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37. 밝혀진 원흉

오늘의 쉼터 2014. 6. 20. 17:12

37. 밝혀진 원흉

 

 

 

소요공자는 군침이 도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빨을 드러내며 음침하게 웃었다.

 

"기왕 쌍방이 물러설 수 없다면 우리 실력으로써 겨루어 봐야겠군."

 

은의소녀는 기다렸다는 듯 냉랭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흥, 좋다. 하지만 이것은 제일 공평한 방법이니

누구의 손도 빌리지 말기로 해야 한다. 자, 어서 덤벼라."

 

그 때였다.

 

"잠깐, 나 광인도 한 마디 해야겠다."

 

한쪽 옆에 서서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고 있었던 우주광인은

두 사람을 훑어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 홍옥은 고보교룡 위소협이 이궁에서 얻은 것이라는 걸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 광인은 본래 위소협에게 홍옥을 빌려 내 처의 독을 치료해 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그 노괴물이 훔쳐 갔으니

내 오늘 기필코 위소협을 대신해 다시 빼앗아서 내 처의 독을 제거하는 동시에

위소협에게 돌려 줄 것이다."

 

우주광인은 여기서 잠시 말을 끊더니 분연한 표정으로 다시 소리 쳤다.

 

"그 노괴물이 순순히 승인하게끔 하기 위해

내 특별히 협명이 만천하를 진동시키고 있는 후면협심(逅面俠心) 풍진객 두대협을

모셔와 증인을 서게 하였다."

 

우주광인의 광증은 이미 습관화되어 있어 말을 끝낸 후 소요공자와 은의소녀를

더 이상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불노서시를 향해 외쳤다.

 

"노괴물아, 시간이 없으니 빨리 내놓아라."

 

지금 불노서시의 입장은 어떤가 하면 소요공자에게도 함부로 덤비지 못하고

그렇다고 와도의 사람들에게도 감히 덤비지 못하는 실정이었지만

우주광인에게는 별달리 생각한 두려움이 없었기에 대뜸 음침한 광소를 터뜨렸다.

 

"으흐흐흐… 우주광인, 네가 너무나 불노서시를 얕보는구나.

너의 그 몇 마디로 날 두렵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오냐, 홍옥은 내가 지니고 있다.

그러니 뺏고 싶으면 실력으로 빼앗아 보아라."

 

불노서시가 강경하게 대드는 것을 보자

그는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며 싸늘하게 웃었다.

"감히 나 광인에게 대들다니!

그것은 곧 죽음만이 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소리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우주광인이 소매를 펄럭이자

두 가닥의 급진적인 예리한 바람이 불노서시의 혈기와 기문

두 대혈을 향해 격사되어 나갔고 불노서시가 대뜸 삼각눈에 흉광을 폭사시키며

구음현살공(九陰玄煞功)을 쳐내자 순간 일진의 싸늘한 음풍이

뼈를 깎아내는 듯 마치 성난 파도와 같이 우주광인을 향해 덮쳐 갔다.

우주광인, 그는 비록 광망하다 해서 이런 외호를 얻었지만

그 성명은 절대 우연히 얻은 것은 아니었다.

일신에 현문강기가 가득 뒤덮이게 만들며 쳐내는 광장(光掌)은 그야말론

이 우주 안에 다시없는 절기였다.

불노서시의 구음현살공이 밀려오자 우주광인은 냉엄한 코웃음을 치며

한 가닥 광풍노도와 같은 절기를 소매 속에서 격출해 내었다.

 

"꽝!"

 

두 가닥의 경풍이 맞닥뜨리자

장내에는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사방에는 몇 겹인지 알 수 없을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자 불노서시는 붉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계속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우주광인은 끄덕도 하지 않은 채 버티고 서서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까짓 공력으로 감히 내게 대항을 하느냐?"

 

"이놈, 잔소리 마라."

불노서시는 흉악스러운 성격이 발동해 즉시 포악한 갈성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십일 장이나 내뻗었는데 일진의 음풍이 주위를 휘감아 가며 예리한 파공음을 일으키는 것이 그 공세도 매우 용맹하고 날카로웠다.

"으하하하… 오냐, 어서 오너라!"

커다란 광소를 터뜨리며 소매를 펄럭이자 일진의 광풍이 파도처럼 밀려 나갔다.

우주광인이 쳐내는 이 장법은 비록 소리는 있었으나

그 색상이나 형태는 조금도 볼 수 없었고

그 위력은 가히 사람의 넋을 빼앗을 만큼 놀라워

장력이 미처 뻗쳐 나가기도 전에 이미 사람의 혼을 빼앗았다.

