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한천여심(恨天女心)
금루선연은 옥탑단장인의 공력을 전수받은 후 하루아침에 공력이 너무나 크게 증진되어
삼흉사강은 결코 자신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에 안미옥이 장력을 전개해 낸 것을
보자 보통 장법이라고만 여기고 피하기는커녕 장영 속으로 파고 들어가 경공술을 전개하여
실력을 과시하려 하였는데 순간 강하게 일어난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녀는 몇 번이고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지만 소용돌이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빠져 나오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내심 다급해진 금루선연은 돌연 신기한 신법을 전개해 소용돌이를 따라 공중으로 높이
치솟아올랐다.
약 칠팔 장 높이 올라가서야 소용돌이 범위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자 금루선연은 발칵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이런 사문의 무공을 어디서 배웠지요?
딴 사람에겐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절대 안 될 거예요.
그러니 어서 검을 뽑으세요!"
금루선연의 말은 안미옥으로 하여금 대노케 했을 뿐만 아니라
구주풍인까지도 은근히 화가 나게 했다.
그는 습관대로 미친 듯이 웃더니 소리쳤다.
"네 이년! 정말 방자하구나. 이 풍인까지 모욕을 주다니…"
금루선연은 즉시 정중하게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장노선배님, 용서해 주세요.
다만 화가 나서 그랬지 결코 노선배님을 욕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이렇게 말한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다시 안미옥을 노려보았고 안미옥은 이 때 수중의 청검을 들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소리쳤다.
"네가 최근에 무슨 기우를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너에게 질리 없다.
네가 굳이 나더러 검을 뽑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검술에도 상당한 솜씨를 지닌 것 같은데… 어디 한 번 해보자."
금루선연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나는 내가 당한 것과 같이 검만 떨어뜨리면 돼요."
안미옥은 위중평의 도움으로 경맥(經脈)이 뚫린 후로는
공력이 크게 증진되었으며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녀는 짧고도 긴 반 년 동안에 금루선연의 공력이 자신보다 더 높아졌으리라고는
전혀 믿지 않았기에 냉랭하게 소리혔다.
"만약 내 수중의 검이 진짜 너에 의하여 떨어진다면 다시는 강호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금루선연은 간사스럽게 웃었다.
"그렇게까지 맹세할 필요는 없어요.
자, 우리 서로 이기는 사람이 언니가 되는 것이 어떻겠어요?"
이렇게 말한 그녀는 혀를 길게 내밀어 보이면서 귀엽게 눈웃음을 치자
안미옥은 화가 극도로 치솟아 외마디 고함과 함께 장검을 휘둘러 공격해 들어갔다.
장산도주의 청도검법은 그 위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강한 데다가 안미옥이 대노한 상황에서
전개해 내자 그 위력은 더욱더 놀라웠다.
일순 검영이 형성되면서 금루선연을 완전히 둘러쌌다.
금루선연은 안미옥의 공력이 기껏해야 자신의 사형인 철적왕손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정묘하고 강하자 너무나 당황하여 잠시 동안 전혀 반격을 가하지 못했으나 잽싸게 몸을 피하면서 강호에선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천뢰장법을 전개해 냈다.
이 장법은 오묘하기 이를 데 없어 일단 전개해 냈어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조용한 가운데 일종의 광풍폭우와 같은 기세가 내포되어 있었다.
연속 이 초를 전개해 내자 안미옥의 검은 삼 척 밖으로 밀려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을 뿐 아니라
몸 또한 무형의 힘에 의해 동결되어 움직이기조차 거북스러웠다.
안미옥은 상황이 위급하다는 것을 느끼고 막 검을 거두면서 후퇴하려 할 때
갑자기 몸이 조이며 몸과 검이 동시에 금루선연 앞으로 흘러갔고 이와 동시에
오른손이 풀리면서 검이 금루선연의 수중으로 넘어갔고 자신의 몸은 이 장 밖으로 밀려났다.
다행히도 금루선연이 사람을 상하게 할 생각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심한 내상을 입었을 것이 분명하다.
금루선연은 단 이 초로서 안미옥의 장검을 빼앗아 들고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검을 땅에다 던진 다음 아무 말 없이 말 위로 뛰어올라 먼지만 남기고 떠나 버렸다.
