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45. 질투

오늘의 쉼터 2014. 6. 20. 18:16

무흔검(無痕劍) 3

 

 

45. 질투

 

 

 

"그러한 일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오.

하지만 나는 지금 즉시 이곳을 떠나야겠습니다."

 

추혼천녀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하여 넋을 잃고 말았다.

이 틈을 타서 위중평은 창문을 뚫고 나갔으며 이내 좁은 누각을 향해 날아 올라갔다.

순간 사방에서 무수히 많은 인영이 나타났는데 이미 포위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곳 허무전은 명명주재의 중심지로서 고수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어

일단 이곳에 온 사람은 명명주재의 허락없이는 절대 떠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중평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냉소를 터뜨리며 동남쪽을 향해 달려갔다.

이 때 맞은편에서부터 엄습해 오는 강한 장풍이 그로 하여금 달려가는

기세를 정지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였다.

위중평이 급히 행동을 정지하고 고개를 돌려 보니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은 휴, 창, 남, 백 네 노인이었다.

이 네 명의 노인은 오랫동안 소요공자를 따르면서 깊은 정을 쌓고 있었다.

그들은 소요공자가 위중평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즉시 복수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다만 명명주재의 명령이 없어 망설이다가 위중평이 달려나오자

이 때가 기회라고 생각하여 일제히 덮쳐온 것이다.

홍포노인이 우렁찬 음성으로 소리쳤다.

 

"대담한 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감히까둘고 있느냐? 어서 돌아가라."

 

이 말과 함께 긴 소매를 휘두르자 강한 장풍이 다시 엄습해 왔다.

위중평은 이들의 행동을 보고는 음랭하게 웃었다.

 

"너희들 네 명의 힘으로서 이 공자님을 남겨 둘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더니 지체없이 일 장을 밀어내 응수해 갔다.

다음 순간 쌍장이 부딪치는 거센 굉음과 함께 재차 쌍장을 휘둘러

눈 깜박할 사이에 열두 장이나 밀어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네 명의 노인은 전혀 반격을 가할 여유도 없이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이 틈을 타서 위중평은 공중으로 몸을 날려 산 밑을 향해 달려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갈색 장포를 입은 몇 명의 노인이 다시 그의 앞길을 잽싸게 가로막았다.

그들의 차림새로 보아 틀림없이 십삼표묘객의 인물이라는 것을 안 위중평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과는 일대 일로 싸운다 해도 상대하기가 어려울 텐데

한꺼번에 여러 명씩 달려들려고 하니 절로 난감해진 것이다.

표묘객들은 사노와 같이 경거망동하지는 않았으나 마치 그들의 임무가

위중평을 제지시키는 것뿐이라는 듯 위중평이 손을 쓰지 않자

그들 역시 손을 쓰지 않았다.

이 때 등 뒤에서부터 추혼천녀의 냉랭한 음성이 들려왔다.

 

"평제! 정말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올 것인가요?"

 

위중평이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추혼천녀와 명명주재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서 있었다.

위중평은 절로 탄식을 터뜨렸다.

 

"추혼누님이 나에게 내려준 고마움에 대해선 결코 잊지 못할 것이오.

다만 서로 할 일이 따로 있으니 더 이상 강요하지 마시오."

 

"아버지의 뜻은 평제로 하여금 이곳 허무전에 있으면서

유력한 조수가 되어 주길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평제의 부친이신 신주검성의 원한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적발교주를 잡아다 줄 테니 평제의 마음대로 처치하면 될 게 아니예요?"

 

위중평은 그녀의 말을 듣자 어이가 없어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일에 대해선 더 이상 얘기하지 맙시다.

분명히 말해서 지금은 원수가 누구인지 아직 확정할 수가 없으며

설사 확정한다 해도 남의 앞잡이 노릇은 하지 않을 것이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분명하고도 긍정적이었으며 강호에서

얘기만 꺼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명명주재를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명명주재는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소년이 귀엽고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강호상에서 살인을 많이 한 사람은 나 한 사람만이 아니지 않느냐.

옥탑단장인, 흑옥인마 그리고 너의 추촌누님까지도 숱한 사람을 죽여 왔거늘

어찌 나만을 증오하는 것이냐?"

 

위중평은 순간 검미를 곤두세우며 큰소리로 외쳤다.

 

"딴 사람들은 자위를 위해서나 아니면 복수를 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살인을 하지만

유독 당신만은 무차별하게 살생을 하지 않았소?

그러니 누가 당신과 같은 살인마를 증오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이오.

