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35. 연적

오늘의 쉼터 2014. 6. 20. 17:11

35. 연적

 

 

 

위중평은 일정한 목적도 없이 뇌리엔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으로 가득차 있었다.

첫째, 명명주재는 무엇 때문에 한사코 자기를 죽이려 하는 것일까?

둘째, 복면소년과 황발괴인은 누구이며 자기와 무슨 원한이 있을까? 그들의 목적이 장문인의 자리를 노리는 데 있다면 구태여 강호에서 자기의 이름을 빌려 만행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 그들의 속셍은 대관절 무엇일까?

셋째, 은의 궁장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녀의 무공으로 미루어 보아 결코 추혼천녀만 못지않을 것이다.

그녀는 비록 자기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조사축상을 갖고 갔을까?

위중평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져 심지어 무공을 배워 강호에 발을 들여 놓은 일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아버告의 원수를 찾아 강호를 헤맨 지 어언 이 년, 그러나 진정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고원삼흉은 취도로 떠난 후 여지껏 아무런 소식도 없다. 아마 취도에서 세상을 떠난 것 같고 적발교주는 항주 영은사에 한 번 모습을 나타내더니 근래에는 행방이 묘연하여 심지어 적발교라는 명칭을 입 밖에 내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세상은 넓고 인해(人海)는 망망한데 어디에 가서 그들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위중평은 계속 앞으로 달리며 뇌리에 오만가지 생각을 다 떠올렸다. 그러자 문득 그는 구주풍인이 생각났다.

풍인은 자기의 아버님과 같은 배분으로서 비록 술을 빌려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완세불공(玩世不恭)한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지만 사실은 어느 누구보다 견식이 넓고 생각이 깊은 인물이다.

만약 그를 찾아간다면 어쩌면 일부분의 수수께끼나마 풀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고 구주풍인은 워낙 하늘을 날으는 학처럼 일정한 거처가 없지만 장산도주와는 친분이 두터웠기에 일단 장산도주를 찾아가면 풍인의 거처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장산도로 안미옥을 찾아갈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장산도로 간다는 것은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었다.

생각을 굳힌 위중평은 자연히 달리는 속도를 더욱 재촉해 밤새도록 최소한 삼사백 리를 벗어나 산동성(山東省) 경내(境內)에 있는 어느 작은 고을에 당도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듯이 우선 요기를 채우는 것이 시급한 위중평이 고을로 들어서 가까운 식당을 찾아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돌연 문 밖에서 여인의 수다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아이구… 힘들어 죽겠군. 주인장, 시간이 없으니 먹을 것이 있으면 얼른 좀 갖다 주세요."

여인은 문 밖에서부터 호들갑스럽게 외치며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위중평은 상대방의 음성이 매우 귀에 익어 힐끗 문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알고 보니 호들갑을 떠는 여인은 등에 철비파를 멘 바로 얼마 전에 위중평에게 독을 전개한 일이 있던 온랑자였다.

'저 독사 같은 여인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나타났을까? 이번 기회에 따끔한 맛을 보여줄까?'

위중평은 눈썹을 찌푸리며 스스로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온랑자가 고개를 돌려 위중평의 시선과 마주치자 처음엔 약간 멍해지는 표정이더니 곧 눈웃음을 치며 사뿐사뿐 앞으로 걸어왔다.

"호호호… 어디서부터 달려 왔기에 그렇게도 피곤한 기색이죠?"

위중평은 냉소를 치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전에는 아무 이유없이 나에게 독을 전개하더니 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곳에 나타났소? 분명히 말해 두겠지만 이번에 만약 다시 서투른 수작을 부린다면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오."

온랑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계속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호호호… 강호에서 명성이 쟁쟁한 위대협에게 누가 감히 헛된 수작을 부리겠어요?"

