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25. 혈투

오늘의 쉼터 2014. 6. 20. 16:31

무흔검(無痕劍) 2

 

25. 혈투 

 

 

정신을 가다듬고 벌떡 일어난 위중평은 그제서야 한 노화상이 자기 등 뒤에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화상은 바로 항주에서 자기에게 쪽지를 준 노화상이었다.

노화상은 위중평이 깨어난 것을 알고는 서서히 두 눈을 뜨더니 무기력하게 말했다.

 

"빈승이 소시주에게 용호구환단을 복용시켰는데, 몸은 좀 어떻소?"

 

위중평이 진기를 끌어올려 보니 평상시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자

급히 앞으로 나가 심심히 예를 취했다.

 

"대사의 하늘과 바다같은 은혜에 소생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노승은 가볍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인사 따위는 그만하고 거기 앉으시오. "

 

위중평은 주위를 샅샅이 둘러보았으나 집안에 아무것도 없어

그냥 노승의 맞은편 바닥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노승은 위중평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가볍게 탄식을 터뜨렸다.

 

"소시주께선 과연 인중지룡이시군요."

 

위중평은 노승의 칭찬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다만 이 신비한 노승의 내력에 대해서 가장 궁금했다.

 

'도대체 이 노승의 정체는 무엇일까?'

 

몹시 궁금한 듯 고개즐 갸웃거리다가 이내 공손하게 물었다.

 

"대사께서는 너무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소생이 대사님께 여쭙건데 과거에 대사께서도 무림의 인물이셨습니까?"

 

"노승은 백공이라고 하오.

 아!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갔으니 그 얘기는 그만 합시다."

 

그의 탄식 소리는 의미심장했으며 영웅의 한숨 소리 가운데는

과거의 말 못할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의식할 수가 있었고

그의 창백한 안색을 보고서 이 노승에게 비참한 과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이 노승이 옥탑단장인에게 갖다 주라는 쪽지의 일이 생각나 새삼스럽게 물었다.

 

"옥탑단장인의 공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은데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사께서는

분명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백공대사의 얼굴에는 한두 번의 경련이 일어났다.

그러더니 다시 탄식을 터뜨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 여자는 악의 뿌리와 같으며 흉악하기가 이를 데 없는 사람이오.

노승은 온갖 힘을 다해 그를 무찌르려고 했지만 역시 부족하였소.

부탁하건데 삼 년 후 다시 이곳으로 와서 나와 힘을 합쳐 일을 완수하는 것이 어떻겠소?"

 

위중평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대사의 분부이신데 소생이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백공은 몸 옆에서부터 자옥선을 꺼내주면서 물었다.

 

"소시주는 이것을 어디서 얻으셨소?"

 

위중평은 자옥선을 받아 들고는 그것을 얻은 경과를 자세하게 얘기해 준 후

궁금한 듯 다시 물었다.

 

"대사께선 자선마군이 어떠한 인물인지 알고 계십니까? "

 

"악인 중의 악인이오."

 

"그렇다면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겠군요."

 

"칼을 내려 놓기는 했지만 관 뚜껑을 닫지 않은 이상 어찌 정론(定論)을 내릴 수가 있겠소?"

 

"그렇다면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까?"

 

"아직 살아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죽었다고 할 수도 있소."

 

위중평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하여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물었다.

 

"혹시 칼을 내려 놓고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닙니까?"

 

백공노승이 그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소시주께서 자신의 진전을 얻었다면 이 노승에게 몇 수 보여 주지 않겠소?"

 

위중평은 잠시 생각에 장기러니 잽싸게 일어서서 삼 초의 신법을 전개해 보였다.

그가 다 전개하고 나자 백공노승은 입 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과연 고명하시구려, 아주 훌륭하오."

 

그러더니 다시 두 눈을 감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중평은 더 이상 말을 시킬 수가 없자 당장 이곳을 떠나 기로 마음먹었지만

이 노승이 무림의 선배이며 일대의 고승인 데다가 또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인데

어찌 아무 말 없이 떠날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그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운공조식을 이 기회에 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즉시 운공조식을 시작했다.

이렇게 얼마쯤 지나자 그는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가 운공조식을 완전히 끝냈을 때는, 이미 다음날 아침이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노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위중평이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백공대사는 검을 쥔 채 바위 위에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위중평이 가까이 다가서자 노승은 서서히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소시주! 노승은 근래에 와서 천룡장법을 깨우쳤는데 어떤지 좀 봐주시오."

 

그러더니 이내 천룡장법을 전개해 냈다.

 

순간-.

거센 바람과 우뢰와 같은 경기가 일어나면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는데

그 옆에서 이것을 지켜 보고 있던 위중평은 기혈이 역류하고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을 느껴

이내 진기를 억제하면서 주의깊게 관찰했다.

온 정신을 집중시켜 넋을 잃은 채 이 광경을 지켜 보고 있을 때 갑자기 경천동지할

폭음과 함께 노승의 마지막 일 장이 거대한 바위를 가격해 산산조각을 내고 말았다.

