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대군마
한편-.
철적왕손은 금루선연을 데리고 고보의 뒤로 돌아갔다.
철적왕손은 초조와 긴장이 엇갈리는 표정으로 그녀를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말을 꺼냈다.
"그 흑수신룡이 바로 이 보 뒤에 있으니
위형 등이 행동을 시작하면 우리는 그 때 뒤를 습격하도록 합시다. "
금루선연은 총명한 눈알을 굴리며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사람이라고는 어째 한 명도 보이지 않죠?"
그러자 철적왕손은 손을 들어 금루선연의 앞을 가리켰다.
"사매, 저길 좀 보오. 사람들이 어른거리고 있지 않소?"
금루선연이 조심스럽게 철적왕손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철적왕손은 눈을 번득이며 번개같이 그녀의 혼혈(昏穴)을 찍었다.
그동안 철적왕손은 한 기우(奇遇)를 얻어 공력이 크게 증진되어 있었다.
더구나 이 예기치 않은 출수는 그녀를 꼼짝없이 만들어 버렸다.
낮은 신을을 토하며 금루선연은 그대로 땅에 꼬꾸라졌다.
철적왕손은 혈도를 찍고 나서 일진의 음침한 냉소를 흘렸다.
"흥, 네년의 무공이 제아무리 높다 해도 이 어르신네의 계략에는 못당할 것이다. 으하하하…"
철적왕손은 득의의 광소를 터뜨리며 쓰러진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
그 순간, 일진의 회오리 바람이 쳐오는가 싶더니
번개 같은 인영이 금루선연을 향해 덮쳐 들었다.
철적왕손은 적의 내습이라는 것을 알고 대뜸 경각심을 치달아오는
붉은 그림자를 향해 무수한 철적의 그림자를 해 내었다.
그러자 금루선연에게 덮치려던 인영은 움찔하며 다섯 척 밖으로 물러나서야
겨우 신형을 멈추었다.
그 때 철적왕손은 나타난 사람이 홍포의 라마승인 것을 보고는 싸늘하게 소리쳤다.
"귀하는 어째서 이처럼 야비한 습격을 하는 것이오?"
홍포의 라마승은 음침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떼었다.
"우리 아주 터놓고 얘기합시다.
당신은 사람 자체를 원하겠지만 나는 이 계집의 손에 있는 무기를 원하오.
그러니 그것을 넘겨 주기만 하면 나는 조용히 물러 가겠소."
철적왕손은 그제야 금루선연의 몸에 있는 금검을 쳐다보며 냉소를 날렸다.
"어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이오?
이것은 의당히 내 사매의 소유물인데 내 어찌 당신에게 넘겨 줄 수 있단 말이오?"
"뭣이라고?"
홍포의 라마승이 대뜸 고함을 내지르며 장풍을 격출하려고 들자
다시 두 명의 홍포 라마승이 언제 나타났는지
소리를 지르며 금루선연을 향해 덮쳐들었다.
그 때였다.
"으하하하하…"
갑자기 오골이 송연해지는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오더니
산발을 한 흑의괴인이 독수리처럼 쌍장을 뒤흔들며 두 라마승을 향해 덮쳐들었다.
차가운 음풍이 면전을 휩쓸자 두 명의 홍포 라마승은 즉시 좌우로 갈라서서
철적왕손과 흑의괴인을 포위해 들었다.
이 때 한 승인이 합장을 하며 공손히 입을 떼었다.
"이 여시주께서 지니고 있는 금검은 본사의 진사지보이므로
빈승 등은 그것을 되돌려 받았으면 하오."
그러자 산발의 괴인이 대뜸 포악하게 소리쳤다.
"흥,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세 라마승의 얼굴은 대뜸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그럼 빈승 등은 무례한 짓을 할 수밖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넓은 승포자락을 떨치며 무형의 강기를 격출해 내었다.
"어딜 함부로!"
철적왕손은 손에 든 철적으로 즉시 한 줄기 도광을 그려내어 그 승려의 맥분을 찍었다.
그러나 산발의 괴인이 언제 손을 썼는지도 모르게 그 승려의 장력을 무형으로 와해시켜 버렸다.
라마승은 바로 반룡사의 방자 격서였다.
격서가 격출해 낸 장풍이 무위로 돌아가자 나머지 두 승려들은 산발괴인을 향해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 괴인은 두 고승의 무서운 공격을 받고도 끄떡이 없었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쳐내는 장풍은 마치 뼈를 에이는 듯한 음풍을 동반시켜 주위를 휩쓸었다.
나타난 괴인들은 혼혈이 찍혀 정신없이 쓰러져 금루선연의 금검 한 자루 때문에
맹렬한 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싸움이 막바지에 이른 바로 그 때였다.
