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구마령주의 탄생
①
석전 안, 노인 셋이 품자형(品字型)으로 모여앉아 있었다.
셋 중에서 얼굴이 유독 금빛인 노인 하나가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어떤가, 혈루. 노부가 점친 대로 일천호가 유력하지 않은가?"
"부끄럽습니다, 대종사(大宗師).
저는 이제야 일천호가 천년화리단(千年火鯉丹)을 먹은 일호 이상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혈루라 불린 두 손이 유독 붉은 노인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가 바로 일호를 총애했던 혈루대호법이었다.
대종사라 불린노인은 혈루대호법을 지그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하핫, 노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네. 자네가 일천호를 암살(暗殺)코자 했음을 ."
"예엣 ?"
고개를 떨구고있던 혈루대호법이 소스라쳐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핫핫, 자네는 암중에 일천호를 죽이려 하지 않았던가?
용형루에서는 일천 관의 철갑 대신 이천 관의 철갑을 주어
그를 혈수은지에 빠뜨려 죽이려 했고, 운형루에서는 과거 혈루회의 부회주(副會主)이자
자네의 오른팔이었던 운형루주에게 비밀리에 명해 일천호를 탈락자로 만들려 하지 않았는가?"
"그, 그것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
"으음 그럼 어이해 모르는 척하셨습니까?"
혈루대호법의 표정이 무겁게 굳어졌다.
"일천호가 능히 이겨내리라 믿었기 때문이지. 이기지 못한다면 할 수 없었고."
대종사는 몹시흡족해 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본래 이름은 금면마종사(金面魔宗師) 사마웅풍(司馬雄風)이었다.
또한 천외천혈마(天外天血魔)라고 불리웠던 사람이었다.
백이십 년 전, 그는 천외천마문을 세웠다.
그의 목적은 무림일통(武林一統)이었다.
그러나 백도계가 어찌 그의 발호를 그냥 묵인할 수 있었겠는가?
금면마종사 천외천혈마는 분루(憤縷)를 삼키며 중원을 도망쳐야 했다.
지금 그의 눈빛을 받고 있는 혈루대호법(血淚大護法)이라 불리는 자는 천외천마문의 후예로,
배분으로 따지자면 천외천혈마의 사질(師姪) 뻘이었다.
그는 백도의 모든 사람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리라 작정하고 혈루지회(血淚之會)를 일으켜
강호에 나왔다가 자신이 혈루를 흘리고 패주해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야욕이 몹시도 지대한 사람이었다.
마도에서의 서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지고한 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천외천혈마에 비한다면 삼척동자에 불과할 것이다.
그는 일천 년간 백도에게 눌려 왔던 마도계에 신풍(新風)을 일으킨 이대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다.
금면마종사와 혈루대법의 곁에 있는 노인은 단장대호법(斷腸大護法)이라 불리는 자였다.
그는 강호에서정검무쌍신(正劍無雙神)이라 불리웠던 사람이었다.
백 년 전, 그는 백도명숙(白道名宿) 중 수뇌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피는 정혈(正血)이 아니고 마혈(魔血)이었다.
그는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이용해 백도계를 힘으로 장악하려 했다.
그러다가 쌍뇌천기자를 만나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마냥 꽁무니를 빼고 만 것이다.
쌍뇌천기자(雙腦天機子)는 고금제일지(古今第一智)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정파의 반역자인 정검무쌍신의 마각(馬脚)을 강호에 적나라하게 밝혀
정검무쌍신의 야욕을 철저히 짓밟았던 것이다.
'중원에 군림(君臨)한다는 것은 망상이다.
설산(雪山)을 넘어 오랑캐 땅을 찾아 제왕(帝王)노릇이나 하며 살자.'
정검무쌍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설산에 당도했다.
그러다가 일이벌어진 것이다.
그는 설산에서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보다 이십 년 앞서 중원을 도망친 전대마맹주(前代魔盟主) 천외천마를.
둘은 설산의 패자(覇者)자리를 놓고 칠주야(七晝夜) 내내 싸웠다.
그리고 그들이 싸우는 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설산의 빙벽(氷壁) 하나가 그들의 내공 대결로 인해 허물어지며
천 년간 잠자고 있던 마루지문(魔樓之門)이 열렸던 것이다.
'고금대마총 구마루'
두 사람은 살아 그곳을 찾아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후 오십 년,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구마루의 비밀을 푸는 데 전념했다.
