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5장 용형 풍형 운형

오늘의 쉼터 2014. 6. 18. 17:30

제5장 용형 풍형 운형

 

 

 

 

 

일천호는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무게가 이천 관(貫)이나 나가는 철갑(鐵甲)을

 

천천히 걸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쉴 사이 없이 광기(狂氣)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모두 죽이고 싶다. 누군가 나를 제거하고 싶어 철갑을 이천 관 짜리로 바꿔 놓았다.' 

 

그는 최근 들어 성격이 급격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소년소녀들 중 가장 온순했던 그였다.

 

 

그러나 현재의 그는 가장 지독한 광마성(狂魔性)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의 용모는 뛰어났으나 눈빛만은 음험해 보였다.

 

 

지금의 그와 눈빛을 마주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혈수은지(血水銀池). 

 

그곳은 만독(萬毒)이 응결된 죽음의 연못이었다.

 

 

혈수은지의 폭은 사십 장 정도로, 가장 무서운 것은 혈수은지의 위에 뜬 것이면 무엇이든

 

일천 관(貫)의 힘으로 빨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지금 일천호가치러내야 하는 시험은 이 혈수은지를 건너야 하는 것이었다.

 

 

철갑을 걸친 채 자신의 위치에서 떠서 반대편까지 가는 동안 지난 일 년간 배운 백팔 종의 절기 중

 

자신이 자랑하는 아홉 가지를 자세히 시전하는 것이 출관의 요령이었다. 

 

"차앗! 천마행공(天馬行空)!" 

 

한 소리 낭랑한 외침소리가 터지며 맨 먼저 대기하고 있던 일호의 몸이 솟구쳐 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비해 세 배는 큰 철갑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짜고짜 비스듬히 칠 장 정도를 떠오르는 것이었다. 

 

"하아앗!" 

 

일호는 표표히날아올랐다가 선녀무(仙女舞)로 몸을 틀며 곧바로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을 시전했다.

 

 

그녀가 지금 펼쳐 보이는 초식은 더없이 빼어난 운신술(運身術)이었다. 

 

혈수은지의 중간 정도에 이른 그녀는 연속해서 제운종(蹄雲踪)과 능공허도(凌空虛渡)를 시전해냈다.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다시 절세적인 백도신법을 구사하며 혈수은지의 허공을 가로질러갔다. 

 

"유운부(遊雲浮)! 유성간월(流星看月)!" 

 

일호는 기합소리를 지르며 멋드러지게 허공을 갈랐다.

 

 

그녀가 반대편 연못가에 사뿐히 내려서는 순간 탄성이 터졌다. 

 

"와아! 역시 일호다!" 

 

"나도 저 정도만 되면 좋으련만 !" 

 

정해진 곳에 모여 있던 귀재들은 일호가 무사히 내려서서 용형루주의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고

 

몹시 부러워했다. 

 

"이제 백호 차례다. 깃발을 들면 시작하라!" 

 

귀재들이 술렁거리고 있을 때 용형교두의 천리전음이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귀재들 중에서조금 유순하게 생긴 미소녀 하나가 육중한 철갑을 걸친 채 연못가로 다가갔다. 

 

용형교두의 손에서 적색 깃발이 쳐들렸다. 

 

"하앗!" 

 

백호라 불린 미소녀가 지체없이 몸을 날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녀에게서 한당도학(寒塘渡鶴)과 추풍비행술(追風飛行術) 등의 절기가 연속해서 펼쳐졌다.

 

 

그녀는 일 년간 전수받은 백팔 가지 수법 중에서 자신이 특히 잘 아는 아홉 가지를 잇따라

 

구사해 혈수은지를 겨우 넘어갔다. 

 

이어 백일호의차례가 되었다.

 

 

백일호 또한 미소녀인데 눈빛을 제외하면 청초하기가 한 떨기 수선화 같은 소녀였다. 

 

"떠올라라!" 

