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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35화 눈물 (4)

오늘의 쉼터 2014. 6. 14. 18:58

<210>  35화 눈물 (4)

 

 

문을 벌컥 여니 이미 그곳에는 마리안이 침대 곁을 지키고 서 있다가

 

아하루를 보고는 옆으로 비켜 났다.

 

창가에 위치한 침대는 피로 물든 원래는 하앴을 시트가 침대 머리맡까지 덮여져 있었고

 

그 아래 작고 가녀린 사람의 굴곡이 보였다.

아하루가 한눈에 모든 정황을 파악한 듯 문가에 못박힌듯 섰다.

 

아하루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방 안 가득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문가에 서 있는 아하루도 그 옆에 있는 르네와 훼리나도

 

그리고 침대 한쪽에 서 있는 마리안도 서로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흐르는 침묵 속에 내동댕이 쳐져있었다.

창 밖 가득 태양이 방안을 채웠지만 방안은 죽음같은 고요와 냉정한 침묵만이 가득했다.

아하루의 발걸음이 옮겨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 이름 모를 새가 창 밖에서

 

뾰르르 날아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다시 푸른 하늘로 날아가고 나서였다.

아무런 말없이 아하루의 걸음이 한걸음 한걸음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느릿 느릿 아하루의 손이 침대를 덮고 있는 시트를 쥐었다.

침대 시트가 천천히 제켜지면서 그 안에 누워있는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리이였다.

 

아직 살아 있는 듯 미소를 머금고 자는 듯이 누워있는 형수의 얼굴 위로

 

아하루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가운 죽은 이의 시기가 아하루의 손 끝으로부터 전해졌다.

 

아하루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이내 아하루의 손 끝으로 형수의 얼굴을 담아 두려는 듯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찌된 거지?"

형수의 얼굴을 만지던 아하루가 메마른 음성으로 물었다.

 

마리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서 살며시 기척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기척이 없길래 들어왔습니다.

 

이미 리이님은 손쓰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습니다."

아하루가 시트를 좀더 제꼈다.

 

리이의 심장 어림에 작은 무언가가 박혀있었고

 

그 주위로는 서서히 굳어가는 피가 몽글 몽글 새어나와

 

리이의 몸을 따라 리이가 누운 자리를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하루가 단도의 자루를 집고 손에 힘을 주자

리이의 몸에 반넘어 박혀있던 그것이 쉽사리 빠져나왔다.

 

방 마다 하나 둘쯤은 있는 손톱이나 발톱을 다듬는데 쓰거나

 

혹은 봉인된 무언가를 자를때 쓰는 그런 작은 칼이었다.

"아팠을텐데..."

아하루가 칼날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중얼거렸다.

"저기 이거..."

마리안이 하얀 종이를 보였다. 아하루가 마리안의 손에 들린 종이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곳 저곳 번진 자국이 조금 떨어진 아하루의 눈에도 또렸이 보였다.

 

아하루가 형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읽어"

아하루가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마리안이 잠시 주저하다가 어쩔수 없다는 듯

 

리이가 마지막 남긴 유서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도련님.

 

이렇게 도련님을 다시 보게 되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도련님을 다시 만나게 된것은 필시 이 불행한 여인을 아크레온과 소데온께서도

 

불쌍히 보신 덕분이겠지요.

하지만 도련님 이제 다시 도련님께 또 한번의 실망과 아픔을 드리게 되어서

 

무어라 죄송스런 말을 해야할지 모르겟군요.

하지만... 하지만 저 역시 살고 싶었답니다.

 

다시한번 카이엔와 둘이서 도련님이 어디까지 발전해 나가는지 보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록 도련님께 크나큰 죄를 짓는 일이 되겠지만

 

이미 저는 온갖 유린을 당하고 또 정신적으로도 금제가 온전하지 않은 몸이랍니다.

비단 이미 더럽혀진 몸이라 사람들의 손가락질 받음으로써

 

도련님의 앞날에 누가 될 뿐 아니라 정신적인 금제 또한 저를 구속하고 억누르고 잇어서

 

언제 제가 이성을 잃고 사람들 앞에 추한 꼴을 보이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도련님과 그리고 제 소중한 아들 카이엔은 지금보다

 

더 큰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되겠지요.

하지만 비록 지금 잠시 도련님과 카이엔과 헤어질 지라도 나중엔 웃게 될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만이 폴리온 앞에 있는 남편에게도 떳떳이 나갈 수 잇는 유일한 길임을

 

잘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다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도련님 부디 이 죄스런 형수를 용서하시고

 

그리고 항상 도련님의 형님, 제 남편과 하늘에서 도련님을 지키고 염려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래요.

도련님이 가문의 복수를 끝내고 가문을 일으켜 세울때 비로서 우리의 고통도 끝나겠지요.

 

폴리온 앞에서 떳떳이 가슴을 펴겠지요.

한가지 제 마음을 또 아프게 하는 것은 내아들... 내아들 카이엔 입니다.

 

카이엔 앞에서는 항상 죄스럽고 못난 어미겟지만 사랑한다고 그리고 사랑했다고 전해주세요.

내게 유일한 한이 잇다면 내 소중한 카이엔... 카이엔을 보고 가지 못하는 거군요...

 

하지만 그것만이... 그것만이 진실로 카이엔을 위하는 길이란것을 알기에 못난 어미는

 

그저 사랑한다는 말 밖에 달리 할말이 없습니다.

부디 도련님. 카이엔을 나 대신 돌봐주시고 지켜주세요.

