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18장 微行나온 皇帝

오늘의 쉼터 2014. 6. 19. 10:03

제18장 微行나온 皇帝

 

 

 

 

무림은 지난 이십 년 동안 계속된 화평으로 안온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구마령주의 출현으로 하루 아침에 천하는 공포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언제까지나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동의지회(同義之會)가 이십 년 만에 열렸다. 

 

정각대선사는 면벽을 깨고 나왔다.

 

 

그는 보름 안에 자신을 죽이겠다고 무림에 공언한 자가 있음을 알고 대자대비한 부처를 찾으며

 

눈물을 흘렸다. 

 

"아미타불 어이해 마종(魔宗)을 다시 세상에 내어 이 불제자로 하여금 살계(殺戒)를 어기게 하시나이까!" 

 

그는 괴로움을이기지 못하고 손을 들어 장삼자락을 휘익 내저었다.

 

 

그러자 뇌성벽력과 같은 요란한 굉음이 터지며 소실봉이 뒤흔들렸다. 

 

정각대선사에 의해 시전된 것은 금강수미공이라는 소림의 절대기공이었다.

 

 

그 위력은 소림의 역대 고수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절정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정각대선사는 금강수미공을 일으켜 백 걸음 밖의 종탑을 산산히 허물어 버린 것이었다. 

 

"그가 오면 빈승은 살인자가 될 것이오. 할 말은 그것뿐, 모든 것은 제자와 의논하시오." 

 

그는 백도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잘라 말했다.

 

 

그는 대원선사(大圓禪師)에게 방장의 도통을 전수한 지 십구 년째로 정신적으로는

 

이미 무림을 떠난 상태였다.

 

 

그는 동의맹의 태상맹주라는 지위조차 맡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연경(燕京). 

 

국조(國朝)의 수도로 부끄럽지 않은 곳이다.

 

 

광활한 화북대평원(華北大平原)의 소오대산(小五臺山)과 군도산(軍都山), 연산(燕山)에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십 리를 걷는 동안 진흙땅을 밟을 기회가 없을 정도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오대(五代)에 이르러 요(遼)는 이곳을 부도(副都)로 삼아 남경(南京)이라 하고,

 

요를 물리친 금(金)은 처음 연경(燕京)으로 부르다가 이곳으로 천도하여 중도(中都)라고 고쳤다.

 

 

다시 몽고족이 남하하여 중도성을 빼앗은 뒤 쿠빌라이(世祖) 때에 신성(新城)을 건설하고

 

국도로 정하여 대도(大都)라고 명명하였다.

 

몽고족이 중국을 통일하여 원(元)을 세우자 대도는 중국 전역을 지배하는 정치중심지가 되었고,

 

명대(明代)에는 처음 수도를 남경에 두었다가 영락제(永樂帝)가 이곳을 국도로 정하고

 

북경(北京)이라 하였다. 

 

연경의 봄은 기간이 짧으나 지형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다. 

 

봄을 재촉하는비가 촉촉히 대지를 적실 때,

 

죽립을 깊이 눌러 쓴 사람 하나가 연경의 거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다름아닌 마도의 배반자 귀영마수라를 장안성문에 효시했던 구마령주 능설비였다. 

 

그가 연경에 들어온 것이다. 

 

'내가 훌쩍 떠나와 만화총관이 섭섭해 하겠군. 그 여인은 과거 아주 지독한 여인이었으나

 

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복수심 때문에 백도와 싸우고 있는 것이지 여후(女后)가

 

되겠다던가 하는 생각은 없다. 그녀야말로 마도의 충신이다.

 

생사의 여부는 모르나 하여간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게 된 혈루대호법과는

 

거리가 있는 여인이다.' 

 

능설비는 비를맞으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누가 보아도 그를 천하에 공포를 몰고온 구마령주라 여기는 사람은 없으리라. 

 

'황금총관(黃金總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줄지 의문이다.

 

그가 축융화뢰(祝融火雷)를 구하지 못한다면 나는 소림사에서 꽤나 고생을 할 것이다.' 

 

그는 지금 세 번째 총관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황금총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가 오십 년 전 황금마전(黃金魔殿)을 이룩한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만리총관과 만화총관은 기대 이상의 세력을 만들었다.

 

 

그러나 황금총관에 대한 것은 거의 비밀에 싸여 있었다. 

 

'그와 만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제왕릉(帝王陵)에 가서 가장 큰 사자상(獅子像)을 찾아 그 왼쪽 눈에 령(令) 자를 파는 것이다.' 

 

능설비가 찾아가는 목적지는 제왕릉이었다. 

 

얼마를 걸어가자 그의 시야에 아주 아름다운 누각이 나타났다.

 

 

고색창연하다고는 할 수 없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건물이었다.

