우리 제자로 거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납탑랑중은 말을 끝내고 나서 위중평을 향해 마구 지껄여 대었다.

 

"야, 이놈아! 너 올해 몇 살이냐?

내 널 제자로 거두고 싶은데 너의 뜻은 어떠냐?"

 

위중평은 이 소리에 울화가 극도로 치밀어 차갑게 소리쳤다.

 

"본 공자의 나이가 몇 살이든 그것이 당신네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오?

그리고 분명히 말해 난 당신네들의 제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속히 이 화산에서 떠나시오!"

 

납탑랑중은 이 소리를 듣자 새파랗게 질려 펄쩍 뛰었다.

 

"아, 아니… 이 새파란 놈이 우리 옥문쌍기를 모욕하다니 정말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분노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납탑랑중은 나뭇가지처럼 시들시들한 손을

위중평의 가슴팍을 향해 잡아 왔다.

위중평은 납탑랑중의 손끝이 가슴팍에 닿기도 전에 한 줄기 싸늘한 음풍이

온몸으로 엄습해 드는 것을 느끼고도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골려줄 셈으로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까짓 실력으로 감히 이 화산파에 와서 까불다니 정말 가소롭기 그지없구나!"

 

위중평은 싸늘한 비웃음을 터뜨리며 담궁조계라는 초식으로 납탑랑중의

시들은 손목을 나꾸어 채갔다.

납탑랑중은 의외로 거세게 밀리자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세 발자국이나 물러났다.

그러나 위중평의 기세는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은 채 이번에는 경리점화라는 일식으로

마치 전광석화와 같이 납탑랑중의 맥문을 잡아갔다.

이렇게 되자 납탑랑중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다섯 발자국이나 물러났다.

위중평은 연속 이 초로 그를 공격한 후 낭랑하게 웃어젖혔다.

 

"하하하핫… 난 또 무슨 대단한 인물인가 했더니

역시 한낱 조무라기에 지나지 않는구나!

자, 듣거라. 너희들이 덤비려면 둘이 함께 덤비든지 아니면 속히 꺼지는 것이 좋을 거다!

너희들이 하나씩 덤비는 것은 본 공자의 아침거리도 되지 않는구나!"

 

납탑랑중은 비웃음에 가득찬 위중평의 말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폭갈을 터뜨렸다.

 

"이놈! 어디 한 번 죽어 보아라!"

 

하며 새까만 손을 휘둘러 연속 십이 장이나 격출해 내었다.

그러나 주위에는 순식간에 장풍의 그림자가 뒤덮었다.

옥문쌍기의 무공은 확실히 독특했다.

위중평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여전히 태연자약하게 버티고 서서

쌍장으로 커다란 원을 하나 그렸다.

 

순간-.

납탑랑중의 산세처럼 무수하던 장영은 일순간에 정말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졌다.

납탈랑중은 더욱더 울화가 치밀어 예리하게 소리쳤다.

 

"오늘 이 어르신네가 네놈을 죽이지 못하면 당장 성을 갈 것 이다! "

 

폭갈과 함께 어깨를 들썩거리자 양 팔에서는 삐끄덕 소리가 나더니

반 자 가량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늘어난 팔로 납탑랑중이 가슴팍 앞에 원을 그려내자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한풍이 뻗어 나왔다.

이것은 바로 옥문쌍기의 특기인 열부장법이라는 것으로 피부를 째고 뼈를 깎는 무한한

위력이 깃들여 있었다.

이 납탑랑중의 위력은 적발교주보다 수십 배는 더 고강했다.

그러나 위중평은 이들과 곡전녹격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쌍잡에다 온몸의 진기를

다 주입시키고 나서 경도백여라는 영악무비한 초식을 내뱉았다.

 

"펑!"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납탑랑중은 둔한 신음을 터뜨리며

뒤로 다섯 발자국이나 물러났다.

위중평은 두 눈에서 싸늘한 정망을 폭사시키며 소리쳤다.

 

"납탑랑중, 넌 이제 옥문으로 되돌아 갈 필요가 없으니 아예 귀문관에 가서 등록을 해라! "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위중평은 또다시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조화신공을 발출해 내었다.

납탑랑중의 안색은 이미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사악한 마두인 만큼 도저히 그냥 물러날 수 없는지라 고래고래 소리쳤다.

 

"네… 이놈! 귀문관으로 가서 등록을 해야 할 놈은 바로 네놈이다!"

 

오만한 대꾸와 동시에 납탑랑중은 온몸의 진기를 끌어올려 일 장을 맞받았다.

