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연성결(連城訣)

4. 공심채(空心菜)

오늘의 쉼터 2014. 6. 19. 19:35

 

4. 공심채(空心菜)

 

 

정전은 세 사람을 쳐다보며 적운에게 물었다.

 

"아까 내가 말한 숫자를 잘 기억했겠지."

 

적운은 세명의 적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한사람은 도를 들고 있었고,

한사람은 검을 들었으며 다른 한사람은 빈손이었지만 얼굴이 굉장히 악독하고 포악해 보였다.

그는 적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으며 정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정전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봐 내가 말한것을기억했는가 ?"

 

적운은 엄숙하게 말했다.

 

"첫번째 숫자가..."

 

그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갑자기 머리에 뭔가 스치는게 있었다.

 

"지금 말하다가는 적이 들으면 어떡해."

 

왼손을 등에 갔다 대고 네개의 손가락을 눌렀다.

정전이 말했다.

 

"좋아!"

 

단도를 든 남자가 지으며 말했다.

 

"이봐 정가, 자네도 사내 대장부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나?

서로가 다치기전에 곱게 우리와 함께 가지."

 

검을 든 남자도 말했다.

 

"적형, 그동안 잘 있었어? 감옥 생활은 편했지 ?"

 

적운은 그 목소리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차리고 신중히 바라보니 그자는 바로 만진산의 둘째제자인 주기였다.

몇년 사이에 그는 콧수염을 길렀으며 멋진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적운은 몇년간의 억울한 옥살이와 비참하게 당했던 수모에 분노가 순식간에 폭발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큰 소리로 외쳤다.

 

"누군가 했더니... 주기군!"

 

정전은 그의 심정을 이해하고 말했다.

 

"좋아! 주선생은 만선생의 문하가 틀림없지.

좋아! 아주 좋아!

자네는 언제부터 능지부의 개가 됐나?

적형, 자네에게 소개해주지.

이분은 만승도(萬勝刀) 문파의 마대명나리이시고,

저쪽분은 산서 태행문(太行門)의 쌍도(雙刀) 경천패 나리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저자의 철장(鐵掌)이 칼처럼 날카롭다고 해서 쌍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더군. 저자는 칼을 안써."

 

적운은 말했다.

 

"두분의 무공실력은 어떤데요?"

 

정전이 말했다.

 

"삼류중의 고수지. 평생 노력해도 이류로는 못가."

 

적운이 말했다.

 

"왜요 ?"

 

정전이 말했다.

 

"그놈들은 자질이 우둔하고 유명한 사부에게 무공을 전수받지 못해서 이지."

 

두 사람은 옆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일문일답했다.

경천패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망할놈, 죽을 때가 다 됐는데도 개소리를 하구 있군! 내 칼을 받아라!"

 

그가 말한 칼이란 사실 손바닥이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른쪽 장으로 일격을 가했다.

정전은 중독이 된뒤 부터는 힘이 없어 대결을 하지 못하고 몸을 옆으로 돌렸다.

경천패는 오른쪽 장이 실패하자 왼쪽 장으로 다시 일격을 가했다.

정전은 그게 변세장(變勢掌)임을 알고 급히 손을 내밀어 해소 시키려 했으나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만 겨드랑이 아래에 경천패의 오른쪽 장을 맞고 말았다.

 

"윽!"

 

정전은 외마디 비병을 지르면서 한모금의 붉은 피를 토해냈다.

경천패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삼류라면 당신은 몇류지 ?"

 

정전은 숨을 들어마시자 살것 같았다.

그것은 금파순화의 독이 혈관 깊숙히 파고들어 혈액이 응고되고 있었는데

한모금의 피를 토해내자 내상은 깊었지만 독성이 잠시 약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뻐하며 즉시 경천패에게 일격을 가했다. 경천패가 손을 들어 막자

정전은 왼손을 돌려 그의 뺨을 힘껏 갈겼다.

뒤이어 오른손을 돌려 그의 머리통을 쳤다.

 

"아야!"

 

경천패는 소리치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정전은 오른쪽 손을 날려 그의 가슴을 후려쳤다.

 

"아아쿠!"

 

경천패는 또 한번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정전이 신조공을 발휘할수 있었다면 어느 일류고수라도 단숨에 죽일 수 있었을텐데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경천패는 외공만 강하고 내공은 별로인데도 연속 삼장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다.

정전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비록 죽음을 다해서 싸우려고 결심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몸도 주체할 수 없었다.

영웅의 말로를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슬퍼졌다.

천패는 연속삼장을 맞자 대경실색을 했다.

얼굴, 머리, 가슴이 격렬히 아파왔으며,

세곡 모두 치명적인곳은 아니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지레 겁을 먹었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죽어도 같이 죽어야겠다는 악독한 심보가 고개를 쳐들었다.

마대명은 주기에게 눈짓을 하고 말했다.

 

"주형, 함께 공격합시다!"

 

주기가 말했다.

 

"그래요!"

 

그는 적운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검을 들고 있으며

상대방은 빈손이라서 마음이 놓였다.

더욱이 오른쪽 손가락은 모두 잘리고, 비파골도 쇠사슬로 뚫려서

그의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힘을 못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기가 검을 높이 쳐들고 적운을 향해 공격을 했다.

정전은 적운의 신조공이 완성되지 못해서 감옥에 들어오기 전보다

무공이 많이 약해졌음을 알고 있었다.

맨손으로 주기를 대항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몸을 약간 돌리고는 왼손으로 주기의 검을 빼앗으려 했다.

동작이 너무 빠르고 초식도 너무 특이해서 주기는 피할 수가 없었다.

정전은 왼쪽 세손가락으로 그의 오른손 맥문을 잡았다.

주기는 크게 놀라며 자시의 검에 손에서 떨어지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손의 혈도가 제약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비튼 뒤 검을 돌려 정전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정전은 몸을 비틀어서 피했다.

마대명은 경천패와 주기가 정전과 싸울때 두번식이나 이길것 같았는데

두번 다 패한것을 보고 마음이 초초해졌다.

'능지부께서 저 놈이 중독됐다고 하더니,

독이 발작 돼었는데도 상당히 많은 내공이 남아 있는 모양이야.'

