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옥탑장진도
이미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가고 있던 옥탑장진도가 다시 강호에 나타났다.
또한 이궁금시가 다시 만인을 유혹하는 금망을 번득였다.
절세의 절학과 기진이보(奇珍異寶)는 모든 이들의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무림에는 다시 또 한 번의 대규모 도살이 벌어지려는 짙은 먹구름이 흘렀고
드디어 그 살겁의 서막은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에서 전개되었다.
경계가 삼엄한 소림사의 장경루(藏經樓)가 돌연 남에게 침입을 당해 십여 명의
수비 고승들을 살해하고 진귀한 물품 하나를 도난당하고 말았던 것인데 소림사에
이런 놀라운 불상사가 일어난 지 이틀도 채 못 되어 무당 현도관(玄都觀)에
다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무당의 장문인인 천궐도장(天闕道長)의 사제인 천순도장(天順道長)이 강호의 행도를 마치고
관내로 돌아오던 길에 바로 관 앞 산문(山問) 앞에서 피살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목격한 문하제자들은 한 청사 복면부인이 그의 몸에서 금빛 찬란한 물건을
빼앗아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모든 사람들은 그 물건이 바로 이궁금시일 가능성이 크다고 모두 입을 모았다.
서서히 머리를 들기 시작하는 무림의 이 살겁에 대처하기 위해 소림사의 고수들이 속속들이
조사에 나섰고 동시에 무당의 고수들도 사면팔방으로 쏟아져 강호를 분분히 뛰어다니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소림사와 무당파에서 벌어진 이 두 가지 일이 전체 무림을 뒤흔들었을 뿐 아니라
뜻있는 사람들은 같이 나서는 등 아무튼 시끌했고 또 소란에 휘말렸다.
이 두 가지 일로만 해도 무림을 진동시키고 남음이 있는데 다시 연이어
또 다른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사람들은 고요한 무림에 이는 이 풍운(風雲)에 대해 일단은 겁을 먹기도 했고
흥미의 눈초리를 모으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요동을 독패하고 있던 고원삼흉이 돌연 항주에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림 사강(四强) 중의 적발교주 은대웅, 또 홍료산장(紅遼山壯)의 냉면파파(冷面波波)를
비롯해 천독암(千毒岩)의 천독성모(千毒聖母) 그리고 신가보의 신천오가 연달아 고적을 유람하는
구실을 만들어 속속들이 항주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 외에도 쟁쟁한 인물들이 속속들이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장산도주, 대 피교주, 무한사패,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인물들이 모두 항주에
그 모습을 나타내었고 그 외에도 많은 방파의 장문인들이 속속들이 항주로 구름처럼
몰려 들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흑도의 인물이었다.
나비가 마치 꿀을 찾아 모여들 듯이 구름처럼 많은 고수들이 항주로 대거 몰리고 있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본다면 강호의 마두를 비롯해 살성, 한 지방을 진동시키고 있는
패주들이 모두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니 이 강호에 다시 전래 없는 피바람이 몰아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옥탑장진도와 이궁금시는 과연 누구의 손에 있는 것일까.
이곳은 경치 좋기로 이름난 풍광(風光)의 서자호(西子湖).
그러나 햇빛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호반은 비록 사람의 눈을 혼란시키고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나
이상하게 오늘은 한 겹의 짙은 피구름이 피어 있었다.
유람을 하는 척하면서는 독수리처럼 번득이는 수많은 눈들.
이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일시에 항주로 몰려 들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거니와
진정 풀지 못할 수수께끼였다.
벌써부터 진한 피비린내가 코를 진동시키는 이 항주에 다시 한 패의 무리가
그림자를 나타내었는데 바로 위중평과 화산의 열두 제자들이었다.
위중평은 상대의 시선을 덜 받기 위해 일부러 열두 명의 도사를 앞세우고 자신은
그들과 조금 떨어져 천천히 말을 몰아 구경하는 듯 한가롭게 들어가고 있었다.
때는 황혼 무렵 아름다운 노을이 호수 위를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어디선가
썰렁한 바람이 주위를 휘몰고 불어왔고 인적이 드문 관도 위를 홀로 가자니
위중평은 내심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고독을 느끼며 순간 청매죽마(靑梅竹馬)이자
어려서부터 같이 반려를 해 주었던 신혜연이 생각났다.
위중평은 밀려드는 외로움과 서글픔에서 그녀가 제일 먼저 떠오르자 비로소
그녀를 사모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지금 유감스럽게도
그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드는 것은 두 번 다 그녀와 언짢게 헤어진 것이었다.
이제 다시 언제 만날 수 있는지는 기약 없는 세월만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위중평의 뇌리에는 다시 명랑하고 활달한 안미옥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랐다.
차례차례 다정한 여인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이 적막한 관도에서 위중평은 더욱 고독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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