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15. 단혼애의 혈투

오늘의 쉼터 2014. 6. 20. 16:00

15. 단혼애의 혈투

 

 

천현도장은 비록 별다른 손해를 보진 않았으나 내심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만약 화암상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많은 군웅들 앞에서 추태를 나타냈을 것이다.

육지흉승은 자신들의 공격이 수고로 돌아가자

노기충천하여 몸을 날리면서 단숨에 십이 장이나 공격해 냈다.

천현도장은 뒤로 반 걸음 물러서면서 금사불진을 휘둘러 눈부신 금빛을 뽑아 내면서

정면으로 응수해 갔으며 그 역시 눈 깜박할 사이에 삼초구식을 전개해 냈다.

일순 두 사람은 한데 엉켜 접근전을 폈으며 단번에 각각 일곱 초씩 교환했다.

두 사람이 미친 듯이 싸우고 있는 중에 현문육준은 일제히 장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서서히 이동해 왔다.

영염, 막북, 두 흉승 그리고 내전오존 등은 모두 현문육준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었으며

국면은 최고로 긴장되어 갔다.

이 때 대피교주가 수중의 백지선을 가볍게 휘두르면서 달려들어와 천현과 육지

두 사람을 떼어 놓더니 간사스럽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히히히…말로 해도 될 것을 어찌 무력을 쓰려 하시오?"

 

이렇게 말한 그는 육지흉승을 향해 눈짓을 보내면서 다시 말했다.

 

"진정하시오. 이러다가 오늘 밤 일에 차질이 생기겠소."

 

대피교주는 가장 간사한 자로서 현장의 상황에 대해 분명하게 간파하고 있었고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 중에서 사강의 세력이 가장 크기에 자신과 삼흉이 연합하면

그런대로 상대할 수가 있을 거라고 그는 단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대로 무당파와 싸운다면 승부를 막론하고 세력이 크게 감소될 것은 분명하고

 진짜 장진도를 차지하려 할 땐 손해가 되므로 급히 제지한 것이다.

육지흉승은 비록 성격이 거칠고 급하지만 대피교주의 눈짓을 받아

즉시 그 뜻을 알고 괴소를 터뜨렸다.

 

"천현, 내 오늘은 그만 참겠다.

네놈이 만약 못마땅하다면 우리 시간과 장소를 따로 정해서 고하를 가리기로 하자."

 

천현도장은 냉랭하게 웃으며 외쳤다.

 

"하하하… 다른 사람들이 너희 삼흉을 두려워할지 모르지만 나 천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내 무당에서 수시로 기다리고 있으마…"

 

이 때 주위에서부터 인영이 번득이는가 싶더니

암중에 잠복하고 있던 각파의 사람들이 속속들이 나타났으며 이와 때를 맞추어

옥탑단장인은 한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 서더니 수중의 장진도를 흔들면서 크게 소리쳤다.

 

"청첩을 받은 무림동도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시오. 내 드릴 얘기가 있소."

 

이 때 위중평은 급히 구주풍인과 청허도장을 향해 물었다.

 

"두 분께선 모두 청첩을 가지고 계십니까?"

 

청허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사람이라면 거의 다 청첩을 받았을 걸세."

 

위중평은 청허도장의 말을 듣자 내심 몹시 못마땅해 하면서 생각했다.

 

'나 역시 일개 문파의 장문인이거늘 어째서 나에겐 청첩을 보내지 않은 것일까?'

 

이렇게 속으로 생각한 그는 장백파가 부친이 돌아가신 후부터 지금까지 무림에서

 아무런 지위도 얻지 못했고 또 자신이 전혀 중시를 받지 못한 채 따돌림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그는 본래 매우 강경한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일순 자부심은

분노로 변했으며 절로 코웃음을 쳤다.

