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40장 재회형제(再會兄第)[완결]

오늘의 쉼터 2013. 12. 14. 10:50

 정협지 6권

 40 재회형제(再會兄第)[완결] 

 

다시만난 형제 

 

 

악중악이 숭산 삼로는 물론 열화천왕까지 단번에 물리쳐버리고 소위 무림의

고수급 인물이라는 위인들이 어느 한 사람도 그 앞에 얼씬도 못하게 된 것을 보자

관중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으며 입을 딱 벌리고 깜짝 놀라 자빠졌다.

그러나 그들은 노영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청년이 무슨 까덝으로 여기에 나타났는지 전혀 알 까닭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악중악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이 남해어부의 제자라는 것 쯤은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그러면 남해어부란 또한 어떠한 사람인지.

그런 인물의 이름을 관중들은 들어본 일도 없었다.

남해어부는 벌써 20여 년 전에. 

그의 30년이나 된 옛날부터 칼을 칼집에 깊이 꽂아버리고 은퇴 생활을 해왔으니

그와 때를 같이하는 늙은 선배급 고수들을 제외하고는 지금의 후배들로서는 

그의 이름도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 됐든 관중들이 제일 괴상하게 여기는 사실은 노영탄과 악중악이 너무나 똑같이 

생겼다는 점이었고 언뜻 보아서는 손톱만큼도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단지 의복과 태도가 다를 뿐이었고 그 얼굴에서는 조금도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없다는 데.

관중들은 극도의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었다.

숭양파와 회양방의 여러 사람들은 노영탄과 악중악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 무엇 때문에 여기 나타났다는 까덝도 알고 있었다.

이제 와서는 숭양파의 여러 사람들은 노영탄에게 희망을 거는 도리밖에 없게 되었다.

노영탄이 능히 악중악을 패배시켜 준다면.

그나마 스승을 배반한 이 역도를 응징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숭양파의 어떤 인물도. 영도자인 탁창가 까지도. 악중악의 적수가 되어서

그를 패배시키기는 어럽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숭양파의 여러 사람들은 비단 악중악이 스승을 배반한 행동을 응징하고싶을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점은 바로 그들의 진산보배요.

무림의 유일한 보물이라는 『숭양비급』에 있었다.

그 당년에 악중악이 스승을 배반하고 종적을 감추고 제멋대로 비급을 가지고 달아난 이후.

숭양파는 전체 인원을 총동원해서 도처로 악중악을 잡으려고 온갖 애를 써 왔지만 

오늘날 까지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악중악은 제 발로 걸어서 이 자리에 나타났다.

그러나 숭양파의 사람들은 눈앞에 역도를 똑똑히 보면서도 그를 붙잡을 길이 엾으며.

더군다나 『숭양비급』을 빼앗아들일 방법도 없는 것이다.

사실을 따지자면 오늘날 숭양파와 회양방이 서로 으르렁대고 다시 결투를 벌여서

30년 전의 원한을 청산하겠다고 하는 근본적 원인도 결국은 이『숭양비급』때문이다.

이점을 생각할 때 숭양파의 사람들은 실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옥신각신하는 동안에 밤도 꽤 깊어 갔다.

금사보 안에 나타나 있는 무림을 대표한다는 수십 명의 고수급 인물들도 모두 

얼빠진 사람들 같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경기대 위의 두 청년을 노려보며.

과연 그들이 어떠한 놀라운 무술의 재간을 발휘할 것인가 관심을 집중 시키고 있었다.

마침내 경기대 위에 버티고 서 있던 악중악은 별안간 오른손을 가슴 앞에서 휘감더니 

침통한 어조로 소리를 질렸다.

 

" 자아. 내 손을 받아라! "

 

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뻗쳐지며 손바닥을 따라서 몸이 날쌔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빠른 속도. 그 흔들림이 없는 몸가짐. 과연 그것은 무술의 내공. 외공이

모두 오묘 불가사의한 경지에 도달한 세련된 자세였다.

노영탄은 악중악이 진면목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내심 놀라기도 했고.

또 기쁨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악중악이 또다시 강호 천지에 나타나서 홀몸으로 금사보에 침입하여

공공연히 천하에 고수들을 대적하고 싸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반드시『숭양비급』 속의 온갖 재간을 철저히 터득했음이라고 볼 수 있으니.

이 점이 노영탄에게는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노영탄은 악중악이 한번 손을 쓰기 시작했을 때.

벌써 그의 무술이 놀라운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몇 명의 고수급 인물이 당장에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나버린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 지금의 악중악은 일년 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추호라도 그를 소흘히 다룰 수는 없다.

나의 온갖 재간을 기울려서 대적해야 겠다! '


노영탄은 이런 결심을 단단히 하면서 우선 악중악의 무섭게 발전된 무술 앞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심정 속에서도 노영탄은 일종의 기쁨과 흥분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벌써 1년 전부터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언젠고 다시 한번 악중악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희망이었다.

황산에서 악중악과 헤어졌을 때 노영탄은 이미 한 가지의 간절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악중악이『숭양비급』을 철저히 터득한다는 것을 두려워하기 전에.

