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비래봉의 풍운

 

46. 비래봉의 풍운 

 

  

번승 격서는 위중평이 이 다섯 사람의 주관이라는 것을 파악하자 선수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격서가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소맷자락을 펄럭이자

한 줄기 무형의 잠력이 위중평을 향해 폭사되어 나갔다.

한편 다섯 선랑 중 제일 앞장을 선 요의낭자는 격서가 선봉인 자기를 놔두고

위중평을 향해 공격을 하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멈추어라."

 

요의낭자는 교갈일성을 터뜨리며 격서를 향하여 번개같이 다섯 장을 연달아 격출해 내었다.

그 바람에 위중평을 향해 맹공격을 퍼붓던 격서는 창망히 몸을 빼내 일 장의 반격을 가해서야

겨우 요의낭자의 공격을 피해 낼 수가 있었다.

요의낭자의 공격이 출발 신호인 듯 금루선연의 와황금검과 안미옥의 보검이 격서의 양쪽으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주위를 뒤흔들 것 같은 경풍이 휘몰아치며 여섯 사람은 삽 조로 나뉘어서

맹렬히 격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장내에는 위중평과 추혼천녀만이 우두커니 서서 묵묵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반룡사의 승려들은 전부가 서장밀종파(西藏密宗派)의 선공(禪功)을 수련하여

평소부터 높은 무공을 자부해 오던 자들이었다.

이들의 특징이 있다면 높은 무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강호를 나다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처럼 마음을 먹고 중원에 들어서자마자 뜻밖에도 무서운 강적을 만나고 말았다.

그것도 하나같이 소년 소녀의 티를 못 벗은 젊은이들이 아닌가.

일파의 장문인으로 있는 격서로써는 심히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싸움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모두들 멈추시오."

 

장내에 한 인영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음성은 비록 크지 않았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찔하게 만드는 위엄이 있었다.

여섯 사람은 거의 동시에 세 걸음씩 물러나며 공격을 멈추었다.

마치 가죽으로 뼈를 싼 것 같은 깡마른 여섯 노승이 중앙으로 들어서며 격서를 향해

합장을 올리며 입을 떼었다.

 

"대화상께선 대체 무슨 일로 이 젊은 아이들과 격투를 벌이고 계시는 겁니까?"

 

격서도 합장을 하여 답례를 보낸 후 금루선연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빈승은 그저 본사의 진사지보(鎭寺至寶)인 와황금검을 되찾으려 했을 뿐입니다."

 

노승은 가볍게 웃으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저 금검의 내력에 대해선 빈승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저 금검은 이궁 장신실에서도 수십 년 간 방치되어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귀사의 진사지보라니 정말 믿기가 어렵습니다."

 

격서는 안색이 크게 변하며 외쳤다

 

"아니 그러면 불가에 몸을 담고 있는 빈승이 거짓말을 했다는 말이오?"

 

이 노승은 수도가 깊은 듯 여전히 온화하고 무게 있게 말을 꺼 냈다.

 

"귀사에선 그 금검을 언제쯤 잃어버렸습니까?"

 

격서는 생각을 해보는 듯 눈알을 굴리더니 대답했다.

 

"약 일 년쯤 되었을까요…"

 

그러자 추혼천녀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섰다.

 

"흥, 재미있는 일이군.

그 검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니고 있던 것이니만큼 적어도 십구 년 이상은 되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귀사에서 잃어버린 것이라는 건가요?"

 

노승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더니 대담하게 꾸지람을 주었다.

 

"추혼, 넌 잠자코 있거라."

 

그러더니 격서를 향해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귀사에서 잃어버린 검은 저 검이 아니고 아마 다른 검일 것입니다."

 

격서는 이 말에 영문을 몰라 반신반의했다

어쩌면 그 말이 거짓말도 같았지만 노승의 온화한 표정으로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설사 저 금검이 반룡사의 물건이라 해도 이처럼 공력이 심후한 세 사람의 수중에서 빼앗기란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격서는 잠시 동안 생각을 굴리다가 하는 수 없는 듯 금검을 한 번 쳐다보더니

번개같이 몸을 날려 원야로 사라져 갔다.

