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50. 침입

오늘의 쉼터 2014. 6. 20. 22:40

50. 침입 

 

 

 

천산삼노의 위세는 마치 하늘을 뒤덮을 듯 거세었고 살기는 불처럼 타올라

그들의 눈동자에서 번득거렸다.

금루선연은 오늘 밤 자기의 몸이 천 갈래, 만 갈래가 되어도 위중평의 신변을 지키리라

굳게 마음먹었기에 세 흉마가 짙은 살기를 띠며 철괘를 휘두르는데도

오히려 입가에 냉소를 흘리며 조금도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

쌍방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한 차례 격전이 벌어지려는 찰나-.

 

"우웅…"

 

산봉우리 위에서 짐승의 울부짖음과 같은 우렁찬 포효 소리가 들리더니

산발을 한 머리를 나부끼며 흑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표연히 장내에 들어섰다.

쌍방이 흠칫하는 순간 검은 그림자는 철괘를 들고 있는 노인의 앞으로 다가가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이 썩어 빠진 인간들 같으니라고,

남이 폐관조식을 하는 틈을 타 시비를 걸다니

정말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이로군.

더구나 후생만배를 상대하기 위해 이렇듯 한꺼번에 몰려 들었으니

너희는 개만도 못한 인간이다!"

 

금루선연은 나타난 사람이 흑옥인마인 것을 알자 크게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천산삼노는 그의 돌연한 출연으로 크게 놀라야만 했다.

흑옥인마는 그들이 움찔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자 광폭하게 소리쳤다.

 

"만약 그 늙은 목숨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든 어서 썩 사라져라!"

 

천산삼노는 오랫동안 명성을 떨쳐오던 인물이니만큼 피를 토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이 얘기에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 때 멀리에서 괴소가 들려왔다.

 

"으하하하하… 내 남북쌍마(南北變魔)의 무공이 탁월하다는 소리는 옛날부터 들어왔소.

그래서 노부는 오늘 몇 초의 가르침을 좀 받아볼까 하오."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장내에는 목이 긴 꼽추의 노인과 손에 종이 섭선을 든

중년서생이 나타났다.

흑옥인마와 천산삼노는 강호의 쟁쟁한 고수였지만 나타난 이 두 사람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한편-.

안미옥과 혈전을 벌이고 있던 적발교주는 이 두 사람이 나타나자

즉시 몸을 빼내어 몸을 숙였다.

그러나 꼽추노인은 손을 내저으며 계속 흑옥인마에게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흑옥인마는 돌연 광소를 터뜨리며 말을 꺼냈다.

 

"으하하하… 이 늙은이의 눈이 좋지가 않아 귀하가 하방(何方)의 신성(神聖)인 줄 몰라 뵈었소."

 

중년서생이 종이 섭선을 흔들며 점잖게 입을 떼었다.

 

"우린 명명주재의 기하칠성(旗何七聖) 중 무성(武聖) 성강(成鋼)과 문성(文聖) 조건(曹健)이오."

 

흑옥인마는 다시 거칠게 광소를 터뜨려 내었다.

 

"하하하… 정말 낯가죽이 두꺼운 분들이군.

자칭 무성이라니 가소롭기 그지없구나.

그래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이곳 천장산에 나타났소?"

 

두 사람은 동시에 말을 뱉아내었다.

 

"추혼궁주와 위중평 소협을 찾으러 왔소."

 

흑옥인마는 싸늘한 코웃음을 날리며 대꾸했다.

 

"흥, 추혼천녀는 지금 이곳에 없으며 위중평도 지금 폐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만날 수 없다."

 

조건은 얼굴을 싸늘하게 굳히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 어떤 상황 아래에서든지 그를 데려가야만 하겠소!"

 

무성 성강은 챙, 하고 검을 뽑으며 짐짓 거만한 태도로 조간의 옆에 버티고 섰다.

흑옥인마는 음침한 눈을 꿈벅이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흥, 보아하니 사람꽤나 데려온 모양인데 나 인마가 있는 이상

그의 힘줄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오!"

 

이 소리에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사방을 둘러보다가 그만 크게 놀랐다.

천장산 주위에 수많은 인영이 가득하게 깔려 벌떼처럼 어른거리는 것이

어둠 속에서도 똑똑히 보였기 때문이다.

두 여자는 잔뜩 긴장해 의식적으로 동굴 입구의 양쪽으로 갈라져 버티고 섰다.

문성 조건은 두 낭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섭선을 흔들며 천천히 동굴 입구를 향하여 걸어갔다.

 

순간-.

 

"끼악!"

 

흑옥인마가 괴수같은 고함을 지르며 넓은 소매를 펄럭거렸다.

그러자 한 줄기 강기가 문성 조건을 향해 즉시 뻗어 나갔다.

혹옥인마는 현문의 정종으로 생활습관을 바꾼 후부터

공력이 이미 불가사의할 경지에 당도했고 실력 또한 명명주재나 옥탑단장인과

대적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명명주재 하에 있는 칠성 또한 전부 세외고인(世外高人)으로

그 무공이 하나같이 깊은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문성은 흑옥인마의 공격을 받자 급히 몸을 틀어 섭선을 펼쳤다.

섭선에서 예리한 바람이 폭사되어 나오는 순간 경풍은 두 사람과 서로 이 장 거리를 두고

경풍을 맞부딪쳤다.

 

"꽝!"

 

천지를 뒤흔들 듯한 폭음이 터지자 흑옥인마는 태산처럼 굳건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으나 조건은 비틀대며 서너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흑옥인마를 쏘아보고 있던 문성은 갑자기 신형을 날려 덮쳐 왔다.

 

돌연-.

예리한 바람 소리와 함께 한 줄기 경풍이 흑옥인마의 등 뒤로부터 압도해 들어왔다.