안미옥은 그 자리에 넋을 잃은 채 금루선연의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탄식을 터뜨렸다.
"풍백부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구주풍인은 너털웃음을 웃어댔지만 그 웃음은 실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오늘 비단 너만 당한 것이 아니라 이 풍백부도 당한 것이다.
그녀석이 어디서 무공을 배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평생을 강호에서 지내왔어도
아직까지 저런 무공을 보지 못했다."
안미옥은 성격이 낭자와 같이 대범하여 자신의 패배감에 대해선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위중평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크게 위안을 느끼고 있었다.
요 근래 그는 이심장법을 터득한 후 구주풍인과 함께 계속해서
위중평외 행방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완경에 도착했을 때마침 적발교도들의 행적을 발견해
미행한 결과 적발교가 완산 금장사에다 임시 총단을 세운 것을 알아 내어
상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으슥한 작은 길만 택해서 다녔는데
여기서 우연하게 금루선연을 만나 마음에도 없는 싸움을 하게 될 줄이야…
안미옥은 깊은 생각에 잠겨 한참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풍백부님, 신가보와 적발교는 한통속인데 그녀는 분명 홍모음효를 도울 것이 아닙니까?
만약 그녀가 가운데서 방해할 경우에는 일은 더 어렵게 될 거예요."
구주풍인은 크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얘야 그 점에 대해선 안심하거라.
그는 비록 너의 연적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적은 아니다.
만약 위중평이 죽지 않았다면 모든 은원은 일시에 사라질 것이니 네가 나설 필요는 없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위중평이 죽었다면 금루선연은 분명 적발교를 도우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멸망을 각오해야 될지도 모른다."
안미옥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도 않을 거예요.
홍모음효는 금루선연 부친의 친구인데 어찌 감히 그렇게 할 수가 있겠어요."
구주풍인은 술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이내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나의 말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 계집의 공력 내력에 대해선 대강 짐작이 가는구나.
그의 공력은 옥탑단장인이나 추혼천녀의 공력과 같은 종류였다.
그리고 그 두 마두는 모두 위중평과 관계가 있었으며 만약 위중평이
진짜 은대웅 손에 죽었다면 그들이 어떻게 적발교를 순순히 놔둘 수 있겠느냐?
그리고 홍모음효와 신가보는 이해적인 결합에 불과하며 금루선연은 애정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이다."
구주풍인이 애정을 얘기하자 안미옥의 가슴은 절로 아파왔으며 갑자기
위중평에게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자꾸 스쳐갔다.
'평제! 평제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러나 나는 평제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어찌 올바른 인간이라고 할 수가 있겠어요.'
이렇게 생각한 그는 격동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풍백부님. 오늘 밤 즉시 금장사로 떠나기로 해요.
그리고 이 안미옥은 분신쇄골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적발교주와 생사의 결단을 내야겠어요.
그러지 않고서는 절대로 평제를 떳떳하게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러더니 그녀는 구주풍인의 의사를 들어 보지도 않고 앞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구주풍인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탄식과 함께 연신 고개를 내저으며
몇 모금의 술을 마시고는 신법을 전개해 잽싸게 뒤쫓아 갔다.
한편 안미옥에게 이긴 금루선연은 구주풍인의 입을 통해 적발교가 금장사에
임시 총단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금장사를 향해 말을 몰았다.
혼자서 한참 동안을 달리자
그녀는 점점 사람이 보이지 않은 산 속으로 접어 들게 되었다.
그러자 즉시 말에서 뛰어내려 경공술을 전개하고는 순식간에 달렸는데
이렇게 약 한 시진 정도를 달리자 눈앞에 희미한 등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현재 공력이 크게 증진되어 시력 또한 더할 수 없이 예민해졌다.
이곳 산중에 곳곳마다 보초들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여기가 틀림없는 금장사라고 느끼고는 즉시 신법을 전개해 쥐도
새도 모르게 금장사 안으로 들어가 대전 안을 들여다보았다.
