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36. 납치

오늘의 쉼터 2014. 6. 20. 17:11

36. 납치

 

 

 

"도주님, 큰일났습니다. 아가씨께서 잡혀 갔습니다."

이 소리에 모두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중 빙염이 제일 흥분하여 미친 듯이 맨앞으로 뛰쳐나갔다.

곧이어 장산도주, 구주풍인도 뒤따라 갔다. 이 때 위중평은 구주풍인 뒤를 따라가면서 암암리에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안미옥은 용호구환단 두 알을 복용했고, 또 자신이 조화신공을 써서 임독양맥을 뚫어준 후부터 공력이 크게 진보되어 무공이 장산도주보다 높은데 어째서 그처럼 가볍게 잡혀 갔다는 말인가?

세 사람이 방에 들어가자 즉시 한 가닥의 유황이 코로 스며들어왔는데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것이어서 자세히 분별해 보니 이 향기는 어딘가 좀 이상한 것 같았다.

위중평은 해독천방을 익혔기 때문에 각종 독물과 미향 같은 종류에 대해 제일 민감하여 소리쳤다.

"아, 이제 보니 이놈은 하류의 수단을 썼군요."

돌연 구주풍인이 광소를 첬다.

"겁도 없는 놈, 감히 머리 위까지 올라오다니, 내 어디 너 흑심수사가 얼마나 큰 신통을 지녔는지 봐야겠다."

이것으로 보아 구주풍인도 이미 단서를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중평이 급히 그의 곁에 다가갔을 때 과연 벽 위에 손바닥만한 흑심이 있었다.

흑심 중앙에는 한 자루의 필이 꽂혀 있었는데 이것은 바로 적발교주의 수제자 흑심수사의 표기였다. 적발교가 강호에 발딛음을 안한 지가 이미 오래 전인데 생각지도 않게 지금에서야 출현하여 안미옥을 잡아갔으니 이것은 분명히 그에게 도전하는 것임은 두말 할 것도 없었기에 마음이 착잡하고 분노하여 갑자기 장산도주를 향해 포권의 예를 취했다.

"후배의 조그마한 사사로운 원수 때문에 화가 귀파까지 미치게 됐으니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후배 지금 떠나서 하늘 끝, 바다 밑까지 쫓아가서라도 꼭 그 악적을 찾아내어 옥낭자를 구해 오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장산도주는 살기를 띠고 눈에서 불꽃을 튀기며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이 일을 어찌 자네에게 원망을 할 수 있겠나? 그놈이 지난번에도 옥아에게 손을 쓴 적이 있었는데 오늘 또 감히 성에 와서 소동을 벌이다니 정말 너무 장산도를 얕보는군. 자네가 우선 가게. 내 곧 홍모음효를 찾아가서 빚을 갚겠네."

위중평은 안미옥을 걱정하다가 즉시 섬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는데 장산도주가 이렇듯 먼저 가라고 하자 즉시 몸을 돌려 빙염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섬을 떠난 후였다.

빙염의 무공은 그가 이미 겨룬 일이 있어 안미옥보다 한 수 약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쾌속정 한 척을 타고 섬을 떠나 급히 추격했다.

한편 빙염은 안미옥을 자기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화가 치밀고 안타까운 심정에 장산도주가 한참 동안 주위를 살펴볼 때를 이용하여 슬그머니 빠져 나와 혼자서 쾌속정 한 척을 타고 대륙으로 급히 향했던 것이다.

또한 부둣가에 있는 어민은 대부분이 장산도와 소식을 서로 전하고 있었기에 배가 봉래에 닿자 각처에 물어본 결과 모두 다 요 근래 이틀 동안 절대로 수상한 배나 낯선 사람이 부두에 온 것을 보지 못했다고들 했다.

빙염은 아무런 단서도 못 잡자 내심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되면 흑심수사는 필경 다른 곳에서부터 온 것이 틀림없다. 그럼 어디서부터 추격을 해야 하나?'

