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11. 무림풍운(武林風雲)

오늘의 쉼터 2014. 6. 20. 15:51

 

11. 무림풍운(武林風雲)

 

 

안미옥이 구주풍인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간 뒤 위중평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친 듯한

느낌이 들어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구주풍인이 안미옥을 데리고 질풍처럼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위중평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자리에 앉아 조용히 모든 강호의 정세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굴리기 시작했다.

위중평은 시종 삼흉이 돌연 자취를 감춘 이유가 구주풍인이 말한 장신도와 이궁금시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위중평은 비록 그것을 탐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그는 아무래도 그것들의 행방을 찾아야만 했고

 그래야만 삼흉과 일효를 만나 모든 것을 해결지을 수 있지 않는가.

위중평이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인영이 번득이더니 금루선연이 어떻게 알았는지

참새처럼 또르르 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평상공, 어째서 이곳에 혼자 남아 있소? 아직도 제게 화를 내고 있는 건가요?"

 

위중평은 뜻밖인 듯 놀랐다가는 곧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

 

"아니오. 그럴 수가 있겠소? 그것보다 혜매가 어떻게 알고 이곳을 찾아왔소?"

 

금루선연은 몹시 미안한 듯 얼굴을 붉히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전번엔 정말 미안했어요.

저는 그 후에야 오사청이 평상공을 해치려 했던 이유를 알았거든요.

아… 정말 그 사형은 왜 그처럼 박정한지 모르겠어요."

 

"…"

 

위중평은 철적왕손과 같은 소인을 입에 담기가 싫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

 

"왜 위험하게 혼자서 이렇게 나왔소? 그것보다 그 때 만불사엔 무엇하러 갔었소?"

 

금루선연은 위중평을 한 번 곱게 흘기더니 말꼬리를 흐렸다.

 

"평상공 때문이죠, 뭘…"

 

순간 위중평은 말할 수 없는 감미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나…"

 

바로 그 때 어디로 갔다 왔는지 안미옥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방문으로 들어섰다.

위중평은 먼저 안미옥을 금루선연에게 소개시켰다.

 

"이쪽은 장산도 도주의 따님인 안미옥이고, 나와는 친구이오…"

 

그러고 나서 다시 안미옥을 향해 말했다.

 

"이쪽은 신가보의 무남독녀 신혜연이오."

 

안미옥은 방안으로 들어서다가 그녀가 먼저 눈에 띠었는데 소개를 받자

그녀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조소를 머금었다.

 

"신가보요. 아, 바로 그 염치없는 모조음의 사매이군요."

 

신혜연은 비록 자기의 사형인 모조음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좋아하지 않지만

남이 자기 사형을 염치없는 자라고 욕을 하는 데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고

더구나 그녀는 위중평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치가 심상치 않아

시기를 느끼고 있던 참이라 대뜸 냉랭하게 소리쳤다.

 

"흥, 다른 사람은 다 염치없고 당신만 정직한가 보군요?"

 

안미옥은 그녀가 모조음을 변호하려고 나서자 대뜸 냉소를 날리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영사형의 그 행위에 대해서 아가씨는 만족스럽다고 느끼고 있나요?"

 

금루선연의 나이는 어리지만 꽤 당돌한 데가 있었다.

안미옥이 조금도 굽힘이 없이 소리치자 그녀 역시 앙칼지게 대들었다.

 

"만족하든 안하든 그것은 당신과 관계가 없는 일이 아니예요?

그리고 당신은 또 뭔데 우리 신가보의 사람을 이렇다저렇다 비평을 하고 있는 거죠?"

 

금루선연은 모조음이 안미옥에게 추태를 부렸다는 것을 물론 모르고 있었다.

안미옥은 싸늘하게 냉소를 날리며 소리쳤다.

 

"나는 쓸데없는 일에 간섭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예요.

다만 그가 내게 형편없는 짓을 하려고 하니까 그렇지.

흥, 그러나 만일 다음에 다시 한 번 그런 짓을 했다간 내 결코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금루선연으로서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창!"

 

한 차례 맑은 금속성이 터져 나오더니

금루선연은 단검을 뽑아 들고 매섭게 안미옥을 노려보았다.

 

"그래요. 더 이상 기다릴 필요는 없을 거예요.

내가 대신 음 사형을 대신해 당신의 장산도 절학을 한 번 견식해 보겠어요."

 

두 사람이 입씨름을 벌리는 동안 위중평은 어떻게 끼어들 틈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금루선연이 검까지 뽑아들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혜매, 이게 무슨 짓이오? 참아요. 모두 좀 참으시오."

 

이어 위중평은 단검을 뽑아든 신혜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혜매, 이래선 정말 안 되오."