다시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지며 납탑랑중은 뒤로 다섯 보나 주르르 밀려났다.

그러나 위중평은 여전히 그 자리에 태산처럼 버티고 서 있는 것이었다.

이 때 장내에서 하늘을 울릴 것 같은 폭갈성이 터져 나왔다.

적발령관이 보다 못해 위중평을 향해 덮쳐오는 것이었다.

위중평은 싸늘한 냉소를 날리며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회전시켜 일 장을 내밀었다.

위중평이 뻗어낸 이 일 장에는 마치 아무런 위력도 없는 듯 바닷물 속에 잠겨 드는 듯

소리가 없었다.

그러나…

적발령관은 위중평의 일 장과 접하는 순간 무슨 독사라도 만난 듯 몸을 움찔하더니

뒤로 다섯 자 가량 물러났다.

그리고 이미 부상을 입었는지 입가에선 한 줄기 선혈이 밀려나오고 있었다.

위중평은 두 명의 고수를 격퇴시킨 후 마음 속으로 느끼는 생각이 있어 급히 중얼거렸다.

 

'혹시 그들이 날 일부러 이곳에다 유인해 놓고 문주도원(文珠道阮)을 공격하려는 건 아닐까?'

 

위중평은 여기까지 생각을 해보자 살기가 대번에 머리를 들고 치밀었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오늘 그놈들을 내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으리라!'

 

위중평이 이런 비장한 결단을 내렸을 때 옥분쌍기는 몸을 번득이며 줄행랑을 놓으려고 했다.

위중평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다.

 

"이놈들! 감히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외침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그의 몸은 이미 허공을 날아 옥문쌍기의 뒤를 쫓으며

무인도에서 가목선사에게 배운 엉성하기 짝이 없는 괴이한 신법을 전개해 내기 시작했다

옥문쌍기는 이 괴이한 신법을 보자 무턱대고 쌍장을 밀어왔다.

 

순간-.

 

"펑!"

 

하는 폭음과 함께 위중편의 몸은 저만치 밀려났다.

그러나 땅바닥에 어김없이 나가 떨어질 줄 알았던 위중평의 몸이 허공에 뜬 채

다시 되돌아 오는 것이 아닌가.

옥문쌍기는 이 괴이한 광경을 보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몸을 돌려

위중평과 교차를 이루며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위중평의 몸이 빙그르 돌더니 다시 선회를 하여 덮쳐 오는 것이 아닌가.

옥문쌍기가 이 괴이한 초식에 놀라 몸을 가누기도 전에 제각기 등에 직통으로 일 장씩 맞았다.

 

"으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일대의 마두 옥문쌍기는 칠공에서 피를 내뿜으며 즉사를 하고 말았다.

위중평은 자신이 처음으로 사용한 이 괴초가 이처럼 커다란 효과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숲 속에서 미세한 인영이 달껴나오더니

다짜고짜 위중평을 붙들고 크게 소리쳤다.

 

"위상공, 미옥언니가 갔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요?"

 

위중평이 움찔해서 보니 바로 금루선연이었다.

위중평은 그녀가 이곳에 나타난 것에 몹시 어리둥절했다.

이때 금루선연은 멍청하게 서 있는 위중평을 보자 애가 타는 듯 펄쩍펄쩍 뛰었다.

 

"당신, 왜 그래요? 제 말을 듣지 못했어요?"

 

위중평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듣기는 들었는데 무슨 뜻인지는 통 모르겠구려."

 

금루선연은 피식 웃으며 눈을 흘겼다.

 

"그럼 이곳에 앉으세요. 제가 천천히 말씀드리죠."

 

위중평이 그녀의 말대로 옆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자,

금루선연은 즉시 입을 열어 묻기 시작했다.

 

"듣자니 당신은 와도로 갔다던데 어째서 이처럼 빨리 오셨죠?

혹시 추혼낭자를 만나 못 가게 된 것은 아닌가요?"

 

추혼천녀의 말이 나오자 위중평은 우울한 탄식을 토해 내었다.

 

"그녀는 이미 출가를 했으니 이후부터는 영원히 만나볼 수가 없을 거요…"

 

금루선연은 이 뜻밖의 말을 듣자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그게 정말인가요?"

 

위중평은 시선을 하늘로 옮기며 중얼거렸다.

 

"그렇소. 그녀는 갔소.

마치 허공에 뜬구름처럼 소리없이 나타났다가 소리없이 그렇게 사라져 갔소…"

 

금루선연은 동정이 가는 듯 붉은 입술을 씰룩이며 못내 안타까워했다.

