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7. 고묘의 변

오늘의 쉼터 2014. 6. 20. 15:48

7. 고묘의 변

 

 

노인은 그제야 눈물을 닦더니 서둘렀다.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자, 어서 집으로 가십시다.

그리고 청아야, 어서 이리와 공자께 인사 올려라."

 

부상을 입었던 소년은 용호구양단의 약효로 많은 회복을 본 후라 도인의 이 말을 듣자

즉시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

 

"청아가 공자님께 인사 올립니다."

 

위중평은 얼른 그를 일으키며 급히 말했다.

 

"공자라니 당치도 않소. 우리 칭호를 좀 바꿉시다."

 

그러자 노인이 급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공자,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위중평은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반대했다.

 

"글쎄 상관 없대도 그러시는군요.

저는 어르신네를 그냥 아복(河福)아저씨라 부를 테니 그냥 중평이라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물론 청아도 마찬가지죠."

 

노인은 얼른 위중평의 말을 받아 소년을 소개시켰다.

 

'지 애는 제 손자 위장청(衛長晴)입니다."

 

위중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렇다면 좀 안됐긴 하지만, 날 그냥 평숙이라고 부르면 되겠군."

 

위중평은 사실 위장청에게 몹시 호감이 갔다.

그는 반짝이는 눈하며 영기어린 표정 모두가 보통 소년의 것이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위중평은 노인의 안내로 장백산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초가집으로 들어섰다.

싸리문을 밀고 들어가 보자 초가집은 세 칸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사냥을 하는

도구와 짐승의 가죽들이 가득차 있었다.

위장청은 무공이 대단한 평숙이라는 위중평에게 매우 호감이 갔기 때문에

집에 당도하기가 무섭게 그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연신 마당과 부엌을

들락거리는 위장청을 보다 못해 위중평은 즉시 밖으로 나와 애원하다시피 말렸다.

 

"청제, 그러지 말고 어서 들어와 얘기나 좀 나누세."

 

그러자 아복 노인이 말을 했다.

 

"그냥 일을 하게 놔두십시오."

 

위장청도 질 수 없다는 듯 한 마디 거들었다.

 

"평숙, 제가 추운 날에 이러는 것이 안스러워 보이시면 제게 십 초의 무공을

가르쳐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저도 그것으로 만족할 테니까요."

 

아복은 참지 못하고 파안대소를 했다.

 

"하하하하… 약은 것 같으니라고… 그러고 보니

네가 평숙을 극진히 모시는 데는 다 목적이 있었구나?"

 

위장청은 당황해 하며 그러나 결코 회피하는 기색은 없이 아복을 향해 눈을 흘겼다.

 

"참 할아버지도… 그런 말씀으로 저의 수고를 깎으면 어떻게 해요?"

 

위중평이 나서며 위장청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청제, 염려 말아라.

내 자네가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몇 초가 아니라 얼마든지 가르쳐 줄 테니."

 

세 사람은 이어 준비가 다 된 음식을 먹으며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가 아까 포위 공격을 당하는 곳에 이르자

아복은 긴 탄식을 뿜어내더니 품 속에서 무엇인가를 뒤적거려 물건 하나를 상 위에 꺼내 놓았다.

 

"바로 이것 때문이랍니다."

 

위중평은 의외로 상 위에 놓인 커다란 산삼(山蔘)을 쳐다보며 어이없는 듯 웃었다.

 

"아니 이것은 비로 상당한 값이 나가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복은 표정을 신중하게 굳히며 입을 떼었다.

 

"이 산삼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백 년이 넘은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어떤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캐냈는데

그들은 이것을 빼앗기 위해 삼을 캐는 동료들까지 죽였습니다."

 

위중평은 점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짙게 찌푸렸다.

 

"아니 그 자들은 대체 누구이며 또 아저씨께서 구하시겠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때 위장청이 대신 나서서 대답하였다.