흑옥인마는 그것이 무성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넓은 소매를 펄럭여 맞받아 쳤다.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지며 주위에 쌓여 있던 눈이 휘날려 온통 천지에 아름다운 흰꽃이 흩날렸다.

흑옥인마가 양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급히 몸을 돌려 보자

무성이 긴 목을 더욱 길게 빼고 뒤로 두 걸음 물러서고 있었다.

 

그 때였다.

봉우리 끝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싸늘하고 어두운 밤하늘을 울리는 것이 아닌가.

그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세 개의 붉은 그림자가 무지개처럼

허공에 사선을 그으며 장내로 들이닥쳤다.

이 때 조건과 성강은 그 비명이 자기네가 배치해 놓은 무사들의

입에서 터진 것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안색이 크게 변했다.

세 개의 붉은 그림자는 거침없이 곧장 동굴 입구를 향해 들이닥쳤다.

그러나 청색과 황색의 검광이 폭사되자 들이닥치던 붉은 그림자는 그제야 한쪽에 내려섰다.

나타난 사람들은 홍의승포를 입은 라마승이었다.

이제 보니 세 라마승의 목표는 동굴 속에 있는 위중평이 아니라

금루선연이 들고 있는 와황금검이 아닌가.

한편 무성과 문성은 그들 세 라마승이 위중평에게 먼저 손을 쓸까봐 급히 가로막았다.

문성이 높은 어조로 입을 떼었다.

 

"당신들은 어느 절의 화상들이기에 감히 명명주재의 수하들을 죽이는 거요?"

세 명의 라마승은 바로 굴궁파에서 겨우 살아남은 고수들로서 그 이름이 격파, 탁니, 아도였다.

그리고 금검을 빼앗기 위해 반릉사의 초청을 받고 온 고수들이었기에 명명주재가 대체

무얼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세 마라승은 문성의 그런 얘기에는 코웃음조차 치지 않고 곧장 금루선연의 앞으로 걸어갔다.

조건은 상대가 자기의 얘기를 싹 무시하자 대뜸 두 눈에 불을 켜고 소리쳤다.

 

"아니, 이 대머리 중놈은 눈에 보이는 게 없나?"

 

그러나 격파는 얼굴에 추호의 동정도 나타내지 않고 분명한 어조로 대꾸했다.

 

"이 승인에겐 오직 부처님이 계실 뿐 눈에 보이고 안 보이고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소."

 

이 말을 주고받음으로 쌍방은 서로 살기띤 눈초리를 빛내며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여 들어갔다.

한참 후 무성이 격동되는 심정을 억제시키고 싸늘하게 입을 떼었다.

 

"당신들은 위중평을 도우러 온 거요?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 왔소?"

 

그러자 탁니가 조용히 합장을 올리며 대꾸했다.

 

"노승들은 반룡사의 진사지보인 와황금검을 찾으러 왔을 뿐 다른 뜻은 추호도 없소."

 

무성은 그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음, 우리와 목적이 다르니 그럼 마음대로 하시오."

 

하고는 천천히 가로막고 있던 길을 비켜 주었다.

무성은 흑옥인마의 실력이 쉽사리 상대할 수 없으리 만큼 대단하자

일부러 세 노승과 싸움을 붙이려는 것이었다.

세 라마승은 곧장 금루선연을 향하여 다가갔다.

그러자 흑옥인마가 두 눈을까뒤집으며 앞으로 거칠게 나섰다.

 

"멈추시오! 당신네들 같은 방파의 승인들도 그런 엉뚱한 짓을 하는 거요?"

 

격파가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시주, 오해 마십시오. 이것은 바로 반룡사의 신물이요."

 

흑옥인마는 이들과 거칠게 말을 뱉아내며 싸우는 것이 어쩐지 좋지 않게 생각되었다.

 

"닥치시오! 저 검은 분명히 이궁의 물건이오.

노부가 친히 위소협과 함께 얻은 물건인데 어찌하여 이것이 반룡사의 물건이라는 것이오?"

 

그러나 격파는 더 이상 흑옥인마의 외침에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금루선연을 향하여 전진을 계속했다.

흑옥인마는 크게 노하여 일 장을 격출해 내었다.

그러자 격파는 재빨리 몸을 돌려 소매를 떨치더니 반격을 가했다.

 

"펑!"

 

둔탁한 굉음이 터지며 다시 조용한 천장산을 울렸다.

쌍장이 맞붙은 순간 라마승은 안색이 크게 변해 입을 딱 벌렸고

흑옥인마는 방성대소를 하였다.

 

"으하하하… 당신들은 그 몇 수의 도행(道行)으로 이 중원의 무림에 인물이 없다고

무시해선 큰코 다칠 거요."

 

격파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었던지 거대한 두 손을 들어가 슴팍으로 가져갔다.

 

"이얏!"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그는 쌍장을 쳐내었다.

흑옥인마는 이들 라마승 전부가 상승의 밀종신공을 터득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즉시 현문의 강기를 주입시켜 쌍장을 쳐내었다.

 

"꽝!"

 

하는 굉음과 동시에 사방에는 일진의 회오리 바람이 일며 주위에 쌓인

눈을 날려 시야를 흐리게 했다.

잠시 후 눈이 다시 가라앉았을 때 흑옥인마는 석 자 뒤로 물러섰고

격파는 대여섯 걸음 밀려나 있었다.

이것을 선두로 두 사람은 다시 무서운 혈전으로 돌입해 들어갔다.

격파의 무공이 비록 흑옥인마보다는 뒤졌지만 몇십 초에 승부를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한편 탁니와 아도 두 라마승은 천천히 금루선연을 향해 다가섰다.

금루선연은 위중평의 무공 참수가 끝나는 순간에 이렇듯 많은 강적이 나타나 방해를 하자

내심 매우 불안했다.

금루선연은 작고 붉은 입술을 움직여 앙칼지게 소리쳤다.