이렇게 생각한 그는 하는 수 없이 발길이 내키는 대로 큰길로 나서는 순간 큰 집의 벽 위에 한 개의 흑심자국이 보였고 흑심 위에는 한 자루의 필이 꽂혀 있었다. 필촉은 정남쪽을 가리킨 채 마치 길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았기에 이러한 것을 발견을 한 그는 앞에서 닥칠 위험도 생각하지 않고 등에 멘 철장을 어루만지더니 필촉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급히 달려갔다.

얼마 안 되어 또 흑심표기를 발견했다.

이것은 두 가지 가능성을 느끼게 하였는데 하나는 적을 유인하는 것이고, 하나는 또 다른 고인이 암중에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빙염은 이 때 벌써 생사를 가리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하여 단숨에 애산의 아래까지 달려갔다.

돌연 한 구루 큰 나무가 누군가에 의해 껍질이 벗겨지고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활박초룡(活剝焦龍)>

 

그것은 바로 고보교룡의 암시였으나 순간 마음이 황급하여 자세히 기중의 포함된 뜻을 이해하지 않은 채 역시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매우 험악한 골짜기에 다달았다. 사방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산봉우리가 있고, 오직 한 개의 좁다란 통로만이 앞으로 뻗어 있었다.

골짜기에 들어가 본 후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그는 괜히 긴장했던 것이다.

층층이 쌓인 괴석들이 마치 사람을 잡아 먹으려는 야수와 같이 웅크린 모습으로 사방 곳곳에 잠복되어 있었기에 그는 철장을 힘껏쥐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전진해 가는데 홀연 일진의 광소가 터져 나왔다. 따라서 사면팔방에서 한꺼번에 괴소가 터져 나오더니 뚝 그쳤다.

이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전해 오는 것일까.

빙염은 흠칫 놀라 수중의 철장을 바로 세우고 즉시 몸을 세워 중앙에 서서 조용히 변화를 기다렸으나 한참 동안 기다려 봐도 인영은커녕 웃음 소리도 들리지 않자 계속해서 전진하려 할 때 갑자기 광소가 또 터져 나왔다.

이 차갑고 싸늘한 괴소는 사람으로 하여금 등골이 오싹하게 만들었다. 장산도주를 따라 강호에서 숱한 풍파를 겪은 그는 한 번도 이런 신비스러운 장면과 마주친 적이 없었던지 소리 높여 외쳤다.

"너희들도 영웅이라면 어서 나오너라. 이 빙어르신네께서 너희같은 비겁한 놈들을 무서워할 것 같으냐?"

호통 소리가 막 끝나자 광소도 따라 멈추었지만 오랫동안 정지한 채 기다려 보아도 역시 한 개의 인영도 보이지 않자 그는 냉소를 치며 발길을 앞으로 옮겼다.

그러자 한 덩어리의 시커먼 물체가 얼굴을 향해 후려쳐 왔고 엉겁결에 철장을 휘둘렀으나 그 물체는 갑자기 흩어지며 그의 머리와 얼굴에 각각 묻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 덩어리의 진흙이었던 것이다.

빙염이 노기충천하여 막 입을 열어 욕을 퍼부으려고 할 때 갑자기 사면팔방에서 비황과 같이 또 시커먼 물체가 날아와 황급하게 철장을 휘둘렀다. 비록 후려쳐 온 물건들을 모두 사방으로 분산시켰지만 그대신 깨끗한 옷이 위아래 모두 진흙으로 물들었다. 곧이어 사방에서 광소가 일어나더니 동시에 한 사람이 코웃음을 쳤다.

"오늘은 본래 활박초룡을 하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초룡은 아니오고 미꾸라지가 왔으니… 하하하…"

이 때 사방에서 광소가 터지더니 하나의 요사스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장난을 실컷 쳤으니 일찌감치 빨리 끝내자. 초룡이 올 시간이다."

일진의 괴소와 함께 암석 뒤에서 갑자기 몇 명이 나타났고 이어 한 명의 문창필을 사용하는 노인이 빠르기 이를 데 없는 삼 초를 퍼부었다.

빙염은 비록 초인적인 신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노인의 심후한 내력을 막아낼 수가 없어 세 발자국이나 뒷걸음질을 했다.

철팡을 바로 세우고 눈을 부릅뜨며 보니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가 적발교 내의 유명한 고수들이 아닌가.