 

용형교두에게서 신호가 떨어졌다. 

 

백일호는 지체없이 지면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과천성(過天星)!" 

 

그녀는 기합소리를 지르며 다짜고짜 십오 장을 가로질렀다.

 

 

먼저 지나친 두 사람보다도 훨씬 빼어난 신법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를 바라보는 용형루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쯧쯧 ." 

 

그는 오히려 혀를 차는 것이 아닌가? 

 

"수라등천(修羅騰天)!" 

 

백일호는 수법을 바꾸며 다시 십 장을 날았다.

 

 

뒤이어 그녀는 마지막 남은 거리를 비천연(飛天鳶)의 신법으로 간단히 주파해 용형루주의 앞으로

 

떨어져 내리려 했다. 

 

그 순간 용형루주의 호통이 터졌다. 

 

"낙방! 아홉 가지를 쓰라 했는데 세 가지만 썼다!" 

 

호통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쳐들리는가 싶자 피이잉! 수리도(袖裏刀) 한 자루가 빛살처럼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케에엑!" 

 

백일호는 천돌혈에 수리도가 꽂힌 채 뒷쪽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그대로 풍덩 연못에 떨어졌다.

 

 

곱디고운 소녀의 몸을 삼킨 핏빛의 연못이 부그르르 끓어올랐다.

 

 

잠시 후 백일호의 몸뚱이와 철갑은 혈수로 화하고 말았다. 

 

" !" 

 

상황을 지켜보던 귀재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언제 자신들에게도 백일호와 같은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허공에서 아홉가지 신법을 잇따라 시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한 가지만으로 연못을 넘으라고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이백호, 시작하라!" 

 

용형루주는 방금 전 자신이 사람을 죽인 사실도 잊은 듯 다시 깃발을 들어올렸다. 

 

이백호는 땀을흘리며 즉시 신법의 시험에 들어갔고 귀재들은 숨을 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일천호만은 이백호의 신법 시험을 보고 있지 않았다. 

 

'모두 죽이리라!' 

 

그는 살기를 일으키며 이를 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중에서도시험은 계속되었다. 

 

"아아악!" 

 

팔백호로 불리던 소년이 내력이 달려 혈수은지에 빠져 녹아 죽었다.

 

 

그리고 구백일호도 아깝게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혈수은지의 건너편에는 스물세 명의 모습이 보였다.

 

용형루주를 제외하면 스물두 명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탈락자의 수는 채워진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일천호만이 외롭게 남았다.

 

 

한 가지 다른 것은 스물두 명의 귀재들이 일천 관의 철갑을 걸치고 시험에 임한 반면,

 

그는 누군가 몰래 바꿔치기한 이천 관의 갑옷을 입고 연못을 건너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런 점이 일천호를 분노케 한 것이었다. 

 

반대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일천호를 바라보는 용형루주의 눈빛은 의미심장했다. 

 

'일천호는 가장 쉽게 넘는다. 일호는 혈루대호법이 믿고 있으나 일천호는 대종사께서

 

특히 눈여겨 보고 계시지 않는가!' 

 

용형루주는 일천호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천호는 구마루에 오기 이전 이 안의 어떤 아이도 복용하지 못한 가장 신비한 어떤 영약을 복용했다.

 

그러나 저 아이가 가장 빼어난 아이가 된 것은 영약의 힘도 물론 있었겠지만 사실은 근원적인 자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손에 쥔 적색 깃발을 들어 올리며 명령했다. 

 

"건너와라, 일천호!" 

 

"흥!" 

 

일천호는 자신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며 천천히 날아올랐다.

 

 

그는 사자구천행(獅子九天行)에 이어 유선나월보(遊仙拿月步)를 시전했다.

 

 

그의 움직임은 그리 빨라 보이지 않았다.

 

 

이천 관이나 되는 철갑의 무게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모든 것을 저주한다. 지금 나의 마음은 혈수은지의 빛깔보다도 더 붉은 핏빛일 뿐이다!' 

