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5. 생사의 약속

오늘의 쉼터 2014. 6. 20. 15:46

5. 생사의 약속

 

 

요란한 광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한 개의 인영이 경멸에 가득찬 웃음을 흘리며

한가운데로 날아들었다.

이것은 너무나 돌발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금주호는 황급히 독비악걸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그러나 독비악걸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다.

 

"교주가 친히 나선다 해도 내게 반말을 못하는데 조그만 놈이 저렇게 방자하다니

내 버릇을 고쳐 주고야 말 것이다!"

 

말을 끝내고 그는 맹렬히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위중평을 향해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이 하늘 높고 땅 넓은 줄 모르는 놈 같으니라고, 젖비린내도 채 가시지 않은 놈이

안하무인격으로 날뛰니 본좌가 필히 네 버릇을 좀 가르쳐 주어야겠다!"

 

위중평은 이 적발교의 고수라는 자들의 무공이 대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 잠시 자기의 신분을 감추었다.

 

"흥, 더러운 거렁뱅이 같으니라고, 네가 감히 누구를 훈계하겠다는 말이냐?"

 

독비악걸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전력을 다해 일 장을 격출해 내었다.

독비악걸로 말할 것 같으면 수십 년을 수련하였기 때문에

그 내력의 웅후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폭풍우같은 장풍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자 위중평은 가볍게 몸을 틀어

다섯 자 밖으로 피해 내었다.

 

순간-.

 

"펑!"

 

하는 굉음이 터지더니 객청의 두꺼운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독비악걸은 마음을 턱 놓고 후려친 일 초가 실패하자

두 눈에 불을 켜고 다시 일 장을 격출해 내었다.

이번에는 무시할 수 없는 장세라 위중평은 피하지 않고

강력 무비한 일 장으로 반격을 가했다.

두 개의 장력이 맞부딪치자 우뢰와 같은 굉음이 처지며 독비악걸은

마치 엉덩방아를 찧듯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났으나 반면 위중평은

입가에 냉소를 흘릴 뿐 마차 커다란 고목처럼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끄덕도 없었다.

독비악걸의 무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적발교 중에서도 손꼽히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당한 형당의 당주가 후생 만배 앞에서 그런 꼴을 당하자

수치와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독비악걸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물들이더니 대뜸 맹령하게 덮쳐들었다.

독비악걸은 악에 바친 나머지 연속 일곱 장을 십 성의 공력을 관주시켜 격출해 내었다.

이 순간 대청 안은 질식할 듯한 경기로 가득차 그 기세는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위중평은 여전히 대범하게 비웃음을 날리고 있다가 갑자기 몸을 날려

그 장영(掌影) 속으로 뛰어들더니 신기한 장법을 격출해 내어 맞붙었다.

이 때 은근히 위중평을 염려하고 있던 대괴 한탕이 이괴 주독행에게 가만히 말했다.

 

"과연 교주의 안력이 대단하시군. 저처럼 뛰어난 제자를 두셨으니 장차 천하무적이 될 걸세."

 

막 맞장구를 치려고 하던 이괴 주독행은 갑자기 안색이 싹 변해 외쳤다.

 

"큰일났다! 당주가 당하시겠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그는 신형을 날려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 들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으악!"

 

독비악걸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일 장 밖으로 실이 끊긴 연처럼 날더니

그대로 땅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대괴가 황망히 달려나가 부축을 해보니

독비악걸은 사색이 다 되어 입에서 쉴새없이 선혈을 내뿜고 있었다.

이괴 주독행은 당주를 구하려 했다가 한 발 늦어 버리자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꼬마야, 네놈이 아무리 교주의 제자라 할지라도 너무 건방지구나."

 

위중평은 가차없이 경멸의 코웃음을 날렸다.

 

"난장이 같은 꼬마 양반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소?"

 

주독행은 대뜸 눈을 부라리며 폭갈을 터뜨렸다.

 

"아니 이놈이 보자보자하니까 정말 미친 놈이 아닌가? 이놈 초식을 받아라!"

 

주독행이 막 분노의 일 장을 날리려고 자세를 취하는 순간이었다.

 

"휘익!"

 

예리한 파공음 소리와 함께 홍영이 번득이더니

조그마한 삼각 깃발이 두 사람의 중간에 날아와 박히자

그만 크게 놀라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려내었다.

이것은 바로 추혼천녀의 신부였다.

순간 위중평은 그녀와 삼경 무렵 성외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떠올랐다.