노승은 그제야 길게 한숨을 내뿜으며 나직이 외쳤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어 노승이 입을 떼려고 하자

추혼천녀가 마치 고양이가 어미 품에 파묻히는 것처럼 노승의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선백부님…"

 

그러더니 목을 놓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울음 소리에는 설움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추혼천녀는 요 며칠 사이의 설움과 실망을 이 울음으로 다 풀어 버리려는 듯했다.

노승은 이런 마음을 다 헤아리고 있다는 듯 실컷 울도록 내버려둔 후 추혼천녀가 울음을 그치자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자상하게 말을 꺼냈다.

 

"얘야, 이제 그만 울어라.

그런데 네가 명명주재에게 귀종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냐?"

 

추혼천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숙부님, 노승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너의 어머니, 아니 사부께서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시냐?

아무튼 이 일은 극히 조심스럽게 결정을 해야만 할 것이다."

 

추혼천녀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대꾸했다.

 

"하지만 그분은 절 미워하고 있는걸요?"

 

노승은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

 

"얘야, 결코 그런 것이 아니란다. 물론 두고 보면 차차 알게 되겠지만."

 

추혼천녀는 눈물이 글썽거리며 노승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과연 어떤 뜻이 포함되어 있을까.

그 때 키가 훤칠하게 큰 복면인이 유령처럼 현장에 나타나더니

온산하게 냉소를 날렸다.

 

"오랜만입니다.

이런 곳에서 세상에 이름을 떨치던 자선대협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정말 뜻밖이군요."

 

노승은 추호도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합장을 올렸다.

 

"원 과찬의 말씀입니다.

노승의 호는 백공(白空)으로 이 세상에 이제 자선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복면인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말했다.

 

"으하하하… 대협께서 이미 삼계(三界)를 넘어 등천을 하셨다면 무엇하러

이 강호에 다시 나타나 우리 부녀의 감정을 갈라 놓는 것입니까?"

 

노승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정색을 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빈승에겐 추호도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복면인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추혼천녀를 향해 손짓을 했다.

 

"얘야, 어서 이리 오너라. 우리 가자."

 

추혼천녀는 싸늘한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백공 노승을 한 번 쳐다보고는

위중평의 얼굴에다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그녀는 복면인을 따라 울창한 소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다.

백공상인은 두 사람을 조용히 보낸 후 시선을 위중평 등에게 돌렸다.

요의낭자와 안미옥 그리고 금루선연은 노승이 다년간 강호를 진동시켰다던

자선마군이라는 것을 알고 일제히 앞으로 나와 인사를 올렸다.

백공상인은 요의낭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낭자의 무공은 중원의 대열에 속해 있지 않는 것 같은데 영사의 존대성명은 어떻게 되시오?"

 

요의낭자는 공손히 대답을 했다.

 

"만배는 벽요궁주(碧瑤宮主)라 하오며 소녀의 사부는 한해일독부(恨悔一獨婦)라 합니다."

 

순간 벽공상인의 깡마른 얼굴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그는 염불을 한 차례 외운 후 조용히 물었다.

 

"그분께서도 중원에 오셨소?"

 

요의낭자 벽요궁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백공상인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사부께선 요 근래에 비래봉에서 누구와 결투를 벌이기로 하셨으므로 만배는

때맞추어 그곳에 가봐야겠습니다."

 

말을 끝내고는 상대방이 채 무엇이라 할 여유도 주지 않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백공상인이 영문을 몰라 얼떨떨해 하자 위중평이 대신 나서며 대답했다.

 

"그녀의 사부는 명명주재와 비래봉에서 무공을 비교하기로 언약을 했답너다.

이번의 비무(比武)는 상당히 맹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 만배도 즉시 그곳으로가 보아야겠습니다."

 

백공상인의 얼굴은 약간 떨렸다.

그는 무엇인가 심사숙고를 하는 듯 몇 차례인가 안색을 변화시키더니

이윽고 한참만에야 입을 떼었다.

 

"그럼 우리 전부 같이가 보도록 하지."

 

이리하여 네 사람은 즉시 항주로 향했다.