 

 

누각의 편액에는 '유향루(幽香樓)'라는 명칭이 적혀 있었다. 

 

유향(幽香)이라는 글자가 갑자기 능설비의 가슴을 건드렸다.

 

 

문득 떠오르는 이름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귀찮은 일일 뿐이다.' 

 

능설비는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내쳐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그는 누각의 난간에 사람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난간을 잡고 서서 먼 서쪽 하늘을 응시하는 중년인의 모습은 아주 신비하게 보였다. 

 

능설비는 누각을 스쳐지나다가 중년인을 힐끗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난간을 잡고 있던 중년인도 아주 우연히 능설비를 보다 눈길이 마주쳤다. 

 

중년인은 나이오십 정도 되어 보였다.

 

 

화복(華服)을 걸치고 있는데 은연중 귀품이 흐르고 매우 뛰어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능설비는 그를한 번 보고는 걸음을 다소 빨리했다. 

 

화복을 걸친 중년인은 능설비가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허탈함이 역력한 음성이었다.

 

 

중년인 능설비의 뒷모습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자 그의 뒷쪽에 시립하고 있던 인물이

 

재빨리 말을 거들었다. 

 

"아직도 젊으십니다." 

 

"허헛, 내가 아직 젊었다 할 수는 없지. 이미 손자가 다섯이나 있지 않은가?" 

 

화복의 중년인은 공허하게 웃다가 얼굴에 그늘을 지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젊은 시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아아,

 

그 아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전각에 틀어박혀 글만 읽으며 살고 있으니 ." 

 

"소로(昭露) 공주님을 생각하면 하시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종으로 보이는 뒷편의 인물이 중년인의 편치 않은 심기를 위로하듯 넙죽 허리를 숙였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인데 딸 아이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 

 

화복의 중년인은 깊은 탄식을 자아냈다.

 

 

그러다가는 문득 뒷편의 인물을 돌아보며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복아(福兒), 방금 전 지나쳐 간 자가 아주 뛰어나 보이지 않더냐?"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옆 얼굴만 봐도

 

당세제일의 미남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합니다.

 

그 모습이 그분과 흡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너도 그 사람이 유향이와 닮았다고 생각했구나?" 

 

중년인의 눈빛에 이채로움이 떠올랐다. 

 

복아라 불린 시종은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닮은 정도가 아니고 판에 박은 듯합니다." 

 

"흠, 네 눈이나 내 눈이나 다를 바 없구나. 좀 전의 인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관직을 주어 곁에 두심이 어떠실런지요?" 

 

시종 복아는 중년인의 의중을 조심스럽게 떠보았다. 

 

"글쎄 ." 

 

중년인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말끝을 흐렸다가는 정색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는 소로의 짝으로 만드는 것이 어떻겠나?" 

 

"예엣?" 

 

시종 복아는 생각지도 못 했던 말이 중년인에게서 나오자 자지러질 듯이 놀라고 말았다. 

 

"하핫, 놀랄 것 없네. 얼굴이 밉다고 여자가 아니던가?

 

게다가 소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내 딸이거늘." 

 

화복의 중년인은 마치 능설비를 자신의 사위로 삼은 듯 유쾌하게 웃어 제꼈다. 

 

그때 능설비는철통같이 보호되고 있는 황부금지(皇府禁地)인 제왕릉의 깊은 곳을

 

섬전같이 뚫고 들어가는데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다.

 

 

그는 제왕의 묘를 수호하고 있는 많은 석사자상들 중에서도 가장 큰 사자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지체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파팍! 하는 소리와 함께 사자의 눈 부위에서 돌가루가 튀었다.

 

 

능설비가 튕겨낸 지력은 사자의 눈에 <령(令)>이라는글자를 음각시켜 놓았다.

 

 

그는 글자를 새긴 후 새가 허공을 날듯이 가볍게 위로 날아올랐다.

 

 

아주 짧은 시간에 능설비는 제왕릉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후 능설비는 제왕릉에 들어올 때 지나쳐 왔던 유향루 쪽에 모습을 나타냈다. 

 

'황금총관이 머물러 있다면 저잣거리에 있는 주루에서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이런저런생각을 하며 무심코 누각 앞을 지나쳤다.

 

 

바로 그때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오, 과객. 잠시 기다려 주시오." 

 

능설비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화복의 중년인과 함께 있던 복아라는 시종이 누각 아래에서 손짓을 하며 부르는 것이 아닌가. 

 

'이런 곳에서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니 .' 

 

능설비는 멈춰서서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시종은 평소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인 듯 서른 걸음 정도도 걷지 못하고 숨을 헐떡거렸다. 

 

"헉헉, 보기보다 걸음이 빠르구료." 