갑자기 두 개의 인영이 고보의 뒷쪽에서부터 쏜살같이 날아들더니
다른 한 명은 철적왕손을, 그리고 또 한 명은 괴인을 향해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들은 바로 조금 전 지하 동굴에서 탈출을 한 위중평과 안미옥이었다.
두 사람이 그저 산발을 한 괴인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 통에 세 명의 승려는
이 틈을 타서 금루선연의 금검을 향해 다시 덮쳐 들었다.
산발괴인은 세 라마승이 금검을 향해 몸을 날리자
대뜸 독사같은 두 눈을 까뒤집으며 위중평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세 승려를 향해 음풍을 격출해 내었다.
위중평은 그제서야 혈도가 찍혀 땅에 쓰러져 있는 금루선연을 발견하였다.
"앗, 혜매!"
위중평은 경악에 한 외침을 터뜨리며 금루선연을 구하고자 덮쳐 들었다.
홍포 승려와 괴인은 그가 금검을 빼앗으려 드는 줄 알고 크게 고함을 내지르며
공격의 방향을 바꾸어 위중평에게 덮쳐 들었다.
위중평은 그들의 무서운 공격에 금루선연이 다칠 것이 염려 되어
창급히 몸을 옆으로 틀어 피해 내었다.
이 때 안미옥도 살창을 짐작하고 급히 몸을 날려 위중평의 옆에와 섰다.
그러자 상황을 살피고 있던 철적왕손이 조용히 격서를 향해 입을 떼었다.
"당신들은 검을 원하지만 난 사람을 원하니
우리 서로 협력을 해서 저 두 명을 처치하고 분배하기로 합시다."
격서는 그렇게 하면 두 명의 강적은 없어진다고 생각되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그러자 두 명의 라마승이 즉시 위중평과 안미옥을 향해 덮쳐 들었다.
철적왕손은 그들을 향해 냉랭하게 웃으며 입을 떼었다.
"자, 어서 검을 주우시오. 나는 사람을 나꾸어챌 테니까."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색과 홍색의 두 그림자가 동시에 쓰러져 있는
금루선연을 향해 쳐들었다.
순간-.
"으악!"
하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금검을 빼앗으려 덮쳐가던 라마승이
일 장 밖으로 날아가며 입에 선혈을 내뿜었다.
이것을 본 격서는 대뜸,
"이런 독사보다 더욱 악랄하고 간사한 놈!"
분노의 갈성을 내지르며 철적왕손을 향하여 번개같이 쳐들어 갔다.
알고 보니 철적왕손이 이런 제의를 한 것은 완전히 사기였다.
즉 라마승이 금루선연의 검을 주우려는 순간 철적왕손이
오음삼살장을 쳐내어 무참하게 죽여 버린 것이다.
한 라마승이 황천길로 가 버리자
여섯 명은 혼전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점차 하나의 지혜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 패 중 어느 한쪽이 서로 격투를 벌이게 되면 남은 한 쪽은
완전히 덕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세 패는 즉시 눈치를 살피며 어느 한 쪽이라도 섣불리 출수를 하려고 들지 않았다.
바로 그 때였다.
"후후후후…"
멀리서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장소성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들려왔다.
매우 멀리서 들려 오는 것 같은데도 귓청을 뚫을 듯해
그 사람의 공력이 얼마나 심후한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때 위중평은 문득 어디서 많이 듣던 음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의식적인 반응으로 소성을 내질러 그 목소리에 호응을 했다.
위중평은 소성이 멎는 순간 한 인영이 번개같이 장내로 뛰어들었다.
나타난 사람은 전신을 윤이 나는 검은 옷으로 싼 아주 왜소한 괴인이었다.
괴소성의 주인공은 바로 현문(玄問)의 정종심법(正宗心法)을 터득한 흑옥인마(黑玉人魔)였다.
그는 호탕한 괴소를 터뜨리며 위중평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 용감한 소협,
그동안 잘 있었는가?
그런데 이 계집아인 왜 여기에 쓰러져 있지?"
말을 하면서 그는 성큼성큼 금루선연을 향해 걸어갔다.
"멈춰라!"
산발괴인은 대뜸 호통을 날리며 그 왜소한 괴인을 향해 쌍장을 밀쳐 내었다.
그러나 산발괴인의 장력은 한 줄기 거대한 반탄력도(反彈力道)에의해 다시 되돌아왔다.
흐러자 산발괴인은 마치 실끊긴 연처럼 자신이 쳐낸 장력에 의해
즉시 뒤로 나자빠질 듯 십여 보 물러났다.
세 홍포괴인도 어쩌지 못하던 산발괴인을 아무런 동작도 없이 물리친 것을 본 철적왕손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손짓을 하며 보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러나 흑옥인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금루선연에게 다가서며 그녀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격서는 흑옥인마가 나타나 철적왕손과 산발괴인이 끽 소리 없이 줄행랑을 쳐버리자
모든 것이 뒤틀려 버렸다는 것을 판단하여 역시 간다 온다 말도 없이 돌아가 버렸다.