위중평은 그녀와 얘기를 길게 늘어 놓고 싶지 않아 손을 휘저으며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이제 더 이상 얘기할 것이 없소. 하여튼 당신네 천독문과 나 사이에 얽힌 일은 조만간에 매듭을 질 것이오. 특별히 일이 없다면 좀 멀리 떨어져 앉으시오."

온랑자는 앉은 자리에서 상반신을 묘하게 비틀며 눈웃음을 쳤다.

"너무 딱하군요. 천독문은 당신과 원한이 있겠지만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등의 원한도 없지 않아요? 젊은 남녀가 모처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더군다나 당신은 형산홍옥을 지니고 있으니 이젠 내가 독을 전개해도 아무 두려움도 없을 테고…"

위중평은 그녀의 말을 듣자 내심 섬뜩했다.

'강호의 소문은 과연 무섭군. 내가 형산홍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으니… '

그는 속으로 생각을 굴리면서 겉으로는 태연하게 웃었다.

"내가 설사 형산홍옥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천독문에 대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오. 나는 식사를 해야 되니 더 이상 말을 걸지 마시오."

온랑자는 위중평의 냉랭한 태도로 인해 신색이 울적해지며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음성을 낮추어 입을 열었다.

"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어요?"

위중평은 이 때 굶주린 배를 총총히 채우며 그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내둘렀다.

"나는 지금 바쁜 일이 태산같아 도저히 남을 도와줄 여유가 없소. 더욱이 천독문의 세력은 천하 방방곡곡에 산재돼 있는데 구태여 내가 도울 것이 있겠소?"

온랑자는 핵심을 꺼내기도 전에 거절을 당하자 몹시 실망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냉랭하군요. 모처럼의 부탁인데…"

"도와 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시간적인 여유가 없소. 꼭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나중에 시간이 있는 대로 도와주겠소."

온랑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녀의 심정은 모순 투성이었다.

사문의 명령대로 위중평을 살해하고 자옥선과 형산홍옥을 빼앗은게 그녀의 의무인데 한편 그녀는 암암리에 늠름한 위중평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 자신은 위중평에 대한 연정이 실행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원래 미묘한 것이므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도저히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이 즈음, 위중평은 이미 식사를 끝내고 수저를 놓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치루었다. 그리고 나서 온랑자를 가리키며 다시 냉랭하게 말했다.

"거듭 경고하겠지만 나한테 헛된 수작을 부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오. 내 나중에 시간이 있는 대로 도와 달라는 일에 협력을 해 주겠소."

위중평은 말을 끝내자 고개도 돌리지 않고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나갔다.

연일 거듭된 싸움과 길을 재촉하기 위해 분주한 탓으로 위중평은 피로가 쌓여 우선 가까운 객잔을 찾아 막 침상에 누우려 하는데 갑자기 창문 밖에서 인영이 번득이며 온랑자가 유령처럼 뛰쳐 들어오자 그녀의 느닷없는 출현에 절로 울화가 치밀어 벌떡 침상에서 일어나 냉랭하게 호통을 쳤다.

"아니… 이게 대관절 무슨 짓이오계속 거머리 같이 나를 쫓아다닐 작정이오?"

온랑자는 살살 눈웃음을 치며 위중평 곁으로 바싹 다가와 코맹맹이 소리로 흥얼거렸다.

"왜 그렇게 화부터 내시죠?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온 손님을 이렇게 푸대접하는 법도 있나요? "

위중평은 어처구니가 없어 도리어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알겠소. 천독문에서 이번에는 미인계를 쓸 모양이군. 그렇다면 내 어찌 굴러온 떡을 마다하겠소?"

