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39장 복면괴ㅁ(覆面怪ㅁ)

오늘의 쉼터 2013. 12. 14. 10:43

정협지 6권

 

39 복면괴한(覆面怪ㅁ)

 

 

 

복면한 사나이 

 

 

 

 

 

이튿날 아침.

 

눈부신 햇살이 경기대를 비치자마자 관중들은 또한 어제와 같이 경기대 주변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시간에 따라 여전히 쌍방에서 쟁쟁한 고수들이 뒤어들어와서 온갖 재능을 발휘했고

 

일진일퇴 시종 긴장된 시간이 흘러갔다.

 

오후에 이르러서 쌍방의 전적은 아슬아슬한 숫자를 나타냈다.

 

회양방. 숭양파가 각각 똑같이 팔장을 이겨서 동점이 된 것이다.

 

쌍방이 다 같이 이미 나올 만한 인물은 모조리 나와서 한바탕씩 치르고 물러났으며.

 

아직도 출장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 둘 남았을 정도였다.

 

회양방 편에는 단지 흑지상인 고비와 회양방에서 특별히 초청해 온

 

고비의 다년간의 친구인 풍우도인 두 사람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숭양파 편에는 철장단심 탁창가와 또 한 사람 백납노도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 마지막 판국은 순서로 따져서 회양방 편에서 먼저 어떤 인물이고 출장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대표자 흑지상인 고비가 옷자락을 바람처럼 휘날리더니

 

몸을 꿈틀 쉭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경기대 위로 뛰어올랐다.

 

두 발을 붙들고 서자마자 그는 숭양파 쪽을 휘둘러보면서 목청을 뽑았다.

 

 

 

" 이틀 동안 질서정연하게 정정당당히 싸워오는 동안에 쌍방이 각각 팔 장을 승리했소.

 

이제는 대국을 결정지을 최후 일 장이 남았을 뿐이오.

 

이 고비 비록 재간도 없는 몸이라지만 회양방을 대표하여 출전했으니.

 

숭양파에서도 영도자 탁창가 도장이 몸소 출전하기 바라오. "

 

흑지상인 고비가 도전을 하지 않는다 해도 철장단심 탁창가는

 

자진해서 경기대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마지막 판국이었다.

 

흑지상인의 말을 듣자.

 

탁창가는 선뜻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에 걸치고 있던 학창을 흘쩍 벗어서 한편으로 던지며 숭양파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두 손을 맞잡아 절레절레 흔들어서 인사를 하고 입을 열었다.

 

 

 

" 이제 최후의 일 장의 경기가 남았을 뿐이니

 

이 일 짱의 경기는 우리 숭양파의 생사존망을 결정지을 싸움이오.

 

어제부터 오늘까지 꾸준히 경기를 해오는 동안에.

 

우리 숭양파는 여러분의 노력과 협조를 얻어서 영광스러운 전적을 획득하게 됐소.

 

이 탁창가는 우리 숭양파의 대표자 되는 입장에서 이 중대한 국면에 처하여.

 

자신의 무술의 힘이 보잘것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바이지만 우리파를 위해

 

순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전심전력을 기울려서 하늘에 계신 조사의 영혼이

 

기대하는 바에 어긋나지 않도록 결심하는 바이오 !"

 

 

 

말을 마치더니.

 

비장한 표정을 하고 경기대 위로 뛰어 올랐다.

 

한편 흑지상인 고비는 경기대 위로 뛰어 올라온 탁창가를 보자.

 

두 손을 맞잡아 흔들면서 인사를 표시하며 하는 말이.

 

 

 

" 탁창가 도장! 우리 두 사람의 승부는 이 일 장 싸움에 곧 결정될 것이오.

 

만일에 이 고비가 패할 때에는 우리 회양방은 즉각 해산하고 두 번 다시 강호에

 

얼굴을 내놓지 않을 것이며 절대로 비급한 변명도 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그 반대로 탁창가 도장이 패하는 경우에는 이미 우리가 약속한 대로

 

우리 회양방의 고루령기를 깨끗이 돌려 보내주어야 되겠소. "

 

 

 

철장단심 탁창가도 거기 선뜻 응했다.

 

 

 

" 대장부. 한번 말을 해놓은 이상에는 흑이건 백이건 간에 어찌 후회를 하거나.

 

또는 약속한 바를 배신하겠소!

 

고방주는 그런 점은 추호라도 걱정할 것 없다고 명백히 말씀드리오! "

 

 

 

말을 마치자.

 

철장단심 탁창가는 곧 뒤로 물러서서 싸움할 태세를 갖추고

 

심각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탁창가의 말을 듣고 난 고비도 선뜻 뒤로 물러나가

 

탁창가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상대하고 서서 우렁찬 음성으로 소리를 질렸다.

 

 

 

" 자! 시작합시다.

 

 

 

소리를지르는 순간에 벌써 그의 두 손은 바람을 일어켰고.