경천패도 정전이 손으로 검을 빼앗는 것을 보고 자신은

그의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생각했다.

'정가라는 녀석, 무공이 호랑이처럼 무서운데... 퉤! 망할놈!

놈을 호랑이라고 한다면 난 개가 되잖아.'

두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정전을 향해 덤벼들었다.

적운은 앞으로 뛰어 나가 막았다.

정전은 그의 어깨를 밀며 말했다.

 

"자넨 비켜!"

 

동시에 오른손을 내밀어 마대명의 목을 잡았다.

그가 내공만 소멸되지 않았다면 벌써 상대의 목수을 빼앗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대명은 깜작 놀라서 미친듯이 뛰어 도망쳤다.

정전은 가슴이 아파왔다.

자신의 내공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데 무공이 높은 적은 계속 몰려올것이 아닌가?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까 ?

연성결을 적운에게 정확히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면

이 커다란 비밀은 영원히 실전이 되고 말것이 아닌가.

그건 너무 아까운 노릇이었다.

정전이 말했다.

 

"적형, 내말을 잘들어.

자네는 놈들과 싸우지 말고 내 뒤에 숨어서 말해주는 것이나 외우게.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니 꼭 성공해야돼.

내가 이렇게 된것은 이미 어쩔수 없는 일이야."

 

적운이 말했다.

 

"알았어요."

 

적운은 정전의 뒤로 물러섰다.

정전이 말했다.

 

"다섯번째 숫자는 18..."

 

마대명은 능지부가 정전을 죽이지 말고 체포하라고 한데에는

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이유가 바로 정전이 한권의 무공비급을 가지고 있을것라고 추측했다.

주기가 또한 능퇴사의 부하가 된것도 사실은 만진산의 명령을 받아 연성결을 찾기 위해서 였다.

두사람은 정전이 숫자 18을 말하자 머릿속 깊이 기억해 두었다.

정전이 다시 말했다.

 

"여섯번째 숫자는 7..."

 

마대명, 주기와 적운 세 사람은 동시에 같이 외웠다.

경천패는 범인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고 그와 같은 사정은 모르고 있었다.

정전이 입속에서 '17', '18'하며 중얼거리고, 마대명과 주기가 따라하자

정전이 마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소리쳤다.

 

"저놈에게 넘어 가면 안돼!"

 

정전은 향해 공격을 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일격을 가한후 더 이상 공격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정전은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똑바로 서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지려 했다.

이때 마대명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왼쪽 어깨를 칼로 내리쳤다.

정전은 눈앞이 캄캄해졌으며 더 이상 피하지 못했다.

이때 적운이 앞으로 나와서는 머리로 마대명의 가슴을 들이 받았다.

정전은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니 적운과 마대명의 몸이 붙어 있고

주기가 검을 들어 적운을 찌르려 하고 있었다.

정전은 왼손을 들어 두 손가락으로 주기의 두 눈을 찔렀다.

그는 자신의 체력이 다해 적의 약한부분을 공격했다.

그래야만 적을 이길수 있기 때문이다.

주기가 급히 옆으로 쓰러지며 피했으며 마대명은 검손잡이로 적운을 쳐서 바닥에 쓰러트렸다.

정전이 소리쳤다.

 

"적형, 일곱번째 숫자는..."

 

숨이 막혀 오고 있는데 경천패가 또 일격을 가했다.

정전이 머리를 돌려보니 하얀 빛이 번쩍이면서 마대명과 주기가 동시에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정전이 몸을 비틀고 있자 검과 단도가 동시에 그의 몸을 찔렀다.

적운은 소리를 지르며 공격해 왔다.

정전은 붉은 피를 흘리자 다시 약간 독성이 약해졌다.

순간 두손을 들어 한손으로 마대명을 치고 한손으로는 주기를 쳤다.

이번 장은 본래 주기를 격중할 수 있었는데 경천패가 맹렬히 공격해와

그만 그의 가슴을 치고 말았다.

정전은 남아 있던 모든 힘을 썼던 터라

마대명은 즉사하고 경천패는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지면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이 곧 죽을것 같았다.

단지 주기가 다치지 않았는데 그는 오른손으로 검을 잡고 정전의 몸에서

검을 뽑아 적운을 찌르려 했다.

정전은 몸을 앞으로 하고는 두 손으로 주기의 허리를 꽉 잡고 소리쳤다.

 

"적형. 빨리 도망가! 빨리 가!"

 

그가 몸을 앞으로 굽히자 검은 더욱 그의 몸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적운은 혼자서 도망칠 사람이 아니었다.

주기의 등에 덤벼들어 그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

 

"정형을 놔라!"

 

그는 정전이 상대방을 잡고 있는 줄을 몰랐다.

주기가 정전을 놓지 않는게 아니었다.

정전은 자신의 힘이 점점 없어져 더 이상 잡고 있을 숙 없을 알았다.

그가 검을 뽑기만 하면 즉시 적운이 죽임을 당할것이다.

정전이 소리쳤다.

 

"적형, 날 상관말고 어서 도망가! 난 더이상 살지 못해!"

 

적운이 소리쳤다.

 

"죽으려면 함께 죽어요."

 

더욱 힘껏 주기의 목을 졸랐다.

하지만 그의 비파골은 쇠사슬에 뚫렸었고 어깨에 큰 상처를 입어 아무리 졸라도

주기를 질식 시킬수 없었다.

정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넨 정말 의리있는 친구야.... 자네 같은 친구를 만나서 정말기뻐...

검결을 다 이야기 하지 못해서 미안해... 난 정말 기뻐... 춘수벽파...

그녀가 창가에 놓은 국화가 얼마나 예쁜지 한번보게... 국화..."

 

목소리는 점점 적어졌으나 얼굴엔 기쁨이 넘쳐 흘렀다.

주기를 잡고 있던 두 손에 점점 힘이 없어졌고 이윽고는 놓치고 말았다.

주기는 온 힘을 다해 정전의 가슴에 박혀있던 검을 뽑았다.

검에는 온통 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

급히 몸을 돌려 적운과 마주 보게 돼었다.

그는 흉악히 웃으면서 적운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적운은 소리쳤다.