 

"그 자들은 바로 삼흉의 악도들입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본문엔 이제 흑수신룡(黑手神龍)과 요동일검(遼東一劍)두 선배님만

남아 계십니다.

제가 구한 산삼은 바로 요동일검 가진(歌震) 노선배님께 드릴 것입니다."

 

그러자 아복 노인이 다시 장백파가 목전에 처해 있는 곤경과 삼흉의 그 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위중평은 이 얘기를 듣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우선 복수는 자신이 직접 하기로 했고

장백파를 중흥시키는 일은 아복과 요동일검에게 맡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튿날 아침.

위중평은 일찍부터 일어나 용호구양단 한 알을 아복에게 넘겨 주며 입을 열었다.

 

"아복아저씨, 우선 이 알약과 산삼으로 구진 선배님을 치료해 주십시오.

저는 우선 아버님의 산소부터 갔다 오겠습니다."

 

위중평은 위장청의 안내로 한 깊은 유곡으로 아버지 신주검성의 묘를 찾아갔다.

이윽고 위중평은 유곡 안에 세워진 묘패 앞에 당도했다.

 

<장백파 제 칠대 장문인 위공(衛公) 무종지위(無終之位)>

 

위중평은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 있다가 이윽고 묘패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을 했다.

"아버님, 이제 마음 놓고 눈을 감으십시오.

이 자식이 기필코 아버님의 복수를 해 드리겠습니다."

위중평은 입술을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즉시 무흔검을 뽑아 무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절벽을 향해 번개같이 일 검을 내리쳤다.

 

"아버님, 이 바위가 무흔검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듯 삼흉일효도 이와 같이 만들겠습니다!"

 

무흔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에 다시 없는 신물(神物)이자 특수한 보검이다.

찬란한 희망이 절벽 중간을 그어가기 무섭게,

 

"꽈르릉!"

 

하고 바위가 산산조각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위중평은 그것을 보자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담았다.

위중평이 무덤 앞에 쏟아져 내린 잡석을 치우려고 몸을 굽히는 순간 무엇인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길이가 약 한 자 정도 되는 자옥갑(紫玉匣)이었다.

위중평은 문득 호기심이 생겨 그것을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세 가지의 물건이 소중하게 놓여져 있었다.

뽕나무 껍데기로 만든 작은 책자와 한 자 길이의 자옥(紫玉) 섭선(攝扇)

그리고 은빛 찬란한 열두 개의 은고루(銀枯樓)였는데 위중평은

더욱 신기함과 호기심을 느껴 그 작은 책자를 펴보았다.

책자는 두 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일 편에는 해독천방(解毒千方)이라는 글이 씌여져 있었고

이 편에는 자옥선법(紫玉扇法)과 마영은루(魔影銀樓)의 사용법이 적혀 있었다.

원래 무공을 하는 사람이라면 호기심이 강하고 모험을 하기 좋아한다.

위중평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그것을 당장 펴보지 않고는 직성이 풀릴 것 같지 않아 위중평은

우선 섭선의 사용법을 자세히 탐독하기 시작했다.

위중평은 워낙 총명하고 영기가 있어 온 신경을 기울인 끝에 얼마 되지 않아

그 내용을 대충 파악하였다.

섭선의 사용법은 단 세 초뿐이었으나 그 위력은 신랄하고 매섭기 그지없었다.

위중평은 내용을 대충 머리 속에 암기하자

우선 섭선을 집어 들고 초식에 적힌대로 연습을 해보았다.

 

순간-.

한 가닥 바람이 가볍게 섭선에 뻗어 나가는가 싶었는데 그 바람은 살을 에이는 듯 차가웠다.

더구나 그 위력조차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이 섭선의 바람이 스쳐 가는 곳에는 바위가

흙이 되어 날렸고 나무가 뿌리째 뽑혀 힘없이 쓰러졌다.