 

"속히 멈추지 않으면 이 검에서 피를 볼 줄 아시오!"

 

그러나 두 라마승은 그녀의 이야기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계속 접근해 들었다.

 

"낭자, 순순히 그 검을 내놓으시오.

만약, 그렇지 않을 때는 빈승들이 억지로라도 빼앗을 것이오."

 

"어림없는 소리!"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갈성을 내지르며 두 라마승을 향해 덮쳐 갔다.

즉시 살을 에일 것 같은 날카로운 공격이 시작되었으나 두 라마승은

이상하게 방어만 할 뿐 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신분도 신분이겠지만 세 라마승의 목적은

다만 금루선연의 수중에 들어 있는 금검 때문이었다.

쌍방이 이처럼 격렬한 격투를 벌이자 문성과 무성은 때를 만났다는 듯

급급히 동굴 안으로 덮쳐 들어갔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봉우리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명명주재의 부하들과

적발교주와 천산삼노 등은 마치 벌떼가 모여들 듯 동굴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었다.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이것을 보자 몹시 마음이 다급했다.

 

"이놈들, 꼼짝 말아라!"

 

금루선연은 악에 바친 듯 갈성을 터뜨리며 한줌의 은침을 동굴 입구를 향해 격출해 내었다.

 

"으악!"

 

"윽!"

 

처절한 비명이 어둠 속의 공기를 찢는 듯했고 동굴로 들어선 명명주재의 부하들은 힘없이 쓰러졌다.

이 틈을 이용해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급히 두 라마승을 피해 동굴 입구를 지켰다.

문성 조건이 입술을 씰룩이며 음산한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명명주재는 그를 단지 허무전으로 모셔오라는 분부만 내렸을 뿐

그를 결코 해치지는 않을 텐데 왜들 이렇게 흥분하여 날뛰는가!

만일 그러다 소협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금루선연이 입술을 깨물며 단호하게 내뱉았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던 그분을 절대 놀라게 할 수는 없어!"

 

조건은 나이도 어린 계집애가 이처럼 당돌하게 나오자

안색이 크게 변해 한 줄기 싸늘한 내력을 격출해 내었다.

그 때였다.

 

"휘익!"

 

한 줄기 바람이 일더니 탁니와 아도 두 라마승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합장을 올렸다.

 

"시주들께선 폐관을 하고 있는 사람을 해치려 드시는구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사는 일이니 삼가해 주십시오."

 

두 라마승에게 다른 속셈은 없었다.

단지 이 동굴 안에서 천하에 다시없는 영준하고 총명한 소년이

폐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이들이 대거 침입하는 것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조건은 얼떨떨해 하다가 즉시 포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명명주재께서 하시는 일에 아마 나서지 않는 것이 몸에 이로울 거요!"

 

탁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어찌 되었건 또 무슨 일이 있든 간에 폐관이 끝나거든 대적을 해주기 바라오.

남의 위기를 틈타 그 사람을 해치려는 일은 천고에 부당한 일이오."

 

조건은 두 라마승이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자 얼굴에 살기를 띠며 차갑게 소리쳤다.

 

"그렇다면 꼭 간섭을 하겠다는 말이오?"

 

아도가 단호한 투로 말을 받았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소!"

 

불가좌선(佛家坐禪) 중에 제일 금기로 여기고 있는 것이 바로 강요이다.

두 명의 라마승은 이 안에서 폐관을 하고 있는 위중평을

침범한다는 것에 대해 몹시 격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나선 것이었다.

이 때 무성 성강이 아도 앞에 나서며 일 장을 격출해 내었다.

그러자 아도 역시 넓은 소매를 펄럭여 밀종선공으로 반격을 가해 들었다.

이렇게 되자 문성도 탁니와 맹렬한 격투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적발교주가 갑자기 소리높여 외쳤다.

"동굴 속에 들어가 있는 위중평은 이미 상당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데다

이번에 또 무슨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지 모르니 특별히 조심해야 할 거요.

더구나 만일 이 기회를 놓쳐 저놈을 없애지 못하면 장차 더욱 큰일일 거요!"

적발교주의 이러한 말은 과연 효과를 나타내 제일 먼저 천산삼노가 철패를 휘두르며

동굴 속으로 쳐들어 갔다.

그것을 신호로 군웅들이 전부 총궐기를 하며 물밀 듯 밀려 들기 시작했다.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죽을 각오를 하고 동굴 입구를 지키기에 전력 분투했다.

혈우가 허공에 번득이며 지나가자 두 도적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이어 금루선연이 한 줌의 칠보추혼침을 앞으로 확 뿌려내자

칠보추혼침을 맞은 자들은 즉시 그 자리에 꼬꾸라지며 세상을 하직했다.

금루선연은 수중에 추혼침을 꽉 움켜 쥐고 일진의 냉소를 날렸다.

"자, 누구든 겁 없는 사람이 있다면 전부 달려나와 이 칠보추흔침의 맛을 보아라!"

금루선연의 음성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한 것처럼 격동에 떨리고 있어

도적들의 마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팔괴신수는 녹색이 번득이는 눈을 부라리며 철괘를 휘둘러 재차 덮쳐 왔다.

금루선연은 즉시 그를 맞이하며 앙칼지게 외쳤다.

 

"흥, 죽고 싶어 환장을 한 사람이로군!"

 

금루선연은 번쩍이는 금검을 폭사시키며 철괘를 맞이해 순식간에 대여섯 초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력은 비슷 한 듯 단번에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 때 몰려 있던 군웅들이 다시 폭갈을 터뜨리며 재차 공격을 해왔다.

순간 동굴 입구에서는 즉시 하늘을 가르는 혼전이 벌어졌다.

그 때,

 

"휘익!"