여기까지 말한 위중평은 대뜸 힘있는 팔로 온랑자를 품 안에 안으며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좋군. 이 부드러운 감촉, 향긋한 내음, 오늘 단단히 인생의 쾌락을 즐겨야겠는데… 하하하…"

그는 비록 고의로 온랑자의 몸을 품 안에 껴안았지만 속으로 경계심을 추호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때 온랑자는 한 마리의 구렁이처럼 위중평의 품 안으로 파고 들며 동시에 두 팔로 위중평의 목을 감쌌고 비록 순간이지만 온랑자는 오래 전부터 갈망해 오던 달큼한 감정을 마음껏 만끽하는 한편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손에 끼고 있는 극독이 담긴 한철지환(寒鐵指環)으로서 몇 번이고 위중평의 목을 찌르려 했으나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역시 여자는 감정에 약한 동물인가. 그녀는 속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외쳤다.

'사조님, 어서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 이 사문의 원수를 죽일 수 있도록 용기를…'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다른 절규가 고개를 쳐들었다.

'안 돼! 내 어떻게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

감정과 의무감의 갈등은 계속 그녀의 뇌리를 맴돌며 엎치락 뒤치락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갑자기 창 밖에서 싸늘한 욕설이 들려왔다.

"이 더러운 계집, 이젠 아주 미쳐서 환장을 했구나…"

그 욕설과 함께 한 줄기의 금색 광채가 창문을 뚫고 독사가 혀를 낼름거리는 듯한 무서운 기세로 뻗쳐 왔다.

위중평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팔구통천지를 전개하자 지풍에 격중된 금색 광채는 이내 방향을 바꾸어 비스듬히 날아가 담벽에 꽂혔다.

위중평은 즉시 몸을 솟구치려 했으나 당황한 온랑자는 그의 허리를 꼭 잡고 다급히 외쳤다.

"그냥 가면 나는 어떻게 해요."

"어서 손을 놓지 못하겠소."

그러나 온랑자는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붙잡으며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위중평은 어쩔 수 없어 전광석화와 같이 지풍을 날려 그녀의 수혈을 찍어 잠들게 하고 밖으로 몸을 솟구쳤다.

그의 일시적인 호탕한 성격이 뜻하지 않은 풍류(風流)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마터면 날아온 암기에 목숨마저 잃을 뻔하지 않았는가.

위중평이 후회스러운 마음을 안고 곧 객잔을 빠져 나와 막 큰길로 접어드는데 맞은편에서 무생(武生)차림을 한 사람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다짜고짜 냉랭하게 말했다.

"귀하는 장백파의 장문인 위중평이 아니오? 할 말이 있으니 잠깐 걸음을 멈추시오."

위중평은 상대방이 천독문의 인면갈 오행이라는 것을 알고 대뜸 눈쌀을 찌푸렸다.

"대관절 무슨 일이오?"

그러나 오행은 대답을 하기 앞서 입가에 신비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귀하의 명예와 관계가 있는 일이니 심각하게 생각해 주길 바라오."

말을 끝낸 오행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앞장서 걸었다.

위중평은 내심 걸리는 게 있어 그의 뒤를 순순히 따랐다.

두 사람은 인적이 없는 어느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자 오행이 획 몸을 돌리며 말했다.

"만약 귀하의 아내가 다른 사람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면 귀하는 어떻게 하시겠소?"

위중평은 섬뜩해지며 즉시 반문을 했다.

"왜 갑자기 그것을 묻소?"

인면갈 오행은 코를 벌름거리며 냉소를 쳤다.

"시치미를 떼도 이제는 소용이 없소. 당당한 일파의 장문인이 남의 아내를 겁탈하는 파렴치한 일을 하다니… 만약 그 일이 강호에 알려진다면 귀하는 무슨 면목으로 사람을 대하겠소?"

위중평은 억울한 누명에 불끈 화를 내며 냉랭하게 호통을 쳤다.

"닥치시오! 나는 남부끄러워할 일을 한 적이 없소."

인면갈 오행도 덩달하 성난 음성으로 외쳤다.

"귀하는 나의 아내인 온랑자를 겁탈하고서도 이제 와서 발뺌을 할 작정이오?"

"아니… 그따위 터무니없는 소리를…"

위중평은 어이가 없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반면에 오행은 갈수록 기세가 당당해졌다.