 내 분명히 말해 두지만 어젠가는 당신과 생사의 결단을 내릴 것이오…"

 

명명주재는 안색이 급변하더니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아주 맹랑한녀석이구나. 나와 정 싸우고 싶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덤벼 보아라,

솔직히 말해 이 허무전에서 살아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네가 나의 삼 장을 받아낸다면 내 군소리 없이 너를 살려 보내주겠다."

 

명명주재는 위중평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이용하려고 했으나 위중평의 단호한 태도를 보자

절로 치가 떨려 일 장에 위중평을 죽여 후환을 없애려고 생각한 것이다.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성격을 가진 위중평은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소. 나 위중평은 기꺼이 당신의 삼 장을 받아 보겠소."

 

명명주재는 냉랭히 웃으며 위중평의 앞으로 다가섰다.

위중평 또한 조화신공을 쌍장에 주입시켜 상대가 공격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명주재는 위중평을 심심히 노려보더니 하늘이 무너질 듯 소리를 질렀다

 

"자, 받아라…"

 

순간 위중평은 지체하지 않고 빈고동지의 초식을 전개해 잽싸게 응수했다.

거센 굉음과 함께 경기가 소용돌이치자 위중평은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는 기혈이 역류하는 것을 꾹 참으며 제 이 장을 받을 준비를 하였다.

그러자 명명주재는 싸늘하게 웃으며 제 이 장을 전개해 냈다.

위중평이 이를 악문 채 응수해 가려고 할 때

갑자기 귓전으로 자상한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그것을 받을 수는 없다. 어서 물러 나거라…"

 

그는 순간 몸이 공중으로 떠올라 이내 산 밑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귓전에는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명명주재의 노기띤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녀석이 방자하게 까분다 했더니 저 중놈을 믿고 그랬구나."

 

위중평은 한 사람에 의해 안긴 채 날으고 있었던 것이다.

허무전이 시야에 사라질 때쯤에서야 지상에 내려졌다.

위중평이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자신을 데리고 온 사람은 바로 백공상인이었다.

순간 위중평은 기쁜 마음을 금치 못하며 소리쳤다.

 

"아이구! 대사님이었군요."

 

백공대사는 가볍게 웃어 보이더니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얘야, 아주 잘했다.

자, 너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어서 그쪽으로 가자꾸나."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며 약 백여 걸음쯤 달려 갔을 때

맞은 편에서부터 한 붉은 인영이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평제!"

 

이렇게 소리친 상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타난 사람은 바로 안미옥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었으며 보기 싫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위중평은 절로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옥누님! 어디가 편찮으신가요?"

 

안미옥은 그의 말을 듣자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조용히 말했다.

 

"평제 때문이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안미옥은 명명주재의 뒤를 추격하며 산을 며칠이나 헤매었으나 명명주재를 찾지 못했다.

다행히도 백공상인을 만나 위중평을 구해 주겠다는 말에 안심을 하고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동안 서로 얘기가 오고가자 안미옥은 백공상인을 향해 물었다.

 

"대사께선 공력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거늘

어째서 명명주재를 처치하지 않으셨습니까?"

 

백공상인은 나지막하게 염불을 외우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노승은 벌써부터 그런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시기가 적당치 못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옥탑단장인의 일과 같이 묶어서 해결해야 한다."

 

말을 끝낸 백공상인은 잠시 멈추더니 말을 이었다.

 

"노승은 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너희들은 먼저 가거라…"

 

그러더니 이내 몸을 날려 사라져 버렸다.

백공상인이 떠나자 위중평과 안미옥도 길을 떠나려 하였다.

이 때 추혼천녀가 전광석화와 같이 나타나서 길 중앙을 가로막았다.

안미옥은 그녀가 명명주재의 딸이라는 것을 안 후로는

완전히 태도가 바뀌어 미간을 찌푸리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무엇 때문에 우리의 길을 막는 것이오?"

 

추혼천녀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우리 "좋아하시는군. 아주 보기좋게 친근한데?"

 

안미옥은 절로 안색이 변하여 검을 들고는 노갈을 터뜨렸다.

추혼천녀 역시 앞으로 한 결음 다가서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왜? 무력을 쓸 생각이냐?"

 

안미옥은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

 

"네가 만약 계속해서 지껄인다면 거침없이 무력을 쓸 것이다."

 

이 때 하나의 작은 인영이 나타나면서 간드러지게 웃더니 애교있게 소리쳤다.