대전 안은 대낮처럼 밝고 수많은 사람 가운데 홍모음효는
얼굴이 심통난 사람처럼 묵묵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의 왼쪽엔 흉측하게 생긴 거인이 앉아 있었고 오른쪽에는 작은 모자에
황색장포를 입은 노인이 있었다.
그 외에 복수당주 혁연강, 색혼판관, 음산일귀, 존심수사, 운개쌍괴 등
교 내의 중요 인물들이 양측에 나란히 앉아 있었으며 분위기는 매우 엄숙하여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돌연 홍모음효는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반 사람들은 신주검성 위무종이나 은대웅의 열부장에 의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중에는 많은 곡절이 있소."
여기까지 말했을 때 음산일귀가 말했다.
"저는 교주의 마음을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위중평 그 녀석이 교주에 의해 절벽 밑으로 떨어진 이상 후환이 제거되어
우리 교가 크게 활동을 발휘할 때인데 어찌 지하 활동을 해야 합니까?"
홍모음효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그놈이 살아 있을 때는 그 놈이 적이었지만 그가 죽게 되자 적이 수없이 생겨난 거야.
옥탑단장인, 추혼천녀, 자선마군은 모두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지.
나은대웅이 솔직히 말해서 이 몇 사람 중 단 한 사람만 나선다 해도 적발교주는
멸망의 위기에 처할 것일세.
딴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 은대웅이 겁장이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은 시간을 끌어서 옥탑탈장진도를 얻고자 하는 것일세.
만약 장진도가 손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적발교주가 어찌 그까짓 놈들을 두려워할 수가 있겠나!"
이렇게 말한 그가 의기양양해 하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리자
왼쪽에 앉아 있던 거인이 하늘이 무너질 듯 소리쳤다.
"교주는 어찌 자신을 낮게만 평가하고 있소! 나 영남폭호는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봐야겠소.
언젠가 나에게 걸리기만 하면 나의 거령장 맛을 톡톡히 보여줄 것이오."
원내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의 소리에 너무나도 크게 놀랐으라
오른쪽에 앉아있던 황포노인이 갑자기 코웃음을 터뜨렸다.
"흥! 큰소리 치는 사람치고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소이다.
이것 보시오. 실력도 없으면서 큰소리 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나 한단사신은 교주의 이러한 처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찬성하는 바이오."
영남폭호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는지 벌떡 일어나 일 장을 밀어내면서 소리쳤다.
"감히 나를 얕보다니 자! 잔소리 말고 일 장을 받아라!"
한단사신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냉랭하게 웃으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거센 폭음과 함께 앉았던 의자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홍모음효는 안색이 급변하면서 소리쳤다.
"멈추시오! 말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을 어찌 무력을 쓰는 것이오."
영남폭호는 노기충천하여 재차 공격하려 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자 하는 수 없이 화를 억누르면서
자기 자리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고 한단사신은 염소같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영남폭호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 큰 덩치를 믿고까불지 마라!
오늘은 가만히 있지만 언젠가 조용한 날을 택해서 우리 고하를 한 번 가려보자."
영남폭호는 자신있게 소리쳤다.
"흥! 언제라도 좋다. 내 너의 갈비뼈를 부르뜨리지 못하면
다시는 영남폭호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홍모음효는 두 사람이 서로 아옹다옹하면서 자신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자
내심 화가 났지만 분노를 억제하면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까짓 일들 가지고 뭘들 그러시오.
자, 계속해서 정사를 의논하기로 합시다."
홍모음효가 화를 참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영남폭호나 한단사신은 남과 북의 유명한 흉신들로서
공력이 홍모음효에 비하여 한 수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던들 어찌 그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보고도 가만히 있겠는가?
홍모음효는 야심이 하늘을 찌를 듯했으며 옥탑장진도를 손아귀에 넣기 위한
일념으로서 그들 두 사람을 호법으로 초대하였다.
또 지금으로는 사람이 가장 필요할 때라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참고 있었다.
두 흉신이 막 안정을 되찾았을 때 갑자기 음험한 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두 인영이 불쑥 튀어나왔다.
한 사람은 붉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었으며
또 한 명은 괴상한 옷차림의 철장을 든 노파였다.