결국 천년장한(千年長恨)의 열쇠랄 수 있는 구마루의 비밀은 풀렸고,
그간 구마루로 들어온 모든 것이 그들에게 발견되었다.
하나 어이하랴, 두 사람은 이미 호호백발이 되고 말았으니.
둘은 궁리를 하다가 후예를 찾을 작정을 했다.
그래서 혈루회와의 연수(連手)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백도에 의해 세력이 흩어지기는 했어도 혈루회의 뿌리는 좀처럼 잘려지지 않았었다.
혈수광마웅(血手狂魔雄).
그는 절세고수(絶世高手)이기 이전 계략가(計略家)였다.
그는 항상 여러 가지 길을 궁리해둔 다음에야 무엇이든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금색마조(金色魔鳥)가 전한 구마루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즉시 일을 결정해 버린 것이었다.
그가 한 결정은 바로 구마루의 오늘이 있게 한 결정이었다.
'혈루회의 전 고수를 동원해 일천기재(一千奇才)를 찾아 구마루로 보낸다!'
이것이 바로 혈수광마웅의 결정이었다.
" ."
혈루대호법은 금면마종사를 바라보며 멋적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밖으로부터 큰소리가 들려왔다.
"이십영(二十英)이 비무할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세 분 종사께서는 어서 나오십시오!"
그 소리를 들은 세 노마의 표정이 근엄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구마령주의 탄생일인가?"
"기다리던 순간이다. 전 마도를 지배(支配)할 한 마리 마룡(魔龍)이 드디어 탄생되는 것이다!"
"오오, 너무도 오랫동안 기다렸도다!"
세 명의 노마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하늘 대신 돌천정이, 바닥의 흙 대신 석판이 깔려 있는 비무대(比武臺) 아래
십남십녀(十男十女)가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오십 차례에 걸쳐 설산으로 온 일천 명의 소년소녀들 중 오직 스무 명만이 남은 것이다.
그들 이십 명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그 눈빛에 정(情)이 없다는 것.
둘째, 일신에 천하각파(天下各派)의 절기를 익히고 있다는 것.
셋째,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독한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
다른 점이라면 각자의 내공 수준일 것이다.
둥둥둥---! 북소리가 들려왔다.
귀재들의 콧등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숨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여러 사람이 와서 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둥둥둥! 북소리가 갑자기 고조되다가 한 순간 뚝 그쳤다.
그리고 천정에서 몹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끼리 서열을 가려야 할 차례다. 가장 강한 사람은 구마령주가 되고,
나머지 열아홉은 마도십구비위가 되어 장차 구마령주를 죽음으로 보필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신후(魔音神吼)에 의한 혈루대호법의 목소리였다.
"구마령주는 나머지 열아홉의 항복을 받아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지위이다."
" !"
귀재들의 목줄기를 타고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혈루대호법의 음성이 이어졌다.
"구마령주는 그 어떤 사람도 복종할 수밖에 없는 숭고한 지위이다.
그분이 탄생되면 마도의 일천 년 장한이 풀릴 것이다.
그분은 너희들 가운데 계시다.
자아, 이제부터 싸움에 들어가라.
맨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고 서 있다면
그는 바로 구마령주로 탈태환골(脫胎換骨)하게 되는 것이다!"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휘휙휙! 이십 명의 귀재들은 일제히 비무대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이 열아홉 명의 귀재들은 한 사람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자질은 어떨지 모르나 싸움에는 지지 않는다!"
"쓰러져라. 구마령주의 지위는 내 것이다."
"일천호! 너만 쓰러지면 내가 최고다!"
그들의 목표는일천호였다.
그는 찰나지간에 열아홉 명이 펼쳐내는 목검진(木劍陣)에 가둬졌다.
"으으, 이 천한 것들! 나를 합공하다니?"
일천호의 눈에서 새파란 불똥이 튀었다.
그는 가장 뛰어났기에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파파팍! 츠츠측!
열아홉 줄기의 검기가 일천호를 휘감으며 비무대 위에는 거북이 등판 같은 균열이 그어졌다.
일천호는 이를 빠드득 갈며 흉폭한 안광을 폭사시켰다.
"나를 건드리지 마라. 나를 막는 자는 다칠 뿐이다!"
노호(怒虎)의 포효(咆哮) 같은 목소리가 나며 한 줄기 회선강기가 검진 가운데에서 일어났다.
우르르릉 꽝!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검진이 뒤흔들렸다.
"도망치지 못한다!"