 

"정형! 정형!"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다.

내려다 보자 주기의 검은 이미 자신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귀에 주기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그의 머리에는 많은 옛 일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부님에게 무공을 배우던 일, 사매와 다정스러웠던 일,

만진산의 집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비참하게 오년을 살았던 일...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뇌리를 스쳤다.

그는 쌓였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외쳤다.

 

"너와 함께 죽겠다!"

 

손을 내밀어 주기의 팔을 힘껏 잡았다.

그는 비록 신조경을 완전히 익히지는 못했지만 이년동안 배운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또한 그는 목숨을 걸고 온 힘을 두팔에 주었다.

적을 꼭 잡자 마치 철갑으로 죄는 것 같았다.

주기는 호흡이 가깝해지자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면서 빠져 나가려했다.

적운은 가슴이 더욱 아파왔으나 다른 생각할 여지도 없이 두팔로 주기를 더욱 힘껏 조였다.

적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죽을 때까지 손을 놓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길다란 검은 더 이상 들어가지가 않았다.

마치 뚫을수 없는 바위에 부ㄷ힌 것 같았다.

검은 점점 변형이 되어서 구부러져 갔다.

주기는 한편으로는 놀랐고 한편으로는 매우 의아했다.

오른손에 힘을 더욱 가하여 적운을 찌르려 했으나 하지만

검은 적운의 가슴팍에서 더이상 들어가지를 않았다.

적운은 두 눈이 빨개지면서 주기를 노려보았다.

처음 주기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 있었고 잔인한 빛이 떠 올라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변하고 있었다.

놀라움은 공포로 변했고 무서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기는 자신이 분명 검으로 적운을 명중시켰는데 피부에 약간 들어가는 것 같더니

더 이상 들어가지 않자 더욱 놀라고 있었다.

주기는 오른팔에 힘을 주어 적운을 세번 연속해서 찔렀으나

결국 검을 더 이상 적운에게 집어 넣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겁이 나서 상처를 입은 적운은 생각지도 않고 빠져 나와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적운에게 단단히 잡혀 있어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주기는 자신의 오른팔이 점점 안으로 구부러지면서 칼잡이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검은 점점 구부리지면서 반원형으로 변하더니 결국 금속음과 함께 부러져 버렸다.

주기는 크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아주 예리한 부러진 검끝이 자신의 아랫배를 찌른 것이다.

주기가 쓰러지자 적운도 쓰러지면서 그의 몸에 깔렸다.

두팔로 계속해서 주기를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적운은 매우 진한 피냄새를 느끼는데 주기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뒤이어 입에서는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 내렸다.

그리고 머리를 옆으로 떨구더니 음직이지도 않았다.

적운은 크게 놀랐고 그가 죽은 줄을 알면서도 두 손을 놓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가슴의 통증도 멈추었다.

주기의 입에서 붉은 피가 계속 흘러나오자 그는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을 풀고 일어났다.

부러진 검날은 주기의 복부에 깊이 박혀 있었고 검끝과 손잡이만 밖으로 나와 있었다.

머리를 숙이고 자신의 가슴을 보니 윗 옷에 조그만 구멍이 나 있었으며 검은빛 속옷이 보였다.

그는 주기 몸에 꽂혀 있는 부러진 검을 보고는 다시 옷에 난 구멍을 보았다.

갑자기 그는 깨달았다.

자기가 입고 있던 오잠의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원수를 죽일수 있었던 것이다.

적운은 잠시 서 있다가 몸을 돌려 정전 옆으로 다가가며 소리쳤다.

 

"정형! 정형! 괜찮아요 ?"

 

정전은 힘겹게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촛점이 없었으며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를 몰라보는 것 같았다.

적운이 말했다.

 

"정형! 형을 꼭 살리겠어요!"

 

정전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검결은 실전되겠구나... 함께 묻어줘... 상화와... 함께..."

 

적운은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알았어요. 걱정마세요! 반드시 형과 능소저를 함께 묻어 줄께요.

두 분의 꿈은 이루어 질거예요."

 

정전의 눈은 천천히 감겼으며 호흡도 점점 약해졌다.

하지만 그의 입술을 계속 음직이고 있었으며 계속해서 뭔가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적운은 귀를 그의 입가에 가까이 갔다 대고 정전의 말소리를 들었다.

 

"열한번째 숫자는 ..."

 

더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적운은 귓가에 소리가 들리지 않자 손을 가슴에 갔다 댔다.

그의 가슴도 이미 정지해 있었다.

적운은 벌써부터 정전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는 정전의 옆에 무릎을 끓고 그와 입을 맞추고 입에다 공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기원하고 있었다.

 

"옥황상제님, 정형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 영원히 나오지 않아도 좋아요.

복수를 하지 않고 평생동안 만문의 제자들의 괴롭힘을 받아도 좋아요.

제발 정형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해주세요..."

적운은 그의 두 손을 꽉 잡고 있었는데 정전의 육체가 점점 굳어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의 소원이 이루어 질수 없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갑자기 말못할 외로움과 고독감이 밀려왔다.

의 이 자유스러운 세상이 그 작고 컴컴한 감옥보다 무서운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는 정전과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정전의 시체를 안고 일어섰다.

갑자기 무궁무진한 고통과 슬픔이 가슴속으로 밀려왔다.

는 목놓아 울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큰소리로 울었다.

울음소리때문에 추격병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지 않았으며,

다큰 남자가 창피하게 운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속의 슬픔을 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울음소리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점차 마르자 큰 울음소리도 낮은 울음소리로 변했다.

마음속의 슬픔은 여전히 억제할수가 없었다. 머리가 점차 맑아오자 그는 생각했다.

 

'정형의 시체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능소저의 관이 있는 곳으로 옮길까?'

 

마음 속엔 아무런 잡념도 없었다. 이 일만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갑자기 말발굽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점점 가까이 적운이 있는 폐원으로 다가오는데 모두 십여 필이나 되었다.

밖에서 누가 소리쳤다.

 

"마나리, 주나리, 경나리 범인을 찾았읍니까 ?"

 

십여 필의 말을 폐원의 앞까지 오더니 일제히 멈추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들어가봐!"

 

다른 한사람이 말했다.

