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생사의 의문
안미옥과 금루선연은 앞장서서 절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절벽 밑은 구름만 보일 뿐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이 절벽에서 떨어졌으니 제아무리 금강불신이라 해도 살아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금루선연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면서 소리쳤다.
"평상공! 내가 평상공을 해쳤어요."
이렇게 소리친 그는 이내 몸을 날려 절벽 밑으로 뛰어 내리려고 하였다.
그녀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철적왕손이 급히 그녀를 껴안았으나
금루선연은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치면서 소리쳤다.
"이 손 놔요. 저는 평상공을 따라가야 해요."
철적왕손은 그녀가 완전히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보자
즉시 손을 뻗어 그녀의 수혈을 찍더니 급히 안아서 산 밑으로 달려갔다.
이 때 절벽 위에는 통곡 소리로 가득찼으며 아무도 이 두 사람에 대해 간섭하지 못했다.
순간 안미옥은 오장이 터질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 두 줄기의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잠시 멍청하게 서 있던 그녀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갑자기 계곡 밑을 향해 급히 내려갔다.
구주풍인과 장산도주는 그녀의 뒤를 쫓아가면서 소리쳤다.
"얘야! 잠깐만 기다려라…"
하지만 안미옥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서운 속력으로 계속 달려 내려갔고 예전에 보기드문
일대의 결투는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이 일대의 혈투를 관전하기 위해 각처에서 몰려든 무림인들은 애석한 마음을 안은 채
쓸쓸히 백장애를 떠났다.
무림후기의 일대 기재인 장백파의 위중평은 죽은 것이다.
명성을 떨칠 때는 마치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더니
그의 운명이 이렇게 짧고 기구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가 죽었다고 해서 적발교가 안심을 놓는다는 것도 보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리어 그 반대로 더욱 험해질 수도 있다.
자선마군, 옥탑단장인, 추혼천녀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흑옥인마가
그를 대신하여 나서기만 하면 적발교는 하루아침에 멸망할 것이다.
그것을 홍모음효도 알고 있는 듯 요행스럽게 위중평을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즉시 총단으로 돌아가 사태에 대비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극히 짧은 시간 내에 총단을 이동시켰고 아울러 각지 교도들에게 귀왕영패(鬼王令牌)를
하달해 명령이 내리기 전까지 공개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잠복해 있도록 명령했다.
그의 이런 행동은 극히 비밀스러운 데다가 신속하여 사람은 물론 귀신조차도 알기 힘들었다.
한편 안미옥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미친 듯이 계곡 밑으로 달려 내려간 안미옥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눈물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계곡 밑은 칼날처럼 예리한 기암괴석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러한 곳이면 평지에서
넘어진다 해도 십중팔구는 부상을 당할 것이다.
그녀는 시체라도 찾아보겠다는 생각으로 기암괴석 사이를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 때 뒤를 이어서 구주풍인 등이 계속 도착하자
안미옥은 순간 아버지인 장산도주를 보자 울음을 터뜨리면서 품 속으로 달려들었고
장산도주는 안미윽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자상하게 위로했다.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에게 이런 기구한 운명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자, 그만 울고 집으로 돌아가자.
훗날 기회가 있다면 그를 위하여 복수를 하자꾸나."
구주풍인은 호로를 꺼내 단숨에들이키더니
빈 호로를 사정 없이 내동댕이치면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얘야, 그만 울어라,
그녀석이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보장하겠다.
잘 생각해 보아라.
절벽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면 흔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다. 안미옥은 이곳 계곡 밑을 한 치도 빠뜨리지 않고 세밀하게 살폈으나
위중평의 시체는 찾을 수가 없었고 거기에다 이제와서 구주풍인의 말을 듣자
위중평의 생사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그는 이 계곡에 남아서
계속 위중평의 생사를 조사해야겠다고 결심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만약 위중평의 소식이 영영 없다면 이곳에 암자를 세워 평생을 지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속으로 결심한 그녀는 잽싸게 장산도주를 향해 말했다.