그 중에는 한단사신, 색혼판관, 음산일귀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와 결전한 사람은 복수당주 혁연강이었다. 그 외에 또 한 명은 붉은 머리에 추악한 노파였다.

추악한 노파는 손에 홍색 칠을 한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으며 저 멀리 석순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흑심수사는 공손히 옆에서 있었다.

빙염은 흑심수사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흑심수사, 나의 사매를 어디로 끌고 갔느냐? 어서 말해라."

흑심수사는 가볍게 묘금선으로 부채질을 하며 득의에 찬 고함을 질렀다.

"돌아가서 너의 사부 장산도주에게 일러라. 장인이 될 차비를 하라고. 그 여자는 이미 나의 사모님이 결정을 하여 본 교주의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또한 그 형산홍옥은 그녀가 나의 사모님 불노서시에게 선물로 준 것으로 하겠다."

빙염은 노기충천하여 크게 외쳤다.

"웃기지 마라."

그러더니 이내 철장을 번쩍이며 맹렬히 앞으로 돌진해 갔으나 사방에 있는 사람들이 어디 그를 빠져 나가게 하겠는가? 색혼판관 동기가 냉소를 치며 수중의 색혼판을 휘두르자 그것은 파란 광채를 띠며 그의 허리를 향해 찌르러 갔고 빙염은 자신이 오늘 죽지 않으면 부상을 면치 못할 것임을 알고 절대로 결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느껴 공중에서 몸을 돌려 수중의 철장을 휘두르며 색혼판관을 향해 응수해 갔다.

두 개의 무기가 맞부딪치자 불꽃이 튀며 쌍방의 손목은 동시에 쥐가 올랐다. 빙염의 목표는 원래 색혼판관이 아니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몇 초를 공격한 후 또 맹렬히 흑심수사의 쪽으로 돌진해 갔으나 몇 가닥의 강렬한 장풍이 이미 정면으로 닥쳐왔다. 뒤에서는 동시에 색혼판관이 또 한 줄기의 파란 광채를 달고 뒤로부터 급습해 왔다.

사방의 협공에 자신을 보호할 시간도 없는데 어디 힘이 남아서 계속 흑심수사를 공격하겠는가?

한편 그의 무공은 모든 사람보다 한 수가 모자랐다.

이 때 추악한 노파가 갑자기 뾰족하게 소리쳤다.

"이런 멍청이 같은 놈들! 아직도 빨리 저 자식을 요리하지 못하고 무엇하느냐? 사람이 오고 있다."

네 사람은 깜짝 놀라며 함께 입을 열어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한단사신은 쏜살같이 철장을 향해 잡으러 갔다.

"꼼짝 마라."

빙염은 질겁을 하며 물러나다가 마침내 철장을 빼앗겼고 동시에 동기의 색혼판이 파란 광채를 번쩍거리며 일어났다.

또한 혁연강, 음산일괴의 두 가닥 장풍이 좌우에서 노도와 갈이 격출해 왔는데 세 군데에서 공격을 당하여 다만 한 군데의 것만 맞아도 빙염의 목숨은 영락없이 잃게 되는 이 위기일발의 순간 멀리서 한 차례의 기합 소리가 들려 오더니 한 인영이 번쩍이며 이미 장중에 내려섰다.

일순 파란 광채가 번쩍이더니 수중의 색혼판이 허공으로 뜨고 잇달아 비명 소리가 나자 음산일괴, 혁연강은 쌍쌍이 얼굴을 땅에다 맞대고 일 장 뒤로 떨어져 있었다.

위중평, 그는 빙염이 독수를 당할까봐 출수해서 구출할 때까지 악독한 절초만을 골라서 사용했고 순식간에 세 명의 적발교 고수들을 쓰러뜨렸다.

이 때 그는 추악한 노파가 군마들을 향해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 마치 짐승같이 부려 먹는 것을 보자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들은 전부 다 적발교의 중요한 인물들로서 설사 적발교주가 몸소 온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렇게 부려먹을 수 없을 터인데 그녀가 대체 뭔데 이렇게 건방지지…'

바로 이 때 노파가 갑자기 괴소를 쳤다.