악중악이 그것을 연구하고 터득해서 무림에 드문 적수가 돼주었으면 하는 대장부다운 희망이었다.

노영탄은 악중악의 뛰어나고 탁월한 천품을 믿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숭양비급』을 악중악에게 남겨주고 헤어졌던 것이다.

『숭양비급』에 대해서는. 강호에서 전해지는 말이 너무나 놀라웠다.

모든 사람들은 이 책을 마치 무술의 성서같이 알고 있었다.

누구든지 이 책만 수중에 넣을 수 있다면.

그는 곧 천하무적의 고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이 생각해 왔다.

그러나 노영탄은 『숭양비급』에 대해서 그 관점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으며.

과연 이 책이 그다지도 불가사의한 물건인가 하는 점에 커다란 의심을 품고 있었다.

악중악이 이런 점을 실제 눈앞에서 증명해 주었으면 하는 일종의 기대와 희망을 버려본 날이 없었다.

악중악은 비록 노영탄을 원수처럼 대한다고 하지만 노영탄은 악중악을 한번 대하고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앞섰다.

그것은 첫째로 연자심과의 관계에 대한 미안한 심정과 또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악중악을 

닮았다는 점에서 였다.

어쨌든 노영탄은 악중악에 대해서 어떤 미움이나 원한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감정은 악중악도 마찬가지였다.

노영탄에 대해서 뼈에 사무치도록 미움을 느끼고 있던 악중악도 연자심과 감욱형을 

만나본 뒤부터는 예전과 같이 노영탄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이제 또다시 노영탄을 눈앞에 놓고 보니.

자기 얼굴과 너무나 닮은 노영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악중악도 마음속에

이루 형언키 어려운 호감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극히 미묘한 감정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닮아서 남들이 마치 똑같은

한 사람으로 잘못 알아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을 때.

그들 두 사람의 심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악중악이 한번 손을 쓰고 공격을 가해 온 이상 노영탄도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노영탄도 선뜻 사문 절전이라는 건곤혼원장의 술법을 전개하여 팔괘의 방위를 정확하게 디디고

육효사상(六爻四象)의 바람과 번개가 일시에 폭발하듯 .

스승 남해어부가 평생을 기울려서 연구하고 단련해 낸 절예를 아낌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악중악은 필승의 신념을 든든히 간직하고. 그 손을 쓰는 품이 바로『숭양비급』의 정통적인

장법으로서 손을 휘젓는 품이나. 바람을 일어키는 솜씨나. 몸을 전후좌우로 돌리는 품이

완전히『숭양비급』과 관련성이 있었으며. 그가 얼마나 고심참담해서 터득한 동작인지를 

역력히 알 수 있었다.

노영탄과 악중악의 대결은 비단 무림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희안한 재간과 재간의 대결 일 뿐더러.

그것은 순전히 무술의 극치인 내공의 정화가 불을 뿜듯이 맞부딪히는 찬란한 장면이기도 했다.

둘이 10여 합이나 맞닥뜨려 보았을 때 경기대 아래서 구경을 하고 있던 고수급 인물들은

그제서야 그들 자신의 무술이 이들 두 청년에 비한다면 천양지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여기저기서  놀라며 탄복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떻게 승부가 날 것인가? 

넓은 마당에 가득 찬 관중들은 이제야말로 극도의 긴장 속에서.

이 세상 온갖 일을 잊어버린 사람들같이 경기대 위만 노려보면서.

일각이 삼추 같은 조급한 마음으로 승패의 결과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렇게 긴장된 판국에서. 경기대의 동북쪽 한 모퉁이에는 시커먼 어둠 속에서 단지 한 사람.

이상한 눈초리에 유난히 초조한 표정으로 경기대 위를 노려보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의 심정은 다른 관중들과는 딴판으로 극도의 초조감에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것만 같았다.

이 여인은 노영탄과 악중악이 승부를 내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두 사람 중에서 어떤 편이고 부상을 입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었다.


' 그러나 노영탄과 악중악이 결사적으로 싸운다면 결국 어떤 편이고

부상을 입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터인데 ................. '


여인은 이렇게 생각하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초조해졌으며.

경기대 위의 동정을 노려보며 일변 이 자리에 달려들어야만 될 또 다른 두 인물이

한시바삐 도착하기를 속을 태우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노영탄과 악중악은 이미 50여 합을 대결했다.

두 사람의 장력은 갈수록 억세어 질 뿐.

그 동작도 질풍과 같이 빨라지며 마치 바람개비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듯 일진일퇴.

전후 좌우 상하로 두 개의 사람의 그림자가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관중들은 경기대 위의 무술의 재간을 구경하는 데에만 도취해 있었다.

무시무시한 음모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바로 이때. 

금사보의 사면에 있는 보문이 홀연. 

소리도 내지않고 살거머니 잠겨지기 시작했다.

문 밖에 있는 구름다리도 갑자기 거둬들여 졌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이런 공작이 아무도 모르게 진행 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음모을 알고 있는 것은 흑지상인 고비와 마귀 두목 같은 몇몇 놈들 뿐이었다.

서쪽 휴게대 위에서는 흑지상인 고비의 눈동자가 괴상망측하게 빛났으며.