금루선연이 새까만 눈망울을 굴리며 깨어났다.
금루선연은 처음엔 영문을 몰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가 위중평 등이 자기의 주위에
빙 둘러서 있는 것을 보자 잠시 얼떨떨해 하면서 생각을 굴리는 듯하더니,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발딱 뛰어 일어났다.
곧이어 그녀는 새파랗게 얼굴에 질려서는 이빨을 으드득 갈아 물었다.
"그 짐승같은 놈은 어디로 갔죠?
내 기어코 그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야 말겠어요!"
중인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철적왕손 등은
이미 줄행랑을 놓은 뒤였다.
흑옥인마가 갑자기 얼굴을 하늘로 올리며 커다랗게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래, 그놈이 바로 장백파의 장문인을 가장한 복면소년이었다!"
위중평은 그 말을 듣고는 즉시 그 간에 있었던 일을 대략 종합해 보았다.
역시 가능성이 컸다.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을 번쩍뜨더니
금루선연을 데리고 철적왕손의 오음삼살장에 절명한 라마승의 곁으로 다가갔다.
"혜매, 이 라마승의 상세를 한 번 자세히 보시오.
영존께서 입으신 치명상과 같은지."
금루선연은 시체를 뒤집떠 상세를 살피더니 크게 소리쳤다.
"앗! 제 아버님이 당하신 것과 똑같아요.
누구의 짓이죠?"
그러자 안미옥이 앞으로 나서며 대꾸했다.
"누구긴 누구겠어요? 바로 그 사형이라는 자이지."
금루선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뜨렸다.
"으흐흐흐…이제 보니
그놈이 아버님께서 보 밖으로 축출시킨데 앙심을 품고 그런 독수를 내렸군요.
오냐 내 그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금루선연이 울부짖으며 보 안으로 정신없이 뛰쳐 들어가려 하자
위중평이 급히 만류했다.
"혜매, 안 되오. 이제 보니 이 보고엔 그들 둘 밖에 살지 않는 것 같소.
계획이 탄로났으니 달아나도 멀리 갔을 거요.
자, 이젠 그 자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 차차 원수를 갚으면 되지 않겠소?
어서 울음을 그치시오."
금루선연은 금방이라도 모조음을 쳐죽일 듯 펄펄 뛰다가 위중평의 위로에
겨우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잠룡보(潛龍堡)를 빠져 나왔다.
일행이 보를 빠져 나와 곧 길에 나섰을 때 위중평이 돌연 흑옥인마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노선배님께선 어떻게 우리가 이곳에 있는지 아셨습니까?"
흑옥인마는 한 차례 광소를 터뜨려 낸 후 천천히 말을 토했다.
"자네가 그 때 명명주재와 함께 비래봉에 와서 그 난리를 칠 때
나는 마침 행공(行功)에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었던 때라 몸을 나타내지 못하였지."
그는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런데 자네들이 장백산으로 무공을 연마하러 간다는 소리를 듣고
급히 뒤쫓아 오던 길이었다네."
이어 그는 금루선연과 안미옥을 다시 흘깃 쳐다보며 의미있게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자네의 호법을 서 주려고 왔던 것인데 저 두 분의 아가씨가 있으니
내가 꾀를 좀 부려도 되겠군.
참, 그보다 우리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내가 우선 장소를 물색해 놓고 나중에 자네가 폐관에 들어갈 때 가보도록 하겠네."
말을 끝낸 흑옥인마는 위중평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몸을 날려 사라져 버렸다.
세 사람은 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곧 길을 떠났다.
천산의 기다란 산맥을 한동안 지루하게 넘어가면 곧 장백산이 나온다.
날이 저물 무렵에야 장백산에 도착한 위중평은 문득 백산목장에 한 번 들려 볼까 하고 생각했다.
백산목장에는 요동일검 등 반가운 몇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단 마음의 결정이 서자 위중평은 즉시 두 낭자를 데리고 백산목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세 사람은 산양들 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언덕에 다달았다.
이맘 때이면 으레 산양들이 모두 우리 속에 가두졌을 텐데 이상하게도 들짐승처럼
온 산야를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위중평은 양떼를 지키는 사람이 보이지 않자 문득 의심이 들었다.
"필시 목장에 무슨 불길한 일이 생긴 모양이구나."
황급히 목장으로 치달리던 위중평은 문간에 들어서기도 전에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앗,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넓은 목장의 대청과 원락 마당 할 것 없이 모두 시체와 피로 흥건히 물들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복노인은 심맥이 완전히 절단된 채 대청에 널부러져 죽어 있었고
그 외에는 하인과 목장 일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요동일검과 위장청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위중평은 아복노인이 평생을 자기 집을 위해 고생을 하다가 종래에는
이렇듯 처참한 죽음을 당해 버린 것에 뜨거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아… 아… 아복아저씨,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아복노인의 시체를 살펴보다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또, 그 간사하고 악랄한 모조음의 소행이에요!"