 

몸 전체가 그 바람을 따라서 탁창가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육박해 들어갔다.

 

철장단심 탁창가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흑지상인 고비가 손을 쓰기 시작하는 것을 보자.

 

즉각 반격을 가해 막아내면서 두 발로 땅을 단단히 디디고 버티었다.

 

이들 두 사람은 똑같이 당대의 고수들이다.

 

이 한판 싸움의 승패란 단순히 개인의 영예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한 방과 함 파의 문호가 생존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중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어느쪽이나 똑같이 절대로 경거망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들 고수라는 인물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즉각 싸움의 대국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니.

 

손가락 하나라도 경솔히 쓰지 못할 최후 일각의 긴장된 판국에 서 있는 것이다.

 

철장단심 탁창가로 말하자면 숭양파의 대표자라는 위치에서 내공 외고 어느 모로 보나

 

무술의 기초가 깊고 든든할 뿐더러 일찍이 20여 년 전에 숭양파와 회양방의

 

제1차 결전을 겪은 이후 숭양파를 계승함에 따라 무술의 재간이나 실력도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이제는 무림에서 반석같이 흔들림이 없는 고수급 존재임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는 무술의 재간뿐만아니라 그의 성격이 평소에도 냉정 침착한 인물인 지라.

 

 이제 생사를 판가름하는 긴장된 순간에 처해 있으면서도 추호도 당황하거나 조급함이 없이

 

여유작작한 태도로 바윗돌처럼 위엄있게 적을 대하고 서 있는 것이다.

 

 

 

한편 흑지상인 고비로 말하자면.

 

누구보다도 그 쟁쟁한 명성을 다년간 강호에 떨치고 있는 늙은 마귀 같은 존재다.

 

지난번에 홍택호 앵무주에서 탁창가와 더불어 대결해 본 일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때에는 그의 온갖 재간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둘이 다 같이 총망중에 정신도 못차리고 뿔뿔이 헤어져버린 데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대결만은  그런 어물어물하는 수작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흑지상인은 공동산에 은거하기를 20여 년 천하의 온갖 기묘한 무술을 연마했다고

 

스스로 뽐내는 만큼 비록 상대방인 탁창가를 경솔히 다룰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하지만.

 

그 역시 태연자약 추호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무술로 생사를 판가름하는 마당에서는

 

어느 편이 더 냉정하고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느냐 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누가 힘이 더 세고 누가 더 버티기를 잘하고 꾸준히 승리의 순간으로 끌고 나가느냐

 

하는 것은 그들이 결전에 임하는 태도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무술 실력이 비등비등할 뿐더러.

 

그 가라앉은 태도의 냉정 침착 여유작작함에 어느 쪽도 기우는 품을 찾아낼 수 없으니.

 

한번 손을 쓰기 시작한다면 저마다 일생일대의 절예를 발휘하여 결사적으로싸울 것이므로.

 

관중석은 물론 쌍방의 모든 인물들이 손에 땀을 쥐고 경기대만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이 아슬아슬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4. 50합이나 맞닥뜨려서 대결했지만.

 

좀처럼 승부를 가릴 수 없었다.

 

관중석은 죽은 듯이 조용하고 기침 소리 한번 들을 수 없었다.

 

도. 서 휴게대에서는 제각기 제편 두령들의 생사를 걱정하는

 

수많은 눈초리들이 불똥을 튈 듯이 긴장했다.

 

 노영탄은 이때까지도 자신의 일 때문에 초조한 심정을 금치 못하며.

 

경기대 위에서 싸우고 있는 두 인물을 노려보고 있었다.

 

 노영탄이 그들의 결사적인 대결을 바라보는 관점은 일반 관중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다시 말하자면 노영탄은 그들의 무술에서 손 한 번을 써도 어떤한 술법에서 나오며.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몸을 쓸 것인지까지 앞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노영탄의 무술은 . 그의 스승인 남해어부와 몇몇 선배 고수급 인물을 제외하고는

 

이미 그를 대적할 다른 인물이 없을 만큼 탁월하고 오묘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탁창가나 고비의 재간이 놀랍다해도 노영탄에 비하면 문제도 안 될 정도인 것이다.

 

긴장된 시간이  또 얼마 흘렸다.

 

흑지상인과 철장단심은 계속해서 3. 40합이나 대결해 보았건만 강하고 약한 점을 가려낼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싸우는 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침착하게 가라앉아 가고 쌍방이 똑같이

 

추호도 흔들림이 없이 그들의 절예를 발휘헤 나갈 뿐이었다.

 

 경기를 구경하고 있는 관중들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좌불안석.

 

초조함을 참지 못해 허둥지둥하는 눈초리들이 말없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위엄을 떨치고 있던 금사보의 넓은 면적도 폐허와 같이 조용했다.

 

 비록 넓은 마당 가득 사람들이 모려들어서 입추의 여지도 없다고는 하지만.

 

조용하고 쓸쓸한 품은 사람이 하나도 살지 않은 허허벌판처럼 한 줄기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이 긴장과 초조 속에 빠져 있었다.

