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양패구상
옥탑단장인과 검은 인영은 두 가닥의 검은 선이 되어 절벽 위로 곧장 떠올랐다.
금루선연은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소리쳤다.
"이모, 이모가 위험해…"
앞서 달리던 검은 인영은 공중에서부터 몸을 한 바퀴 돌려 방향을 획! 바꾸더니
아래로 덮쳐오면서 이 초를 공격해 냈다.
옥탑단장인은 대경실색하여 쌍장을 휘둘러 응수했으며 이와 동시에 절벽에서 떨어져
일 장이나 멀리 물러났다.
이 틈을 탄 검은 인영은 몸을 돌려 단숨에 절벽 위로 올라갔다.
옥탑단장인 또한 몸을 공중에 띄운 채 두 다리를 휘저어 눈 깜박할 사이에 절벽 위에 도착했다.
이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두 사람은 별 차이 없이 절벽 위에 도착했다.
옥탑단장인은 몹시 화가 나서 올라서자마자 검은 인영을 향해 덮쳐갔다.
검은 인영의 공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렬해 옥탑단장인의 맹렬한 공격을 가볍게 피하더니
손과 발을 움직이며 무엇인가 말을 하는 듯했다.
옥탑단장인은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순간
아무 말없이 몸을 돌려 유성과 같이 단장곡 내로 돌아왔다.
위중평과 금루선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금루선연은 토끼처럼 뛰어 옥탄단장인의 앞으로 가더니 천진스럽게 애교를 떨었다.
"이모! 저 검은 인영은 누구예요? 보아하니 공력이 상당한 것 같아요."
옥탑단장인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더니
그녀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위중평을 쳐다보며 날카롭게 외쳤다.
"너와 명명주재와의 약속은 이미 기한을 변경했으니 참가하지 말아라.
그리고 너희들 사이의 은원은 너희들이 해결하고 지금 당장 선연과 같이 계곡을 떠나도록 해라.
나는 따로 그 늙은 것을 찾아서 해결하겠다…"
금루선연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소리쳤다.
"이모님!"
그러나 옥탑단장인은 몸을 날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위중평과 금루선연은 그 자리에 넋을 잃고 말았다
위중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금루선연은 자상하게 위중평을 위로했다.
"그분의 성격은 원래 그러니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평오빠와 명명주재 사이의 원한에 대해서는 결코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예요."
위중평은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내 일은 내가 직접 해결할 것이며 그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가 않소.
내가 그를 찾아온 것은 허무전의 소재를 확실히 알기 위함이지 도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오."
금루선연은 그의 팔에 매달리면서 위로했다.
"저는 평오빠가 이 일에 대해서 매우 조급해 하시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성급하게 생각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저도 아버지의 원수를 하루 빨리 해결하고 싶지만 이렇게 조용히 진행시키고 있잖아요.
이후 우리가 힘을 합쳐 강호에 나간다면 충분히 마두들을 소탕시키고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후에…"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절로 말꼬리를 흐리고 두 볼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위중평은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탄식을 터뜨렸다.
"우리의 앞길은 위기로 가득 차 있소.
그리고 모든 일이 우리의 생각대로 될 수 있을지 또한 단언하기가 어렵소.
그러나 어찌 되었건 나는 일신의 있는 힘을 다해 군마들과 끝까지 상대할 것이오."
그는 강호에 나온 이래 이렇게 일이 어렵다고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얼마 전에 보았던 검은 인영의 공력과 그 신비의 인물 그리고 명명주재의 실력을 생각하게 되자
그는 모든 일이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을 의식했다.
하지만 절대로 의기소침되지는 않았다.
금루선연은 공손히 말을 받았다.
"명명주재의 세력이 비록 강하기는 하지만
우리도 화산, 장백 두 문파와 신가보의 힘을 빌릴 수 있어요.
다만 어떻게 착수하느냐가 문제지요."
위중평은 묵묵히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우선 먼저 수월암주를 찾아가야 할 것 같소.
신니께선 소식에 가장 영통하시어 아마 명명주재의 허무전이 어디쯤 설치되어 있는지
훤히 알 것이오.
그런 다음에 화산으로 가서 허청 사형과 상의하기로 합시다."
긍루선연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하지만 저는 우선 신가보로 가 보아야겠어요.
우리는 나중에 화산에서 만나기로 하지요."
서로의 얘기가 끝나자 두 사람은 즉시 헤어졌다.
위중평은 금루선연이 신가보로 돌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수월암으로 달려갔다.