 

"추혼언니! 미옥언니! 모두 이곳에 계셨군요. 참 잘됐어요."

 

나타난 사람은 바로 금루선연이었다.

 

그녀는 가까이 달려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는 안색이 급변하며 급히 물었다.

 

"추혼언니! 왜들 이러시는 거죠?"

 

추혼천녀는 금루선연을 뚫어져라고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금루선연이 사부의 사랑을 가로채 간 것을

몹시 못마땅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미옥은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는 이미 명명주재의 공주가 되었는데 어찌 너를 상대하겠니?"

 

추혼천녀가 갑자기 섬섬옥수를 들어 올리며 안미옥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안미옥 역시 상대가 공격해 오자 거침없이 신공을 끌어올려 응수해 갔다.

두 가닥의 장풍이 정면으로 부딪치자

강한 회오리 바람이 일면서 주변의 작은 돌과 모래 그리고 초목 등이 마구 난무하였다.

추혼천녀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지껄였다.

 

"네가 그늙은 비구니의 잔솜씨를 전개해 내다니, 자! 다시 한 번 받아 보시지."

 

그리고는 제 이 초를 공격해 냈다.

위중평이 잽싸게 뛰어들어 그녀의 장력을 막으면서 소리쳤다.

 

"할 얘기가 있으면 좋게 말로 할 것이지 어찌 무력을 쓰는 것이오?"

 

추혼천녀는 위중평의 말을 듣고는 눈을 밑으로 내리 뜨면서 비꼬는 듯 소리쳤다.

 

"흥! 평제는 상관할 것이 못 되니 잔소리 마세요."

 

그러더니 위중평을 향해 연속 삼 초를 공격해 내 그로 하여금 물러나게 하였다.

금루선연이 부리나케 뛰어들면서 소리쳤다.

 

"왜들 이러시는 거죠? 어째서 이렇게 싸우기만 하냔 말이에요?"

 

추혼천녀는 더욱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왜 이처럼 가슴이 쓰리도록 아프냐?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싸워야겠다…"

 

그러더니 위중평을 향해 연속 일곱 초를 공격해 냈다.

금루선연은 절로 화가 나 냉랭한 코웃음을 치며 추혼천녀의 뒤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추혼천녀 역시 담담한 웃음과 함께 급히 몸을 돌려 눈 깜박할 사이에

금루선연과 다섯 초를 교환했다.

그들 두 사람 모두 옥탑의 절학을 터득하여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였다.

두 사람의 동작은 어찌나 신속한지 누가 누구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위중평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못했으며 반면에 안미옥은 태연하게 서서 웃고만 있었다.

이 때 은색 광채가 번득이더니 요의소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는 우선 안미옥을 바라보더니 신비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그녀는 안색을 바꾸며 노기띤 표정으로 소리쳤다.

 

"전부 멈추어라."

 

추혼천녀는 요의소녀가 나타나자 두 눈이 충혈되면서 금루선연을 향해

재빨리 이 장을 격출해 내고는 요의소녀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요의소녀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요의소녀는 품 속에서 한 폭의 초상화를 꺼내며 위중평을 향해 물었다.

 

"위중평!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위중평은 그것을 보는 순간 급히 엄숙한 표정으로 예를 취했다.

 

"제 팔대 제자 위중평 조사께 문안드립니다."

 

이 일은 금루선연만이 알고 있을 뿐 추혼천녀와 안미옥은 영문도 몰라 어리둥절했다

요의소녀는 위중평이 공손하게 예를 취하자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내 지금 조사를 대표하여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영원히 추혼천녀와는 정을 끊으시오."

 

위중평 역시 순간적으로 너무나 어리둥절했다.

 

"아니 그것은…"

 

그의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요의소녀는 노기띤 음성으로 소리 쳤다.

 

"아니 조사의 명령을 거역할 생각이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것은 조사의 명령이시라 필히 준수해야 할 것이오.

그리고 추혼천녀는 명명주재의 딸이오.

당신은 부친을 죽인 원수의 딸과 내왕을 할 생각이오?"

 

이 말은 마치 예리한 강침과도 같아 그의 가슴을 레뚫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정의가 말할 수 없이 두터운데 그녀를 어찌 외면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때 추혼천녀는 그 그림의 효력을 알아차리고 암암리에 생각했다.