 

광풍이 휘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산발을 한 괴인이 유령처럼 동굴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어 그 괴인은 좌선을 하고 있는 위중평을 가볍게 옆구리에 끼고는 번개같이

 다시 동굴을 뛰쳐나왔다.

격파와 사투를 벌이고 있던 흑옥인마는 이것을 보자

황급히 쌍장을 쳐내어 그를 밀어 버리고 산발을 한 괴인의 뒤를 쫓았다.

장내는 완전히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금루선연이 피를 토할 듯 악을 쓰며 외쳤다.

 

"흑수신룡! 어서 그 사람을 내려놓아라!"

 

금루선연의 외침이 끝났을 때에는 이미 그 괴인은 흑옥인마에 의해 앞이 가로막혀 있었다.

이어 세 라마승과 허무전의 무성 그리고 금루선연이 일제히 흑수신룡을 포위했다.

위중평을 강탈한 사람은 바로 흑수신룡이었다.

흑수신룡은 도끼눈을 까뒤집으며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너희들 중 누구든 손을 대었다 하면 이놈은 아주 없어질 줄 알아라!"

 

흑옥인마는 더할 수 없이 격노해 막십 성의 공력을 운공하여 흑수신룡을 향해 격출해 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듣자 섣불리 손을 쓸 수 없게 되어 속으로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흑수신룡의 옆구리에 끼어 있는 위중평의 안색이 샛노랗게 변해 있고

두 눈을 무섭게 내려감고 있는 것을 보자 가슴이 떨어져 나가는 듯 아팠다.

하지만 섣불리 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두 낭자를 괴롭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다만 구슬같은 눈물을 떨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편 문성과 무성은 상대가 흑수신룡인 것을 보자 대뜸 노갈을 터뜨렸다.

 

"흑수신룡! 어서 그를 내려 놓으시오!

명명주재께선 그를 산채로 데려 오라는 분부를 내리셨소!"

흑수신룡은 일시 아무 말도 못하고 어지럽게 눈동자를 굴리더니

드디어 위중평을 내려 놓았다.

그 때였다.

 

"이놈아!

 

하는 거치른 폭갈이 터져 나오더니

흑옥인마가 마치 전광석화처럼 장내로 들이닥쳐 흑수신룡을 밀쳐내는 것과 동시 위중평을 껴안았다.

이와 때를 같이 해 금루선연과 안미옥도 즉시 보검을 휘둘러 몇백 층의 검영을 드러내어

문성과 무성을 향해 공격해 들었다.

원래 흑수신룡은 위중평을 내려놓는 동시에 도주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만 한 발 늦어 흑옥인마가 쳐낸 일 장에 맞고 나자빠질 듯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곧 몸의 중심을 잡고 미친 듯 다리야 날 살려라고 봉우리 아래로 달려내려 갔다.

흑옥인마는 위중평을 손에 넣자 두 낭자의 보호를 받으며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이어 그는 제일 먼저 세 라마승을 향해 말을 꺼냈다.

 

"우리의 승부는 나중에 가리기로 합시다.

오늘은 바빠서 이만 실례를 해야겠소"

 

격파는 웃으며 선선히 대답했다.

 

"좋소. 모든 것은 쌍방이 공평할 때 승부를 내기로 합시다."

 

말을 끝낸 그는 탁니와 아도를 데리고 산 밑으로 내려갔다.

세 라마승이 사라지자 문성과 무성은 자기네를 방해하는 자가 없어졌다고 기뻐하며

즉시 징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만일 그롬을 내려 놓지 않는다면 당신네들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을 것이오."

 

흑옥인마는 커다랗게 광소를 터뜨렸다.

 

"흥, 너같은 놈들이 나를 잡을 수 있단 말이냐?"

 

문성은 미간에 살기를 띠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나의 일 장을 한 번 받아 보실까?"

 

장내는 순식간에 다시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바로 그 때였다.

봉우리 위에서 구사옥부(九死玉符)를 든 사람이 나타나 소리 높여 외쳤다.

 

"명명주재의 분부요!

이곳을 잠시 놔두고 모든 인원들을 점검해 돌아오라는 분부요."

 

문성과 무성은 그 소리에 두말 없이 격전장을 벗어나더니

흑옥인마를 쏘아보며 냉소를 날렸다.

 

"모두들 돌아가자.

흥, 오늘 밤엔 요행히도 저 자들이 득을 보았구나."

 

두 사람은 많은 수하들을 거느리고 봉우리 아래로 분분이 내려 갔다.

천장산의 천지를 꽉 메운 한 떼의 사람들이 떠나자 현장에는 이제 천산삼노와 적발교주만 남았다.

그러나 그들은 흑옥인마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슬금슬금 봉우리 아래로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금루선연은 꽁무니를 빼는 적밭교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냉랭하게 코웃음을 날렸다.

 

"당신들도 너무 득의해 하지 말아요.

언제가는 내 손으로 없애줄 테니까…"

 

적발교주는 그 말에 금루선연을 무섭게 쏘아 보았으나

지금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즉시 부상당한 불노서시를 부축하여 봉우리 아래로 도망치듯 떠났다.

명명주재가 이처럼 돌연하게 이들을 되돌아 가게 한 일은

흑옥인마와 두 낭자를 몹시 의혹케 만들었다.

흑옥인마는 커다랗게 광소를 천장산 곳곳에 뻗쳐 내었다.

 

"저 잡놈들이 갑자기 물러가는 것을 보니

무슨 딴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면 허무전 안에 어떤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금루선연은 몹시 초조한 빛을 얼굴에 떠올리며 말했다.

 

"아니, 그것보다 사람을 먼저 구해야 되지 않아요?"

 

혹옥인마는 그제야 정신을 되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너무 춥다.

