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1장 너는 일천호

오늘의 쉼터 2014. 6. 18. 17:05

제1장 너는 일천호

 

 

그곳은 아주 거대한 석부(石府)였다. 

 

높이가 십 장(十丈)이 넘었고 정방형(正方形) 중 한 벽면(壁面)의 길이가 무려 이백 장(二百丈)에 달하는 아주 거대한 곳이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의 중앙에는 석단(石壇)이 하나 있었고, 단 위에는 복면인(覆面人)이 한 사람 좌정해 있었다.

 

 

그는 매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전면에 고정시킨 그의 망막에는 단상을 향해 무릎 꿇은 자세로 앉아 있는 수많은 소년소녀(少年少女)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모두가 같은 또래의 소년소녀들. 그러나 눈빛만은 나이답지 않게 조숙(早熟)한 아이들이었다.

 

 

그 수는 정확히 일 천(一千)이었다. 

 

' !' 

 

일천의 눈빛들은 한 점 흔들림없이 단상의 복면인을 뚫어져라 직시하고 있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의당 서로 꼬집고 욕하며 뒹굴어야 마땅한데 그들은 너무도 조용했다.

 

 

살기(煞氣)랄까? 냉정(冷情)한 눈빛에는 적개심(敵愾心)만이 담겨 있었다. 

 

"으으음 !" 

 

굳은 듯 단상 위에 앉아 있던 복면인이 오랜만에 몸을 틀었다.

 

 

소년소녀들은 마른침을 삼키고 복면인을 더욱 뚫어져라 주시했다.

 

 

나직하나 힘이 있는 음성이 복면인에게서 흘러나왔다. 

 

"백팔초(百八招)로 이루어진 구천나후검초(九天羅侯劍招) 중 일백칠초(一百七招)가 이미 전수(傳授)되었다.

 

 

이제 마지막 초식만이 남았다.

 

 

그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복면인은 말한다음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단의 뒤에서 적색장포를 걸친 사람들이 흡사 그림자처럼 스며들듯 나와서 소년소녀들 틈으로 걸어들어갔다.

 

 

소년소녀들은 그런 것에 익숙한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몹시도 차가운 눈빛들이었다. 

 

그런데 맨 뒷줄에서만 조금 다른 눈빛 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청명(淸明)한 느낌을 주는 눈빛이었다. 

 

" !" 

 

아주 아름답게생긴 흑삼소년(黑衫少年)이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적포인들이 다가서는 것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적포인들의 수는 십 명. 그들은 각기 일백 매씩의 종이를 들고 있었다.

 

 

어떤 과장(科場)일까? 적포인들은 한 사람에게 한 매씩 재빨리 건네 주며 줄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소년소녀들은 모두들 그것을 받고는 손바닥에 땀을 쥐었다. 

 

'음 !' 

 

'아, 나후파천(羅喉破天)이라는 이름이군.' 

 

'난해한데? 이틀 안에 오성(五成) 이상 익히려면 잠도 못 자겠어.' 

 

종이를 받아 든 아이들은 어느 정도 반응을 나타냈다.

 

 

눈빛이 남다른 맨 뒷줄의 소년은 맨 마지막으로 종이를 받게 되었다.

 

 

그에게 종이를 준 적포인은 흑삼소년을 조금 유심히 바라보았다. 

 

'정을 주어서는 안 되나 어쩐지 일천호에게만은 정이 간다.' 

 

적포인은 이내자신의 그런 감정을 눌러버리고는 흑삼소년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가 두어 걸음 옮겼을 때였다. 

 

"헤헷 !" 

 

흑삼의 미소년이 갑자기 웃자 다른 소년소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일천호 항상 헤벌리는 녀석!' 

 

'제일 게으른 놈!' 

 

'초관(礎關)의 꼴찌가 뭐가 좋다고 !' 

 

소년소녀들은 일천호인 흑삼의 미소년에게 적개심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년소녀 모두는 감정이 절제된 듯 냉막(冷莫)한 심성 일변도였는데 일천호만은 항상 히죽히죽 웃기 때문이었다. 

 

일천호(一千號). 그의 눈빛에는 몽상(夢想)이 가득했다.

 

 

그는 누가 비웃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후파천이라 헤헷, 검을 들고 날아올라 마치 편월(片月)을 가를 듯한 인물도(人物圖)의 모습이 재미있는데?" 

 

그는 적포인이나눠준 종이를 보며 나직이 중얼거린다. 