위중평은 공손히 예를 취하더니 말을 꺼냈다.

 

"대사께선 과연 개세적인 신공을 지니고 계십니다.

이 천룡장법은 천하무적의 장법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줄 압니다."

 

백공대사는 씁쓸하게 웃어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천하의 그 어떠한 공격이라 해도 승부에 너무 치우쳐서는 안 되오.

만약 악인이 이것을 전수받으면 비단 세상을 구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천하에 악의 뿌리를 내릴 수가 있을 것이오.

바로 옥탑단장인이 가장 명확한 예가 아니겠소?"

 

위중평은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의 말씀이 정말 옳습니다."

 

이 때 백공대사의 두 눈에서 괴이한 광채가 폭사되어 나왔다.

 

"소시주, 우리가 만난 지금 나는 벌써 말년에 접어 들었소.

서로의 정을 생각해서 나의 공력을 소시주에게 전수해 드리고 싶은데

소치주는 여기서 며칠 더 기거할 수가 있겠는지요?"

 

이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기에 너무나 기뻐 잠시 동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백공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처해 할 것은 하나도 없소. 내가 소시주에게 공력을 전수해 주는 것은 무슨 명분을

바라고자 하는 것이 아니오. 소시주께서 나의 공력으로서 강호의 무림에 이익이

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소."

 

이렇게 해서 위중평은 백공대사와 함께 암벽에 있는 초가집에서 반 년 동안 기거하면서

공력을 완전히 전수받았고 반 년 동안의 시간이 짧은 것은 아니었지만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수 없이 짧은 것이어서 백공대사의 무공무진한 공력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만 골라서 전수해 주었다.

반 년이 지난 지금 위중평은 공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진보되었으며 보통 사람이

평생을 연마해도 다 못할 공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 날 위중평은 갑자기 흑옥인마와의 약속이 떠올라 즉시 이 일을 백공대사에게 얘기해 주고 나자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시주께서 이렇게 약속을 중요시 하니 노승은 결코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소.

그러나 될 수 있으면 이궁에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만약 꼭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 가더라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오.

 내 말을 명심하시오…"

위중평이 공손히 대답하자 백공대사는 계속해서 말했다.

"노승은 내일부터 폐관하여 삼 년 동안 상승의 불법을 잠수해야겠소. 이것은 옥탑단장인을 도화시키기 위한 것이오. 소시주께서도 삼 년 후를 명심해서 기억해 주어야겠소."

위중평은 삼 년 후 재회를 다짐하고 이내 작별을 고하며 초가집을 떠나는 그는 일순 갖가지 궁금한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한 후의 사람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막 부흥을 기도했던 장백파가 다시 소멸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화산파의 청허형께서는 동문의 도의적 관계에 필시 모든 사람을 동원해 적발교와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추혼천녀가 자신이 죽었다고 해서 다시 살겁을 전개하지는 않았는지… 또 안미옥과 금루선연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순간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자 골치가 아팠다.

그러나 모든 잡념을 버리고 우선 흑옥인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그는 물론 지금의 항주가 전번 북고봉에서의 약속 때보다 더욱더 긴장되었고 험악해진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원인은 흑옥인마가 무의식중에 옥탑장진도와 이공금시를 얻었다는 소식이 강호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었으나 흑옥인마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조금도 숨기지 않았고 공공연하게 동해 연안 일대에 그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배를 띄울 지점과 모든 공구를 준비했지만 그의 일거일동은 모두 무림인의 감시 속에 있는 것이었는데 자신은 이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가 태연자약하게 항주로 와서 위중평을 기다리고 있자 그를 처치하려는 모든 사람들은 마치 사냥개와 같이 그의 뒤를 따라 항주까지 온 것이고 이 사람들 중에는 많은 흑도의 마두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동시에 해외에서 온 마두들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가 무서운 솜씨를 가진 파들로 삼흉사강은 그들의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위중평은 길을 재촉하면서 강호인들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이 사실을 듣고는 필시 중대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직감했다.

'혹시 장진도를 쟁탈하기 위해 무림인들이 모여 드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속으로 생각한 그는 새로 사귄 친구가 매우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는 힘을 다해 영은사를 향해 달려갔다.

겨울의 낮은 매우 짧아 위중평이 영은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평상시에 향불이 끊임없이 피어 오르던 영은사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으며 사람이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내심 이상하게 느긴 위중평은 즉시 몸을 날려 대전 지붕 위로 올라가서 주위를 샅샅이 살펴보고 순간 그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여 이내 몸을 날리며 뒷산을 향해 전광석화와 같이 폭사되어 갔다.

한편-.

위중평이 대전에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니 뒷산에 자그만치 칠팔십 명이 흑옥인마를 포위하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사오 장 높이의 옥상에서 하늘을 가로지르며 화살과 같이 흑옥인마의 옆에 와서 멈췄다.