"우리끼리 이미 내정한 바 있다. 네놈을 가장 하위(下位)로 두자고!"
"우리끼리 이미 내정한 바 있다. 네놈을 가장 하위(下位)로 두자고!"
"건곤(乾坤)이 모두 막혔다. 이젠 발악해도 소용없어!"
십구검은 잠시동요했다가 다시 검진을 구축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당연히 검진 속에 갇혀 있어야 할 일천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엇? 이, 이놈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 이럴 수가!"
그들이 일천호의 모습을 찾으려 두리번거릴 때 꽝! 하고
바닥의 석판이 부서지며 속에서 흑영(黑影)이 불끈 튀어나왔다.
'벌써 바닥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니 ?'
'일천호의 둔신술(遁身術)이 저 정도일 줄이야!'
일호를 비롯한십구검은 크게 놀라 분분히 뒷쪽으로 물러났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로 화한 일천호는 한 사람을 향해 날아들며 쌍장으로 땅을 후려쳤다.
"파천황(破天荒), 벽락강세(碧落降世)!"
펑! 펑! 폭음이 일며 거대한 목대가 산산이 박살이 났다.
목편(木片)이 폭우(暴雨)처럼 뿌려진 직후,
"으으윽! 뼈가 으스러지다니!"
처절한 비명소리가 나며 한곳에서 피보라가 일어났다.
백호(百號)가 가슴 복판에 장인(掌印)이 찍힌 채 피를 토하며 허공으로 훌훌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으으 이, 이렇게 차이날 줄이야!"
"분, 분명 특혜를 받은 쪽은 우리가 암중에 추대한 일호였는데?"
열아홉 명의 귀재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며 일천호의 모습을 찾았으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석부는 넓었지만 시계(視界)를 가리는 것이 없어 몸을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일천호는 대체 어디로 은형(隱形)해 버렸단 말인가?
목편 조각이 모두 다 떨어지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호를 위시한 귀재들은 모두 백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한데 그 수가 열여덟이 아니라 열아홉이라니 !
모두 동요한 나머지 그것을 잊고 말았다.
일천호의 얼굴을 찾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들 중 얼굴이 같은 사람이 둘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백호 곁으로 모인 열아홉 명의 귀재들 중에는 칠백호(七百號)가 둘이었다.
가짜 칠백호는 백호 근처로 모이는 자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데 피식 냉소를 흘렸다.
'어리석은 놈들!'
그의 손이 꼿꼿이 치켜 들려졌다.
'모조리 쳐죽인다!'
그가 두 눈에서 혈광(血光)을 쏟으며 막 손을 쓰려 할 때 갑자기 데에엥!
허공에서 묵직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직후 격동에 떠는 듯한 음성이 장내에 울렸다.
"일천호, 너는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아아, 너를 잘못 보았다.
너를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기른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
"일천호, 찰나지간에 칠백호의 얼굴로 역용(易容)하다니
역용술이 이미 운형루주를 능가했구나."
"너, 너야말로 우리 모든 사람이 기다리던 구마령주이다.
초대 구마령주가 될 사람은 고금을 통해 오로지 너 하나뿐이다."
가짜 칠백호는일천호가 역용한 모습이었다.
다른 귀재들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
허공에서 세 사람이 떨어져 내려 손을 쓰려 하던 가짜 칠백호 곁으로 내려섰다.
그들은 금면마종사(金面魔宗師)를 위시한 혈루대호법(血淚大護法)과 단장대호법(斷腸大護法)이었다.
셋은 일천호의 곁에서 넋을 잃고 있었다.
일천호라는 자그는 이미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 고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화초(花草)는 그냥 두어도 잘 자란다.
일천호의 기질 역시 그렇다 할 수 있었다.
그는 찰나지간에 열여섯 가지의 수법을 시전해 오만방자하던 일호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철저히 희롱해 버렸던 것이다.
'으으, 일천호가 찰나지간에 우리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니 .'
'어이쿠! 까딱했으면 백호 꼴이 될 뻔했다.'
'일천호는 정말 위대하다.'
일호를 비롯한귀재들은 절로 무릎을 꿇었다.
개(犬)와 호랑이(虎)는 원래 다르다.
새끼 때에는 비슷하나 자랄수록 표가 나는 것이다.
일천호와 다른 귀재들의 차이는 바로 견호지차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후훗, 구마령주가 나요?"
일천호는 빙긋웃으며 변체환용술(變體幻容術)을 풀었다.