"터무니없는 소리라니? 내가 친히 두 눈으로 보았는데도 딴전을 피울 생각이오? 하지만 절대 소문을 내지 않을 테니 아무 염려 마시오. 대신…"

여기까지 말한 오행은 눈동자에 이상한 광채를 빛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신 내가 제시하는 조건을 한 가지만 들어 주시오. 귀하의 능력으로선 간단히 해치울 수 있는 조건이오."

위중평은 일시적인 장난으로 인해 이런 엄청난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해 이를 부드득 갈며 단호하게 외쳤다.

"뭐라고 해도 좋소. 나는 절대 파렴치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만은 사실이오."

인면갈 오행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다시 신비스럽게 웃었다.

"설사 귀하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일단 강호에 소문이 퍼져 그 소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계속 전파된다면 없는 일도 사실화될 것이오. 하지만 귀하가 내 조건을 들어 준다면 아무런 염려도 할 필요가 없소."

위중평은 억지를 부리는 사람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대관절 무슨 조건인지 어서 얘기해 보시오."

그러자 인면갈 오행은 잠시 망설이며 다시 주위를 유심히 훑어보고 나서 비로소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귀하는 천독문과 원한이 있지 않소? 만약 귀하가 하루속히 나의 스승인 천독성모를 죽여 준다면 우리는 피차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으로 돌리겠소."

위중평은 상대방이 이러한 조건을 제시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저런 짐승만도 못한 놈…'

위중평은 속으로 욕설을 하며 이내 얼굴에 살기를 띠었다.

"그 조건이라면 절대 들어 줄 수가 없소."

그가 한 마디로 거절을 하자 오행의 안색은 금세 싸늘하게 변했으나 그것은 순간에 불과하고 이내 장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거절해도 좋소. 하지만 나 인면갈 오행은 결국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오. 나중에 귀하는 필시 후회하게 될 테니 두고 보시오."

위중평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싸늘하게 호통을 쳤다.

"만약 터무니없는 일로 나의 명예를 더럽힌다면 당신은 결국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명심하시오."

인면갈 오행은 행여나 위중평이 이 자리에서 살수를 전개할까봐 두려워 얼른 머리를 긁적이며 교활하게 웃었다.

"우선 귀하께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겠소. 우리가 다시 만날 때 가부간의 대답을 해 주시오."

말을 끝낸 그는 곧 몸을 돌려 골목을 빠져 나갔다.

위중평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신법을 전개해 고을 밖으로 달렸다.

 

 

위중평은 시급히 구주풍인을 만나고 싶은 일념에 길을 재촉해 이날 해변에 위치한 봉래현(蓬萊顯)에 당도했다.

이곳에서 바다만 건너면 바로 장산도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그는 식사를 하는 것도 젖혀 놓고 곧장 부두로 달려가 사공에게 장산도로 갈 것을 부탁했다. 바로 그 때 이십사오 세 가량 돼 보이는 어부차림을 한 젊은 이가 가까이 다가와 위중평에게 공수의 예를 취했다.

"실례합니다만 무슨 일로 장산도를 찾아가는지 말씀해 줄 수 있겠소?"

비록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위중평은 상대방의 용모가 단정하고 언행도 공손한 것을 보고 역시 공수를 하여 대답했다.

"나는 장백파의 위중평이라 하오. 실은 장산도주를 만나뵙고 싶어 찾아가는 길이오."

젊은 어부는 그의 이릉을 듣자 안색이 이내 변했다. 그러나 곧 정상을 회복하고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의 성은 빙(憑)이라 하오. 바로 장산도에 살고 있는 어부이니 형씨가 원한다면 태워다 드리겠소."

위중평은 마치 잘됐다는 생각에 이내 수락했다.

"그럼 우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겠소."

그리고는 즉시 젊은 어부를 따라 가까운 곳에 놓여져 있는 돛단배에 올랐다.