"형님, 그간 잘 있었습니까? 소제 위중평이 왔습니다."

흑옥인마는 그가 온 것을 보고 내심 몹시 기뻤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하하하하, 평제 잘 왔다. 내 이놈들을 처치한 후 축배를 들자."

그는 아주 가볍게 말했다. 근본적으로 이 사람들을 눈에도 두지 않는 표정이었다. 위중평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좋소, 기다리겠소…"

말을 하며 사방을 바라보다 깜짝 놀라 중단하고 말았다.

사방에 있는 군호들은 보통 인물들이 아니었다.

천남 각파의 괴수이인, 홍포천관, 독각신병 및 대피교주, 고원삼흉 등 모두 온 것을 보고 오늘 밤의 결투는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흑옥인마를 십분 경계하는 눈치 같아서 모든 사람은 전부 오륙 장 밖에서 있으며 감히 함부로 접근을 못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서 대치 국면이 벌어졌다.

그런 이 때-.

위중평이 옴으로써 많은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비록 무림의 햇병아리지만 군호들은 절대로 그를 얕보지는 못했다. 그 중에도 홍모음효가 더욱 겁을 집어 먹으며 내심 생각에 잠겼다.

'이놈이 아직도 죽지 않았군! 또 어떻게 해서 흑옥인마를 친구로 사귀었지…'

흑옥인마는 모두들 손을 안 쓰는 것을 보자 내심 참지 못하고 일진의 음산한 냉소를 치며 말했다.

"너희들이 전부 나의 장진도(藏珍圖)를 강탈하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자! 어서 덤벼라!"

괴수이인은 이 말을 듣자 큰 머리통을 흔들며 앞으로 나섰다.

"네가 아무리 지장음공을 터득했지만 나의 오독도화장만은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흑옥인마는 하늘을 향해 광소를 터뜨리며 조롱조로 말했다.

"흥! 가소롭도다."

바로 이 때-.

홍포천관 사도단이 앞으로 나서며 흑옥인마를 향해 포권을 취한 채 말했다.

"천남 무림은 존가와 충돌이 없었을 뿐 아니라 또한 존가 한 사람이 보물을 지니기 너무 힘들지 않소? 그러니 내가 천남 무림을 대표하여 당신하고 함께 동행하겠소."

흑옥인마가 이렇다 할 의사표시를 하기도 전에 군중 틈에서두 인영이 걸어 나왔다.

대피교주는 부채를 가볍게 흔들며 홍포천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도단,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당신 자신에게 물어 보시오. 천남 무림에 그럴 힘이 있소"

괴수이인은 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힘이 있건 없건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 있소?"

대피교주는 냉랭히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탁 까놓고 얘기하지만 만약에 진짜로 당신들의 천남 각파더러 상줄에 올라서게 하면 우리는 그저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란 말이오?"

질세산인이 옷소매를 거두고 대뜸 소리쳤다.

"사람도 귀신도 아닌 너는 대체 누구냐? 아직도 꺼지지 않고 뭘 하느냐?"

말이 끝나자마자 광풍을 일으키며 이미 괴수이인에게 덮쳐갔다. 괴수이인은 대노하여 폭음이 발출한 경풍을 향해 오독도화장을 격출해 냈다.

"우르릉 쾅!"

일진의 거센 폭음 소리가 울린 후 쌍방은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났으나 찔세산인은 재빨리 중심을 잡고 재차 공격하려 달려갔다.

이 때-.

흑옥인마가 일진의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마치 먹과 같이 검고 차가운 경기를 일으키며 성난 파도처럼 덮쳐왔다.

그들의 이런 태도가 안하무인격인 것 같아 흑옥인마로 하여금 선천적인 성질을 일으키게 하였는지 돌연, 그는 삼십 년 동안 연마한 지장음공을 발해 냈다.

질세산인, 괴수이인은 일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동시에 두 사람이 간신히 협력하여 이 일 장을 받아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괴수이인이 나동그라지며 겨우 남은 경력을 피했으나 얼굴은 창백하며 입 가에는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미 내상을 입은 듯 선혈을 토하며 쓰러져서는 간신히 가슴의 통증을 참으며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흑옥인마의 두 눈은 살기로 충만되어 두 번째로 몸을 날려 또 대피교주와 홍포천관을 향해 장력을 격출해냈다.

대피교주는 장풍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즉시 부채로 후려치며 그 반동을 이용하여 몸을 가볍게 날려 피했지만 홍포천관 사도단은 성질이 몹시 급한지라 음풍이 밀어닥치자 급히 쌍장을 내밀어 한 차례 강하고 부드러운 경력으로 응수했으나 애석하게도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맞부딪치자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비명 소리가 났고 홍포천관의 몸은 마치 연의 줄이 끊어진 듯 두 장 높이로 뜨더니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흑옥인마가 단숨에 강호 일류급 이상의 고수 세 명을 물리치자 장중은 즉시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그는 세 명을 처치한 후 노기가 약간 가라앉은 듯 냉소를 치더니 위중평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소형제, 가자!"