지붕 위에서 이것을 바라보고 있던 금루선연은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즉시 알아차리고 내심 생각에 잠겼다.
'천독문의 수뇌인물인 질세산인과 천독성모가 이곳에 무슨 일로 온 것일까?'
이 때 홍모음효와 수하 당주들은 일제히 일어나 공손히 예를 취했으나
영남폭호와 한단사신은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거들떠보지도 않자
질세산인은 두 사람의 거만한 태도를 보고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천독성모도 몹시 불쾌한 표정이었으나 역시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나머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가서 살며시 앉았다.
천독성모는 위중평의 일에 관심이 많아 자리에 앉자마자 얘기를 꺼냈다.
"듣자하니 장백파의 위중평이 교주에 의해 백장애 밑으로 떨어졌다고 하던데
그 생사를 교주께서는 똑똑히 확인해 보았소?"
홍모음효는 잠시 눈을 감으며 상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이치대로 본다면 나의 열부장에 맞아 절벽 밑으로 떨어진 이상
신선이라 해도 살아 남지는 못할 것이오.
하지만 소문에 듣자하니 화산파와 장산도가 많은 사람들을 동원시켰지만
역시 그의 시체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질세산인은 이 말을 듣자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산짐승의 밥이 된 것이 뻔한데 그 얘기는 자꾸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소?"
천독성모는 노기띤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녀석이 만약 살아 있다면 난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오."
바로 이 때 문 밖에서부터 누군가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천독성모! 누구에게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오?"
이 소리와 함께 냉면파파가 문 앞에 나타났는데
이 입이 싼 할망구는 문 앞에 서자마자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신가보주가 피살된 것을 알고나 있소?"
이 소리가 나자 지붕 이에 있던 금루선연은 큰 타격을 받은 듯
아버지! 하고 소리침과 동시에 기절하면서 서너 장 높이의 지붕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대전 안의 사람들이 신천오가 죽었다는 소식에 대경실색하고 일을 때
지붕에서부터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에 그들은 더욱더 기겁을 했다.
이 때 금루선연은 이미 지붕처마 밑까지 데굴데굴 굴러와 금방 도착한 냉면파파와 마주쳤다.
냉면파파는 신천오의 외동딸인 금루선연인 것을 보자
잽싸게 대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손을 쓰자 금루선연은 곧 제정신으로 깨어났다.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냉면파파의 팔에 매달리며 소리쳤다.
"파파! 아버지께서 정말 피살당하셨습니까?"
그녀는 최근에 들어와서 공력이 크게 증진되었으며 상당히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녀가 냉면파파의 손목을 잡자 그것은 마치 쇠사슬을 찬 것과도 같아 눈이 휘둥그래져
내심 생각했다.
'이 어린 것이 이렇게까지 심후한 내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군…'
이렇게 생각한 노파는 급히 손목을 뿌리쳤다.
"그렇다! 너의 아버지는 일종의 음독(陰毒)한 공력에 의하여 아무 소리없이
침실에서 죽어 있었단다.
항상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하인까지도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하니
이렇게 이상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
금루선연은 참다 못해 그 자리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냉면파파는 겉으로 냉막했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해서 급히 위로를 해주었다.
"얘야, 그만 울거라. 사강은 일체가 아니냐?
우리는 기어코 너의 아버지를 위해서 복수를 하고 말 테다."
금루선연은 계속 흐느끼면서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제 자신이 원수를 찾아서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말겠어요…"
금루선연이 지붕 위에서 굴러 떨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홍모음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원래가 음험하여 백장애에서 위중평과 싸울 때부터
금루선연이 위중평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잽싸게 알아차렸는데
오늘 또 지붕 위에서 굴러 떨어진 것을 보자
더욱 더 의심이 생겨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신소저, 이런 야밤에 무슨 일로 이곳 금장사까지 온 것이오?"
금루선연은 갑자기 그의 물음을 받자 다소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사람됨이 순진하고 직선적인 그녀는 이내 입을 열어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버지를 찾으러 왔습니다."
홍모음효는 그녀의 대답을 듣자 냉랭하게 반문했다.
"그래요?"
바로 이 때 천독성모가 쥐새끼처럼 불쑥 튀어나와 하늘이 무너질 듯 소리쳤다.