젊은 어부는 원래 말수가 적은지 별로 입을 열지 않고 아주 익숙한 솜씨로 배를 몰아 쏜살같이 맞은편에 있는 작은 섬으로 질주했다.

위중평은 생전 장산도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뭇 호기심이 서린 눈빛으로 주위의 풍물을 감상했는데 잠시 후 배가 정박한 곳은 전혀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섬이었다.

장산도라면 인적이 없을리 만무 하거늘 어찌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위중평은 저절로 의구심이 생겨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빙형, 혹시 노선을 잘못 택한 게 아니오? 어째 아무도 보이지 않소?"

어부는 배를 재촉해 육지에 붙이며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그렇소. 이 섬에선 전혀 인적을 찾아볼 수 없소. 그래서 데려온 것이오."

위중평은 그의 말을 듣자 내심 깜짝 놀라며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고 젊은 어부의 정체가 무엇이며 자기를 무엇 때문에 이곳에 데려 왔는지 종잡을 수는 없지만 심상치 않은 목적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지만 위중평은 상대방을 별로 안중에 두지 않고 곧 냉랭하게 반문을 했다.

"이게 무슨 뜻이오? 만약 나에게 불리한 행동을 취할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일 것이오."

말을 끝낸 그는 즉시 몸을 솟구쳐 육지에 올랐다.

젊은 어부는 쓴웃음을 지으며 배에서 내려 천천히 위중평에게 다가왔다.

"오해는 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을 해칠 흉심이 없소. 우선 내 자신을 고백하겠는데 빙염(憑炎)이라 하며 장산도주는 바로 나의 스승님이오."

상대방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위중평은 멍해지고 말았다.

"귀하가 정말 장산도주의 제자라면 손님을 곧장 장산도로 안내하지 않고 왜 이곳으로 데려 왔소?"

빙염은 잠시 주춤하더니 무슨 단호한 결심이라도 내린 듯 아랫 입술을 굳게 깨물며 대답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솔직히 말해 우리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죽어야지만 문제가 해결될 것 같소. 그래서 공평한 생사의 대결을 하기 위해 귀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오. 하지만 내가 어떤 음모를 꾸며 놓았다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이 섬에는 우리 두 사람뿐이니 공평한 대결을 할 수 있을 것이오."

위중평은 상대방의 말을 듣자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나와 귀하는 오늘이 처음인데 무슨 해결하지 못한 일이라도 있다고 목숨까지 걸고 싸움을 할 필요가 있다는 거요?"

빙염은 괴로운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음, 이것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인 것 같소. 도저히 인력으로선 만회할 수 없는 문제이니 더 이상 묻지 말고 평탄한 곳으로 갑시다."

말을 끝내자 섬 한복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위중평은 멍하니 그의 뒤를 따르며 의혹에 잠겼다.

빙염이란 자의 인상이나 언동으로 미루어 별로 간교한 자는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자기와 생사의 대결을 하자는 것일까?

이 때 빙염은 평탄한 모래 사장에서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자, 어서 출수를 하시오. 당신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내 자신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 손에 죽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오."

위중평은 빙염에게 필시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돼 얼른 손을 흔들며 정중하게 말했다.

"우선 냉정을 되찾으시오. 대관절 무슨 일인지 사연을 털어 놓은 후에 싸워도 늦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빙염은 단호하게 고개를 휘둘렀다.

"그럴 필요는 없소. 이 일에 대해 나는 이미 오랫동안 생각을 해왔소. 결국 우리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죽어야만 이 일이 해결된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오. 마음놓고 출수를 하시오. 내가 죽은 후 시체를 이곳에 묻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니 귀하는 절대 장산도주와 원한을 맺게 되는 일이 없을 것이오."

위중평은 비록 남달리 영특하지만 한사코 결투를 청하는 상대방의 속셈을 알 수 없었다.

"빙형,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소. 빙형과 나는 비록 초면이지만 친구로 사귀고 싶소. 그러니 무슨 사연이 있으면 속시원히 말씀해 보시오."