 

그때 단상 위의 복면인에게서 힘이 실린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그만 모두 거처로 돌아가라. 이틀 후 여기 모여 비무(比武)할 때까지 불철주야 노력해야 한다!" 

 

복면인은 말을마치고는 석부를 빠져 나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소년소녀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가야지!" 

 

"일천 명 중 제일 영민한 내가 남에게 뒤질 수 없다!" 

 

그들은 갈가마귀 떼가 화살에 놀라 흩어지듯 뒷쪽으로 물러났다.

 

 

썰물이 빠져버리듯 소년소녀들의 행동거지라고는 할 수 없이 일사불란한 모습이었다. 

 

소년소녀들이 서둘러 빠져 나간 석부는 텅 비어 있었다.

 

 

남은 사람은 오직 일천호뿐이었다.

 

 

그는 이제껏과 마찬가지로 제일 나중에 석부(石府)를 나서는 것이다. 

 

석부를 나서면매우 복잡한 석도(石道)였다.

 

 

거미줄같이 복잡하고 무지개같이 길기만 한 석도에는 간간이 유등(油燈)이 붙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일천호는 잠시전에 받은 종이를 구깃구깃 쥐고 석도를 따라 걷는다.

 

 

석도의 양쪽으로는 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닫혀진 문마다에서 기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앗-!" 

 

"얍!" 

 

각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소년소녀들이 남이 볼세라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나후파천검을 익히는

 

기합소리였다.

 

 

그들은 일호(一號)에서 구백구십구호(九百九十九號)까지 누구를 봐도 기질(氣質)이며 행동(行動)이

 

비슷하다.

 

 

생김새마저 아주 비슷했다. 

 

그러나 일천호만은 남달랐다.

 

그는 항상 느릿느릿 행동했다.

 

 

초관교두(礎關敎頭)가 그를 꾸짖은 적이 몇 번이었던가!

 

 

그는 구경 나온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기웃거리며 석도를 따라갔다.

 

 

그가 모퉁이를 돌아갈 즈음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눈이 하나 있었다. 

 

'흠 저녀석은 언제나 마성(魔性)을 얻을 것인가?' 

 

숨어서 일천호를 지켜보던 사람이 중얼거렸다.

 

 

그는 바로 초관교두였다.

 

 

그는 어린 기재(奇才)들이 글을 깨우친 이후부터 교두가 되어 나후백팔검을 전수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은 아이들 중 하나도 없었다. 

 

'일천호 가장 쓸 만한 아이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누구에게라도 정(情)을 주어서는 아니되는 것이 제일법(弟一法)이지.' 

 

그는 중얼거리다가 뒤돌아섰다. 

 

'이틀 후면 옥석(玉石)이 가려지리라.' 

 

그는 속으로 말하며 스르르 모습을 감췄다. 

 

오평(五坪) 정도 되는 석실(石室). 

 

나무침상이 하나 그리고 작은 서가(書架)가 석실을 채우고 있는 전부였다.

 

 

 단촐한 석실에 흥얼거리는 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구름(雲)은 발(足)이 없어 좋고 흐으응 바람(風)은 몸(身)이 없어 마음대로 뭉쳐지고 ." 

 

미소년 하나가침상 위에 벌렁 누워 시편(時編)을 뒤적이고 있었다. 

 

침상의 머리맡에는 꾸겨진 종이 한 장이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었다.

 

 

석부에서 적포인들이 소년소녀들에게 나눠주었던 바로 그 종이였다. 

 

'나후검 백팔초 나후파천 극쾌(極快)로 만정(萬靜)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시계(視界)를 넓혀야 한다.

 

일단, 수직으로 삼장(三丈) 상승(上昇)해야 하는데 주의할 것은 회선(廻旋)하며 날아올라야 하는 것이다.

 

삼우육좌(三右六左), 구번청연신(九飜晴嚥身)을 쾌속히 시전하는 가운데에 검봉(劒鋒)으로 천극(天極)을

 

단(斷)했다가, 연환(連環)하여 전이단(前二斷) 후삼도(後三屠) .' 

 

종이에는 그런글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미소년은 종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흥얼거리기만 한다. 

 

미소년의 옷자락에는 '일천호(一千號)'라는 붉은 글씨가 수놓아져 있었다. 

 

'일천호 !' 

 

그것은 그의 모든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그에게는 없다.

 

 

그에게는 다섯 평 남짓한 아주 작은 석실의 공간만이 있을 뿐이었다. 

 

일천호가 시편에 빠져들 때 데에에에엥! 어디에선가 육중하기 이를 데 없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종소리는 오장육부를 가루로 만들 듯 석실 내부를 진동시켰다. 