"신보주는 일파의 종주로서 보통 사람들을 절대 그를 상하게 할 수가 없소.
내가 보기엔 그를 죽인 자가 틀림없이 추혼천녀 일 것 같소."
추혼천녀는 강호에 유명한 살성으로서 무림인을 죽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기에
그를 흉수로 지적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지만 아무도 그의 뜻을 동의를 하지 않았고
그 이유는 순전히 서로의 이해 관계 때문이었으며 도의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신천오가 피살된 일에 대해서조차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천독성모의 말에
냉담한 반응만 보인 것이다.
대전 내의 분위기는 무거운 침묵이 잠겨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질세산인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시간이 촉박하니 어서 정사를 토론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신천오를 위해 출수하는 일은 천천히 상의하기로 합시다."
금루선연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자
냉면파파를 향해 공손하게 예를 취하며 말했다.
"파파의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질녀 아버지의 복수를 갚기 위해 즉시 보 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러더니 이내 몸을 돌려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이 때 홍모음효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신낭자! 잠깐, 내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 낭자는 이곳에 혼자 온 것이오,
아니면 동료가 있소? 낭자가 이곳에 온 것은 결코 아버지를 찾으러 온 것이 아니겠지?"
금루선연은 우뚝 멈추더니 싸늘하게 물었다.
"무슨 뜻에서 물어 보는 거죠?"
홍모음효는 부자연스럽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네가 위중평과 가장 친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단다.
너는 그를 위해 복수하러 온 것이지?"
금루선연은 어이가 없는 듯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너무 득의하지 마세요.
내 분명히 말해 두지만 그는 결코 죽지 않았어요.
만약 그가 죽었다면 복수? 흥! 혹시 모르죠."
홍모음효는 금루선연의 얄미운 행동을 보자 호통을 쳤다.
"네 이 나쁜년! 감히 누구 앞에서 방자하게 까부느냐?
내 네년이 기를 못 펴게 본때를 보여줘야겠구나."
금루선연은 위중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는
홍모음효에 대해 원수적 심리가 항상 가슴에 맺혀 있었는데
거기에다 아버지자 죽었다는 소식까지 듣자
더더욱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도 의심히 많은 흥모음효는 자신들이
비밀리에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금루선연이 나타나자
혹시나 하여 시비를 건 것이다.
금루선연은 아버지의 일이 더욱더 급한지라
홍모음효가 자신을 혼내준다고 하자 입술을 내밀고 비웃었다.
"흥!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나요?
가서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어떤가 비춰 보기나 하고 그런 말을 하시죠!"
홍모음효는 그 어린 소녀에게 비웃음을 받자
노기충전하여 소리 쳤다.
"네 이년…"
이 소리와 함께 몸을 공중으로 떠올려 무서운 기세로 금루선연을 향해 덮쳐갔다.
순간, 처마 밑에서부터 붉은 인영이 번득이는가 싶더니
한 가닥의 청색 광채가 폭사되어 왔다.
예리한 파공음이 들리는 순간 홍모음효는 상대가 장산도주의 딸인 안미옥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화가 나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연속 이 장을 격출해 내더니
휘감겨 오는 장검을 옆으로 비켜나게 하였지만 안미옥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공력도 흥모음효에 비해서 조금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홍모음효를 검망 가운데
완전히 가두어 공력을 전개하지 못하게 하였다.
영남폭호는 안미옥이 홍모음효를 검망 속에 가두어 둔 것을 보자
그가 추혼천녀인 줄만 알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안미옥의 등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안미옥은 필살의 신념으로 홍모음효을 상대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등 뒤에서부터
강한 장력이 엄습해 오는 것을 알아차리자 잽싸게 공소개관을 전개해 화해시켜 버렸으나
홍모음효가 이 틈을 타서 즉시 반격을 개시하자 동시에 영남폭호도 같이 협공해 들어갔다.
안미옥은 더욱 힘에 박차를 가하며 파당헌층, 풍권장유, 교룡행수 등 청도검법의 정화만을
계속 전개해 냈고 이렇게 되자 영남폭호는 그저 소리만 고래고래 지를 뿐
한 걸음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다.
