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북고봉의 언약
이 때였다.
"따가닥… 따가닥…"
하며 들려 오는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위중평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고
말발굽 소리는 바로 등 뒤에서 들린 것 같았는데 어느새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앞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위중평은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스쳐 지나간 사람이 어깨에 비파를 맨
흑의낭자라는 것을 보았다.
흑의낭자가 탄 말이 지나가기 무섭게 다시 한 필의 말이 들 이닥쳤다.
지금 달려간 말 위에는 신체가 우람하고 도도하기 이를 데 없는 노인이었는데
한눈으로 보아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복장을 한 노인은 위중평을 향해 다가서며
냉랭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너는 뉘집 꼬마이길래 어른들이 지나가는 길을 비켜줄 줄 모르느냐?"
위중평은 이 오만하고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노인의 말에 기분이 상해 대꾸조차 하지 않았고
노인은 위중평이 고개조차 돌리지 않자 이번에는 더욱 음성을 높여 외쳤다.
"야,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너 조금 전에 이곳으로 지나가던 요물을 보지 못했느냐?"
위중평은 이 노인이 말하는 요물이란 바로 조금 전에 비파를 메고 지나간
흑의낭자를 가리키는 것인 줄 알았으나 대뜸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거칠게 말을 내뱉는
노인의 오만한 태도가 몹시 거슬려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의 얼굴이 대뜸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네 이놈!"
노인은 대뜸 폭갈을 터뜨리며 일 장을 뻗어왔다.
위중평은 꽤 나이를 먹은 듯한 이 노인이 이처럼 비겁하게 등 뒤에서
암습을 가해 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를 못했다.
위중평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 급히 말꼬리를 틀어 단장배장(單掌拜杖)으로
반격을 가해 들었다.
"꽝!"
경천동지할 괴음이 막 저물어 가는 관도 위에서 터지자 위중평이 타고있던 말은
크게 울부짖으며 뒤로 밀려났지만 노인은 그대로 말등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보기 좋게 콧잔등을 찧고 말았다.
이미 분통이 터질대로 터진 위중평은 번개같이 몸을 날려 노인의 앞에 내려서며 욕설을 퍼부었다.
"나이 깨나 먹은 늙은이가 이렇듯 비겁하게 등 뒤에서 공격을 하다니 정말 나이값도 못하는군."
노인은 얼른 땅바닥에서 일어나며 처절하게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오냐, 나 우주광인(宇宙狂人)의 비위를 거슬리는 자는 결단코
살아난 자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위중평은 싸늘하게 냉소를 쳤다.
"우주광인? 흥, 이름 한 번 그럴싸하군.
우리 길고 짧은 것을 한 번 대보기로 합시다."
우주광인이라는 노인은 정말 어이가 없는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아니, 네까짓 놈이 감히…"
"오냐, 나는 장백파의 장문인 위중평이다.
내 초식의 맛을 한 번 보겠느냐?"
말을 끝내기 무섭게 위중평은 가볍게 몸을 틀어 한 줄기 강력무비한 장력을 내밀었고
그러자 예리한 바람 소리와 함께 즉시 장심에서부터 장력이 격출되었다.
우주광인은 상대 소년의 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역시 소매를 휘둘러 내가(內家)의 강기(剛氣)를 쳐내었다.
두 줄기 장풍이 서로 맞붙는 순간이었다.
"펑!"
하는 괴음이 터지자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흔들었다.
첫 번의 대결은 이것으로 간단하게 끝났으나 두 사람은 다시 공격의 자세를 취하여
이 장을 격출해 내었다.
두 사람은 다시 비슷하게 한 걸음씩 물러났다.
위중평은 커다랗게 광소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으하하하… 당신의 무공은 뛰어난 것도 없구려."
이 때 우주광인의 태도는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그는 위중평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저놈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면 힘 좀 아꼈다가 오늘 밤 삼경 북고봉(北高峰)에서 만나자.
젊은이, 노부는 그 요부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너와 입씨름을 할 시간이 없다."
말을 끝내고 우주광인은 넓은 소매를 펄럭이더니
순식간에 몸을 날려 이십 장 밖으로 사라졌다.
어렴풋이 어둠 속으로 우주광인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위중평은
곧 말을 몰아 항주성으로 들어섰다.
주위는 이미 컴컴한 어둠이 깔린 뒤라 위중평은 총총히 객점을 찾아 들어서
가벼운 식사를 들고는 즉시 객점에서 나와 청허도장을 찾으러 나섰다.