 

'저것만 손아귀에 넣는다면 평제를 꼼짝 못하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요의소녀가 얘기하는 틈을 타 잽싸게 덮쳐갔다

요의소녀는 입으로는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행동이 있을 줄 알고는

미리부터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추혼천녀의 몸이 움직이려고 하자

그녀는 전광석화와 같이 뒤로 다섯 자나 물러나며

신속한 동작으로 그림을 품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추혼천녀와 한바탕 두 번째의 치열한 싸움을 전개했다.

오늘 위중평의 다정한 여자 친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위중평은 절로 조급해졌다.

두 사람이 또 양패구상을 하지 않을까 하고는 더할 수 없이 긴장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말릴 방법이 없었다.

안미옥은 반대로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추혼천녀와 금루선연 앞에서 일종의 자비심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조건으로 보아서 그들 두 사람만은 못했으며

또 접근하는 기회도 비교적 드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요의소녀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녀는 아름다웠고 공력 또한 높았으며 동시에 장백파의 조상까지 지니고 있으니

자신이 목적을 달성하기란 더더욱 어렵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그녀는 내심 절로 걱정한 것이다.

한편 금루선연은 걱정이나 조급함보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천진난만할 뿐 아니라 성격치 강인하여 옥탑단장인에게

당금 무림의 젊은 여자들 중에 추혼언니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공력이 가장 높을 거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그런데 요의소녀가 추혼천녀와 막상막하의 싸움을 전개하자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 때 그들은 싸움하기에 여념이 없어 사방에 많은 마두들이 잠복해 있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명명주재의 속하도 아니었으며 중원무림의 인물들은 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경해신교가 끌어들인 해외의 흉마와 과벽지호가 초빙한 황막교걸들로서

사방에 잠복한 채로 기회만을 노렸다.

그들은 와황금검과 형산홍옥에 대해 군침을 삼켜온 지 하루이틀이 아니었는데

오늘 아침 이곳 선하령에 모이게 된 것이다.

본래 공력을 연마한 사람들은 이목이 특별힌 예민하다.

특히 위중평 일행과 같은 고수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오늘은 제각기 생각하는 것이 있어 사방에 위기가 있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위중평은 추혼천녀와 요의소녀가 점점 더 치열하게 싸우자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는지 두 사람의 중앙을 향해

연속 이 장을 밀어내며 하늘이 무너질 듯 소리쳤다.

 

"누군가가 왔으니 어서들 멈추시오."

 

그는 얼떨결에 아무렇게나 한 얘기였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줄이 야.

추혼천녀와 요의소녀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순간 일진의 괴소가 사방에서부터 들려왔다.

뒤이어 이상한 차림의 사람들이 분분히 나타났다.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은회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뒤에 나타난 사람들은 가죽 옷에 가족 모자를 쓰고 있었다.

두 패의 사람을 합치면 대략 오륙십 명은 넘어 보였다.

이 사람들은 모두가 낯설었지만 위중평은

그 중 두 명인과 과벽지호와 경해신교만은 알아볼 수가 있었다.

두 패의 사람들은 반원형으로 서서 서서히 앞으로 접근해 왔다.

추혼천녀는 다시 냉막한 태도를 지었으나 나타난 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요의소녀는 성미가 급한지라 경해신교 일행을 보자 다짜고짜 덮쳐가려고 했다.

그러나 위중평에 의해 급히 제지당하고 말았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러더니 앞으로 가서 공손히 예를 취하며 물었다.

 

"당신들이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지 오해가 생기기 전에 분명하게 얘기해 주시오."

 

경해신교는 괴소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너는 알면서도 묻는 거냐?

취도의 보물을 네가 다 빼앗아 갔으면서 무슨 잔소리가 많으냐?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좋지 못할 줄 알아라."

 

위중평은 이 말을 듣고는 태연자약하게 웃었다.

 

"도대체 무엇을 내놓으라는 것이오?"

 

"만약 와황금검, 형산홍옥 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당장 너의 가죽을 산 채로 벗겨 버리겠다."

 

위중평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그 두 가지 물건은 모두 나의 품에 있지만

당신들 손에 넘어가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오."

 

경해신교는 성격이 매우 악독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달려들려 했다.

그러자 과벽지호가 앞으로 한 발 다가서면서 잽싸게 그를 막았다.

 

"잠깐!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두 가지 보물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겠소?

그러니 나중에라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합작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

 

경해신교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귀하는 어떻게 합작을 하자는 것이오?"

 

과벽지호는 수염을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간사스럽게 웃어댔다.

 

"으흐흐흐… 될 수 있으면 반씩 나누기로 하되

정 그러고 싶지 않다면 힘을 합쳐 뺏은 후 공력을 비교해서 주인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소?"

