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어슬픈 결론
봉래야선은 본래 성품이 매우 고매(高傲)하였다.
사실 그가 이번 명명주재의 산하에와 있게 된 것은 명명주재의 간곡한 부탁에서였다.
그런데 건방진 복우장주의 도전적인 인사를 듣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봉래야선은 참지 못하고 크게 격노해서 소리쳤다.
"나는 이 평생 동안 그 누구의 간섭을 받고 살아온 자가 아니오.
그런데 명명주재라 한들 나를 어쩔 수 있을 것 같소? 으하하하…"
복우장주는 그 말을 듣자 꼬투리를 잡았다 싶어 크게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아예 배반을 하려고 내려왔다는 얘기구려?"
봉래야선은 표정을 싹 고치고 신중하게 내뱉았다.
"나와 명텅주재는 오로지 친구일 따름인데, 배반이라니 가당치도 않소."
"흥, 그렇소. 어디 두고 봅시다."
말을 끝낸 복우장주는 독각흉신 등을 데리고 즉시 녹음 속으로 사라졌다.
추혼천녀는 그들의 일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백공상인과 계속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녀는 위중평 등이 멀찌감치 서서 계속 다가올 뜻을 보이지 않자 내심 크게 서러웠다.
그래서 입술을 꼭 다물고 위중평에게 천천히 다가서며 목메인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위소협, 정녕 당신은 나와 거리를 두실 건가요?"
위중평은 여느 때보다 더욱 다정한 투로 대꾸했다.
"난 절대 그런 생각은 없소.
다만 내가 근심하고 있는 것은 훗날 우리가 서로 원수사이가 되면 어떻게 하나 바로 그것이오."
추혼천녀는 냉막한 표정에 깊은 우수를 담았다.
"운명이 그렇게 결정되는 것이라면 결코 소협을 원망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추혼천녀의 시선은 금루선연과 안미옥에게 옮겨갔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 계속할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 두 낭자 때문인지 결국 하지 못하고 말았다.
추혼천녀는 격동을 참으려는 듯 백공상인을 향해 몸을 돌리며 빠르게 말했다.
"자선 백부님, 우리 어서 돌아가요.
그분들의 격투가 어쩌면 벌써 시작되었을는지도 모르겠군요."
다섯 사람이 급히 봉우리 위로 올라가 보니
그곳에는 이미 포악한 기합 소리와 싸우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장내에는 머리를 산발한 노파와 복면을 벗어던진 명명주재가 전력을 다해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벽요궁주와 동사이룡(東沙二龍) 만이 지켜보고 있을 뿐
다른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위중평은 장내를 쳐다보고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어 사방을 유심히 살폈다.
과연 예상대로 명명주재가 아무런 손도 쓰지 않을 리 없었다.
사방 곳곳에 우뚝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에는 수없이 많은 인영들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로 인해 비래봉 전체는 온통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위중평은 내심 등골이 싸늘해졌다.
이 때 한해일온은 천만층의 괴영을 그리며 맹공격을 했고 명명주재
또한 만면에 살기를 띠운 채 추호의 양보없이 맹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꽝!"
경천동지할 굉음과 함께 한해일온이 백발을 펄럭이며 서너 보 밀려서서
지팡이에 겨우 몸을 의지했다.
명명주재 또한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채 황망히 두 눈을 내려감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쌍방이 대단한 내상을 입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두 개의 인영이 소리 없이 들이닥치더니 한해일온과 명명주재를 각자 부등켜 안았다.
장내에 뛰어든 사람은 벽요궁주와 추혼천녀였다.
돌연 한해일온은 노갈일성을 터뜨리며 자기를 껴안고 있는 벽요공주를 밀쳐 내었다.
"저리 비켜라, 내 오늘 기어이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
그러자 명명주재도 눈을 번쩍 뜨더니 녹망을 번득이며 이를 갈아 붙였다.