때는 초경 무렵이었다.
애 때 위중평은 갖가지 범창(梵唱)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오는 것을 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사람의 간장을 끊는 듯 애처로와 위중평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위중평이 조금 길을 걸어가 보니 그 소리는 어느 자그마한 초가집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위중평은 대뜸 모사 안으로 들어섰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집안은 간결하고 또 깨끗했는데 넓이는 일 장도 채 못 되었지만 집안에 장식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유일한 장식으로 보이는 조그만 초롱불이 가물거리고 있는 가운데
시체처럼 비쩍 마른 도승이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위중평이 안을 살피고 있으려니까 그 노승은 두 눈을 힘 없이 뜨고 위중평을 쳐다보더니
다시 눈을 내리감으며 처량하게 입을 떼었다.
"소시주께선 어찌하여 아무것도 없는 이런 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자를 의심하고 있는 거요?"
그러더니 노승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눈을 뜨며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불(神佛)은 마음에 있는 것. 찬란한 우상만을 모시는 것보다 낫지 않소?"
위중평은 자기가 마음먹고 하려던 말을 노승이 정확하게 얘기를 하자
그의 신통력에 크게 놀랐다.
위중평은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급히 몸을 숙여 읍을 올렸다.
"대사께선 너무 물법(佛法)이 심후해 소생은 그저 감복할 따를 뿐입니다."
"소시주는 전화가 이미 달통된 것을 보니 필시 내가의 고수 같구려.
그런데 소시주께서도 역시 북고봉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오셨소?"
위중평은 이 노긍에게 다시 북고봉의 얘기를 듣자 내심 호기심이 충만되었다.
"대사께선 그것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위중평은 비록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부인을 하지 않았던 것은
교묘하게 말머리를 틀어 노승의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노승은 길게 탄식을 하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중생은 하나같이 욕망을 이기지 못해 잘못을 저지르고 있소이다.
그런데 소시주와 같은 법상을 지닌 분도 그런 세속과 같은 패류요?"
그러더니 노승은 길게 탄식을 뿜어 내었다.
"흠… 고해(苦海)는 끝이 없는 것…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암벽이라 했소…
소시주, 그 함정에 빠지면은 정말 큰일이오…"
노승의 이 첫 마디는 대뜸 북고봉에 누군가의 함정이 있다는 암시였다.
그러나 위중평으로서는 그곳에 모여 드는 사람들 간에 무슨 약속이 있는지 몰라
물론 대답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대사님의 교훈이 지극하십니다.
그러나 소생의 관심은 부모 님의 원수를 같는 것 외에 다른 뜻은 추호도 없습니다."
일시 노승이 말을 하지 않자 위중평은 다시 보충해서 이었다.
"그래서 저는 원수를 찾기 위해 오늘 밤 북고봉에 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노승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두 눈을 번쩍 치켜뜨더니 약간 어조를 높였다.
"빈승이 소시주를 이렇게 만난 것도 일종의 기이한 인연인 것 같은데 소시주께선
노승의 부탁을 하나 들어줄 수 있겠소?"
위중평은 몹시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능력이 닿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그 분부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노승은 그 말에 몹시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승포 소매에서 잘 접은 쪽지를 꺼내 위중평에게 건네 주었다.
"만일 북고봉에 가서 청사의 복면부인을 만나거든 이 쪽지를 좀 전해 주시오.
만일 그 부인이 묻거든 오는 길에서 노승을 만났다고만 말해 주면 되오."
위중평은 망설이지 않고 그 쪽지를 품 속에 넣고는 공수의 예를 취했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이어 위중평은 노승에게서 북고봉의 방향을 들은 뒤 그 길로 질주해 갔다.
북고봉은 항주의 서쪽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영은사(靈隱寺)를 북쪽에 두고 있었다.
보통 날이면 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로 울긋불긋 물을 들이던 곳이
오늘은 일련의 살기가 감돌아 주위를 온통 스산하게 만들었다.
공포와 음산, 그리고 질식할 듯한 초조가 나무 사이마다
그리고 온통 산허리를 돌아 낮은 구름처럼 짙게 깔려 있었지만 위중평은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봉우리 위를 힘차게 오르고 있었다.
북고봉의 맨 꼭대기에는 그 넓이가 약 사오 장에 달하는 평대(平臺)가 있다.
그 평대의 삼면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닥이었는데 평대로 통하는 길에는
오로지 유일하게 돌로 만든 다리가 있을 뿐인데 그 돌다리 옆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바위 위에는 이런 글씨가 있었다.