 

그는 능설비 곁에 이르러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소?" 

 

능설비가 무뚝뚝한 어조로 묻자, 

 

"어르신네 되시는 분이 뵙기를 청하십니다. 소인을 따라 오시지요." 

 

"무슨 소리요. 나는 이 근처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어서 가십시다." 

 

시종은 다짜고짜 능설비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러나 그가 있는 힘을 다해 끌었으나 능설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마 황금총관이 벌써 나를 찾는단 말인가?' 

 

능설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시종이 자신을 끌고 가려는 곳을 바라보았다. 

 

누각 위, 능설비가 제왕릉으로 들어갈 때 눈길이 마주쳤던 화복의 중년인이

 

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능설비는 죽립을 쓰고 있기는 하나 화복의 중년인을 올려다보기 위해

 

뒷쪽으로 비스듬히 쳐든 상태인지라 얼굴이 거의 다 드러나 있었다. 

 

"으음 !" 

 

화복의 중년인은 능설비의 수려한 이목구비를 대하고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저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일까?' 

 

능설비는 이상한 호기심을 느끼며 시종이 끄는 대로 따라갔다. 

 

잠시 후 능설비는 누각 위에 올라 화복의 중년인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능설비를 맞았다.

 

 

매우 거만한 모습이었으나 거부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청해 미안하네." 

 

화복의 중년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첫마디를 꺼냈다. 

 

"대인이 나를 부르셨소?" 

 

"그렇다네. 잠깐 자네를 보았네만 자네의 몸에서는 이상한 힘이 일고 있네.

 

그것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힘이네." 

 

" !" 

 

능설비는 중년인의 눈매가 몹시 날카롭다 여겼다.

 

 

물론 중년인은 무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주대인(朱大人)이라 칭하며 능설비의 체격이 헌앙함을 칭찬한 후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어떤가? 별로 바쁜 일이 없다면 내가 거처하는 곳에 들르지 않겠는가?" 

 

"어이해 그러시는지요?" 

 

"허헛,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가?" 

 

"저는 바쁜 몸이오." 

 

"쯧쯧, 보기보다는 냉막하군.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떤가?

 

흥미있는 일이 될 것이네." 

 

"싫소." 

 

능설비가 잘라말하자, 

 

"헛헛, 고집스러운 모습이 꼭 나의 사촌누이 유향과 흡사하군." 

 

화복의 중년인은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소탈하게 웃었다. 

 

"유, 유향이 사촌이오?" 

 

능설비는 유향이라는 이름이 중년인의 입에서 나오자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 아이는 난초를 좋아했지.

 

그 아이의 아름다운 자태를 생각하노라면 지금도 마음이 뿌듯하다네." 

 

화복의 중년인은 아련함에 물든 표정을 지으며 유향루의 기둥을 쓰다듬었다. 

 

유향이라는 여인은 대체 누구일까?

 

 

중년인은 유향루와 밀접히 연관된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는 수심에 잠겼다가는 이윽고 능설비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의 고집도 대단하지만 내 고집도 그에 못지않지.

 

 

자네와 더불어 하려는 일은 꼭 해내고 말 것이네.

 

 

그러니 자네는 오늘 밤 삼경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앞에 있어야 하네." 

 

" !" 

 

"그리 바쁜 일은 아니야. 죽어가는 아이를 위해 한 가지 일만 하면 되는 것이야." 

 

중년인은 탄식처럼 되뇌이다가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누각 아래로 내려갔다.

 

 

누각의 아래에는 중년인이 타고온 듯한 오추마 한 마리가 매어져 있었고,

 

그 좌우에는 흑표(黑豹)같이 날렵해 보이는 무사 여덟 명이 시립해 있었다. 

 

중년인은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오추마에 오르며 그에게 지시했다. 

 

"복아, 저 과객을 따라갔다가 삼경쯤 내 앞으로 모시고 오너라." 

 

그는 말을 마치고는 오추마에 박차를 가했다.

 

 

말은 큰 울음소리를 한 번 지르더니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여덟 명의 무사들이 놀랍게도 오추마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속도와

 

똑같은 속도로 달리며 중년인을 호위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찰라지간에 길 모퉁이를 돌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남은 사람은 능설비와 복아라 불리운 나이 지긋한 시종뿐이었다. 

 

"저 분은 아주 고비스러우신 분이라네." 

 

시종은 이제야 자유스러움을 만끽하려는 듯 항상 반쯤 굽히고 있던 허리를 쭈욱 폈다. 

 

"다른 데 볼 일이 있더라도 나와 함께 그리로 가세."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는 하나 나는 남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니 그렇게 알고 돌아 가시오." 

 

능설비는 그 말을 남기고는 거침없이 계단을 밟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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