 

경해신교는 어이가 없는 듯 폭갈을 터뜨렸다.

 

"닥쳐라!"

 

그러더니 다짜고짜 과벽지호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과벽지호는 그가 이렇게 공격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다가

본능적으로 쌍장을 밀어내 응수해 갔다.

거센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은 각기 두 걸음씩 물러났다.

경해신교는 눈을 부릅뜨며 재차 소리쳤다.

 

"정 자신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받아 보아라."

 

그러고는 연속 이 장을 격출해 냈다.

과벽지호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내공을 끌어 올려 이 장을 받아냈다.

이 때 경해신교 측에서 두 명이 달려나오더니 극구 만류했다.

 

"물건이 아직 수중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서로 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힘을 합해서 저녀석이나 먼저 처치해 버립시다."

 

경해신교는 이 말에 과벽지호를 포기하고 위중평을 향해 하늘이 무너질 듯 소리쳤다.

 

"어서 내놓지 못하겠느냐?"

 

위중평은 담담하게 웃었다.

 

"좋소. 가지고 가시오."

 

그러더니 경천동지의 내가 장력을 밀어내 공격해 들어갔다.

그는 단번에 십 성의 공력을 주입시킨 것이다.

경해신교는 장풍이 엄습해 오는 것을 보자 일 장을 밀어내 응수했다.

거센 굉음과 함께 승부는 즉시 가려졌다.

경해신교는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비틀거리며 물러나더니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냈다.

일순 구토를 느끼게 하는 악취가 주위에 풍겼다.

안미옥 등 세 여자는 급히 코를 막으면서 뒤로 석 자나 물러났다.

그러나 추혼천녀는 그 자리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황막군마들도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중 세 명의 노인이 달려나오며,

 

"매우 악랄한 수단이구나."

 

하고 음험하게 소리치고는 서서히 앞으로 육박해 왔다.

금루선연은 세 노인이 나오자 즉시 뛰어나와 그들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금루선연이 발동을 걸자 안미옥과 요의소녀도 전광걱화와 같이 덮쳐 들어갔다.

순간 처절한 비명 소可와 함께 세 노인은 선혈을 토하면서 앞뒤로 마구 쓰러졌다.

순간 요의소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냉소를 쳤다.

 

"누구튼지 자신이 있으떤 서슴지 말고 덤벼라!"

 

세 여인이 손을 쓰자바자 각기 한 노인을 쓰러뜨리자

군마들은 순식간에 좌충우돌하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먼저 덤벼 들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더니 군마들은 서서히 육박해 들어왔다. 분위기는 더할 수 없이 긴장되었다.

그저 누구든 일단 공격을 하게 되면 일대의 혈투가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 긴장의 순간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추혼천녀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더니

군마들 사이로 잽싸게 들어갔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서너 명이 한꺼번에 죽어갔다.

추혼천녀는 자기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자

울분을 참지 못해 발산이라도 시키려는 듯 양 손을 쉬지 않고 흔들면서 살수를 전개해 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군마들은 즉시 흩어졌으며 비명 소리는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이어서 요의소녀와 금루선연 그리고 안미옥도 일제히 군마들을 향해 무섭게 덮쳐갔다.

이들 네 명의 여자는 군마들을 상대하면서도 경쟁의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누가 많이 죽이는지 비교를 하려는 듯 일대 도살을 전개했다.

이로 인하여 보물을 노리고 온 해상의 악도들은 크게 손해를 입었다.

순식간에 인명 피해만 입고 만 것이다.

순간 위중평은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는 이 흉마들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다만 번뇌로 가득차 있을 뿐이었다.

추혼천녀가 갑자기 명명주재의 딸이 되어 버린 것이 첫 번째의 번뇌이며

요의소녀와 추혼천녀가 적대시하는 상황이 그의 두 번째의 번뇌인 것이다.

추혼천녀의 본 마음은 조금도 나쁘지가 않았다.

그녀는 위중평에 대해 수많은 은혜를 내렸으며 정감 또한 없다고는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우의를 초월한 미묘한 감정인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그녀를 자극시킬 수는 없었다.

만약 자극시켰다가는 명명주재에게 유력한 조수를 안겨다 주는 결과를 낳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의소녀도 수차에 걸쳐 자신을 도와 주었다.

기록 내력은 알 수가 없었으나 친구인 것만은 분명하다.

