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외로운 여마
금루선연은 아버지인 신천오가 노발대발하며 떠나자
불안한 마음은 걷잡지 못했지만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긴 그녀는 무슨 결심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백장애로 향해 잽싸게 달려갔다.
백장애까지는 몇 십 리 길에 불과하여 그녀는 얼마 가지 않자 목적지에 도착하여
계곡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아내지 못했다.
'혹시 화산파의 도사들이 그의 시체를 가져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 그녀가 잠시 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어리둥절하고
그녀의 등 뒤에서부터 매우 슬픔에 차 있는 서글픈 탄식 소리가 들려 왔다.
금루선연은 순간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지만 이런 험지에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재빨리 검을 잡은 채 몸을 돌려 보자
한 청사의 복면여인이 칼날처럼 예리한 석순 위에 뒷짐을 진 채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몸에 입고 있는 궁장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매우 신비스럽게 보였다.
금루선연은 강호상에 이러한 여자가 있다는 것을 전혀 들어 보지도 못했으므로
절로 의혹이 생겼고 즉시 간드러진 음성으로 소리쳤다.
"당신은 누군데 어쩐 일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그러나 청사의 복면여인은 한참 동안 아무 대답도 없었다.
금루선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다시 소리쳐 물었다.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는데 왜 말이 없는거죠?"
복면여인은 그제서야 눈이 휘둥그래지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고 태연하게 금루선연을 향해 물었다.
"얘야! 너는 위중굉의 시체를 찾으러 왔느냐?"
금루선연은 위중평의 시체를 찾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지라
상대의 물음에 귀가 솔깃하여 급히 물었다.
"네, 맞아요. 그런데 혹시 그를 보셨나요?"
복면여인은 그의 물음에 대해서는 들은 척하지도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너는 그와 어떤 관계냐?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먼 데서 그의 시체를 찾으러 온 것이지?"
금루선연은 그녀의 물음을 받자 문득 파거 어렸을 때의 일들이 머리에 스쳐갔고
잠시 과거를 더듬는 듯 깊은 생각에 잠긴 금루선연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
"저는 그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난 친구예요.
또 저의 오빠라고도 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복면여인은 이 말을 듣자 냉랭하게 물었다.
"너는 분명 그를 사랑하고 있지 만약 그가 죽었다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금루선연은 가볍게 탄식을 터뜨렸다.
"그래요. 저는 죽도록 그를 사랑하고 있어요.
만약 그의 시체를 찾아 그가 죽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저는…
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아마 저는 살지 못할 거예요."
"그럼 너도 그와 같이 죽겠다는 거냐?"
복면여인의 음성은 더할 수 없이 냉막하여 거기에다 꾸짖는 듯한 말투였다.
"그가 죽었다면 제가 더 이상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차라리 같이 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이런 말들을 서슴없이 내쏟는 그녀의 담담한 태도로 미루어 보아
삶의 의욕을 잃고 있는 듯했고 복면부인은 그녀의 솔직한 태도에 연신 감탄을 했다.
"호… 호… 정말 무슨 열녀 같구나.
내 너에게 분명하게 말해 주지만 세상 남자들이란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단다."
금루선연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아니예요. 그렇지가 않아요.
딴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평상공은 절대 믿을 수가 있어요.
그를 만나보면 그의 사람됨을 알 수가 있을 거예요."
복면부인이 어찌 위중평에 대해 모르겠는가.
그는 위중평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소식을 알기 위해서
그를 찾으러 온 것인데 한 발 늦어 위중평은 이미 홍모음효에 의해 절벽 밑으로 떨어진 후였다.
이 신비의 복면부인은 공력이 탁월하여 거울과 같이 미끈한 절벽에서도
하나의 작은 흔적을 찾아냈으며 아울러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도 이곳에 와서 독문표시까지
남긴 것을 발견했다.