하는 말과 함께 신형을 날려 산 아래로 유성과 같이 달려 내려갔다.

위중평은 두 번째로 강호에 나온 지금 무공은 이미 흑옥인마를 능가했기에 한 쌍의 예리한 눈으로 홍모음효와 삼흉을 흘겨 보고는 흑옥인마를 뒤쫓아 갔다. 잠깐 사이에 번쩍거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불가사의한 경공으로 인하여 홍모음효는 당황했다.

무공이 날이 가면 갈수록 정진하는 데다가 여기의 일을 목격했으니 필경 또다시 복수하러 올 것이니 그 때는 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간담이 써늘해져 장진도를 뺏을 엄두도 못내고는 한숨을 내쉬며 복수당주 혁연강에게 말처다.

"혁연당주, 우리 그만 돌아갑시다."

혁연강은 만면에 의아한 빛을 띠며 물었다.

"그럼 우린 그냥 이렇게 허탕만 치고 가잔 말입니까?"

홍모음효는 음침한 태도를 나타냈다.

"본 교주의 심의가 이미 결정됐으니 그냥 따라 나서기만 하시오! 각처에 배치된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귀왕령부를 내려서 분타의 향주들을 소집하여 빨리 총단 개단실로 오시오!"

혁연강은 교주의 신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분부를 받들고 달려갔다.

홍모음효는 일방의 효웅(梟雄)답게 극시 단시간 내에 대세를 판단했고 위중평에 대한 이후의 복수 때문에 많은 골치아픈 일들이 증가됐다.

한편-.

흑옥인마는 위중평과 함께 마치 두 줄기 연기처럼 흑옥인마가 몸을 숨기는 동굴로 향해 달렸다.

그는 원래 이 동굴의 위치가 기묘해서 귀신도 모를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 동굴에 당도하자 암석 뒤에서 몇 명의 인영이 나타나자 질겁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이런 광경을 본 위중평은 큰 의문이 앞섰다. 내심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지방 인물이기에 흑옥인마가 이렇게 그들을 무서워하는 것일까?

이 때, 위맹한 모습에 큰 노인이 홀연 흑옥인마에게 물었다.

"흑옥인마, 네가 무의식중에 옥탑장진도(玉塔藏珍圖)와 이궁금약(離宮金藥)을 얻었다는데 그게 정말이냐?"

흑옥인마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틀림없소!"

노인은 돌연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이리 내놔라! 내 너를 데리고 보물을 찾으러 가겠다."

흑옥인마는 싸늘한 광소를 터뜨리며 냉랭히 말했다.

"와도(蛙島)의 왕, 흑옥인마는 세 살짜리 아이도 아닌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까요? 취도(翠島)는 나 혼자서 갈 수 있으니 신경을 쓰지 마시오."

위중평은 그의 심중이 비록 흥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는 것을 보자 소위 와도지왕이라는 사람하고는 아마 과거에 조금 내왕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와도지왕은 흑옥인마가 그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을 보자 얼굴의 신색이 급변하며 냉소를 날렸다.

"흑옥인마, 네가 삼십 년 동안 무공을 연마했다고 이 노부한테 이처럼 강경하게 나오는데 그렇다면 어디 내가 한 번 너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좀 봐야겠다."

하고는 고개를 돌려 옆에서 있던 독정(禿頂) 노인에게 말했다.

"역(易)형, 한 번 나를 대신하여 그가 삼십 년 동안 무슨 절학을 연마했는지 어디 한 번 시험해 보시오."

독정노인은 공손히 대답하고 즉시 흑옥인마를 향해 걸어갔는데 흑옥인마의 얼굴 표정이 몹시 창백한 것으로 봐서 그는 내심으로 분노가 이미 정상에 도달하여 곧 폭발할 것 같았으나 와도에서 온 사람에게는 공포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을 본 위중평은 마음이 매우 불안하여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잠깐!"

하고는 흑옥인마의 앞을 가로막고 와도지왕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뭘 믿고 남에게 장진도를 강요하는 것이냐!"

와도의 왕은 위중평이 흑옥인마 옆에서 있을 때부터 이미 이 소년의 용모로 보나 기질로 보나 일종의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느끼며 흑옥인마의 제자인 줄 알고 암암리에 감탄을 금치 못했으나 그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위풍당당하게 나서서 질문하는 것을 보고 가소롭다는 생각에 하늘을 보며 거만스럽게 웃었다.

"흥! 젖비린내가 아직도 안가신 놈이 감히 노부를 훈계하다니… 썩 비키지 못하겠느냐!"

성질이 팔팔한 위중평이 어디 이런 멸시를 참아 내겠는가, 즉시 미간에 살기를 띠며 냉소를 쳤다.