 

"이 안에 숨어 있지는 않을 거야."

 

먼저 말한자가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

 

그자가 말에 뛰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적운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정전의 시체를 안고 재빨리 옆문으로 뛰어 갔다.

문 밖으로 나오자 등뒤에서 사람들이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대명, 경천패, 주기등의 시체를 발견 한것이다.

 

적운은 강릉성을 미친 듯이 뛰어갔다.

그는 정전의 시체를 업고 빨리 뛰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발각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는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고문과 구타를 당한다 해도 정전의 시체를 버릴 수는 없었다.

수십장을 뛰어가다가 왼쪽에 작은 문이 보여서 급히 뛰어 들어간후 문을 발로 차서 닫았다.

안에는 커다란 채소밭이었다.

거기에는 배추, 무우, 오이등 많은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적운은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랐다.

오년동안 채소를 못보다가 갑자기 채소를 보자 가슴이 찡하게 저려왔다.

사방을 살펴보니 동북방에 창고가 있었다.

창문을 통해서 안에 무와 짚단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몸을 숙여서 무우 몇개를 뽑고는 정전을 안고 창고로 뛰어 들었다.

사방을 살펴 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를 치우고는 정전의 시체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잡초로 정전의 시체를 덮었다.

그는 여전히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정형이 갑자기 깨어날지도 몰라.'

 

무우 껍질을 벗기고 크게 한입 물었다.

달콤하고 짜릿한 향기가 입안에 가득찼다.

오년동안 맛을 못보던 무우였다.

호남의 시골 생각이 났다.

사매와 함께 밭에서 얼마나 많은 무우를 뽑아 먹었던가.

그는 또 하나의 무우를 먹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가 났다.

그는 깜작 놀라 손에 쥐고 있던 반쪽의 무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얀 무우에 흙과 잡초가 묻었다.

그때,

청초하고 아름다운 음성이 들렸다.

 

"공심채, 공심채. 어디 있어 ?"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대답할뻔 했다.

 

'나 여기 있어!'

 

나 자가 막 입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목에서 걸렸다.

그는 손으로 입을 막고 온몸을 떨고 있었다.

공심채는 그의 별명이었으며 세상에서 자신과 척방 두 사람밖에  모르고 있었다.

물론 사부님도 이 변명을 모르고 있었다.

척방은 그가 바보처럼 아무 것도 모른다고 했다.

무술을 연습하는것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마음은 마치 공심채처럼 텅 비워 있다고 했다.

적운은 웃으면서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매가 자신을 공심채라고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매번 공심채란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속엔 말 못할 친밀감을 느겼다.

그것은 다른 제삼자가 옆에 있을땐 절대 부르지 않았기때문이었다.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면 그녀가 기쁠때나, 화를 낼 때나 적운은 항상 말 못할 기쁨을 느꼈다.

복원이 사부님 집에 서찰을 가져왔을때 사매는 음식을 만들어 접대했다.

물론 그 식탁에는 한그릇의 공심채도 있었다.

그날 밤 복원은 사부님과 술을 마시면서 양호무림에서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적운은 얘기를 들으면서 무의식중에 척방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한개의 공심채를 들어 입가에 갖다 댔지만 입속에 넣지는 않았다.

그는 빨갛고 부드러운 입술로 가볍게 공심채를 문지르고는 눈빛으로 웃었다.

그녀는 채소를 먹는게 아니고 채소에 입을 맞추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적운은 알고 있었다.

 

'사매가 날 공심채라고 비웃고 있군.'

 

창고에 있는 그의 뇌리에는 갑자기 그녀의 부드럽고 빨간 입술이 떠올랐다.

방금 공심채라고 부른 것은 틀림없는 사매 척방의 목소리였다.

확실히 사매의 목소리였다.

자기가 정신이 이상해져 잘못 들은게 아니었다.

 

"공심채, 공심채 어디 있어?"

 

그 목소리에서 다정하고 부드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냐 그것이 아냐.

옛날 그녀와 함께 고향에 있을때

사매의 목소리에는 우정, 관심, 사랑이 있었고 또 번뇌와 책망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공심채는 불쌍해 하는 연민의 정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내가 몇년동안 억울하게 고생한 것을 알고 있나 보군,

 

그래서 날 불쌍히 생각하고 있나 보군.'

 

그는 현실을 믿을수가 없었다.

 

'난 꿈을 꾸고 있는거야.

사매가 왜 이곳에 왔겠어.

그녀는 벌써 만규에게 시집을 갔는데 어떻게 날 찾아 올 수 있느냐 말이야!'

 

목소리가 또 들렸다.

이번에는 더욱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공심채 어디에 숨어 있어? 내가 못 찾을줄 알아 ?"

 

목소리에는많은 기쁨과 연민이 충만해 있었다.

적운의 한줄기 한줄기의 혈관이 모두 팽창되는 것 같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으며 두손에는 땀이 흘러 내렸다.

천천히 일어나서는 잡초에 몸을 숨기고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 보았다.

한 여인의 뒷 모습이 자기를 향해 서 있었다.

누굴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맞아, 조그마한 어깨, 가느다란 허리, 크고 마른 몸매, 틀림없는 척방이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공심채, 빨리 나와!"

 

갑자기 그녀는 몸을 돌렸다.

적운은 눈이 부셨으며 어지러워졌다.

눈 앞의 여자는 틀림없는 척방이었다.

검고 빛나는 눈동자, 작고 오똑한 코, 얼굴을 더욱 희어져 있었다.

호남의 시골에 있을 때보다는 얼굴에 윤기가 없어졌지만 틀림없는 사매였다.

감옥에서 천번 만번 생각했고, 천번 만번 사랑하고, 천번 만번 고민하게 했던

바로 그 사매가 틀림이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웃으며 말했다.

 

"공심채, 빨리 나와요."

 

그녀가 너무 다정하게 부르자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대답하며 나가 오매불망 잊지 못하던 사매와 만나려 했다.

막 밖으로 나가려 하다가 떠 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정형이 난 너무 착실하고 선해서 다른 사람에게 속기 쉽다고 했지.

사매는 벌써 만규에게 시집갔고, 주기도 나의 손에 죽었으니,

그녀가 날 속여서 끌어내려고 하는지도 몰라.'

