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51. 사랑과 미움

오늘의 쉼터 2014. 6. 21. 10:48

51. 사랑과 미움 

 

 

 

위중평은 그 꾀꼬리 같은 음성이 매우 귀에 익은 것 같아 주저하지 않고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과연…

먼곳에서부터 추혼천녀의 핏빛처럼 붉고 선연한 장삼이 나부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 추혼천녀는 불어 오는 바람을 싸안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석상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

추혼천녀를 마주 보고 서 있는 사람은 용모가 준수하고 키도 늘씬한 섭선을 든 금의공자였다.

두 사람의 발 아래에는 네 구의 세체가 뒹굴고 있었다.

추혼천녀는 멀리에서 달려오고 있는 위중평을 발견하자 급히 차가운 미소를 떠올렸다.

"당신은 한낱 칠성 중의 전성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감히 소요공자와 그의 수하 네 노인을 살해했으니 제 아버님의 복수가 무섭지도 않나요?"

금의공자는 준미한 얼굴을 쳐들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궁주의 진심만 얻을 수 있다면 설사 지금 목숨을 잃는다 해도 두려울 게 없소?"

추혼천녀는 교태로운 웃음을 터뜨리며 시선을 돌렸다.

"만약 당신이 저를 그처럼 사랑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저자를 죽여 버리세요."

금의공자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저 자는 또 누구요?"

추혼천녀는 달려오고 있는 위중평을 손가락질하며 무섭게 내쏘았다

"저 자는 신주검성의 후인으로 고보교룡 위중평이라고 해요. 그리고 저의 원수이기도 하죠."

이때 위중평은 이미 눈앞까지 달려와 치정적인 음성으로 외쳤다.

"추혼낭자! "

그러나 뜻밖에도 추혼천녀는 싸늘한 코웃음을 날리며 고개를 싹 돌리는 것이 아닌가.

금의공자, 즉 정성 상관낙은 수중의 금섭선을 거만하게 흔들거리며 위중평의 앞으로 접근해 왔다.

"위중평은 듣거라! 너는 이 날 이 시간부터 추혼궁주의 곁에서 얼씬도 하지 말아라! 내가 일곱을 셀 때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내 너의 목숨을 취하겠다! "

그러나 위중평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추혼천녀를 향해 달려갔다.

"추혼낭자! 낭자…"

위중평은 그녀의 앞에 다가서기가 무섭게 손을 내뻗어 그녀의 보드라운 손목을 덥썩 잡았다.

추혼천녀는 위중평에게 손목이 잡혔어도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 볼 뿐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 일곱!"

한편 정성의 입에서는 마지막 숫자가 떨어졌다.

상관낙은 두 사람의 태도에서 그들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 역시 오기가 있는 인간이기에 대뜸 울화가 치밀어 수중의 섭선을 확 펴며 위중평을 향해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위중평, 너의 죽음은 이미 눈앞 가까이 왔다."

그러자 추혼천녀는 일부러 시비를 붙이려는지 위중평의 손을 확 뿌리치며 옆으로 비켜섰다.

위중평은 이것을 보자 분노가 치밀어 상관낙을 향해 이를 갈아붙였다.

"정성, 네놈도 역시 칠성 중의 한 사람이니 각오해라!"

이 살기 가득찬 외침이 떨어지기 무섭게 위중평은 허공으로 몸을 띄우더니 수중의 자옥선을 펼쳐 정성의 오대 요혈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상관낙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날리며 소리쳤다.

"만약 나 정성이 십 초 안에 네놈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당장 성을 갈겠다!"

그러나 정성의 외침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위중평의 자옥선은 회오리 바람을 몰고 달려들자 그만 등골이 오싹해졌다.

정성은 창급히 십팔 초를 시전해 내어서야 간신히 위중평의 아홉 초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옥섭선의 위력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일단 시전을 시작하면 주위를 온통 광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고 마는 것이었다.

사막에 돌풍이 이는 듯, 회오리 바람이 밀려 오는 듯한 무서운 기세에 정성은 아차 싶어 그만 물러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큰소리를 쳤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성은 급히 손을 휘둘러 전력을 다해 칠성검법을 전개해 내었다.

그러나 이미 선기를 빼앗긴 데다 또한 위중평의 후대 병기인 자옥선의 위력을 이기지 못해 이십 초도 채 겨루어 보지 못하 고 열 발자국이나 물러나고 있었다.

이때 한쪽에 서서 냉막한 표정으로 이것을 지켜 보고 있던 추혼천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음인지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정성은 그녀의 비웃음을 받자 부끄러움을 금치 못해,

"이얏!"

하는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감 초를 시전해 내었다.

이것으로 그는 위중평의 예리한 공격을 당분간 막을 수 있었다.