때문에 상세를 살필 수 없어 우선 따뜻한 곳을 먼저 찾아야겠군 "

 

금루선연은 시종 무겁게 두 눈을 내려감고 있는 위중평이 염려가 되어

애가 탈 지경이었지만 이곳에선 당장 어쩔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상의를 한 끝에 절정의 경공을 시전해 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천장산의 무서운 추위를 벗어나 전력을 다해 일행은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금루선연 일행은 석룡강이라는 자그마한 촌락에 당도했다.

이미 날은 활짝 밝아 온누리에 따뜻한 햇빛이 내려 쪼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총총히 민가를 찾아 위중평을 따뜻한 아랫목에 눕혔다.

흑옥인마는 주위를 조용하게 한 후 세심하게 위중평의 상세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후 흑옥인마는 얼굴에 몹시 당혹스런 빛을 떠올리며 위중평의 몸에서 손을 떼었으나

섣불리 입을 열지는 않았다.

금루선연은 마음이 조급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가 혹옥인마의 그런 모습을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급급히 물었다.

 

"흑노선배님, 어떻게 되었어요?

영영 구제할 수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순간 흑옥인마의 흥측한 얼굴에는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잠시 후 그는 냉랭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혈맥이 막히고 신경이 상했으니 정말 큰일났구나…

더구나 오행이 풀어졌을 뿐 아니라 사혈(死次)이 현옥에 응결되었으니…"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크게 놀라 동시에 자지러질 듯 소리쳤다.

 

"뭐라고요? 그렇다면, 위소협의 생명이 위험한 것이 아니예요? 아…"

 

두 낭자는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흑옥인마는 즉시 미간을 찌푸리며 엄한 목소리로 나무랐다.

 

"울지 마라. 시끄러우면 안 되니까.

그리고 당분간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자꾸 울음을 터뜨려 내 머리를 어지럽힌다면 그 땐 정말 죽고 말 것이다."

 

이 말에 두 낭자는 울음을 딱 그치고 한쪽으로 물러서서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사실 고차원의 내공을 연마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놀라움이 절대 금물이다.

위중평은 지금 사십구 일을 폐관하고 이제 곧 공력이 완성될 무렵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흑수신룡이 위중평의 몸을 들어내는 바람에 사혈이 현옥에 응결되어

혼미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자 흑옥인마가 입을 떼었다.

 

"지금 그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가 있다."

 

두 낭자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듣자 즉시 눈물을 닦고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흑옥인마를 기대섞인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흑옥인마는 손을 모으고 신중하게 입을 떼었다.

 

'것째 공력이 위소협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사람이 산거(散去)된 진기를 모아

막힌 혈맥을 뚫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노부에겐 안타깝게도 그런 능력이 없으니…"

흑옥인마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당금 무림에선 오직 백공상인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즉시 나서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서 모셔 오면 되겠군요?"

 

흑옥인마는 급급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위소협은 이제 사흘밖에 살 수 없다.

사흘이 지나면 혈관이 완전히 굳어져 버려 신선이 온다 해도 그 땐 살려 내지 못할 것이다."

 

금루선연은 금세 눈물이 글썽해져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아요…"

 

흑옥인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이 사흘 안에 적어도 오십 년 묵은 삼(蔘)이나

천 년 이상 된 설련을 구해 내야만 회복이 가능하지…"

 

흑옥인마는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입을 떼었다.

 

"두 낭자 중 한 사람은 여기서 위소협을 간호하고 한 명은 나와 함께 나가

사흘 내에 그를 구할 수 있는 영약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군."

 

안미옥은 금루선연을 쳐다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 때 금루선연은 갑자기 맑은 눈을 깜박거리더니

흑옥인마의 앞에 향기가 나는 이상한 물건을 꺼내 보였다.

 

"흑노선배님, 이것이 무엇이죠?"

 

흑옥인마는 그것을 받아들더니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가 대뜸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이것을 어떻게 얻었나? 이것이 있으니 이제 살았구나!"

금루선연은 위중평이 살았다는 소리를 듣자

크개 기뻐하며 즉시 그것을 얻은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어젯밤 안미옥과 헤어져 봉우리를 순시하러 갔다가 금루선연은

커다란 백곰이 땅을 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못 이겨 그것을 지켜 보고 있다가 금루선연은 백곰을 쫓아 버리고

대신 그 물건을 품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흑옥인마는 그 경위를 듣고 나더니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떠들었다.

"위소협은 정말 염복을 타고난 인재야.

이것이 바로 설련이라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천 년 이상 묵은 것 같군."

흑옥인마는 즉시 설련의 껍데기를 벗기기 시작했다.

열매는 모두 일곱 알이었다.

흑옥인마는 열매를 세며 말했다.

"본래 이것은 한 알이면 족한 것이지만 아예 두 알을 먹여 버리자."

흑옥인마는 위중평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입을 벌여 열매를 입 속으로 넣어 주었다.

이어 그는 두 낭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두 낭자 중 누가 입 안에 든 열매를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입김을 좀 불어줘야겠다."

이 말에 두 사람은 모두 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움으로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안미옥은 얼굴을 붉히며 금루선연에게 말했다.

"혜매, 혜매가 좀 해줘."

금루선연은 몸을 두어 번 틀며 수줍은 듯 웃었으나 거절을 하지는 않았다.

흑옥인마는 급히 재촉을 했다.

"빨리 서두르시오. 약력이 퍼져야만 내가 혈도를 풀어줄 수가 있으니까."

금루선연은 그제야 몸을 돌리더니

위중평에게 다가가 살며시 눈을 감고는 그의 입에 입술을 대고 입김을 불어 넣어 주었다.

순간 꼬르륵 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열매는 위중평의 뱃속으로 들어갔는지 불룩하던 그의 양 뺨이 다시 본래대로 되돌아 왔다.

약력이 퍼졌을 무렵, 흑옥인마는 위중평을 똑바로 앉혔다.

