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39. 화산의 격전

오늘의 쉼터 2014. 6. 20. 17:14

39. 화산의 격전 

 

 

 

위중평은 협공을 당하는 순간에 인영이 물건을 던져오자

급히 다시 몸을 이 장 높이로 솟구쳐 품 속에 집어 넣었다.

이 때 아래는 여섯 명의 흑의인이 쌍장에다 경기를 잔뜩 주입시킨 채 기다리고 있었다.

위중평이 만약 땅에 내려선다면 여섯 명도 한꺼번에 장력을 내뻗을 것이기에

맹렬하게 허공으로 아홉 자 가량 솟아 오른쪽으로 피해 나갔다.

여섯 흑의인은 그의 신기한 경공에 약간 멈칫하더니 다시 덮쳐왔다.

그러나 위중평은 장력을 마치 광풍노도처럼 떠밀었다.

장풍이 밀려오자

그들은 각자 흩어져 또다시 양쪽으로 접근했으나 함부로 덤비지는 못했다.

위중평은 아까 품 속에 넣은 그 쪽지를 읽는데 급하여 오른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그 세 흑의인을 향해 일 장을 내밀었다.

순간 광풍노도와 같은 거센 장력이 마치 산을 무너뜨릴 듯 바람을 가를 듯 밀려갔고

흑의인들은 소규화의 심후한 내력에 흠칫 놀라며 몸을 날려 피했다.

위중평은 다시 몸을 날려 여섯 초를 시전해 내었다.

왼쪽에 있던 세 사람이 깜짝 놀라 피해 내었을 땐

이미 하늘을 가로지르며 저만치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여섯 흑의인은 넋이 빠진 듯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몸을 날려 묘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위중평은 흑의인의 포위망을 벗어나자

즉시 품 속의 쪽지를 꺼내보았다.

하늘의 별빛을 빌려 읽어 보니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 있었다.

 

<이곳은 단 시간 내엔 변화가 없을 테니 빨리 화산으로 돌아가 보세요. 늦으면 큰일입니다.>

 

필적은 매우 깨끗하고 수려했으나 누가 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위중평은 암암리에 생각을 굴렸다.

'화산파는 이미 지난날 나의 일로 명명주재의 비위를 건드렸다. 그러므로 이번 군웅들을 요청하는 이 순간을 이용해 화산파를 전멸시킬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그 흑의인이 절대 아무 일도 없는데 이 쪽지를 보내올 리가 없지…'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절정의 경공신법을 전개해 화산으로 달려 갔다.

얼마 후, 위중평은 어느 산골짜기로 들어서게 되었다.

갑자기 괴이한 기합 소리가 하늘을 가르며 들려 오더니 한 개의 인영이 독수리처럼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라!"

위중평이 그 소리에 급히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니 앞을 막은 사람은 높다란 매부리 코에 번들거리는 가재 눈, 몸에는 확 끼는 갈색 장포를 입은 매우 오만하게 생긴 노인이었다.

위중평은 한시라도 빨리 화산으로 가야 하는 때에 길이 막히자 크게 화가 치밀었다.

"당신은 누구요? 남의 앞을 가로막고 어쩔 셈이오?"

노인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날렸다.

"노부는 바로 삼음표묘객(三陰標渺客)이다. 너는 어느 개방의 문하이길래 이렇듯 무례하냐?"

위중평은 암암리에 생각을 굴렸다.

'음, 그러고 보니 네가 바로 명명주재의 부하 열 세 표묘객이로구나. 얼마나 큰 위력이 있는지 한 번 보아야겠다.'

위중평이 이렇게 마음을 먹자 태도도 확 변했다.

"내가 누구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속히 비켜 주지 않으면 내가 널 지옥으로 보내줄 것이다."

십삼표묘객은 그 지위와 무공은 극히 높았다.

이들은 또 구양사음(九陽四陰)으로 호칭하는데 아홉 사람은 구양이고, 뒤의 네 사람은 사음으로 그 이름이 태음(太陰) 소음(少陰),삼음(三陰), 오음(五陰)이다.