 

안쪽 보루. 그리고 바깥쪽의 보루를 지키고 있던 수많은 방도들도 모조리

 

경기대 앞으로 몰려들어서 이 긴장된 최후의 한 장면에 초조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점점 다가들었다.

 

태양이 지평선 너너로 얼굴을 숨겨버린지도 이미 오래되었고.

 

단지 한 줄기 어슴푸레한 어휘만이 먼 하늘가에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둠은 경기대 위로도 다가들었다.

 

경기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경기대 위에서단지 두 줄기 사람의 그림자가 일진일퇴.

 

가로 뛰고 솟구쳐 오르고 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을 뿐

 

어느 편이 고비요 또 어느편이 탁창가인지를 분간해 내기 어려웠다.

 

바로 이때. 회양방의 두목급 장정 둘이서 10여 명의 방도들을 시켜

 

수십 개의 풍등(風燈)을 떠매고 나오게 하더니

 

넓은 마당에 이르러 경기대 주변 구석구석에 불을 밝혔다.

 

넓은 마당은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백주나 다름없이 밝은광선 속에서 경기대 아래 관중들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구경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으며 경기대 위의 두 사람도 일진일퇴를 되풀이 하면서

 

승부를 가리기 어려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이순간에 홀연. 안쪽 보루와 바깥쪽 보루 사이에 있는 건물의 지붕 꼭대기에서

 

매나 수리와 같은 빠른 동작으로 흘쩍 날아오르는 한 줄기 시커먼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번갯불이 번쩍하고 스쳐 지나가듯.

 

깜짝하는 순간에 허공을 향하여 뻗쳐 올랐다.

 

이때 금사보 안의 모든 사람은 경기대 위의 싸움에만 정신을 팔고 있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설사 안쪽 보루에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커먼 그림자를 발견할 만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시커먼 그림자의 동작이 너무나 빨랐기 때문이었다.

 

마치 전광석화와 같이 팍 하고 퍼져서 달아났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은 그 한 줄기 시커먼 그림자가 솟구쳐 오른 바로 그 지점에서

 

또 하나 다른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뒤를 따라서 솟구쳐 오른 시커먼 그림자는 그 동작이 더욱 빠르며.

 

앞에가는 그림자를 쫒아가서 붙잡으려는 것같이 날쌔게 몸을 쓰고 있었다.

 

 두 줄기 시커먼 그림자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는 불과 몇 장밖에 되지 않앗다.

 

그것은 마치 흐르는 별이 달이라도 쫓아가는 것처럼.

 

안쪽 보루에서 바깥쪽 보루로 흘러서 달아났다.

 

이때까지도 철장단심 탁창가와 흑지상인 고비 둘은 등불을 밝히고 싸움을 한 지도

 

꽤 오래되어서 4. 50합을 계속했지만 여전히 어떤 편도 지려들지 않고

 

털끝만한 약점이나 허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대 아래 관중들은 밤이 낮같이 밝은 등불 속에서 새카만 머리들이 시루 속의 콩나물같이

 

꽂혀서긴장된 나머지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으며 벌써 저녁먹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느 한 사람 밥 먹을 생각을 하는 법도 없었고 다리가 아파서 쉴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때 노영탄의 초조한 심정은 정말 극에 달해가고 있었다.

 

무림의 최후의 운명을 결정지으려는 마지막 싸움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으니.

 

그것이 제아무리 긴 시간을 끌고는 있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넉넉잡고 한두 시간 후면

 

두 사람의 강약이 나타나고 완전한 승패도 가려지고 말 것이다.

 

 

 

'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서 나와 경기를 해보자고 일 대 일로 맞서서

 

싸워보자고 약속을 한 신룡검이란 존재는 통 나타나지 않을까?

 

어제 하루. 또 오늘도 밤이 되도록 어째서 털끝만한 동정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일까?

 

신룡검이라는 인물에게 무슨 돌발 사고라도 생겼단 말인가?

 

만약에. 그가 끝까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이곳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어디 가서 연자심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

 

 

 

이런 생각을 하면 노영탄은 조바심이 물결처럼 가슴속에 치밀어 올라서.

 

격전에 격전이 거듭되는 경기대 위를 바라다볼 흥미조차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노영탄이 스그렸던 머리를 쳐들어서 다시 경기대위를 바라보는

 

바로 그 찰나에. 즉 안쪽 보루에서 바깥쪽 보루로통하는 높직한 담 위를 한 줄기의

 

시커먼 그림자가 마치 검은 연기가 흘쩍 흩어져 나가듯이 슬쩍 스치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 시커먼 그림자의 동작은 어찌나 빨랐던지 보통 사람의 안목을 가지고 시커먼

 

 밤중의 공간 속에서 도저히 그것을 발견해 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노영탄만은 그것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밤에 몰래 다니는 인물의 종적을 분명히 잡아내었다.

