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14. 옥탑단장인(玉塔斷腸人)

오늘의 쉼터 2014. 6. 20. 15:58

14. 옥탑단장인(玉塔斷腸人)

 

 

괴성과 함께 나타난 사람은 청사복면을 한 중년부인이었다.

홍모음효는 청사복면 중년부인이 온 것을 보자 즉시 신천오가 천독성모 앞으로 가더니 말처다.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하였으니 이곳의 일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합시다."

 

이렇게 말하고 난 그는 앞서 복면부인을 향해 걸어갔다.

위중평은 복갈을 터뜨렸다.

 

"홍모음효! 여기의 일도 끝내지 않고 어딜 가려는 것이냐?"

 

은대웅이 냉소를 치며 말을 받았다.

 

"위중평, 고집은 그만 피워라. 신주검성의 일은 두서너 마디의 말로서 해결될 것이 결코 아니다.

삼 개월 후에 곽산(藿山)으로 와라. 그 때 우리 결단을 내기로 하자."

 

위중평은 눈앞에 서 있는 원수를 이대로 보내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지만

이 때 청허도장이 갑자기 끼어들면서 말했다.

 

"좋소. 내 사제를 대신해서 승낙하겠소. 삼 개월 뒤 곽산 적발교 총단으로 찾아가겠소."

 

청허도장이 삼 개월 뒤의 약속을 승락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홍모음효와의 원한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것이라 단독적으로 그와 해결을 하여야 하지

사강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고 지금의 사강이 모두 모여 있어

실력이 강대하여 설사 손을 쓴다 해도 상대를 상하게 하기란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은대웅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도장께선 시원시원하시군.

삼 개월 후에 증인이 되어 줄 것을 아울러 부탁드리겠소."

 

이것으로서 위중평과 홍모음효 간의 생사의 결투는 삼 개월 후로 미루어지게 되었는데

천독성모가 목청을 돋구어 입을 열어 소리쳤다.

 

"천독문과 자선마군 사이엔 더할 수 없이 깊은 원한이 있다.

위중평, 너는 자선마군의 의발전인이니 그가 뿌린 원한의 씨앗을 감당하겠느냐?

만약 그러한 자신이 없다면 순순히 자옥선을 천독문에게 바쳐라.

그러면 본 성모는 더 이상 왕년의 원한을 따지지 않겠다."

 

위중평은 냉랭한 어조로 대꾸했다.

 

"나는 자선마군을 본 적도 없으며 또 그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소.

단 나더러 자옥선을 내놓으라는 것은 어림도 없는 말이오.

당신에게 어떠한 수단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서슴지 마시고 전개하시오.

내 기꺼이 받겠소."

 

천독성모는 괴소를 터뜨렸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이대로 물러가지만 언젠가는 천독문이 네놈의 가죽을

산 채로 벗겨 버릴 것이다."

 

바로 이 때 사강은 일제히 복면부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어서 절벽 밑에서부터 괴소가 터지더니 또 많은 사람이 치솟아 올라왔는데

이 사람들 중엔 삼흉과 대피교주를 위시해 많은 흑도의 흉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위중평은 삼흉을 보자 다시 한 갈래의 짙은 분노의 불길이 끓어 올라

대뜸 덮쳐가려 했으나 청끌도장이 급히 그를 만류했다.

 

"너무 서두르지 말게. 복수의 기회는 많으니 우선 상황 변화를 지켜보기로 하세."

 

위중평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청허도장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앞으로 걸어갔다.

복면부인은 군웅들이 분분히 도착했는데도 고개를 높이 쳐든 채 본 체 만 체했다.

홍모음효는 그의 태도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린 채 가볍게 공수의 예를 취했다.

 

"옥탑단장인, 우리를 불러 놓고서 이렇게 아무 말이 없다니 이것이 손님을 대하는 태도요?"

 

알고 보니 복면부인은 옥탑단장인이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고개를 내려 주위를 둘러보고는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사람이 아직 다 도착하지 않았는데 뭐가 그리 급하시오?"

 

홍모음효는 음침하게 웃었다.

"물건을 가지고 왔소?

본 교주는 토끼를 보기 이전에 매를 날려 보내지 않소.

당신이 만약 우리 앞에서 수작을 부릴 생각이라면 결코 좋은 결과가 되지 못할 것이오."

 

옥탑단장인은 뾰죽한 냉소를 터뜨리더니

흰 비단으로 된 지도 한 장과 금빛 찬란한 금약(金藥)을 꺼내 들면서 냉랭히 말했다.

 

"물건은 모두 여기에 있소.

누구든지 능력이 있다면 잠시 후에 내 손에서 가져 가시오."