그러고는 번개같이 손을 놀려 위중평의 관원(關元), 단전 그리고 기해,

또 음교(陰交) 분수 건리(建里) 등 열여덟 곳의 혈도를 찍더니

즉시 쌍장마다 공력을 관주시켜 이번에는 그의 전신을 안마해 주기 시작했다.

약 반 시진이 지났을까.

위중평은 그제야 긴 한숨을 토해내며 두 눈을 떴다.

위중평은 지금 자신이 더운 방에 앉아 있고 옆자리에 흑옥인마와 금루선연

그리고 안미옥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어리둥절해 했다.

흑옥인마가 웃으며 입을 떼었다.

 

"우선 진기를 운집시켜 보게. 체내에 이상이 있나 없나."

 

위중평은 신속하게 진기를 끌어올려 일주천을 운집시켜 보았다.

위중평은 백맥이 통달하고 전신이 하늘을 날을 듯

가벼우며 또 다른 하나의 경지에 들어선 듯하자

벌떡 자리에서 뛰어 일어서며 흑옥인마에게 큰절을 올렸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저를 이렇듯 도와주시니."

흑옥인마는 위중평의 어깨를 툭툭 치며 눈을 껌벅거렸다.

"나보다 저 두 낭자께서 수고를 하셨다네."

위중평은 그제야 활짝 웃으며 기쁨을 참지 못하고 있는

두 낭자를 향해 고마운 눈빛을 보냈다.

흑옥인마는 그간의 경과를 대충 말해준 뒤 방문을 나섰다.

 

"나는 다시 볼일이 있어 이만 가봐야겠네. 자, 훗날 다시 만나세."

 

위중평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노선배님께선 어딜 그처럼 바삐 다니셔야 합니까? 어찌 되었건 안녕힌 가십시오."

 

흑옥인마가 먼저 민가를 떠나자 위중평과 두 낭자도 민가의 주인에게 커다란

사례를 한 후 그곳을 떠났다.

위중평은 자기가 알지 못하던 사이에 그토록 위험스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에

새삼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위중평은 두 낭자를 데리고 발걸음도 가볍게 백산목장으로 떠났다.

일행이 막 산등성이를 오를 무렵이었다.

봉우리 위에서 격렬한 싸움 소리가 들려 왔다.

"아니,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보군."

위중평은 두 낭자를 데리고 즉시 절벽 위로 올라갔다.

지금 위중평의 무공은 그전보다 훨씬 증진되어 봉우리를 올라가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용이 산허리를 휘감아 하늘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봉우리 위에는 산발을 한 흑수신룡이 괴이한 초식을 전개해

요동일검과 위장청을 맹공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흑수신룡의 괴이한 초식에 눌려 그야말로 위기일발의 순간을 맞고 있었다.

흑수신룡은 장백파의 남은 화근을 없애기 위해 그야말로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본 위중평은

 

"멈춰라!"

 

하며 커다란 갈성을 내지르고는 눈덮인 봉우리 위에서

마치 독 수리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내려섰다.

 

"이 배은망덕한 악적! 어서 손을 떼어라!"

 

이 음성은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흑수신룡에겐 마치 강철이 가슴에 꽂히는 듯했다.

흑수신룡은 몸을 돌려 보니 위중평은 만면에 살기를 띤 채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흑수신룡는 뜨끔했으나 곧이어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네놈이 아직도 죽지 않았구나.

좋다, 내 오늘 아주 모조리 창천으로 보내어 내 소원을 풀어야겠다! "

 

위중평은 살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그를 쏘아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나 위모는 오늘 조사들을 대표해 문호를 정리하겠다!"

 

흑수신룡도 어떤 결심을 한 듯 무서운 괴소를 터뜨렸다.

 

"으흐흐훗… 이놈, 네놈은 오늘 내 손에 죽어야만 한다!"

 

흑수신룡은 홱, 하고 몸을 돌리더니

열 손가락을 확 펴서 번개같이 위중평을 향해 덮쳐들었다.

위중평은 그동안 쌓인 울분을 이 한 순간에 전부 폭발시키려고 했다,

흑수신룡은 무서운 자세로 몸을 날리며 허공을 맴돌았다.

옆에서 이 무서운 자태를 본 요동일검이 나직한 목소리로 외쳤다.

 

"현질, 조심하게."

 

요동일검의 외침에 위중평은 자신이 있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흑수신룡이 발한 지풍이 몸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그냥 놔두었다.

비수같이 날카롭고 유쾌한 지풍이 막 닿으려는 순간.

 

"얍!"

 

날카로운 기합을 터뜨리며 위중평은 맹렬하게 경리점화를 시전해 그의 맥문을 찍었다.

그러나 흑수신룡의 초식과 신법은 과연 독특하기 그지없었다.

위중평의 공격이 시작되자

흑수신룡 또한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켜 다시 몸을 틀더니 두 발로 찍어내리듯 차 내린 것이다.

위중평은 일 초가 헛되자 재빨리 신형을 틀어 일식의 빈고동지(賓鼓動地)로

흑수신룡의 앞면을 향해 쳐내었다.

빈고동지는 선문의 절기 장법으로서 그 위력이 고강하기 비할 데 없다.

흑수신릉은 이 위맹한 경기를 막지 못해 급히 일 장 밖으로 물러 섰다.

그러나 위중평은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바싹 따랐다.

 

"이 악적, 아직도 살고 싶어서 도망을 치느냐?"

 

흑수신룡은 눈알을 치켜 뜬 채 부르짖었다.

 

"까불지 마라. 이놈! "

 

흑수신룡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 쌍장에 십이 성의 공력을 운공시켜 창졸지간에 쳐냈다.

 

순간,

 

"꽝!"

 

하는 굉음이 마치 천지를 진동시키듯 터져 나왔다.