위중평은 분연히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요. 하지만 이번 만큼은 사도 두 명만의 짓이 아니오."
금루선연은 황급히 다가서며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죠?"
위중평은 무엇인가 짐작을 하고 있는 듯 분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동일검은 왕년 흑수신룡과 동시에 이름을 날린 쟁쟁한 고수요.
더욱이 아복노인과 목장에 있는 고수들의 수도 적지 않은데
사도 두 명이 어떻게 이런 처참한 몰살을 시킬 수 있겠소?"
여기까지 말을 하고 나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이었다.
"이번의 흉수가 일어난지는 겨우 반 나절밖에 안 되는 것 같소.
아직 시체의 피가 채 마르지 않았거든…"
위중평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며 소리 쳤다.
"누구냐!"
그와 동시에 위중평은 번개같이 신형을 처마 위로 날렸다.
그러나 이미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금루선연과 안미옥도 뒤이어 지붕 위로 올라왔다.
"저희들도 분명히 소리를 들었어요."
위중평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절대 틀림없는 거요."
세 사람은 결국 나타난 그림자를 찾지 못하고 다시 마당으로 내려 섰다.
금루선연은 땅에 널려져 있는 시체와 흥건한 피를 바라보며 다시금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처럼 악랄한 자가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 있다니…"
위중평은 잠시 생각을 굴리고 있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틀림없어. 그들은 분명히 다시 올 거야!"
안미옥이 황급히 물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죠?"
위중평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을 토했다.
"상대는 우리가 이곳으로 올 거라는 것을 이미 알아차리고 공개적으로 도전을 한 것이오.
그들이 이처럼 쳐들어온 것으로 보아 그 세력 또한 대단할 것이 분명하오."
금루선연은 몹시 격노해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외쳤다.
"흥, 그것들이 실력이 있으면 대체 얼마나 있겠어요?"
위중평은 신중할 표정으로 두 낭자에게 주의를 주었다.
"조금 전 그 자가 우리의 행동을 감시하러 왔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이 부근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오.
이제 곧이어 무서운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니 각별히 조심을 해야겠소."
금루선연은 문제가 안 된다는 듯 냉소를 날리며 말했다.
"흥, 그들이 정말 들이닥친다면 우리에겐 더할 수 없이
좋은 복수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위중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었다.
"어찌 되었건 조심해야 할 거요."
그 때였다.
"따가닥… 따가닥…"
과연 위중평이 예상했던 대로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위중평은 즉시 미간에 살기를 떠올리며 크게 웃음을 터뜨린 후 소리쳤다.
"이 악적들이 정말 장백파를 우습게 보았구나!
오냐, 내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없애주겠다!"
위중평은 두 낭자를 쳐다보며 단단한 주의를 주었다.
"자, 정신들 바짝 차리고 닥치는 대로 죽여 없애되 필히 신변을 보호해야 하오."
"창!"
예리한 금속성과 함께 무흔검을 안미옥에게 넘겨 주었다.
"나는 자옥섭선이 있으니 낭자는 이 검을 쓰시오."
세 사람이 이렇게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십여 필의 말은 진한 먼지를 일으키며
목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뿌연 먼지는 온통 시야를 가리고 말발굽 소리는 귓청을 진동시키며 요란하게 들려왔다.
겨우 십여 필의 말이었지만 수천의 군마가 달려오는 것처럼 요란하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허공을 찢는 듯 처절하기 비할데 없는 장소가 터져 나왔다.
"으하하하하… 위중평, 이놈! 오늘 어디 한 번 죽어 보아라!"
십여 필의 군마를 이끌고 목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자는
놀랍게도 바로 흑수신룡과 모조음 사도였다.
그들은 이십여 명의 고수들을 거느리고 기세당당하게 들이닥쳤다.
위중평은 분연히 그들을 맞아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네 이놈, 제아무리 냉혈짐승이라도 네놈보다는 나을 것이다!
넌 파렴치하게 널 키워 주고 여태까지 보살펴 주신 신보주를 죽이고도
이처럼 간악한 짓만 하고 다니느냐?
이젠 네 목이 열 개라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위엄이 담긴 위중평의 음성은 당당하고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옆에서 있던 금루선연도 참지 못하고 치를 떨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래도 명목이 사형이라 너를 믿었거늘…
에잇, 이 천하에 짐승보다 못한 인간!
내 너를 짓이겨 죽이고야 말 것이다!"
비통에 가득찬 그녀의 이 말은 정말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정작 장본인인 철적왕손 모조음은 교활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흥, 너무 기세당당해 하지 마라,
기둥같이 버티고 있던 나를 사문에서 축출시켰으니
응당한 보답을 받은 것뿐이지 않느냐? 으하하하…"
득의한 광소를 터뜨리는 모조음의 두 눈에선
독사의 눈빛보다 더욱 음흉하고 무서운 빛이 번쩍였다.