그러나 도중에서 금루선연은 문득 경쟁심이 일어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옛날 강호를 진동시켰던 자선마군의 공력이 대체어느 정도나 되는지

시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금루선연은 살그머니 안미옥의 옆으로 다가서며 귓전에다 대고 발했다.

 

"언니 우리 좀더 속력 좀 내어서 달려요."

 

금루선연은 어떻게 된 일인지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안미옥을 잡아 당겨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중평은 매우 착실하게 백공상인의 뒤를 따라서 길을 재촉했다

그 때 백공상인이 문득 위중평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도 그녀들과 함께 가게. 나는 천천히 뒤를 따를 테니까."

 

위중평은 잠시 주저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저는 선배님을 모시고 천천히 가겠습니다."

 

백공상인은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재촉했다.

 

"극쎄 얼른 가보라니까."

 

위중평은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두 여자의 뒤를 따랐다.

한편 금루선연은 앞으로 달려가며 틈만 있으면 튀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백공상인이 저만큼 뒤에서 느릿느릿 결어가는 것을 보자 르게 실망을 하였다.

그리고 백공상인을 아주 보이지 앉을 만큼 뒤로 따돌기고 나서 녹으로 투덜거렸다.

 

'아이 재미 없어라. 저분 노화상께선 우리와 시합을 할 의향이 조금도 없지 않아?'

 

금루선연은 일시에 맥이 탁 빠지자 아예 걸음을 늦추고 노승이 올 때가지 쉬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금루선연이 눈을 부릅뜨고 앞을 쳐다보니 백공상인이

어느새 자기의 앞 오 장쯤 되는 거리에서 뒤뚱뒤뚱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금루선연은 그만 크게 놀라 조그만한 입을 쩍 벌렸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수십 리를 달려 왔는데

그 화상은 눈 깜박할 사이에 앞으로 따라붙은 것이다.

금루선연은 날개가 꺾인 참새처럼 풀이 팍 죽었다.

위중평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후후후. 어리석은 혜매야.

이것은 그릇으로 바닷물의 양을 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옥탑단장인이라 할지라도 저 노인네를 어떻게 못하는데 네가 어떻게…'

 

위중평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금루선연을 향하여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금루선연은 대뜸 그 눈초리를 알아차리고 눈을 살짝 흘기며 앙칼지게 소리였다.

 

"흥, 남자가 별것을 다 참견하려 드는군."

 

안미옥이 옆에 있다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이야, 나 참 기가 막혀서…"

 

위중평은 두 여인이 자기를 향해 화를 벌컥 내자 내심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남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욕을 얻어 먹는 것이 마음 편하고 유쾌한 일인가 보다.

위중평은 옛날 강호에 처음 나왔출 때과는 너무 판이하게 달랐다.

그 자신도 모르게 늠름한 젊은 청년으로 성장을 했고 먹는 음식조차 남성이 주로 먹는

거친 것으로 변했다.

금루선연도 마찬가지였다.

금루선연 역시 옛날같이 철없는 말괄량이 소녀가 아니었다.

어느새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을 곳은 나온 아름다을 여인으로 성장을 한 것이었다.

길을 가는 동안 세 명의 청춘남녀들은 어릴적부터 같이 자라온 아이들처럼

서로 장난을 치며 즐거운 여행을 계속했다.

그러나 노승은 마치 일존(一尊)의 고불인(古佛人)처럼 말이 없었다.

일행은 드디어 비래봉이 보이는 산 밑에 도착했다.

네 사람이 웅장한 산을 올려다보며 한참 넋을 잃고 있을 때

돌연 숱 속에서 커다란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멈추시오. 명명주재께서는 아무도 이 산을 오르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소.

누구든 그 명을 어기고 산을 오르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외다."

 

백공상인은 그 고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산 위로 걸음을 떼어 놓았다.

위중평과 두 여자도 망설이지 않고 쫓아 올라갔다.

이 때,

 

"휙, 휙!"

 

예리한 파공음이 일며 한 무더기의 번득이는 은빛이 온통 하늘을 뒤덮으며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금루선연이 깜짝 놀라 금검으로 후려치려고 하자 위중평이 급히 만류했다.

백공상인의 주위에는 갑자기 한 줄기의 부드러운 경풍이 일어났다.