위중평의 장세를 맞받아쳐 낸 흑수신룡은 마치 실이 끊긴 연처럼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계곡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으악…"

 

그러나 이 비명은 세차게 불어 오는 산바람에 의해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져 긴 메아리만 남겼다.

결국 장백파의 숨통을 조여오던 화근이 영원히 사라진 셈이었다.

위중평은 자기의 공력이 이처럼 심후하리라고는 미처 예감하지 못했기에 일시 굳어져 버렸다.

이때 위장청이 망아지처럼 껑충껑충 뛰어와 그의 앞에 공손히 절을 올렸다.

 

"평숙부께선 또 한 번 저를 살려 주셨군요."

 

위중평도 그제야 요동일검을 향해 절을 올리고는

그의 뒤를 따라 올라오던 두 낭자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위중평이 서로 인사를 시켜 주자 요동일검은

즉시 그간에 있었던 백산목장의 참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위중평은 깊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떼었다.

 

"이젠 그 악의 장본인을 없애 버렸으니 안심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선 목장에서 며칠 묵은 후 강남을 돌아가 아버님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백산목장의 참사가 다시 거론되자

금루선연도 신가보의 안위가 몹시 염려가 되었다.

 

"평상공, 저도 신가보로 돌아가 봐야겠어요.

그 악도 철적왕손 모조음이 아직 죽지 않았으니

보 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지 않아요?"

 

위중평은 그녀의 말에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서 돌아가 보시오. 내가 시간이 있는 대로 신가보로 한 번 찾아갈 테니까."

 

안미옥 역시 섬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곳에서 지체를 할 수가 없었다.

 

"혜매, 나와 함께 가요.

나도 섬으로 돌아가 봐야겠어요."

 

이리하여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즉시 위중평과 다시 만날 언약을 한 후 떠나갔다.

두 낭자가 떠난 뒤 요동일검은 위중평과 위장청을 대동하여 다시 백산목장으로 돌아왔다.

광활하고 삭막하던 백산목장은 요동일검의 노력으로 이제는 곳곳에 생기가 넘쳤고

가축들도 자유로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백산목장에 종사하는 새로운 일꾼들은 소장주(小場主)가 돌아왔다는 얘기에

전부 청 안으로 몰려들있다,

그러나 막상 소장주라는 사람이 계집애처럼 얄상하고 새파란 젊은이인 것을 보자

전부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로 들어온 건장한 장정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소장주의 실력에 대해 의혹을 품었다.

 

그날 밤-

 

백산목장에선 소장주를 환영하기 위해 근래 없었던 성대하고 화려한 잔치가 벌어졌다.

광활한 평지로 그냥 어려 두었던 백산목장이 몇 년 만에 그 생기를 다시 되찾은 것이다.

위중평은 워낙 술을 못 마시는 까닭에 그저 일꾼들이 마시고 떠드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취흥이 무르익자

일꾼들 중 용기 있는 자들은 위중평에게 몇 초의 무공을 보여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위중평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으스대는 것 같아 그냥 사절을 해 버렸다.

 

다음날-

 

위장청은 아침 일찍부터 위중평을 찾아와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위중평은 마지 못해 그에게 이끌려 나오며 엄격한 투로 말했다.

 

"내가 자네에제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약속한 이상 그 약속은 꼭 지키겠네.

그러나 절대 사부라고는 부르지 말게."

 

그러나 위장청은 이미 옛날부터 마음의 결정이 섰기 때문에

그의 얘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과 털썩 무릎을 꿇으며 큰절을 올렸다.

위중평은 당창하여 긁히 위장청을 일으켰다.

 

"아니, 이러지 말게. 아저씨가 조카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는가?"

 

이때 요동일검이 호탕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으하하하하… 제딴에는 다 속셈이 있어 그러는 거라네.

그래야만이 현질이 그 애를 잘 지도해 줄 게 아닌가?"

 

요동일검은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 이후부터 두 사람은 명실공히 사도(師徒)가 되게나."

 

위중평은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도 아직 많은 것을 배워야 할 처지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위중평은 용호구환단 한 알을 꺼내 위장청에게 주었다.

 

"자넨 체질이 비교적 약하니 우선 이것을 복용하게나."

 

이어 그에게 조화신공의 구결을 자세히 일러 주고는 열심히 연마하라고 당부했다.

 

옆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요동일검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바로 그거야.

사부로 모시지 않으면 어떻게 그 영약을 얻을 수 있겠는가?"

 

위중평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숙부님,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사실은 진작부터 가르쳐 주려고 했습니다."

 

요동일검은 웃음을 거두며 일렀다.

 

"본장이 또 다른 산야를 목장으로 개척하려고 하네.

그러니 자네는 조금 있다가 장청과 함께 보러 오게."

 

요동일검이 떠나자 위중평은 위장청에게 무학의 비결 몇 가지를

설명해 준 후 새로 개척한다는 목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은 원시의 밀림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아름드리 고목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어 들어갈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이곳을 개척하려면 우선 몇 천 그루인지 모를 나무들을 전부 베어 버려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나무를 베느라 그야말로 수라장이었다.

요동일검은 인부들을 지시하고 있다가 위중평이 오는 것을 보자 급히 말했다.

 

"현질, 자네가 저 나무들을 좀 처치해 줄 수 있겠는가?"

 

위중평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 번 해보죠."

 

위중평은 우선 이 밀림 속에 들어 차 있는 나무들을 대략 살핀 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룡장법을 시전하려는 것이다.

 

"모두들 손을 멈추시오!

소장주께서 우리를 대신해 벌목을 해주시겠답니다! "

 

이 말에 일꾼들은 제각기 얼굴을 마주보았다.

장정들이 웅성대며 숲을 빠져 나오자 위중평은 이미 진기를 단전에 끌어올려

천천히 숱으로 다가섰다.

그러고는 쌍장을 가슴데 대는가 싶더니 번개같이 밀어내었다.

 

"휘익!"