위중평은 내심 쓸쓸함과 착잡한 심정으로 여러 가지 의문나는 점을 곰곰이 생각했다.
'옥탄단장인이 무엇 때문에 명명주재와의 약속을 취소한 것일까?
그리고 추혼천녀는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 증오하는 것일까?'
위중평은 이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한꺼번에 연결시켜 가상을 해보았다.
첫째 옥탑단장인이 추격했던 그 검은 인영이 바로 명명주재이거나 아니면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한 명일 것이다.
그리고 명명주재에게 볼일이 있기 때문에 약속 시간을 임시로 바꾼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둘째로 추혼천녀는 옥탑단장인에 의해 최워졌으며 공력이나 인품
그리고 성격까지도 옥탑단장인과 똑같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옥탑단장인이 추혼천녀를 죽이고 싶도록 싫어하다니
거기에는 필시 주관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거나 아니면 추혼천녀의
신세와도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그는 갑자기 또 한 가지 문제가 떠올랐다.
'소요공자는 어째서 추혼천녀가 자기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화산파 화악묘에서 십삼표상객이 어째서 그녀에게 궁주라고 칭하며
그렇게도 공손하게 대하는 것일까?
혹시 그녀는 명명주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분명 옥탑단장인이 과거에 명명주재와 알았던 사이일 것이라고 느껴졌다.
또 그는 명명주재가 자신에 대해서 적대시하는 문제를 연관시키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인 신주검성과 옥탑단장인 그리고 명명주재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갈등이나
복잡한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럼 그들 사이의 문제도 그 여자의 문제가 분명할 것이다.
위중평은 근래에 와서 여자 문제로 많은 번뇌를 느끼고 있는지라
자신의 판단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가볍게 탄식을 터뜨렸다.
"자고로 남녀간의 문제는 한을 남기는 것…
상인배의 사람들이 전멸을 받았으니 위중평 너만은 이 일에 대해서 분명히 처리해야 한다.
네가 만약 이 문제를 선처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엄중할 것이다."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냉랭한 음성이 잽싸게 말을 받았다.
"흥! 이제야 알겠느냐?
내가 벌써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 사이의 결과는 엄중할 것이라고…"
위중평이 대경실색하여 돌아서자 추혼천녀가 길 중앙에 버티고 서 있었다.
위중평은 급히 다가서며 친절하게 말했다.
"추혼누님!"
"너무 그렇게 친한 척하지 마라.
오늘 우리 둘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위중평은 토끼눈을 뜨며 잽싸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우선 이것이 뭔지 좀 보시지."
이렇게 소리친 추혼천녀는 갑자기 품 속에서 자선을 꺼내 들더니
위중평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가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여자와 어울리는 것 만으로도 인격이 떨어지는 일이거늘
이 귀중한 물건까지 그녀에게 주다니…
너는 이것이 누구의 것인 줄이나 아느냐? 어서 말해 보아라.
이 파렴치한 인간아… 내 오늘 자선백부를 위해 너를 죽여 버리고야 말겠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날려오면서 자선을 휘둘러 위중평의 기문현기 장대 칠감 등
일곱 군데의 사혈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ol자선은 온랑자가 위중평의 몸에서 훔쳐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추혼천녀의 수중에 들어간 것일까?
위중평은 그녀가 변명할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공격해 오자
잽싸게 다섯 자나 피하면서 소리쳤다.
"잠깐만… 멈추시오. 나에게도 얘기할 시간을 줘야 할 것이 아니오?"
추혼천녀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사실이 분명한데 또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내 너에게 묻겠는데 네가 절벽 위에서 떨어진 후 누가 너를 구해 주었느냐?
그리고 옥탑공력은 어디서 터득한 것이냐?
너는 비록 정식으로 사부를 섬기지 않았지만 이 자선은 바로 의기의 대표이다.
만약 네가 이것을 안미옥이나 금루선연에게 정표로 주었다면 그런대로 용서할 수 있겠지만
음탕한 마녀에게 주어 악을 행하게 하다니.
너는 도대체 무엇이냐? 택양분양대법(宅陽分陽大法)을 전개하려고 할 때부터
나는 이미 두 가지의 길을 정했다.
너를 죽인 후에 자결하거나 아니면 같이 죽는 것, 이 두 길뿐이다."
이렇게 말한 그녀는 다시 자선을 휘두르며 공격해 들어왔다.
위중평은 연속 칠 초나 피하면서 급히 변명했다.