"너무 그렇게 막무가내로 지껄이지 말아라, 만약에 장진도를 탈취하려거든 나하고 먼저 겨뤄보자."

와도의 왕은 동사 군도를 독패하는데 가히 남면의 왕자나 마찬가지다. 누가 감히 그에게 반말을 하겠는가?

"런데 이처럼 말하자 독정노인이 앞에 나서서 소리쳤다.

"너는 도대체 뭔데 나서서 참견을 하는 것이냐?"

위중평도 제자리에서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내가 장력을 전개하여 정면으로 독정노인의 일 장을 맞받았다.

"펑! 우르릉!"

일시 노한 장풍이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주위의 먼지와 모래를 사정없이 일어나게 했다.

잠시 후-.

시야가 밝아지자 위중평은 역시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독정노인은 만면에 경악의 빛을 나타냈다.

그는 와도에서 일류 고수인 데다가 이 일 장은 육칠 성의 공력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바로 이 때-.

흑옥인마는 위중평의 옆에 와서 부드럽게 말했다.

"소형제, 자네는 잠시 물러나 있게. 이 일은 내가 처리하도록 하겠네."

그는 정말로 위중평을 애지중지했다.

그는 이 노인이 바로 와도삼룡(蛙島三龍)의 우두머리인 독룡역단(禿龍易端)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위중평이 경거망동하여 무슨 변이라도 당할까봐 황급히 앞으로 나와서 막은 것이다.

위중평은 그의 호의를 차마 무시 못하고 할 수 없이 물러섰다. 와도에서 온 독룡역단은 마치 흑옥인마가 이렇게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아 즉시 큰소리로 웃어댔다.

"진작 이렇게 나올 것이지! 아이를 먼저 내 놓는 게 무슨 뜻이냐?"

흑옥인마는 정색을 하며 이미 평온의 그런 광태를 버리고 냉랭히 웃으며 말했다.

"말이 많으면 이로울 게 없으니 어서 덤비시오!"

"좋다! 그럼 어디 받아봐라!"

동시에 일진의 광풍이 소매에서 나오더니 흑옥인마를 향해 밀려 왔다.

만약에 진정한 내력을 말하자면 흑옥인마가 역시 독룡역단 보다 한 수 높았으나 와도의 자오이화신공(子午離火神功)은 그의 지장음공의 유일한 극성(極星)이라서 장풍이 급습해 오자 감히 정면으로 받지를 못하고 몸을 날려 오지(五指)를 구부려 독룡의 어깨 대혈을 향해 질풍과 같이 잡으러 갔다.

독룡은 몸을 돌려 이 장을 격출하니 흑옥인마는 지장음공으로도 감히 대적을 못했고 그러자 그의 지법무공은 무위로 돌아갔다.

즉시 신법을 전개하여 유령과 같이 독룡을 두고 질풍처럼 돌아서 귀신 같이 양 손으로 매 초마다 전부 요해 대혈을 공격했고 두 사람이 무척 빠르게 이십여 초를 교환하자 흑옥인마는 점점 불리하게 되어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부상당할 가능성만 남은 것이다.

위중평은 일신에 절학을 지녔기 때문에 초식상으로 벌써 흑옥인마가 밀린다는 것을 알고 장력을 격출하는 동시에 크게 소리쳤다.

"노형, 잠시 물러나 계시오!"

흑옥인마는 평생에 생각지도 않게 젖비린내 나는 소년에게 도움을 받자 몹시 괴로운 한편 내심 몹시 감격했다.

바로 그가 정신을 딴 데로 팔 때, 와도지왕 신변에 있던 창룡운붕(蒼龍雲鵬) 백룡금옥당(白龍金正堂)이 동시에 뛰어나와서 그를 포위하여 왔는데 자오이와장은 살을 익게 할 정도로 열기를 뿜으며 노도와 같이 그를 향해 밀려왔고 흑옥인마는 분노를 가득 띤 채 지장음공을 발출했다. 한 차례 차가운 음풍이 검은 안개와 같이 밀려오는 장풍을 향해 밀려갔다.

장중에 일진의 코를 찌르고 타는 냄새가 났다.

흑옥인마는 신음을 토해 내더니 입 안에서 선혈이 흘러나왔으며 비틀거리며 뒤로 일곱 보를 물러났다. 그는 지장음공을 비록 십 성까지 연마했지만 자오이화장에 대한 타격은 더 컸다. 두 개의 장풍이 맞부딪치자 가슴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창룡과 백룡이 이미 상처를 입은 그를 보고 어찌 쉽게 놔 주겠는가? 쌍쌍히 독수리처럼 그를 향해 덮쳐갔다.

위중평은 비록 독룡과 싸우고 있었지만 눈길만은 시시각각 흑옥인마에게 향해 있었기에 그의 위험을 보자 즉시 폭갈과 함께 화살과 같이 달려왔다.