더욱이 각기 독특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 자들로써 특별한 일 외에는 절대로 선발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워낙 큰일이라 사음을 내보낸 것이었다.

노인은 상대가 표묘객이라는 이름만 대어도 그를 겁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놀라기는커녕 자기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화가 치민 나머지 마구 욕설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이놈,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삼음표묘객이 소매를 휘두르자 한 가닥의 역도가 파도처럼 밀려 나왔다.

위중평도 동시에 한 줄기 광양하기 비할 데 없는 장기로 응수해 갔다.

장력이 서로 맞부딪치자 번개같은 폭음이 터지며 두 사람은 서로 한 발자국씩 물러났다.

삼음표묘객은 몹시 대노하여 외쳤다.

"네놈은 도대체 어느 문파이냐? 노규화는 절대 너같은 자를 배출시킬 능력이 없다."

위중평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급히 소리쳤다.

"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는 없다. 목숨이 아깝거든 어서 물러서라."

폭갈과 함께 천룡장법을 연속 세 초나 공격해 내었다.

그러나 삼음표묘객도 표묘장법으로 대적해 왔다.

"꽝!"

커다란 폭음과 함께 삼음표묘객은 놀란 뱀처럼 주루루 밀려나며 얼굴을 가득 일그러뜨렸다.

"노부는 너에게 진 것을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명명주재께선 널 기필코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문파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낼 수 있으니 어디 두고 보아라."

위중평은 커다랗게 웃어 젖혔다.

"으하하하… 너무 그렇게 큰소리 칠 건 없다. 내 언젠가는 명명주재와 사생결단을 내고 말 것이니까."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는 숲 사이를 뚫고 이미 육칠 장 밖에 나가 있었다. 그 신법이 매우 빠르고 자세 또한 미묘해 삼음표묘객은 매우 놀라운 반면 한심스럽기조차 했다.

한편 위중평은 전력을 다해 수도원 문이 보이는 앞까지 당도했다. 그가 더욱 걸음을 빨리해 전 안으로 들어섰을 때 정세가 좀 이상했다.

어째서 전관에 불빛 하나 없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기만 할까?

위중평은 화산에서 삼 년 동안 공부를 했기 때문에 선사(禪事)와 신좌(神座) 등에는 유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암흑 속에 잠긴 채 불빛 하나 없으니 이 어찌 해괴한일이 아니겠는가?

위중평은 내심 이상하게 생각되어 몸을 숨겨 살펴보았지만 싸웠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사형께서 미리 정보를 얻고 암암리에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위중평이 한참을 고심하고 있을 때 돌연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위중평이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몇 개의 인영이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난 사람들의 옷맵시를 채 판별하기도 전에 두 봉우리에서 몇 개의 인영이 다시 내려서고 있었다.

나타난 인물들이 모두 심후하고 경공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때 수도원 사방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그러나 도원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도원이 이처럼 고요한 현상은 오히려 나타난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선뜻 나서서 행동을 하는 자가 없었다.

이 때 하나의 인영이 바람을 가르며 달려오더니 크게 소리쳤다.

"자, 시각이 다 되었으니 빨리 손을 써라. 명명주재께선 닭 한 마리도 남기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담과 대전 위를 향해 벌떼처럼 달려갔다. 연이써 적막을 깨는 참혹한 비명 소리와 함께 담을 올라가던 사람들이 마치 실이 끊어진 연처럼 한꺼번에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땡, 땡, 땡!"

일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수도원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육중한 산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리는가 싶더니 수많은 도사들이 우르르 밀려 나왔다.

이 때 청허도장은 한 명의 젊은 도사와 함께 관 내에서부터 걸어나왔다.

그리고 화양십이도는 장검을 품에 안고 양쪽으로 쭉 섰다.

위중평은 젊은 도사에게 눈길이 멎자 많이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누구인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수도원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화산파에는 나 외에는 이런 청년이 절대로 없을 텐데 대체 저자는 누구란 말인가…'

화산파가 이런 웅후한 기세로 나오자 침입한 사람들은 깜짝 놀라 전부 산문 앞에 모여 섰다

청허도장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수문도원은 매우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며 또 명명주재와도 한 번도 충돌이 없었는데 어째서 자꾸 와서 소란을 피우는 거냐?"