참으로 무서운 위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중평은 그만 입을 쩍 벌린 채 넋을 잃고 말았다.

위중평은 사문(邪問) 중에서도 이처럼 위력이 절묘한 초식이 있었다는 것에 도저히

그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가히 정사쌍절(正邪雙絶)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어서 만일 구태어 우열을 나눈다면

그것은 쌍방의 내력의 높고 낮음으로 가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위중평은 자옥섭선을 품 속에 거두고 이번에는 은고루를 꺼냈다.

은고루는 역시 천하의 이름난 병기였다.

 

이 때였다.

 

"휴…"

 

하고 갑자기 우울한 장탄식이 등골을 싸늘하게 만들며 터져 나왔다.

위중평이 크게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인영이 하나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나 있었는데

위중평의 공력으로도 상대가 다가서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상대의 무공이

매우 높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것이었다.

위중평은 재빨리 몸을 돌려 소리가 들려온 곳을 쏘아보니

자기 아버지의 무덤 앞에 어느새 중년부인이 서 있었다.

위중평은 이 중년부인이 적인지 친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선 목청을 높여 다그쳐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무엇 때문에 제 아버님의 무덤 앞에 서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복면여인은 위중평의 이런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 앞에 서서 내심 무엇인가

기도라도 하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위중평은 더욱 의혹이 생겨 재차 소리쳐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왜 묻는 말에 대꾸를 않는 거요?"

 

그런데 중년부인은 여전히 아루 말 없이 몸을 돌려 숲 속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위중평은 자신이 무시당한 것 같아 은근히 화가 치밀어 몸을 날려 그 여인의 뒤를 쫓았는데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위중평이 제아무리 힘을 내어 달려 보았지만 그 여인과의 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를 않았고

위중평은 원래 호기심과 자부심이 강한 위인이었기에 그는 즉시 단전에 진기를 끌어 올려

초음신법 중에서도 그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은하성사(銀河星寫)로써 덮쳐 갔다.

이 때 그 부인은 고개를 돌려 가볍게 웃는 듯하더니 신법을 더욱 빠르게 전개하는 것이 아닌가.

위중평은 전력을 다해 달렸지만 결국 그렇게 신비의 여인을 놓치고 말았다.

위중평은 자기의 공력이 그 부인만 못하다는 것에 크게 기분이 상하여 내심 불쾌해

다시 되돌아 왔다.

위중평이 터덜터덜 걸어오려니까 위장청이 달려오며 크게 소리 쳤다.

 

"평숙, 구나으리께서 편숙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동일검은 장백파에서 단 한 사람밖에 남지 않은 장로였기에 그 소리를 듣자

한시라도 빨리 그를 만나고 싶었던 마음에 급히 걸음을 재촉하였다.

위중평이 초가집 앞에 도착해 보니

그곳에는 아복처럼 체격이 우람한 백발노인이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위중평을 맞이하고 있었다.

위중평은 그 노인이 요동일검이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보고 황급히 앞으로 다가가

몸을 깊숙이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요동일검은 급히 손을 내저어 그를 맞이했다.

 

"현질, 어서 그만두고 우리 안으로 들어가 얘기나 나누세."

 

방으로 들어온 요동일검은 불빛 아래 위중평의 외모를 이러저리 자세히 살피더니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이어 그는 몹시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장백파는 현질의 부친이 돌아가신 후부터 이 늙은이들이 남아 조금도 발전을 시키지 못했는데

오늘 이리도 유능한 현질이 왔으니 본파에는 이제 커다란 부흥이 있겠네."

 

위중평은 고개를 숙이며 겸손해 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모든 것을 그저 숙부님께서 잘 돌봐 주셔야지요."

 

요동일검은 연신 만족한 빛을 거두지 못하고 싱글벙글했다.

 

"자, 겸손은 그만 하게. 이제부터 어떻게 해나갈 생각인가?"

 

위중평은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단호하게 내뱉았다.