 

"흥! 나를 멸시하다니 어디 두고 보자. 내 꼭 참가하고 말 것이다…"

 

구주풍인은 그의 말을 듣자 크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너는 청첩을 내게 보내지 않은 것이 너를 멸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보기엔 너도 절반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보낸 것과 같은 이러한 청첩은 될 수 있으면 안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잠시 후에 이 청첩에 의해 죽어갈 사람이 몇 명이 될지는 모르겠군…"

 

"주풍인의 말은 비록 농담조였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가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주는 것이었다.

구주풍인은 이것이 하나의 음모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명시한 것이지만

성격이 고고한 그는 이 배후에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구체적인 것을 알아 내야 한다고 내심 결심하자

구주풍인의 권고도 듣지 않고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

이 때 옥탑단장인은 이미 단혼애의 입구 쪽에가 있었다 위중평은

그녀 앞으로 다가가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옥탑단장인, 당신은 무림대회를 개최하면서 어찌 장백파엔 청첩을 보내지 않은 것이오?"

 

옥탑단장인은 내심 크게 놀랐다.

그녀는 비록 독살스러운 마두이기는 하지만 유독 이 소년에게만은 진실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신주검성의 무덤 앞에서 이 소년을 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이 소년이 따로 신주검성의

후인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의 무례한 질문에 대해서 전혀 개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동안 적당한 대답을 생각하지 못했다.

위중평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왜 나를 멸시하는 것이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렇게 방자한 태도를 취했다면 그녀는 벌써 발작했을 것이지만

이 소년에 패해선 참고 온차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얘야, 진정하거라. 장백파에 청첩을 보내지 않은 데는 물론 그 이유가 있다.

엄격하게 말해서 너도 절반은 이번 대회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가 있지."

 

위중평은 절로 의아해 하였다.

구주풍인의 뒤를 이어 이번엔 옥탑단장인까지도 똑같은 말을 하다니,

그게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이란 말인가?

 

'옥탑단장인이 나를 애라고 부르다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추혼천녀가 갑자기 와서

위중평을 한쪽으로 끌고 갔다.

 

"더 이상 저의 사부를 괴롭히지 마세요.

잠시 후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장백파의 검술은 천하 제일이거늘 누가 감히 멸시한단 말인가요?"

 

위중평은 그녀의 말을 듣고 나자 더 이상 청첩의 문제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고 이젠 자신이 절반의 주인공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만 의아해 하였다.

추혼천녀의 안색은 이 때 다시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으며 살기띤

눈초리로 단혼애 내의 군웅들은 노려보았다.

이 때 옥탑단장인은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덮고 있던 복면을 벗어 던지고

 극히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냈는데 그 모습은 소녀들에 비해 더 요염했고

달빛에 비친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갓 내려온 선녀와도 같았다.

대피교주는 수중의 백지선을 가볍게 흔들면서 음탕한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

 

"정말 선녀와 같소. 우리에게 즐거움만 안겨다 주어도 그 값은 충분하겠소."

 

옥탑단장인은 안색이 급변하여 미친 듯이 앙천대소를 터뜨렸고

그 웃음 소리는 마치 귀신의 곡소리와 같았으며 거기에 내력이 주입되어

오래도록 끊어지지 않아 일순 주위는 무한한 살기와 공포로 가득해져 갔다.

공력이 비교적 낮은 사람들은 이 웃음 소리에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씩 쓰러져 갔으며

공력이 심후한 삼흉, 사강 등도 급히 내력을 끌어올려 저항해야만 했다.

옥탑단장인은 한참 후에 웃음을 거두더니 살기등등하게 입을 열었다.

 

"이 극악무도한 놈들아, 너희들은 십삼 년 전 너희들에 살해된 날수소군을

아직 기억하고 있느냐? 날수소군은 오늘날 이렇게 다시 세상에 나왔으며

수중엔 장진도와 금약도 있다. 어째서 강탈해 가지 않는 것이냐…"

 

여긴서 잠시 동안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보니 네놈들은 모두가 약자를 괴롭히고 강자를 두려워하는 파렴치한 놈들이구나.