옆에 있는 몇 놈의 마귀 두목들과 무엇인지 수군수군 귀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몇 놈의 마귀 두목들은 무슨 말을 들었음인지.

다 같이 얼굴에 음충맞은 미소를 징글맞게 떠올렸다.

분명히 어떤 비밀 행동을 개시하기로 이제 결심을 든든히 했다는 표정들이었다.

얼마 안되어서 노영탄과 악중악은 5. 60장이나 대결을 했다.

노영탄은 건곤혼원장과 그의 비장의 술법인 네 가지의 절예를 가지고.

공격과 수비 어느 점에 있어서나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악중악은 『숭양비급』속의 비전의 장법으로. 그 장법은 지극히 침착 했으며 

그와 동시에 구궁착위대섬나법을 써가며 몸을 쓰는 품이 새가 날아가듯

빠르고 민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무리 오래 대결해 봐도 도저히 승패를 가리기 어려운 백중지세 였다.

이때. 악중악은 별안간 종고제명(鐘鼓齊鳴)의 술법을 써서 보다 억센

손바람의 힘을 뽐아내어 노영탄을 뒤로 몇 걸음 후퇴하게 만들어 놓았다.

노영탄이 약간 몸을 뒤로 뽑았을 때. 악중악은 홀연 걸음을 멈추고 손바람을 거두며 

껄껄껄껄 호탕하게 웃어 젖히더니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 노가란 친구! 자네 재간도 과연 어지간 하이!

그러나 나는 이 이상 자네하고 시간만 끌고 있을 수는 없으니.

우리 대장부답게 칼을 뽑아들기로 하세! 

이 악중악이 천목산에서 자네에게 받았던 일검을 이 자리에서 청산 하기로 하지!

핫핫핫 ........... "

웃음 소리가 그치자마자 팔을 쭉 뽑더니 등들미로 가져갔다.

쨍! 하는 쇳소리와 함께 눈부신 금광이 사방으로 발산되면서 숭양파의 유일한 

비전의 무기 옥룡검이 칼집 밖으로 나와서 악중악의 손에 잡혀졌다.

노영탄도 그말을 듣더니 자못 동감이라는 표정이었다.

장력을 가지고는 밤이 새도록 해밨댔자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이니 

차라리 칼을 뽑아 들고 자웅을 겨루어 보는 편이 빨리 끝장이 나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리하여 노영탄도 등에 짊어지고 있던 보따리 속에서 금서 보검을 선뜻 뽑아들었다.

새파랗고 싸늘한 한 줄기 광채가 뻗쳐서 눈부시게 하는 칼날을 한번 번쩍 쳐더니.

마치 울부짖는 것같이 무서운 쇳소리가 기다랗게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어둠 속에서 남몰래 경기대 위를 노려보고 있던 감욱형은 악중악과 노영탄이

칼을 뽑아 드는 것을 보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상한 일이다! 

이자리에 꼭 와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어째서 여태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감욱형이 초조하게 누구를 기다리는 심정은 안타깝기 이를 데 없었다.

경기대 위에서는 악중악과 노영탄이 각각 칼을 뽑아 들고 상대방을 노려보며 대결하고 서 있었다.

악중악이 먼저 칼을 휘두르면서 호통을 쳤다.


" 자아! 내 칼을 먼저 받아라! "


악중악의 옥룡검은 바다라도 뒤집어엎을 기세로 중궁(中宮)을 노리고. 

노영탄의 앙가슴을 정면으로 습격해 들어가며 쉭쉭!

매서운 쇳소리를 냈다.

노영탄은 악중악이 칼을 쓰기 시작하는 첫째 동작을 보고.

벌써 그것이 옛날의 천강검 술법과 대동소이 함을 간파했다.

그러나 칼에서 이는 바람은 예전보다 훨씬 맹렬했고.

쇳소리도 쨍쨍 울리는 품이 옛날의 악중악과 딴판으로 

놀라운 술법이라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다.

 기대 래 숭양파의 여러 사람들은 악중악이 옥룡검을 뽑아 드는 것을 보자 

당장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불길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칼을 쓰기 시작하는 악중악의 솜씨를 보자 또한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악중악의 칼을 쓰기 시작하는 품이 천강검의 술법과 다른 점이 없다고는 하지만.

빠르고 민첩하기 이를 데 없었고 어떠한 신출귀몰한 재간을 부릴지 예측하기도 

어려웠으며 바람소리 쇳소리가 너무나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천강검의 술법이란 본래가 숭양장로에게서 유전되어 내려온 것이며.

숭양장로가 천강검의 술법을 연구하고 터득해 냈다는 것은 오로지『숭양비급』의

일부분의 힘이었으니.

이제『숭양비급』속의 온갖 재간을 자기 것으로 만든 악중악의 술법에 

보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천강검을 단련하던 시절부터 악중악은 뛰어난 술법을 지녔었다.

이 천품을 인정했기 때문에 철장단심 탁창가가 그를 숭양파의 후계자로 뽑아냈는데.

이제 악중악은 정확한 청강검의 술법에다『숭양비급』까지 연구하고 터득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으니

그가 칼을 쓰는 품은 일찍이 숭양파의 어떤 사람도 구경하지 못했으며 상상도 할 수 없던

절묘한 기술이 아닐 수 없었다.