이 때 흑수신룡이 급히 눈짓을 보내자 근 삼십여 명에 달하는
흑도의 쟁쟁한 고수들이 세 사람을 향해 점차 그 포위를 좁혀들기 시작했다.
일시간 얼음처럼 싸늘한 공포가 백산목장을 뒤덮었다.
위중평과 두 낭자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섭선과 보검을 높이 쳐들고
서로 등을 맞댄 채 군적들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흑수신룡 사도가 거느리고 온 이 군적들은 하나같이 흑도상에서 잔인하고
위맹스럽기로 이름꽤나 날린 자들이니 만큼 그 무서운 기세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장내에는 계속 무섭고 늘어질 듯한 침묵이 흘렀다.
금루선연의 맑은 두 눈에서는 원한의 눈빛이 비치었고
보검을 휘어잡은 섬섬옥수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순간-.
"으하하하하…"
모조음의 간사한 광소 소리가 침묵을 깨며
동시에 그의 손에서 무수한 은빛이 폭사되어 나와 세 사람의 머리 위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이것을 시초로 우뢰와 같은 함성이 터지며 군마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위중평은 사방으로 덮쳐드는 신가보의 독문암기 칠보추흔침을 보자,
"조심해!"
하며 섭선을 펴들었고 소나기처럼 내리던 은침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떨어졌다.
"이놈, 받아라!"
금루선연은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하고 떨리는 교성을 터뜨리며급히 자리를 이탈해
시종 음침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조음을 향해 덮쳐갔다.
그러자 안미옥도 뒤에서 위중평의 무기인 무흔검을 휘둘러대며 앞으로 나섰다.
허공에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몇 명이 피를 토하고 고꾸라졌다.
위중평 역시 자옥선의 무한한 위력을 이용해 닥치는대로 휘둘러 죽이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 이들 세 남녀는 두 눈에 피를 뿜어내며 군적들을 휩쓸어 갔다.
고요히 저물어 가는 백산목장의 넓은 마당에는 기합 소리와 장풍,
그리고 예리한 파공음에 뒤이어 처절한 비명이 쉴새없이 터져 나왔다.
흑수신공 사도가 데리고은 흑도 고수들의 위력은 과연 상당했다.
몇 명이 한꺼번에 쓰러져 피를 토하고 죽는데도 계속 벌떼처럼 덤비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친 듯 날뛰는 이들 세 남녀의 무서운 기세에 그 당당하던 군적들의 위력도
마치 태풍이 한 차례 휩쓸고 간 듯 꺾였고 태반이 죽어 넘어졌다.
그러자 백산목장의 넓은 마당에는 시체가 즐비하게 쌓였고 피는 흘러 강을 이루어
진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한편 고수들의 뒤에 서서 천천히 협공을 가하려던 흑수신룡과 모조음은
기세가 이렇게 변해 버리자 그만 크게 놀라고 말았다.
완전히 승산을 자부하고 공개적으로 도전해온 싸움이 악에 받친 세 사람에 의해
어이 없이 꺾여져 버리고만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자
두 사랑은 달리 덤벼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암암리에 도망을 칠 방법을 강구했다.
두 명의 사도는 주위를 맴돌더니 위중평 등이 군적들을 상대하는 틈을 타서
그대로 말을 채찍질해 도주를 하고 말았다.
그러자 군적들에게 둘러싸여 미처 그것을 막지 못한 금루선연은
두 눈에 서슬을 번득이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이 간사한 놈, 어서 서지 못하겠느냐?"
금루선연은 급히 삼 초를 격출해 내어 군적들을 뒤로 물리친 후 뛰쳐 나왔지만
이미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지는 두 사도를 쫓아갈 수는 없었다.
"아…아… 저놈을 또 놓치고야 말다니…
하나님, 이원한을 어떻게 풀어야 좋겠습니까?"
금루선연은 비오듯 눈물을 쏟으며 크게 울부짖었다.
한편 군적들은 흑수신룡과 모조음이 어이없게 도망을 쳐버리자
전부 기회를 타서 사방으로 흩어져 삼십육계 줄행량을 놓기 시작했다.
위중평은 금루선연이 이성을 잃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그녀를 보호하느라 몇 명 남은 군적들을 그냥 보내고야 말았다.
이렇게 한바탕의 피비린내 나는 살겁은 대량 학살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너무 잔인하고 처절한 반면 또 싱거운 싸움이었다.
넘어가는 황혼빛을 받으며 널려져 있는 백산목장의 참상은
차마 눈으로 보기가 처참할 지경이었다.
위중평은 섭선을 거두고 금루선연에게 다가가 자그마한 손을 힘있게 잡았다.