세 사람이 함께 엉켜 약 사오십 초를 겨루고 나자 점점 힘이 빠져 검세가 늦추어졌다.
한쪽에서 이것을 지켜 보고 있던 금루선연은 안미옥이 위급하다는 것을 느끼고
즉시 몸을 날려 앞으로 달려감과 동시에 홍모음효를 향해 일 장을 밀어냈으며
동시에 다시 일 장을 내밀어 영남폭호에게 덤벼들었는데 그녀의 장력이 격출되자
홍모음효와 영남폭호는 결코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바로 이 때 대전 내에서부터 일제히 폭갈이 터지면서 복수당주 혁연강, 색혼판관,
음산일괴가 분분히 달려나와 금루선연을 완전히 포위했다.
금루선연은 급히 뻗어낸 손을 거두더니
간드러진 음성으로 안미옥을 향해 소리쳤다.
"옥언니, 잠깐 쉬고 계세요.
내가 이 파렴치한 것들을 상대하겠어요."
홍모음효는 제아무리 얼굴의 가죽이 두껍다 해도 두 파의 장문일을 당면한 채
협공을 할 수가 없어 살며시 제자리로 물러났다.
안미옥이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서는 순간 영남폭호는 마치 성난 호랑이와 같이
금루선연을 향해 덮쳐갔는데 금루선연이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면서
막 공격을 전개하려고 할 때 갑자기 붉은 인영이 번득이더니
거센 폭음과 함께 영남폭호를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게 만들었고
이어서 연속 세 번씩이나 선혈을 토해 냈는데 그 꼴이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 때 대전 밖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면서 전신이 붉은 묘령이 소녀가
대전 밖 계단 앞에서 있었다.
군웅들은 이 묘령의 소녀를 보자 대경실색하여 소리쳤다.
"추혼천녀…"
그들의 말 속에는 불안함과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추혼천녀의 과연 명성이 대단했던지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그 자리에 넋을 잃었으며 숨소리조차 들리지 만큼 조용했고 무서워서 벌벌 기었다.
추혼천녀는 주위를 한 번 싸늘하게 휘둘러보더니 홍모음효를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본 낭자는 오늘 이것으로서 끝을 내겠다."
음산한 음성으로 간단하게 말한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안미옥,
금루선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어서 가자!"
그러더니 지체없이 몸을 날려 지붕을 넘어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졌다.
두 여자는 급히 몸을 날려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얼마쯤 가자 추혼천녀는 문득 걸음들 멈추면서 물었다.
"너희들은 모두가 위중평의 친구지?"
안미옥은 추혼천녀의 당돌한 물음에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으나
금루선연은 그와 반대로 천진난만스럽게 애교를 떨며 대답했다.
"호호… 그는 저의 상공이에요."
일순 추혼천녀의 태도는 즉시 그 특유의 냉막한 태도로 변하더니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말했다.
"그가 죽지 않은 것을 너희들은 알고 있겠지?"
"오늘에서야 알았어요.
그러나 내가 홍모음효를 찾아간 것은 순전히…"
여기까지 말한 안미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고
세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나누지 않은 채 무거운 침묵만 지켰다.
얼마 동안의 침묵이 흐르자 금루선연이 입을 열어 물었다.
"추혼언니께서는 지금 어디에서 오신 거죠?"
"신가보…"
금루선연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물었다.
"신가보? 거기는 무슨 일로 가셨지요?"
추혼천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강의 거동을 살피러 간 것이다."
"그럼 저의 아버지를 보셨나요 "
"그 늙은 것은 꽤나 행패가 심하더군…"
"그래서 그를 죽인 것인가요?
내 오늘 생사의 결단을 내고야 말겠어요."
이렇게 소리친 금루선연은 미친 듯이 추혼천녀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고
해명할 성미가 아닌 그녀는 금루선연이 공격해 오는 것을 보자
즉시 반격을 가했으며 두 사람은 얼떨결에 싸우게 된 것이다.
쌍방의 초식과 신법은 신속하기가 번개와도 같아 짧은 시간 내에 십여 초나 교환했다.