두 사람은 번개가 번쩍이는 것 같이 몹시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일곱 장이나 겨루었다.

그 때 갑자기 장 외에서 일진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멈추시오."

 

바로 소요공자가 구사옥부를 꺼내들어 전권 앞으로 돌입해 들어가며 크게 소리쳤다.

 

"본 공자는 구사옥부를 펼쳐야겠소.

그러니 불노서시, 당신은 어서 형산홍옥을 내놓으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절대 빼앗아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시오."

 

불노서시는 소요공자가 외치는 순간 이미 장력을 거두었지만

그녀는 소요공자가 구사옥부를 꺼내들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는지

안색이 크게 변하며 혼이 떨릴 정도로 크게 놀랐고 울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감히 명명주재에게 대항을 하지 못해 손을 품 속으로 가져 갔지만

역시 아쉬운 미련에 선뜻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은색 빛이 번쩍이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은의소녀가

소요공자의 면전에 내려서서 싸늘한 냉소를 날렸다.

 

"흥, 그렇게까지 옥부를 꺼내 사람을 겁줄 필요는 없다.

본 궁주는 그따위 것은 조금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은의소녀는 순간 말을 멈추더니 지그시 씹어내듯 내뱉았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그 홍옥은 꼭 내가 가져 가고야 말 것이다."

 

소요공자는 갑자기 얼굴에 살기를 떠올리더니 냉랭하게 웃었다.

 

"건방진 년, 감히 구사옥부를 무시하디니 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소요공자는 번개같이 몸을 날려 은의소녀를 향해 덮쳐갔다.

 

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인영이 번쩍거리는 순간이었는데

소요공자는 이미 아홉 식이나 격출해 내고 있었다.

 

"호호호… 어림도 없다."

 

사람의 넋을 빼앗는 교태스러운 웃음과 함께 은의소녀는

옷자락을 날리며 연속 열두 식이나 공격해 들어갔다.

쌍방은 싸울수록 점차 빨라지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한데 엉키고 말았다.

은의소녀와 소요공자가 맹렬히 싸움을 벌이고 있는 순간

홍, 황, 백, 남 사노는 이미 불노서시를 포위해 들며 외쳤다.

 

"노괴물아, 아직도 홍옥을 내놓지 못하고 뭘 하는 거냐?"

 

이 때 동사삼룡이 어느새 불노서시의 옆에 와서 음침한 괴소를 날렸다.

 

"흐흐흐… 그들의 승부가 아직 나지도 않았는데

홍옥부터 가져가려는 거냐?

우리 동사삼룡이 있는 한 너희는 꿈도 꾸지 말아라."

사노는 벌써부터 동사삼룡의 무공이 높고 공력이 통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데다가 세 사람이 불쑥 막고 나서니

오늘은 홍옥을 절대 손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홍옥이라는 물건은 절대로 호락호락 포기할 만큼 보통의 물건이 아니기에

홍포노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으나

곧 본래의 신색으로 회복하고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오래 전부터 와도는 그 뛰어난 무공으로 일파를 세웠고

자오이화신공(子午離火神功)으로 무림을 진동시키고 있었지만

오늘 노부 형제를 만난 이상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룡역서는 음침한 괴소를 날리더니

홍포노인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불노서시를 주시하며 냉엄하게 입을 떼었다.

 

"만약 너에게 불만이 있다면 우리 잠시 후에 대결하도록 하자.

그리고 홍옥이 이 노괴물의 수중에 있는 이상 어떻게 마음을 놓겠느냐?"

 

독룡역서는 말을 끊더니 홍포노인을 주시했다.

 

"그러니 우리 우선 저 노괴물로 하여금 홍옥을 내놓게 한 뒤

저분 후면협심 풍진객 두대협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이 어떠냐?"

 

말을 끝내고 독룡역서는 홍포노인의 대답도 들어 보지 않고

불노서시를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자, 빨리 홍옥을 내놓아라."

 

불노서시는 이 나이까지 강호에서 종횡하고 다녔지만

이같은 모욕은 일찍이 당해 본 적이 없었으나 불노서시가

구음현살공을 터득한 후 두 번째 강호에 다시 나왔을 때

이같은 모욕을 당하고 만 것이다.

불노서시는 계속 추궁을 받자 흉악한 본심이 발작해

즉시 이빨을 갈며 암암리에 생각을 굴렸다.