 

신혜연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앙칼지게 소리쳤다.

 

"비켜요. 이 일은 상공이 참견할 일이 아니란 말이에요."

 

위중평은 두 여자의 중간에 끼어 들며 양 손을 휘저었다.

 

"안 돼요. 제발 이러지들 말라니까."

 

그러나 안미옥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좋다. 그럼 우리 앞마당으로 나가서 한 번 해보실까."

 

말을 끝내고 안미옥은 먼저 몸을 날려 앞마당으로 달려나갔다.

어려서부터 무남독녀 외동딸로 금이야 옥이야 자라온 금루선 연이 이런 일을

참아낼 리가 없었기에 위중평을 떠밀고는 급히 마당으로 따라나갔다.

이미 단검을 뽑아 기다리고 있었던 안미옥은 냅다 덮쳐드는 금루선연을 향해 일격을 뻗어 내었다.

 

"챙!"

 

대번에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아침의 정적을 깨고 터져 나왔다.

나이도 어린데다 공력도 약한 금루선연은 대번에 손이 저리는 것을 느끼며

단검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으아앙…"

 

순간 금루선연은 대번에 울음보를 터뜨리며 몸을 날려 밖으로 뛰쳐나갔고 위중평은

자신있게 덤벼들던 금루선연이 크게 위축을 받아 달려나가자 창급히 뒤쫓아 나갔다.

안민옥은 두 사람이 동시에 달려나가자 한동안 멍청히 그 자리에 서 있었으나

땅바닥에 떨어진 금루선연의 주인 잃은 단검을 보자 좀 안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이 어린 그녀에게 내가 좀 지나쳤는가 보구나.

더구나 그처럼 무안을 주었으니 조그만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더구나 이것 때문에 위중평이 나에게 화를 내면 나는 또 어쩌나…'

 

안미옥은 생각하면 할수록 나이 어린 금루선연에게 한 짓이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 들어섰을 때 금루선연과 위중평과의 다정한 모 습을 생각하자

대뜸 화가 치밀어 발을 굴렸다.

 

'흥, 약이 오르잖아…'

 

이 때 그녀는 공력이 크게 증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볍게 발을 굴렀는데도

발 밑의 벽돌이 부스러졌다.

바로 이 때 굵직한 음성이 들려 왔다.

 

"아니, 정말 대단한 실력이로구나. 네가 언제 그처럼 무공이 증진되었느냐?"

 

구주풍인이 어느새 유령처럼 그녀의 등 뒤에 와 있었다.

안미옥은 뜻밖이라는 듯 약간 놀랐다가 이내 눈을 싹 흘기며 쏘아붙였다.

 

"아니, 남은 지금 화가 나 죽을 지경인데 그렇게 놀리기만 하시긴가요?"

 

구주풍인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너무 그렇게 화를 내지 말아라,

내가 사람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를 해줄 테니까."

 

안미옥은 얼굴을 붉히며 눈을 또 흘겼다.

 

"찾으러 갈 필요가 어디 있어요? 그 사람이 다시 안 올 건가요? 뭐…"

 

구주풍인은 정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이미 가 버렸단다. 원수를 갚으려고 큰 뜻을 품고 나온 젊은이가

어찌 너같은 아가씨와 시간을 보낼 여유가 있겠니?"

 

안미옥은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다면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구주풍인은 그런 조카딸의 모습이 매우 귀여운 듯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렇게 겁이 나느냐? 서둘지 말아라. 이 백부가 다 안내를 할 테니까."

 

말을 끝내고 구주풍인은 안미옥의 손을 잡고 다시 한 줄기 연기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한편 위중평은 금루선연의 뒤를 따라 성내로 쫓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금루선연은 사람들을 헤치고 요리조리 잘도 빠져 나가더니

그만 성 밖 숲 앞까지 와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위중평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라 망설이다가

즉시 소나무가 울창한 숱으로 들어갔다.

위중평이 숱을 들어서기 무섭게,

 

"휘익!"

 

하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 아닌가?

위중평은 신속한 반응으로 몸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장풍을 밀쳐내었다.

 

"팍!"

 

한 ,차례 광풍이 휩쓸어 가자 위중평의 등을 향해 날아오던 암기는 장풍에 휘말려

근처 나무에 박혔다.

위중평이 급히 달려가 자세히 바라보니 그것은 새털같이 가느다란 강침으로서

끝에 시커멓게 기름이 묻어 있었다.

위중평은 비록 신가보에서 자라났지만 신가보에 칠보추혼침(七步追魂針)이라는

극독의 암기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찌 되었건 이 독침에 한 번 맞기만 하면 일곱 걸음도 채 못 가서 절망하고 만다는 데서

이름이 붙여진 무시무시한 암기였다.