칠백호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 그렇다!"
"아아, 이제 의식만 거행한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명할 수 있는
마도제일령(魔道第一令) 구마령주가 되는 것이다!"
"마도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맹세,
그리고 전 마도의 총수(總帥)가 되겠다는 맹세를 할 순간이 된 것이다!"
세 노마도 이제는 일천호를 하수로 보지 않았다.
일천호의 몸에서는 아무도 범접치 못할 어떤 신비한 기도(氣道)가 뿜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대마혼(大魔魂) 같은 것이 아닐까?
일천호는 금포(金抱)를 걸친 채 제단(祭壇) 앞에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과거의 누가 그보다 뛰어났었던가?
그는 가장 존귀한 자가 되어야 했고,
그러하기에 그 어떤 우상에 대해서도 절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두루마리를 펴들고 있었다.
"구마령주로 세 가지를 지킬 것을 맹세하도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위엄이 가득한 음성으로 두루마리의 내용을 읽어 내렸다.
"첫째, 지금 이 시간 이후 전 무림을 나의 발 아래 복종시키리라!"
" !"
일천호의 발 아래 부복한 세 노마와 일호를 비롯한
열여덟의 귀재들이 숨을 죽인 채 경청하고 있었다.
이제 일천호는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지고한 신분에 오른 것이었다.
그의 음성이 계속되었다.
"둘째, 백도구절기를 파(破)하고 지난 백 년간 마도를 괴롭힌
백도육대지주(白道六大支柱)를 처단하리라!"
" !"
"셋째, 구마령주로서 갖춰야 할 구마진경(九魔眞經)을 완벽히 익혀 전 마도를 잘 다스리리라!"
일천호는 두루마리에 쓰인 대로 모조리 읽었다.
그것은 구마령주로서 지켜야 할 일종의 선서였다.
그가 두루마리를 접자 단장대호법이 허리를 숙인 채 다가서
그에게 잔 하나와 칼 하나를 전했다.
"피의 맹세를 하셔야 하오!"
일천호는 잠시단장대호법을 바라보다가 오연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흥! 하라면 할 것이오. 그러나 이후에는 무엇이든 나의 명에 따라야 하는 것이오!"
"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영주로서의 맹세를 지키시는 이상 마도의 어느 누구도 영주의 권위를 존중할 것입니다."
단장대호법은 소도와 옥배(玉杯)를 내밀었다.
일천호는 소도를 받아 그것으로 자신의 오른손 동맥을 간단히 갈랐다.
곤옥비(崑玉匕)인지라 그의 무쇠같이 단단한 팔뚝이 쉽게 그어졌다.
그어진 팔목의 상처에서 붉은 핏줄기가 뿜어져 피보라를 만들었다가
작은 옥배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투명한 옥배는 곧 선혈로 가득찼다.
일천호는 그것을 손에 들고 천천히 내뱉았다.
"나의 피가 붉은 한 나의 맹세는 지켜질 것이고,
맹세가 어겨진다면 나는 구마령주가 아닐 것이다!"
그는 옥배를 들고 외친 다음 옥배를 슬쩍 흔들었다.
그러자 핏방울이 내공력에 의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 석벽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벽에는 혈서(血書)가 새겨졌다.
'이제 나를 다스릴 자는 없으리라.
구마령주로서 모든 것 위에 군림할 것이니 모두 구마령주를 경배하라. '
가히 유아독존의 극치를 이루는 글귀였다.
지금껏 일천호를 기른 그들조차 일천호의 끔찍한 기질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너무도 무섭게 자랐다.'
'혈루대호법이 자극한 것이 화근이다.
아니 오히려 전화위복일 것이다. 일천호는 시련 덕에 더욱 강해진 것이다.'
'이제 누구도 저 사람을 제거하지 못한다.
전 마도인의 혼백(魂魄)과 고금마도법이 저분을 수호하리라.
마도는 저분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한다.'
세 노마는 하나같이 진땀을 흘렸다.
일천호는 불꽃이 이글거리는 듯한 시선으로 허공을 노려보았다.
'하늘을 저주(咀呪)한다. 나를 탄생시킨 하늘을!
나를 만든 하늘이기에 나의 손아래 피로 물들리라!'
그의 머리카락이 침(針)같이 곤두섰다.
그의 몸에서 풀풀 흘러나오는 것은 대살기(大煞氣)였다.
일천호는 이제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억제하지 못할 어떠한 존재로 자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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