 

 

 

' 신룡검이 나타난 것인가? '

 

 

 

노영탄의 가슴은 뜨끔하고 무엇에 찔리는 것만 같았다.

 

 노영탄은 수많은 관중틈에 섞여 있었기 때문에 즉각 어떤 행동을 개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 시커먼 그림자가 이미 경기대를 향하고 돌진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아차렸다.

 

 

' 저 괴상한 그림자가 경기대 위로 날아든다면 여기서 어떠한 사태가 벌어질 것인가? '

 

 

 

노영탄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배에다 힘을 주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

 

그 시커먼 그림자의 일거일동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도 시커먼 그림자가 날아들기 시작한 지점을 노려보고 있으려니까.

 

 돌연 또 다른 시커먼 그림자가 바로 그와 똑같은 지점에서 번쩍하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노영탄의 안광은 실로 무서울 만큼 날카롭고 빠른 것이었다.

 

번쩍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벌써 뒤를 쫓는 시커먼 그림자와 앞에서 달아나는

 

시커먼 그림자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노영탄은 내심 더욱 수상쩍은 생각을 금할 길이 없었다.

 

 

 

' 아니. 둘씩이나?  회양방 놈들이 부리는 장난은 아닐까? '

 

 

 

노영탄은 이런 까닭을 알 수 없는 의심을 품으면서 정신을 바작 차리고.

 

경기대 위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 경기대 위의 격전은 이미 중대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었다.

 

본래 철장단심 탁창가와 흑지상인 고비 둘은 대결을 할 때부터

 

각각 경기대 면적의 이쪽 저쪽을 차지하고 서서 맞닥뜨려 육박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일정한 거리를 띄워 놓고서 손바람의 힘과 손바람의 힘이 들이치고 막아내고.

 

하면서 싸웠을 뿐 한데 어울려서 서로 붙잡고 주먹질을 하거나 발길질을 하는 식의 꼴사나운

 

싸움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즉 항시 피차간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나가면서 장력만 가지고 대결해 나가는 것이

 

명가 고수들의 정정당당하고 점잖은 싸움인 것이다.

 

 동시에 두 사람의 장력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멀찍히 떨어져서 일래일왕 하면서 공격 수비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며 땅을 디디고 버티고 서 있는 두 발이란 좀처럼 흔들리거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50여 합을 싸우고 나서부터는. 두 사람의 자세가 차츰차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피차간에 경기대 변두리를 슬쩍슬쩍 돌아 가면서 발걸음을 조금씩 가볍게 떼어놓고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1백 합을 싸우고 난 다음부터는 그들의 신형은 점점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거리가 자꾸만 단축되어 갔다.

 

마치 주마등과도 같이 빙글빙글 경기대 주변을 돌아가면서 쉴새없이

 

손바람의 힘으로 공격과 수비를 계속하고 있었다.

 

노영탄이 머리를 쳐들고 바라보고 있을 때에는 이미 두 사람은 2 백여 합째 싸우고 있는 판이었다.

 

흑지상인 고비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품이 몹시 빨랐고 손바람의 공새에도

 

억센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철장단심 탁창가는 손바람을 쓰는 품이 이미 산만해지기 시작했고.

 

또 발을 움직이는 품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무술이 비교적 깊고 능숙하며 경험이 풍부한 흑지상인 고비가

 

점점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고 철장단심 탁창가는 드디어 감당해 내기 어려운 것 같은

 

열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숭양파의 선배 후배할것없이 모든 사람들은 초조하기 시작했으나.

 

소리를 질렀다가는탁창가의 정신을 더욱 혼란하게 할까 겁이나서.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는 판이었다.

 

그러나 회양방 편에서는 그 세가 대단했다.

 

일제히 손뼉을 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아우성을 쳐댔다.

 

 

 

" 야! 그러면 그렇지! "

 

 

 

" 역시 우리 방주님이다! "

 

 

 

" 승리는 뻔하다 ! "

 

 

 

철장단심 탁창가는 흑지상인 고비와 더불어 2백여 합을 대결했을 때.

 

차츰차츰 자신의 진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이상 계속해서 싸워 나간다면 내공의 힘을 몽땅 털어서 대결해 왔기 때문에

 

필시 더 감당해 내지 못할 것 같았다.

 

 

 

' 그러나 어떻게 이대로 물러서거나 주져앉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 한 판의 무술경기가 대국에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을 생각했을 때.

 

 

 

목숨을 버리고 희생이 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무슨 짓을 해서든지 버티어 나가야만 한다.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내가 패배자가 되어버린다면 무슨 얼굴을 들고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면목이 있겠는가!

 

또 숭양파는 이로써 아무 소리도 못하고 깨끗이 허물어져버려야만 될 것이 아닌가? '

 

 

 

이렇게 생각했을 때.

 

탁창가는 남몰래 있는 힘을 다하여 이를 악물었다.