"흥, 오냐. 내 손에서 백 초만 견딜 재간이 있나면 나 명명주재는 성을 갈겠다."
한해일온은 참지 못하고 포악한 고함을 내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돌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장내에 은은한 불호 소리가 들려 오더니
백공상인이 합장을 하며 한해일온의 앞을 막았다.
"두 시주께선 빈승의 낯을 보아서라포 제발 이번 싸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한해일온은 백공상인을 보자 몹시 의외인 듯 흠칫하다가 곧 싸늘한 냉소를 터뜨렸다.
"흥, 난 또 누구라고… 이제 보니 바로 당신이었군."
그러더니 거치른 목소리로 욕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당신은 그 천한 계집과 멀리 이궁으로 향락을 즐기러 가시더니 어찌하다 화상이 되셨나요?
당신은 오늘 일에 대해 추호도 상관하지 마세요."
백공상인은 얼굴에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며 정중하게 입을 떼었다.
"시주의 꾸지람은 소승이 마땅히 받아야 되겠지요.
그리고 지난 날엔 노승이 잘못을 저질렀지만
오늘의 격투 만은 노승의 간곡한 부탁이니 참아 주십시오."
그 때-.
장내에 일진의 냉소가 터지더니 청사 복면부인 하나가 나타났다.
한해일온은 갑자기 처절무비한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좋아, 날수조군, 정말 잘 왔다.
오늘 이 노신을 몽땅 힘을 합쳐 몰아 붙여 버리려구…"
옥탑단장인은 한해일온의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명명주재에게 다가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 독사보다 더 지독한 양반이로군요. 감히 나를 방패로 삼다니…"
옥탑단장인은 추혼천녀가 그의 옆에서 있는 것을 보자
갑자기 하늘을 향해 무서운 광소를 터뜨렸다.
"호호호호…호호호… 이젠 아주 저 애까지 데려다 놓으 셨구려."
명명주재는 얼굴을 굳히며 싸늘하게 말을 받았다.
"우린 서로 일심동체인데 그런 것까지 따질 필요는 없지 않소?
추혼천녀가 나의 친딸인 이상 내게 귀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오."
그들의 입씨름은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몹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위중평은 그들을 번갈아보며 추측을 하기에 바빴다.
그는 일단 옥탑단장인이 명명주재 그리고 자선마군과는
친구 이상의 관계외엔 없을 거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문득 의심이 가는 것은 그 사이에 자신의 아버지인 신주검성도
끼어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해일온은 자선마군의 부인일 것이며,
추혼천녀는 바로 옥탑단장인과 명명주재 사이에서 태어난 딸일 것이라는 추측도 들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위중평의 뇌리에는 일진의 혈광(血光)이 화염처럼 끓어올랐다.
위중평은 앞으로 나서더니 옥탑단장인을 향해 입을 떼었다.
"부인, 제 아버님은 저분 명명주재의 명령에 의해 살해되신 것이죠?"
단노직입적이고 당돌한 위중평의 질문은 옥탑단장인을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일시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옥탑단장인은 비록 명명주재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그래도 자기와는 첫 번째 관계를 맺었던 남자였고 또한 그와의 사이에는
딸도 하나 있기에 차마 이 자리에서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옥탑단장인이 대답을 못하는 또 하나의 원인은 바로 위중평이라는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서였다.
지금 위중평의 실력으로 명명주재에게 덤빈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격이기 때문이다.
옥탑단장인의 표정은 수십 차례 복잡한 변화를 반복했다
그녀는 명명주재와 위중평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급기야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옥탑단장인의 표정은 청사로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위중평은 그녀가 대답을 하지 않자 다시 명명주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대장부가 한 번 마음먹고 한 일은 보통 큰일이 아니니 당연히 그 뒷책임을 져야 하오.
만약 당신이 진정한 영웅이라면 솔직한 대답을 해 주시오.
당신이 바로 우리 아버님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소?"