<단혼애(斷魂崖).>
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쓰여져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이 단혼애에는 날아가는 까마귀도 떨어진다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때는 이경 무렵-.
북고봉 주위에는 온통 짙은 살기가 깔렸고, 조용하게 밤의 적막 속에 잠겨 들어가고 있었다.
다만 간간히 밤새들의 울음이 공포를 이기지 못해 들려올 뿐 사방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위중평-.
그는 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듯 산꼭대기에서부터 휘몰아쳐 오는
북풍을 받으며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 때였다.
"후후후…"
위중평의 등 뒤에서 갑자기 웃음을 참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위중평은 본능적으로 경각심을 느끼고 급히 몸을 돌렸는데 놀랍게도 숲 사이에서
추혼천녀가 정이 담뿍 어린 눈초리로 위중평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중평은 이런 험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자 크게 기뻐하며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으나
그것보다 위중평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냉막한 추혼천녀의 이 고운 미소에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추혼천녀, 그동안 안녕하셨소?"
추혼천녀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생긋이 웃었다.
"소협은 장진도를 손에 넣기 위해 왔나요?"
위중평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오. 나는 그따위 물건엔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않소.
다만 난 삼흉과 일효를 만나려고 왔을 뿐이오."
순간 추혼천녀는 다시 본래의 냉랭한 태도로 돌아갔다.
"그것이라면 소협께선 조금도 신경쓸 필요가 없을 거예요.
오늘 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요."
이 말을 듣고 난 위중평은 갑자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돌연 그는 오늘 밤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알았다.
위중평은 갑자기 두 눈에 살기를 띠고 급히 외쳤다.
"안 돼! 다른 사람들은 전부 상관없어도 삼흉과 일효만은 내 손으로 직접 죽여야만 하오."
그러나 추혼천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하늘로 올리더니 무표정으로 돌아가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아마도 그녀는 이 중대한 문제의 발전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고 추혼천녀는
이 잘생기고 오만한 젊은이의 고집이 매우 귀여웠고 또 마음에 들었다.
추혼천녀는 이제야 어째서 많은 소녀들이 위중평을 사모하고 따르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처음 추혼천녀는 무덤 위에서 위중평과 만난 듯 냉막하고 싸늘한 마음이
어느새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점점 마음의 정서가 그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추혼천녀는 지금까지 계속 위중평의 뒤를 미행해 왔던 것인데 전날 그 고묘에서
추혼천녀는 모조음의 혈도를 찍었고 객점에서 안미옥을 치료하는 방법을 일러준
쪽지를 남긴 것도 바로 그녀의 소행이었는데 자기 사부의 명령을 받들고
이쪽으로 파견되어서야 비로소 위중평의 곁을 떠나 이곳 항주로 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위중평도 똑같이 항주에 도착해 이런 절지에서 만나고 보니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사부가 이제 음모를 발산시키는 순간인데 위중평은 자기의 원수는
자기가 갚겠다고 고집하니 그 결과는 이제 엄청나게 벌어지고 말 것이었다.
추혼천녀는 여기까지 생각을 하여 어떻게 할 줄 몰라 몹시 초조해 있었는데
이 때 위중평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서더니 가볍게 입을 떼었다.
"낭자, 사람이 오고 있소."
두 사람은 동시에 번개같이 몸을 날려 암석 뒤로 몸을 숨겼다.
과연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소리가 들리더니
여섯 그림자가 봉우리 위에 나타났다.
나타난 여섯 명 중 네 명은 위중평이 알고 있는 자였다.
그 첫째는 위중평의 가슴을 피로 얼룩지게 만들었던 전날 신가보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원수 홍모음효였다.
홍모음효를 위시해 그 뒤에 선 다섯 명은 독비악개를 비롯해 운개쌍괴였으나
나머지 두 명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홍모음효는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서자 녹광이 번득이는 눈으로 사방을 살펴보더니
갑자기 시선을 단호애라는 세 글자에 꽂으며 미친 듯이 웃어 젖히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아무래도 이곳에 무슨 음모가 있는 것 같군."
그러자 독비악개가 음산한 웃음을 날리며 끼어 들었다.
"히히히히… 그러나 제아무리 음모와 위계가 도사리고 있다 해도
이 적발교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홍모음효는 어떤 뜻을 생각하고 있는 듯 음산한 탄식만 토해 낼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때 암석 뒤에 숨어 있던 위중평이 참지 못하고 나서며 크게 소리쳤다.