 

'흥, 이 홍옥을 없애 버렸으면 없애 버렸지 절대 네놈들에겐 줄 수 없다.'

 

순간-.

 

"흐흐흐…"

 

극히 짧고 싸늘하며 음씀한 괴소가 터지더니

불노서시는 번개같이 품 속에서 홍옥을 꺼내 커다란 바위를 향해

내던졌는데 이 돌발적인 행동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이얍!"

 

우렁찬 기합 소리가 터지더니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홍옥을 향해 덮쳐갔다.

이 소동에 한참 동안 맹렬한 격투를 벌이고 있던 소요공자와 은의소녀는

동시에 손을 멈추었고 바로 이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휘익!"

 

하고 바람 소리가 일더니 돌연 하나의 인영이 질풍처럼 날아와 손을 내밀어

가벼운 동작으로 홍옥을 수중에 넣었다.

 

"으하하하하…"

 

동시에 맑은 광소가 터지더니

그 그림자는 장내에 내려서자 장내의 사람들은 그만 크게 놀라고 말았다.

위중평!

바로 홍옥의 진짜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위중평은 싸늘한 눈동자를 굴려 장내를 한 번 훑어보더니

즉시 은의소녀를 향해 다가가 심심한 예를 올렸다.

 

"낭자께서 본인의 물건에 이토록 관심을 가져 주니

정말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구려."

 

은의소녀는 천성이 몹시 거만했다.

그녀가 홍옥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은 결코 차지할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는데

오늘 위중평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하니

갑자기 격한 마음이 일어나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그만한 일로 뭘 그렇게 감사를 하나요?"

 

은의소녀는 잠시 정감이 담뿍 담긴 눈으로 미소를 보내더니 몸을 날렸다.

공중에 무지개가 그어진 듯 한 줄기 유성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위중평은 이 은의소녀를 세 번이나 만났지만 그 때마다

그녀는 위중평에게 자세한 내력을 물어볼 시간을 주지 않고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고 더욱이 이번의 태도는 위중평으로 하여금

더욱 의아스럽게 만들었다.

더구나 그 축상을 찾으려면 그녀를 대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 때 소요공자가 질투에 번득이는 눈을 치켜뜨며 비웃음을 터뜨렸다.

 

"후후후… 자식, 네놈의, 염복은 정말 적지 않구나.

그러나 넌 지금 자신만만해 하겠지만 결코 오래가진 못한다.

일 년 후에 본인은 너와 생사의 결투를 벌이고 말 것이다."

 

위중평은 씁쓸하게 웃었다.

 

"오냐, 네 맘대로 해라. 본인도 사정 보지 않고 상대해 주겠다."

 

소요공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손을 흔들더니

사도를 데리고 나는 듯 현장을 떠났다.

위중평은 그제야 몸을 돌려 우주광인을 향해 포권을 올렸다.

 

"노선배님께서 아까?하신 말씀을 전부 들었습니다.

만약 이 홍옥으로 독상을 치료하시겠다면 소생이 기꺼이 빌려 드리겠습니다."

 

위중평은 약간 망설이다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저는 해독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만약 제가 필요하다면 서슴지 않고 해드리겠습니다."

 

형산홍옥은 본래 진기한 보물이라

우주광인은 이번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오지 않았는데

전혀 예상하지도 않게 위중평이 빌려 주겠다고 하며

독상까지 치료해 주겠다고 하자 우주광인은 일순 기뻐 어쩔 줄 모르고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으하하하… 고맙네. 소협이 이토록 자비스러우니 역시 혈의문의 자제답군."

 

그러더니 위중평의 손을 덥썩 잡아 끌었다.

 

"자, 이리 오게, 내 소개해 줄 사람이 있네.

이분이 바로 후면협심 풍진객 두대협이네."

 

남북 개방의 총방주 후면협심은 위중평이 나타났을 때부터

이미 강호를 진동시키고 있다는 소년의 위엄이 헛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인품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닌 것 같았고

수십 년 동안 명명주재는 계속 암중으로 무림의 존망을 장악하고 있는 까닭에

어느 문파도 감히 그의 구사옥부에 반항해 본 적이 없었고 후면협심 자신만 하더라도

남북 개방의 총방주이면서도 감히 명명주재와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나이 어린 소년이 과감히 나서서 큰소리까지 쳤으니

이 소식이 강호에 전해진다면 다시 한 번 파동이 일 것이다.