 

"추혼언니, 그녀는 정말 불쌍해요. 당신은 절대 그녀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요."

 

위중평은 괴로움에 못 이겨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다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미옥낭자는 어디로 갔소?"

 

그러자 금루선연은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흥, 당신 때문에 갔어요. 모두가 당신 때문이에요!"

 

위중평은 안색이 변해 급히 소리쳤다.

 

"혜매, 무슨 일이오? 좀 자세히 얘기해 보시오."

 

금루선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미옥언니의 사형 빙염이 보 안으로 와서 말하기를

당신이 다른 여자들과 어울리고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녀는 홧김에 떠나고 말았죠.

그 때 그녀의 사형 역시 표정이 몹시 불쾌한 것 같았는데

아마 장산도로 돌아갔을 거예요."

 

인중평은 이 말을 듣자 속으로 즉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매우 잘된 일이군.

그녀가 빙형과 함께 장산도로 돌아갔으니

그의 염원도 결코 절망적인 것은 아니구나…'

 

위중평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몹시 홀가분하여 휘파람까지 불어대었다.

 

"혜매, 그들이 장산도로 돌아가면 더욱 좋지 않소?"

 

금루선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날리며 그를 쏘아보았다.

 

"아니, 뭐가 더 좋다는 거죠?"

 

위중평은 짐짓 능청스럽게 말했다.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뭐라고요?"

 

위중평은 시선을 돌리고 웃음을 참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도 한번 생각해 보시오. 만약 미옥낭자가 그녀의 사형과…"

 

위중평은 갑자기 쑥스러운 듯 픽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총명한 금루선연도 이미 깨닫고 눈을 싹 흘기며 그의 우람한 팔을 꼬집었다.

 

"당신도 참… 그러면 못써요."

 

"그게 전부 혜매를 위한 일인데도…?"

 

"흥!"

 

두 사람은 오랜만에 서로 옛 정을 나누며 즐거워했다.

이때 위중평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큰일났소! 내 혜매와 얘기를 나누느라 적발교가 화산파를 공략하는 일을 깜박 잊었소.

혜매, 우리 속히 달려갑시다!"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위중평은 초음적인 신법을 이용해 금루선연을 이끌고

순식간에 문주도원까지 달려갔다.

문주도원에선 이미 살벌한 기합 소리와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오고 있었다.

역시 적발교가 화산파를 공격해 온 것이었다.

적발교주는 옥문쌍기가 위중평을 처치하는 동안 수하들을 이끌고

청허도장 등을 없애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위중평은 공력이 크게 증가하여 옛날과 도무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화산파의 도사들 역시 밤낮으로 현구보록을 연마한 덕택에 설사 위중평이

현장에 없었다 하더라도 홍모음효쪽이 단연 역부족이었다.

싸움이 무르익은 그 순간, 위중평이 허공에서 천신처럼 번쩍하고 나타났다.

 

"멈추어라!"

 

이 고함 소리는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아 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고막이 터질 듯했다.

한편 홍모음효는 청허도장과 어울려 싸뚜다가 위중평의 고함 소리를 듣자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그렇다면 옥문쌍기도 저놈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위중평이 껄껄 광소를 터뜨리며

장내에 그 영준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홍모음효, 옛날의 원한에는 임자가 있고 빚에는 그 주인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홍모음효, 네가 찾는 자는 바로 나 중평인데 왜 애매한 화산파를 공격하느냐?"

 

위중평은 정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장내를 훑었다.

 

"홍모음효, 오늘 밤 너희 적발교 인마들은 기왕 이 화산으로 전부 달려왔으니

한 놈도 살아 나갈 생각은 말아라!"

 

그리고 나서 위중평은 살기 띤 어조로 다시 말했다.

 

"옛날 너희들은 많은 인원수를 믿고 신주검성을 협공했고

오늘 밤에도 또다시 그 비겁한 협공을 감행했으니

만약 오늘 밤 나 위모가 네놈들을 하나라도 살려 보낸다면 당장 성을 갈고 말 것이다."

 

위중평의 이 살기 가득찬 말은 장내에 있던 적발교 군마들로 하여금 등골이 오싹하게 만들었다

군마들의 눈빛에는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위중평은 말을 끝내고 청허도장의 앞으로 걸어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장문인, 본파의 제자들더러 산문을 엄중히 지켜 한 놈도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금루선연을 향해 말했다.

 

"혜매, 장내를 잘 감시하여 적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해 주시오."

 

금루선연은 조그만 입술을 꼭 깨물며 음성을 높여 대답했다.