이 때 그의 마음은 불덩어리 같이 화가 치밀어 갑자기 빙고동지(氷鼓動地) 일 초를 전개하여 맹렬히 쌍룡에게 격출해 냈고 이 일 초는 바로 천룡장법의 기수식이라 위맹하기 그지없었다.

장풍이 나오자 무서운 광풍이 일며 마치 천군만마가 밀려오는 듯했다.

쌍룡은 깜짝 놀라 급히 분산하여 간신히 피해 냈다.

위중평은 일 장으로 쌍룡을 물러서게 하고는 벌써 흑옥인마의 앞에 자신만만하게 서서 와도삼룡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자오이화장을 몇 수 할 줄 안다고 으스대지 마라. 난 너희들은 안중에도 둬 본 적이 없었다. 마음놓고 세 사람 전부 올라와서 내게 덤벼라."

와도삼룡은 그의 말에 일시적으로 몸이 굳어 손을 쓰지 못했다. 삼룡이 정신을 천천히 가다듬을 때 인영이 번쩍이더니 와도지왕이 달려왔다.

와도지왕은 위중평의 천룡장의 위력과 그가 자오이화장을 알고 있는 것을 보자 이 소년이 보통 비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즉시 부드럽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소협의 무공이 사람을 놀라게 하오. 노부 매우 경배하고 있소. 그런데 도대체 어느 문파에 속해 있소?"

위중평은 흑옥인마를 힐끗 쳐다보니 그는 한참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고 별로 큰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을 보자 마음을 놓고 즉시 입을 열었다.

"나는 장백파 신임 장문인 위중평이오. 당신이 사람을 거느리고 흥계를 써서 강제로 뺏으려는 것이 대장부가 할 짓이오?"

와도지왕은 비록 중원에 자주 들어와 보지는 못했지만 무공이 높아서 각파의 무공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절대로 이런 소년이 장백파의 전인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장백파는 비록 관동 일대의 대파지만 노부는 절대로 소협같은 인재를 길러냈다는 것을 못 믿겠소."

위중평은 냉소를 치며 말했다.

"믿건 안 믿건 그건 자유요. 어쨌거나 당신은 오늘 장진도를 뺏을 꿈도 꾸지 마시오."

와도지왕은 계속 장진도 얘기를 꺼내는 것을 보자 내심 몹시 대노했으나 그는 역시 신분이 있고 교양이 깊은 사람이라서 매우 부드럽게 했다.

"노부는 그의 보도와 금륜을 탈취할 마음은 없소. 다만 옛날의 정을 생각해서 그를 도와주러 왔는데 소협의 말은 너무 지나치오!"

위중평은 돌연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당신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터인데 무슨 변명을 할 필요가 있겠소?"

이 몇 마디는 와도지왕을 극도로 노하게 만들어 대뜸 호통 소리가 터져 나오게 했다.

"네 이놈! 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만약에 내가 버릇을 안 고쳐 주면 도대체 하늘 높은 줄 모르겠구나."

와도삼룡은 와도지왕이 극도로 노한 것을 보자 즉시 공력를 운집하여 천천히 위중평에게 접근했지만 위중평은 태산과 같이 우뚝 선 채 와도지왕만 바라보았고 삼룡의 거동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와도지왕은 삼룡에게 손을 흔들며 침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모두 비켜 서라!"

하고는 또 위중평에게 말했다.

"노부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공력을 쓰지 않았는데 오늘은 꼭 너하고 몇 초식을 겨루어 봐야겠다. 어쩌면 중원무림에서 너만이 노부의 상대가 될 것 같다."

위중평은 그가 자신을 치켜 세우는 말을 듣자 싸늘하게 비웃었다.

"너무 그리 자신을 치켜 세우지 말고 어서 초식을 발출하시지."

사실상 와도지왕이 한 말은 조금도 과장이 없었다.

와도의 무공은 세상에서 적수가 없다고 무림 각파에서 시인했으며 와도지왕이 아닌 바로 어떤 무사라도 강호인들은 절대로 그들을 얕보지 못했는데 위중평은 멋도 모르고 정면으로 그에게 도전한 것이다.

만약에 이 사실이 강호에 전해지면 필경 홍모음효와 싸웠다는 것보다 더욱 소문이 날 것이다.

위중평은 입으로는 그와 맞상대를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매우 긴장했다. 그는 이미 와도지왕이 평생에 유일한 강적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가 공격해 오는 것을 보자 즉시 발걸음을 옮기며 감히 함부로 공격을 못했으며 수십 년 이래 와도지왕도 오늘 처음으로 강적을 만난 것을 알고는 함부로 서두르지는 않았다.

이 일 초는 시초에 불과했지만 위중평이 피하지도 않고 공격하지도 않은 것을 보자 무공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을 못하게 했다.

그는 들었던 왼손을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오른손을 들어 중평의 옥침(玉枕) 영대(靈臺)의 두 대혈을 노려 몸을 날렸다.