복면부인은 금루선연의 말을 듣고 나자 문득 어떠한 사람을 연상케 되어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더니 이 소녀는 너무나 그의 아버지를 닮았다.'
그녀는 비록 천하무림의 남자들을 증오하고 있기는 했지만
신주검성에 대해서만은 예외였고 그녀는 그에 대해 죄스러움을 느껴
무거운 죄책감마저 지니고 있었다.
또 장백파에 대해 유익한 일을 한두 가지 해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짧은 시간 안에 한 가지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얘야, 안심하거라. 위중평은 비단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우를 얻어 장차 공력이 더욱 심묘해지고 고강해질 것이다."
이렇게 말한 복면부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네가 그와 어울리고 싶다면 필히 공력을 연마해야 된다."
이 천진난만한 아가씨는 위중평이 죽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자
크게 기뻐하면서 소리쳤다.
"그게 정말인가요? 정말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이내 두 눈을 크게 뜨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평상공의 공력이 이후 더욱 고강해지면 저의 공력이 그보다 못하다고 해서
저를 따돌리면 어떻게 하지요?"
"너를 따돌리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너의 공력이 그에 비해 훨씬 뒤떨어진다면
너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쑥스러울 것이 아니겠느냐?"
금루선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겼고 개봉에 있는 객점에서
안미옥에 의해 단검을 떨어뜨린 부끄러운 일이 생각나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다 평상공의 공력이 그 정도로 강한데 내가 무슨 수로 그와 비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란 대부분 영웅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어 그 누구에게도 뒤떨어지거나
부족한 능력을 갖고 싶은 사람은 없다.
특히 평상시에 부러운 것이 없이 자라난 금루선연은 더욱더 그랬기에 금루선연은
절로 안타까워하면서 소리쳤다.
"내가 츤상시에 공력을 열심히 연마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남들에게 뒤떨어지는 거죠?"
복면부인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면서 말을 받았다.
"흥!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뭘하느냐?
설사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연마한다 하더라도 신천오 같이 미약할 뿐이지."
금루선연은 상대가 자기의 아버지를 경시하자 은근히 치밀어 그에게 반박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매우 대단하겠군요?"
복면부인은 날카로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내 손에서 삼 장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지."
금루선연을 입을 삐죽거렸다.
"거짓말 마세요!"
복면부인은 금루선연이 귀엽게 반박하는 것을 보고는 가볍게 소리 쳤다.
"네 이년! 날이 곧 어두워질 테니 만약 무공을 배우고 싶다면 내반 년 동안 가르쳐 주겠다.
반 년 후면 너는 삼흉과 같은 밥통들보다 훨씬 고강해질 것을 내가 보장하마."
금루선연은 상대가 계속해서 자기 아버지를 멸시하자
내심 몹시 불쾌하였지만 고강한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 큰 유혹인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한 가지만 더 묻겠어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죠?"
"나 말이냐? 나는 옥탑단장인이란다."
금루선연의 안색은 순간 급변하고 내심 더할 수 없이 놀랐다.
옥탑단장인이 항주 북고봉에서 홀몸으로 무림 각파의 고수들을 상대했다는 얘기를
그는 신천오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기에 금루선연은 더욱 그에게
무학을 배우고 싶었지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천진난만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바로 옥탑단장인인가요?
저는 당신을 사부로 모시고 싶지만 당신은 나쁜 사람이죠?"
옥탑단장인은 이 어린 소녀가 자신을 앞에 두고 직접 나쁘다고 비평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깨끗하고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소녀에 대해 묘한 호감을 느낀 것이다.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고 난 옥탑단장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다! 나는 아주 나쁜 사람이다.
하지만 너를 제자로 둘 생각은 없으며,
너 또한 나를 사부로 섬길 필요는 없다.
그러니 너는 반 년 동안 무공을 터득한 후 각자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너와는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은 결코 너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모님! 저는 결정지었어요. 저에게 무공을 전수해 주세요."