 

"안심하세요. 오늘 밤 저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도망칠 수 없을 테니까요."

 

"챙!"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와 함께 그녀는 와황금검을 뽑아들었다.

위중평은 만반의 준비를 다 끝낸 후에 즉시 광장의 가운데로 나갔다.

 

"자, 적발교의 흉마들은 듣거라. 오늘 위중평은 너희들에게 약간의 편리를 좀 봐 주겠다."

 

군마들은 사색이 다 된 표정으로 위중평을 주시했다.

 

"너희들은 모두 한꺼번에 덤벼라. 이 어르신네께서 혼자 맡아줄 테니.

 만약 너희들이 이 어르신네를 이길 수 있다면 내 순순히 놓아 주겠다만 만약…

이기지 못할 경우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라!"

 

군마들은 위중평의 기세에 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위중평의 말이 이처럼 광오하게 나오자

전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뿌드득 이를 갈아붙였다.

 

"이놈아! 네놈이 그처럼 쉽게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위중평은 더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잔말 말고 어서 출수할 준비나 해라!"

 

이 때 장내에 복수당주 혁연강과 색혼판관 동기의 우렁찬 폭갈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색혼판과 문창필을 휘두르며 좌우로 협공을 해왔다.

 

"받아라!"

 

위중평은 살기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짧은 갈성과 함께 좌우로 쌍장을 내밀었다.

혁연강과 동기는 그것을 보자 황급히 몸을 피해 내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으악!"

 

하는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은 핏덩어리가 되어 전권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위중평은 장내를 둘러보며 냉랭하게 소리쳤다.

 

"자, 또 누가 덤비겠느냐?"

 

적발교의 군마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감히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혁연강과 동기는 적발교 내에서도 일류 고수인데

단 일 초도 넘기지 못하고 위중평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으니

어찌 간담이 서늘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불노서시는 비교적 심기가 음흉한 인간이라

즉시 괘장으로 땅바닥을 내리치며 외쳤다.

"이놈들! 빨리 덤비지 못하고 뭐하느냐?"

적발교 인마들이 평소에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인 불노서시의 명령이 떨어지자

군마들은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기합을 내지르며 사방에서 벌떼처럼 덮쳐 들어왔다.

 

"으하하하하… 쓸모없는 것들!"

 

일진의 장소와 함께 위중평이 쌍장을 휘두르자

사방에서는 즉시 처참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실 오늘 밤 화산으로 몰려온 적발교의 인원수는 최소한 백여 명은 넘었다.

그러니 보통 고수가 이들을 맞았더라면 아마 이미 인해전술에 의해 박살이 나도 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밤의 적수는 무시무시한 위중평이 아닌가.

반 시진도 채 못 되어 적발교의 인마는 이미 삼분의 일이 싸늘한 시체로 변해 갔다.

이렇게 되자 나머지 사람들은 싸우면 싸울수록 용기를 잃어 갔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편 위중평은 한 마리의 야수가 되어 닥치는 대로 치고 베고 쓰러뜨렸다.

혈안이 된 위중평의 시야에 적발교주 부부가 들어왔다.

 

"이놈들! 애매한 수하들더러는 죽으라고 내버려 두고 너희들은 가만히 있다니…

그게 마음대로 될 것 같으냐?"

 

외침과 함께 몸을 날려 덮쳐가자 불노서시는 삼각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이놈아! 죽고 싶어 환장을 했느냐?"

 

하며 연속 괘장을 휘둘러 덮쳐왔다.

위중평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받아 갔다.

 

순간-.

 

"으악!"

 

처참한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불노서시의 몸은 마치 실이 끊어진 연처럼 핏빛 무지개를 그리며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불노서시는 무공이 고강한 고수답게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홍괘로 몸을 지탱했다.

위중평은 불노서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홍모음효에게 다가갔다.

 

"홍모음효! 우리 사이의 원한을 해결하자!"

 

홍모음효는 만면의 근육을 씰룩거리며 입을 떼었다.

 

"나 홍모는 결코 부인을 하지 않겠다.

너의 부친 신주검성의 죽음은 확실히 나 홍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때 한 줄기 인영이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으로 장내로 덮쳐와

홍모음효의 가슴팍을 향해 때려 갔다.

위중평은 홍모음효가 막 말을 꺼내는 순간

이런 불의의 일이 일어나자 대갈일성을 내질렀다.

 

"네… 놈이 감히!"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위중평의 몸은 이미 허공으로 붕 떠서

영악무비한 일 장으로 나타난 사람을 향해 후려쳐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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