위중평은 급히 초식들 피하고 나서 천천히 곡지혈을 낚아채 쳐 갔다. 이 초식은 극히 평범하고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실은 무한한 변화가 가득차 있었기에 와도지왕은 이 초식의 날카로움을 알고 급히 장룡급수 일 초를 오른손으로 격출해 내고는 이어 왼쪽 손으론 일 초 원류삼면(阮柳三眠)으로 관원(關元), 중극(中極)의 두 대혈을 공격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오륙 초를 교환했다. 점점 초식이 변화며 매우 동작이 빨라졌다.

일순 이미 인영을 분간하기 어려웠으나 바람조차 나지 않았고 기합 소리들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들 중 한 명은 해외를 쟁패하려는 마왕이고 한 명은 중원 무림의 호남아였기에 이 일 장의 격투는 정말 흥험했다.

쌍방이 서로 일 초를 발출할 때마다 전부가 세상에서 못 보던 절기였다.

잠시 후-.

쌍방의 초식이 점점 늦어지는 반면 초식만은 점점 괴이해지는 것이 일 장의 선혈이 뿌려지려는 긴장된 분위기였다.

일 경, 이 경, 삼 경이 넘자 쌍방은 무려 삼백 초 이상을 교환 했을 때 초생달이 서서히 떠올라서 대지를 밝게 비추어 주자 산골짜기의 사방에는 어느새 이미 수많은 흑백 양도의 고수들이 운집해 있었고 그들은 하나 하나씩이 모두 암석 뒤에 숨어서 숨쉬는 소리도 내지 않고 입에서 나오려는 재채기도 참으며 가슴을 조이면서 거세기 이를 데 없는 고수들의 격투를 지켜 보고 있었다.

그들은 와도지왕에 대해서는 주의를 하지 않았으나 사람을 제일 놀라게 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소년 위중평이었다.

이 때 장중의 결투는 이미 절정의 순간에 접근하고 있었다.

쌍방의 절초는 매우 절륜했으며 형세는 더욱 흉험했다.

와도지왕은 어린 소년에게 삼백 초 이상을 겨루자 노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올라 폭갈과 함께 자오이화신공을 전개해 냈고 일순, 거세기 이를 데 없는 장풍이 위중평에게 밀려왔다.

위중평은 꺾일 줄 모르는 굳은 개성의 소유자라 이를 보고도 피하지 않고 천룡장을 전개하여 일 초인 비각유단(飛閣流丹)으로 응수했다.

이어 걷잡을 수 없는 세력이 밀려오던 장력과 접촉을 하자 순간, 일진의 거대한 폭음이 연달아 일어났다.

"우르릉 쾅, 쾅!"

일시, 거대한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 주위의 초목들을 산산히 분산 시켰는데 이런 위세는 마치 산을 무너뜨리고 땅을 갈라놓은 듯했고 두 사람은 각각 두 보씩 물러났다.

위중평은 미간을 찌푸리며 살기 어린 눈동자로 크게 소리쳤다.

"흥! 너도 어디 내 일 장을 받아봐라!"

말이 끝나자마자 일 초식 용행구천을 전개했다.

이 일 초는 극히 평범하면서도 아무 기척이 없었지만 와도지왕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발에다 힘을 주자 깊은 구덩이가 생기는 동시에 장에다 전력을 끌어올려 홍색 광채를 띤 장력을 발출해냈다.

가늘기가 마치 바늘같은 적색 기경이 화살과 같이 위중평의 장풍을 헤치고 가슴을 향해 질풍처럼 밀려 들어갔고 순간, 폭갈이 터지며 두 사람은 똑같이 신음을 토하며 급히 일 장 뒤로 물러났다.

정세를 관전하니 모두가 이미 내상을 입은 듯했다.

원래 조금 전 와도지왕이 쓴 초식은 바로 와도의 절기 사일전운수였다.

그 적색 기경은 와도지왕이 전신의 공력을 운집하여 발출한 것이었다.

위중평은 일시적으로 파악 못하여 적색 기경이 몸까지 파고 들어을 때 몇 수의 초식을 전개하여 간신히 피하긴 했어도 그만 일 장을 맞고 말았으나 황망중에 팔구통천지(八九通天指)를 써서 와도지왕을 격상시켰다.

일대의 용호쌍박의 격투가 멈추자 주위에서 관전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한숨을 쉬게 되었다.

밝은 달이 비치는 아래 두 고수의 얼굴빛은 처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 명의 안색은 금빛을 띠었으며 또 한 명은 창백하기가 마치 흰 종잇장 같았다.

모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았고 장중의 공기는 정막하여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으나 조용한 가운데에서도 위기가 가득한 채, 암중은 은은한 살기가 감돌며 땅에 정좌하고 있는 흑옥인마의 품 속에 있는 장진도와 금약은 군호들의 탈취의 대상물이 되었으며 장중에 서서 운기조식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위중평과 와도지왕은 군호들의 살생의 목표가 되었다.