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몹시 어려운 것이었다.
더구나 명명주재의 이런 신분으로는 더욱 그렇다. 아니다, 라는 짤막한 두 마디 외에는
그 어떤 변명이라도 지저분하게 늘어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명명주재는 이 패기만만한 젊은이가 몹시 마음에 들었고,
또 자기 딸 추혼천녀와의 관계도 알고 있는 까닭에
그를 지금 당장 적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엉뚱한 대답을 하였다.
"네 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이 아직 세상에 살아 있는데
그 사람에게 물어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느냐?"
위중평 역시 원흉인 적발교주가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으니
그에게 물어 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위중평은 명명주재를 무섭게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지금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언젠가는 알아낼 날이 있을 테니 그 때 봅시다."
그 때,
"이 계집 받아라."
하는 폭갈이 터져 나오더니 한해일온이 어느새 지팡이를 휘둘러 옥탑단장인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위중평은 선배들 간의 불행에 자신이 나설 수는 없어
그냥 미간을 찌푸린 채 조용히 물러섰다.
옥탑단장인은 내심 울화가 치밀어 있던 판에 한해일온이 덮쳐들자
기다렸다는 듯 맹렬한 장풍을 날려 반격을 시도했다.
순간 주위에는 쾌속한 장풍의 그림자가 사방을 뒤덮었다.
허공에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며 무서운 격전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눈 깜박할 사이에 삼십여 초를 교환했다.
그 때 옥탑단장인에게 어떻게 하면 오해를 사지 않을까 고민을 하고 있던 명명주재가
대뜸 나서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좀 쉬구려, 저 노파는 내가 맡겠소."
말을 끝내기 무섭게 명명주재가 쌉장을 내휘두르며 겹겹이 싸인군웅 속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백공상인은 그들의 앞에 나서서 되도록이면 싸움을 말리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해일온이 수그러지기는커녕 더욱 발악을 하자 심히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싸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광분해지는 것 같았다.
"으음…"
백공상인은 짧은 신음 소리를 내며 급히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사이로 들어가 소매를 가볍게 떨쳤다.
한 줄기 붉은 안개가 간들거리는 미풍처럼 두 사람 사이에서 일었다.
순간 격전을 벌이고 있던 한해일온과 명명주재는 급히 뒤로 물러 났다.
백공상인은 길게 불호를 외웠다.
"나무아미타불… 우리 네 사람의 은원의 분규는 한 두 마디 정도로는 결정지을 수 없소.
그러니 우리 지금으로부터 삼 년 후 이곳에서 다시 만나 그 때 각자의 실력을 판가름냅시다."
말을 끝낸 백공상인의 부드러운 표정이 웅후하게 변하더니 돌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노승은 이런 호승쟁존(好勝爭存)을 버린 지 이미 오래이오만
오늘 이렇듯 여러분을 만났으니 내 그 동안 새로이 터득한 검법을 한 가지 보여 드리겠소."
백공상인은 넓은 승포를 펄럭이며 경도경애라는 일식으로 다섯 장 밖에 있는
봉우리를 향해 격출해 내었다.
"휘익!"
날카롭게 허공을 찢는 바람 소리가 들리며 백공상인의 넓은 소맷자락 안에서는
무서운 경풍이 격출되었다.
순간-.
"우르릉 꽝!"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져 나오며 오륙 장 높이의 봉우리가 마치 천둥벼락을 맞은 것처럼
갈라지며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이런 무시무시한 장법은 실로 만고에 다시 없는 희귀한 장법이었다
명명주재는 자신의 호천구사신공(昊天九死神功)의 장법이 천하 제일이라고 항상 자부해 왔지만
그의 장법에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공상인은 이것으로써 분명한 시위를 표시한 것이었다.
그는 다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이거 누추한 실력을 보여 미안하게 되었소.
어찌 되었건 우리 이것으로써 네 사람의 은원을 삼 년 후 다시 결정지읍시다."