위중평이 그것을 뽑아 자세히 살피고 있을 때 다시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숫자가 많았을 뿐 아니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위중평은 즉시 조화신공을 운공하여 일 성의 예리한 갈성과 함께 쌍장을 쳐내었다.

 

"이얍!"

 

이 일 장의 위력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한 차례 광풍이 휘몰아쳐 나가기 무섭게 삼 장 이내에 있던 나무는 송두리째 뽑혀 쓰러졌다.

 

"으악!"

 

"악!"

 

나뭇잎이 마치 눈이 내리듯 사방으로 흩날리는 속에 처절한 비명 소리가 연이어

수차례나 들려 왔다.

짐작해 보건데 아마 족히 십여 명은 죽어 버린 것 같았다.

위중평은 꿈에도 이처럼 많은 무리들이 자기를 암습하려고 숨어 있는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위중평에게는 이런 경창 속에서도 용호구환단 한 알을 꺼내 먹는 여유가 있었다.

위중평이 조화신공을 시전할 때마다 거의 두 시진의 운공조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곳에서는 조식할 시간이 그에게 없었다.

그래서 위중평은 용호구환단으로 조식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위중평이 사방을 둘러보니 나무 사이에 몇 개의 인영이 번득이는 듯싶었다.

 

"멈춰라!"

 

위중평은 대갈일성을 내지르며 그 인영의 뒤를 쫓았다.

과연 위중평의 추측대로 세 개의 인영이 급히 숲 밖으로 도주를 하고 있었다.

그 그림자는 상당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도망을 가고 있었지만 위중평은

암습을 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그 뒤를 바싹 추격해 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 세 명이 창망히 숱을 벗어나기 무섭게 갑자기 찬란하게 비치는 햇빛 아래

검망이 번득이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검을 뽑은 열두 명의 도사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 열두 명의 도사들은 하나같이 태양혈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 내외무공을 겸비한 고수들이었다.

이 때 숲 밖을 빠져 나간 세 사람 중 가장 우두머리는 바로 철적황손 모조음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신가보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상대 도사들의 모습과 검을 잡은 자세들로 미루어 보아 화산파라는 것을 즉시 짐작했다.

모조음은 곧 간사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입을 떼었다.

 

"신가보와 화산파는 항상 피차 불가침의 조약을 지켜 오고 있던 터인데 도장께선 어찌하여

저희들의 갈길을 막고 계시는 겁니까?"

 

이 때 그들 중에서 나이가 비교적 많아 보이는 도사가 돌연 모조음의 등 뒤를 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위사숙께서 오시길 기다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이제 보니 위중평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세 사람 등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때 칠적왕손은 고개를 돌려 등 뒤를 쳐다보다가 안색이 그만 창백하게 변했다

모조음이 위중평을 만난 것이 이번으로 꼭 세 번째였다.

이번 세 번째는 꼭 무슨 결말이 나고야 말 것 같았다.

모조음은 이를 악물고 살기서린 어조로 외쳤다.

 

"위중평, 사람이 많다고 너무 으스대지 말아라. 일대 일이라면 내가 얼마든지 상대해 주마!"

 

그러나 위중평은 그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갑자기 숲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숲 속에서는 자그마한 한 인영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오사형, 오사형…"

 

그 음성은 굳은 듯 차갑게 얼어 붙어 있는 위중평의 감정을 헤집어 놓았다.

위중평은 갑자기 얼굴을 하늘로 올리며 처절한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저놈의 목숨을 내 파리 목숨처럼 죽이고 싶지만

결코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하하하…"

 

위중평은 이 순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쓰라림을 맛보았다.

그것은 또 원인을 알 수 없는 비애였다.

한참 우두커니 서 있던 위중평은 열두 도사들을 향해 조용히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맨 가운데 서 있던 도사가 길을 터주자 모조음은 마치 지옥에서 구출된 듯,

여우가 꼬리를 감추듯 도망을 쳐 버렸다.

모조음이 꼬리를 빼고 사라지자 열두 도사도 공손히 위중평에게 인사를 올렸다.

 

"위사숙,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위중평은 가볍게 그들의 인사를 받고는 그들이 이곳에 있게 된 경위를 물었다.

알고 보니 이 열두 도사들은 화산장문인이 위중평을 모셔오라고 특별히 파견한 고수들이었고

이들은 위중평이 요동에서 급한 볼일이 없다면 항주(抗州) 삼청관(三淸觀)에서 만나자고

연락을 보내왔다.

위중평은 즉시 화산의 열두 제자를 거느리고 그 길로 총총히 화산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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