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6장 제거되지 않는 자

오늘의 쉼터 2014. 6. 18. 17:33

제6장 제거되지 않는 자

 

 

 

운형루주는 키가 아주 작은 사람이었다.

 

 

등에는 낙타의 혹과 같은 혹이 붙어 있었고,

 

머리통의 크기가 상체에 비해 아주 커서 보기 흉했다.

 

 

그는 지독한 애연가(愛煙家)로 한시라도 연초(煙草)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그는 스물한 명의 귀재들을 앞에 두고 십여 권의 양피지 비급을 쳐들어 보였다. 

 

"우선은 이것을 배워야 한다." 

 

그가 제일 먼저 쳐든 것은 '묘수공공지계(妙手空空之計) 녹림진전(綠林眞傳)'이었다.

 

 

그 안에는 신투절기(神偸絶技)가 수록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신투술이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기술을 일컫는 것이다. 

 

귀재들이 신투술을 배워야 한다는 데 조금 불쾌해 하자, 

 

"그렇다면 이것을 잘 보아라." 

 

운형루주는 큰입을 벌리며 야릇한 미소를 짓다가 유독 짧은 두 손을 어지러이 흔들었다.

 

 

눈앞의 하루살이라도 잡는 듯 그의 손이 어지러이 흔들리다가 멈춰졌다.

 

 

귀재들이 의아해 하는데, 

 

"아, 아니? 나의 허리띠가?" 

 

"어엇? 비녀가 어디로 사라졌지?" 

 

"내 오른쪽 가죽신이 없어졌어!" 

 

맨 앞쪽에 있던 세 명이 입을 딱 벌렸다.

 

 

어느 사이엔가 운형교두의 손 위에는 검은 허리띠 하나, 나무 비녀 하나,

 

그리고 가죽신 한 짝이 들려 있질 않은가?

 

 

정말 귀신이 곡할 완벽한 솜씨였다. 

 

귀재들은 더 이상 신투술을 가벼이 여기지 못했다. 

 

"훗훗, 신투술이란 일종의 오묘한 절학(絶學)이다.

 

임기응변(臨機應變)에 능하고 안력(眼力)이 강해야 하며 손을 지극히 빨리 놀려야 한다.

 

그리고 대단한 배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모두 다 얻어야만 비로소 상대를 눈앞에 두고

 

서로 담소하는 가운데 상대의 품안을 자신의 품안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운형교두는 득의해 한 다음 두 번째 책을 쳐들었다. 

 

'변용변성술(變容變聲術) 천면문진전(千面門眞傳)' 

 

천면문은 사도로 몰려 소림사 출신 속가제자들에 의해 멸망된 문파였다.

 

 

칠십 년 전, 천면문의 이십오대(二十五代) 문주인 천면색랑군(千面色郞君)은

 

부하들의 시산(屎山)을 뒤에 두고 중원을 도망쳤었다.

 

 

그는 당시 지독하게 다친 상태였다.

 

 

그는 오십 리도 못 가고 죽었으리라는 것이 후문이었다.

 

 

한데, 그의 진전이 설산 구마루 안 운형루주의 손에 쥐어져 있을 줄이야. 

 

"잘 들어봐라." 

 

운형루주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입술을 벌려 음성을 흘려냈다. 

 

"호호홋, 내 얼굴을 보여드리지요." 

 

그는 갑자기 교태로운 여자 목소리를 내더니 복면을 벗었다.

 

 

귀재들은 눈을 번쩍 뜨고 복면 속에서 나타나는 얼굴을 주시했다.

 

 

한데 이럴 수가?

 

 

복면 속에서 나타나는 얼굴은 다름아닌 바로 일호(一號)의 얼굴이 아닌가? 

 

'정, 정말 놀랍다. 마치 동경(銅鏡)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일호는 비지땀을 흘렸다. 