악중악의 신기한 검법. 관중들의 시선은 악중악의 칼끝으로만 쏠렸다.

 

' 흐음! 대단한 발전을 했구나!

그 동안 악중악은 『숭양비급』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연마했구나!'

 

이런 점을 재빨리 간파한 노영탄은 서슴치 않고 건곤혼원검의 술법을 전개했다.

팔괘의 방위를 정확하게 밟고 진퇴를 전부 괘상을 따라 움직이면서 온갖 힘을 팔에 모아.

쳐들어 오는 악중악의 칼을 막아낼 수 있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노영탄과 악중악의 칼날은 10여 차례나 맞부딪혔다.

악중악의 옥룡검은 점점 더 사나운 기세로 매서운 바람소리와 쇳소리를 내면서 

노영탄의 급소만 노리고 질풍같이 습격해 들어갔다.

노영탄도 필사적으로 싸웠다.

털끝만큼도 흔들림이 없는 정신으로 칼자루에 온갖 힘을 기울려서 건곤혼원검 술법의 

모든 정화를 아낌없이 발휘하면서 일공일수. 금서 보검은 허공에서 춤을 추는 듯 

둥근 광막을 펼쳐 나가면서 자신을 그 광막 속에서 유유히 보호하고 있었다.

장력만이 아니라. 

검술에 있어서도 두 사람의 실력이나 재간은 얼핏 강약을 가려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악중악이 최후로 추운언월십이식의 술법을 전개했을 때. 

갑자기 그의 칼날의 위력은 무서워지면서 무지개 같은 검광을 뻗치고 노영탄에게로 

정면으로 육박해 들어갔다.

이때. 노영탄은 손과 발의 움직임이 다소 흐트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문가의 눈으로 본다면 그것은 한 개의 약점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고수끼리 대적할 경우에 털끝만한 흔들림이라도 드러낸다는 것은 

이미 그 한 가지의 약점으로써 패배의 징조를 나타냄이 되기 때문이다.

홀연 노영탄의 머리속을 스치는 번개 같은 생각이 있었다 

내심 기쁨을 금치 못하여 즉각에 또 한번 힘을 뽑아내어 두 발로 땅을 한번 쿵하고

구르는 순간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노영탄은 마침내 저 호수 및 동굴 속에서 연구하고 배워두었던 네 가지의 남모르는

절예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일단의 난상봉저의 술법을 써서 악중악의 머리 위를 날면서.

금서보검이 한 장도 더되는 광망을 퍼뜨리며 악중악의 머리를 겨누고 내리쳐 들어갔다.

악중악은 노영탄이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고 술법을 돌변하는 것을 보자.

암암리에 극도의 경계심을 품었다.

그러나 노영탄의 칼이 허공으로부터 쳐내려왔을 때.

악중악은 어쩔 수 없이 칼을 뽑아 몸을 뒤로 피하였으며.

그 이상 쫓아 올라갈 수도 없게 되어서 공세에서 수세를 취할 도리밖에 없게 되었다.

 제일단의 술법에서 놀라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자.

노영탄은 즉각 .

제이단의 술법인 용비어조의 술법을 전개하여 

몸은 여전히 허공에 떠가지고 손과 발을 활짝 벌리며. 

이번에는 금서 보검을 옆으로 써서 악중악의 머리를 쓸어버리려고 했다.

여태까지 우세에 서 있던 악중악은 갑자기 노영탄의 두 가지 술법 때문에

수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심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 도대체 이놈의 돌변하는 술법은 뭐라는 수법일까?'


그러나 도무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악중악은 내공이나 외공 어느 면에 있어서나 

이미 무술의 오묘한 경지에 도달한 몸인지라.

그것이 무슨 술법인지 모르면서도 자기가 지닌 기본적인 실력으로써 

무난히 막아내기는 했지만 어째든 피동적이요.

수비적인 열세에 빠진 것만은 자신도 알 수 있었다.

노영탄의 쳐들어오는 칼날을 막아내고 피하고 하면서도.

악중악은 도무지 알아낼 수 없는 노영탄의 술법에 의문을 품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인 즉 노영탄의 네 가지의 술법은 『숭양비급』의 술법과 상보상성(相補相成)

상극상제(相剋相制) 하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이 네 가지의 술법을 터득하고 또 『숭양비급』까지 아울러 연마한 인물이 있다면.

이런 인물 앞에서는 비단 노영탄도 견딜 수 없을 뿐더러 강호의 어떤 인물이라도.

남해어부와 같은 무술의 권위자라 할지라도 감히 대적해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네 가지 독특한 술법은『숭양비급』과 분리해서 있었기 때문에

그 극제(剋制)의 연관성만을 발휘할 수 있을 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으로써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오묘한 점을 노영탄 자신도 터득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저 단순히 악중악의 공세 앞에 사태가 급박해지는 순간에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이 독특한 술법을 써서 그 공세를 피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그런 것이 의외의 위력이 발휘되는 것을 깨닫자.

노영탄은 연거푸 제3단의 술법인 이참규가의 술법을 전개하여 악중악의 등들미로 

돌아들며 무서운 공세를 가했다.