 

무엇을 헤아리고 돌아다보고 할 여유도 없이 얼마 남지 않은 전신의 내공의

 

온갖 힘을 발휘하여 최대한 두 손을 휘두르며 버티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흑지상인 고비의 손바람의 힘은 의연히 쉭쉭 뭇무시한 소리를 내면서

 

그 어센 기세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았다.

 

 비록 흑지상인 역시 진력을 어지간히 소모했다고는 하지만 .

 

탁창가같이 극도로 피로하지는 않았다.

 

끝까지 그는 손을 앞으로 뻗어내며 상대방에게 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흑지상인도 조급하고 초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 흠!  이놈은 손바람의 힘이 이제는 맥이 다 풀렸는데도.

 

마지막 기를 쓰고 항복하려 들지 않는구나!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거지! '

 

 

 

이렇게 탁창가의 열세와 약점을 간파한 흑지상인도 사실 내공의 힘이 얼마 남지 못했다.

 

내공의 힘을 한꺼번에 발휘해서 탁창가를 공격했다가 만일에 그것이 적중하지 않는

 

순간에는 자기 자신도 기력이 완전히 소모되어서 탁창가의 반격을 받고야 말 위험성이

 

다분한 아슬아슬한 찰나에 두 사람은 똑같이 서 있는 것이다.

 

다행히 흑지상인 고비의 진력도 거의 다 소모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탁창가는 벌써 그의 손바람의 힘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탁창가는 이미 차츰차츰 머릿속이 어지려워졌고 눈앞이 빙글빙글.

 

두 다리가 휘청휘청. 흑지상인의 손바람의 힘이 아니라 해도 스스로 자신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야만 될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탁창가는 또 한 번 이를 악물었다.

 

저서는 안 되겠다는 완강한 신념 하나 때문에 몸을 간신히 가누고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신의 온갖 진력은 이미 소모될 데로 소모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원기가 몽땅 빠져버린 탁창가는 아무리 이를 악물고 손바닥의 힘을 억지로 유지해

 

나가고는 있지만 도저히 그 이상 버티기가 불가능 했다.

 

흑지상인 고비도 이제는 허덕허덕.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열세를 간과했는지라.

 

기를 쓰고서 나머지 힘을 팔에 모아 탁창가에게 결사적인 최후의 일격을 가해 들어가고 있었다.

 

 

 

" 저런. 저런! 저걸어째?"

 

 

 

"아휴! 아무래도 이상한데 ............ "

 

 

 

" 저래 가지고 더 버틸 수가 있을까?"

 

 

 

" 큰일 났어! 큰일 났어! 이젠. 정말 마지막인가 보다! ?

 

 

 

철장단심 탁창가가 점점 힘이 부쳐서 쓰러질 듯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되자.

 

숭양파 편의 선배 후배 할것없이 모두의 입에서 거의 절망적인 안타까운 소리가 터져나왔고.

 

이 구석 저 구석에서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이 위기일발의 찰나에. 난데없이 쉭 하는 매서운 바람 소리가 소름끼치도록 날카롭고 똑똑하게

 

 들려왔다.

 

전광석화와도 같이 빠른 속도로 경기대 동북 방향에서 전신을 시커먼 옷으로 휘감은 복면의

 

사나이가 날아든 것이었다.

 

복면한 청년의 몸집은 호리호리하고 날씬했으며 어깨에는 보검 한 자루를 비스듬이 메고 있었다.

 

질풍같이 날아들어 경기대 위에 발을 붙이고 서자마자 대뜸 손바닥을 비호같이 앞으로 내밀어서.

 

흑지상인이 탁창가에게로 공격해 들어가는 최후의 일장을 막아버린 것이다.

 

 

 

' 앗! 괴상한 청년! '

 

 

 

' 이 복면한 청년은 분명히 숭양파를 위해서 날아든 것일 테다!

 

숭양파의 모든사람들은 가슴이 두근두근.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여태까지의 절망이 놀라움으로 변했다.

 

철장단심 탁창가는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순간에 흑지상인 고비가 최후의 일격을 가하며

 

무자비하게 육박해 들어오는지라.

 

몸을 날쌔게 써서 옆으로 살짝 피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그것은 마음뿐이었지 힘이 따르지 못했다.

 

두 다리가 이미 국숫발처럼 축 늘어져서 흐늘흐늘 힘을 쓸레야 써볼 힘이 없었고.

 

그저 눈을 감고 죽음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참한 순간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바로 이때 쉭 하는 매서운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지라.

 

감아버리려던 두 눈을 번쩍 다시 떠보았다.

 

복면한 청년이 비호같이 경기대 위로 날아들더니 손을 째빨리 써서

 

흑지상인의 최후의 일격인 손바람을 멋들어지게 막아내는 것을 보자.

 

탁창가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별안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복면한 청년은 흑지상인 고비의 장력을 무난히 막아내더니.

 

고개를 돌려 탁창가에게 말했다.

 

 

 

" 두령님! 잠시 경기대를 내려가셔서 몸이나 쉬십시오!