 

한 줄기 경풍이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자

그것은 마치 천 겹의 성난 파도처럼 숲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순간,

 

"콰앙, 쾅!"

 

숲 속에서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거대한 폭음이 터졌다.

위중평의 장력이 닿는 곳이라면 제아무리 굵고 높다란 나무라 할지라도

모두 뿌리째 뽑혀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대단한 위력을 지닌 신기무비한 장법에 비단 목장 인부들 뿐만이 아니라

강호의 노선배되는 요동일검까지도 자기의 눈을 의심하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위장청은 크게 기뻐하며 속으로 외쳤다.

 

'이처럼 무공이 높은 사부님을 둔 이상 나의 무공도 크게 증진될 거야!'

 

밀림을 대략 손질하고 난 위중평은 요동일검의 앞으로 다가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이 장법의 위력을 제가 완전히 터득하지 못해 매우 부끄럽습니다."

 

요동일검은 만족한 듯 희색을 감추지 못하며 위중평의 어깨를 쳤다.

 

"하하하… 현질, 너무 겸손해 하지 말게.

나는 한평생 무공을 연마했지만 자네의 십 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네."

 

새로운 목장 부지를 하나 개척하자 위중평은 백산목장에서 십여 일을 푹 쉬었다.

어느날 위중평은 옛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비래봉으로 올랐다.

그는 문득 전날 은의낭자가 자기에게 주었던 쪽지가 생각났다.

쪽지의 내용은 바로 와도지왕이 위중평을 초청하겠다는 초청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날짜가 거의 임박해 오고 있었다.

위중평은 즉시 요동일검과 위장청을 만나 대략 분부를 내리고는

혼자 말을 타고 남쪽으로 떠났다.

위중평은 무엇 때문에 은의낭자가 와도지왕의 초청장을 전해주었는가를 생각했다.

위중평은 자세히 생각을 굴려보다가 벽요궁주라는 은의낭자가 바로 와도지왕의

딸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며 길을 재촉하던 위중평은 낮은 비명을 토하며 급히 말에서 내렸다.

한풍을 타고 전해져 오는 피비린내…

길 옆에는 소요공자와 홍, 황, 남, 백 이 네 노인의 시체가 처참하게 널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위중평은 이것을 보자 막연히 가슴 속으로 불안을 느꼈다.

소요공자라면 무공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사노와 같국 죽었으니 이들에게 하수를 한 자는 필경 그 무공이 불가사의한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아무튼 위중평은 어차피 죽어야 할 악당들이었다는 생각에 별다른 애착을 느끼지 못하고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어 매우 궁금했다.

위중평은 수를 셀 수 없으리 만큼 많은 무림인들이 들끓고 있는 것에 의혹을 품었다.

어느날 위중풍은 강남의 진(鎭)인 금릉에 들어섰을 때 후면 협심 풍진객(風塵客)을 만났다.

남북 개방의 총방주인 풍진객은 그를 보자 방성대소를 하며 몹시 반가워했다.

 

"하하하하… 아니,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노제가 강남까지 오셨는가?"

 

위중평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소생은 그저 와도지왕의 초청을 받고 이곳을 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

 

후면협심 풍진객은 위중평을 주루로 끌고 들어가 대뜸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노제, 자네는 요 근래 강호의 정세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위중평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천지에서 반 년 동안 생활하는 바람에 강호의 일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이리하여 풍진객은 그간에 있었던 강호의 대세를 설명해 주었다.

풍진객의 말에 따르면 강호의 십대 문파가 크게 당한 후 최후의 결판을 내기 위하여

그간 은거했던 선배 고인들을 모셔와 우선 옥탑단장인부터 처치하고

그후 명명주재와 최후의 결전을 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사건은 근래 추혼천녀의 성격이 크게 악화되어 도처마다 살생을 자행하고 다니는 까닭에

그녀의 손에 죽은 남자만 해도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셋째로는 명명주재가 지금 모든 고수들을 허무전으로 불러들여

그 어떤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간 강호에 관한 커다란 사건의 얘기가 대충 끝나고 근래 개방의 근황에 대해

얘기가 이르자 풍진객은 크게 탄식을 했다.

"나 풍모가 너무도 무기력하여 개방이 치욕을 당하고 있다네.

소규화를 아직도 구해 내지 못하다니 정말 창피하기 그지없네."

 

위중평은 분연한 어투로 말을 내뱉았다.

 

"선배님, 명명주재는 언젠가 자기가 심은 악의 열매를 먹게 될 날이 올 테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방주의 얼굴에선 수심이 가시지 않았다.

위중평은 아직 갈 길이 먼 까닭에 즉시 그와 마지막 술을 나누고 헤어졌다.

위중평은 발걸음을 계속 남쪽으로 향했다.

위중평은 돌연 추혼천녀의 근황이 몹시 염려스러웠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예전의 마녀로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어머니인 옥탑단장인 때문에?

아니면 명명주재의 그 악한 행위에 대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바로 자신 때문인라는 말인가.

위중평은 갑자기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 들었다.

위중평이 전날 추혼천녀에게 심후한 감정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중평은 추혼천녀와 복잡하게 얽힌 관계 때문에

그녀의 솔직하고도 노골적인 애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위중평은 고통을 느끼며 와도를 향해 꾸준히 걸음을 재촉했다.

위중평이 약 오 리쯤 달렸을 때였다.

갑자기 일진의 교소를 머금은 광소가 고막을 가를 듯 들려 왔다.

이어 하늘을 찢는 듯한 처참한 비명 소리가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무협지 > 무흔검(無痕劍)' 카테고리의 다른 글

52. 무인도   (0) 2014.06.21
51. 사랑과 미움   (0) 2014.06.21
49. 대군마   (0) 2014.06.20
48. 간계   (0) 2014.06.20
47. 어슬픈 결론   (0) 2014.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