명켱주재와 옥탑단장친, 그리고 한해일온 등은 전부 이 무시무시한 장법에 정신을 빼앗겼다.
한해일온이 지팡이로 땅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좋소. 그럼 오늘은 당신의 말을 따르겠소.
삼 년 후 우리 다시 만나 은원을 해결합시다."
이어 벽요궁주를 향해 말했다.
"가자, 섬으로 속히 돌아가자."
한해일온은 마치 무엇에서 도망을 치는 사람처럼 미친 듯 달려가기 시작했다.
벽요궁주는 위중평에게 다가가 쪽지를 건네 주더니
정이 듬뿍 어린 눈빛으로 그를 깊게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동사이룡을 데리고 봉우리 아래로 나는 듯 내려갔다.
위중평은 쪽지를 품 속으로 집어 넣더니 신중한 표정으로 장내를 응시했다.
옥탑단장인은 명명주재에게 다가서며 냉랭한 목소리로 선포를 하고 있었다.
"추혼을 절대 당신에게 넘겨 줄 수는 없어요.
기어코 내가 데려가겠다는 것입니다."
명명주재는 약간 능청스러운 투로 대꾸했다.
"그럴 필요가 어디 있소. 누구의 옆에 있든 마찬가지가 아니오?"
옥탑단장인은 대번에 그의 말을 잘랐다.
"안 돼요. 절대 그럴 수는 없어요."
옥탑단장인은 추혼천녀에게 시선을 돌려 무서운 어조로 말했다.
"추혼, 어서 날 따라오너라."
명명주재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추혼아, 너는 아버지를 따라 허무전으로 돌아가자.
옥탑단장인은 명명주재를 밀치며 앙칼지게 외쳤다.
"안 돼요.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천녀를 기어코 데려가고야 말겠어요."
명명주재는 차마 그녀와 싸울 수가 없어 조건을 제시했다.
"우리 이렇게 흥분할 게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따르는 것이 어떻겠소?"
"안 돼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옥탑단장인의 앙칼진 부르짖음이었다.
추혼천녀는 몹시 난처했다.
그녀는 내심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라 몹시 고통스러웠다.
추혼천녀는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미친 듯 봉우리 아래로 달려갔다.
옥탑단장인은 그것을 보자 크게 소리쳤다.
"추혼아, 너 어딜 가느냐"
그리고 옥탑단장인은 그녀의 뒤를 따르려 했다.
명명주재가 광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굳이 그 애를 쫓아갈 필요는 없소.
우리 그 애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록 그냥 내버려 둡시다."
그는 옥탑단장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옥탑단장인은 격노하여 연속 삼 장을 쳐내었다.
명명주재는 그녀의 장력에 뒤로 주루루 밀려나더니 고소를 지었다.
"우리가 이렇게 할 필요가 있소?"
옥탑단장인은 분이 가시지 않는 어조로 냉랭하게 소리쳤다.
"여러 소리 할 것 없어요. 우리 삼 년 후에 만나 모든 일을 해 결짓자구요."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녀는 신형을 날려 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명명주재는 오늘 계획은 한해일온 사도와 동사이룡을 전부 이 비래봉에서 처치해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백공상인과 옥탑단장인이 나타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한편 각 봉우리마다 잠복시켜 놓았던 명명주재의 수하들은 한풀 꺾인 모습으로 쓸쓸하게 내려왔다.
이 때 복우장주가 명명주재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명명주재는 안색이 싹 변하며 대뜸 크게 소리쳤다.
"어서 불러오시오."
잠시 후 봉래야선이 명명주재의 앞에 나타나 가볍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빈도를 부르셨는데 무슨 일이십니까?"
명명주재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날리더니 호촌구사신공을 번개같이 격출해 내었다.