 

 이 한 판 마지막 싸움은 제가 수습하겠습니다!"

 

 

 

철장단심 탁창가는 기쁘기도 하고 또한 심히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복면한 청년의 말소리가 분명히 여자의 음성이라는 점이었다.

 

' 나를 보고 두령이라고 부른다면. 우리 숭양파와 무슨 인연이나 관계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일까? '

 

까닭 모를 의심과 놀라움을 품고 탁창가가 입을 열어서 그것을 물어보려고 망설이는 찰나에

 

저편에 서 있는 흑지상인 고비도 놀라움 속에도 분노가 북받쳐서 무턱대고 호통을 쳐보려고

 

입을 열까 말까 하고 있었다.

 

그러나 흑지상인도 탁창가도 입을 벌릴 만한 겨를도 없이.

 

어디선지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호통소리가 있었다.

 

 

 

" 신룡검! 꼼짝말고 계시오! 이노영탄이 그대를 기다린지 오래였소! "

 

 

 

모든 사람들의 긴장된 시선이 일시에 경기대 맞은 편에 있는 관중석으로 쏠렸다.

 

관중석에서 한 자루의 화살이 꽂히듯 경기대 위로 날아든 인물은 노영탄. 바로 그였다.

 

본래 노영탄은 여태까지 그 시커먼 그림자의 일거일동을 남몰래 노려보고 있었다.

 

복면한 청년이 경기대 위로 날아들어 흑지상인 고비의 공세를 막아내는 것을 보는 순간.

 

노영탄은 이 복면한 청년이 두말할것도 없이 바로 신룡검이라고 단정했다.

 

노영탄은 일찍이 회안성 안에 있을 적에 신룡검이 만나자는 약속을 한 종이 쪽지를 떨어뜨리던

 

그 순간에 비록 어둠 속이긴 했으나 분명히 신룡검의 그림자를 보아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에도 신룡검의 그림자는 지금과 같이 날씬하고 호리호리했으니.

 

이 복면한 청년이 바로 신룡검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이런 판단을 내리자.

 

노영탄은 이 기회에 절대로 신룡검을 놓쳐버려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하고 비호같이

 

경기대 위로 날아들어서 호통을 친 것이었다.

 

노영탄이 경기대 위로 나타나니.

 

그 복면한 청년도 철장단심 탁창가도 그리고 흑지상인 고비도 모두 동시에 깜짝 놀랐으며.

 

또 한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입을 열었다.

 

 

 

" 아!  그대가 ....... ?"

 

 

 

" 아!  그대는 ........?"

 

 

 

" 바로  그대가 .......?"

 

 

 

세 사람의 음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리고 노영탄이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 와 하하하 .......핫....핫....핫 ! "

 

 

 

공중에서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를 따라서 공중으로 부터 또 다른 인물이 경기대 위로 날아들더니

 

우뚝 서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고보니 경기대 위의 몇몇 인물들은 물론 휴게대 위의 임물들 관람석

 

그리고 넓은 마당에 몰려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되는 괴상한 대회냐? '

 

 

 

' 누가 누군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앞으로 이 싸움판은 아떻게 발전될 것이냐? '

 

 

 

모든 사람들이 극도로 긴장된 마음속에서도 까닭을 알 수 없어서

 

입을 딱 벌린 채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마지막에 경기대 위로 날아든 그 인물도 또한 시커먼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어떻게 생긴 얼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을 집어 삼킬 듯이 날카롭고 매서운 눈초리가 살기등등한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 버티고 서 있는 태도가 몹시 오만불손해 보였다.

 

한번 경기대 위에 버티고 서자마자 그 매서운 눈초리로 사방을 비로 쓸듯이 휘둘러보더니.

 

그야말로 방약무인 누가 감히 내 앞에서 꼼짝이나 할 것이냐 하는 듯 거만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침통하고 대담한 음성이었다.

 

 

 

" 노가라는 친구. 그대가 정말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왔단 말이지?

 

 내 그대와 한 번 약속을 한 이상  그것을 지키지 않을 위인은 아니니까 .......핫핫핫 ! "

 

 

 

그 말을 마치자.

 

고개를 쳐들어 높은 밤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미친 사람처럼 웃어젖히는 것이었다.

 

 

 

" 와하하하.......... 우후후후 .......... "

 

 

 

그 복면한 청년의 미친 것 같기도 하고 처절한 것 같기도 하고 또한 무슨 원한이

 

가득 차 있는 것도 같은 괴상한 웃음소리는 경기대에 모여 있는 모든 삼들의 귓전에

 

찌렁찌렁 울려퍼졌다.

 

노영탄은 그제서야 순간 깨닫는 바가 있었다.

 

두 번째로 경기대 위로 날아든 시커먼 그림자의 주인공이 바로 신룡검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그렇다면 아까 날아든 복면한 여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

 

 

 

이렇게 의심스러운 생각을 금치 못하는 노영탄은 흘끗 날카로운 눈초리로

 

복면하고 있는 여자 음성의 주인공을 노려보았다.