 

여기까지 생각하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계속해서 척방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공심채! 공심채!"

 

적운은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생각했다.

 

"그녀가 저렇게 다정스럽게 부르는데 거짓일리가 없어.

그녀가 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죽어주겠어."

 

가슴이 뭉클해 앞으로 걸어 나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린 여자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난 여기있어요!"

 

적운의 가슴은 마구 울렁거렸다.

그는 창문밖을 내다보았다.

은 색의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동쪽에서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뛰어올 때 뒤뚱거리면서 바로 서지를 못했다.

척방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심채 어디에 숨어 있었니? 엄마가 한참 찾았잖아."

 

여자아이가 재미 있어하며 말했다.

 

"공심채는 화원에 있었어! 공심채는 개미를 보고 있었어요."

 

적운은 귀에 웅 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마치 누가 머리를 힘껏 후려친 것 같이 띵했다.

 

'사매가 딸을 낳았단 말인가?

딸 아이의 이름이 공심채란 말인가?

공심채는 딸아이를 부른 것이고 날 부른 것이 아니란 말인가?

내가 다시 만진산의 집으로 온거란 말인가 ?'

 

요 몇년 사이 그는 사매가 만규에게 시집을 가지 않았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침성의 말이 모두 거짓이었으면 했다.

그의 이러한 희망은 한번도 정전에게 말해 본적이 없었고 단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땐 꿈속에서도 갑자기 깨어나 기뻐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여자 아이가 사매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귀로 직접 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으며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척방이 계속 여자 아이의 볼에 뽀뽀해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심채는 혼자 놀줄도 알고 정말 착해!"

 

적운은 척방의 옆모습만 볼수 있었다.

긴 속눈썹, 앵두 같은 입술, 얼굴은 몇년 전보다 고와지고 더욱 하얗게 변한 것 같았다.

그는 또 생각했다.

 

'그동안 만가의 색시가 됐으니 논에서 일할 필요도 없었겠지 고생을 안하니

몸이 건강해졌나 보군.'

 

척방의 말소리가 들렸다.

 

"공심채, 여기선 그만 놀고 엄마와 방에 들어 가자."

 

여자 아이가 말했다.

 

"여기가 좋아. 난 개미를 볼래."

 

척방이 말했다.

 

"안돼, 나쁜 사람이 아이를 잡아간대. 공심채, 엄마하고 방에 들어가자."

 

여자 아이가 말했다.

"어떤 사람? 왜 아이를 잡아가 ?"

척방은 일어서서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감옥에서 아주 나쁜 두 사람이 도망쳤어.

아버지가 나쁜 사람을 잡으러 갔어.

나쁜 사람이 이곳으로 와서 공심채를 잡아 갈거야.

엄마 말 듣고 방에 들어 가서 놀자.

엄마가 인형을 만들어 줄께."

 

여자 아이는 말했다.

 

"인형은 싫어,

공심채는 아버지를 도와 나쁜 사람을 잡을거야!"

 

적운은 척방이 말끝마다 '나쁜 사람'이라고 하자 가슴이 점점 아파왔다.

바로 이때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몇마리의 말이 지나갔다.

척방은 허리에서 검을 꺼내더니 뒷문 쪽으로 갔다.

적운은 조그만 소리라도 내면 척방이 놀랠까봐

창가에서 꼼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사매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가슴속에 뭉쳤던 원한은 점점 억제할수 없었다.

자신은 조금도 나쁜일을 하지 않고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고통을 받았는

그녀가 자기를 나쁜 사람이라고 부른 것이다.

여자 아이가 창고앞에 섰을 땐 제발 들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무슨 이유인지 창고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적운은 얼굴을 나무 뒤에 숨기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가! 나가!"

 

갑자기 여자아이는 그의 얼굴을 보게 됐다.

헝클어진 머리와 얼굴에 온통 수염투성이인 무서운 모습을 보자

여자 아이는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울려고 했지만 울음이 나오지 않는듯 했다.

적운은 어찌할바를 몰랐다.

급히 앞으로 나가서 왼손으로 아이를 껴안고 오른손으로는 입을 막았다.

 

"앙!"

 

결국 한발 늦었는지 여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적운이 재빨리 다시 막아서 더이상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척방은 밖을 쳐다보면서도 신경은 딸 아이에게 쓰고 있었다.

딸 아이의 소리가 이상해 머리를 돌렸으나 보이지를 않았다.

창고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급히 앞으로 뛰어 들어왔다.

얼굴이 온통 수염투성이고 온몸에 피칠을 한 남자가 자기의 딸을 껴안고 있었으며

한 손으로는 입을 막고 있었다.

척방은 깜작 놀라고 말았다.

그순간 검을 들어 적운의 얼굴을 향해 공격해 왔다.

그녀가 소리쳤다.

 

"내 딸을 내려 놔!"

 

적운은 마음이 쓰라려 왔고 자포자기의 생각이 들었다.

 

'날 죽이고 싶으면 빨리 죽여!'

 

그녀가 검을 찔렀는데도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척방은 깜작 놀라서 자기의 딸이 다칠까봐 검을 거두고는 말했다.

 

"내 딸을 내려놔!"

 

적운은 그녀가 말끝마다 자기 딸을 내려 놓으라는 음성속에 옛정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는지라

더욱 화가 나서 그녀의 딸을 내려 놓지 않았다.

오른손은 장작을 쌓아 놓은 곳을 더듬어 한개의 나무를 집어 그녀의 검에 일격을 가한후

한걸음뒤로 물러섰다.

방은 흉악하게 생긴 남자가 계속해서 자기의 딸을 껴안고 있자

마음이 점점 초초해졌다.

두 다리에 갑자기 힘이 없어졌다.

숨을 크게 쉬고 검을 들어 적운의 오른쪽 어깨를 공격했다.

적운은 몸을 옆으로 피하고 오른손에 있던 나무를 검으로 대신했다.

왼쪽으로 약간 내리더니 급히 앞으로 찔렀다.

척방은 놀랬다.