그것은 여태까지 아무도 넘보지 못했던 명명주재를 욕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후면협심은 소문만 듣다가 생각지도 않게 오늘 여기서 만나자

내심 크게 기뻐하며 위중평이 인사를 올리기도 전에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젊은이, 내 자네의 이름을 이미 소문으로 들어 익히 알고 있었네."

 

위중평이 얼굴을 붉히며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소규화가 급히 말을 받았다.

 

"사실 저 소규화도 오래 전부터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천리를 멀다 않고 쫓아온 것은 이 무시무시한 대결에

한 번 참관을 해보려고 왔는데 생각지 않게…"

 

후면협심 풍진객은 웃으며 소규화를 꾸짖었다.

 

"쓸데없는 말은 삼가해라.

넌 아직도 소협에게 인사를 드리지 않고 뭘 하고 있느냐?"

 

그러더니 급히 위중평에게 소개를 했다.

 

"이 애는 열도(劣道) 상조화(尙祖華) 라네."

 

위중평이 그 소기에 앞으로 나서서 포권을 취하려는데

갑자기 한 가닥 예리한 바람이 급진적으로 소혈(笑穴)을 향해

습격해 들어오자 위중평은 이것이 바로 소규화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암중에 진력을 운집시켜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소규화의 일지에 응수했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 때 두소경은 이미 견식이 넓은 인물이라 벌써 알아차린 지가 오래였다.

 

"이놈, 너의 그런 실력으론 위소협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상조화는 그 소리에 크게 얼굴을 붉히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 놓고

미안스럽게 웃었는데 위중평은 그의 그런 태도가 조금도 밉지 않았다.

이 때 옆에서 있던 우주괌인은 다시 광증을 이기지 못하고 재촉했다.

 

"사제지간의 말은 이제 모두 끝났는가?

자꾸 이렇게 노닥거리만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자리를 좀 옮겨 얘기를 해야 할 게 아닌가?"

두소경은 크게 웃어대며 한 쪽 눈을 껌벅거렸다.

 

"너무 그렇게 서두를 것 없네.

우리 먼저 자네의 광인거(狂人居)에 가서 부인을 치료하는 게 어떻겠나? "

 

"좋네. 그렇다면 지금 즉시 가세."

 

두소경은 우주광인이 자기 부인의 상세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즉시 광인거로 가기로 한 것이었다.

우주광인의 광인거는 바로 오룡하(五體河) 옆에 있었다.

네 사람은 이 날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이미 오룡하 옆에 도달하자

우주광인은 기쁨에 넘친 나머지 손님을 채 보살피지도 않고

즉시 홍옥을 들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후면협심 두소경이

그를 대신해 위중평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자리에 앉혔다.

이 때문이 가만히 열리며 청의시녀가 찻잔을 들고 들어왔다.

세 사람이 차를 마시며 잠시 머물고 있자니

우주광인이 실내를 쿵쾅거리며 들어와 마구 떠들었다.

 

"으하하하… 과연 절세의 귀중한 보물이군

이제 잠시 후면 독이 풀어질 것이니 위소협은 수고하지 않아도 되네."

 

이 때 후면협심이 갑자기 머리를 움켜 쥐며 실내를 데굴데굴 굴렀다.

 

"큰일났구나. 이 노규화의 병이 또 발작했어.

아이고 괴로워라. 소규화야, 어서 뒷일을 준비해라."

 

위중평은 깜짝 놀라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선배님, 대체 무슨 병이 발작했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우주광인이 참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며 발을 굴렸다.

 

"으하하하… 노규화, 너무 엉살부리지 말게.

내 이미 아이들을 시켜 주안상을 마련해라 일렀으니 어서 일어나게."

 

과연 우주광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청의시녀가 푸짐한 음식과 술을 가지고 들어오자

두소경은 술냄새를 맡기 무섭게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마구 음식을 집어 먹으며 마치 생전 술 구경을 못해본 사람처럼 술병 채로 들이키는 것이었다.

위중평은 그제야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후면협심은 그 사이에 술병에 있는 술은 모두 들이마시고 그제야

손으로 배를 쓸어내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 이 술이 내 목숨을 구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야."

 

우주광인은 두소경의 배를 채워주자

더 이상 그를 상관하지 않고 위중평을 향해 물었다.

"소협은 강호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어찌 해서 명명주재와 시비가 붙었는가?"

위중평은 알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저으며 대꾸했다.