"아버님! 이 불효한 계집의 요구를 하나만 들어 주십시오.
저는 여기서 계속 평제의 행방을 찾아야겠어요.
그리고 만약 그가 불행을 당했다면 소녀는 이곳에서…"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슬픔에 잠겨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 고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장산도주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의 말이 심상치가 않았는지
대경실색하며 급히 물었다.
"얘야, 이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어서 얘기해 보아라."
안미옥은 아랫입술을 힘주어 깨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출가하여 평생을 볼문에 바치면서 전생에 지은 죄를 면해볼 생각이에요."
이 말을 들은 장산도주는 안색이 급변하며 주름진 두 눈에서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으며 안미옥을 꼭 껴안은 채 격동된 어조로 물었다.
"얘야,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거냐?
너는 이 애비를 이대로 버릴 생각이냐?"
안미옥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말을 받았다.
"아버지, 저는 이미 확고부동한 결심이 되어 있으니
이 불효 소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에겐 이제껏 딸이 없었던 걸로 생각해 주세요."
장산도주의 안색은 두 차례에 걸쳐 새파랗게 질려 버렸고 창급하기도 하거니와
또 한편으로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구주풍인은 안미옥이 어렸을 때부터 성장해 오는 것을 지켜보아서 누구보다도
그녀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 부녀지간의 깊고 넓은 사랑에 대해서 또한 이해하고 있었는데
안미옥이 돌연 아버지의 곁을 떠나겠다고 하니
얼마나 큰 결심을 한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결국 소용이 없다고 느긴 그는 미친 듯이 웃으면서 장산도주를 향해 소리쳤다.
"도주! 안심하시오. 그는 절대로 출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위중평 그 녀석이 죽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소."
이렇게 말한 그는 계속 안미옥에게 말했다.
"얘야, 이 아저씨의 말을 들어라.
며칠 후면 틀림없이 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대신 찾아볼 테니 너는 아버님과 함께 돌아가거라."
안미옥은 즉시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저는 그가 살아 있는 것을 정확하게 알 때까지는 여기에 남아 있겠어요."
장산도주는 안미옥의 그 말을 듣고 참다못해 노기띤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럼 너는 아버지를 버릴 생각이냐?"
안미옥은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아버지! 저는 이미 결심이 되어 있으니 허락해 주세오.
만약 아버지께서 저를 강제로 끌고 가신다 해도 저는 결코 가지 않을 거예요."
구주풍인은 부녀간의 감정이 이상하게 돌아갈 기미가 보이자
전색을 하며 탄식을 터뜨렸다.
"안형! 사람에겐 각기 의지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남아 있도록 해주십시오.
만약 급한 용무가 있다면 내가 미옥과 같이 있겠으니 먼저 떠나십시오.
그리고 일이 끝나는대로 다시 오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안춘휘는 장산 여덟 개의 섬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이 바쁜 것은 사실이었기에 잠시 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그는 구주풍인의 말을 듣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풍인형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섬의 일이 끝나는 대로 곧 돌아올 것이니
저 아이가 출가하는 것만은 절대 말려 주십시오."
이렇게 당부한 그는 계속해서 안미옥을 향해 말했다.
"얘야! 여기에 남아 있도록 하거라.
며칠 후에 아비가 다시 너를 데리러 오마."
"아버지…"
안미옥은 너무나 감격해 울음을 터뜨렸고 장산도주 역시 눈물을 참긴려고
노력하면서 이내 수하들을 거느리고 자리를 떠났다.
이 때 청허도장은 화양 십이도장을 거느리고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절벽 위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풍인선배님! 저는 선배님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위사제는 길인이며, 복이 많아 절대로 하늘이 그를 쉽게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구주풍인은 또다시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 아이는 아직 원한을 다 갚지 못했는데 이대로 좌절당하는 것은
천륜에 어긋나는 것이네, 여보게, 그는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게."
청허도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말했다.
"그의 생사를 막론하고 모든 일은 화산파가 담당해서 전부 해결하겠습니다."