 

보물이 숨겨져 있는 지도 즉, 장진도(藏珍圖)와 황금 자물쇠가 나타나자

주위엔 즉시 일진의 소동이 일어났다.

이 장진도와 금약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갔는지 헤아릴 수가 없었으며

수십 년에 걸쳐 강호의 인물들이 군침을 삼키면서 노리는 물건이었다.

일순 주위의 공기는 긴장되어 갔으며 모든 시선은 옥탑단장인의 수중에 들어 있는

장진도와 금약에 집중될 때 두 인영이 쏜살같이 달려 왔다.

그들은 바로 구주풍인과 안미옥이었다.

안미옥은 붉은 구름과도 같이 가볍고도 날쌔게 위중평 앞에 내려 섰다.

 

"평제, 평제도 장진도를 소리고 있는 것인가요?

 

위중평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저는 여기서 삼흉일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 홍모음효와는 삼 개월 후에

곽산에서 만나 결투하기로 약속했으니 잠시 후에 우선 삼흉과 결단을 낼 생각이오."

 

안미옥은 절로 눈썹을 곤두세웠다.

 

"나도 한몫 끼어 주지 않겠어요?"

 

위중평은 고소를 지었다.

 

"아버지의 원수를 아들이 갚는 것이 의당한 책임이거늘 낭자는

어째서 이 소용돌이에 끼어 들려는 것이오!"

 

"평제의 일이 즉 나의 일이라고 할 수가…"

 

여기까지 말한 안미옥은 자신의 말이 너무 노골적이었다고 느껴져

절로 얼굴을 붉히고는 이내 말을 바꾸어서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남매지간인데 백부님의 원수를 갚는 데는

저도 당연히 참여해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위중평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구주풍인에게 돌렸다.

그는 구주풍인이 한 손에 호로를 든 채 자신을 향해 웃으면서

손짓하는 것을 보자 성큼성큼 다가갔다.

구주풍인은 위중평이 가까이 다가오자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네 이놈, 너희 두 사람이 꽤나 친한 것 같구나."

 

위중평은 절로 얼굴을 붉혔다.

 

"풍숙부님께선 농담 그만 하십시오."

 

구주풍인은 계속해서 웃더니 갑자기 위중평의 손을 잡고 한 쪽으로 가 나직하게 말했다.

 

"너도 저 장진도에 침을 삼키고 있는 것이냐?"

 

위중평은 미간을 다소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은 없습니다."

 

"수풍인은 돌연 정색을 하더니 정중하게 말했다.

 

"내간 수소문한 것과 짐작에 의하면 목탑난장인이 장진도와 금약을 미끼로 해서

이 많은 무림인물을 불러들인 것은 크나큰 음모인 것 같네.

만약 이 음모가 성공된다면 이곳에 온 사람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구나…"

 

위중평은 그의 말을 듣고 나자 대경실색하며 물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이러한 흉계를 꾸민 것입니까?"

 

"나는 그의 내력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아냈지,

만약 나의 판단이 틀림없다면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지.

하나는 그녀가 이미 옥탑의 총력을 얻은 것이며 두 번째는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다."

 

위중평은 놀라서 다그쳐 물었다.

 

"복수라니오?

그녀가 무림인들과 무슨 깊은 원한을 맺었습니까?"

 

"이것은 나의 짐작에 불과한 것이며 과연 사실과 일치되는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러니 우선 조용히 지켜 보기로 하자."

 

이 때 이곳에 모인 군웅들은 한결같이 눈동자에 탐욕의 불길을 이글거리며 당장에라도

옥탑단장인에게 덤벼들 기세였다.

사강과 삼흉은 각기 진식(陣式)을 형성했으며 언제라도 덤벼들 가능성을 비치고 있었지만

옥탑단장인은 여전히 그렇게 냉막하고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숨막힐 듯한 긴장의 시간이 유유히 흐르고 있을 때 대피교주가 갑자기 앙천대소를 터뜨리더니

오른손의 백지선(白紙扇)을 펼쳐 무수한 선영을 그려냈다.

이와 동시에 왼손을 뻗어 옥탑단장인의 전신대혈을 공격하면서 장진도를 겁탈하려고 했다.

그의 동작이 갑작스러운 데다가 더할 수 없이 신속하여 마치 전광석화와 같았으나

냉막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서 있던 옥탑단장인은 냉랭하게 소리쳤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외마디 고함과 함께 장진도가 들려 있는 손을 뻗어 공격해 오는 백지선을 후려쳤다.

대피교주의 공력은 과연 비범하였다.

공중에서 몸을 세 번 돌려 상대의 공격을 피하면서 좌우 양 발을 각기 세 번 내차고는

일 장 밖으로 나가 내려섰으나 그의 안색은 일순 급변했는데 보아하니 큰 손해를 본 듯했다.