이모라는 칭호는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었으나 옥탑단장인은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달큼한 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나이 칠십이 되었지만 여태껏 그녀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항상 외롭게 지내왔다.
그의 성격은 난폭하고 독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그녀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이 치솟는 것은 사실이었는데 자신을 너무나 다정스럽게 부르자
여성 특유의 모성애가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싹터 올라 자상한 태도로 말했다.
"얘야! 우리 즉시 공력을 연마하러 떠나자."
이렇게 말한 옥탑단장인은 이내 몸을 옮겨 앞질러 갔다.
그녀는 한 번 뛰었는데도 이십여 장 밖에 나가 있었다.
이 동작은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선녀와 같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금루선연은 절로 다급해서 자전의 경공술을 전개해 잽싸게 뒤따라 갔지만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해 쫓아간다 해도 앞지를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한참 뛰고 나자 금루선연은 전신이 땀으로 젖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옥탑단장인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금루선연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자! 이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이 말이 끝나는 순간 금루선연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 후부터 옥탑단장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려갔는데
이것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어서 자신이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렇게 약 두 시진 동안을 달리고는 밀림 속으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매우 고요하고 신비스러운 계곡이 나타났고 거기에다 차가운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오자 일종의 알 수 없는 신비함과 공포를 느끼게 하였다.
금루선연은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동굴 안은 마치 수정궁과 같이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었다.
주위의 벽 또한 호화찬란하게 갖가지 구슬과 보물로 가득 찼고 모두가 그 값을 알 수 없는
신기한 것들이어서 금루선연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그 자리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을 구경하면서 쉴사이 없이 질문을 던지며
질문을 할 때마다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지만 옥탑단장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마치 석고상과 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금루선연은 저 혼자 재잘거릴 뿐 옥탑단장인이 거들떠보지도 않자
절로 화가 나서 팩하니 토라져 한쪽 의자에 푹 주저앉아서는 고개를 반대로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옥탑단장인은 비록 냉막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에 여러 번이나 결혼을 했으나 그녀는 홀몸이며 슬하에 자식이란
가져 보지를 못하고 평생을 고독하게 지내왔다.
그런데 금루선연과 같은 천진난만한 여자 아이를 만났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녀가 성격이 난폭하고 또 심지어 냉혹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선천적인 것이 결코 아니며 태반이 주위의 환경 때문이었다.
그녀는 얼마간 묵묵히 앉았더니 복면을 벗으면서 입을 열었다.
"얘야! 이곳이 마음에 드느냐?"
순간-.
금루선연은 옥탑단장인의 실제 모습을 보자 두 눈을 휘둥그래 뜨고 어쩔 줄을 몰랐다.
"하… 이모님! 정말 예쁘시군요, 정말…"
옥탑단장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여자가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하여도 결코 행복하지는 못하단다."
그녀의 말 가운데에는 어딘가 모르게 한이 맺혀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게 비통했던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하게 자라나 일생을 살아나가는 데의 수많은 고통에 대해
알 리가 만무한 그녀는 옥탑단장인의 말을 듣고 나자
절로 당황하여 잠시 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옥탑단장인은 그녀를 불러 가까이 앉히더니
두 손으로 그의 양 손을 잡은 채 얼굴을 자세하게 살펴보더니
아무 말 없이 한쪽 옆으로 가 작은 옥병을 하나 들고 와서 입을 열었다.
"얘야! 너는 참 복이 많은 애구나,
여기 옥액이 몇 방울 남아 있으니 어서 이것을 마셔라.
이것을 마시면 너에게 이득이 있을 것이다."
금루선연은 병마개를 살며시 열어 보고 순백색의 액체가
꼭 어머니의 젖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양이 너무 적었으므로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모님! 이까짓 것을 마셔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옥탑단장인은 그가 귀엽게 애교를 떠는 것을 보자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 너는 바보구나.