무림에선 한 마디가 중천금이며 한 번 말한 것은 꼭 실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에
청허도장이 일파의 장문으로서 많은 사람 앞에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했으니
그 중량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다.
구주풍인은 재차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도장의 마음이 그러하다니 구천에 계신 신주검성께서도 감격하실 것일세."
청허도장은 이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선배님께선 너무나 말씀이 과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빈도의 본분입니다."
이렇게 말한 그는 공손히 예를 취하더니
화양 십이도사를 거느리고 화산으로 떠났다.
화산파가 적발교와 불과 물같은 상황이 된 후부터 청허도장의 심정은
더욱더 무거워져 관내로 돌아온 즉시 많은 고수들을 강호에 보내
위중평의 확실한 행방을 조사하는 한편 적발교의 허실을 수소문하도록 하였다.
한편 계곡에 남아 있는 안미옥은 모든 사람이 떠나고 나자 구주풍인을 향해 물었다.
"백부님!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구주풍인은 습관대로 계속 광소를 터뜨렸다.
"허허, 얘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힘을 내도록 해라.
만약 그녀석이 살아 있다면 더 할 수 없이 좋겠지만,
반대로 그가 독수를 당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너는 마음을 굳게 다짐하고
그를 위해 복수를 해야 한다.
네가 머리를 깎고 불가에 몸을 담는 것에 대해선 나는 절대 찬성하지 못한다."
안미옥은 순간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풍백부의 말씀 소녀는 명심하겠어요.
이 안미옥이 살아 있는 한 기필코 홍모음효를 죽여 복수할 것이며,
아울러 평제가 못다 이룬 일들을 완수시키겠어요."
구주풍인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래야지. 아주 장한 생각이다.
하지만 너는 아직 홍모음효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 풍백부는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지만
너에게 몇 가지 공력은 전수해 줄 수는 있단다."
안미옥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세요?"
구주풍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풍백부가 언제 너를 속이는 것을 보았느냐?
자, 지금 즉시 공력을 연마하도록 하자."
그러더니 안미옥의 손을 잡고 산 밑으로 질주해 갔다.
구주풍인은 이름 그대로 평생을 미치광이와 같이 떠돌아 다녔지만
그 사람은 인정이 많고 협의심이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위중평과 안미옥에 대해서는 더욱더 정이 넘쳐 흘러 위중평이
절벽 밑으로 떨어진 후 그의 가슴은 마치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고 그 후 안미옥이 비통해 하는 것을 본 그는 더욱 마음이 아파
그녀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 공력을 전수해줘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사실 구주풍인은 강호상에서 신주검성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
하지만 구주풍인은 일시적인 실수로 인하여 한 사람을 상하게 하여
그 후로는 누구라도 싸우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기에 안미옥이 수차에 걸쳐
그가 강호를 독보하던 이심장을 전수해 줄 것을 졸랐으나
그는 극구 거절해 온 것이다.
그 이유는 일단 공력을 전수해 주게 되면 두 사람은 사도의 명분을 갖게 되는데
그후 안미옥이 해라도 입게 된다면 그는 맹세를 깨뜨리고 직접 남과 싸워야 하기 때문인다.
그러나 오늘은 위중평을 위해서 맹세한 것을 깨뜨리게 될 위험도 무릅쓰고
그녀에게 공력을 전수해 주겠다고 한 것이다.
안미옥이 어찌 이 일을 기뻐하지 않겠는가?
일순 그녀는 슬픔도 잊어버리고 구주풍인의 뒤를 따라갔다.
한편 교활한 계획으로 위중평을 절벽 밑으로 떨어지게 한 철적왕손은 수혈이 찍힌
금루선연을 안고 단숨에 십 리 밖으로 달려 나왔다.
다소 숨을 몰아쉰 후 다시 백 장쯤 더 달렸을 때 황폐한 산 밑에 작은 절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방향을 바꾸어 절 안으로 들어갔다.