 

"하하, 모이라는 신호다." 

 

종소리가 들리자 침상에 누워 있던 일천호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가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옆방의 구백구십구호는 이틀 내내 검무(劍舞)를 추었으니 필경 오줌 마려운 강아지같이

 

인상을 찡그릴 것이고, 맞은편 구백구십팔호는 완벽히 익혔다고 자신만만해 나를 비웃을 것이다." 

 

일천호의 표정은 티끌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 하하 !" 

 

일천호는 시편을 놓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지난 이틀간 자고 먹고, 그리고 글을 읽었을 뿐이다.

 

 

 석부에서 건네 받은 종이는 그 자리에서 일별(一瞥)한 다음 다시 펴 보지도 않았다. 

 

일천호가 자신의 석실을 나올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자신들의 거소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석부 쪽으로 정연히 가는 소년소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일천호의 빙글빙글거리는 모습이 엮겨운 듯 침을 내뱉는다. 

 

"퉤에, 굶어죽을 자식!" 

 

"마종(魔宗)께서 너를 위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깝다!" 

 

"저놈은 제일 먼저 낙오(落伍)될 것이다!" 

 

일천호는 매양이렇게 다른 소년소녀들의 적이 되는 것이다. 

 

하여간 일천 명의 소년소녀들은 거대석부로 모여들었다.

 

 

이날은 지난 수 년간과는 아주 달랐다. 

 

소년소녀들이 신(神)처럼 알고 있는 초관교두(礎關敎頭), 그가 단하(壇下)에 시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관교두 대신단상에는 다른 사람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역시 복면을 한 사람인데 그의 눈빛은 번개와 같았다.

 

 

비수같이 심령(心靈)을 그어 버리는 눈빛, 그는 소년소녀들이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소년소녀들은 모두 자신들의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들은 단상 위의 복면인이 풍겨내는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쥐죽은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간 수고들 했다." 

 

단상에 있는 복면인의 목소리로 짓눌렸던 분위기가 깨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하나의 음공(音功)으로 모든 사람의 고막을 아프게 했다. 

 

"노부로 말하자면 지난 십 년간 이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사람이다." 

 

비파(琵琶)가 깨어질 때 이런 소리가 날까? 복면인의 음성은 가히 단말마(斷末魔)라 할 수 있는

 

사악(邪惡)한 음파(音波)였다. 

 

"노부는 마인루주(魔刃褸主)이다. 너희들에게 내외공(內外功)을 전수할 제구교두(弟九敎頭)이다." 

 

" !" 

 

"이제껏 너희들을 맡아 키운 제십교두는 사실 노부의 사질(師姪)이지. 훗훗, 물론 너희들이 배운 것은

 

무공이라 할 수도 없이 천박한 것들이고 ." 

 

'으으음 !' 

 

'무서운 분이시다.' 

 

소년소녀들이 겁을 집어먹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하지만 맨 뒷줄의 일천호는 달랐다. 

 

'그래 너무도 쉬운 것이었지.' 

 

일천호는 복면인의 말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하여간 마인루주라 자칭한 복면인이 더욱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진짜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 

 

그의 목소리가더욱 강렬해졌다. 

 

"모두가 마인(魔刃)의 시련에 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너희들 중 구백 명은 들지 못한다!" 

 

'단 일백 명만이 ?' 

 

 

소년소녀들은 마인루주의 단언에 흠칫해 했다.

 

 

마인루주는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번개불 같은 눈빛으로 소년소녀들을 쓸어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하나의 아주 담담한 눈빛을 발견했다. 

 

마인루주의 시선이 맨 뒷줄의 일천호에게 고정되었다.

 

 

그는 일천호의 눈빛을 대하고는 복면 속의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 녀석이 바로 그 유명한 일천호로군.

 

정기어린 눈빛이기는 하나 내가 보기에는 시원치 않다. 뛰어난 구석이 없어 보여.' 

 

그는 재빨리 일천호에게 고정시켰던 눈빛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좀전처럼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단약(丹藥) 한 알씩을 먹게 된다. 그 다음 쪽지 한 장씩을 받게될 것이다." 

 

비파를 깨는 듯한 마인루주의 음성이 소년소녀들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 안에는 모두 같은 내용이 적혀 있으며 너희들은 그것을 받고 나서 한곳에 가게 된다." 

 

" !" 

 

"거기서 옥(玉)과 돌(石)이 가려질 것이다. 너희들은 옥으로 평가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마인루주가 말을 마치고 오른손을 번쩍 쳐들자, 

 

"예엣!" 