악중악은 등들미로 쳐들어오는 노영탄의 공세 앞에 날쌔게 몸을 홱뒤집고 재빨리 막아냈다.

손에잡은 옥룡검이 번개처럼 번쩍 하고 검광을 발사하는 순간.

그것은 마치 한 올의 금실과도 같이 가슴 앞을 가로 막으며 노영탄으로 하여금

자기의 급소를 노릴 만한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노영탄은 그대로 몸을 옆으로 천천히 발을 움직이며 연거푸

그의 최후의 일단의 수법인 호약원등의 수법을 전개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연거푸 네 가지 독특한 술법을 쓰는 노영탄의 공세를 세 가지까지 간신히 막아낸 악중악은

또다시 네 번째 술법이 연거푸 전개 되는 것을 보자.

다소 당혹감을 감출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노영탄은 점점 더 투지가 만만하고 신바람이 나서 금서 보검을 

최후로 멋들어지게 휘두러며 장흥관일의 술법으로 비호같이 악중악의

어깻죽지를 내리쳐서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 버리려고 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아차하면 악중악이 노영탄의 칼 끝에 찔려서 쓰러져야만 될 아슬아슬한 찰나에 홀연.


" 에그머니나 아앗! "


자지러지는 어떤 여인의 칼날 같은 음성이 넓은 마당을 찌를 듯이 울려 펴졌다.

두 사람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이라도 칼끝에 찔리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는

미칠 것만 같은 비명 소리였다.

노영탄은 그 소리를 듣자 가슴이 뜨끔했다.

마치 자기 자신이 칼 끝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섬뜩해져서

앞으로 찌러던 칼끝을 주춤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얼빠진 사람같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악중악의 한 옆에 우뚝 섰다.

악중악은 번쩍 하고 검광이 자기 신변 가까이 스쳐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찰나.

기가 그 칼 끝에 부상을 입고야 말리라는 판단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몸을 피하려 해도 피할 도리가 없는 아슬아슬한 찰나에 이상하게도 노영탄이 

칼을 멈추고 우뚝 한 옆에 서는지라.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퍼뜩! 칼을 뒤집어 노영탄의 가슴 앞을 푹그어버리려고 했다.

바람같이 요란한 쇳소리.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악중악의 칼 끝은 노영탄의 목들미를 스쳤을 뿐이었다.

똑! 하는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노영탄이 낮이나 밤이나 목에 걸고 있던 옥패의 줄이 칼끝에 스쳐서 끊어진 것이다.

옥룡검 칼끝에 줄이 끊어져서 땅에 떨어진 한 개의 옥패 그것을 내려다보는 순간.


" 으아앗!  이건? "


악중악은 목청이 터질 듯이 놀라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여태까지 단단히 옥룡검을 잡고 있던 손가락이 스르르 풀리며

칼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악중악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노영탄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노려봤다.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실신한 사람같이 서 있기만 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 악중악은 바른 정신을 회복한 모양이었다.

뱃속에서 우러나는 침통한 음성으로 숨 가쁘게 외쳤다.


" 너 ........ 너 ......... 너는? 바로 네가? "


노영탄은 그 광경을 보자 어리둥절 할 뿐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악중악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서 얼빠진 사람처럼 멍청히

바라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악중악은 홀연. 어떤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 모양이었다.

황급히 한쪽 팔을 뻗더니 앞가슴의 옷자락을 풀어헤쳤다.

목에 걸려 있는 기다란 목걸이 줄을 끄집어내더니.

그 끝에서 또 다른 옥패를 꺼내서 손에 들었다.

그 옥패의 형상과 빛깔은 노영탄의 목에서 칼 끝에 스쳐서 땅에 떨어진 옥패와 똑같았다.

단지 거기 새겨진 무늬가 다를 뿐이었다.


먼 옛날. 노복. 노성이 임종이 눈앞에 다가드는 처참한 순간에.

소년 노영탄에게 유언을 남기고 길이 잘 간직하라고 손에 쥐어준 옥패 반쪽.

거기에는 봉이 새겨져 있고 또 다른 반쪽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고한 바로 그 옥패.

노영탄은 악중악이 손에 들고 있는 옥패 반쪽을 유심히 들여다 보자.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밀려 나오는 외마디 소리를 질렸다.


" 다......... 다......... 당신은?  당신이 바로?  "


노영탄은 땅위에 떨어진 자기의 옥패짝을 선뜻 집어들고 악중악의 턱밑으로 달려갔다.

둘은 두 짝의 옥패를 맞붙여보았다.

봉의 무늬와 용의 무늬.

과연 그것은 두 짝이 합쳐서 털끝만한 틈도 벌어지지 않는 한 개의 옥패가 되는 것이었다.

덥석!  악중악과 노영탄은 일시에 얼사안았다.

둘의 눈에는 똑같이 눈물이 글썽해졌다.

슬프다 해야 할지.

기쁘다해야 할지.

놀랍다 해야 할지.

신기롭다 해야 할지 ...........

둘의 심정은 그 어떤 것이라고 꼬집어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가슴이 벅찼다.