대피교주가 폭퇴한 것과 동시에 신가보의 신천오가 폭갈을 터뜨리면서 옥탑단장인을 향해

일 장을 공격해 냈다.

그의 외호가 철장진건곤이니 만큼 격출된 장력은 그 기세가 천지를 되삼킬 듯했고

장풍이 스쳐가는 곳마다 거센 회오리 바람이 몰아쳤다.

옥탑단장인은 냉랭히 코웃음을 치더니 소매를 가볕게 휘둘렀을 뿐인데

다음 순간 그렇게 강했던 신천오의 장력은 무형으로 화해(化解)되고 말았다.

신천오는 자신이 전개한 일격이 수포로 돌아가자 화가 치밀어 재차 공격해 들어가려 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뜨끔해 오는 것을 느껴 절로 비틀거리며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어느 사이에 그는 내상을 입게 된 것이다.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강호에서 혁혁한 인물들로서 각기 무공에

상당한 조예를 지닌 자들인데 이러한 사람들은 신가보주와 대피교주와 같은

절정의 고수들이 너무나 쉽게 물러나는 것을 보자 의기소침되어 절로 망설여졌다.

단지 천독성모 만은 자신의 실력을 믿고 별안간 괴성을 지르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을 번쩍 들어올리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일곱 명의 금관소년들은 단검을 일제히 뽑아들어

옥탑단장인을 포위했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천독성모의 들어올린 손에서부터

다섯 가닥의 검은 경기가 뻗쳐져 옥탑단장인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폭사되어 갔다.

이것을 매개오복(梅開五福)이라고 하며 천독문의 절기인 것이다.

만약 상대가 경솔하게 장력으로서 응수해 온다면 그 다섯 가닥의 독기는

상대가 발한 진기를 따라 체내로 흡수되어 죽음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지만

옥탑단장인은 일반 고수와는 달랐기에 옥탑의 무공을 터득해 음유한 내력과 잠재력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하다.

다섯 가닥의 검은 강기가 몸 앞 석 자 가까이 접근해 온 순간 강한 장력에 부딪쳐 이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천독성모는 자신의 공격이 수포로 돌아가자 노기충천하여 귀신의 울부짖음과 같은

괴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옥탑단장인을 포위하고 있던 일곱 명의 금관소년은 일제히 단검을 휘두르면서

공격해 들어갔다.

옥탑단장인은 냉랭하게 웃더니 그 자리에 선 채 두 손을 벌려 주마등과 같이

 잽싸게 한 바퀴 돌았다.

일순 검망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어찌 된 영문인지 일곱 자루의 단검은 그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주위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일이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일곱 소년은 오랜 세월에 걸쳐 천독성모에게 훈련을 받아왔으므로 첫 공격이 실패되자

즉시 다음 행동을 취한 것이다.

단검을 뺏기는 순간 그들은 왼손에 쥐고 있던 화골금사(化骨金沙)를 일제히

옥탑단장인을 향해 뿌린 것이다.

그러자 옥탑단장인은 갑자기 몸을 공중으로 날렸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처절한 비명과 함께 일곱 소년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그 자리에 즉사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일순 주위는 조용했으며 숨소리 하나 들리지가 않았다.

천독성모는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져 사색이 되어 있었다.

바로 이 때. 절벽 밑에서부터 한 떼의 승려가 달려 왔는데 표정들은 모두 장엄하였다.

구주풍인은 그들을 보자 위중평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이상한 일이군. 소림과 무당파는 정파의 명문으로서 규율이 엄격하거늘

어째서 탐념(貪念)을 갖는 것일까?"

 

이렇게 말한 그는 승도들을 일일이 가리키면서 위중평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홍안에 거대한 몸집을 지닌 배불뚝이 승인은 당금 소림장문인 화암상인이며 뒤따르고 있는

네 명의 고승은 소림사의 사대 호법인 인광(印光), 영광(靈光), 금광(金光), 문광(文光)이다."

 

그리고 금사불진(金絲佛震)을 들고 있는 남포도장은 무당장문 천현도장(天玄道長)이고

검을 메고 있는 여섯 명의 전은도사는 강호에 그 명성이 자자한 현문육준(玄門六俊)이라고

말해 주었다

위중평은 현문육준에 대해 무형중에 일종의 호감을 지니고 있었던지라

그들을 특히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들은 전신이 정기(正氣)로 가득차 있었으며 오관이 단정하고 기풍이 비범한 것이

명문의 제자로서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이 때 두 파의 장문인은 이미 옥탑단장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화암상인은 합장의 예를 취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소림사는 불문의 제자로서 속세와 아무런 논쟁도 없거늘

여시주께선 어찌 야밤에 본문 장경구를 기습하여 불문의 제자를 해치고 장진도를 탈취해 갔소?