상대방이 사용한 검법이 매우 눈에 익었고 바로 아버지가 가르쳐준

옹함상래 검법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생각할 여유도 없이 머리를 숙이고 피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호척분경풍,

연산약포도 라는 검법을 사용했다.

적운은 어려서부터 척방과 함께 검술을 배웠으며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을 했다.

따라서 서로의 검법에 대해서는 서로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두 검법을 사용해서 공격하자 자기도 모르게 자연히 사부님이 가르쳐준 방어법으로 막았다. 노니초대저, 마명풍소소 검법으로 막고 길게 한숨을 쉬며 오른손에 있던 나무로 공격했다.

옛날에 둘이서 검술을 연습할 때,

이때 쯤이면 사매는 적운에게 패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적운이 나무로 척방을 공격하자

갑자기 손목이 아려와 그만 나무를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그는 놀래며 생각했다.

 

'오른쪽손가락이 모두 잘려져 나가 다시는 검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잊었군.'

 

고개를 들자 척방의 검끝은 가슴 가까이 와 있었다.

검은 떨리며 음직이지 않았고 그녀의 놀란 모습은 형용할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고 있었으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후 척방이 침묵을 말을 했다.

 

"사형이었군요 ?"

 

목에 메이는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적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왼팔에 있던 여자아이를 내려 놓았다.

척방은 검을 내려 놓고 딸 아이를 받았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여자 아이는 너무 무서워서 울지도 못하고 작은 얼굴을 엄마 가슴속에 파묻고 있었다.

다시는 적운의 얼굴을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척방이 말했다.

 

"당신... 당신일이줄은 몰랐어요. 그동안 어떻게..."

 

갑자기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여보! 어디 있소?"

 

만규의 목소리였다.

점점 가까우졌으며 채원근처에서 들려왔다.

척방의 얼굴색이 갑자기 변했다.

그녀는 딸아이의 귀에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심채, 이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아버지에게 말하면 안돼, 알았지 ?"

여자아이는 고개를 들어 적운을 보았다.

 

"앙!"

 

적운의 무서운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밖에 있던 남자는 딸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자 외쳤다.

 

"공심채, 울지마! 아버지가 여기에 있다!"

 

척방은 적운을 한번 쳐다보더니 몸을 돌려 딸아이를 안고는 밖으로 나갔다.

딸 아이를 껴안은 채 문을 닫고는 남편쪽으로 걸어갔다.

적운은 멍청히 서 있는데 귓가에 계속해서 척방의 음성이 들려왔다.

 

'죽는게 낫겠어, 죽는게 나아!'

 

남자가 웃으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심채야 왜 울지 ?"

 

적운은 창가에 가서 보고 싶었다.

만규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두다리는 바닥에 못박힌 것처럼 꼼짝도 할수 없었다.

척방이 웃으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심채하고 후원에서 놀고 있는데 두 마리의 말이 급히 지나갔어요.

말위의 두사람이 칼을 들고 있는데 아주 무섭게 생겼지 뭐예요?

공심채에게 나쁜 사람이 자신을 잡아 간다고 하니까 울지 뭐예요."

 

만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포졸들이 탈옥범을 잡으려고 하는거야.

아버지가 안아줄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을 때려 줄께. 울지마라! 공심채야.

무서워 하지마. 아버지가 나쁜 사람을 모두 때려줄께."

 

적운은 생각했다.

 

'사매는 정말 거짓말도 잘하는군.

이렇게 되면 딸 아이가 나쁜 사람을 봤다고 해도 척방을 의심하지 않을거야.

아냐? 흥! 날 동정할 필요도 없이 빨리 와서 날 잡아가. 날 죽이란 말이여!'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

만규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아이를 안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척방은 그의 옆에서 나란히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정말 다정해 보였다.

사매가 만규에게 시집갔다는 사실을 적운은 수천수만번도 더 생각해 보았다.

또한 그게 사실이 아니였으면 하고 바랬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자기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난..."

 

몸을 구부리고 척방이 버린 검을 주어 밖으로 뛰어 나가 만규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자기가 감옥에 들어가서 그 많은 고통을 받게 된 것은 바로 눈 앞의 저 놈때문이었다.

또한 자기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여자가 저놈의 처가 된 것이다.

가슴속엔 아무런 잡념이 없었다.

저 놈을 죽이지 않으면 저 놈의 칼에 죽는 것이다.

몸을 구부리자 잡초속에 정전의 시체가 보였다.

정전은 두 눈을 감고 있었으며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 생각이 났다.

 

'정형이 죽을때 능소저와 함께 묻어 달라고 나에게 신신 당부를 했지.

내가 지금 뛰어나가 만규와 싸우다가 죽는건 상관없지만 정형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잖아?'

그리고 또 생각했다.

 

'사매도 이 일은 반대할거야. 퇘! 퇘! 적운 이 개자식아. 너는 정말 형편 없는 놈이구나!'

 

이것 저것을 생각하자 결국 분노는 천천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난!' 하고 소리친 것을 만규가 들은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고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척방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방금 전에 하인이 나무를 자르러 들어갔어요.

여곱,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왔으니 빨리 가서 맛을 봐요.

공심채는 울기만 하니 잠시 잠을 재워야겠어요."

 

만규가 말했다.

 

"음, 그렇게 하지."

 

딸을 안고는 함께 멀리 가버렸다.

적운은 잠시 머리가 멍하더니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얼마후 손으로 머리를 툭툭치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이곳은 오래 있을 곳이 못돼. 그 하인이란 자가 들어와서 나무를 가져 가면 어떡해?

정형을 잘 숨겨놓고 나 혼자 빠져나간뒤에 밤에 돌아와서 정형의 시체를 운반하는게 좋겠어.

그래 그렇게 해야 겠군.'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마음 속이 내키지 않았다.

 

'사매가 날 보러 다시 올거야.

지금 떠나면 영원히 못 볼지도 몰라.

뭐하러 다시 만나?

남편과 딸 아이가 있고 행복한데 나같은 폐인을 쳐다보기나 하겠어?

그녀를 다시 만나는 것은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하는거야.

감옥에서 몇년동안 그녀만을 만나기를 고대했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안돼.

난 다른 희망은 없어.

지 사부님의 소식만 물어 보면 돼.