그러자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은빛들이 전부 허공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닌가.

백공상인은 조금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여전히 위엄있게 산을 올랐고

세 사람 또한 그의 뒤를 따라 약 사오십 보 정도 올라갔다.

 

갑자기-.

 

"멈추시오."

 

커다란 갈성과 함께 산 중턱에 세 명의 인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나타난 사람 중 손에 긴 담뱃대처럼 생긴 무기를 든 노인을 빼놓고

나머지 두 사람은 위중평이 아는 사람이었다.

묘수선고와 독각흉신이었다.

독각흉신은 사발만큼 커다란 입을 볼품없이 떡 벌리더니 괴소를 터뜨렸다.

 

"이히히히… 나는 또 누구신가 했더니 알고 좌니 바로 자선대협 이셨군요."

 

백공상인은 합장을 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노승이 이곳에 온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오?

다만 이 일 장의 분쟁을 와해시키기 위해서이니

여러분께선 옛날의 안면을 봐서라도 노슭이 산에 오를 수 있도록 좀 바주시오."

 

거의 애걸에 가까운 부탁이었다. 백공상인이 이처럼 고분고분 나서자

독각흉신과 묘수선고는 급히 눈짓을 교환하더니 입을 떼었다.

 

"이 일은 우리로선 결정을 지을 수 없으니

대협께선 좀 기다려 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담뱃대를 든 노인이 알으로 썩 나서더니 냉랭하게 소리쳤다.

 

"우리들은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니

산으로 오르는 일은 포기하는 것이 좋을 거요."

 

담뱃대를 든 이 노인은 바로 팔선 중의 가장 우두머리로 당년 양하(兩河)에서 이름을 날렸던

복우장주(伏牛莊主)였다.

노인은 생긴대로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주 냉혹한 인간이었다.

위중평은 백공상인이 이처럼 애걸을 하는데도 말을 듣지 않자

그 매정함에 상당한 반감을 가졌다.

금루선연이 그 조급한 성격을 참지 못하고 대뜸 날카로운 금속성을 내며 장검을 뽑아들었다.

 

"이곳 비래봉이 명명주재의 사유재산도 아닐진대 도대체 무슨 권리로 못 오르게 하는 거죠?"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그녀는 일식의 비검장선(飛劍長禪)으로 예리한 검날을 뻗어 내었다.

독각흉신을 비롯한 그들은 유능한 고수들이긴 했지만 금루선연의 손에서 번득이는

상고의 병기와는 도저히 맞닥뜨릴 수 없는지 급히 몸을 날려 피해 내었다.

위중평은 금루선연이 먼저 공적의 문을 터놓자 즉시 몸을 날리며 크게 소리쳤다.

 

"오늘 우리들은 누가 뭐래도 비래봉을 기어서 오르고야 말 것이니

누구든 덤비는 자는 크게 다칠 것이오."

 

복우장주가 험악하게 앙천광소를 터뜨리며 말을 내뱉았다.

 

"으하하하하… 정말 건방지기 짝이없는 놈이로구나,

자선마군이 직접 나선다 해도 내 앞에서 그처럼 건방진 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다."

 

위중평은 어차피 이들과는 일전의 싸움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좋소!"

 

위중평은 즉시 날렵한 솜씨로 자선을 펴들었다.

이어 일식의 채운사기(彩雲四起)로 상대의 중정(中庭)과 거궐(巨闕), 건리(建里) 등

삼대 모혈을 향해 찍었다.

순식간에 뼈를 에이는 듯한 냉풍이 복우장주를 휩싸안고 쳐들었다.

복우장주 역시 상당한 마두인지라

두 눈에 살기를 띄우며 전력을 다해 덤벼들었다.

일순 현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처절한 격투 속으로 휘몰아 들어갔다.

금루선연은 독각흉신을 안미옥은 묘수선고와 각각 산등성이에서 치열하게 붙어 버렸다.

한편 백공상인은 단 일 초로서 세 사람을 격퇴시킬 수 있었지만 젊은이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고 싶어 그냥 싸움을 벌이도록 놔두었다.

여섯 사람이 시전해 내는 장풍은 온통 주위를 뒤덮었고 기합 소리는 온 산을 메아리쳤다.