그런 행위는 소림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 분명하오.

달마조사께서 본파를 이루신 후 오늘날까지 근 천여 년 동안 이렇게 대담하게

본문에 와서 소동을 피운 자는 없었소…"

 

여기까지 말한 화암상인은 돌연 음성을 바꾸어 냉랭하게 말했다.

 

"불문은 비록 자비를 베푸는 것과 살생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이번 일만큼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소."

 

이 소림의 고승은 비록 노기충천되어 있으나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매우 함축성이 있었다.

옥탑단장인은 그의 말을 듣고 나자 냉소를 터뜨렸다.

 

"정말 가소롭군. 내 당신에게 묻겠소.

십여 년 전 강호인들 이 장진도를 쟁탈할 때 소림이 참가하지 않았소?

그리고 신주 검성을 포위 공격할 때도 소림의 승인이 없었나요?

호호호… 그러고도 강호와 논쟁이 없다고 할 수가 있겠소?"

 

이 말이 나오자 비단 화암상인의 안색이 급변했을 뿐 아니라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도 몹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개인의 신분이건 아니면 문중에서 파견한 것이든 소림이 참가하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군웅들은 옥탑단장인이 무엇 때문에

지난 일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인지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안미옥, 그리고 구주풍인, 우주광인 등은 한쪽에 서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은 주의를 가지고 지켜 보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격동돼 있는 사람은 위중평이었다.

그의 두 눈에선 일순 이상한 광채가 폭사되며 구주풍인을 향해 물었다.

 

"풍숙부님, 과거 아버님을 협복할 때 소림도 참가한 것이 사실입니까?"

 

구주풍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찌 소림뿐이겠느냐? 가 그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아 자세한 것에 대해선 모른다.

어찌 되었건 이미 지난 일이니 괜한 생각을 해서 번뇌를 자초하지는 마라.

너는 그저 삼흉일효가 너의 원수라고만 생각하고 있으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위중평은 입을 꼭 다문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각 문파로 찾아가 복수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각 문파의 사람에 대해 무형중의 반감을 갖게 되었고 바로 이러한 동기 때문에

훗날 강호는 많은 분규와 살생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 때 무당의 천현도장은 수중의 금사불진을 한 번 휘두르더니 냉랭히 소리쳤다.

 

"옥탑단장인, 나의 사제 천둔도인이 너와 무슨 원한이 있어 산문(山門)까지 와서

그에게 독수를 전개하고 또 이궁금약(離宮金藥)을 강탈해 간 것이냐?

오늘, 무당파는 너와 생사의 결단을 내릴 것이다…"

 

그는 살기등등했으며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였다.

바로 이 때 싸늘한 고함 소리가 터지면서 삼흉이 달려나와 천현도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육지흉승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천현도인, 너무 날뛰지 마시오.

오늘 밤의 일은 옥탑단장인이 무림동도를 초청해서 장진도와 이궁금약에 대해

처리하고자 한 것이니 복수의 일에 대해서는 이 일이 끝난 후에 하시오."

 

천현도장은 상대를 노려보면서 즉시 반문을 했다.

"이 두 가지 물건은 수림과 무당의 것이거늘 당신이 무슨 간섭이오?

그리고 무당파가 천둔도인을 위해 복수하건 말건

그 것 역시 당신네들이 상관할 필요가 없지 않소."

 

육지흉승은 아무 표정없이 냉랭하게 말했다.

 

"내 오래 전부터 귀하의 금사불진의 삼십육 초가 무당의 절기라고 들어왔는데

오늘 한 번 견식해 보고 싶소."

 

천현도장은 비록 무공의 수위가 더할 수 없이 깊지만 이러한 말을 듣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갈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하지."

 

이렇게 소리친 그는 지체없이 장력을 격출해 공격해 들어갔다.

삼흉은 괴소를 터뜨리더니 일제히 손을 뻗어내 각기 다른 장력을 동시에 밀어냈다.

삼흉은 흉명이 만천하에 알려진 자들로서 공력이 비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자들이 힘을 합쳐 한꺼번에 공격해 오니 설사 일파의 장문인 천현도장이라 해도

손해볼 것이 분명하였다.

쌍방의 장력이 서로 접촉되려는 순간 측면에서부터 일진의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천현도장이 전개한 장력과 회합하였다

알고 보니 그것은 한쪽에 있던 화암상인이 천현도장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

선공을 전개해 도와준 것이다.

 

"펑!"

 

경천동지하는 폭음이 들리면서 쌍방은 각기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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