 

일호의 모습으로 역용한 운형루주가 계속해서 여자의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호호, 이 절기는 인피면구(人皮面具)나 변성환을 쓸 필요가 없이 내공으로

 

시전하는 변체환용술(變體環容術)로 역용술 중 고금제일공(古今第一功)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쉽게 익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이백 년 공력 이상이어야만이 익힐 수 있다.

 

그리고 일각 이상 시전하려면 적어도 삼백 년 공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는 내공이 딸리는 듯 남자 목소리를 내다가 얼른 손을 들었다.

 

 

휙! 그는 복면으로 얼른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아아 !' 

 

귀재들은 잠시잠깐의 차이로 그의 얼굴을 못 본 것을 몹시 애석하게 여기는 눈치들이었다. 

 

물론 일천호만은 예외였다.

 

 

그는 모든 것에 무신경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고 있는 듯했다.

 

 

운형루주는 귀재들이 벽곡단으로 허기를 메우도록 한 다음 계속 말을 이었다. 

 

"세 번째는 암기술(暗器術)이다." 

 

그는 비급 세 권을 꺼냈다. 

 

'당씨진전(唐氏眞傳) 상편(上編)' 

 

'막북수라교비전술법(莫北修羅敎秘傳術法)' 

 

'뇌마암기술(雷魔暗器術)' 

 

세 권의 비급 중 한 권은 무림 최고의 암기명문(暗器名門)인 사천당가(四川唐家)에서

 

분실한 비급이었다.

 

 

당가의 비급은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 

 

'상편(上編) 삼백육십오종 암기' 

 

'하편(下編) 독약공(毒藥功)' 

 

'장문진전편(掌門眞傳編) 호접비기(蝴蝶秘技)'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도에는 한 가지만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가에서 안다면 당장 조종(早鐘)을 치게 할 정도로 끔찍스러운 일이었다.

 

 

만에 하나, 상편을 터득한 사람이 당가 행세를 하며 살육을 하고 돌아다닌다면

 

사천당가는 당장 공적(公敵)으로 몰릴 테니까. 

 

수라교 비전에는 주로 미혼분(迷魂粉), 최음약(催淫藥)을 조제하는 수법이 적혀 있었다.

 

 

물론 그것을 쓰는 수법도 적혀 있었다. 

 

뇌마암기술은 가히 절세신공이었다.

 

 

적엽비화(摘葉飛花), 미립타혈(米粒打穴)에 이어지는 점적낙영(點滴落影)의 기예는

 

가히 뇌마암기술의 백미라 할 수 있었다.


그 중 점적낙영은 실전된 지 오래된 것이었다.

 

 

점적낙영은 가장 부드러운 물방울을 암기로 삼아 백 장 밖에서 적을 타살하는 수법이다.

 

 

그 한 가지 수법에 통달한 마도 고수가 나타난다면 아마 천하백도문파에는

 

물방울에 맞아 죽는 사람들의 장례식으로 몹시 바빠지리라. 

 

'사기술총람(詐欺術總覽)', '마도삼십육계(魔道三十六計)', '도박술(盜博術)' 등도

 

귀재들은 의무적으로 익혀야 했다. 

 

그 이외의 네 가지 수법은 모두 강호에서 배우는 것을 금기(禁忌)로 여기는 것이었다. 

 

'방중묘법(房中妙法)' 

 

남녀간에 합환(合歡)하며 내공을 상승시킨다는 뜻에서 나온 수법이 타락해 만들어진

 

채음보양(採陰補陽)과 채양보음(採陽補陰)의 음악한 수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활시사법(活屍邪法)' 

 

강시(彊屍)가 된 사람들의 혼백(魂魄)을 불러일으켜 무혼강시(無魂彊屍)가 서서 걷게 하는 법이다. 

 

'만수제령비법(萬獸制靈秘法)' 

 

금수(禽獸)를 자유롭게 부리는 수법인데,

 

그에 대한 비급은 금면대종사(金面大宗師)란 사람이 직접 지은 것이었다.

 

 

금수를 부리는 비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때에는 안광(眼光)만으로 금수를 제압한다.