그들은 똑같이 목구멍에 무엇이 찔린 것처럼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간신히 입을 열어서 하는 소리가 .


" 혀 ......... 형님! "

" 내 ........  내아우 ........아우  ........... ! "


여태까지 목숨을 내걸고 싸우던 두 청년이 으스러지듯 꼭 부등켜 안고.

똑같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두 볼을 적셨다.

그러다가는 껑충껑충 뛰고. 미친 사람같이 웃고. 

또 울고 ............

경기대 아래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극도로 폭발된 기쁨과 흥분의 감정은 옆에서 사람들이 본다는 

사실도 안중에 있을 리 없었다.

두 사람은 어린아이들 같이 펄펄 날뛸 뿐이었다.


바로 이때. 난데없이 아우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 야아! 큰일 났다! "

" 와아! 모두 죽는 판이다! "


살기등등한 고함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하늘을 찌르며 울려퍼지고.

경긷대 아래 관중들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와걸와걸. 웅성웅성 보가 터진 물줄기처럼 금사보의 밖으로 통하는 문을 찾아서 

밀려나가는 것이었다.


본래가 이 미묘한 기회를 포착해서 회양방 놈들은 엉큼스런 음모를 꾸며.

금사보의 사방 통행문을 단단히 잠가버리고 온갖 무기를 일시에 동원하여.

숭양파의 전원을 독안에 든 생쥐처럼 일망타진해 버리자는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런 혼란한 틈을 타서 흑지상인 고비는 풍우도인 일속자와 운몽 노인과 

열화천왕 합일기와 힘을 합쳐서 악중악과 노영탄을 당장에 포위하고 호통을 쳤다.


" 요 철부지 놈들아! 

빨리『숭양비급』을 바쳐라!

그렇치 않으면 이 금사보 안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는 못 나갈 줄 알아라! "

 

회양방의 네 놈들은 눈을 부릅뜨고 집어삼킬 듯이 덤벼들었다.

흑지상인 고비와 열화천왕은 악중악에게로 덤벼들었다.

그러나 악중악과 노영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대들을 바라다보며.

도리어 싱글싱글 양편으로 갈라서서 덤빌태면 덤벼보라는 태연한 자세를 취하며

버티고 섰을 뿐이었다.

이때 벌써 숭양파와 회양방의 전체 인원들은 일 대 일. 혹은 일 대 이. 

닥치는 대로 서로 달라붙어서 일대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다.

수많은 관중들도 이미 금사보의 사방 통행문이 열릴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달아나려 해도 달아날 길이 완전히 막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벌떼같이 이리 몰리고 저리몰리고 제각기 두 패로 갈라져서 치고 받고 때리고 ..........

역시 난장판을 이루며 싸우고 있었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하늘의 달과 별도 힘을 잃은 듯.

금사보 안이 뒤집어엎어질 것만같이 야단법석이 일어나고 있을 때.

난데없이 바깥쪽 보루로부터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 야아! "


여러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어리둥절했을 때.

또 연거푸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 손들을 멈추어라! "


흑지상인과 열화천왕은 그 호통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기는 했으나.

여전히 손을 멈추려 들지 않고 악중악에게 맹렬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이 순간에 어떤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번쩍! 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펑! 하는 날카롭고 매서운 소리가 이어졌다.

흑지상인과 열화천왕은 누군지도 모르게 이 장면에 달려든

어떤 사람의 일장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뒷걸음질을 치면서 

비칠비칠 몇 걸음을 물러나서야 간신히 몸을 가누고 설 수 있었다.

 이 놀라운 광경 앞에 넓은 마당 전체가 물을 끼얹은 듯 금세 조용해졌다.

숭양파 회양방 쌍방이 다 같이 싸움을 중지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난데없이 날아들어서 흑지상인 고비를

뒤로 물러서게 만든 그 인물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는 다름이 아니라 남해어부였다.


" 핫핫핫! "


남해어부 상관학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싸움판을 한번 비로 쓸듯이 휩쓸어보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남해어부의 위엄이 넘쳐흐르는 근엄한 모습에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지는 듯

감히 경거망동을 하는 자가 없었다.

무림에서 내로라 하고 뽐내는 흑지상인과 열화천왕 합일기를 일장으로써 뒤로 물러서게 하는

남해어부 앞에서 누가 감히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이랴.

 남해어부 상관학은 선뜻 경기대 위로 뛰어올라 섰다.

엄격한 목소리가 찌렁찌렁 울리면서 경기대 아래 관중석까지 골고루 퍼졌다.


" 오늘날 숭양파. 회양방 쌍방의 무술 경기대회는 그 원인이 무엇이고 시시곡직이

어느 편에 있든 간에 이와같은 음모의 수단을 쓴다는 것은 응당 무림의 공징의 대상이 되는 것이오.

소생은 일찍부터 회양방 인원 가운데 몇몇 불법지도가 있어서 강호 무예도의 규칙을 무시하고

함부로 악독한 짓을 일삼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소! "


남해어부 상관학이 여기까지 말하고 났을 때.

