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14장 古今第一智를 찾아서

오늘의 쉼터 2014. 6. 18. 18:45

제14장 古今第一智를 찾아서

 

 

 

 

달마저 기울어 버린 새벽녘이다. 

 

백포를 걸친 노인 하나가 나는 듯 빠른 걸음걸이로 신녀곡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백도의 절정신법 중 하나인 비천연(飛天鳶) 신법을 이용해 흐드러지게 흐르고 있는

 

안개 속으로 사라져갔다. 

 

두 시진 후, 노인과 똑같은 차림새인데 얼굴만 완전히 다른 사람 하나가 무산의 기슭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큰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수북히 쌓인 눈 위를 지나는데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상자를 내려다보며 뜻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백팔 가지 영약으로 만든 금강대환단 일천 개 이것을 쓰면 고수 일천 명을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쓰여지지 않을 것이다. 후훗." 

 

그는 바로 능설비의 얼굴로 들어갔다가 구유회혼자의 모습을 하고 풍운의 신녀곡을

 

유유히 빠져나온 것이었다. 

 

자개봉(紫蓋峯)의 중턱에는 항상 운무가 머물러 있어서 눈을 부릅뜨고 봐도

 

자세히 보이지 않는 이상한 신비경이었다.

 

 

그곳에는 도끼로 찍어낸 듯한 협도(狹道)가 끊어질 듯 위태하게 가물가물 안개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때, 스슥 한 줄기 바람과도 같이 협곡 안으로 다가서는 백의 미남자 하나가 있었다.

 

 

그는 자욱한 운무 앞에 멈춰서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이리라. 세력이 십 리 밖까지 느껴질 정도로 강한 진(陣)을 칠 사람은

 

단 한 사람 쌍뇌천기자 단목유중밖에 없다.' 

 

나타난 사람은나이 약관 정도에 이른 절세의 미남자였다.

 

 

그의 등에는 꽤 큰 나무상자가 끈 두 개에 의해 매달려 있었다. 

 

'잠입해서 그를 죽인다면 무림동의맹은 덩치만 크고 두뇌는 없는 큰 곰과 같이 되고 만다.

 

반면 구마루의 힘은 강하다. 날렵한 이리와도 같아 둔한 곰과 싸운다면 필승이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번득이는 그의 눈빛은 아주 차가워 보였다.

 

 

그는 바로 신녀곡에서 빠져나온 능설비였다. 

 

그는 곡의 입구에 펼쳐진 진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과거 그는 구마루에 숨겨진 모든 책을 섭렵한 바 있었다.

 

 

물론 진식에 대한 것도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달통해 있었다. 

 

그는 운명적으로 고강해져야만 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이룬 성취는 그를 키운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지극히 초절한 것이었다.

 

 

헌데도 지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밖이었다. 

 

"정말 모르겠는데?" 

 

능설비의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정말 놀랍게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대체 쌍뇌천기자가 어떤 진세를 펼쳐 놓았기에 능설비로서도 모른다는 것일까? 

 

쌍뇌천기자 단목유중은 모든 것을 바쳐서 의기(義氣)를 일으킨 사람으로 능설비에 비해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특히 진(陣)과 기관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구유회혼자에게서 받은 회혼령을 쓰는 게 낫겠군.' 

 

능설비는 잠시망설이다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는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일단 마기를 흐트리지 않으면 놈들이 눈치챌지 모르니 청명부동심법으로 정기(正氣)를 발산하자.' 

 

그는 소림사 비전신공인 청명부동심법의 구결을 외웠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의 몸에서는 마기가 사라지고 은은한 정기가 흘러나오게 되었다.

 

 

정말 능설비를 두고 할 말은 철두철미한 자라는 말밖에는 없을 것이다. 

 

"안에 아무도 없소?" 

 

그는 협도 안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안개 속에서 창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핫, 한참을 궁리하다 말하다니 자네도 어지간히 행동이 둔한 사람이구먼." 

 

'이럴 수가 나의 이목을 속이고 숨어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 

 

능설비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그러나 그런 표정은 순간적이어서 떠오를 때보다도 더 빨리 사라졌다.

 

 

능설비가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올 때 안개 속에서 예의 그 음성이 들려왔다. 

 

"허헛, 노부는 천기부(天機府)의 호법이네.

 

보아하니 정파 사람 같은데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 말해보게." 

 

능설비는 안개속의 인물을 볼 수 없었으나 그는 능설비를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모두 쌍뇌천기자가 친 진세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제가 제대로 오기는 왔군요." 