무림에서 제일 사람의 존경을 받는 것과 제일 두려움을 주는 것은 역시 무공이 고강한 자였다.

이런 이들에게 군웅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이 때 두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후에 그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까?

그리하여 하나같이 살기를 띤 채 공격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순간-.

일진의 폭갈이 야밤의 정적을 깨뜨리고 두 개의 인영이 쏜살같이 각각 위중평과 와도지왕을 향해 장풍을 격출해 냈다.

위중평을 향해 장력이 도달했을 때 장풍엔 돌연 일진의 괴소가 터졌고 이어 경기가 마치 먹과 같은 음풍을 일으키며 위중평은 다가온 사람을 향해 장풍을 격출해 냈다.

그러나 습격해 왔던 인영은 땅에 내려서며 쌍검을 내밀어 음랭하기 이를 데 없는 장력을 격출했다.

이런 격전은 조금도 운같은 것을 기대할 여지가 없었다.

흑옥인마는 지장음공이 이미 팔 성까지 증가한 터였다. 그런데 습격한 사람이 어찌 이를 막아 낼 것인가?

광소와 함께 비틀거리며 사오 보나 뒤로 물러서서야 몸의 중심을 잡자 그제서야 군웅들은 그 사람이 바로 몽장일괴(蒙藏一怪)라는 것을 알았다.

한편-.

몽장일괴와 동시에 공격처던 사람이 빠르게 와도지왕을 덮쳐 갔을 때, 생각지도 않게 와도지왕의 신변에는 세 명의 호위병이 있어서 그와 와도지왕의 거리가 약 이 장 정도 남았을 때, 독룡, 창룡은 이미 고함을 치며 그에게 공격해 왔다.

이 사람은 바로 한 사람의 흉신이었다.

경해신교는 심후한 공력을 지니고 사람됨이 흉하고 괴팍하여 와도지왕과는 원수지간이었다.

쌍룡이 협력하여 장력을 발산하는 것을 보자 감히 정면 충돌을 못하고 공중에서 신법을 이용하여 암석 위에 내려서자 두 사람은 즉시 좌우에서 공격해 들어왔다.

삼룡의 무공은 와도지왕의 바로 아래에 손꼽히는 사람들이었기에 경해신교가 한 사람을 대적하려면 몰라도 두 사람이 한꺼번에 공격하자 응수하기가 매우 힘이 들어 십여 초 동안 겨루자 경해신교는 그만 장영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이 때, 와도지왕은 냉랭히 코웃음을 치며 두 눈동자를 굴려 조식을 하고 있는 위중평에게로 향했으나 생각지도 않게 그의 신광이 가득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위중평도 이미 조식을 끝마친 것이다. 그러자 돌연 일진의 광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핫! 노부가 태어난 이래 오늘 밤 비로소 노부의 진정한 상대자를 만난 셈이오. 오늘 밤의 일은 없었던 걸로 하고 일 년 후, 소협께서 와도로 한 번 와 주시오. 노부가 그 때까지 기다리겠소."

위중평은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입을 열었다.

"도주. 너그러운 정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오. 내 일 년 후 꼭 와도를 찾아가겠소."

와도의 왕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리고는 경해신공을 위협하던 쌍룡에게 소리쳤다.

"잠시 멈추어라. 그만 돌아가자!"

하는 말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눈 깜박할 사이에 산을 넘어서 사라지고 말았다.

경해신교는 한참 쌍룡의 공격에 의해 정신을 못 차리다가 모두 없어지자 도리어 깜짝 놀라 그는 머리를 들어 흑옥인마와 위중평을 한스럽게 쳐다보며 냉랭히 웃더니 몸을 돌려 날 듯이 달려갔다.

와도의 왕이 간 후, 흑옥인마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 가쁜한 심정이어서 두 눈에 흉광을 폭사하여 사방을 바라보며 일진의 괴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누구든지 장진도를 갖고 싶은 놈은 모두 나와라! 그런 소인배 같은 짓을 하는 것도 영웅이라 일컫겠는가…"

사방에 숨어 있던 군웅들은 어쩌면 위중평의 높은 무학 때문인지 아니면 흑옥인마의 흥광에 놀라서인지 하나씩 전부 꽁무니를 뺏다.

위중평은 눈빛이 예리하고 감각이 민감해서 이미 사방의 군웅들이 가고 없다는 것을 알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들은 벌써 도망가고 없는데 아직도 누구하고 얘기하고 있습니까?"

흑옥인마는 득의에 찬 표정으로 크게 웃으며 답했다.

"그 마귀 같은 놈들 때문에 하룻밤을 새웠으니 이제는 우리도 즐겁게 지내야지!"

하면서 급히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는 한 뭉치의 물건을 들고 나왔는데 손에는 각종의 음식, 과일, 술 등 각가지 음식이 들어 있었기에 그들 두 사람은 혈투를 잊고 이 황량한 산령에서 술을 마시며 시원스럽게 환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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