 

 

어떤 때에는 소성(嘯聲)이나 장소성으로, 또 어떤 때에는 약물을 써서 제압한다.

 

 

그러나 가장 뛰어난 수법은 그런 것이 아니고,

 

바로 정(情)으로 제압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미에 적었다. 

 

'이것은 사공이 아니다. 이것은 가장 훌륭한 조련법일 뿐이다.' 

 

비급을 남긴 사람은, 만수만금을 자유롭게 부리는 경지에 이르려면

 

적어도 새둥지에서 십오 년, 호랑이 굴에서 이십 년을 살아야 한다고 적었다. 

 

마지막의 잡학(雜學). 

 

그것은 십대취미학(十大趣味學)이라는, 조금은 걸맞지 않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

 

 

그 안에는 열 가지 소요(消遙)하는 방법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장기와 바둑, 난초 기르기, 금어(金魚)를 기르는 법 등 가히 야학(野鶴)같이 노니는

 

은자(隱者)들의 서가에 꽂혀 있어야 할 비급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운형루주는 특히 기예(碁藝)를 강조했다. 

 

"바둑은 정신수양에 좋다. 바둑에 통하면 내공(內功) 또한 얻게 된다." 

 

그의 눈빛이 몹시 삼엄한 빛을 띄어갔다.

 

 

그는 그런 눈빛으로 스물한 사람을 하나하나 쓸어보았다. 

 

"출관자는 최소한 본루주(本樓主)와 맞수로 겨룰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예엣?" 

 

"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둑두는 것으로 출관자와 낙오자를 정한다고요?" 

 

귀재들은 몹시놀라운 표정들이었다.

 

 

물론 일천호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했지만. 

 

"훗훗, 보통 바둑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죽어야 할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운형루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운형루주의 의미심장한 미소는 일 년 후에 입증이 되었다. 

 

천 명 중 선택된 이십 인을 가리는 마지막 관문이 된 바둑 시합장에

 

운형루주는 일호와 마주앉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강철판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흑석(黑石)과 백석(白石)이 놓여 있었다.

 

한 가지 기이한 것은 일호의 눈이 띠로 가려져 있는 점이었다. 

 

'으으 눈을 감고 바둑을 두어야 하다니. 게다가 일각(一刻) 안에 한 수를 .' 

 

일호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운형루주가 두는 바둑은 보통바둑이었다.

 

 

그러나 일호가 두어야 하는 바둑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바둑이었다.

 

 

눈을 가려야 하고, 시간에 쫓겨야 한다.

 

 

더욱 지독스러운 것은 백색 돌은 강철판에 만관인력(萬貫引力)으로 딱 달라붙어 있어서

 

보통의 지력(指力)으로는 떼어낼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놀라운 지력에 청력(聽力),

 

그리고 반면을 깡그리 외우는 암기력에 육감마저 겸비되어야 바둑을 둘 수 있다.

 

 

게다가 한 가지 더한다면 이제껏 스물한 사람을 가르친 운형루주가

 

이기려 하느냐 지려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일호는 귀로는천이통(天耳通)을,

 

그리고 손가락에는 대금룡수(大擒龍手)를 써서 대국에 임했다.

 

 

딱! 그녀가 돌을 한 점 놓을 때마다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운형루주는 그 소리의 여운이 끝나기 전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돌을 두었다. 

 

'으으, 십오(十五)에 사(四)를 둔 것 같기도 하고 십육(十六)에 삼(三)을 둔 것 같기도 하다.' 

 

일호는 손바닥을 땀으로 축축이 물들이며 고운 미간을 흉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녀의 입매가 악다물려졌다. 

 

'십육에 삼일 것이다. 거기에 두어야만 나의 대마(大馬)를 위협할 테니까.' 

 

그녀는 반 짐작으로 응수했다.

 

 

철석을 들어올리는 것은 몹시 쉬운 일이나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최소한 이백 년 공력은 있어야 흡인력을 이겨 제자리에 둘 테니까. 