 

흘연. 신룡검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 이 노가란 녀석아! 죽음이 눈앞에 닥쳐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느냐?

 

내가 누구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마! 그래야만 네놈도 죽어서 눈을 감으리라! "

 

 

 

호통소리가 끝나자마자.

 

한쪽 손을 흘쩍 쳐들더니.

 

얼굴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벌컥 아래로 잡아당겨버리더니.

 

마침내 그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노영탄은 흘끗 얼굴을 그쪽으로 돌려 그를 바라보자말자 .

 

놀라움에 가득차 소리를 질렀다.

 

 

 

" 앗! 알고보니 바로 그대가? "

 

 

 

신룡검은 또 한번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웃음소리가 중단되는가 싶더니.

 

대뜸 침통한 음성으로 또 한마디를 던졌다.

 

 

 

" 황산의 고인이 되었던 나를 몰라볼 리야 없겠지? 와 하 하 .........핫  핫......."

 

 

 

이말을 듣고 노영탄이 입을 열어서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에 홀연.

 

탁창가와 흑지상인이 일제히 놀라움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 앗! 바로 너였구나! "

 

 

 

" 앗! 바로 그대가 ! "

 

 

 

철장단심 탁창가는 놀라운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나더니.

 

당자에 분노의 불길이 얼굴에 이글이글 타오르며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 역도 놈아! 너 .... 너 ........ 네놈이 여기에 또다시 얼굴을 드러내다니 !

 

 대담무쌍한 놈이로다 !"

 

 

 

알고 보니.

 

복면을 푼 청년이야말로 바로 스승을 배반하고 교리를 헌신짝처럼 집어던졌던.

 

반도 악중악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악중악은 분노에 타오르는 탁창가의 호통소리쯤은 귀에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흘끗 한번 곁눈질을 해서흘겨볼 뿐 하등 아랑곳없다는 듯 얼굴을 노영탄에게로 돌리고.

 

또 입을 열었다.

 

 

 

" 이 노가란 놈아! 천목산에서 당한 일장일검의원한을 바로 이 자리에서 갚아주마!

 

남해어부의 유일한 제자라는 네놈의 무술을 남김없이 구경하기로 하자!"

 

 

 

악중악이 극도로 흥분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을 하고 났을 때.

 

먼저 날아든 또 하나의 복면한 청년이 대뜸 입을 열었다.

 

 

 

" 당신은 이제 기어이? "

 

 

 

이때 돌연 경기대 아래 관중석에서는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사람의 머리들이 물결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숭양파의 선배 후배 할것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악중악이 경기대 위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자.

 

 당장에 웅성거리며 사람의 틈을 헤치고 일제히 경기대로 모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광경을 보자.

 

회양방 사람들도 또한 앞을 다투며 경기대로 몰려들려고 하니

 

일대 소동이 일어날 도리밖에 없었다.

 

물결처럼 파동치는 경기대 아래의 아우성 소리를 듣는 순간.

 

철장단심 탁창가는 불길같이 타오르는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일제히 물밀듯이 몰려드는 숭양파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무시무시하게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 저 ...... 저놈을 ....... 저 .......저 역도 놈을 빨리 붙잡도록 하라!  빨리 빨리 ! "

 

 

 

탁창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경기대 아래 웅성거리는 사람의 물결을 헤치고

 

대뜸 세 사람이 비호같이 날쌘 동작으로 뛰어 올라왔다.

 

그것은 바로 독응구붕. 상강조수. 그리고 건곤취객. 세 늙은이들이었다.

 

세 늙은이들은 자못 흉흉한 기세로 일제히 악중악에게로 덤버 들려고 했다.

 

그러나 악중악은 태연자약 떡 버티고 서 있는 자세를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고서.

 

마치바윗돌처럼 옴짝달싹도 하지 않으며 두 팔을 동시에 점잖게 휘저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고도 위엄 있는 음성으로 외쳤다.

 

 

 

" 섣부른 수작 말고 조용히 내려들 가시오! "

 

 

 

악중악의 위엄 있는 음성 앞에는 감히 덤벼들 사람이 없었다.

 

광장한 일을 치를 것만 같이 거세게 경기대 위로 달려 올라온 숭양파의 소위 명수라는

 

세 늙은이들도 찍소리도 못하고 당장에 비실비실 아래로 도로 내려섰다.

 

이렇게 되고보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비단 철장단심 탁창가 한 사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 모두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영문을 알 수 없는 놀라움 속에

 

웅성웅성 수군수군거렸다.

 

악중악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태연한 태도로 버티고 서서 탁창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그런 하잘것없는 위풍이나 허세는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부리려 들지 마시오!

 

무슨 못마땅한 일이 내게 대해서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런것은 때를 기다려서 천천히 서로 이야기하십시다!

 

이 악중악은 절대로 도망질을 칠 사람은 아니니까.