이 옥액은 만년온옥의 정화로서 사람을 늙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수명까지 연장해 줄 수가 있단다.
만약 무림인이 한 방울을 마시면 십 년의 공력이 증가될 수 있다.
그러니 적다고 투정부리지 말고 어서 빨리 마셔라.
그리고 나는 너를 위해 아직 뚫리지 않은 생사현관을 뚫어 주겠다."
금루선연은 믿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옥액을 쭉 마시자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전신이 시원해 지면서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만년온옥의 정화는 무상의 혼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옥탑단장인의 나이 칠십인데 아직도 삼사십 세 중년으로 보이는 것은
역시 옥액을 복용한 결과이다.
금루선연은 잽싸게 바닥에 내려앉아 운공조식을 하기 시작했고
약 반 시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즉시 무아지경으로 빠졌다.
옥탑단장인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이 천진스럽고 귀여운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어린 소녀에 대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을 끼며 자신이 갑자기
왜 이렇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 손에 죽은 사람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녀는 자신에 의해 죽은 자들은
조금도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냉혹하기 비할 데 없어 살인으로서
자신의 공허함을 달랬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살인을 할 때 뿐이었으며 죽이고 난 다음에는 더욱더 허전해지고
쓸쓸함을 느꼈는데 생각지도 않게 어린 소녀를 만나게 되어 그녀에게 어떤 행복을
안겨다 준 것이다.
그는 이 어린 소녀를 죽도록 꼭 껴안아 주고 싶은 생각이 감돌았다.
'내가 필요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물은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틀림없는 것이었다.
옥탑단장인의 냉혹함과 잔악성은 비록 많은 자극을 받아서 생긴 것이기는 하나
고독한 여인으로서의 행복감을 얻지 못한 것도 원인 중의 하나인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 옥탑단장인은 옥액의 약효가 발효될 시간이 되자
즉시 금루선연의 앞으로 가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콧구멍 안에서부터 두 가닥의 횐 광채가 폭사되어 나와 금루선연의 주위를
완전히 환하게 에워쌌는데 이 때 금루선연은 하얀 기체에 의해 완전히 둘러싸여
마치 관음보살 앞에 있는 봉녀와도 같이 장엄해 보였다.
코를 통해 진기를 발해 낸 옥탑단장인은 깨끗하고 백옥처럼 흰 섬섬옥수를 들어서
금루선연의 전신에 있는 혈도를 빼놓지 않고 찍었다.
그녀는 옥탑의 공력을 얻은 후부터 현문상승의 심법도 최고의 경지까지 도달한 것인데
옥탑단장인은 금루선연이 볼수록 사랑스러워 그에게 옥액을 복용시킨 것 외에도
음양진기를 운용하여 그녀를 탈태환골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일구 통천지로 생사현관을 뚫어 주었다.
이런 일구통천지와 같은 공력은 진력을 크게 소비시키는 것이기에 절로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급히 눈을 감고 운공조식을 하여 다시 정상을 되찾았고 이 때 금루선연도
운공조식을 끝내고 일어나 옥탑단장인의 품 속으로 와락 달려들면서 말했다.
"이모님! 이모님은 너무나 좋씬신 분이에요.
저는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속마음은 너무나 착하고 천진난만하여 이러한 행동은 완전히
마음 속에 우러나온 것이며 눈꼽만치도 위장된 것은 없었다.
옥탑단장인은 그녀를 꼭 껴안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얘야! 이 이모는 진심으로 너를 좋아하고 있단다.
이제부터 이모와 이곳에서 살면서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꾸나…"
두 사람은 서로 부등켜 안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옥탑단장인은 매우 흥분한 상태로 금루선연의 머리와 전신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금루선연은 그제서야 서서히 옥탑단장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옥탑단장친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이모님!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어요.
저는 결코 이모님과 이곳에서 영원히 살 수가 없어요.