 

수가 교환되기두 시진 정도 흘렀을까? 

 

"으핫핫, 네가 이겼다." 

 

운형루주는 흡족히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좌르르르! 반상의 돌은 모조리 흐트러졌다. 

 

일호는 눈을 가리고도 운형루주와의 시합바둑에서 한 집 차로 이겨낸 것이다.

 

 

그녀는 탈진된 모습이면서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귀재들은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전전긍긍해 했다.

 

 

일호에 이어 백호가 대국에 들었다.

 

 

안력으로는 뚫지 못할 천잠사건(天蠶絲巾)으로 일호와 마찬가지로 눈을 가린 채였다. 

 

" !" 

 

초조한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리는 귀재들 모두 백호가 패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백호는 세 시진 끝에 반집 차이로 이겼다. 

 

그 다음 사람도 또 그 다음 사람도 아슬아슬하게 운형루주와의 승부에서 이겼다.

 

 

일천호의 차례가 올 때까지 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떨어지는 사람은 일천호란 말인가? 

 

일천호는 스스로 눈을 천잠사건으로 가린 다음 운형루주와 더불어 바둑두기를 시작했다.

 

 

딱! 아주 가벼운 소리가 났다.

 

 

운형루주가 시작을 알리는 일석을 두는 소리였다.

 

 

그 직후, 일천호는 반상을 울리던 흑돌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백돌을 가볍게

 

좌상귀 화점(花點)에 내려놓았다. 

 

'정말 대단한 놈이다. 그러나 이놈을 제거하라는 혈루대호법의 밀명이 있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바둑에서 꺾어야 한다.' 

 

운형루주는 두번째 돌을 소리없이 내려놓았다. 

 

'네가 아무리 뛰어난 만고기재라 한들 내가 무음수(無音手)로 둔 이상 알지 못하리라.'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한데 일천호는그가 손을 떼자마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돌을 반상에 두는 것이 아닌가?

 

 

그 자리는 꼭 두어야 할 쌍방간의 맥점이었다. 

 

"와아아, 역시 일천호다!" 

 

"일천호가 제일이다!" 

 

"일천호의 청력은 이미 허공의 흐름을 느낄 정도에 이르렀다!" 

 

대국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귀재들은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시간이 경과하며 수(手)는 아주 빨리 교환이 되었다.

 

 

얼핏 보면 운형루주와 일천호가 거의 동시에 바둑을 두는 듯했다. 

 

결국 대국은 일천호의 승리 쪽으로 기울어졌다.

 

 

귀재들은 일천호의 탁월함을 이제야 뼛속 깊이 느끼게 되었고,

 

귀재들은 볼 수 없으나 벽 속에 숨어 귀재들을 지켜보고 있던

 

노인 하나의 입가에는 쓰디쓴 웃음이 떠올랐다. 

 

'일천호! 나의 모든 희망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군.

 

아아, 내가 아끼는 아이를 구마령주로 만들려 했는데 모든 것이 다 틀어졌다.

 

영주의 지위는 네 녀석, 일천호만이 지닐 수 있는 지위이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알았다!'


노인은 쓴웃음을 짓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일천호를 제거할 수는 없으니 본래대로 하게. 더 이상 누구를 편애하지는 않을 것이네!" 

 

그의 목소리는전음입밀수법이기에 운형루주의 귓속에만 들렸다. 

 

'혈루대호법! 이제라도 아셨으니 다행이오.

 

아아, 그대가 비록 구마루의 완성을 위해,

 

그리고 일천기재를 모으기 위해 일천혈건대(一千血巾隊)를 모조리 희생시켰다 하나

 

이 일은 혈루회의 일이 아니고 전 마도의 일인 것이오.

 

혈루회 충신의 후예인 일호가 구마령주가 되면 혈루대호법이 좋을 것이나,

 

전 마도를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가 구마령주가 되어야 마땅한 것이라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자신의 앞에 단정히 앉아 있는 일천호를 향했다. 