 

"본파의 부흥에 대해선 무엇보다 숙부님께서 힘껏 추진해 주십시오.

저는 우선 전력을 다해 아버님의 원수를 갚을 생각입니다."

 

그 때였다.

대문 밖에서 홍량한 염불 소리가 들려 왔다.

 

"나미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 음성으로 미루어 보아 나타난 사람이 심후한 내공을 지녔다는 것을

짐작했다.

이들이 문 밖으로 나가 보니 체격이 우람하게 생긴 한 화상이 손에 불문의 방편산(方便傘)을

들고 떡 버티고 서 있었으나 그 생김은 불문의 제자답지 않게 몹시 험상궂고 음산했기에

아복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으나 즉시 포권을 하며 말했다.

 

"대화상께선 어인 일로 이런 황량한 벽지에 왕림을 하셨는지."

 

미간에 싸늘한 살기를 띤 험상궂은 화상은 위중평의 아래위를 예리하게 훑어보았다.

 

"꼬마야, 네가 바로 위무종의 아들이냐?"

 

위중평은 나오는대로 내뱉은 그의 말에 몹시 화가 났지만 우선은 참고 포권을 올렸다.

 

"그렇습니 다만…"

 

화상은 갑자기 앙천대소를 하며 소리쳤다.

 

"으하하하… 아직 젖내도 채 가시지 않은 네놈이 고원삼흉에게 감히 복수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느냐? 으하하하… 오냐, 네가 지금 나를 따라 조용히 만불사로 간다면

저 두 영감의 목숨은 살려 주겠다.

그러나 만일 거역한다면 너희들은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위중평은 상대가 만불사의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자 대뜸 열화같은 분노가 치밀었다.

 

"으하하하… 이제 보니 만불사의 파계승이로군, 으하하하…"

 

화상은 대뜸 위중평의 어휘가 거칠게 나오자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네가 바로 그런 식이로구나.

오냐, 나 야호선사(野狐禪師)가 오늘 네놈의 버릇을 톡톡이 고쳐 주겠다."

 

이 때 요동일검은 상대가 야호선자라고 이름을 밝히자 크게 놀랐다.

이 악승은 흑도에서는 유명한 마두였는데 요사이는 삼홍의 수하에 편입돼 있었다.

호가 야호이니 만큼 잔인하고 악랄하기 그지없었고

또 그의 무기인 스물 네 초의 방편산은 산이라도 무너뜨릴 듯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요동일검은 그래도 무림의 고수라 포악한 이 화상의 말에 그냥 있을 수가 없어

대뜸 맑은 금속성 소리를 내며 장검을 뽑아들더니 앞으로 달려나갔다.

위중평은 이미 이 야호화상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에 대뜸 앞으로 나서며

요동일검을 가로막았다.

 

"진숙께선 잠시 쉬십시오. 저따위 개같은 흉승은 제가 나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신형이 번득이는 순간 이미 위중평의 몸은 야호화상의 면전에 다가와 있었다.

 

"자, 어서 시작해 보실까?"

 

야호선자는 만불사가 위중평을 잡기 위해 제일 처음 파견한 고수였다.

전날 위중평이 봉천 적발교 분타에서 소란을 피운 후 삼흉은 크게 진노해 많은 고수들을

파견해 위중평을 잡아 죽이라고 분부를 내렸던 것이었다.

그 고수들 중에는 한해일교(澣海一蛟)와 이 야호선사,

그리고 무계(無戒)도 마불사의 내전(內殿) 오존자 등 쟁쟁한 고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만불사의 내전 오존자는 각기 다섯 사람으로 그 호가 금풍(金風) 목기(木己), 수운(水雲),

그리고 화룡(火龍), 토행(土行)으로써 각기 특이한 무공을 지녀 강호의 어느 고수보다

그 무공이 뛰어나 각각 헤어져 수색을 하던 중 야호선사가 제일 먼저 위중평을 발견했던 것이었다.