"혜매,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안미옥도 다가오며 침통한 목소리로 위로를 했다.
"혜매,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위소협의 말대로 앞으로 기회는 많아,
그까짓 놈 이제는 뛰어보아야 벼룩이라 숨을 곳도 없을 거야."
하지만 금루선연은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이 울분을 쉽사리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으흐흐흑… 나는 이제 어쩌면 좋아요…"
금루선연은 구슬같은 눈물을 떨구며 위중평의 넓은 가슴에 파묻혔다.
"이 세상 끝이라도 쫓아가 그놈을 꼭 내 손으로 처치해 아버님의 원수를 갚고야 말 테야!"
금루선연은 위중평과 안미옥의 위로에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어 백산목장에 어지러진 시체들을 깨끗이 치웠다.
잠시 후 쓸쓸한 바람이 불어오는 백산목장의 자그마한 언덕는 새로운 무덤이 생겼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옷자락을 날리는 가운데 위중평은 유연히 서서 조용히 읖조렸다.
"아복아저씨, 정말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저희 위가 가문을 위해 평생 애를 써주시다가 이런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시다니…
이 위중평은 기필코 가문의 복수와 아저씨의 원한을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편히 잠드십시오."
묵념을 올리고 난 뒤 비통함을 참으며 두 여인과 함께 급히 길을 재촉했다.
어느새 주위에는 어둠이 내리어 백산목장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이제 세 사람은 천장산 천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험준한 산을 몇 개나 넘고 고행을 한 끝에 일행은 다음 날 오후 무렵에야
겨우 천장산의 천지에 도착했다.
흑옥인마는 천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호탕한 웃음으로 이들을 마중하였다.
"으하하하… 내가 미리 알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자, 이리로 올라오게."
위중평과 두 낭자는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선배님께선 벌써와 계셨군요."
흑옥인마는 앞장서서 걸으며 일행을 인도했다.
"자, 어서 내 뒤를 따르게. 내 이미 적당한 곳을 마련해 두었지.
그러나 워낙 기후가 한랭하여 오래 머물기는 적당하지 못한 곳이네."
흑옥인마는 세 사람을 동굴로 안내했다.
동굴은 산등성이 비스듬한 곳에 있었고 더욱이 동굴 앞에는 울창한 숲이 가려져 있어
보통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으리 만큼 매우 은폐된 곳이었다.
일행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 안은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고
등불까지 은은히 밝혀져 있어 몹시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흑옥인마는 세 사람을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자, 천년설연이라는 것은 구하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네.
그러니 자넨 우선 백공상인이 일러주신 무공을 폐관하여 연마하고 있게.
그동안 난 볼일도 좀 보며 설연을 구해 가지고 오겠네."
이어 두 낭자를 향해 엄중히 당부했다.
"두 낭자의 책임이 크오.
내가 돌아을 때까지 위소협의 신변을 잘 지켜 주시오."
흑옥인마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듯 급히 몸을 날려 사라졌다.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의미있는 미소를 한 번 교환한 후 멀리 사라져 가는
흑옥인마의 등 뒤를 향해 소리쳤다.
"염려 마세요!"
이리하여 위중평은 백공상인이 일러준 무공을 터득하기 위해
장장 사십구 일에 달하는 폐관으로 들어갔다.
어느 때는 살을 에이는 듯한 한풍이 휘몰아쳐 오는가 하면
또 어느 때는 온 천지를 뒤덮을 듯 무서운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금루선연과 안미옥은 오직 위중평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굴 주위를 맴돌았다.
드디어-.
내띨이면 막 사십구 일이 되는 날이다.
이 날도 두 낭자는 경계의 눈초리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안미옥이 금루선연의 옆으로 다가서며 입을 떼었다.
"혜매, 위소협의 폐관 만기일이 드디어 내일로 임박했군.
그러니 우리 마지막으로 더욱 힘을 내자."
안미옥의 말에 금루선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등에 메고 있는 금검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떼었다.
"언니, 그럼 언니가 이 동굴 입구를 지키고 계세요.
제가 사방을 한 번 돌아보고 올 테니까요."
이 말을 남기고 금루선연은 한 줄기 금빛을 그리며 봉우리 위로 물찬 제비처럼 날아 올라갔다.
금루선연이 주위를 살피며 떠나가자 안미옥은 검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사방을 살폈다.
안미옥이 긴장을 하고 있는 탓일까,
아니면 태고적 산의 정적이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천장산 위에는 음산한 귀기로 가득 충만되어 있는 것 같았다.
생전 녹지 않을 두꺼운 백설로 뒤덮인 천장산의 천지봉 주위에는
마치 무수한 사람들이 잠복해 있는 듯 그리고 일진의 살을 에이는 듯한
한풍 속으로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안미옥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 오고 약간의 눈발까지 동반해 날아오는 것이
더욱 음산한 기분을 안겨다 주었다.