"내 말 좀 들으시오. 우리가 그 온랑자를 잡아다가 물어 보면 될 것 아니오.
만약 내가 정말 그런 일을 했다면 기꺼이 죽어줄 용의가 있소…"
추혼천녀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
광풍폭우와 같이 공격해 오면서 미친 듯이 웃어제쳤다.
"하하하… 이 일은 그녀의 입을 통해서 안 것이다.
왜 가슴이 찔리느냐?
지금 그녀는 이미 염라대왕 앞으로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녀와 대면하고 싶다면 우리 함께 염라대왕 앞에 가서 하기로 하자. 호호호…"
위중평은 내심 급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화가 치밀어오기도 했다.
그는 추혼천녀의 입을 통해 백공상인이 과거의 자선마군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을 그렇게도 아껴주고 도와 주었는데 아껴준 보람도 없이 실수로 인하여
이러한 일이 벌어졌으니 무슨 면목으로 그를 대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다 추혼천녀와 같은 극단적인 사람을 만나 변명할 여지조차 갖지 못하자
황급히 이 장을 격출해 냈다.
그는 근래에 들어 내공이 크게 증강되어 있는지라
장력이 격출됨과 동시에 추혼천녀는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이 틈에 위중평은 뒤로 다섯 자나 물러나며 침통하게 소리쳤다.
"추혼누님! 저는 누님께서 요 근래에 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나를 죽여서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저를 서슴없이 죽이십시오.
저는 절대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에 누님께서 저의 생명을 구해 주신 적이 있으니
이 기회에 돌려 드리는 것도 괜찮겠지요.
그러나 한 가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선은 그녀가 훔쳐간 것이며 나하 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추혼천녀는 그의 장력에 의해 뒤로 물러나자
더욱 노기충천하여 성난 사자와 같이 무섭게 공격해 들어왔다.
그러나 위중평이 피하기는커녕 미친 사람처럼 장탄식을 터뜨리며
조용히 눈을 감자 추혼천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거두면서 날카롭게 물었다.
"뭐하는 짓이냐?"
위중평은 탄식을 터뜨렸다.
"자, 서슴지 마시고 손을 쓰십시오.
나를 죽여야 속이 시원하다면 기꺼이 죽어 드리지요."
그러더니 서서히 두 눈을 감았다.
추혼천녀의 전신이 사사나무 떨 듯 심하게 떨리더니
급기야 손을 들어 위중평의 뺨을 후려갈겼다.
위중평이 조금도 피하지 않고 순순히 얻어 맞자 오른쪽 뺨이 즉시 부어 올라왔다.
추혼천녀는 위중평을 바라본 채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나
두 눈에는 어느덧 이슬같이 맺혀 있었다.
위중평은 여전히 두 눈을 감은 채 제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녀가 죽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얼마간 무거운 침묵이 흐르자 추혼천녀의 얼룩진 얼굴은 갑자기 급변했다.
어떠한 결단을 내렸다는 표시였다.
추혼천녀는 미친 듯이 웃으면서 소리쳤다.
"호호호… 가자, 우리 함께 염라대왕에게 가자."
그러더니 재빨리 자선을 펼쳐 위중평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순간 위중평의 얼굴에는 가벼운 경련이 일어났으나 더할 수 없이 태연했다.
거센 회오리 바람이 위중평의 전신을 강타하려는 위기의 순간 어떻게 된 일일까?
한 가닥의 오색찬란한 광채가 번득이는가 싶더니
추혼천녀가 전개해 낸 거센 장력이 무형으로 화해되어 버렸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추혼천녀의 안색은 급변했고 심한 격동에 전신이 가볍게 떨렸다.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치했는데 생사의 결투가 벌어질 듯했다.
위중평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급히 눈을 뜨고는 소리쳤다.
"그만들 하시오. 모두 자기편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두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추혼천녀는 자선을 위중평의 앞으로 던져주며 날카롭게 외쳤다.
"상관하지 마라."
그러더니 몸을 날려 요의소녀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요의소녀 역시 간드러진 고함 소리와 함께 쌍장을 밀어내 응수했다.
일순 흉험하기 비할 데 없는 결투가 벌어졌다.
위중평은 표정으로 지켜 보았을 뿐 잠시 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쌍방은 모두 자신의 친구이며 누가 상한다 해도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혼천녀와 요의소녀는 기괴하고 오묘한 초식을 전개해 냈으며
위중평은 이 생전 보지도 못한 초식에 현혹되었다.