야호선사는 위중평이 매우 건방지게 나서자

즉시 수중의 방편산을 휘두르며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네까짓 놈은 나의 삼 초도 채 받지 못하고 귀신이 되고 말 것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야호선사는 다섯 손가락을 떨쳐 위중평의 면문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싸늘한 바람이 앞으로 불어온 순간, 위중평은 가볍게 몸을 틀어 일 초 괴성역두(魁星賜斗)로

맹렬히 그의 옆구리를 올려 찼다.

본래 위중평이 시전한 이 초식은 매우 보편적인 초식이었으 나 위중평이 적당히 때를 맞추어

위력있게 시전을 해 내니 야호선사는 그만 흠칫해 뒤로 세 자나 물러섰다.

야호선사가 순전히 상대를 얕잡아 본 이유로 평범한 초식에 밀렸다는 것은

커다란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약이 바싹 오른 야호선사는 마치 땅덩어리를 박살낼 듯한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으로

맹렬히 장을 격출해 내었으나 위중평도 지금은 결코 얕볼 수 없는 것이라고 짐작해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장백파의 양관삼첩(陽關三諜)의 절초를 시전해 맞받아쳤다.

야호선사는 이미 이 소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건방진 태도는 어느새 없애버리고

신중을 기하여 그의 가장 절초인 탈백경혼(奪魄驚魂)과 추명삼산(追命三算)을 연달아 시전해

내었다.

 

순간-.

광풍노도와 같은 바람이 일며 사방 땅바닥에 쌓인 눈이 안개처럼 뿌옇게 일어났고

이것은 위중평을 향한 야호선사의 맹공격이 시작된 것을 뜻하는 것이었지만 위중평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날렵한 몸놀림으로 요리조리 피해 내며 유효 적절하게 때맞추어

응수를 했다.

한 차례 격전한 장풍이 앞으로 휩쓸어 나가자,

 

"꽝!"

 

하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괴음이 터졌다.

위중평이 야호선사의 공격권을 벗어나 삼 장 밖에 모습을 나타내었을 때에는

어느새 그의 수중에는 자옥섭선이 들려져 있었다.

위중평은 싸늘한 냉소를 입가에 가득 흘리며 모골이 송연하리만큼 차갑게 소리쳤다.

 

"야호! 네놈은 이제 내 손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이 말을 끝내고 위중평이 자옥섭선을 펴들자,

 

"휘익!"

 

하며 거대한 광풍이 야호선사의 우람한 몸뚱아리를 향해 휘몰아 덮쳐 갔다.

지금 위중평은 비록 자호섭선을 처음 시전하고 있었기는 했지만

워낙 기초를 튼튼히 연마했기 때문에 이 한 순간의 위력은 땅을 뒤엎을 만큼이나 놀라웠다.

야호선사는 위중평이 자옥섭선으로 이미 실전된 지 오래된 절초를 시전해 내자

안색이 하얗게 변해 뒤로 급급히 물러났으나 이미 그는 칠감혈(七坎穴)이 섭선에서

뻗어 나오는 선광에 격중되고 말았다.

야호선사는 미친 듯 소리치며 그대로 몸을 날려 뺑소니를 쳐 버렸고 이에 위중평은

득의의 광소를 터뜨리며 그가 도망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는데 그것은 야호선사가

섭선에 칠감혈을 맞았기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던 요동일검은 경악에 찬 어조로 내뱉았다.

 

"현질, 과연 대단한 솜씨군. 이제 우리 장백파의 부흥도 얼마 남지 않았군!"

 

위중평은 그제야 웃음을 거두며 멋적게 웃었다.

 

"진숙, 과분한 칭찬입니다."

 

이어 위중평은 요동일검과 아복에게 사후 처리를 부탁한 뒤 초가집을 떠났다.

장백산을 빠져 나와 성 안에 들어서자 위중평은 우선 배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에서

한 주루를 찾아들었다.