그러자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중에 귀왕금패를 꺼내들며 크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들었다가 홍모음효에게 그대로 가서 전해라!"

 

이렇게 서두를 꺼내고 나서 그는 눈을 번득거리며 냉랭하게 외쳤다.

 

"신주검성의 후인이 다시 장백파(長白派)를 중진(重振)시키기 이해 얼마 안 있어

찾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아버님의 원수를 갚을 테니 단단히 준비하라고 해라!"

 

말을 끝내고 위중평은 양 손가락에 힘을 주어 금패를 두 동강이 내 버렸다.

 

"자, 그러면 난 이만 가보겠다."

 

말을 끝내고 위중평은 듣는 사람의 심금을 오싹하게 만드는 웃음을 남기며

한 가닥 연기처럼 담을 넘어 사라졌다.

너무나 돌연한 순간에 그리고 의외로 일이 벌어진 까닭에 장내에 있던 고수들은

서로 얼굴만 멍하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편-.

위중평은 적발교의 봉헌분타를 떠나오면서 무엇인가 가슴 속에 후련한 기운을 느꼈다.

이것으로 오늘 밤 드디어 어느 정도의 울분을 푼 셈이었지만

그는 복수만큼은 정정당당하게 진행을 시켜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고

또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고원삼흉에게도 도전을 해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아버지,

신주검성이라는 존호를 뒤찾는 영광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 후로부터는 다시 장백파를 복흥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리라고 결심을 세웠다.

차가운 밤바람이 한 차례 전신을 싸고 돌자 위중평은 추혼천녀와의 약속이 생각나 급히

성외로 발을 재촉했다.

위중평은 이제 조금 후면 벌어질 추혼천녀와의 대결을 생각하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추혼천녀라 하면 그 수법이 악랄하고 무공 또한 높은 까닭에 누가 누구의 손에 죽게 될지는

장담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위중평은 그녀가 자기를 불러 격투를 신청하는 목적을 모를 뿐 아니라

무엇 때문에 무림인들 전체를 원수같이 여 기는지 알지 못했다.

정신없이 길을 재촉하고 있는 위중평의 굇전에 등골이 싸늘해지는 냉소가 무덤 뒤에서 들려 왔다.

 

"흥, 네가 감히 정말로 이곳엘 오다니 정말 뜻밖이구나."

 

이 음성의 주인공은 바로 무림의 마성(魔星)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추혼천녀였다.

위중평은 멈추어 서서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한 번 약속하면 그곳이 설사 용담호혈이라고 해도 오는 사람이오."

 

위중평은 초속의 신법을 전개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추혼천녀는 그의 이 대단한 신법을 보자 은근히 놀라는 빛을 띠었으나

그것은 극히 일순간이었고 어느새 그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위중평은 그녀의 앞에 다가서자 제법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낭자, 오래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하오."

 

위중평은 마치 기다리고 있던 연인에게 하는 것처럼 스스럼 없이 이런 말을 꺼냈다.

그것이 위중평은 이제 당당한 장백파의 장문인 신분인 까닭에 어떤 위엄같은 것을

지니기 위함이었으나 추혼천녀의 표정은 역시 무(無)에 가까을 정도로 차가웠다.

 

"나도 금방 왔으니 당신은 너무 겸손해 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 어떤 식으로 시합을 시작할 거예요?"

 

위중평은 그리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까닭에 은근히 말을 꺼냈다.

 

"낭자,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소? 우리 우선 대화나 좀 나누어 봅시다."

 

위중평은 이 성격이 잔인하고 괴팍스러운 그녀의 신세에 대해 불현듯 알고 싶었다.

추혼천녀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쏘아붙였다.

 

"나는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할 얘기가 어디 있단 말이에요?

이렇게 말이 나오면 그녀에게 일단 반대의 의사는 없다는 뜻이다.

"우린 서로 알고 있지 못하니까 서로 대화를 나누자는 거요."

 

위중평은 일부러 능청을 떨었다.

 

"예를 들어 낭자의 신세가 무림인과는 어떤 원한이 있는가 등등…

참, 그리고 관도에서 초면인 내게 왜 독수를 썼는지 그것도 있지 않소?"

 

추혼천녀는 냉막하게 대꾸했다.

 

"그런 것들은 무엇 때문에 물으려는 거죠? 나와 사랑한 것도…"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얘기가 어째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생긋 웃었다.