추혼천녀의 공력은 옥탑단장인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해 그런대로 알아볼 수가 있었지만
요의소녀의 공력은 중원무림 각파의 공력과는 크게 달라 괴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백여 초나 교환했으나
그 누구도 우세를 차지하지 못했고 열세엔 더더욱 몰리지 않았다.
위중평은 두 사람의 공력이 각기 특이한 장기를 가지고 있어 만약 시간이 지체되면
양패구상의 장면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돼 앞으로 달려들면서 소리쳤다.
"그만 싸움을 정지하시오."
이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중앙으로 일 장을 무섭게 내려쳤다.
그러자 거센 회오리 바람과 함께 두 여자는 즉시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위중평이 생각했던 것만치는 아니었다.
추혼천녀는 냉랭하게 웃었다.
"호호호… 우리가 싸우는데 무엇 때문에 네가 개입하는 거냐?"
그러더니 쌍장을 휘둘러 일 장을 밀어냈다.
위중평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소리쳤다.
"정말 미쳤소. 왜 이렇게 경우없는 짓을 하는 거요?"
추혼천녀가 대답도 채 하기 전에 요의소녀는 등 뒤에서부터 공격해 들어와
다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위중평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면서 몸을 돌려 생각했다.
'흥! 너희들이 그까짓 공력을 믿고 싸우는데 어디 한 번 싸워 봐라.
누가 죽든지 간에 내가 상관할 게 무엇이냐?'
몇 걸음을 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며 생각했다.
'이대로 갈 수는 없어. 어찌 되었건 나로 인하여 싸우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떠났다가 정말 참사가 일어날 경우에는 큰일이 아닌가?'
그는 다시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의 싸움이 더욱더 치열해지자
위중평은 어느 쪽이든 실수를 한다면 즉시에 구할 수 있게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았다.
일순 두 사람의 동작은 점점 느려졌으며 추혼천녀의 차갑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갔다.
그녀는 여태까지 자신이 출도한 중에 요의소녀 같이 무서운 적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요의소녀 역시 위중평과 지대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유독 사랑만은 양보라는 것이 없으며 가장 사사로운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특히 추혼천녀 같이 극단적으로 빠지기 쉬운 여자에겐 더욱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순간 추혼천녀의 얼굴에는 살기가 스쳐갔다.
돌연, 장세를 바꾸는가 싶더니 쌍장을 교차 시키면서 소혼마장을 전개해 냈다.
다음 순간 괴이한 소리가 들리며 거센 장력이 요의소녀를 향해 휘감아갔다.
위중평은 안색이 급던하여 급히 소리쳤다.
"낭자! 어서 피하시오. 그것은 소혼마장이오…"
그의 이러한 소리는 조급하고도 관심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추혼천녀로 하여금 더욱 적의를 갖게 하였다.
요의소녀는 그의 말을 듣고도 피하기는커녕 앵두같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괴이한 음률을 발해냈다.
이와 동시에 전광석화와 같이 몸을 날려 추혼천녀를 공격했다.
그녀의 양 손에서 우유빛 경기가 발해졌다.
그러나 이내 김빠진 풍선과 같이 두서너 번 심하게 흔들리더니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추혼천녀는 미친 듯한 웃음을 발했다. 자신의 승리를 자랑하듯 했다.
그러나 반쯤 웃어댄 그녀 역시 그 자리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싸움은 이것으로서 일단 끝났고, 분위기는 죽은 듯이고 요하기만 했다.
절정의 고수인 젊은 소녀들은 예상했던대로 양패구상을 하고 쓰러진 것이다.
추혼천녀가 소혼마장을 전개해 낼 때부터 요의소녀가 우유빛 경기를 발해 낼 때까지
그것은 극히 짧은 순간이었으며 위중평이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두 사람은 앞뒤로 쓰러진 것이다.
위중평은 이 사람 저 사람을 쓰다듬으며 잠시 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못했다.
추혼천녀의 얼굴은 더할 수 없이 붉어졌으며 불처럼 뜨거운 몸에 심장은 심하게 뛰고 있었으나
완전히 인사불성이었다.
반면에 요의소녀의 맥박은 말할 수 없이 약했으며 전신이 차가울뿐만 아니라 한 가닥의 미약한
호흡만이 코를 통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위중평은 어쩔 수 없이 두 알의 용호구환단을 꺼내
요의소녀에게 재빨리 복용시켰다.
이 때 등 뒤에서부터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중평은 본능적으로 잽싸게 공력을 끌어올려 만약을 대비했다.
'무협지 > 무흔검(無痕劍)'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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