여섯 사람은 정신없이 싸움을 벌이는 동안 어느새 삼십여 합의 초식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 때 숲 속에서 한 인영이 나타나 장내를 예리하게 살피고는 백공상인이 멀치감치 떨어져

관전하고 있는 것을 보자 눈을 번득였다.

그 인영은 백공상인에게 다가가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은형께선 이렇듯 속세를 떠나 불문에 입문을 하셨군요."

 

도장차림으로 나서며 말을 건낸 이 노인은 바로 화악묘(華嶽廟)에 한 번 나타난 적이 있는

봉래야선이다.

봉래야선은 개인적으로는 자선마군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백공상인은 여전히 침착한 모습으로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도장의 풍채는 왕년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구려.

그래 수위(修爲)에도 커다란 진전이 있었나요?"

 

봉래야선은 백공상인을 마주하자 몹시 감개가 무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백공상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빈승이 강호에서 자취를 감춘 후 명명주재가 이처럼 커다란 세력을 구축할 줄은 정말 몰랐소.

도장께서도 명명주재의 팔선에 열거되어 있다면서요?"

 

봉래야선은 본래 그 인품이 몹시 도도하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선마군을 빼놓고는 그 누구에게도 굴복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봉래야선이 명명주재에게 들어간 것은 한 때 울컥하는 기분 때문이었다

백공상인이 비꼬는 듯 말을 꺼내자 그는 대뜸 옛 생각이 나 얼굴을 붉혔다.

 

"그저 한때의 재미로 그랬을 뿐입니다."

 

봉래야선은 무안함을 감당할 수 없었던지 돌연 싸우고 있는 여섯 사람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모두들 멈추시오!"

 

이 때 복우장주는 팔선의 가장 우두머리인 신분으로 위중평과 근 오십여 합을

주고받았으면서도 어쩌지 못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마침 봉래야선이 나타나 멈추라고 소리치자

명명주재의 명령을 받고 있나 싶어 급히 담뱃대를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봉래야선은 싸움을 중지시킨 후 봉우리 위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 크게 소리쳤다.

 

"이분들이 산 위로 오르는 것을 허락하시오."

 

복우장주는 대뜸 인상을 차갑게 변화시키며 소리쳤다.

 

"그것이 누구의 뜻이오?"

 

봉래야선은 조용히 대답했다.

 

"빈도의 뜻이오."

 

복우장주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대뜸 코웃음을 날렸다.

 

"무엇이라고? 당신의 뜻이라고? 정말 가소로운 얘기로군."

 

그러더니 대뜸 인상을 험악하게 바꾸며 냉랭하게 선포하듯 외쳤다.

 

'썽명주재의 옥부전륜(王符傳論) 외에는 그 누구도 봉우리 위로 오를 수 없소."

 

봉래야선은 그 말을 듣자 참지 못하고 막 발작을 하려고 했다.

그 때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붉은 인영이 마치 무지개처럼

선연한 그림자를 그리며 장내로 사뿐이 날아들었다.

이어 앙칼지고 냉랭한 목소리리가 터져 나왔다.

 

"제가 승낙했어요. 그 누가 감히 막는다는 말이죠?"

 

복우장주는 뜻밖에도 추혼천녀가 나타나자

어쩔 수 없는지 싸늘한 코웃음을 날리며 뒤로 물러났다.

 

"궁주께서 친히 납시셨으니 그것은 당연한 얘기겠지요."

 

추혼천녀는 복우장주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백공상인의로 다가와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

 

"자, 백부님, 어서 산 위로 오르시죠."

 

백공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네 아버지께선 또 음모를 꾸미고 계시느냐?"

 

추혼천녀는 약간 당황하며 막연히 대답했다.

 

"아마도 그럴 거예요…"

 

한편 복우장주는 추혼천녀가 자기의 얘기는 듣는 척도 하지 않자

그 화풀이를 봉래야선에게 했다.

"팔선의 위치에 올라 있으면서도 감히 분부를 어기고 마음대로 일을 진행시키다니…

흥, 명명주재의 악에서 다시 봅시다."

 

이 말은 완전히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