 

오직 제가 부탁드릴 것은 그것 뿐이랍니다.

 

그리고 카이엔이 이 못난 어미를...

못난 어미를 떠나 당당하게 서게 되기를 바란다고 전해주세요...

그럼 다시 웃으며 폴리온의 앞에서 모두 모이게 될 그날까지 몸 소중히 하세요...

못난 형수 리이가..."

마리안이 읽기를 마쳤다.

 

형수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하루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르네"

아하루가 잔뜩 굳어버릴대로 굳어버린 음성으로 말했다.

"당장 가서 지금 전부 이곳에서 철수한다고 알려.

 

그리고 어떻게 하든 형수의 시신을 짐보만 영지까지 운반토록 해.

 

그곳에 잠시 머무르면서 내 복수와 카이엔이 장성하는 모습을 보게 해"

"네? 네..."

르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루를 보는 르네의 눈에는 아하루를 걱정하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가득했다.

"난.. 난 잠시 쉬도록 할께 잠시만 혼자 있게해줘.."

아하루가 그렇게 말하고는 방을 넘어 천천히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훼리나가 그런 아하루를 쫓아 나가려 했지만 마리안이 훼리나를 잡았다.

 

그리곤 의아한듯 바라보는 훼리나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혼자 있게 하는게 좋아"

훼리나의 몸에서 천천히 힘이 빠져나갔다.

 

훼리나의 안타까운 시선이 아하루의 등 뒤에 꽃혔다.



"뭐라고요?"

자그마한 수정구에선 흐릿하게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수정구를 통해서 놀란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지금 라이갈에 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안됩니다."

수정구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왜죠?"

"라이갈 쪽은 저희쪽 상단을 통해서 아하루님의 조카분을 데리고 와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룬에서의 일은 아하루님이 아니면 안됩니다.

 

그것은 아하루님도 아시고 계시잖습니까?"

수정구에서 들린 말에 아하루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수정에서 다시금 말소리가 이어졌다.

"아하루님 무엇때문에 갑작스레 라이갈에 있는 조카분을 데리고 오시려고 하는지 모르겟습니다.

 

물어봐도 될까요?"

아하루가 잠시 머뭇거리다 나직히 한숨을 내셨다.

"라이갈에 있는 내 조카 카이엔의 어머니 나의 형수님이 방금 자살하셨습니다."

이번엔 수정구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군요. 부디 폴리온의 공정한 재판이 임하게 되시길..."

"고맙습니다. 저희 형수님도 쳄벌린 단장님의 마음에 감사를 표할 겁니다."

아하루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저희 쪽에서 지금 바로 라이갈에 잇는 지단을 통해 아하루님의

 

조카분을 짐보만 쪽으로 옮기라고 이야기 해 놓겠습니다.

 

아마 그쪽이 아하루님이 직접 움직이시는 것 보다 빠를겁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정말 고맙겟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드려야죠. 그럼 형수님 시신은 짐보만으로 모시나요?"

"네 그럴 작정입니다. 그곳에서 장례를 치루고 먼 훗날 하베이도로 옮길 생각입니다."

"그럼 짐보만에서 장례 준비도 미리 지시 해야겟군요"

"그런것 까지 신경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허허 감사라뇨 아하루님과 저와 어디 그런것 갖고 일일이 감사를 나눌 그런 사이던가요?"

수정구에서 쳄벌린이 두 팔을 벌리며 그렇게 말하고는 뒤 쪽에 있는 사람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그러다 생각나 것처럼 아하루를 향해 물었다.

"참 그럼 짐보만 쪽엔 언제쯤 도착합니까?

 

조카분을 그 전까지 모셔다 드리죠.

 

아하루님과 그날 크게 술한잔 해야겟습니다."

"아쉽짐ㄴ 그러지 못할 것 같군요.

 

전 장례식이 끝난 이후에나 갈겁니다."

"네?"

수정구에서 의아한 듯 물었다.

"제가 라이갈에 가려는 것은 카이엔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장님께서 카이엔을 데리고 와 주신다니 전 이대로 바로 룬으로 갈 작정입니다."

"으음... 하지만 아하루님에게 그런 큰일이 낫는데 저쪽에서도 조금 늦더라도 이해해 주겠죠"

"그럴테죠. 하지만 이왕 시작하는 거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편이 났겠죠."

"으음..."

수정구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좋습니다. 용병단은 아하루님이 이끄시니 아하루님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났겠지요.

 

부디 무사히 다녀오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아하루가 다시 한번 고개를 까닥였다.

"그럼 제가 사람편을 통해 룬으로 가는 가장빠른 마법진 표를 얻어서 보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움직여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바하무트 산자락 끝마디까지는 마법진이 없으니 당연한 것일테죠. 부디 부탁드립니다."

"하하 염려 놓으십시요. 그럼 나중에 뵙겟습니다."

수정구가 천천히 흐려지더니 다시 투명한 원래의 색으로 되돌아갔다.

 

수정구 앞에 앉아잇던 아하루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아하루가 팔짱을 끼고 한손으로 턱을 받친체 제법 분주해진 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침을 넘기며 사람들이 소음이 점점 더 커지며 상념에 잠긴 아하루가 있는 방을 메워가기 시작했다.

"카미야..."

아하루가 갑작스레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하루 스스로도 자신의 입 밖으로 나온것을

 

알지 못했던 그 소리는 어느새 방안을 가득 메운 창 밖의 소음에 묻혀 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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