그러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나서서 냉소를 날렸다.

"이 방자한 늙은이, 감히 명명주재의 구사옥부를 어기다니 오늘 밤 화산파의 가축 한 마리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청허도장은 몹시 가소롭다는 듯 고개를 쳐들고 웃었다.

"하하하… 아마 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

이 말에는 조금의 과장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만약 목전의 각 문파의 실력으로 논한다면 화산파는 그들 중 제일 우두머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사옥부를 받은 후 청허도장은 즉시 명령을 전달했다.

행동하고 있는 모든 동문 제자들을 불러 명명주재와 전력으로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흑의인이 사악한 눈을 번득이며 소리쳤다.

"오냐, 오늘 밤 화산파는 전멸을 스스로 자초했다. 만약 반항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더욱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말을 끝내고 돌아서서 손을 내저었다.

"올라가라."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혹의인 둘이 청허도장을 향해 덮쳐 갔다.

"자, 무기를 뽑아라, 내 너에게 화산파의 검맛을 보여 주겠다."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나온 자는 청허도장의 사제 옥청(玉靑)이었다. 흑의인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두 가닥의 장풍을 격출해 내었으나 옥청도장이 장검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자 마치 모래 속으로 물이 스미듯 사라졌다.

장풍과 검풍… 그리고 뒤따르는 비명… 어느덧 동녘 하늘에서 희뿌연 여명이 뜨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육박해 오자 흑의인은 크게 소리쳤다.

"모두 한꺼번에 덤벼라. 빨리 해치워야겠다."

그러자 폭갈과 함께 이십여 명의 흑의인이 무기를 뽑아 앞으로 달려갔다.

이 때 청허도장이 목청을 돋구어 무량수불을 외치자 화산파의 젊은 제자들은 장검을 뽑아들고 그들을 마중해 갔다.

다시 전 내에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싸움이 벌어졌다.

혼전의 장내에서 아직 손을 쓰고 있지 않는 사람은 우두머리인 흑의인, 그리고 청허도장 또 젊은 도사뿐이었다.

한편 위중평은 어둠 속에 소리없이 잠복해서 정세를 살폈다.

이 때 화산파의 도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검법은 바로 현구록에 기재되어 있는 구령검법(九靈劍法)이었다.

그것과 동시에 위중평이 새로 발견한 것은 화산파가 하나의 특이한 검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어느 상황 아래서도 두 명 이상의 도사가 있다면 즉시 공격을 연합할 수 있다는 것인데 공격의 부족함을 유리하게 보충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흑의인들의 공격이 이런 상황 아래서는 도무지 성과를 얻을 수가 없었다. 한편 위중평은 우주광인 등이 걱정되어 암암리에 중얼거렸다.

"만약 이대로 나간다면 화산파는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옥묘로 다시 돌아가야지 않을까…"

그 때 봉우리 위에서 커다란 기합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두 개의 갈색 인영이 장내로 달려왔다.

두 인영이 내려서자,

"으악!"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화산도인들이 공처럼 허공으로 붕, 날자 청허도장의 신변에 있던 청년도사가 맹렬하게 그 갈색 인영을 향해 덮쳐갔다.

청허도장이 갈성을 터뜨리며 또 하나의 갈색 인영을 향해 덮쳐갈 때 우두머리 흑의인이 그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청허도장은 불가피하게 싸움이 붙어 버렸다. 이 때 장내의 격전은 이미 극치에 다달아 많은 사망자를 냈다.

위중평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맹렬하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멈춰라!"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귓청을 꿰뚫을 듯한 함성에 대경실색을 하여 격투를 멈추었다.

위중평은 갈색 장포를 입은 두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은 십삼표묘객 중 몇 번째냐? 감히 화산파에 와서 흉살을 하다니 간덩이가 부은 모양이구나."