 

능설비는 애써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그만이 지을 수 있는 신비스런 미소였다.

 

 

그 미소로만 본다면 누가 그를 두고 마인(魔人)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오다니 그럼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왔단 말인가?" 

 

안개 속에 있는 자가 말하자, 

 

"저는 이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능설비는 작은금패 하나를 품속에서 꺼내 들었다.

 

 

구유회혼자가 죽어가며 그에게 넘겨준 <회혼령>이었다. 

 

그가 회혼령을꺼내 보이자 스스슥 안개가 흐트러지며

 

그 속에서 네 사람이 동시에 미끄러지듯 날아나왔다.

 

 

네 사람 모두 도관(道冠)을 쓰고 불진(佛塵)을 들고 있었는데

 

실로 빠른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우내사상천군(宇內四象天君)이라 불렸다. 

 

'태음천군(太陰天君) 이양(李楊)' 

 

'태양천군(太陽天君) 곽래운(郭來雲)' 

 

'소양천군(小陽天君) 부천붕(扶天鵬)' 

 

'소음천군(小陰天君) 진하신(陳何信)' 

 

 

네 사람은 본시 공래파 출신으로 패륜무도한 짓을 자행해 공적이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쌍뇌천기자를 만남으로 해서 운명이 바뀐 것이다.

 

 

그들은 쌍뇌천기자에게 탄복해 종이 되기를 자처한 수백 명의 무림고수 중 넷이 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모인 천기부의 고수들은 스스로를 <천기수호대(天機守護隊)>라 불렀다.

 

 

사상천군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사람들이었다. 

 

"회혼령을 갖고 있다니 ." 

 

"설마 구유회혼자께서 친히 보낸 사람이란 말인가?" 

 

그들은 놀라며능설비가 꺼낸 영부를 받아 자세히 확인을 했다.

 

 

영부는 틀림없는 <회혼령>이었다.

 

 

그것은 능설비가 그들의 벗임을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인가?" 

 

"아직 올 때가 아닌데 그리고 온다면 그분이 직접 오셔야 하는데?" 

 

"회혼령은 그분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인데 자네는 누구기에 이것을 품속에 넣고 여기에 왔단 말인가?" 

 

사상천군이 저마다 한 마디씩 묻자, 

 

"동의대호법을 직접 뵙고 물건을 전하라는 구유회혼자의 밀명을 받고 왔습니다." 

 

능설비는 그럴듯하게 말을 꾸며대며 장읍을 취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소협(少俠)의 풍모였다. 

 

"물건이라니?" 

 

사상천군 중 우두머리인 태양천군이 의아한 듯 질문을 하자 능설비가 지체없이 대답을 했다. 

 

"금강대환단입니다." 

 

"오오, 그것이 예상보다 빨리 완성되었단 말인가? " 

 

사상천군은 능설비의 대답에 모두 입을 딱 벌렸다. 

 

"곤륜산에서 영약이 발견되어 금쇄연단동부로 전해졌다더니 정말 금강대환단이

 

이 세상에 나타난 모양이군." 

 

네 사람은 죽은 조상이라도 만난 듯 기뻐하며 능설비를 포위한 채

 

조심스럽게 안개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칫해 발을 잘못 디디면 진에 빠지니 우리가 밟는 곳만 밟아야 하네." 

 

태양천군은 앞장 서서 능설비를 안내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난 후, 능설비는 인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세외선경(世外仙境)을 볼 수 있었다. 

 

겨울을 모르는상춘(常春)의 골짜기,

 

기화요초가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운 분지에 석옥 수십 채가 서 있었다.

 

 

석옥 안에는 다른 누구의 명에는 따르지 않고 쌍뇌천기자의 명에만 따르는

 

천기수호대가 기거하고 있었다. 

 

쌍뇌천기자의 거소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은 천기미인(天機美人)이 맡아 처리하는 중이었다. 

 

능설비는 소천기부(小天機府)로 안내되었다.

 

 

그는 그 안에서 웬 일인지 눈이 퉁퉁 부어 있는 아름다운 여인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이슬을 머금은 한 떨기 장미와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몸에는 베옷을 걸치고 있었다.

 

 

풍성한 옷이 몸매를 감추고 있는 것이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와 능설비사이에 나무상자가 놓여졌다.

 

 

상자 안에는 일천 개의 금강대환단이 들어 있었다. 

 

금강대환단은 구유회혼자의 십 년간에 걸친 노작(勞作)이라 할 수 있었다.