지금의 날수소군은 과거의 날수소군이 아니다. 왜 두려우냐?

내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해 주겠다.

이곳 단호애가 너희놈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두려워해도 죽을 뿐이며 반항하는 자는 더욱 빨리 죽게 될 것이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예리한 침과 같이 모든 사람의 신경을 쑤셨다.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눈 한 번 까딱하지 않는 마두와 호객이지만

간담아 써늘해지는 것을 금치 못했다.

옥탑단장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렁찬 고함 소리와 함께 신가보의 웅풍

삼십육기 중 열두 명이 금창을 휘두르면서 옥탑단장인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지만

옥탑단장인이 냉랭히 코웃음을 치며 넓은 두 소매를 좌우로 가볍게 뻗어내자

다음 순간 처절한 비명이 일제히 터져 나오면서 공격해 오던 열두 명은

마치 끈이 끊어진 연과 같이 끝이 보이지 않는 절곡 밑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이 때 고원삼흉이 일제히 쌍장을 뻗어 옥탑단장인을 향해 공격해 왔다.

이것을 기회로 해서 홍모음효, 냉면파파, 천독성모는 일제히 공격을 전개했으며

소림과 무당 두 파의 승도들도 뒤따라 덤벼들었다.

무림에서 최고가는 고수 수십 명이 동시에 공격을 전개한 장면은 자고이래 없었던 것이었다.

초목이 송두리째 뽑히고 거대한 바위들이 깨어져 사방으로 튀는 것이 이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 듯하였다.

위중평은 이것을 보자 의협심이 절로 생겨나 노기띤 음성으로 소리쳤다.

 

"수많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을 협공하다니 비겁하구나!"

 

이렇게 소리치고 막 몸을 날려 달려들어 가려할 때 추혼선녀가 자신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앞길을 막았다.

 

"그들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때 천지를 뒤집어 삼킬 듯한 장풍이 옥탑단장인 앞까지 휘감겨 갔지만 옥탑단장인은

피하지도 않고 제자리에 선 채 양 손을 앞뒤로 재빨리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마치 천지를 뒤엎어 놓을 듯한 광풍은 그녀의 손동작에 따라

몸 좌우로 미끄러져 나갔으며 순식간에 무형으로 와해되고 말았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이상한 소리가 일어나면서 옥탑단장인은 소혼마장을 전개해 냈다.

그녀의 두 손은 가슴 높이에서 교차되어 난무하고 있었고 그녀의 손동작에 따라 혼을 뺏고

뼈를 깎는 듯한 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이 때 구주풍인은 급히 위중평을 향해 소리쳤다.

 

"이녀석아, 어서 이리와라! 그것은 소혼마장이다."

 

이렇게 소리친 그는 안미옥, 청허도장 그리고 화산파의 문하들과 십 장 밖으로 피해 나갔다.

위중평은 그 괴상한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고 그 괴이한 소리에

그 어떠한 마력이 있는 듯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전신에 힘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나 구주풍인의 말을 듣는 순간 내심 섬칫하면서 급히 현공을 끌어올려

이 괴상한 소리에 저항하며 싸움을 주시했다.

옥탑단장인은 이 무림의 고수들을 일망타진할 생각이 있었던지 이곳 절지를 약속 장소로

정한 것이다.

이곳은 삼면이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었고 통로는 하나뿐이지만 이 유일한 통로를

옥탑단장인이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소혼마장이 일단 전개되자 상대편 고수들은 비단 운공하여 마음(魔音)을 저항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한편으론 밀려오는 잠력을 막아야만 했기에 모든 고수들에게는 큰 부담이어서 모두들 핏발을

세운 채 저항하면서도 연신 뒤로 후퇴하기에 바빴고 비교적 공력이 부족한 자들은 이미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군웅들은 죽음이 임박해 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목숨을 내놓기란…

이 때 소림장문 화암상인은 갑자기 염불을 외우더니

나머지 네 명의 고승과 함께 일제히 장력을 밀어냈다.