아까의 그 갈성에 모두 쟁쟁한 고수가 왔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코와 입이 비뚤어져 더럽기 그지없는 어린 거렁뱅이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기가 막힌 듯 웃음을 터뜨렸다.

두 노인은 네 음풍의 태음과 소음이었다.

두 사람은 애초에 이 화산파쯤은 몇 명의 흑의인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였기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한 소규화가 나타나 큰소리를 치자 가소로운 듯 괴소를 터뜨렸다.

"노부가 바로 사음의 우두머리인 태음표묘객이다. 내가 이곳에 온 건 화산파를 징벌하러 온 것이다. 그러니 죽기 싫거든 어서 가거라."

태음표묘객의 입장으로 본다면 커다란 친절을 베푼 것이다.

그러나 위중평은 오히려 광소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으하하하… 그것 참 잘된 일이군. 나는 화산파의 반 주인인 몸으로 귀객이 찾아 오셨는데 어찌 대접을 소홀히 하겠소? 자, 받아라."

위중평이 손을 내밀자 급경하기 비할 데 없는 장력이 태음표묘객의 정면으로 부딪쳐 왔다.

태음표묘객은 뜻밖에 소규화가 먼저 공격을 해오자 분노를 터뜨렸다.

"내 그래도 널 살려주려 했는데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태음표묘객은 태음장경을 팔 성까지 끌어올려 일 장으로 그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미 삼음표묘객과 댜적한 경험이 있는 위중평은 피하기는커녕 진기를 끌어올려 장력을 가중시켰다.

"꽝!"

화산의 도관이 흔들거리는 듯한 폭음이 터지자 두 사람은 각각 두 발자국씩 물러났다.

이 때 위중평은 내심 이 태음의 공력도 삼음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몸을 세우고 연속 삼 장을 쳐 내었다.

일순 그들은 이십여 초를 교환했다.

두 마리의 용이 엉킨 듯 격렬한 싸움과 초식의 빠르기는 누가 누구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게 했다.

위중평이 태음과 맞서 격투를 하자 화산파의 젊은 위사도 기합을 터뜨리며 음표묘객을 향해 덮쳐갔다. 이들이 생각지도 않게 두 후배에게 공격을 당하자 나머지 흑의인들은 한쪽으로 물러서 감히 나서지 못했다.

이 때 화산파 도인들은 부상당한 도사들을 데려가 치료했고 청허와 옥청 두 도장은 조용히 한쪽에 서서 싸움의 발전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낯선 두 젊은이가 무엇 때문에 자기네를 도와 주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첫째 청년도사는 자칭 위중평의 의제인데 그를 대신해 와 있는 것이라 하며 그 문파나 출신 내력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둘째, 귀와 입이 비뚤어진 소규화의 음성을 들어 보니 매우 귀에 익었으나 화산파의 반 주인이라 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청허도장은 평생을 돌아보아도 소규화와 친구를 맺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두 젊은이의 무공에 대해서만은 찬양을 금치 못했다.

청허도장은 내심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으나 두 눈은 계속해서 한 곳에서 있는 흑의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때 옥청도장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사형, 파악했습니까? 저 소규화가 화산파의 초식을 썼습니다."

"나도 이미 주의하고 있다네."

장내의 결투는 이내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관전하고 있던 쌍방의 사람들은 그들이 생사의 문전에 도달한 것을 짐작했다.

흑의인들이 먼저 장에다 공력을 집중시켜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청허도장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검에 손을 대고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화양십이도도 몸을 분산시켜 부채꼴 모양의 공격 형태를 갖추었다.

사태는 터질 듯한 긴장감이 맴돌자 누구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위중평과 태음표묘객의 격렬한 싸움에 소음표묘객과 청년도사의 격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청년도사의 그 초식은 위중평보다 더욱 신랄하고 교묘했다. 비록 소음표묘객과 같은 고수와 싸우고 있었으나 시종 여유를 갖고 위중평을 가끔씩 쳐다보았다.

청년고수는 위중평과 태음이 막 생사의 관문에 들어서려는 찰나,

"얍!"