 

 

환단의 크기는 살구만하고 금빛을 띠고 있었다.

 

한 알을 먹으면 내공의 도(度)를 크게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인데,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을 복용하면 마공에 저항하는 힘이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아아, 이것이 오다니 !" 

 

여인은 상자를소중히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천기미인(天機美人) 주설루(朱雪淚), 그녀는 본시 신녀곡의 사람이었다. 

 

신녀곡주가 죽었다는 소문은 아직 여기까지 전해지지는 않았다.

 

 

이곳은 외계와는 철저하게 차단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죽은 구유회혼자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 그도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을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비밀 속에 묻혀 있는 장소였다. 

 

그렇다면 천기미인 주설루가 눈이 부어오를 정도로 눈물을 흘린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녀는 단약을확인한 다음 한숨을 흘렸다. 

 

"아아 사실은 회혼자 그분께서 직접 이곳에 오시기를 빌었는데 ." 

 

"나는 사자(使者)입니다. 그리고 이 물건은 천기자 그분을 직접 뵙는 자리에서만

 

전하라는 명령과 함께 받은 것입니다.

 

낭자께서 그분의 의발전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이것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능설비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젊은이 행세를 했다.

 

 

그는 공기와 같은 존재였다.

 

 

어디에 담기건 그 모습대로 변화한다.

 

 

나약한 서생 능설비 행세를 할 때는 나약하게,

 

구유회혼자의 사자 행세를 할 때는 또 그렇게 그것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

 

 

남도록 훈련을 받은 결과라 할 수 있었다. 

 

"회혼자 어른과는 어떤 관계이신지요?" 

 

주설루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며 입을 열었다. 

 

"아주 친하외다." 

 

"그럼 그분을 대신할 수 있나요?" 

 

"그야 물론이오." 

 

능설비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잘하면 기연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요. 어서 소녀를 따라 오십시오." 

 

주설루는 어떤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방향이 풀풀 날려 능설비의 감각을 자극했다. 

 

'으음, 이 계집이 여자로 보이다니

 

다른 것은 모르나 용모에 있어서는 일호(一號)에 버금가는 계집이다.' 

 

능설비는 주설루의 뒷모습을 훑어 보며 그녀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석벽에 뚫린 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이 옮기는 걸음 걸음마다 기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중의 육 할 정도는 능설비가 쉽게 파괴할 수 있는 기관이었고,

 

 나머지는 전혀 알지 못할 것들이었다. 

 

모퉁이를 몇 차례나 돌았을까? 

 

대윤회불회관(大輪廻不廻關)이라 명명된 석부 한가운데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 안은 몹시 낡아 있었다.

 

 

몹시도 조용한 곳이었고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고서들뿐이었다. 

 

'담이 책으로 이루어질 정도라니 쌍뇌천기자가 이 많은 것을 외우고 있단 말인가? ' 

 

능설비는 많은 고서들을 바라보며 약간의 질투심을 느꼈다. 

 

달마조사와 비슷한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는 백도무림의 막후 조종자인 쌍뇌천기자가

 

이런 곳에서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후훗, 그러나 네가 얼마나 뛰어난 자이건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바로 이 능설비의 손에 의해 !' 

 

능설비는 잔혹한 표정을 짓다가 앞서 걷던 주설루와 더불어 한 곳에 이르러 멈춰섰다.

 

 

그들의 앞에 거대한 철문이 막아 서 있었다. 

 

주설루는 그 앞에 서서 능설비를 돌아보았다. 

 

"정말 회혼자 어른을 대신할 수 있지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능설비의 다짐을 받으려는 듯했다. 

 

"그야 물론이오." 

 

능설비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을 했다. 

 

"따라 오십시오." 

 

주설루는 결심이 선 듯 철문에 손을 댔다.

 

 

능설비는 여차하면 살수를 쓸 태세를 갖추고 문이 빼꼼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르르릉 문은 육중한 마찰음을 내며 기관에 의해 활짝 열려졌다.

 

 

열려진 문 안에는 향연에 가득찬 장방형의 방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꽤 큰 돌로 된 침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계피학발(鷄皮鶴髮)의 한 노인이 누워 있었다. 

 

" ." 

 

그 노인은 문이 열리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그는 지금 가사(假死) 상태였다. 

 

"이분이 쌍뇌천기자시오?" 

 

능설비가 노인의 상태를 한 눈에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자, 

 

"아아, 이 일은 무림의 가장 큰 비밀입니다.

 

이분은 사실 오 년 전에 천수를 넘기셨습니다.