순간 광풍노도와 같은 바람이 일어나면서 태산과 같은 압력을 동반하며

옥탑단장인을 향해 감겨 갔지만 다음 순간 두 마디의 신음이 터지면서

다섯 명의 고승은 비틀거리면서 뒤로 각각 세 걸음씩 물러났다.

소림의 고승들이 뒤로 물러나는 순간,

사강과 삼흉도 각기 본신의 있는 힘을 다해 장력을 밀어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절벽 가까이 물러났다.

사람의 간담을 써늘하게 하는 처절한 비명이 터지면서

또 십여 명이 절벽 밑으로 가을 낙엽과 같이 떨어져 내려갔다.

옥탑단장인은 시종일관 냉막하고 공포스로운 표정이었으며 계속해서

장력을 발하면서 육박해 왔다. 군웅들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으며

거의 포기상태에 도달했다.

이젠 뒤로 두 걸음만 더 물러나면 곧 절벽으로 떨어질 상황에 이르렀다.

이 때 이 광경을 초조하게 지켜 보고 있던 위중평의 두 눈에서 갑자기

이상한 광채가 폭사되더니 급히 소리쳤다.

 

"멈추시오."

 

이렇게 소리를 친 그는 옥탑단장인의 앞으로 뛰어나가 노승이 준 쪽지를 그녀에게

던져 주면서 다시 소리쳤다.

 

"우선 이것을 보신 후에 다시 손을 써도 늦지는 않을 것이오."

 

그는 쪽지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이 쪽지가

그녀로 하여금 잠시나마 손길을 멈추게 해주기를 희망했다.

옥탑단장인은 위중평이 갑자기 달려나와 소리치는 것을 보고 멈칫했을 때

그 쪽지는 강한 파공음을 일으키면서 이미 얼굴 앞까지 날아왔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내밀어 쪽지를 받았으나 쪽지가 손에 닿는 순간

강한 압력을 느꼈던지 놀라운 표정으로 위중평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소년이 의협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광명정대한 것이

그의 아버지인 신주검성과 같다고 느껴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쪽지를 펴 보았다.

절벽까지 밀려난 군응들과 구주풍인 등은 이 광경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죽음 직전에 처해진 군웅들은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쪽지를 유심히 읽어 내려가던 옥탑단장인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면서 쪽지를 들고 있던

두 손을 심하게 떨었고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절로 의아해 하였다.

이 때 옥탑단장인은 갑자기 소매를 휘둘러 옥탑장진도와 이궁금약을 내던졌다.

 

"휘익!"

 

강한 파공음과 함께 이 두 가지 물건은 칠팔 장 밖에 있는 거대한 소나무 속에 깊숙이 박히고

말았는데 이와 때를 같이하여 몸을 공중으로 십 장 높이나 날리더니 동남방을 향해 날아갔다.

이 동작은 너무나 돌발적이었다. 그녀가 해 낸 두 가지 공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혀를 내두르게 하였다.

금약이 소나무 속으로 박힌 것은 놀라운 것이 못 되지만 비단 조각으로 된 장진도가

나무 속으로 박힌 것은 기적인 것이다.

옥탑단장인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리자 절벽 가까이 물러났던 군웅들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운공조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때 만약 위중평이 삼흉을 살해할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쉬운 것이었으나

광명정대한 그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 때 구주풍인이 갑자기 탄식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정녕 그녀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거기에다 옥탑공력까지 얻었다니

정말 무림의 겁운이 아닐 수가 없군. 네 이녀석, 오늘 만약 네가 아니었더라면

저 무리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위중평은 씁쓸히 웃었다.

 

"그게 어디 저의 공로이겠습니까?

그들을 살린 것은 노화상이 주신 쪽지입니다."