기합 소리를 터뜨리더니 초식을 바꾸어 일곱 초를 연공해 냈다.

이 일곱 초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소음은 감히 대적할 고수를 찾지 못하던 중이었지만 그의 초식은 도저히 막을 길이 없어 연속 다섯 걸음이나 주르르 밀려나며 빠르기가 비할 데 없는 속력으로 연속 이 장을 격출해 내는 동시에 살짝 몸을 틀어 피해갔다.

그러나 젊은 고수의 장풍은 그의 장력을 뚫고 어깨의 견정혈을 격중시켰다.

"윽!"

소음은 둔한 신음을 터뜨리며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서야 겨우 몸의 중싱을 잡았다.

청년도사는 득수를 한 후 소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날려 위중평과 태음을 향해 갔다.

이런 변화는 극히 팎은 순간의 일이었다.

한편 위중평은 조화신공을 십 성까지 끌어올렸고 태음 역시 수십 년 동안 연마한 태음지살공을 쌍장에다 운집시켰다.

바야흐로 두 사람이 막 장풍을 쳐내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일진의 냉엄하면서도 예리한 냉소가 마치 유무한 강침과도 같이 사람의 귓청을 뚫고 들려왔다.

이것은 비록 일진의 형태도 색깔도 없는 음파였으나 실제로 형태를 갖춘 그 어떤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었다.

쌍방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어 보니 원락의 지붕 위에 홀연 홍의소녀가 하나 서 있는 것이었다.

홍의는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고 있으며 고고하게 서 있는 자태는 선녀가 구름을 타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서릿발이 내린 듯 싸늘하고 추호의 표정도 없었다. 청허도장은 나타난 사람이 추혼천녀라는 것을 알고 경악에 가득찬 음성으로 외쳤다.

"추혼낭자!"

그러자 흑의인들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추혼천녀다."

추혼천녀는 급히 몸을 날려 마치 한 가닥 무지개가 선을 그은 듯 위중평과 태음의 가운데 내려섰다.

그리고는 즉시 태음을 손가락질하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어서 이 화산을 떠나라."

태음이 검미를 치키며 대들려고 하자 추혼천녀는 다시 교갈을 터뜨렸다.

"들었느냐, 못 들었느냐? 어서 가거라."

태음표묘객은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결국은 포권을 취했다.

"태음, 궁주님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그는 흑의인을 향해 소리쳤다.

"가라!"

태음은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흑의인을 거느리고 사라졌다.

강적이 물러가자 위중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그녀를 이렇게 마주 대하자 크게 기뻐 소리 쳤다.

"낭자, 요 며칠 동안 어디에 가 있었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섬섬옥수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추혼천녀는 마치 징그러운 물건을 보는 듯 급히 물러나며 외쳤다.

"넌 누군데 나더러 낭자라 부르느냐!"

청년도사가 웃으며 한 마디 했다.

"흥, 어디 거울에다 얼굴이나 비쳐 보고 말하지."

청허도장은 추혼천녀의 성질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되도록 이면 그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앞으로 나서며 입을 떼었다.

"네 분의 도움으로 오늘 밤 화산파가 이렇듯 건재하니 정말 감사하기 그지없소."

추혼천녀는 여전히 무표정하고 냉막하게 말했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난 아직 중요한 일이 있어 화옥묘로 가야 해요. 평상공도 이미 그곳에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자 청년도사가 웃으며 짐짓 다정하게 말했다.

"낭자, 그 평상공은 절대 화옥묘로 갔을 리가 없소. 아마 지금쯤 개방의 저런 거지가 되어 있을 거요."

추혼천녀가 경공신법을 전개해 날아가자

그들의 눈앞에 붉은 그릴-파 번쩍이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위중평이 청년도사를 노려보며 막 말을 꺼내려 할 때 청년도사도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사람을 구하는 게 중요하지 너와 쓸데없는 입씨름을 할 시간이 없다."

 

말이 끝나자 그도 이미 보이지 않았다.

위중평도 문득 우주광인 등이 생각나 쏜살같이 화옥묘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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