 

운명을 거역하고 살아 남으셨으나 최근 들어 원기가 급격히 쇠약해지시어

 

만약이 무효한 상태였는데 ." 

 

주설루는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녀가 눈이 부어오를 정도로 울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으음!" 

 

능설비는 자못심각한 상태에 직면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침음성을 흘렸다. 

 

"이틀 전 갑자기 '천마성이 떴다!'하고 외치시며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일단 소림사에서 갖고 온 대환단 세 알에 무당비전 홍운신단(紅雲神丹) 열두 알을 드시게 하고

 

신녀심법으로 추궁과혈(推宮過穴)하기는 했으나 상태가 너무 위중하시어 별 효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설루의 뺨 위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발 이분을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회혼자 어른의 전인(傳人)이시라면

 

이분을 일어나게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아주 간곡한 눈빛으로 능설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능설비는 이상하게도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저 빛이 나의 마성(魔性)을 파괴하고 있다.' 

 

그는 쌍뇌천기자의 가슴 위에 놓인 섭선을 보고 있었다. 

 

'항마광음선(降魔光陰扇)' 

 

무림일기진(武林一奇珍)이라 불리는 황금부채로 그것은 본시 소림사의 장경각 안에 있던 물건이었다.

 

 

그러던 것이 십 년 전에 쌍뇌천기자의 수중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이제껏 숨을 붙이고 있다할 수 있었다. 

 

"으으음 ." 

 

능설비가 진땀을 흘리자, 

 

"회생이 불가능한가요?" 

 

주설루가 탄식하며 물었다. 

 

그러나 능설비의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꺾지 못하는 힘은 있을 수 없다!' 

 

그는 눈가에 진기를 모았다.

 

 

항마광음선과 구마루주 능설비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물건과 인간의 투쟁인데도 능설비의 심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되겠습니까?" 

 

주설루가 다시물을 때, 

 

"나는 이길 수 있다!" 

 

능설비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닌가? 

 

"오오, 정말 뛰어나시군요. 저의 어르신네를 괴롭히는 병마를 몰아낼 수 있다고 장담을 하시다니!" 

 

주설루는 그의말뜻을 오해하고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능설비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순간적인 격정을 이기지 못한 돌연한 그녀의 행동이 능설비를 흠칫 놀라게 했다. 

 

능설비는 주설루의 불룩한 앞가슴이 닿자 뜨거운 숨결을 느꼈다. 

 

"이, 이러지 마시오." 

 

능설비가 당혹하여 물러서자, 

 

"죄,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그만 예의를 잊었습니다." 

 

주설루는 얼른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그녀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하여간 저의 어르신네를 회생케 하여 주신다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회생이라구요?" 

 

능설비는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방금 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길 수 있다고요." 

 

이번에는 주설루가 의아한 표정이 되어 능설비를 바라보았다. 

 

'항마력과 마력으로 싸우던 중 내뱉은 말을 오해하고 있군.' 

 

능설비는 내심피식 웃고 말았다.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주설루는 능설비의 면모를 새삼 살펴보기 시작했다.

 

 

능설비의 이마에 흥건한 땀이 흐르고 있었다. 

 

능설비는 손에마공을 끌어모았다. 

 

'가루로 만들어 버릴 테다!' 

 

그는 손을 쳐들다가 주설루의 눈을 보고는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고 있지 않은가? 

 

'이, 이렇게 순진한 웃음이 있다니 !' 

 

능설비는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을 지켜주던 대마혼(大魔魂)에 금이 갔다고나 할까? 

 

주설루의 미소를 담은 눈빛은 능설비의 웃음만큼이나 위력적이었다.

 

 

그녀는 실로 뛰어난 체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육절신맥(六絶神脈)의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본시 어려서 죽었을 것이나 구유회혼자께서 너를 치료해 주신 덕에 이제껏 살아 있는 것이다.

 

 

너의 지혜는 남들보다 몇십 배 뛰어나다.

 

 

네 지혜라면 나의 재간과 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장차 내가 사라진 다음 너는 백도의 지주가 되어야 한다.' 

 

지금 반시(半屍)가 되어 있는 쌍뇌천기자가 오래 전 그녀에게 한 말이 그러했다. 

 

"왜 그런 눈빛으로 ?" 

 

주설루는 능설비의 눈빛을 보고 가녀린 몸을 떨었다. 

 

지금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능설비의 눈빛은 사납고 지극히 야성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순박하던 눈빛과는 전혀 다른 거칠고 잔혹한 눈빛이 그녀에게

 

야릇한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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