 

구주풍인은 경의에 찬 표정으로 급히 물었다.

 

"노화상? 아! 그가 누구지?"

 

구주풍인은 이름 그대로 미친 듯이 강호를 종횡하면서

강호 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이 노화상에 대해서만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누구인지 알 수가 없자 절로 답답한 듯 호로를 들어 올려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안미옥이 이 때 급히 위중평을 잡아 끌면서 말했다.

 

"우리는 어서 장진도와 금약을 가지러 가요. 저것을 얻으면 우리도 절세의 신공을

터득할 수가 있을 것이에요."

 

위중평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받았다.

 

"저런 불길한 물건에 대해선 마음을 두지 말기로 합시다.

그리고 보물이란 덕이 있는 자 만이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것이 아닌 이상 굳이 얻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때 경시와 불만이 내포되어 있는 냉소가 들려 왔고 위중평과 안미옥이

급히 고개를 돌려 보는 순간 추혼천녀는 미친 듯한 웃음 소리를 터뜨리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위중평과 안미옥은 그 자리에 넋을 잃고 잠시 동안 어떻게 할 줄을 몰라 할 때

미친 듯이 술을 연거푸 마시던 구주풍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이녀석, 옥탑공력은 모두가 무림의 절학으로서 당해 낼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그것을 얻을 생각은 없지만 사마들의 손에 넘어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서 가서 장진도를 가지고 와라."

 

청허도장이 말을 받았다.

 

"선배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이렇게 말한 그가 등 뒤에 서 있는 문하들을 향해 손을 휘두르자

화양 십이도사는 마치 가벼운 연기와 같이 장진도가 박힌 소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이 얘기를 하는 동안 운공조식을 하고 있던 군웅들이 하나 둘씩 깨어나 있었고

그들은 죽음에서부터 되살아났다고 해서 탐욕의 마음을 버리지는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옥탑단장인의 놀라운 신공을 보고는 반대로 장진도에 대해 더욱 애착이 가 공력이

회복되기가 무섭게 장진도가 박힌 소나무를 향해 달려간 것이다.

이 때에는 이미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으며 진한 새벽 안개 속에 인연과 검망이

엉켜 난무하였다.

밤새 내려온 흉살은 일단락되었지만 또 하나의 쟁탈전이 다시 전개된 것이다.

화양 십이도사가 소나무 밑에 도착한 것과 동시에 홍모음효는 두 명의 호법인

색혼판관과 음산일괴를 거느리고 달려왔다.

하지만 장진도와 금약은 나무 깊숙이 박혀 있어 그것을 얻으려면 칼이나 검으로

 파내거나 아니면 그 부분을 끊어내는 수밖엔 없기에 화양 십이도사는 나무 밑에

도착하자마자 일제히 검을 휘둘러 나무를 후려쳤다.

색혼판관과 음산일괴는 즉시 있는 힘을 다해 쌍장을 밀어내 막강한 장력을 격출해 냈다.

화양 십이도사는 화산 청년도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이며 각기 정순한 공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검술엔 상당한 조예를 지니고 있었다.

장력이 몰아쳐 오는 순간 광대한 검망이 펼쳐지면서 거센 장력을 무형으로 와해시켜

버렸는데 이 때 위중평 등도 화양 십이도사 뒤까지 왔다.

위중평은 앞으로 두 걸음 나오더니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세상의 그 어떠한 보물도 덕이 있는 자 만이 얻을 수가 있는 것이오.

장진도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나 위중평이 이곳에 있는 한 당신들은

결코 손에 넣지 못할 것이오."

 

색혼판관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대단한 놈이구나.

나 색혼판관은 네놈에게 얼마나 많은 힘이 있는지 한 번 보아야겠다."

 

위중평은 대노하여 소리쳤다.

 

"좋소! 그렇다면 한 번 시험해 보시지."

 

이렇게 소리친 그는 즉시 일 장을 격출해 내며 공격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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