저에게는 아버지가 있는데 어찌 아버지를 버릴 수가 있어요? 단 하나…"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말꼬리를 흐리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옥탑단장인은
그녀의 말을 듣고 나자 크게 실망하여 안색이 급변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는 강제라도 요구했을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어린 소녀에게는 마음을 독하게 쓸 수가 없어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서 급히 물었다.
"단 한 가지란 무엇 때문이지?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야만 된다는 거냐?"
금루선연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아버지께선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저 역시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백 년 후까지 모실 거예요.
그러나 그 때 가서… 아! 역시 불가능해요.
그 때가 되면 저는 평상공과 함께 강호의 안녕을 위해 일을 해야 돼요…"
그녀는 그야말로 천진스럽기 짝이없었다.
위중평의 말이 나오자 지금 현재 상대방의 심정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다시 말했다.
"이모님! 저는 지금 경맥이 완전히 뚫렸는데 만약 반 년 동안 무공을 연마한다면
평상공을 이길 수가 있을까요?"
그러나 옥탑단장인은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대답이 없자
이상하다고 생각한 금루선연은 너무나 놀라 기겁을 할 뻔했다.
옥탑단장인은 얼음처럼 차가운 태도로 온통 살기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잽싸게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그의 옆에 다가서서 옥탑단장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았다.
얼마쯤 무거운 침묵이 흐르자 옥탑단장인의 태도는 점점 누그러지더니
가볍게 탄식을 터뜨렸다.
"너의 평상공은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나 한 비상한 인물에 의해 공력을 전수받아서
너는 그를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금루선연은 무표정하게 앉아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옥탑단장인은 그녀가 위중평을 따르지 못한다고 해서 화가 난 줄만 알고
살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얘야! 화내지 마라.
이 이모가 너를 괄시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네가 그를 따르지 못한다고 한 것은 체질을 말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공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공력만으로 따진다면 누가 더 강한지는 얘기하기가 어렵단다."
금루선연은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애교스럽게 말했다.
"이모님께선 잘못 생각하셨어요.
저는 그보다 강할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평상공의 공력이 더욱더 증진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 한 마디로서 굳어진 분위기는 곧 가시게 되었다.
당시 옥탑단장인은 금루선연이 그의 아버지 곁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잠시 신천오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만약 그녀가 마음 속으로 결정만 내렸더라면
신천오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그녀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금루선연이 애교스럽게
이모라고 불러 아버지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이날부터 금루선연은 단장곡에서 옥탑단장인과 같이 침식을 하면서 열싶히 공력을 연마했다.
옥탑단장인은 자기의 경공술과 검술 등을 빠짐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수시켜 주었고
삼제유공(三際柔功)신법까지 전수해 주었다.
만년온옥액을 마신 금루선연은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다.
옥탑단장인이 전수해 주는 대로 즉시 익혀 나가자
기쁨에 넘친 옥탑단장인은 자신 조차도 사용하지 않았던 옥탑의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이궁주인이 만년에 창작해 낸 것으로 신기무비할 뿐만 아니라
위력 또한 이루 말할 여지가 없는 천뢰장법까지 전수해 주었다.
금루선연은 삼 개월에 걸쳐 천뢰장법을 완전히 터득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어느덧 반 년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춘삼월이 찾아왔고
이 반 년 동안에 옥탑단장인은 세 번이나 강호에 들어가 강호의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첫 번째 소식은 무림의 군웅들이 항주 북고봉에서 장진도와 금약을 쟁탈했지만 결과는
흑옥인마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 후 흑옥인마가 돌연 남해연안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군웅들은 그가 바다를 건너 보물을 찾으러 갈 계획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어 각지의 무림인들은 다시 동맹을 맺고 동해로 달려갔으나 소식에 의하면
오랫동안 강호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두 살성들도 다시 강호에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소식은 위중평이 홍모음효에 의해 절벽 밑으로 떨어진 후 적발교는
강호에서 잠적처으며 교 내의 핵심인물들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된 동시에 위중평의 사문인
화산파는 그를 위해 복수할 것을 각오를 하여 대부분의 고수를 파견해 낸 것 외에도
청허도장이 직접 화양 십이도사를 거느리고 남하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 장산도주도 팔도어부(八島漁夫)를 거느린 채 남하하여 화산파와 화합을 했다.