"은대웅, 지금으로부터 십삼 년 전 백산목장에서 내 아버지 신주검성을 살해한 일을
아직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겠지?
핏빚은 언젠가 되돌려 받는 것, 나 위중평은 오늘 그 빚을 받고야 말겠다."
말을 끝내고 위중평은 두 눈에 정망을 번득이며 홍모음효를 노려보고 쌍장에 경력을 관주시켰다.
홍모음효는 위중평이 신주검성의 얘기를 꺼내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홍모음효는 그간 종종 보고를 듣고 위중평이 무서운 인물이라 생각해 이 장진도의
약속이 있기 전에 없애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섣불리 기회를 잡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딱 마주치고 보니 정말 후회가 막급했고 신주검성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바로 신가보에서
보았던 그 영특한 꼬마인 것을 보자 내심 은근히 놀랐다.
홍모음효는 잠시 위중평을 노려보고 있다가 갑자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왕년 백산목장에 노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중에는 오해가…"
홍모음효가 이처럼 수그러져 나오는 것은 군응들과 약정한 시각이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위중평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나 위중평은 꿈 속에서도 이를 갈아붙이던
원수를 대하고 보니 열풍같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는 순간이었기에 분노를 누르지 못하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쌍장을 낸 것인데 이 일 초는 위중평이 필살의 힘을 모아 쳐낸 것이니
만큼 그 위력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산을 밀쳐 버릴 듯한 낙서운 경풍이 노도처럼 홍모음효를 향해 휘몰아쳐 나갔다.
홍모음효는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그에게 이런 심후한 공력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때 홍모음효의 다섯 부하가 동시에 고함을 지르며 공격해 왔다.
"펑!"
온 산을 울리는 괴음이 터지자 사방에는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회오리 바람이 불었는데
이 때 위중평은 다섯 줄기의 위맹한 장력을 받고 나서 서너 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얏!"
위중평은 한 차례 기합 소리를 터뜨려 내고는 이를 악물고 순식간에 십이 장을 쳐내어
다섯 고수들을 혼란시킨 후 다시 홍모음효를 향해 덮쳐 갔으나 순간 눈앞에 인영이 번득이더니
냉면파파가 어느새 나타나 위중평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위중평은 막 덮쳐 가려는 찰나 냉면파파의 방해를 받자 참지 못하고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냉면파파, 당신이 무엇 때문에 남의 복수를 방해하는 거냐?"
냉면파파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어조로 말을 뱉아내었다.
"우리 사강은 언제나 일체다.
우선 노신의 풍뢰삼괴(風雷三拐)의 맛부터 보아라."
위중평은 어차피 오늘 밤에 혈전을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소리쳤다.
"오냐, 좋다. 어디 출수해 보아라."
냉면파파는 사강 중의 하나로 공력이 심후할 뿐 아니라 위력 또한 대단했기 때문에
위중평은 내심 경계를 엄중히 하며 자옥섭선을 꺼내들었다.
이제 일대 호기 넘친 접전이 벌어지는 찰나였다.
"받아라!"
위중평은 맑은 갈성을 내지르며 즉시 선기를 잡아 대뜸 냉면파파로 하여금
십여 보 밀리게 해놓고는 오로지 그의 목표는 원수인지라 홍모음효를 향해 덮쳐 갔다.
그러나-.
"멈춰라."
하는 폭갈이 터지며 냉면파파가 데려온 열두 명의 추부(醜婦)들이 손에 삼지창을 들고
포위해 들어와 대뜸 한풍과 같은 바람은 위중평을 향해 엄습해 들었지만
위중평의 자옥섭선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이를 악물고 시전해 내는 위중평의 단 일 초-.
"아악!"
하는 처절한 비명이 터지며 서너 명이 썩은 통나무처럼 나가 떨어졌다.
그 틈을 이용해 꾸중평은 다시 홍모음효를 향해 덮쳐 갔지만 홍모음효를 호위하고 있던
다섯 고수가 앞서 덮쳐 왔다.
바로 그 때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냉소가 터져 나오더니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붉은 그림자가 현장에 나타났다.
나타난 사람은 다름아닌 강호에 그 명성이 혁혁한 여살성 추혼천녀였다.
강호에 한 마두로 손꼽히고 있는 추혼천녀, 그녀는 무공이 불가사의할 뿐 아니라
출수 또한 악랄하기 그지없어 사강의 대열에 낀 홍모음효와 냉면파파 조차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이 여살성이 나타남으로 해서 가뜩이나 한 차례 피바람이 불어닥칠 것 같던
장내의 공기는 더없이 터질 듯 긴장되었다.