 

일천호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던지면서 아홉 가지 신법을 느릿느릿 구사해 혈수은지를 횡단해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일호가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도저히 일천호를 능가하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더욱 심해진다!' 

 

그녀는 앵두 같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표독스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스물세 명의 귀재들이 가려지자 용형루주는 귀재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이제 너희들은 풍형루주(風形樓主)께로 가게 된다. 그분은 기문기관학(奇門機關學)의 대가(大家)로

 

너희들에게 천하의 모든 기문진식(奇門陣式)을 전수해 주실 것이다.

 

너희들은 이제 바람이 되어 어디든 파고드는 재주를 배우게 되리라. 하하핫!" 

 

용형루주는 호쾌하게 웃어 제끼다가 앞장 서서 걸었다.

 

 

귀재들은 일천 관 무게의 갑옷을 걸친 채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기문학은 하도(河圖)와 낙서(落書)에서 유래했다.

 

 

물론 하도와 낙서가 그 시초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천기(天機)의 비밀을 먼저 풀이한 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우주와 더불어 있다할 수 있었다. 

 

기문기관학을 배우게 될 풍형루는 서당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일천호를 비롯한 스물세 명의 귀재들은 그 안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골라서 읽을 수 있었다. 

 

풍형루주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귀재들 스스로 책을 읽고 이치를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풍형루에는 백만 권의 고서가 있으니 마음껏 보아라. 그 중 반은 기문진학에 관한 것이다.

 

여기 있는 것들은 마도상고기인(魔道上古奇人) 수천 분이 지난 천 년간 모은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대화 상대일 뿐 모르는 것이 있다면 내게 와서 물어라." 

 

풍형루주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간간이 부드럽게 말하기도 했다.

 

 

귀재들은 이미 옥석이 거의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도죽어야 할 자는 남아 있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발설하지는 않았으나 귀재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귀재들은 구마루(九魔樓)가 바로 자신들이 의식을 깨우친 후 줄곧 머물러 왔던 장소라는 것도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었다.

 

 

다만 그곳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키워지고 있는지 자세히 모를 뿐이었다. 

 

일천호는 오랜만에 정갈한 차림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는 과거 책귀신이라 불렸듯이 이곳에서도 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은 대체 어떤 세상이란 말인가?' 

 

그는 꿩이고 매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아대는 사냥꾼처럼 무엇이고 눈에 띄는 대로 섭렵해 읽었다.

 

 

다른 귀재들은 기문진학에 대한 책만 골라 읽었다. 

 

그러나 일천호의 뇌는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가 있는 뇌가 아니던가? 

 

그는 천부적인기억력에 오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가장 빼어나다는 일호의 기억력도 일천호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일천호는 지난 백 년간 누구도 꺼내보지 않았던 곰팡이 낀 책을 무수히 찾아내 독파했다. 

 

그 중 아주 우연히 그의 시선을 잡아 끄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마도의 전설 중 구마루가 있다!' 

 

그는 그 대목에 이르러 숨을 죽였다. 

 

'구마루라고 하면 바로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이다!' 

 

 

그는 눈빛을 번득이며 다음 구절을 읽어내려갔다. 

 

'구마루는 천 년 전 구마종(九魔宗)에서 비롯되었다.

 

구마종은 삼풍진인이 이끄는 정도연맹에 의해 세력을 잃고 중원을 떠난 아홉 거마를 말한다.

 

천지인(天地人) 천지삼종마(天地三宗魔), 풍화뢰(風火雷) 무적삼종마(無敵三宗魔), 검도음(劍刀音)

 

기문삼종마(奇門三宗魔)가 바로 아홉 거마의 장본인이다.

 

그들은 패주한 후 구마루를 세웠으며 그것은 전설이 되어 노래로 강호를 떠돌았다.