 

"일천호, 너도 통과다!" 

 

말을 마치며 그는 바둑판을 흐트렸다. 

 

일천호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떠올랐다. 

 

'나는 안다. 이 자는 나를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내 앞까지 져주는 바둑을 두었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바로 여기에서 너희들에 의해 어떠한 상황 아래에서도 죽지 않을 사람으로 길러진 사람이다!' 

 

일천호는 느릿느릿 눈을 가렸던 천잠사건을 풀었다.

 

실로 눈이 부실 정도로 빼어난 용모였다.

 

 

단 하나, 눈빛이 흐릿하지만 않다면 가히 일대미남자(一代美男子)라 불릴 만하였다. 

 

운형루주는 태사의에 앉으며 말했다. 

 

"너희 스물하나는 모두 완벽하다.

 

그러나 삼대호법은 이십 명 만을 바라고 계시다.

 

즉 너희들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하나는 죽어야한다! 

 

서슴없이 말할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는 어떤 비정한 이야기라도 서슴없이 이야기되는 것이었다. 

 

운형루주의 무거운 음성이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결국 운(運)으로 가릴 수밖에 없다. 본 루주도 너희들이 모두 뛰어나

 

운으로 낙오자를 가릴 수밖에 없음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 !" 

 

"여기에서 남은 이십 명은 보다 탁월한 자로서의 수련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천(天)의 수련에 든다.

 

여기서 나가는 이십 명은 우선 제 일인자를 가리게 될 법을 따라 중원으로 가게 될 것이다." 

 

'중, 중원으로!' 

 

'아아,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날 수 있단 말인가?' 

 

'신선한 공기를 맡을 날이 목전에 있다니 .' 

 

귀재들은 모두 머리카락을 곤두세웠다.

 

 

모두 이 날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할 수 있지 않은가? 

 

운형루주는 가벼운 소란이 거둬지기를 기다렸다가 품안에서 단약 스물한 개를 꺼냈다.

 

 

단약에는 각기 수가 파여져 있었다. 일(一)에서 이십일(二十一)까지. 

 

운형교두는 이어 쪽지 스물한 개를 꺼내 작은 가죽 주머니 안에 담아 귀재들 앞에 던져두었다. 

 

"하나씩 뽑아라. 그 다음 자신이 선택한 숫자가 적힌 단약을 먹어라.

 

스무 개는 영단이고 한 개는 독단이다. 영단을 먹으면 반갑자

 

내력(半甲子內力)을 얻을 것이고,

 

독단을 먹으면 고통이 없이 죽을 것이다. 노부가 할 일은 이것이 전부다." 

 

그는 주머니를보지 않고 눈을 감았다. 

 

제일 먼저 일호가 쪽지를 취했다.

 

사(四)가 나왔다. 

 

이어 백호가 칠자를, 일천호는 마지막 남은 것을 뽑았는데 숫자는 삼이었다. 

 

자신이 뽑은 쪽지에 적힌, 숫자가 새겨진 단약을 먹는 차례는 일천호가 쪽지를 취한 이후에 있었다.

 

 

누가 독단을 먹게 될 것인가?

 

 

그것을 먹을 확률은 적으나, 꼭 한 사람은 있다.

 

 

그는 억세게도 운이 없는 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눈을 질끈 감고 운을 하늘에 맡긴 채 단약을 삼켰다.

 

 

직후, 장내를 진동시키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성이 귀재들의 고막을 아프게 울렸다. 

 

"아아악!" 

 

그것은 백오호의 비명소리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백오호의 몸이 검은 연기에 뒤덮이며 핏물로 녹아버렸다.

 

 

그는 일천호와 일호에 뒤이어 뛰어난 자였는데

 

억세게도 운이 없어 독단을 골라 먹고 숨을 거둔 것이다. 

 

이제 선택받은이십 명의 귀재들만이 남았다.

 

 

그들은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남에게 죽음의 공포를 주는

 

자격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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