정성은 이 틈을 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자, 병기로선 이미 가르침을 받았으니 우리 권장으로 실력의 고하를 가려 보자."

위중평은 즉시 자옥선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다."

정성은 선기를 잡기 위해 위중평이 자옥선을 거두는 순간 전광석화와 같은 수법으로 연속 아홉 초를 공격해 내었다.

그러고는 자기의 절학을 모두 이 아홉 초 안에 주입시켰다.

동시에 그가 공격하는 위치는 전부다 치명적인 사혈(死穴) 부위라 살짝 맞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즉사를 면치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위중평은 매우 여유있게 그의 아홉 초를 받아 내었다.

싸움이 절정에 이른 그 순간…

철장을 걸머진 스무 살 가량의 어부 차림의 소년이 질풍처럼 달려 왔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추혼천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사매, 바로 이곳에 있었구려!"

추혼천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당신이 바로 장산도주의 제자 빙소협인가요?"

빙염은 이 뜻밖의 물음을 듣자 그만 크게 놀라고 말았다.

추혼천녀를 안미옥으로 잘못 안 것이다.

그는 상대가 화를 내는 기색이 없이 말을 하자 즉시 포권의 예로써 사과를 올렸다.

"그렇소. 내가 바로 빙염이오. 조금 전의 실수를 낭자께선 널리 용서해 주길 바라오."

추혼천녀는 갑자기 접시가 깨어지는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당신은 바로 당신의 사매를 찾아 오신 거죠? 그러나 아깝게도 당신의 수단이 고명하지 못해 사매를 남에게 빼앗기고 말았어요. 호호호…"

빙염은 그녀의 이 말에 마치 마른 하늘의 벼락을 맞은 것처럼 크게 놀랐다.

"낭자, 그녀의 친구가 누구요? 낭자, 그런데 난 어째서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소?"

추혼천녀는 얼굴에 사악한 빛을 떠올리며 미친 듯 웃어젖혔다.

"호호호호… 호호호… 당신은 물론 장산도에 담고 있어 외부의 일은 모를 거예요."

추혼천녀는 살기 가득한 어조로 또박또박 내뱉았다.

"이봐요, 천치같은 양반, 내 말을 잘 들어 보아요. 당신의 사매를 빼앗아 간 남자는 실력이 매우 대단할 뿐 아니라 생긴 모습도 아주 멋지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마음은 매우 교활해 여자를 울리는 일에는 아주 선수예요."

말을 하면서 그녀는 정성과 싸우고 있는 위중평을 가리켰다.

"보세요. 저기서 그가 허무전의 칠성 중 정성과 한 여자를 두고 생사의 격투를 벌이고 있지 않아요?"

빙염은 추혼천녀의 이 말을 듣자 그만 안색이 싹 변했다.

그러고는 추혼천녀를 노려보며 급히 고개를 저었다.

"낭자, 거짓말 마시오. 나 빙모의 이제(二弟)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오!"

추혼천녀는 가소롭다는 듯 배꼽을 쥐고 웃었다.

"아하하하… 믿지 못하겠거든 그만둬요!"

그러더니 웃음을 뚝 그치고 다시 기다란 손가락을 들었다.

"보세요. 또 한 사내의 사매를 빼앗긴 남자가 왔어요! 아, 불쌍한 사람…"

빙염이 그녀의 손가락에 따라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허리에 철적을 차고 용모가 몹시 준수한 한 공자가 현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추혼천녀는 그 자가 가까이 다가오기 무섭게 소리쳤다.

"철적왕손, 당신의 금루선연을 찾으러 왔나요?"

사실 철적왕손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금루선연을 찾는 데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짚히는 바가 있어 즉시 대꾸를 했다.

"그렇소. 그런데 궁주께선 오늘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소?"

순간…

"쿵!"

거대한 폭발음이 터지며 이들의 대화를 끊어 놓았다.

위중평과 정성은 이미 결승의 단계까지 싸움을 발전시켜 최후의 살수를 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성이 갑자기 하늘을 쪼갤 듯한 대갈일성을 터뜨렸다.

"자, 다시 나의 일 초를 한 번 받아 보아라!"

하고 외치며 쌍장에다 십이 성의 공력을 주입시켜 마치 거센 파도처럼 앞으로 밀어 내었다.

"휘익!"

정성의 거센 장풍은 위중평의 신변을 완전히 에워쌌다.

위중평은 천지에서 폐관을 한 후부터 공력이 놀라을 만큼 증가되었다.

"오냐! 얼마든지 오너라!"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그도 난석붕운이라는 일 초를 십 성의 공력과 함께 내밀었다.

"펑!"

폭음이 천지를 가르듯 터져 나오자 정성의 안색은 정말 보기 흉할 정도로 크게 일그러졌고 곧 고꾸라질 듯 비틀거리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섰으나 위중평은 어깨를 약간 들썩거렸을 뿐이었다.