빙염은 위중평의 진지한 태도에도 마음이 동요되는 기색이 없었다.

"더 이상 물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오, 내 마음은 이미 굳어졌으니 어서 출수를 하시오."

위중평은 근래에 거듭되는 짜증스러운 일로 인해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는데 상대방의 완고한 태도에 드디어 성질이 폭발해 돌연 장소를 터뜨렸다.

"좋소. 빙형이 정녕 싸움을 고집하겠다면 분부대로 몇 수 가르침을 받겠소."

말을 끝내는 즉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빙염은 이미 만반의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에 즉시 몸을 옆으로 비키며 연거푸 세 가지 초식을 전개했다.

장력이 웅후하고 무게가 담겨 있는 것으로 미주어 무학에 대단한 심혈을 기울였던 것 같았으나 상대방의 실력은 도저히 자기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내 간파하자 구름에 달가듯 몸을 표연히 움직이며 가볍게 세 가지 초식을 피했지만 적시에 반격을 하지 않았다.

빙염은 처음 전개한 세 가지 초식이 헛되자 쉬지 않고 계속 일 초 일 식을 열심히 펼쳤고 그리하여 약 사십여 초식을 전개했지만 위중평은 시종일관 경묘한 신법으로 몸을 피하며 여전히 한 초식의 공격도 전개하지 않았다.

빙염은 도저히 자기의 실력으로선 상대방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갑자기 공격을 거두고 뒤로 물러나며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씨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일부러 나에게 자비를 베풀 필요는 없소. 이번에는 무기로써 겨루어 보아야겠소."

말을 끝내자 신쳔을 솟구쳐 타고 온 배에서 한 자루의 시꺼먼 광채가 번득이는 철장(鐵漿)을 꺼내와 큰소리로 외쳤다.

"어서 검을 뽑으시오. 곧 공격을 전개하겠소."

위중평은 마지못해 허리에서 자옥선을 꺼내 펼치며 형식적으로 외쳤다.

"자, 그럼 어서 출수를 하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빙염은 수중의 철장을 떨치며 획,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고 다음 순간 한 줄기의 오광(烏光)이 벼락치는 소리를 은은히 곁들여 허공을 가로지르며 위중평을 향해 곧장 뻗어왔다.

위중평은 얼른 몸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검은 광채가 바싹 면전으로 뻗어올 때를 기다려 맹렬히 상반신을 뒤로 젖히며 수중의 자옥선을 잽싸게 상대방의 손목을 향해 찍어갔다.

빙염의 무기를 떨어뜨리는 게 그의 목적이었으나 빙염은 철장을 사용하는데 있어 솜씨가 상상외로 뛰어나 자옥선이 손목을 향해 찍어오자 이내 손목을 떨쳐 유성이 떨어져 내리는 기세로 횡소천군(橫掃千軍)의 초식을 전개해 비스듬히 후려쳤는데 실로 빠른 변초여서 주위는 이내 걷잡을 수 없는 광염에 휩싸였다.

위중평은 어쩔 수 없는 상황 하에서 옷자락을 펄럭이며 처음으로 일 초의 반격을 전개하는 동시에 바싹 땅에 몸을 붙이다시피 회전하며 위기를 모면했고 여전히 경묘한 신법을 전개할 뿐 반격을 가하지 않았다.

빙염은 스물 네 가지의 초식으로 형성된 풍뢰장법(風雷漿法)을 반복해서 두 번이나 펼쳐냈지만 위중평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하자 더 이상 의욕을 잃어 별안간 철장을 거두고 뒤로 석 자 가량 물러나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씨는 비록 나의 사정을 봐주기 위해 출수를 하지 않았지만 이번 싸움은 엄연히 내가 패배했소…"

말을 끝낸 빙염은 홀연 철장을 번쩍 들어 올여 자신의 천령개를 향해 맹렬히 내리치는 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심산이었기에 위중평은 그의 뜻하지 않은 당돌한 행동을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빙형, 그게…"

하고 외치는 동시에 가장 빠른 속도로 팔구통천지를 전개했다.