안미옥은 몸을 가볍게 떨었지만 추위탓은 아닌 것 같았다.
더구나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도 금루선연이 돌아오지 않자
안미옥은 몹시 초조해졌다.
"웬 일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하군. 오늘 땀만 무사히 넘긴다면 좋으련만…"
이 불길한 예감은 오늘이 사십구 일 전야(前夜)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과연 안미옥의 육감은 에누리 없이 적중되고 말았다.
일진의 괴소가 바람결을 타고 들려 오는 것이 아닌가,
"으흐흐흐… 으흐흐…"
괴소는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하리만큼 차가운 것이라 안미옥은 급히 몸을 움츠렸다.
어느새 한 떼의 인마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접근해 오고 있었다.
안미옥은 황망히 몸을 돌리다가 그만 경악에 가득찬 비명을 올렸다.
"앗!"
알고 보니 나타난 자는 바로 오랫동안 강호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적발교주였던 것이다.
적발교주뿐만이 아니라 전날 안미옥을 납치한 적이 있었던 홍모음효와 추악하게 생긴
불노서시와 또 한 쪽 팔이 떨어져 나간 흑심수사를 대동한 채 나타난 것이었다.
안미옥은 싸늘한 한풍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차갑게 적발교주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이곳엔 무엇하러 나타났죠?"
적발교주는 우선 음침한 괴소를 한 번 터뜨리고 나서 다시 했다.
"그놈을 찾아 옛 빚을 받으러 왔다!"
이 말에 안미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홍모음효는 무림 사강의 제일 우두머리인 만큼 무공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높았다.
거기에다 요 몇 년 동안 강호에 나타나지 않고 은거를 했으니
또 무슨 무시무시한 무공을 연마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무공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불노서시와 흑심수사를 대동하고 나타났으니
안미옥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안미옥은 추호도 당황함을 나타내지 않고 앙칼지게 소리 쳤다.
"흥, 주제에 뭘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예요?"
불노서시가 추악한 입을 쩍 벌리고 킬킬거리며 웃었다.
"곱게 생긴 계집애가 주둥이는 꽤 날카롭구나."
말을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는 추악한 이 노파를 안미옥은
두 눈이 찢어져라 노려보았다.
순간-.
"챙!"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안미옥은 장검을 뽑아 들었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마시오."
홍모음효가 커다랗게 웃으며 소리쳤다.
"어서 그 애송이 놈이 있는 곳을 고분고분 대어라!
그럼 너의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안미옥은 수중의 장검을 떨치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당신이 날 이길 수 있다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홍모음효는 위중평이 틀림없이 이 근방에서 그 어떤 무공을 참수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는 음산한 미소를 띠며 나직이 말을 꺼냈다.
"흥, 그놈은 틀림없이 이 부근에서 그 어떤 무공을 연마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서 주위를 찾아 보아라.
나는 이 계집을 상대할 테니까."
홍모음효는 기합을 터뜨리며 안미옥을 향해 덮쳐갔다.
동시에 흑심수사와 불노서시가 안미옥의 등 뒤에 있는 동굴로 향해 덮쳐 갔다.
그러나 안미옥의 무공은 옛날과 판이하게 틀렸다.
"어딜!"
외마디 갈성을 내지르며 그녀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무흔검으로
공작관병을 쳐내는 것과 동시에 왼손으로는 십 성의 독가선공을 운공시켜 쳐내었다.
불노서시는 뜻밖의 억센 선공을 받자
급급히 구음현살공을 쳐내 막으며 급히 몸을 틀어 뒤로 피해 내었다.
안미옥이 단숨에 세 명을 당해 내자
울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적발교주는 크게 폭갈을 내질렀다.
"네이년, 계집이라 해서 약간 봐 주었더니 점점 형편이 없구나!"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적발교주는 단숨에 십이 장의 총격을 퍼부었다.
십이 장은 천장산을 휘몰아쳐 가는 바람보다 더욱 차갑고 위맹스러웠다.
안미옥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검신에 경력을 관주시켜
교묘하게 검영을 그려내며 필살의 힘을 다해 반격을 했다.
불노서시는 이 순간을 놓칠 세라,
"이야앗!"
폭갈을 터뜨리며 안미옥을 향해 일 장을 격출해 내 동굴 입구로 번개같이 신형을 날렸다.
안미옥은 적발교주의 공격을 막고 있던 중이라
미처 막지 못해 그야말로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그 때,
"멈춰라!"
하는 앙칼진 교갈이 터져 나오더니
한 줄기 금빛 무지개가 허공에 빛을 뿌리며 막 동굴로 접근해 들어가는 불노서시에게 닥쳐들었다.
불노서시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몸을 급회전시키며 번개같이 들이닥치는 괴장(拐杖)을 막아쳤다.