"네가 바로 강호에서 소문난 교룡이냐? 과연 잘 생겼군. 이리 오너라. 어디 내가 한 번 봐야겠다. 히히히…"

위중평은 검미를 치켜 세우며 소리쳤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해라. 너희들은 도대체 옥낭자를 어디로 끌고 갔느냐? 빨리 내놓아라."

"내놓으라고?"

노파는 입을 크게 벌리고 괴소를 쳤다.

"그리 쉬운 일이 어디 있느냐? 그 계집은 내가 이미 흑심수사에게 주기로 했다. 만약에 네가 나의 조건 하나를 들어 준다면 내가또다른 생각을 해줄 수 있다."

말이 끝나자 삼각눈을 그에게로 향해 거만스레 훑어보더니 또 누런 이빨을 보이며 음흉하게 웃었다.

"히히히… 흐흐흐…"

위중평은 그녀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몸을 날리더니 맹렬히 흑심수사를 향해 덮치려는 순간 갑자기 한 가닥의 싸늘하기가 뼛속 깊이 스며드는 듯한 음유역도가 암초와 같이 옆에서 밀려 오자 그는 공중에서 맹렬히 몸을 돌려 조화신공을 갑자기 격출해 냈다.

한 차례의 거대한 폭음이 터지더니 위중평은 오른쪽으로 일곱 척이나 날아서야 땅에 내려섰다.

그는 꿈에도 이 추악한 노파의 공력이 이처럼 높은 줄 생각지 못하여 일시적으로 흠칫 놀랐고 불노서시는 위중평보다 더욱더 놀랐다.

그녀의 성품은 본래 무척 잔인해 겉으로는 비록 그에 대해 계속 담담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그것은 구음현살공을 암중에 구 성의 힘까지 끌어올려 그를 일 초에 죽여 명성을 떨치려고 했던 것이었으나 상대방의 공력이 이처럼 심후하기 비할 데 없을 줄 몰랐다.

황급한 가운데도 그녀의 일격을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은은히 한 가닥의 위맹스런 힘이 전해와서 그녀의 오장육부를 뒤틀리게 할 정도였지만 그녀는 천성이 음흉하여 비록 내상의 손해를 보았지만 겉으론 역시 태연스럽게 괴소를 쳤다.

"과연 몇 수를 할 줄 아는군. 나의 구음현살공을 받아낸 사람은 너 하나밖에 없었다."

위중평은 그녀의 비위가 거슬리는 말을 듣고 준미를 치켜 세우며 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너무 득의하지 말고 어디 나의 이 초를 받아봐라."

이어 몸을 앞으로 날리는 갑작스러운 순간에 세 개의 장력을 연달아 격출해 냈고 순간 광풍노도와 같은 장력이 밀려 나왔다.

불노서시는 위중평과 정식으로 겨루지 않고 한 차례의 괴소를 치며 장풍을 일어 전광석화와 같이 번쩍이더니 사라졌으나 위중평은 폭갈과 함께 쏜살같이 초음신법을 써서 추격해 갔다.

"어딜 도망가느냐?"

이 때 불노서시는 기진이 설치되어 있는 바위 틈 사이로 들어가 몇 번 도는가 싶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위중평이 이내 쌍장에다 모든 공력을 주입시켜 뒤따라 들어갔을 때 그의 귓전에 극히 가느다란 음성이 들려 왔다.

"소시주, 어서 좌측으로 피하시시오. 속히…"

이 말엔 초조와 당황하는 빛으로 가득차 매우 위급하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위중평은 내심 대경실색하여 생각했다.

'이게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러나 그에겐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 어지럽게 널려진 괴석은 팔괴형식으로 안배된 것이었지만 다행히도 위중평은 진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아 재빨리 전음술을 전해준 사람의 말대로 좌측으로 후퇴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어지럽게 널려진 바위 사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는가 싶더니 경천동지할 폭음이 터져 나왔으며 검은 연기와 불꽃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주위를 완전히 덮쳐 버렸다.

위중평은 원인을 자세히 살펴볼 여유도 없이 은하성사신법을 전개해 물찬 제비와 같이 검은 연기를 뚫고 높은 바위 위로 뛰어 올라갔다.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위중평의 귓전엔 다시 전음이 들려 왔다.