 

"백도멸절(百道滅切) 마도천하(魔道天下)!" 

 

"피(血)로 빚을 갚는 데 신명(身命)을 불태우겠습니다!" 

 

소년소녀들은 섬찍한 말들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그들은 마인루주의 말에 고무된 듯 저마다의 동공에 살기를 돋우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적포인들이 줄 사이를 돌아다니며 일천 명의 소년소녀들에게 단약 한 알씩을 건네주었다.

 

 

단약은 한 장의 접혀진 쪽지와 더불어 건네졌다.

 

 

일천호는 맨 마지막으로 단약을 받았다. 

 

단약의 크기는잘 익은 살구만한데 빛은 진홍(眞紅)이었다.

 

 

냄새는 없고 크기에 비해 조금 무거운 것이었다. 

 

'보통 물건이 아니다. 그간 십 일마다 한 알씩 먹은 대력신단(大力神丹)에 비해 열 배 약효가 좋은 것이고,

 

마혼(魔魂)을 일으키는 약재가 든 천혈단이라는 것이다!' 

 

일천호가 단약을 바라보며 내심 염두를 굴릴 때 또 다시 마인루주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모두 그것을 먹고 지하비무관(地下比武關)에 달린 혈부(血府)로 들어가라. 들어간 다음 쪽지를 펴 봐라.

 

미리 쪽지를 펴 보는 녀석은 엄벌로 처단된다!" 

 

마인루주의 음성은 서릿발이 내릴 정도로 몹시 차가웠다.

 

 

그의 뒤쪽, 그러니까 석부의 한쪽 벽면에 적힌 글귀들이 마인루주의 모습을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다. 

 

일천 명의 소년소녀들이 항상 보아온 글귀. 이제는 그들의 뇌리에 각인(刻印)이 된 글귀는

 

바로 다음과 같았다. 

 

'천세장한(千歲長恨) 마도불망(魔道不忘)' 

 

천 년에 걸친 한을 마도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글씨는 핏빛이었다.

 

그것은 아주 지독한 살기(煞氣)를 일으키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소년소녀들은 단약을 먹고 쪽지를 쥔 채 일사불란하게 우측의 벽에 난 대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대문의 안으로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은 백 개로 끝이 났고 다시 철문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비무(比武)하는 장소가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아는 곳은 거기까지였다. 

 

오늘은 아주 이례적인 날이었다.

 

처음 가는 장소, 그 어떤 신비경(神秘境)이 그들을 맞이 할 것인가? 

 

'혈부(血府)' 

 

비무관에 달린곳의 입구는 아주 좁았다.

 

 

문은 천 년이 지나도 녹이 슬지 않는다는 한철(寒鐵)로 되어 있었는데 두 사람이 걸어들어간다 해도 어깨가 서로 마주칠 정도로 협소했다. 

 

일천호는 맨 뒤에 서서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안은 지극히 어두웠다.

 

통로는 열 걸음마다 열 갈래길을 만들었다.

 

 

일천호는 벌집같이 복잡한 길을 따라 걷다가 결국 혼자가 되고 말았다.

 

 

사실은 일천호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혼자가 된 것이다. 

 

일천호는 통로를 걸으며 염두를 굴렸다. 

 

'무슨 이유일까? 진도(陣道)가 펼쳐져 백 보만에 천 명이 격리(隔離)되니 ?' 

 

그가 의아해 할 때였다. 

 

"자아, 모두 쪽지를 펴 보아라!" 

 

어디에선가 혈부 안을 뒤흔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방향을 분간할 수 없는 마인루주의 천리전음(千里傳音)이었다. 

 

일천호는 그 소리를 듣고 손바닥을 폈다.

 

 

그 안에 작은 쪽지가 한 장 쥐어져 있었다.

 

 

과연 그 안에는 어떤 것이 적혀 있을까?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길래 석부에 들기 전 펴 보는 사람은 엄벌에 처한다고 한 것인가? 

 

'보물 찾기인가?' 

 

일천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쪽지를 폈다.

 

 

직후 쪽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난생 처음이라 할 정도로 산만해졌다. 

 

'이럴 수가 !' 

 

대체 무슨 글이기에 그리도 놀라워하는 것일까? 

 

 

'무협지 > 실명대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장 용형 풍형 운형  (0) 2014.06.18
제4장 지피지기 백전백승  (0) 2014.06.18
제3장 대역비정천하  (0) 2014.06.18
제2장 적자생존  (0) 2014.06.18
서장  (0) 2014.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