이로 인하여 강호에선 다시 한 번 큰 소동이 일어났으며 또 하나의 풍파를 암시해 주었다.
이 두 가지 소식을들은 금루선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평상공은 죽지 않았는데 그들이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죠?"
옥탑단장인은 절로 탄식을 터뜨렸다.
"화산파야 본파의 사람이 피살되어 복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장산도주는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예비 장인과 예비 사위를 위해 복수하는 것일까?
아마 인정이 너무 많아서 그렇겠지…"
그녀의 뇌리에는 도의나 감정 따위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금루선연을 위해서 장산도주나 위중평을 위하는 것이며
또한 신주검성에 대한 죄의식을 보충하자는 것인데
만약 위중평을 안미옥이 먼저 차지한다면 지금까지의 심혈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 아닌가?
금루선연은 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이모님! 혹시 아버지의 소식에 대해선 듣지 못하셨나요?"
"그는…"
순간 옥탑단장인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그녀의 물음에 대해 잠시 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금루선연은 순간적으로 일종의 불길한 예감을 느껴 다그쳐 물었다.
"이모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되셨나요. 네?"
"그는 이미 살해당했단다."
"뭐라고요? 아버지가 죽었다고요?
그렇다면 누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죠? 어서 말씀해 주세요…"
금루선연은 참지 못해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옥탑단장인의 표정은 냉막하기만 할 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 무표정하였다.
금루선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참 동안 흐느껴 울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소리첬다.
"알겠어요.
당신이 죽인 것이 분명해요.
정말 흉악하군요."
그녀가 이 단장곡에 들어오던 날 아버지 곁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옥탑단장인의 얼굴에 무서운 살기가 떠올랐던 것을 머리에 떠올라
냉랭하제 소리치고 나더니 이내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지금의 그녀는 공력이 크게 증진되었고 경공술 또한 뛰어나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옥탑단장인은 금루선연이 그 흉수가 자신이라고 생각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즉시 뒤를 쫓아갔으나 금루선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한동안 동굴 밖에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절로 탄식을 터뜨리더니 몸을 날려 어리론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금루선연은 슬픈 마음을 안은 채 단장곡을 향해 마구 달려나와 제정신이 아닌 채로
오후 한 때를 미친 듯이 달린 그녀는 한 마을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더 이상 경공술을
전개할 수 없게 되자 즉시 말을 한 필 사기로 마음먹고는 총총걸음으로 마을에 들어선
그녀는 아무렇게나 배를 채운 다음 즉시 말을 몰고 계속 신가보를 향해 달려갔다.
약 한 시진쯤 달렸을 때 어디선가 요란한 말굽 소리와 함께 대여섯 필의 말이 앞에서부터
질풍과 같이 달려왔는데 흉악한 표정들로 보아 결코 선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여덟 필의 말은 일렬 횡대로 달려오고 있어 좁은 길을 완전히 차지하였다.
금루선연은 갈길이 바빠서 채찍질을 하며 가운데로 뚫고 나갔는데 이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일종의 도전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녀가 막 중간으로 통과했을 때 완북 사투리를 쓰는
사나이가 냉랭히 소리쳤다.
"빌어먹을 년! 아비라도 죽었나, 뭐가 그리 급하지?"
이 한 마디는 금루선연의 마음 한 구석을 여지없이 찌른 것이어서
머리 끝까지 화가 치민 그녀는 날쌔게 돌아서서 소리쳤다.
"네 이놈! 지금 누구에게 하는 소리냐?"