 

"이 일은 사실 저도 잘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짐작해 보건대 아마 돌아가신 아버님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음, 영존께선 누구신가?"

 

"바로 신주검성 위무종입니다."

 

이 때 두소경이 갑자기 허벅지를 탁 치며 말을 가로채었다.

 

"이렇게 말이 나온다면 나도 명백하게 해줄 말이 있지."

 

위중평은 그렇지 않아도 많은 의문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어찌 이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위중평은 급히 노규화의 앞으로 다가가며 공손하게 물었다.

 

"노선배님께선 남북 개방을 장악하고 계시니까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선친께서 그 당시 협공을 당했던 일을 후배에게 자세히 알려 줄 수 있겠습니까?"

 

후면협심은 이 때 어느새 장난기 섞인 태도를 거두고 손을 흔들었다.

 

"먼저 의자에 앉게. 이 일은 한 마디로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니까.

우리 천천히 의논을 해보면 무슨 결과가 나올 것일세."

 

위중평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갔다.

후면협심은 술잔에 남은 술을 마시더니 천천히 입을 떼었다.

 

"왕년 군웅들은 장진도 때문에 협공을 하는 가장 비겁한 행위를 불사하면서

장백파를 전멸시켜 버렸다네.

물론 표면상으로 보기엔단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절대 단순한 것이 아니었네."

 

두소경은 여기서 일단 말을 끊고 헝클어지고 때가 덕지덕지 묻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다시 이었다.

 

"그 이유들 중 제일 첫째는 흑백 양도를 포함해 수십 개의 문파가 한데 공격해 왔다네.

만약 그 중에 주모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처럼 한꺼번에 동작을 개시했겠는가?"

 

노규화의 유구한 얘기는 갈수록 점점 열기를 띠어 갔다.

 

"더욱이 신주검성은 그들에게 공략을 받을 만큼 원한을 진 일이 한 번도 없었네.

그의 협명은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었지."

 

노규화는 술잔에 술을 채워 목을 적셨다.

 

"그리고 둘째로는 모두 삼흉일효가 영존을 살해한 흉수라지만

이 노규화는 분명히 단언할 수 있네.

그들은 지시에 따랐을 뿐 절대 주모자는 아니라는 것을."

 

두소경은 이번에 약간 침묵을 지키더니 무겁게 입을 떼었다.

 

"그리고 셋째로는 최근 명명주재는 포잔우사로 하여금

구사옥부를 쓰도록 분부를 하여 황금검을 쟁탈하려고

오르렁대는 군호들에게 색다른 명령을 내렸다네.

바로 자넬 죽일 수 있는 사람에게 그 금검을 상으로 주겠다고 말일세.

자네 한 번 생각해 보게.

그가 상고의 병기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자네를 죽이려는 그 흉심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이 일이 왕년 영존을 협공했던 일과 관계가 없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위중평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저의 부친을 죽인 진짜 원수는 바로 명명주재로군요."

 

노규화는 뒤이어 말했다.

 

"나 노규화는 단지 이렇게 분석했을 뿐 지금 상황으로선 단정할 수 없네.

그런데 자넨 그와 일 년 후에 옥탑단장인에게 가서 해결하기로 약조하지 않았나?

어쩌면 이 일의 내막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옥탑단장인일지도 모르네."

 

위중평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물었다.

 

"한데 그 불노서시는 적발교에서 무슨 인물인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지금으로선 홍모음효를 찾아내어 그에게 왕년에 있었던 일을 추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늙은이는 교활하기 그지없으니…

그 예로 사강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불사하고 적발교를 지하로 은둔시켰지 않습니까?

대체 무슨 꿍꿍이 속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위중평의 말이 끝나자 우주광인이 즉시 말을 받았다.

 

"불노서시, 그 늙은이는 천하에서 제일가는 요부라네.

하지만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어.

그 늙은인 이미 구음현살공을 터득해 이미 팔구 성의 공력을 격출시킬 능력이 있네.

내 생각으로 그 늙은이가 홍옥을 가로채었던 것은 자기의 구음현살공을

그것에다 풀어 청춘을 회복시키려는 것 같았네."

 

후면협심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네.

그녀는 자칭 불노서시라 했고, 또 태어날 때부터 음탕하기 이를 데 없었으니

어찌 청춘을 보유하고 싶은 욕심이 없겠나."