이 웃음은 마치 백합꽃이 활짝 피어나는 듯 아름답고 신선하기 그지없었고 이 순간만은

여살성인 그녀에게 소녀다운 순수함이 담뿍 깃들어 있었지만 그것도 일순간,

추혼천녀는 다시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가 말을 꺼냈다.

 

"난 그저 기분이 안 내킬 때면 으레 그런 독수를 내리곤 하죠."

 

하지만 위중평은 조금 전 그녀가 자기에게 보여준 그 짧은 웃음 속에서 추혼천녀라는

인간이 결코 잔인하고 냉혹하며 살인을 취미로 삼고 있는 살성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위중평은 좀더 이 소녀에 대하여 그 본연의 자세를 알고 싶어 말을 꺼냈다.

 

"그럼 낭자는 살인을 한 후 어떤 후회같은 건 느끼지 않소?"

 

"천만에요. 나는 살인을 하므로써 일종의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고 있어요."

 

위중평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니 사람이란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도록까지 성장하는 데 얼마나 힘이 들고

또 그 사람이 죽은 후엔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비통함을 느낄지 헤아리지 못한다는 말이오?"

 

추혼천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난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아요. 그들이 나쁘면 죽여 버리는 것으로 끝나니까요."

 

아마도 추혼천녀가 강호에 나온 이래 이번이 가장 많이 이야기를 한 셈친 것이다.

추혼천녀는 어려서부터 아무도 없는 상황하에서 자라나 하루에 세 마디 이상은 더하지 않는

사부를 상대하는 것 외에는 도대체 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라왔기 때문에

인간 관계라던가 따뜻한 인정이나 사랑 따위는 거의 느껴보지 못한 채 냉혹하게만

생활해 온 것이었고 강호에 나와서도 종종 살생을 일으키고 해서 그녀에게 있어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적이라고 믿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 예를 깨고 추혼천녀는 위중평과 많은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추혼천녀는 위중평의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에서 뭔가를 자기에게서 찾으려 한다는 것을

느끼고 그만 참을 수 없어 얼굴을 붉혔다.

이것은 그녀가 세상에 태어난 이래 처음 겪는 야릇한 감정이다.

그녀는 이러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는 듯 본능적으로 일 장을 밀어 내었다.

그러나 이 장력에는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위중평은 가볍게 피해 내며 소리쳤다.

 

"낭자, 너무 성급하게 그러지 말고 우리 좀더 얘기를 나눠보자는데 그러는구려."

 

위중평은 그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다시 물었다.

 

"낭자의 부모님들은 원수들에게 살해되었소?"

 

추혼천녀는 냉막하게 고개를 저으며 짤막하게 대꾸했다.

 

"몰라요."

 

"그럼 낭자의 사부님이 무림인과 원한이 있는 것이구려?"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해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럴 가능성이 있겠죠."

 

위중평은 그녀가 일단 말문을 터놓자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낭자의 무공은 어느 파에 속하오."

 

"그건 묻지 마세오."

 

그녀의 살얼음 같았던 태도가 일순간에 누구러지는가 싶더니

사뿐히 걸어 청석판(靑石板) 위에 걸터앉았다.

위중평은 그녀가 앉는 것을 보자 자기도 그 옆에가 앉았다.

이 때 위중평의 마음은 어떠냐 하면 그녀에게 적의를 품기는커녕 오히려 동정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일시간 말이 없었다.

조용한 정적만이 주위를 감돌았다.

잠시 후에 그녀가 몸을 틀더니 이렇게 말을 꺼냈다.

 

"당신도 사람일 테죠?"

 

위중평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거야 물론이오."

 

"그럼 부모님은요?"

 

위중평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원수들에 의해 살해되었소."

 

추혼천녀는 이 순간 마치 순진한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듯

 새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연거푸 물었다.

 

"원수는 누구인가요?"

 

"고원삼흉과 홍모음효요."

 

추혼천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왜 그들을 죽여 버리지 않죠? 이기지 못하나요."

 

위중평은 픽! 하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고 이제부터 복수를 시작하는 거요.

난 내가 그들을 이기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낭자의 성의는 고맙소만 그럴 필요는 없소."

 

말을 끝내고 위중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낭자, 난 이만 가볼까 하오."

 

그러자 의외로 추혼천녀는 약간 사정이 담긴 표정으로 따라 일어섰다.

 

"소협, 좀더 대화를 나눌 순 없나요?"

 

그녀는 생전 처음 이성과 나누어본 대화에서 많은 호기심과 흥미를 느낀 것이다.