그러자 즉시 날카로운 금속성이 들리며 사오십 근이 넘는 철장은 진력에 의해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어 위중평은 신형을 날려 빙염 앞에 떨어져 내리며 눈썹을 찌푸리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빙형, 그게 무슨 당돌한 짓이오? 설사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더라도 털어 놓고 서로 상웠해야 될게 아니겠소?"

비록 극한 감정으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하던 사람들도 일단 죽음 일보 직전에서 다시 생명을 되찾으면 그 생명의 귀중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는데 빙염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위중평의 진지한 태도에 감동되어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비단 무공에 있어 당신에게 패했을 뿐 아니라 기량면에서도 역시 패배자임을 시인하오. 한 가지 묻겠는데 당신은 무엇하러 장산도로 왔소?"

위중평은 아무 생각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구주풍인의 거처를 알고자 찾아온 것이오. 극리고 옥누님도 만나보고 싶었고…"

빙염은 여기까지 듣자 신색이 다시 울적해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은 옥매와 어떤 사이인지 말해 줄 수 있겠소?"

"다정한 남매사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오."

빙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위중평의 표정을 살피며 다시 말했다.

"그녀는 당신을 무척 좋아하고 있는 것 같소. 만약 도주께서 당신에게 혼인 문제를 제시한다면 당신은 승낙을 할 생각이오?"

위중평은 빙염이 자기에게 결투를 청한 이유를 이제서야 대충 짐작할 수 있었고 알고 보니 빙염은 안미옥을 전부터 열렬히 사랑해 온 것 같았다. 그래서 위중평의 출현으로 인해 충격을 받아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차지할 수 없다는 원칙하에 결투를 청한 것이 분명했기에 속으로 생각을 굴리며 겉으로는 정색을 하고 그의 질문에 답했다.

"빙형은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와 옥누님은 단지 남매같은 순수한 우정이 있을 뿐 그 이상의 감정은 없소. 그리고 도주는 나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으니 혼인에 관한 문제는 제시하지 않을 것이오. 설사 그런 문제가 대두된다 해도 나는 원수를 갚기 전에 남녀간의 사사로운 감정에 전혀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몸이니 승낙을 할 수 없소."

빙염은 그의 말을 듣고 나서 안색이 계속 변하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위중평은 그의 눈동자에 다시 의욕의 생기가 감도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빙염은 위중평의 눈동자를 주시하며 갑자기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위형,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 서로 결의형제를 맺는 것이 어떻겠소?"

위중평은 본시 호탕한 사람인지라 이내 대소를 터뜨리며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오. 그리고 내가 바라던 바이오."

여기까지 말하더니 그 자리에서 몸을 숙여 읍을 하며 말했다.

"형님, 이 아우가 진심으_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고 정중히 인사를 올리다가 역시 그의 팔을 잡으며 대소를 터뜨렸다.

"형제, 형식적인 절차는 생략하기로 하세.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위중평이 받아 말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우리 두 사람만이 알 뿐 절대 제삼자에게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어 두 젊은이는 다시 배에 올라 질풍같이 장산도를 향해 질주했다.

얼마 후 장산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 섬은 비록 평범한 섬이었지만 장산도주의 심혈로 인해 매우 번영해졌다.

배가 부두에 닿자 빙염은 주위에 있는 어민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고 이 때 안미옥은 이미 위중평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멀리서부터 달려오며 큰소리로 외쳤다.

"평제, 무슨 바람이 불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죠?"

그녀는 오랜만에 상봉하는 반가움으로 인해 가까이 달려오자 덥썩 위중평의 손을 잡았다.

위중평도 역시 반가워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옥누님, 좀 더 일찍 올 생각이었는데 계속 귀찮은 일이 생기는 통에 도저히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안미옥은 곱게 그를 흘겨보며 갑자기 음성을 낮추었다.