위중평은 조금도 여유를 두지 않고 크게 고함을 터뜨렸다.

"정성! 자, 이번엔 화산파의 장법을 한 번 맛보아라!"

갈성이 떨어지기 무섭게 위중평은 이미 실전된 지 오래인 화산의 절학인 일양래복장을 격출해 내었다.

이 때 정성은 이미 막중한 내상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체면을 차리고자 억지로 위중평의 장을 정면으로 맞받았다.

다시 거대한 폭음이 온 산을 진동시키며 터졌다.

이번에 두 사람은 똑같이 약간 몸을 흔들었다.

그 때였다.

"윽!"

갑자기 둔한 신음과 함께 정성은 한 모금의 선혈을 왈칵 토해 내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정성은 위중평의 일양래복장을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하지만 구경을 하고 있던 빙염과 철적왕손은 도대체 그가 무슨 장법을 사용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위중평은 비록 마지막 일전에서 상대를 즉사시켰지만 진기가 크게 소모되어 적시에 조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정성을 쓰러뜨린 뒤 일언반구도 없이 운공조식에 들어 갔다.

이때 추혼천녀가 갑자기 원한에 사무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서 제일 참을 수 없고 또 한이 깊은 것이 바로 부친을 살해한 원수와 처를 빼앗긴 한이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다면 내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그를 그냥두지 않을 것이다…"

철적왕손은 그녀의 말을 듣자 속으로 급히 생각을 굴렸다.

'이 마녀가 벌써 그와 반목이 생겼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아주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사실 철적왕손은 위중평이 조식을 하고 있는 틈을 타서 암수를 쓰려고 했다.

그러나 추혼천녀가 있었기 때문에 눈치를 살피느라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추혼천녀가 이렇게 말을 내뱉자 그는 더 이상 두고 볼 겨를이 없다는 듯 즉시 몸을 돌리며 철적으로 수십 줄기의 한광을 그려 내어 위중평을 향해 덮쳐갔다.

한편…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던 빙염은 원래 위중평을 이런 위기에서 구해 주려고 했으나 추혼천녀의 말을 들은 후부터 은근히 반감이 생겨 약간 주저했다.

그때 추혼천녀가 싸늘하게 웃어젖혔다.

"오호호호호… 피해자가 또 하나 늘었구나. 그의 처는 이미 남에게 강간을 당했으니 이 죽일 녀석도 이젠 더 이상 피할 수 없겠지. 호호… 정말 통쾌하다!"

빙염은 이 소리를 듣자 즉시 마음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이제(二弟)가 정말 그처럼 파렴치한 인간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다는 말인가?'

한편 위중평은 이미 철적왕손의 기습을 눈치채고 재빨리 옆으로 다섯 척 가량 피해 내고 있었다.

위중평은 자기를 기습한 자가 철적왕손인 것을 보자 분노를 금치 못하고 갈성을 내질렀다.

"이놈, 받아라!"

위중평은 쌍장을 그리며 악랄한 살수를 격출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철적왕손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더구나 위중평도 혈전 끝에 부상을 입은 처지라 살수를 전개해 낸다 하더라도 역시 내력이 모자란 탓에 단번에 그를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한편, 누군가가 멀리서 달려오더니 즉시 결투에 가담하면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네… 이놈! 나의 아내를 대체 어디에 숨겨 놓았느냐?"

위중평은 급히 손을 휘둘러 철적왕손의 공격을 당분간 정지시키며 두 눈을 부릅떴다.

"이보시오! 허무맹랑한 소리로 남에게 누명을 씌우지 마시오!"

달려온 사람은 바로 천독문의 신임 장문인인 인면갈(人面蝎) 오행(吳行)이었다.

인면갈 오행은 징그러운 광소를 터뜨리며 이를 갈아붙였다.

"위중평, 네 이놈! 네 놈이 내 애처를 유혹해 자옥선을 선물로 주었다는 사실을 내 모를 줄 알았더냐? 각오해라 이놈!"

오행은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철적왕손과 합세해 위중평을 향해 덮쳐갔다

위중평은 너무나 억울하게 벌어지는 이 광경에 참을 수 없어 연속 삼 장으로 상대를 마중해 갔다.

이때 관전을 하고 있던 빙염은 오행의 욕설을 듣자 그만 모골이 송연해지는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마음 속으로 외쳤다.

'위중평, 이놈 정말 천하에 못돼먹은 놈이로구나! 나 빙염이 정말 눈이 멀어 저런 놈을 동생으로 삼았구나…'

빙염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만약 지금 철적왕손과 오행이 위중평에게 쳔공을 가하고 있지 않다면 벌써 달려나가 그의 따귀를 피가 나도록 갈겨 주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위중평과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라 결코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묵묵히 생각을 굴리던 빙염은 영악무비한 일 장을 날려 오행의 공격을 멈추게 했다.