홀연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에잇! 시끄럽다! "

" 늙은것이 주제넘게! "

" 그 따위 소리 집어치워라! "


흑지상인. 열화천왕 합일기 그리고 운몽 노인. 일속자 이렇게 넷이서

일시에 고함을 지르면서 돌연 껑충 뛰어 경기대 위로 올라서더니

일제히 손바람을 일어켜 남해어부에게 집중공격을 게시했다.

남해어부의 얼굴빛이 어느 때보다도 침통해졌다.

그러나 추호도 흔들림없는 태도로 점잖게 호통을 쳤다.


" 이 늙은 몸은 그래도 그대들에게 인정을 남겨두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고 보면 그대들은 일후에라도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태지!

좋다! 나를 따라서 경기대 아래로 내려가자! "


남해어부는 몸을 한번 훌쩍 하고 뒤집더니 벌써 경기대 아래로 내려서 있었다.

네 놈의 회양방 두목들도 남해어부를 따라서 선뜻 경기대 아래로 뛰어내렸다.

남해어부가 채 발을 붙이고 서서 위치를 바로잡기도 전에.

흑지상인 고비는 비급하게도 남해어부의 등들미에다 일장의 공격을 가했다.

도습의 비열한 수단을 써서라도 남해어부를 거꾸러뜨리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때. 누가 또한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공중으로부터 또 다른 인물이 표연히 바람처럼 내려섰다.

그 인물은 한쪽손을 슬쩍 한번 휘두르기만 했는데.

그것으로 벌써 흑지상인이 도습을 감행하려는 손바람을 무난히 막아냈다.

이 틈을 타서 노영탄과 악중악도 흑지상인에게 맹렬한 공격을 가하며 덤벼들었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몸을 돌리고 껄껄 웃으면서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 아핫핫 ....... 우리 도우 ....... 어째서 이다지 늦게 도착하셨소.

어쨌든 위급을 구해 준 당신의 지금의 일장에는 감격할 뿐이오! "


이 아슬아슬한 장면에 뒤늦게 날아든 인물은 다름이 아니라 오매천녀.

바로 그 노파였다.

 오매천녀가 싱글싱글 미소를 띠며 대답하는 말이.


" 상관 도우 ...........

이렇게 늦게야 도착해서 심히 죄송하오.

그러나 나를 책망하지는 마시오.

나는 기쁜 소식을 한 가지전해 드리려고 부랴부랴 달려온 길이니 ........... "


기쁜소식?

남해어부 상관학은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 오매천녀의 표정을 살피고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이때 숭양파 쪽에서는 탁창가. 낭월대사를 비롯한 수많은 노소 영웅들이 

모두 남해어부와 오매천녀 곁으로 몰려들어서 정중히 절하고 인사를 드렸다.

한편 회양방 쪽에서도 흑지상인을 비롯한 여러 마귀 두목 같은 존재들도.

나타난 인물이 어떠한 인물이라는 것을 그제야 똑바로 알아차리자

찍소리도 못하고 감히 두 번 다시 경거망동을 할 만한 용기를 잃게 되었다.


" 아하하핫 ........ 내 이런 결과가 될  미리부터 알고 있었어."


남해어부는 회양방 쪽으로 점잖게 걸어가면서 흑지상인 고비에게 타이르듯이 입을 열었다.


" 내가 보건대. 그대는 역시 공동산으로 돌아가서 은거 생활이나 한다면 

분수에 맞는 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방주니 뭐니 하고

주제넘은 짓을 하려 든단 말인가!"


이렇게 점잖게 꾸짓고 나더니

다시 회양방의 여러 마귀 두목들을 한 번 훑어보면서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 그대들이 중원 무림에 다시 나타나서 섣불리 날뛰고 있는 까닭을 나는 알고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물론. 여하한 특수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누구를 막론하고『숭양비급』을 수중에 넣고 싶다는 망상은 깨끗이 버리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게다! "


흑지상인 고비는 그 말을 듣더니 만면에 불쾌한 빛이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한편 부끄러운 빛을 디고 한참 동안이나 머리를 수그리고 곰곰 생각하더니.

번쩍 머리를 다시 쳐들고 남해어부에게 말햇다.


" 상관 선배님의 말씀 과연 일리가 있소 .......

후배 고비. 무예계에 정통하지도 못한 몸으로서.

남을 따를 수 없는 미흡한 재간을 가지고 이번에 다시 강호에 얼굴을 나타냈다가.

과연 배우고 경험한 바 많았소 ............

고비는 이대로 여기서 고별하겠소!

일후에 다시 뵐 기회가 있을 것이오! "


말을 마치자.

그 자리에 오래 머뭇거리기도 부끄럽다는 듯 두 발로 쿵 하고 구르더니

그대로 날아서 바깥 보루 쪽으로 쏜살같이 종적을 감추고 말앗다.

남해어부는 흑지상인 고비가 이미 사라지 것을 보자.

머리를 옆으로 흔들며 탄식하는 말이.


" 저자는 죽어도 재 고집을 못 버리는 자로군!

이렇게 혼이나고도 추호도뉘우침을 모르니 

일후에 또다시 무림에 우환을 일어킬는지도......"


남해어부는 회양방 쪽을 휘들러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 고비란 자도 이미 사라지고 없는 이 마당에서.