 

위중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느낀 바로는 그 늙은이가 물론 홍옥을 찾고 싶었지만

원수를 쫓는 데 더욱 성분을 짙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늙은이가 흥옥을 수중에 넣어 목적을 달성했다면 어째서 옥낭자를 납치해 갔고

또 애산에서 구궁팔괴진으로 저를 불태워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이어 위중평은 자신이 그 때 불노서시를 추격하다가 석진에 잘못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음입밀을 받아 겨우 살아났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후면협심 풍진객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무림의 사람 중 오리 밖에서 천리전음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밖에 안 되네.

내가 추측해 보건대 아마 그녀일 것 같지만…

아냐, 그녀는 이미 문을 닫고 청수를 했는데 어떻게 다시 강호에 출연했을까…"

 

위중평이 그녀가 누구인가를 막 추궁하려고 할 때 우주광인이 참견했다.

 

"노규화가 자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은 그녀 혼자만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네.

명명주재는 물론 음모까지도 모를 것일세. 만약 명명주재가 시켰다면

그녀는 그대로 있을 수 없지.

명명주재는 성질이 괴팍해 어느 사람을 선택해 언제 죽이라고 하면 꼭 죽여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큰일난다네."

 

우주광인의 이런 판단은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홍모음효는 돌아오자마자

즉시 항주 이상의 중요한 인물을 소집해 교내에 있는

각 교도를 전부 지하로 진입시킨 후 자신은 열 명의 중요한 인물만 거느리고

비밀리에 노산으로 가서 왕년에 사랑했던 노규화를 찾아갔던 것인데

숨어서 신공을 수련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행동을 취하려고 한 것이었다.

불노서시의 나이가 거의 일흔에 가깝지만

그 음탕스러움은 옛날과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 홍모음효가 없어지자

그녀는 즉시 흑심수사를 대응했다.

원래 흑심수사는 홍옥이 위중평의 수중에 있는 줄 알고

안미옥을 잡아와 위중평을 함정에 빠뜨리게 만들려고 했는데

의외로 그 홍옥이 안미옥의 몸에서 나오자

두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그녀를 즉시 한 동굴에 감금시켜 놓고

다시 산골짜기로 돌아왔으나 위중평이 미처 함정에 빠지기도 전에

이런 일들이 전부 세외고인에게 들켜 안미옥이 구출되었고

천리전음으로 위중평을 위험에서 건져내었던 것이다.

이제 불노서시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는 홍옥을 얻어 기쁨에 넘친 찰나 위중평이 나타나자

그대로 홍옥을 팽개쳤다.

하지만 자기를 대신해 그를 처치해 줄 명명주재의 사람이 있는 것에

안심하고 도주를 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그 세 방인을 만났다.

불노서시는 홍모음효가 명명주재에게 밀고 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위중평이 이미 명명주재와 약속이 있었다는 것은 추호도 몰랐다.

만약 일찍이 알았다면 불노서시가 제아무리 담이 커도 독계를 써서

위중평을 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이 때 위중평은 이미 명명주재가 자기 부친을 죽인 흉수라는 것을 알았다.

우주광인의 말을 듣고 나자 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명명주재가 얼마나 큰 재주를 갖고 있는지를 모르지만

어쨌든 저는 그 마두와 사생결투를 벌이고 말 것입니다.

동시에 왕년 백산목장의 빚도 갚을 것입니다."

 

두소경은 다시 술잔을 들어 목구멍으로 부으며 외쳤다.

 

"장하네. 자네의 그 호기는 우리 늙은이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게 만드네."

 

그러자 우주광인이 즉시 그 다음 말을 받았다.

 

"그러나 일은 역시 신중하게 하는 게 좋을 걸세.

명명주재의 세력은 절대 얕볼 수 없는 것이니까.

그의 공력이 이미 절정에 이른 것 외에도

그의 산하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있는지 모른다네.

내가 알기론 와도지왕은 멀리 밖에 있기 때문에

그의 지배를 안 받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강호 각파의 사람 중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이 없다네…"

 

우주광인의 말이 끝난 바로 그 순간,

교태롭기 그지없고 심신을 녹아들게 만드는 음성이 터져 나왔다.

"나 건곤일희(乾坤一姬)가 소협의 은혜를 입었으니

이 남은 몇 년을 소협을 돕는 데 힘을 들이겠어요."

세 사람의 얼굴에서 신광이 번득이는 동시에 어느새 문 밖에 녹의를 입은

한 아름다운 중년 부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미 중년의 나이로 접어 들었으나 옛날에는 몹시 아름다웠는 듯

그 윤곽하며 얼굴에 위엄과 아름다움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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