오행은 빙염이 자기를 막아서자 음침하게 물었다.

"당신도 저 음적 놈과 한 패요?"

빙염은 이 소리에 대뜸 울화가 치밀어 등 뒤의 철장을 뽑아 미친 듯 그를 향해 공격해 갔다.

이렇게 되자 오행도 무엇이라 말을 할 여유가 없어 급히 한쪽으로 피하며 병기를 뽑아들었다.

그런데 그가 뽑은 병기는 뜻밖에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단봉이었다. 오행이 짧은 단봉을 요리조리 휘두르자 빙염의 기세도 조금씩 수그러지기 시작했다.

한편 위중평과 철적왕손의 혈투는 그야말로 무서운 것이었다. 철적왕손은 때마침 위중평의 일 장을 받아내지 못해 일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위중평 역시 반탄의 힘에 의해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며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오행은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 싶었는지 급히 빙염을 버리고 위중평을 향해 덮쳐갔다. 그러나 그가 위중평의 앞에 채 당도하기도 전에 위중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수중의 무흔검도 은빛을 발하며 앞으로 뻗어 나왔다.

인면갈 오행은 이 광경을 보고는 재빨리 옆으로 피해 내었다.

그러나 빙염의 철장이 그의 등을 내리찍고 있었다.

"으악!"

주위의 공기를 찢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오행의 몸은 실이 끊긴 연처럼 오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위중평은 인면갈을 물리친 후 빙염을 보자 몹시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앗, 바로 형님이셨군요. 형님, 미옥낭자는 이미 혜매와 신가보로 돌아가셨…"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위중평은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빙염이 놀라 움찔하는 순간 갑자기 수십 줄기의 한광이 빗발치는 위중평의 몸을 향해 덮쳐갔다. 더욱이 한광은 빙염까지도 공격 범위 안에다 가두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 뜻밖의 상황에 빙염은 등골이 오싹해 황급히 철장을 휘둘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자신만 겨우 벗어났을 뿐 위중평까지 위험에서 구해줄 수는 없었다.

"앗, 평제!"

빙염이 안타까운 비명을 터뜨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돌연 홍광과 함께 위중평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는가 싶더니 저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수십 줄기의 한광이 위중평이 쓰러져 있던 곳에 내려꽂혔다. 이제 보니 철적왕손이 신가보의 독문 암기인 칠보추혼침을 격출해 내었던 것이다.

빙염은 적시에 위중평을 구해 주려고 했으나 이미 때가 늦어 미처 손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한쪽에서 충동질을 가하고 있던 추혼천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추혼천녀는 최근에 와서 위중평의 처사에 대해 크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그를 사랑하고 있는 까닭에 위험한 순간이 닥치자 자신도 모르게 그를 구해 갔던 것이다.

빙염은 위중평과 추혼천녀가 졸지에 없어지자 대뜸 철적왕손을 향해 철장을 휘두르며 이를 갈아붙였다.

'네… 이 악독한 놈아, 각오해라!"

철적왕손은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 칠보추혼침을 발출했으므로 그 내상이 심히 대단했다.

그러나 역시 간교한 마두라 기세를 굽히지 않고 차갑게 웃어젖혔다.

"빙염, 그렇게까지 도도하게 굴게 뭐 있느냐? 네놈 역시 여기에 모인 사람처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한 명이 아니냐?"

철적왕손은 빙염의 눈치를 살피며 간악하게 웃었다.

"후후후후… 빙염, 본모는 지금 부상을 입고 있다. 설사 지금 나를 죽인다 하더라도 뽐낼 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빙염은 이 말에 문득 사나이의 오기가 치밀어 소리쳤다.

"좋다, 그럼 네놈의 상처가 다 낫기를 기다려 주겠다!"

이 말을 남기고 그는 즉시 뒤로 물러났다.

원래 빙염은 정파의 인물이라 남이 부상을 당한 틈을 타서 출수하는 그런 비열한 인간은 아니기에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스러웠으나 억지로 참고 뒤로 일단 물러서 준 것이다.

빙염은 묵묵히 길을 걷다가 불현듯 길게 탄식을 내뿜었다.

"아, 내가…"

사건의 전말을 알기도 전에 위중평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 버리고 말았으니 만약 위중평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오해는 장차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빙염은 당황한 마음에 속히 위중평을 찾아 사실을 알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추혼천녀가 그들 데리고 갔으니 어디에 가서 그를 찾는다는 말인가.

빙염은 암담한 마음에 우선 신가보로 먼저 가서 안미옥과 금루선연을 만나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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