절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으며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차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일순 철적왕손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괴이한 미소가 스쳐갔고 급히 바닥을 대강 치우더니
금루선연을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그는 이 작은 사매에 대해서 옛날부터 흑심을 품고 있었기에 위중평을 해치려고 한 것도
대부분 그녀 때문이었다.
그런데 금루선연은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데다가 또 그 자신이 사부인 신천오가 두려워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한 것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위중평도 이미 죽었으며 또 금루선연
역시 도마 위에 고기 신세가 된 것이다.
철적왕손은 금루선연의 불그스레하고 탐스러운 볼에다가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음탕하게 말했다.
"이 계집애야,
네가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이제는 내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말한 그는 평상시에 친남매처럼 지내오던 열네 살난 사매의 옷을 잡아 쭉 찢었고
그와 동시에 백설처럼 흰 그녀의 육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금루선연은 비록 방년 열네 살의 소녀이기는 하지만 누구보다도 발육이 잘 되어 있었다.
갓 피어 오르기 시작한 앞가슴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랐으며 분홍빛 작은 젖꼭지는
수줍은 듯이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숨결에 따라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순간 철적왕손은 온몸에 전기가 오르는 듯 짜릿함을 느끼고 두 눈은 충혈이 되어
연신 군침을 삼켰다.
그는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을 억제해 가면서 양 손을 서서히 들어올려
금루선연의 하반신 옷을 벗기려고 하는데, 바로 이 위기의 순간 문 밖에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이 나쁜 놈아! 가만 있지 못할까."
철적왕손이 대경실색하여 급히 고개를 돌려보자 나타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신가보주의 신천오였다.
칠적왕손은 이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잽싸게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어
이내 담담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사부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사매가 지금 열염흉승이 전개한 삼양마황장에 격중되었습니다.
매우 중태인 것 같으니 어서 오셔서 보십시오."
신천오는 금루선연이 몰래 집을 빠져 나온 것을 발견한 즉시 뒤쫓아 나온 것인데
마침 이 절을 지나가다가 철적왕손이 금루 선연의 옷을 벗기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일 장에 그를 쳐 죽일 기세로 달려온 것이었으나 철적왕손의 말을 듣고는
의심하고 있던 것이 싹 가셔 버렸다.
그러자 신천오는 사랑하는 딸의 부상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달려들었다.
"어디가 상했느냐?"
철적왕손은 급히 자리를 피해 주면서 말했다.
"여기 배쪽인 것 같습니다."
신천오는 초조한 마음을 금치 못하면서 그녀의 아래 옷을 잽싸게 벗기고는
수줍은 척하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저는 밖에 나가 있겠습니다."
그러더니 신천오의 대답도 들어 보지 않고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순간 신천오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금루선연의 호흡은 정상인 데다가 전혀 상처를 입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좀 더 살펴본 그는 수혈이 찍힌 것을 발견하고는 그녀의 혈도를 풀어줌과 동시에
노기충천하여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밖은 산바람만 거세게 불고 있을 뿐 철적왕손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사라져 버리자 신천오의 안색이 수차 여러 색으로 변했다.
그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올라 당장 뒤쫓아 가려고 할 때 절 안에서부터
금루선연의 울음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자 그는 하는 수 없이 철적왕손을 잠시 포기하고는 다시 절 안으로 들어갔다.
이 때 금루선연은 찢겨진 옷 사이로 보이는 상반신을 가린 채 발을 구르며 흐느껴 울고 있었다.
신천오는 급히 다가서서 물었다.
"그 금수만도 못한 놈이 혹시 너를 더럽히지는 않았느냐?"
금루선연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막 깨어나자
자신의 옷이 벗겨진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에
누가 자기를 범하려고 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 지금 누구를 얘기하고 계시는 거예요?"
신천오는 노기충천하여 소리쳤다.
"누구기는 누구냐? 바로 그 사람의 탈을 쓴 모조음이지."
금루선연은 이제서야 백장애에서 모조음에 의해 혈도가 찍힌 것을 생각해 냈다.
그러자 금루선연은 온 힘을 다해 몇 번 뛰더니 소리쳐 물었다.