사나이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년에게 한 얘기다! 왜 그래서 싸울 생각이냐?"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예리한 파공음이 들리면서 긴 채찍이 휘감겨 왔고 사나이는
이 어린 소녀가 이렇게 당돌하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나 어쨌든 잽싸게 옆으로 피했다.
화가 절로 치밀어 오른 사나이가 막 자세를 가다듬고 반격을 가하려고 할 때
그 중 한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색혼판관 노제! 경거망동하지 말게.
저 아가씨는 신가보주의 영애이며 모두 사강의 사람이니 그만들 두게나."
그러더니 계속해서 금루선연을 향해 포권의 예를 취했다.
"연아가씨, 노여움을 거두시오.
노부는 적발교의 복수당주 혁연강이오.
사강은 일채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오."
금루선연은 본래부터 그들과 싸을 마음이 눈꼽만치도 없었던지라
노인이 나서서 사과를 하자 역시 그녀도 포권의 예를 취하며 말했다.
"이제 보니 혁선배님이시군요.
소녀가 몰라 뵙고 경솔한 죄 용서해 주십시오.
그럼 이만 작별을 고하겠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말머리를 돌려 잽싸게 달려갔다.
적발교의 무리들은 모두가 한통속인지라 더 이상 화도 내지 못하고
역시 계속해서 갈 길만 재촉했다.
금루선연은 얼마간 달린 후 문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적발교주는 백장애에게 일진을 벌인 후 강호에서 종적을 감춰버리고
더 이상 강호에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한 패의 고수가 나타나다니,
필시 무슨 중대한 일이 생긴 것이다.
그들의 뒤를 따라가 한 번 조사해 봐야 되겠는데…'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즉시 말머리를 돌려 적발교도들의 뒤를 계속 추격했다
그러나 반 리도 채 달리지 못했을 때 숲 속에서부터 미친 듯 웃음과 함께 두 인영이 달려나왔다.
한 명은 강호의 유명한 구주풍인이었으며 그 뒤로 안미옥이 따르고 있었다.
구주풍인은 달려 나오자마자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이것 봐! 신가보의 아가씨,
혹시 적발교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는지?"
그는 강호에서 지위가 대단하며,
또 사람 됨됨이가 올바르며 흑백 양도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어 금루선연도
그에 대해서는 샅샅이 알고 있었기에 급히 말을 세우고는 대답했다.
"소녀도 지금 그들을 쫓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노선배님께선 무슨 일로 그들에 대해시 물어 보십니까?"
구주풍인은 미친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중평, 그 녀석 때문이지 또 뭐가 있겠느냐?
혹시 너도 소식을 얻지 못했느냐?"
많은 사람들이 위중평이 절벽 밑으로 떨어진 것을 보긴 했지만
시체를 찾을 길이 없었으므로 전부 그가 죽지 알았다고 믿고들 있었다.
위중평의 얘기가 나오자 금루선연은 기뻐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아마 옥탑단장인을 제외하고는 내가 그의 소식을 아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신비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구주풍인은 그녀의 태도와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가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요 망칙한 계집이 감히 어르신네에게 수작을 부리려 하다니,
어디 누가 이기나 한 번 보자…'
이렇게 이를 악물고 생각한 구주풍인은 미친 듯이 웃어대며 입을 열었다.
"으하하하… 그는 어젯밤에 두 번이나 강호에 나타났는데
적발교주에게 복수할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
우리는 지금 완산 금장사에 있는 적발교의 임시 총단으로 가서 그와 화합할 참이다."
금루선연은 이 말을 듣자 급히 말 위에서 뛰어내려 주구풍인에게 찰싹 붙어 애교스럽게 물었다.
"노선배님, 그것이 정말인가요?"
구주풍인은 단 한 마디로서 금루선연을 속이고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썼으나
겉으로 정색을 하면서 소리쳤다.
"너희들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성장하여 더없이 친한 사이인데
그가 신가보로 너를 찾아가지 않았더냐?"