아래층에는 비교적 손님이 많은 것 같아 그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도 별로 한산한 편은 아니었지만 주루의 한 가운데 세명의 괴승이 앉아

크게 웃고 떠들고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위중평은 바로 그들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기 때문에 자연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듣게 되었다.

이 때 큰형이라고 불리는 한 깡마른 승려가 입을 떼었다.

 

"그 위무종의 아들 놈이라는 게 보통내기가 아닌 모양이더군.

그렇지 않고서야 두목이 우리를 보낼 리가 없지 않는가?"

 

소위 승려라는 이 자들이 주루에서 술이니 고기니 마구 집어먹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 때 닭다리를 입에 넣어 씹고 있던 매부리 코에 얼굴이 긴 승려가 목멘 음성으로 거들었다.

 

"그뿐 아니라 설룡수의 말에 따르자면 그 꼬마녀석은 장백파의 월륜검법뿐 아니라

화산파에서 이미 실전된 지 오래된 일양래복장에도 능통하여 그 내력이 몹시 뛰어났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일단 말을 끊더니 그는 입에 씹고 있던 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긴 후 다시 이었다.

"하지만 그 검법이 정교하고 장법이 기이하다는 얘기는 믿어 줄 수 있지만

그 내력이 설룡수를 능가한다는 얘기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놈이 이제 나이가 몇 살이라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러자 세 명 중 제일 막내로 보이는 우둔하게 생긴 승려가 상을 탕 내리치며 소리쳤다.

 

"제놈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나 화운의 손에 걸리기만 하면

아주 박살을 내고야 말 것이다."

 

깡마르고 독수리처럼 매서운 눈초리를 가진 제일 큰 승려가 제법 심각한 어조로 말을 아었다.

 

"어찌 되었건 그 애송이 놈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다.

만일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당금 무림에선 그런 놈을 배양시켜 낼 만한 인재가 없다.

아마도 신주검성이 부활을 한다 해도 그런 능력은 없을 것이다."

 

매부리코 승려는 술을 쭉 들이키더니 술잔을 바닥에다 내팽개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자, 백 번 들어 봐야 한 번 보느니 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놈이 제아무리 용을 부리는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 내전삼존을 당해 내기야 하겠습니까?"

 

세 사람이 주석을 끝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남색경장을 한 준수한 소년이 소리 없이

그 승려의 뒤를 따랐다.

미소년 위중평은 주루 이층에서 그들의 대화를 똑똑히 들었기 때문에 자기의 처지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짐작하고 새삼 몸을 한 번 떨었으나 위중평은 부모님의 원수를 갚는 데 있어

결코 그 고삐를 늦출 생각은 없었고 더구나 정사삼가(正邪三家)의 재주를 지닌 그가 무엇을

겁내겠는가.

위중평은 가볍게 신형을 날려 삼존의 뒤를 따라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언덕에 당도했다.

이 때 세 승려는 그 어떤 불길한 예감을 느꼈는지 언덕 너머에 있는 고묘(古廟)를 향해

질풍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위중평은 그들의 뒤를 바싹 따라 세 사람이 묘 안으로 들어서자 급히 묘 뒤에 있는

처마 아래로 몸을 숨겼는데 그들은 이 낡은 거미줄만 가득찬 대전 안에서

두 구의 시체를 발견했던 것이었다.

한 구는 위를 바라보며 반듯하게 누워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바로 야호선사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귀안검호였다.

이 때 두 명의 승려는 안절부절 못하고 전 내를 왔다갔다 하다가

세 존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황망히 다가오며 물었다.

 

"그래 두목의 긴급 전령인 화부(火符)를 받고 오는 길이요?"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그러자 두 화상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거참 이상군. 만불사에 무슨 큰일이 일어났는지 두목은 파견한 모든 고수들로 하여금

즉시 돌아오라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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