거기에다 조사의 초상까지 들고 있으니 추혼천녀와의 오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안미옥의 문제는 비교적 간단했지만 그것도 역시 사전에 일을 분명하게 해야만 한다…

그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느라고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 대해서는

전혀 주의를 하지 않았다.

상황은 크게 바뀌어져 있었다.

남은 이십여 명의 고수들은 네 명의 여자를 포위하여 치열한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위중평은 즉시 손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네 여자의 공력은 자신에 비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또 그들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지라

그저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위중평은 누군가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붉은색 가사를 입은 몸집이 비대하고 위엄있게 생긴 세 명의 라마였다.

그들의 신법은 더할 수 없이 신속하여 순식간에 위중평 앞에 도착했다.

그 중 표정이 장엄한 라마가 위중평을 향해 가볍게 예를 취하면서

서투른 한어로 말문을 열었다.

 

"소시주가 바로 강호에서 유명한 고보교룡 위중평이오?"

 

그 소리에 위중평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마는 다시 말을 이었다.

 

"빈승은 변경 용반사의 장문인 격서올시다.

듣자하니 소시주께선 취도의 와황금검을 얻으셨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인가?"

위중평은 절로 미간을 찌푸린 채 내심 생각했다.

 

'이 자도 분명 금검 때문에 온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렇소. 사실이오."

 

격서승은 극히 평화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빈승, 무례한 줄은 알고 있지만 위시주께선

빈승들에게 한 번만 보여 주지 않으시겠소?"

 

순간 위중평은 우물쭈물했다.

 

"그것은…"

 

이 때 장중에서부터 간드러진 웃음 소리와 함께 금빛이 번득이더니

이어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간 땅이 피로 물드는 가운데 대여섯 명이 쓰러졌다.

네 여자를 포위하고 있던 군마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눈 깜박할 사이에 한 명도 남김없이 도망가 버렸다.

금루선연이 와황금검을 꺼내 전개해서는 순간

세 명의 라마가 목에 힘을 주며 동시에 소리쳤다.

 

"와창금검!"

 

네 명의 여자는 이미 위중평의 옆으로와 있었다.

그녀들은 경의스러운 표정으로 세 명의 라마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위중평은 네 여자의 의견을 묻는 척하며 금루선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세 분 대사께선 의황금검을 빌려보고 싶다는군요?"

 

추혼천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모두들 엉큼한 마음을 먹고 있으니 절대 빌려주지 말아요.

그리고 자신이 있다면 직접 빼앗아 가도록 하시오."

 

격서가 염불을 외우면서 정중하게 말을 받았다.

 

"여보살께선 말을 너무 함부로 하지 마시오.

그 금검은 본사의 여와랑랑 수중의 법기였는데 도난당했다가

시주들의 손에서 발견한 것이오.

본사는 최대의 대가를 치루어 줄 것이며 시주들의 통촉을 바랄 뿐이오."

 

추혼천녀는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으하하하… 닥치시오.

이 검은 본래 이궁 주인의 유물로서 위소협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취도에서 얻어온 것이오.

그런데 어찌 당신네들 것이란 말이오.

내가 분명히 말해 두겠지만 그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절대 바꾸지 않겠소."

 

순간 격서는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위중평을 바라보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시주, 어떻게 관용을 베풀 수가 없겠소?"

 

위중평이 채 대답도 하기 전에 금루선연이 튀어나와 하늘이 무너질 듯 소리쳤다.

 

"잔소리 그만 하고 어서들 떠나시오.

목숨을 내걸고 얻어온 것을 무엇 때문에 당신네들에게 바꿔줘야 한단 말입니까?"

 

격서는 말로선 쉽게 타협이 될 것 같지 않자

음험하게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흥!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는 짓을 나무라지 마시오."

 

이 때 요의소녀가 앞으로 달려나오며 소리쳤다.

 

"그럼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세 명의 라마는 각기 공력을 끌어올려 전진해 갔다.

위중평은 한쪽에 서서 냉정하게 세 라마를 지켜 보았다.

그 들의 안정된 표정과 자세로 보아 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금루선연은 와황금검을 쥔 채 세 라마를 심심히 노려보았고 추혼천녀는 여전히 냉막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양 손에는 십 성의 공력을 주입시켰다.

그러자 요의소녀와 안미옥도 내력늘 끌머올렸다.

주위의 공기는더할 수 없이 긴장되어 갔다.

일대의 혈전이 벌어지려는 찰나 한 인영이 유연한 동작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 사람은 공력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듯했으나 적인지 아닌지

그 누구도 감히 정신을 흐뜨려 주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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