'구마루는 설산에 있다. 그곳은 마도의 복수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꺾인 자, 부러진 자는 모두 구마루에 가라.

 

살아 복수할 희망이 없다면 그곳에 핏방울 한 방울이라도 뿌려라.

 

언제고 구마령주가 모든 모아진 것을 얻고 한 마리 마룡(魔龍)이 되어 천하를 물어뜯도록 ' 

 

스스로 만사통(萬事通)이라 밝힌 상고기인이 쓴 글이었다.

 

 

그것은 일천호가 알고자 하는 것을 몇 가지 알려 주었다. 

 

'이곳이 설산(雪山)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석부(石府)의 밖은 빙설천지(氷雪天地)이겠군.' 

 

일천호는 이제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역사가 그리 오래되었다면 이 안에 그토록 많은 비급과 그토록 많은 시설이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곳이 전 마도의 고금대총(古今大塚)이란 것도 !' 

 

그는 읽던 책을 슬그머니 접었다. 

 

'고금의 모든 마도인들이 여기 와 죽으면서 유물로 몇 가지씩을 남겼고 그것이 모여

 

이 거대한 조직이 되었단 말인가?' 

 

생각이 거기에미치자 일천호는 섬뜩한 기분이 들어 몸을 한 차례 떨었다. 

 

'천축국(天竺國)에 백상(白象)이 있는데 그들은 죽을 때 정해진 무덤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있으면 꿈에 나타나 그들의 무덤을 가르쳐 줌으로써

 

상아를 발견케 해 은혜를 갚기 위함이라고 했다!' 

 

일천호는 고금대마총을 코끼리들의 무덤에 비교해 보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풀과 구름, 꽃, 창공 이름만 알 뿐 보지 못한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이 그의 뇌리 속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일 년이란 세월이 꿈결같이 흘렀다. 

 

스물세 명의 귀재들은 이제 어엿한 사내와 여자로 한 몫을 할 만큼 신체적인 발육을 보였다. 

 

일천호는 언제나처럼 맨 뒤에 있었다.

 

그는 조금 호리호리하게 보였다.

 

 

그러나 웃옷을 벗는다면 그의 가슴 근육이 겉보기보다 잘 발달되었음을 알 것이다.

 

 

칼같이 날카로운 눈썹과 별빛의 눈동자, 주위의 모든 것을 조롱하는 듯한 입매무새,

 

거기에 언제나 비수 한 자루를 품고 있는 듯한 야릇한 냉소가 그의 특징이었다.

 

 

그는 다른 귀재들에 비해 더욱 빼어난 사람으로 성장했다. 

 

일천호는 지금풍형루주의 말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풍형루주는 거대한 철문 앞에 서 있었다. 

 

"문 안에는 일곱 가지의 관문이 있다. 하나하나가 절진(絶陣)이며,

 

백도구파가 장기로 삼는 것이 태반이다.

 

이 모든 것을 돌파해야 운형루로 가서 운형루주께 잡기(雜技)를 전수받게 된다!" 

 

" ." 

 

일천호를 비롯한 나머지 귀재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풍형루주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기울이고 있었다. 

 

"모두들 잘 통과하리라 믿지만 두 명은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은 대루주의 명(命)이다." 

 

두 명이 남아야 한다는 풍형루주의 말에 귀재들은 일순 긴장한 빛을 띄었다.

 

 

그들이 앞서 거쳐왔던 관문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탈락과 동시에 죽음을 뜻하는 말이기에......... 

 

풍형루주의 말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안으로 가면 갈림길이 많다. 어느 길이고 간에 거치게 되는 것은 같다.

 

무조건 돌파하여 가다 보면 문이 보일 것이다. 물론 스물두 번째와 스물세 번째에게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 

 

풍형루주는 말끝을 흐리며 뒷편의 철문에 일 장을 후려 갈겼다.