내가 나쁜 처지에 놓이자 왜 그렇게 빨리 변했는지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어.

그런것을 물어봐서 뭐해?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사실을 말할거야.

거짓말을 뭐하러 들어?

사실대로 말하면 내 가슴만 아파질거야.'

 

이것 저것 생각하다 결국 떠나기로 마음먹었지만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심사숙고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늘 같은 인생에서의 중요한 사실에 직면하자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망설였다.

남아 있자니 않되겠고 지금 곧 떠나자니 마음이 쓰라렸다.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한사람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몇 발자국 걸어 오다가 정지했다가 다시 걸어 왔다.

틀림없이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점점 가까이 오자 적운은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사매가 날 찾아 왔군. 무엇을 말하려고 왔지?

용서를 빌러 온것일까? 옛정이 생각나서 왔나?'

 

또 생각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모르겠다!

그녀는 남편과 딸이 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

그녀를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겠다.'

 

갑자기 그의 가슴속에 맺힌 원한이 생각났다.

 

'난 원래 시골의 촌놈이었어.

이러한 불행만 없었더라면 사매와 난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을거야.

난 복수를 해야돼. 만규를죽여야 돼.

사매가 과부가 되면 나에게 다시 시집을 올까?

난 그의 남편을 죽인 사람인데. 그녀는 날 사랑하지도 않고 있어.

부터 만규가 나보다 멋졌고 지금은 더욱 그래.

모든 원한은 여기서 끝내야겠다.

사매가 남편과 딸하고 행복하게 살게해야지.'

 

여기까지 생각하고 더 이상 척방과 말하지 않으려 했다.

몸을 구부리고 잡초속에서 정전의 시체를 꺼내 업었다.

그때 누가 창고의 문을 거칠게 발로 차서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적운이 놀라며 몸을 돌리자 키가 큰 남자가 손에 검을 들고 문앞에 서 있었다.

바로 만규였다.

적운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척방이 버리고 간 검을 들었다.

만규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적운이 탈옥했다는 소식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하루종일 안정이 안되고 초초했는데 적운의 손에 척방의 검이 쥐어져 있는 것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그는 아주 차갑게 말했다.

 

"역시 여기서 만났었군. 자신의 검까지 주면서 남편을 죽이려 하다니?

하지만 그렇게 안될걸!"

 

적운은 잠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만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저놈이 어떻게 여길 왔지?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사매가 날 잡아다 상금을 타라고 했나보군.

그녀가 이렇게 무정한 줄은 몰랐어.'

 

만규는 적운이 대답을 하지 않자

자신을 무서워하는 줄 알고 검을 들어 적운의 가슴을 찔러갔다.

적운은 검을 들어 막았으며 자연히 옛날 늙은 거지가 가르쳐준 자견식을 썼다.

검을 돌려 만규의 목에 갔다댔다.

이 검법은 너무나 빠르고 이상해서 5년전에 만규는 막지 못했다.

만규는 그때에 비해서 무공이 많이 강해졌지만 여전히 막지를 못했다.

만규는 놀랬으며 손에 쥐고 있는 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검을 들어 막자니 너무 늦었고, 공격을 하자니 그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의 목숨은 상대방의 손에 달려 있었다.

화가 났지만 함부로 덤빌 수도 없었다.

적운의 더럽고 수염이 많은 얼굴을 보자 분노는 점점 공포로 변해갔다.

적운은 그를 찌르지 않고 다시 생각했다.

 

'이놈을 죽여야 하나?'

 

만규는 아주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었는데 갑자기 상대방의 눈빛에 갈등의 빛이 떠오르자

재빨리 큰 소리로 외쳤다.

 

"척방, 이리와봐!"

 

적운은 그가 큰소리로 척방을 부라자 놀래며 머리를 돌렸다.

것은 바로 만규의 속임수 였다.

그가 머리를 돌리자 곧 바로 검을 들어 공격했다.

적운은 오른쪽 손가락의 첫번째 마디가 모두 잘려나가서 검을 똑바로 쥘수가 없었다.

검이 손에서 빠져 달아났다.

만규는 기뻐하면서 검으로 찔러왔다.

적운은 연속해서 두번을 피한뒤 한개의 나무를 집어들고 검으로삼아 힘껏 막았다.

러나 나무는 만규의 검을 당해내지 못하고 두쪽으로 갈라졌다.

적운은 손에 있던 반조각의 나무를 만규에게 던졌다.

그가 몸을 피하는 순간 다시 나무를 들어 공격을했다.

만규는 적운이 검을 떨어뜨리자 자신이 승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가 나무를 검을 대신해서 막는다지만 소용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는 한발 한발 적운을 향해서 다가갔다.

몇초후 적운은 오른쪽 팔에 부상을 입으면서 결국 나무를 놓치고 말았다.

만규는 계속해서 그의 다리를 찌르고 왼쪽발을 날려 적운을 쓰러뜨렸다.

적운이 온힘을 다해서 일어나려고 하자 만규는 또 그의 머리를 힘것 밟아 버렸다.

적운은 기절했다.

만규가 말했다.

 

"죽은척 하느거야?"

 

그는 오른발로 적운의 얼굴을 문질렀다.

적운이 음직이지 않자 정말로 기절한것임을 알았다.

그는 생각했다.

'증지부가 범인을 잡아오면 은 오천냥을 준다고 했으니

생포하는게 좋겠군.

이번에 관가에 잡혀가면 처형당할께 뻔한데 내가 친히 죽일 필요는 없잖아.'

순간 잡초속에서 한개의 발이 보이자

그는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기뻐서 생각했다.

 

'여기 또 한놈이 있구나!'

 

그는 정전이 벌써 죽었는지도 모르고 급히 검을 들어 시체의 발을 향해 찔렀다.

적운은 비록 기절했지만 머리속에선 계속 외치고 있었다.

 

'난 죽을수 없어. 난 죽어선 안돼. 정형과 능소저를 함께 묻어주겠다고 맹세를 했단 말이야!'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는 금방 깨어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몇년전의 어느날 밤에 그에게 맞은 적이 있었지,

그때도 머리를 힘껏 채였어.'