추혼천녀의 이 싸늘한 눈초리는 금방이라도 피바람이 일 것 같았다.
"으악!"
처절한 비명이 팽창된 공기를 가르더니 독비악개와 운개쌍괴 중의 둘째가
즉시 고꾸라져 비명에 죽고 말았다.
추혼천녀의 이 번개같은 출수는 내놓라 하는 일류급 고수들을 단 한 마디의 비명에 가게
만들었는데 이 때 죽장(竹杖)을 들고 괴상한 차림을 한 노파 한 사람이 다시 장내에 나타났다.
노파는 나타나자마자 냅다 자옥섭선을 들고 있는 위중평을 향해 지팡이로 가리키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너는 자선마군과 어떻게 되는 사이냐?"
지금 위중평에게는 이런 노파와 입씨름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것은 당신이 상관할 일이 못 되오.
만약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다가는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결과가 될 테니 나서지 마시오."
노파는 위중평의 이 건방진 소리를 듣자 즉시 야조의 울부짖음 같은 괴소를 터뜨렸다.
"이히히히히… 정말 건방지기 그지없는 애송이로구나.
감히 나 천독성모에게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다니… 킬킬킬킬.."
위중평은 천독성모라는 이 네 글자를 듣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위중평은 지금 무공 따위로 염려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고 이 천독성모가 무서운 독을
시전하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천독성모를 방비하기란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때 천독성모의 뒤에는 다시 일곱 명의 즐비한 소년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일곱 소년들은 하나같이 양피장갑을 끼고 시퍼렇게 독이 붙은 단검을 들고 북두칠성의
방위(方位)대로 서서 위중평을 포위해 들었다.
이 때 천독성모가 괴상한 음성으로 말을 토해 내었다.
"어서 그 자신의 출처를 소상하게 말해라.
추호도 거짓이 있을 때는 뼈도 추리지 못할 줄 알아라."
위중평이 이따위 협박에 눈하나 깜짝할 위인이 아니다.
그는 대뜸 코웃음을 날리며 높게 소리쳤다.
"흥, 어디 마음대로 해보시지. 내가 얘기를 해주마."
순간 표정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천독성모는 무섭게 인상을 치며 죽장을 들어
위중평의 가슴을 겨누었다.
그 때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은빛이 찬란하게 번득이더니
가슴에 검을 안은 도사들이 줄줄이 모습을 나타내었는데 이 때 수염이 가슴팍까지 드리워진
위엄 있는 도장이 천독성모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폐사제가 도대체 성모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렇게 진노하셨습니까 "
천독성모는 화를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청허도장 이번 일엔 상관하지 마시오.
내 저 짐승같은 애송이를 호되게 혼을 내주겠소."
그러자 위중평이 참지 못하고 나서며 소리쳤다.
"닥쳐라. 이 계집! 네가 짐승이면서 누구더러 짐승이라 하느냐?"
말을 끝내기 무섭게 위중평은 쌍장을 위맹하게 휘둘러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장풍을 격출해 내었으나 천독성모는 즉시 죽장을 휘둘러 그 경풍을 무형으로
와해시킨 후 번개같이 십이 장의 맹공을 시전해 덮쳐들었다.
위맹한 장풍은 지축을 뒤흔들 듯 회오리 바람을 동반해 덮쳐 왔다.
위중평은 급히 섭선을 펼쳐 장영 속으로 뛰어들며 여덟 선(扇)과 여섯 장을
격출해 반격해 들었다.
"꽝!"
경천동지할 괴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사방의 나무와 초옥이 뒤흔들렸다.
동시에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로 밀려났는데 천독성모는
그 어떤 화를 입었는지 머리가 꼿꼿하게 서 있었다.
순간 일곱 명의 준미한 소년들이 급히 앞으로 나서서 공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그 때 암벽 아래에서 우뢰와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무엇이라고? 우리 편과 대적을 하는 놈이 있다고?
그렇다면 나 신모가 결코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제 보니 신가보의 신천오가 보 내의 서른여섯 기를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사강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니 그 성세는 매우 방대해서 긴장 또한 최고도로 높아졌다.
번득이는 눈초리가 사방에서 불꽃을 튕기며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이 때 단혼애에서는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지성이 터져 나왔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급히 소리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그만 대경실색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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