"저의 아버님은 당신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 나중에 만나 뭐라고 해도 좀 참으세요."

위중평은 태연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 나도 벌써부터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상세하게 설명하여 오해를 풀도록 하지요."

그들 두 사람이 계속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빙염은 어부들과 잡담을 하고 있었다.

안미옥은 위중평과 얘기를 나누다가 홀연 사형인 빙염의 생각이 떠올랐는지 음성을 높여 외쳤다.

"사형, 두 분을 서로 소개해 드리겠어요."

빙염은 가까이 다가와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개할 필요는 없소. 그와 나는 이미 결의형제를 맺었소."

"네? 결의형제라고요?"

안미옥은 놀라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두 분 언제부터 아는 사이죠?"

위중평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바로 오늘 알게 되었습니다."

안미옥은 참새마냥 깡충깡충 뛰며 매우 기뻐했다.

"그것 참 잘 되었군요. 자, 어서 들어가세요. 풍백부님도 오셨어요."

그녀가 풍백부라고 한 사람은 물론 구주풍인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얼른 그녀를 따라 정면에 있는 누각의 대청으로 들어갔고 빙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대청 안으로 들어갔다.

이 때 대청 안에는 이미 간단한 주안상을 차려 놓고 구주풍인과 장산도주가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고 있었는데 구주풍인은 위중평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즉시 목청을 높여 외쳐댔다.

"이놈, 네가 그동안에 저지른 일을 낱낱이 알고 있다. 웬일로 이곳에 나타났느냐?"

한편 장산도주는 가볍게 냉소를 치며 심지어 위중평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자 모독감을 느꼈고 그 감정은 급기야 분노로 둔갑했다.

"풍숙부님, 상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내가 이곳에 찾아온 이상 엄연히 손님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인이 저렇게 거만한 태도를 취하며 손님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세상에 이런 식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법도 있습니까?"

구주풍인은 곁눈질로 장산도주를 힐끗 쳐다보며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너는 흑옥인마와 결탁해 만행을 지질렀으며 또한 추혼천녀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치사하게 사랑을 구걸했고, 더욱이 무림 각 문파의 제자들을 살해하고도 여기에서 손님 대접을 바랬단 말이냐?"

위중평은 구주풍인의 말을 듣자 어처구니가 없어 한동안 멍해져 있다가 낭랑한 음성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누구와 사귀든 그것은 내 자유이니 아무도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십대 문파의 제자들을 살해했다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이 나로 위장해 행한 일입니다. 그 일에 대해선 십대 문파의 장문인들도 이미 진상을 알았습니다. 그 외에는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으니 만약 이곳의 주인이 나를 환영하지 않겠다면 당장 떠나가겠습니다."

말을 끝내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대청 밖으로 걸어나가자 빙염과 안미옥은 얼른 그의 뒤를 쫓아가 간신히 끌고 들어왔다.

장산도주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공수의 예를 취했다.

"다른 사람이 자네의 이름을 빌려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면 노부가 그동안 자네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이제는 깨끗이 잊게."

위중평은 상대방의 태도가 변한 것을 보자 역시 공손히 몸을 숙여 답례를 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도리어 제가 무례한 행동을 취했으니 용서를 빌겠습니다."

이렇게 되자 분위기는 금세 부드러워져 일행은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위중평은 절벽에서 떨어진 이후 있었던 일을 소상히 얘기해 주었는데 취도에게 있었던 그 아슬아슬한 일막을 얘기할 때 안미옥은 눈이 휘둥그래져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제서야 모두들 강호의 온갖 불미스러운 소문은 모두 복면소년에게 의해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장산도주는 위중평을 대접하기 위해 다시 푸짐한 주연을 마련했는데 안미옥은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의 방으로 돌아갔다.

술이 삼순배 돌고 위중평이 막 구주풍인에게 몇 가지 의문점을 물으려는데 별안간 대청 밖으로부터 한 시녀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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