이것을 지켜 보고 있던 안미옥은 어리둥절할 뿐이어서 권고는커녕 막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서 구경만 하고 있을 때 길 옆에서부터 한 사람이 나타나며 큰소리로 외쳤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크고 작은 두 마녀가 싸우다니,
자! 누가 이길 것인가 한 번 봐야겠군."
구주풍인이 얼마 전에 안미옥과 헤어졌다가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안미옥은 은근히 화가 나 가까이 마중가며 뾰로퉁하여 소리쳤다.
"풍백부님께선 어디 갔다 오셨어요?
저는 하마터면 금장사에서 나오지 못할 뻔했잖아요."
구주풍인은 크게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받았다.
"그래서 이렇게 나와 있지 않느냐?
그리고 이 풍백부도 어디 가서 쉬고 온 것은 결코 아니란다."
"흥! 풍백부님께서 어디를 가셨다 오셨는지 누가 알겠어요."
"이것은 그만해 두고 저것 좀 보자. 소녀가 패색을 보였구나…"
안미옥이 급히 고개를 돌려 보자
금루선연은 이미 반격할 힘을 잃고 있었다.
바로 이 때 추혼천녀는 뒤로 일 장이나 후퇴하더니 벼락같이 소리쳤다.
"이런 무공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어서 얘기해라!"
금루선연은 숨이 차 씩씩거리면서 대답했다.
"이모에게 배웠어요."
"이모? 이모가 누구냐?"
"옥탑단장인!"
"좋다. 그렇다면 내 너를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너의 아버지는 내가 죽인 것은 절대 아니다."
이 말을 끝낸 추혼천녀는 눈 깜박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금루선연은 절대 믿지 않았다.
그녀는 추혼천녀의 혐의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추혼천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 역시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급히 신가보를 향해 달려갔다.
안미옥은 두 사람이 떠나고 나자 내심 착잡함을 금치 못했다.
이 두 사람은 비단 위중평에 대해 우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력 또한 자기보다 휠씬 높았고 그들의 말투로 보아 평제의 행방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은 소식조차 모르고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 생각한 안미옥은 절로 탄식을 터뜨렸다.
구주풍인은 그녀가 탄식을 터뜨리는 이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내 입을 열었다.
"얘야! 일은 결코 절망적인 것은 아니니 너무 고심하지 말아라.
만약 그가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필시 장산도로 너를 찾으러 갈 것이다.
그러니 너는 장산도로 돌아가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안미옥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어쩔 수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질녀는 즉시 돌아가겠어요.
풍백부님께선 어떻게 하시겠어요?"
구주풍인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 말이냐? 내 천생의 팔자가 떠돌이 신세인데 어디에 가서 가만히 있겠느냐?
나는 긴요히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지금 즉시 떠나야겠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날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추혼천녀, 금루선연, 안미옥, 그리고 구주풍인들이 각각 헤어지자
금장사 내의 불이 완전히 꺼지면서 열아홉 개의 검은 인영이 폭사되어 나오더니
일제히 동남쪽을 향해 달려갔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위중평에 대해서 얘기하기로 합시다.
잠시 소홀히 하는 바람에 홍모음효에 의해 일 장을 맞아 절벽 밑으로 떨어져 내려간
위중평은 정신이 아찔해 오는 것을 느꼈으나 강한 바람 소리와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가자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삶의 애착을 느끼며 급히 진기를 끌어올려 떨어지는 속도를 감소시켰지만
제아무리 신선이라 해도 도중에서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이라 비록 속도를 늦추기는 했지만
그 속력은 역시 말할 수 없이 빠른 것이었다.
이대로 계속 떨어지다가는 설사 죽지 않는다 해도 불구가 되는 것은 분명했다.
바로 이 위기의 순간, 갑자기 발 밑에서부터 강한 경기가 치솟으면서 급강하하던
속력이 정지되었고 이와 동시에 귓전에 나지막한 염불 소리가 들리더니
측면에서부터 강한 흡인력이 몰려와 한 암벽 사이로 말려 들어갔다.
이 순간 위중평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위중평이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번쩍 떠보자
자신은 암벽 사이에 있는 초가집 내에 누워 있었다.
이 초가집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가구는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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