위중평은 그녀가 이처럼 나을 줄은 전혀 뜻밖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다시 앉았는데 갑자기 정이 담뿍 담긴 시선으로

그에게 다가앉으며 감미로운 어조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소협, 나를 좀 안아줄 수 없나요?

 

위중평은 얼떨떨함 속에서도 뭔가 호소를 하는 듯한 그녀의 따뜻하고도

정이 듬뿍 어린 두 눈에 야릇한 감정을 느껴 그만 그녀를 힘껏 껴안고 말았다.

그리고 위중평은 생전 느끼지 못하던 쾌감을 느꼈다.

여인의 진한 체취를 느끼며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갑자기 한 의견이 그의 뇌리를 번개같이 스쳐 지나갔다.

위중평은 그녀를 확 밀쳐내며 속으로 외쳤다.

 

'위중평,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느냐?

이것으로 인해 상대가 사랑한다고 오해를 하면 어떻게 해석을 할 테냐?

그리고 혜매와 옥누나에겐 또 어떻게 말을 할 것이고…"

 

너무나 급작스러운 위중평의 태도에 추혼천녀는 어안이 벙벙하여 웃었다.

 

"소협, 무엇을 보았어요?"

 

위중평이 대답을 못해 우물거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무덤 위에서 기다란 괴소가 내력으로 발해지며 그의 대답을 대신했다.

괴소는 마치 수천 마리의 늑대가 울부짖는 것처럼 높고 웅장했다.

이 괴성이 멎자 사방에서 네 명이 어른거리더니

많은 사람들 이 두 사람을 향해 접근해 들었다.

추혼천녀는 많은 대적을 해왔기 때문에 즉시 짙은 살기를 띠었다.

두 사람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순간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들과 약 삼 장쯤 떨어진 곳에서 신형을 멈추었다.

이 때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헝크러진 두타(頭駝)가 괴소를 터뜨리며 입을 떼었다.

 

"킬킬킬킬… 여기가 감히 어딘 줄이나 알고 별 해괴한 짓을 다 하고 있느냐?"

 

그러더니 위중평을 흘깃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또 어떤 놈이길래 이 계집과 같이 있느냐?

그러나 같이 죽어야 할 판이니 정말 안됐다…"

 

추혼천녀는 다시 본래의 냉엄한 표정으로 몰아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것은 바로 그녀가 살기를 끌어올리는 신호이기에 장내의 사람들은

등골이 써늘해지는 것을 느끼고 암암리에 운공을 하여 경계를 갖추었다.

 

순간-.

장내의 분위기는 마치 팽창한 공처럼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으나

오직 산발을 한 두타만이 욕정에 굶주린 눈으로 추혼천녀를 쳐다보며 음탕한 속셈을 품고 있었다.

두타는 바로 삼흉의 수하이자 만불사(萬佛寺) 좌하의 오존(五尊) 중의 하나인 흑살존자(黑煞尊子)

인데 그 성품이 음흉하고 강할 뿐 아니라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자였다.

흑살존자는 욕정이 타오르는 나머지 생명의 위협도 느끼지 못하고 추혼천녀를 향해 덮쳐들었다.

위중평은 이 많은 사람들이 낭자 하나를 포위 공격하려는 것을 보고 내심 매우 불쾌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산발을 한 두타가 겁도 없이 덮쳐들자

크게 분개하여 대뜸 산을 무너뜨릴 것 같은 웅후한 장력을 내밀었다.

 

"으악!"

 

뒤이어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두타의 신형이 휴지조각처럼 허공으로 붕 떠서 이 장 밖으로 나가 떨어져 그만 비명에 가고 말았다.

그러자 군중 속에서 즉시 웅성웅성 커다란 물결이 일었다.

 

"이놈! 어디라고 감히 손을 놀리느냐?"

 

폭갈 소리와 함께 두 명의 두타가 사람을 헤치고 나오더니

그 중 한 명이 위중평을 향해 덮쳐오며 외쳤다.

 

"이놈, 네가 감히 삼흉 존하의 존자를 죽이다니 정말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놈이로구나!"

 

고원삼흉이라는 말이 귀에 들려 오자 위중평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신형을 비틀거리며

치를 떨며 두타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내고는 장내를 훑어보며 매섭게 소리쳤다.

 

"이 자리에 삼흉의 존하가 있으면 전부 나오너라!

그러나 관계가 없는 자를 일찌감치 꺼지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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