쌍방은 동시에 땅 위에 내려서며 신형을 멈추었다.
이제 보니 위기일발의 순간에 때맞추어 나타난 사람은 바로 금루선연이었다.
불노서시는 안미옥보다도 더 어린 계집애가 자기를 막아서자
추한 얼굴이 더욱 추하게 자줏빛으로 흐려지며 무서운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오냐,
내가 너같은 계집 하나를 당해 내지 못한다면 교주부인의 자리를 내놓겠다!"
불노서시는 붉은 괴장을 내휘저었다.
"휙, 휙, 휙!"
붉은 그림자는 허공을 예리하게 가르며 무섭게 휩싸고 들었다.
금루선연은 조그마한 몸뚱아리를 이리저리 틀며 수중에 쥐고 있는
와황금검을 마치 독사의 혓바닥이 날름거리듯 교묘하게 놀리며 괴장을 막아내었다.
"챙!"
한 차례 날카로운 금속성이 어두운 밤하늘을 가름과 동시에 붉은 괴장의 한쪽 끝이
잘려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금루선연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교갈을 터뜨리며 좌장으로 삼제유공(三際柔功)을
격출해 내어 거대한 불노서시의 체구를 일 장 밖으로 밀쳐내 버렸다.
돼지 같이 살이 찐 체구로 눈 위로 벌렁 나자빠진 불노서시는 울컥 하고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 내더니 곧 일어나 운공조식에 들어갔다.
비록 몸은 조그맣지만 위중평을 지켜야 한다는 금루선연의 야무진 정신력이
어떤 잠력의 힘을 발휘해 명성이 쟁쟁한 마두를 물리친 것이다.
금루선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시 두 사람을 향해 덮쳐 갔다.
"이놈들 멈추어라!"
한편 적발교의 소교주 흑심수사는 자기가 존경해 오던 사부의 부인이
그녀의 단 몇 초에 주저앉은 것을 보자 크게 놀랐다.
그런데 금루선연이 자기를 향해 앙칼진 고함을 터뜨리며 덮쳐들자
급히 뒤로 물러났다.
금루선연은 야무지게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 눈에서 불을 뿜어내었다.
"이놈, 네놈은 오늘 밤 죽었다 깨어나도 이곳에서 살아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금루선연이 섬섬옥수를 쳐드는 순간 예리한 한망이 번득이며
신가보의 독문암기인 칠보칠혼침이 격사되어 나왔다.
"으악!"
처절한 비명이 어둠 속의 공기를 찢고 터져 나왔다.
겁에 질려 물러서던 흑심수사가 전신에 독침을 맞고 그대로 즉사해 버린 것이다.
금루선연은 기세좋게 두 사골을 물리치자
즉시 적발교주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안미옥을 도우려 몸을 날렸다.
순간 음침한 괴소가 터져 나와 안미옥을 멈추게 했다.
"흐흐흐… 네 이년, 네년의 수단이 이토록 악랄할 줄이야."
금루선연은 황급히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누구냐?"
흰 눈이 덮힌 산등성이에 세 명의 노인이 살기등등하게 나타났다.
세 노인 중 맨 가운데 선 자는 팔괘(八卦) 도포를 입고 있었고
그의 왼쪽에 있는 노인은 녹망이 번득이는 무서운 눈에 턱수염을 수북하게 기른
절름발이 노인이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대머리 노인이었다.
세 노인은 서서히 다가왔다.
그 중 대머리 노인이 차갑게 입을 떼었다.
"노부 등은 바로 천산삼노(天山三老)인 팔괘신수(八卦神搜)와 철괴선옹(鐵拐仙翁),
그리고 추풍축일(追風逐日)이다. 우린 위중평을 만나 왕년의 빚을 받으러 왔다. "
금루선연은 그들의 위세에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냉소를 날리며 입을 떼었다.
"흥, 난 또 어느 고인이신가 했더니 형편없는 자들이었군.
도둑의 심보를 갖고 나의 와황금검을 약탈하려고 하였으니
팔 하나 잃은 것만으로 다행인 줄 알아야지."
천산삼노는 천산의 남북을 위진시켜 무림에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금루선연과 같은 계집 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들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철괴선옹은 철장을 휘두르며 버럭 소리를 쳤다.
"오냐, 우리가 오늘 네년을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토록 방자하게 입을 놀리니
뜨거운 맛을 한 번 보여 주고 말 테다!"
세 사람은 무서운 눈초리로 금루선연을 노려보며 다가왔다.
'무협지 > 무흔검(無痕劍)' 카테고리의 다른 글
51. 사랑과 미움 (0) | 2014.06.21 |
---|---|
50. 침입 (0) | 2014.06.20 |
48. 간계 (0) | 2014.06.20 |
47. 어슬픈 결론 (0) | 2014.06.20 |
46. 비래봉의 풍운 (0) | 2014.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