나의 생각같아서는그대들도 이 이상 이곳에서 머뭇거릴 것 없이 

각각 본고장으로 돌아가서 정신이나 수양하고 여생을 마음 편히 지내는것이 좋을 것이다!

그대들은 이 늙은 어부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운몽 노인. 열하천왕. 일속자 그리고 그밖에 여러 회양방의 방도들은

꿀먹은 벙어리 모양 말이 없었다.

넋이 빠진 위인들처럼 한참 동안이나 남해어부의 얼굴만 멀거니 바라다보고 있더니.

이윽고 뿔뿔이 흩어져서 금사보 밖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때. 금사보의 사방 통행문은 누구의 손으론지 열려져 있었다.

하루 낮 밤을  우리 속에 갇혀 있던 무수한 관중들은 특사나 받은 죄수들 처럼 

그제서야 터져나는 물줄기같이 금사보의 문 밖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오랜 동안 극악무도한 짓을 일삼고 영화를 자랑하며 철옹성 같은 경비를 뽐내든

회양방의 아성 금사보도 삽시간에 페허같이 쓸쓸하고 조용해졌다.

단지 숭양파의 사람들이 남아 있을 뿐.

그밖에도 오갈 데 없는 회양방의 하찮은 졸도들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비실비실 어정 대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금사보 안에서는 난데없이 징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모든 사람들이 무슨 사고가 발생했나 해서 깜짝 놀랐다.

오매천녀가 하는 말이.


" 여러분 놀랄 것 없소. 

이것은 회양방의 새 방주가 방도를 소집하는 징 소리니까 ......... "


그리고 노영탄을 향해서 말했다.


" 영탄아! 너는 빨리 가서 연자심을 도와주어야 할 게 아니냐? "

" 연자심이요? 자심이? "


노영탄은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오매천녀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하는 말이.


" 연자심이 회양방의 새 방주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너는 생각지 못했느냐? "


노영탄은 악중악을 흘끗 쳐다보면서도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중악이 선뜻 웃으면서 말하기를.


" 영탄아. 어서 가보지 않고 뭘 또 망설이느냐? "


그제서야 노영탄은 스승 남해어부에게 고별의 인사를 하고

금사보 안족 보루로 날듯이 사라 졌다.

오매천녀는 노영탄이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더니

다시 머리를 돌리고 악중악에게 말했다.


" 중악아! 너도 빨리 가서 감씨댁 아가씨를 만나보아라.

욱형이는 벌써부터 서편 보문에서 너를 기다리며 빨리 보내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악중악은 그제서야 남해어부와 오매천녀에게 정중하게 절을 하고 몸을 돌려서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철장단심 탁창가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허리에 차고 있던 옥룡검을 풀고 동시에 품안으로부터 누른 비단 보자기에 싼

『숭양비급』을 꺼내서 쌍수로 받들어 정중하게 탁창가에게 돌려주었다.

탁창가가 입을 열어서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악중악은 흘쩍 몸을 돌리고 그 자리를 떠서 저편으로 달음질쳐 버렸다.

그러나 홱 돌아서서 뺑소니치는 악중악의 두 눈에는 구슬 같은 눈물 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회양방의 무리들도. 그리고 모든 젊은 남여들도 모두 저의 갈 길을 찾아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남해어부는 오매천녀의 얼굴을 흘끗 함번 쳐다보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 오매 도우. 정말 수고해 주어서 감사하오.

그런데 좀 전에 말씀하신 기쁜 소식이란 무엇이오?

무슨 사고라도 발생했다는거요? "

 

오매천녀는 그 말을 듣더니 갑자기 정색을 하고 대답을 했다.

 

" 방금 내가 금사보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을 때.

몇 놈의 마귀 두목같은 놈들이 문을 지키고 시비를 걸어서 하마트면 봉변을 당할 뻔 했소.

다행히 어떤 분이 나타나서 그놈들을 모두 밖으로 몰아내고 길을 틔워주어서 

여간 힘이 된 게 아니었소. "


남해어부는 한참 동안이나 무엇인가 묵묵히 생각하면서 말이 없었다.

자기 혼자만의 생각에 곰곰젖는 듯 하면서도 또한 그 생각을 못 믿겠다는 듯.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오매천녀에게 물었다.


" 대체 오매 도우에게 그런 고마운 힘이 되어드린 인물이 누구란 말이오? "


오매천녀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 그는 감씨댁 아가씨의 스승. 바로 상관 도우의 부인이시오. "

" 뭣이?  바로 옛날에 나를 배반하고 종적을 감췄던 바로 그 여인이? "

" 맞았소! 그들 스승과 제자는 모두 서편 보문에서 상관 도우를 기다리고 있소.

빨리 가보시오."


 남해어부는 두 손을 공손히 모아서 오매천녀에게 절을 하고.

몸을 흘쩍 날려 서편 보문을 향해 사라졌다.


어느덧 날이 밝았다.

새벽 안개가 점점 걷히고 태양이 얼굴을 들기 시작했다.

금사보의 거대한 건물이 벌판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을 뿐.

무림의 원수니 은혜니 인정이니 하는 모든 복잡한 감정이 구름처럼.

연기처럼 흩어져서 사라지고 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