"안미옥은 이미 빈니에 의해 구조되었소. 소시주께서 만약 형산홍옥을 빼앗아 내려면 남쪽으로 계곡을 빠져 나가 동남쪽으로 쫓아 가시오…"

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눈 깜박할 사이에 이미 들리지 않았다. 이런 전음입밀의 공부에 대해 위중평은 알고 있었다.

현기보록에 기재된 것 뿐만 아니라 백공사인도 그에게 영서일점 전음법을 전수해 주었다.

그의 판단에 의하면 이 전음을 한 사람은 필경 선배고인일 것이라고 믿고 초음적인 신법을 전개하여 동남쪽으로 추격해 갔다.

약 십여 리쯤 쫓아갔을 때 귓전에 욕설의 소리들이 전해 왔다. 그는 즉시 속도를 가하여 눈 깜박할 사이에 죽림으로 접근해 갔는데 이 때 죽림 속에는 이미 세 패로 갈라져서 불노서시를 중앙에다 포위했다.

중앙에는 소면독심 소요공자였다. 그 뒤에는 홍, 황, 남, 백 네 명의 노인이 서 있었고 왼쪽에는 장백파의 조사축상을 뺏아 간 은의 궁장소녀였다.

동사삼룡은 조용히 그녀의 뒤에서 있었으며 오른쪽에 우주광인과 한 명의 노규화가 그 뒤에는 또 옷이 군데군데 찢겨진 소규화가 서 있었다.

이러한 것을 보자 이 사람들이 모두가 형산홍옥 때문에 온 것임을 알고 내심 중얼거렸다.

'잠시 나서지 말고 일이 어떻게 전개되나 좀 봐야지…'

이어 가볍게 몸을 번쩍이더니 연기처럼 한 그루의 큰 나무 위에 숨었다.

이 때 소요공자는 이미 불노서시를 접하여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네가 지닌 홍옥을 나한테 내놓아라."

그는 얼굴에 비록 웃음을 띠었지만 말소리는 완전히 명령식이어서 누구라도 분노를 참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쉽게 그에게 굴복하겠는가?

바로 이 때 은의소녀가 갑자기 교태스럽게 소리쳤다.

"잠깐! 네가 뭘 믿고 홍옥을 달라는 것이냐? 나한테 내놓아라."

이 어조는 소요공자보다 더욱 야만적이어서 소요공자의 얼굴빛이 갑자기 급변하며 웃었다.

"흐흐흐… 그렇다면 너는 또 뭘 믿고 달라는 것이냐?"

그의 이러한 말엔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 때 은의소녀는 그의 웃음 속에 경박한 성분이 있는 줄 잘못 알고 즉시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여 소리쳤다.

"그녀는 나의 친구로부터 훔쳐온 것이니 나는 당연히 그를 대신하여 빼앗아야 한다. 그런데 너는 무슨 권리로 간섭을 하느냐?"

소요공자는 갑자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제 보니 너도 그놈의 친구군. 내 너에게 가르쳐 주지. 본 공자는 그 홍옥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다만 그것을 가져와서 그와 조건을 교환하려고 했던 것 뿐이다. 어쩌면 이 조건이 잘되면 너에게도 이익이 있다."

은의소녀는 맹렬히 앞으로 몸을 날리더니 이미 소요공자에게 접근하여 크게 외쳤다.

"네가 어떻게 말하든 내 꼭 홍옥을 가져가야겠다."

소요공자는 평소에 명명주재의 위풍을 믿고 강호의 사람이 그에게 추호라도 어기는 기색이 있으면 즉각 처치해 버리고 말았고 그 수단도 매우 악랄하고 매서웠지만 오늘은 와도에서 온 이 절색의 미녀에게 최대한의 선심을 쓴 것이다.

 

 

'무협지 > 무흔검(無痕劍)' 카테고리의 다른 글

38. 죽음의 초청   (0) 2014.06.20
37. 밝혀진 원흉  (0) 2014.06.20
35. 연적  (0) 2014.06.20
34. 정해파란(情海波瀾)  (0) 2014.06.20
33. 황발괴인(黃髮怪人)  (0) 2014.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