금루선연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구주풍인의 말을 틀림없을 것 같아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말했다.
"그는 한 비상한 인물에 의해 구조된 것을 저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단장곡에서 반 년 동안 무공을 닦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기 때문에
저를 찾지 못할 거예요.
그가 지금 금장사로 갔다고 하니 저는 당장 그를 찾으러 가야겠어요."
구주풍인은 자신의 속임수가 들어맞어 위중평의 정확한 소식을 알게 되자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등에 메고 있던 호루병을 꺼내 술을 들이키면서 소리쳤다.
"그녀석 과연 명이 길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가 죽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만은 그가 죽었다고 고집을 피웠지.
정말 기쁘구나, 기뻐…"
구주풍인이 위중평을 만났다고 한 얘기가 자신을 속이기 위한 수작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고 막 입을 열어 몇 마디 핀잔을 주려할 때 안미옥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으면서 친절하게 물었다.
"동생! 그가 구조되었다는 것이 사실인가?"
금루선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럼 거짓말인 줄 아세요? 속고만 살았군…"
이렇게 말한 그녀는 언젠가 객점에서 안미옥에 의해 단검을 떨어뜨린 일이 생각나
급히 손을 뿌리치며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나에 대해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척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아직 끝내야 할 일이 남았어요."
안미옥은 금루선연의 말에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얼떨떨했다.
"끝내야 할 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흥! 정말 건망증이 심하군요.
언젠가 나의 단검을 떨어뜨린 일을 잊었나?"
"그 일은 지나간 일인데…
또 끄집어내는 이유는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흥!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나 금루선연이 그렇게 당하고 있을 줄만 아세요"
안미옥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여전히 자상하게 말했다.
"동생! 내가 이렇게 사과할 테니 화내지 말아, 응?"
금루선연은 그녀의 말에 아랑곳도 없이 계속 소리를 질렀다.
"안 돼요! 어서 당장 검을 뽑으세요.
나도 삼 초 내에 당신의 검을 떨어뜨려야겠어요."
금루선연은 기세만만하여 당장이라도 공격할 태도였다.
안미옥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타일렀다.
"동생! 우리 빨리 적발교도의 무리들을 쫓아가기로 하자.
그리고 시합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정 그렇다면 내가 졌다고 시인하지."
금루선연은 노기띤 음성으로 소리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꼭 겨루고야 말겠어요.
만약 그래도 공격하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공격하겠어요."
이렇게 소리친 그는 정말 일 장을 밀어내 공격해 들어왔다.
안미옥은 상대의 나이가 자기보다 적었고 또 위중평과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난 청매죽마인 것을 생각해서라도
그와 싸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다짜고짜로 장풍을 밀어내
들어왔을 뿐 아니라 장풍이 어찌나 거센지 그 어린 아이에게
그러한 무공을 연마했다는 사실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안미옥은 대경실색하여 옆으로 피하면서 소리쳤다.
"동생! 정말 싸울 생각이냐?"
금루선연은 코웃음을 냉랭하게 쳤다.
"흥! 그럼 가짜 싸움도 있나요?"
그러더니 계속해서 이 장을 격출해 냈다.
그녀는 만년온옥액을 복용한 후 처음으로 장력을 전개하는 것이었으며
장세나 내력은 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고 이 장풍은
마치 광풍노도와도 같아 한쪽에서 있던 구주풍인까지도 크게 놀랐다.
안미옥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급히 장법을 전개해 응수하며
상대의 이 장을 무형으로 화해시켰지만 이번의 한 수로서 그녀는 벌써 열세에 처한 것이다.
안미옥은 절로 촤가 치밀어오르자 뒤로 다섯 걸음이나 후퇴하더니
하늘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쳤다.
"네가 꼭 싸우겠다면 어쩔 수가 없지!"
이렇게 소리친 그녀는 최근에 배운 이심장을 전개해 냈다.
한천여심(恨天女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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