봉래야선은 명명주재가 자기에게 이처럼 독수를 전개할 줄 몰랐기 때문에
황급히 손을 들어 쌍장으로 반격을 해 내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 줄기의 경풍이 맞붙자 일련의 회오리 바람이 거세게 일었다.
봉래야선은 일 장 밖으로 밀려나며 입가에 선혈을 머금었다.
워낙 창졸간에 받은 역습인 데다 호천구사신공의 위력이 너무 큰까닭에 봉래야선은
그만 깊은 중상을 입고만 것이다.
명명주재는 가뜩이나 울분을 토할 길이 없던 차에 일 장으로 상대가 죽지 않자 다시 몸을 날렸다.
그 순간이었다.
허공에서 인영이 번득이는 것 같더니 명명주재가 격출해 낸 장풍과 허공에서 격돌을 했다.
위중평이 봉래야선을 구출하러 나선 것이었다.
명명주재는 땅에 내려서더니 만면에 살기를 띠며 소리쳤다.
"네 이놈! 조그만 놈이 감히 어디를 나서려고 하느냐?"
위중평은 냉소를 터뜨리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흥, 입으로는 항상 인과 의를 외치는 사람이 속마음은 독사보다 더 잔악하군요.
도대체 이 도장께서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처럼 죽이려 드는 겁니까?"
명명주재는 그의 당돌함과 용기를 아끼고 있는 터라
가슴 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광소로써 대신했다.
"으하하하… 이놈, 감히 나 명명주재가 하는 일에 네놈이 나서다니
노부가 너의 공력을 아끼는 마음이 없었다면 내 앞에서
결코 함부로 까불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서 썩 꺼져라!"
허무전의 쟁쟁한 고수들은 하나 둘씩 위중평을 포위해 들었다.
위중평은 명명주재를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며 물러설 의향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차피 당신과 생사의 결단을 내어야 할 처지이니
수하들이 많을 때 공격을 해보시오."
명명주재는 어이가 없다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너같은 애숭이쯤 몇 명을 없앤다 하더라도
난 이처럼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노부가 손을 쓰지 않는 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서 내 앞에서 썩 사라지거라."
위중평이 격한 반발을 하려는 찰나 한 가닥 가벼운 바람 소리와 함께 백공상인이 앞으로 나섰다.
"시주, 이렇듯 함부로 처신을 해선 안 되네. 그러니 어서 물러서게."
그러더니 이번에는 명명주재를 향해 엄중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노승의 어려운 부탁이 또 하나 있소.
봉래야선은 중상을 입은 것 같으니 노승이 데려다 치료를 좀 해주고 싶소.
그리고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된 다음 다시 만나서 해결하시오."
명명주재는 봉래야선이 허무전의 규칙을 위반했으므로
그를 죽여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중평과 무서운 실컬을 가진 백공상인이 이처럼 나서서 만류를 하니
그로써는 좋든 싫든 승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명주재는 어쩔 수 없는 듯 무겁게 대답했다.
"봉래야선은 본방의 규칙을 위반했으므로 죽어 마땅하지만
노승께서 그처럼 부탁을 하시니
내 그의 상처가 회복되면 다시 처벌을 하도록 하겠소이다."
말을 끝내고 명명주재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포위를 하고 있던 허무전의 고수들은 일제히 길을 터 주었다.
백공상인은 공손히 합장을 하였다.
"고맙소. 시주, 그럼 우리들은 이만 돌아가겠소."
그러고는 백공상인은 위중평을 데리고 비래봉을 내려왔다.
이렇게 해서 비래봉 꼭대기에서의 풍운은 일단락 지어졌다.
'무협지 > 무흔검(無痕劍)' 카테고리의 다른 글
49. 대군마 (0) | 2014.06.20 |
---|---|
48. 간계 (0) | 2014.06.20 |
46. 비래봉의 풍운 (0) | 2014.06.20 |
45. 질투 (0) | 2014.06.20 |
44. 처절한 싸움 (0) | 2014.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