천천히 눈을 뜨니 눈앞에서 만규가 정전의 시체를 칼로 찌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신을 완전히 차리지 못해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만규가 정전의 시체를 잡초에서 끌어내자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정형!"

 

갑자기 온몸에 힘이 솟았다.

급히 앞으로 달려나가 만규의 등에 매달렸다.

그리고 오른쪽 팔로 그의 목을 졸랐다.

만규는 놀라며 검을 뒤로해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손을 더 이상 구부리지 못하고 단지 쌓여있는 나무만을 찔렀다.

적운은 팔로 더욱 그의 목을 졸랐다.

적운은 그가 정전의 시체를 찌르는 것을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 놈이 자기에게 누명을 씌우고 척방을 빼앗아 간 것은 모르는체 할수 있었지만

정전을 검으로 찌르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수 없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단지 적을 죽일 생각뿐이었다.

만규는 발버둥을 치더니 점점 무력해졌다.

적운도 여러곳에 상처를 입어 붉은 피가 계속흘러서 갈수록 힘이 빠졌다.

미음속으로 그는 계속해서 외쳤다.

 

'조금만 더 참으면 이 놈을 죽일수 있어!'

 

나중에는 눈앞에 별이 왔다 갔다 하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만규는 그에게 목을 잡혀서 역시 호흡을 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적운이 기절하면서 그 손을 풀지않자

시 호흡곤란으로 기절을 하고 말았다.

잡초위에 두명의 사내가 나란히 쓰러져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죽은 것 같았으나 가슴은 계속 음직였고,

계속해서 숨을 쉬고 있었다.

적운이 먼저 깨어난다면 바닥에 있는 검을 들어 한칼에 만규를 죽일것이다.

만규가 깨어나면 적운을 생포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역시 단칼에 그를 죽여버릴것이다.

세상에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좋은 사람의 운이 언제나 좋고, 나쁜 사람의 운이 언제나 나쁘라는 법도 없다.

꺼구로 말해서 나쁜 사람의 운도 좋아지고, 좋은 사람의 운도 나빠지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었다.

좀 더 나중에 죽는다고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척방과 그의 딸은 약간 다르다.

적운이 먼저죽느냐 아니면 만규가 먼저 죽느냐,

여기에는 메우 큰 차이가 있다.

만약 지금 척방에게 한사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두 사람이 기절해 있는동안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며 다가 오고 있었다.

 

정전의 귓가에는 물방울 소리가 들려왔고, 얼굴에 차가운 물방울이 한방울 떨어졌다.

몸은 매우 차가왔으며 힘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감각을 느끼자 왼쪽 팔에 힘을 주고는 소리쳤다.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하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자신의 몸이 계속 음직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은 계속해서 요동을 하고 있었다.

당황하여 눈을 뜨자

눈앞은 캄캄했으며 한방울 한방울의 물방울이 그의 얼굴, 손, 몸에 떨어지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몸은 계속 음직이고 있었으며 가슴이 답답하고 토할것 같았다.

갑자기 옆으로 한척의 배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적운은 의아하게 여겨서 일어나려 했으나 온몸이 쑤셨으며 한개의 손가락도 음직일수 없었다.

그는 단지 누워서 하늘에 떠있는 구름만을 보는수 밖에 없었다.

 여긴 창고가 아니었다.

그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

 

'정형은 ?'

 

정전을 생각하자 힘이 났으며 두 손을 짚고 몸을 흔들거리며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한척의 작은 배에 있었다.

작은 배는 강물을 타고 떠내려 가고 있었다.

하늘엔 온통 검은 구름이 드리워 있었으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배위 좌우를 ㅎ어 보았지만 양쪽은 모두 어두컴컴했으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금해서 외쳤다.

 

"정형! 정형!"

 

정전이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시체를 잃어버릴수는 없었다.

갑자기 왼발에 뭉클한 감촉이 왔다.

적운은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외쳤다.

 

"정형! 여기에 있었군!"

 

팔을 벌리고 그를 껴안았다.

정전의 시체는 그의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 날은 점점 밝아 오고 있었다.

어느정도 주위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갑자기 그의 다리에 붕대가 감겨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다가 약냄새도 맡을수 있었다.

붕대는 단단히 매여있지 않은 것이 붕대를 멘 사람은 매우 급하게 맬려고 했던 것 같았다.

붕대의 일부분은 꽃무늬가 비쳤는데 자세히 보니 붕대는 바로 여자의 옷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사매가 그 붕대의 주인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곧바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남편에게 날 죽이라고 해놓고는 왜 상처를 치료해 주었을까?

그녀가 말하지 않았다면 만규는 절대 내가 창고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텐데."

 

적운은 한척의 배에서 표류를 하고 있었으나 일단 강릉성을 벗어난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생사에 관심이 없었으나 정전의 시체가 무사하자 무척 기뻤다.

그는 힘을 다해 사건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만규가 정전의 시체를 찌르고 자신이 만규의 목을 조르던 일이 생각났으나

그 이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머리가 딱딱한 물건에 부딪쳤다.

그건 천으로 싼 작은 포대였는데 열어보니

대여섯덩이의 은과 네가지의 여인의 패물이 있었다.

거기다가 어린아이가 목에 거는 목걸이도 하나 있었다.

목걸이의 줄은 급히 끊은 것 같았고 목거리 끝에는 작은 천조각이 묶여 있었다.

아마도 어린 아이의 목에 걸려 있는 것을 급히 끊은 모양이었다.

금목걸이에는 '덕용쌍무(德容雙茂)'라는 네자가 새겨져 있었다.

적운은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글은 어느정도 알고 있어 그것을 읽을수는 있었지만 뜻을 알수는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건 그 아이의 이름인가 ?'

 

그는 패물을 만지작 거리면서 포대를 보고 더욱 어리둥절해 졌다.

'은과 패물은 분명 날 구해준 사람이 주었을 거야. 부두에 도착하면 밥을 사먹어야겠군.

도대체 누가 주었을까?

사매는 치장을 하지 않으니 패물은 그녀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강물은 출렁거리면서 작은 배를 끌고 왔다.

적운은 하루종일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누가 나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을까? 누가 나에게 은과 패물을 주었을까? '

 

 

5. 늙은 쥐로 국을 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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