"아버지! 그를 그대로 놔뒀나요?"
신천오는 장탄식을 터뜨리면서 말을 이었다.
"이 아비가 그를 십여 년 동안 키워 주었고 또 나의 모든 공력을 전수해 주었는데도
이렇게 나를 배반하다니…이 아비는 그래도 설마하는 생각에 그만 놓치고 말았단다."
금루선연은 철적왕손이 과거에 한 모든 행위를 생각하자 더욱 화가 치밀어 이를 부드득 갈았다.
"흥! 과거에 그가 평오빠에게 눈파에 걸쳐 독수를 남긴 것이 우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전부 거짓말이었군. 더러운 놈!"
이렇게 소리친 그는 위중평이 절벽 밑으로 떨어져 버린 생각을 하면서 신천오의 품 속으로
달려들어가 통곡을 하였다.
"흑흑… 아버지! 평오빠가 적발교주에 의해 백장애 밑으로 떨어져 죽었어요. 엉엉…"
신천오는 그녀가 갑자기 울고불고하자 어리둥절하면서 물었다.
"평오빠라니?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금루선연은 계속 흐느끼면서 말을 이었다.
"저희집 화원에서 꼽추 할아버지와 같이 살던 평오빠 말이에요."
신천오는 이제야 그녀가 위중평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는 대노하여 소리쳤다.
"그녀석은 죽어도 마땅한 놈인데 뭐가 안타까워서 그러느냐?"
금루선연은 위중평이 북고봉에서 그의 아버지와 맞섰으며 하마터면
싸움까지 할 뻔했던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너무나 냉정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는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평오빠는 완전히 제가 해친 거예요.
그리고 모사형도 그를 해쳤다고 할 수가 있지요.
본래 평오빠는 절대로 패하지 않을 것인데 모사형이 나더러 그를…"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또 울음을 터뜨렸지만 신천오는
위중평에 대해선 전혀 호감을 갖지 못했으므로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 방자한 놈이 죽은 것은 정말 잘된 일인데 네가 울기는 왜 우느냐?
어서 보로 돌아가자."
그러나 금루선연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아버지, 정말 저는 안 갈래요.
저는 백장애로 가서 평오빠의 시체를 찾아야 해요."
신천오는 두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닥쳐라! 네가 아무리 발버등 친다 해도 절대 갈 수가 없다."
금루선연은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에게 애원을 했다.
"아버지, 제발 저를 말리지 마세요.
평오빠는 저의 생명까지 구해준 은인이에요.
그런데 지금 그가 죽었는데 어째서 시체도 못 치우게 하십니까?"
신천오는 노기충천하여 그녀의 뺨을 찰싹! 때린 다음에
가냘픈 팔목을 힘껏 잡아 끌면서 소리쳤다.
"잔소리 말고 어서 가자!"
그러더니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녀를 잡아 끌다시피 하면서
앞으로 달려가자 금루선연은 아버지가 한없이 야속하기만 해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치더니 기어코 신천오의 손에서 빠져 나와 이내 단검을 뽑아 들고는 울면서 소리쳤다.
"아버지께서 정 그러신다면 저는 이곳에서 죽어 버리고 말겠어요."
그러더니 이내 장검을 자신의 목에다 갖다 대었다.
신천오는 금루선연에게 만약 강경하게 강요한다면 서슴없이 자신의 목을
단검으로 칠 수 있음을 알기에 미간을 찌푸린 채 딸을 노려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적발교 총단의 소재이므로 별 위험은 없을 테니 어쩔 수 없이 보내야 되겠군.'
이렇게 생각한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 장탄식을 터뜨렀다.
"아마 오늘 이 신천오가 생애 최악의 날을 맞이 했나보구나.
제자가 배반한 데다가 또 저 계집애까지 이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다니…"
여기까지 말한 그는 갑자기 냉랭하게 소리쳤다.
"어서 가라! 다시는 보로 돌아올 생각은 아예 말아라."
그러더니 이내 몸을 날려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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