 

 

꽝! 하는 폭음이 일며 만년한철과 자금사(紫金砂)를 섞어 만든 철문이 활짝 열리며

 

안으로부터 음산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귀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열린 문 안으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당연히 일호가 그들의 선두였다.

 

 

스물한 명의 귀재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일천호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귀재들의 모습이 안으로 사라지자 그때서야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이었다. 

 

풍형루주는 일천호의 그런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내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물셋 중 제대로 배운 놈은 일천호뿐이다.

 

진세(陣勢)에 접해 서두른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니까.' 

 

일천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풍형루주 앞을 내심으로 코웃음을 날리며 관문의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자마자 복잡한 진식이 펼쳐져 있었다.

 

 

칠성대라(七星大羅), 삼륜무극(三輪無極), 혼천수라멸진(混天修羅滅陣), 천문금쇄(天門禁鎖),

 

반오행구궁(反五行九宮) 등 걸음마다 난관이었다.

 

그 복잡한 석도(石道)를 빠져나가는 데 온 신경을 쓰다가 자칫하면 기관을 건드리게 된다. 

 

하지만 일천호에게는 빈집을 지나치듯 쉬운 일에 불과했다.

 

 

그것은 마치 한 줄기 바람의 모습이었다.

 

 

그는 풍형루주가 원하는 모습대로 어떤 관문이든 소리없이 지나쳐 가는 것이었다. 

 

일호는 온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출관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를 문가에서 기다리는 인영 하나가 있었다. 

 

그는 바로 운형루주였는데 일호가 나오자 몹시 흡족해 하는 눈치였다. 

 

"축하한다, 일호." 

 

"제, 제가 제일 먼저인가요?" 

 

일호는 발갛게상기된 얼굴에 기대를 가득 담고 물었다. 

 

운형루주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허헛, 일천호는 사흘 전에 나와 벌써 운형루의 잡학수련에 들었다." 

 

"일, 일천호가 사흘 전에!" 

 

일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까무라칠 듯이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일천호가 자신보다,

 

그것도 사흘씩이나 빨리 출관할 줄은 꿈에서조차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라 놀라움은 더욱 컸다. 

 

그러나 그 놀라움도 잠시, 그녀는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와락 설움 같은 그 무엇인가가

 

치밀고 올라옴을 느껴야 했다.

 

갑자기 일천호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호의 가슴이 유독 부풀어 있었다.

 

 

옷자락을 살짝 벗기면 너무도 탐스러워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육봉 두 개를 볼 수 있을 정도로 . 

 

'무정한 중에 가장 무정한 자이건만 그 눈빛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얄궂은 심사란 말인가?

 

 

그는 나를 구마령주로 은밀히 키우려 하는 혈루대호법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자인데

 

내게 천년화리의 내단을 주시어 초귀재로 키워주신 그분의 은공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일호는 몹시 씁쓸한 기색이었다. 

 

 

닷새 후, 

 

휙!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두 귀재가 거의 동시에 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 앞에 서 있는 운형루주를 향해 외쳤다. 

 

"제가 먼저 나왔습니다." 

 

"아니올시다. 제가 먼저인데 한 모퉁이에서 이놈이 나를 암습해 속도가 비슷해진 것입니다." 

 

그 순간 운형루주의 두 눈이 살벌한 빛을 발했다. 

 

"너희 둘은 탈락이다!" 

 

그는 말소리와함께 쌍장을 동시에 내뻗었다.

 

 

뒤이어 거북의 등이 터지듯 펑! 하는 격타음 속에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로를 헐뜯던 두 귀재는 한 덩어리 피떡이 되어 관문 안으로 다시 날아들고 말았다.

 

 

그들은 바로 스물두 번째와 스물세 번째의 출관자들이었다. 

 

"이제 하나만 제거되면 다시는 사부가 제자를 죽이는 일이 없으리라." 

 

운형루주는 손을 털며 천천히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스물한 명의 귀재가 출관했던 문은 육중한 모습으로 다시 닫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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