 

당신이 나를찾으려들지 않는다 해도 내편에서 당신을 찾아보려고 하던 판이였으니 .......

 

이제. 당신은 나를 위해서 빨리 이 자리를 피해주시기 바랄 뿐이오! "

 

 

 

악중악의 매서운 눈초리에서는 불똥이라도 뛸 것만 같았다.

 

그 무서운 눈초리가 이번에는 흑지상인 고비에게로 쏠렸다.

 

서리발같이 싸늘한 음성으로 꾸짖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도 무수한 사람들을 사방으로 풀어놓아서 나를 잡아보려고 애썼다지?

 

이제는 그 따위 섣부른 수고를 할 필요는 없어졌겠지?

 

하지만 역시 내게 대해서 무슨 따질 일이 있다면 그것은 얼마 있다가 차근차근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당신도 두말 말고 선뜻 이 자리를 피해주시오!

 

당신네들 늙은이들의 싸움판을 이 악중악이 흩뜨려놓았다고는 생각지마시오!"

 

 

 

악중악은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거의 명령적으로 말해 놓더니.

 

흘적 몸을 돌려서 복면을 하고 서 있는 먼저 날아든 청년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 욱형아! 너도 나의 행동을 가로막을 생각은 하지 말아다오!

 

이 한판 싸움이 이 자리에서 끝장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원히 끝날 날이 없을 것이니까 ......"

 

 

 

청년의 모습으로 분장을 했고. 복면까지 해서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그 음성으로 여자인 것이 확실한 인물.그리고 악중악이 분명히 욱형이라고 부르는 여인.

 

그것이 바로 감욱형임을 더 의심할 여지가 있으랴.

 

노영탄은 악중악이 욱형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무엇에 찔린 듯 뜨끔하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엇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복면한 청년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그때 마침.

 

복면한 청년 역시 두 개의 또랑또랑하고 시원스런 눈동자로 노영탄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찰나에.

 

복면한 청년은 번개처럼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해버렸다.

 

악중악이 말없이 있는 짧은 순간에 복면한 청년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다시 쳐들더니 노영탄과 악중악을 번갈아서 한참 동안이나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의 얼굴을 싸맨 수건 밖으로 드러나 있는 두 개의 큼직하고 시원스런 눈동자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게 괴어 있었다.

 

돌연 그는 두 발로 땅바닥을 쿵 하고 한 번 구르더니.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올려서 경기대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가버리는 것이었다.

 

노영탄은 감욱형이 몸을 움직여 자리를 뜨려는 것을 보자.

 

대뜸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렸다.

 

 

 

" 욱형. 욱형 소저. "

 

 

 

그러나 복면한 청년 감욱형은 그런 소리는 귀에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고개도 돌리려 들지 않으며 그대로 몸을 날려서 경기대 아래로 내려서고 말았다.

 

노영탄의 가슴속은 미어질 것만 같았고 뜻밖의 일에 이루 형언키 어려운 복잡한 심정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 흥! "

 

 

 

악중악은 그 광경을 보더니 가볍게 냉소해 버렸다.

 

매서운 눈초리로 또다시 사방을 휘둘러보고 나서는.

 

철장단심 탁창가도 흑지사인 고비도 이미 경기대 위에서 내려가 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노영탄을 바라보면서 자못 정중하게 꾸짖듯이 입을 열었다.

 

 

 

" 흥! 어지간히 인정도 있는 녀석 같아 보이는데 아깝게도 눈앞의 일만 생각할 줄 알고

 

옛정을 저버리기 잘하는 모양이지.

 

이놈! 이제 허둥지둥 아무 데나 매달려보려는 꼴사나운 짓은 그만 두란 말야! "

 

 

 

노영탄은 그 말을 듣자 불끈하고 분노의 불길이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애써서 그것을 스스로 꾹 누르면서 추상같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악중악을 노려보고 말했다.

 

 

 

"그대는 비루하고. 너절하고. 대장부답지 못한 시시한 수단으로 연자심을 어디다가

 

납치해두었느냐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난 악중악의 얼굴에는 분노의 불길이 훨훨 타오를 것만 같았다.

 

두 어깨를 으쓱하고 두 눈썹이찡끗하고 위로 뻗쳐올라 갈 것만같이 사나운 기세로

 

노영탄을 쏘아보며 호통을 쳤다.

 

 

 

" 노가란 녀석아! 이 서방님도 너와 똑같이 철딱서니 없는 위인으로 생각해선 안 돼.

 

네놈이 만일에 나를 이겨낸다면 그 아가씨를 만나볼 날이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나에게 패하는 날에는 영원히 그 아가씨를 만나볼 날은 없을 줄로 만 알아라!"

 

 

 

악중악의 노기에 가득 찬 호통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돌연 경기대 아래로부터

 

또 다른 두 인물이 훌쩍 뛰어 올라왔다.

 

하나는 운몽노인. 또 하나는 열화천왕 합일기였다.

 

경기대 위로 쏜살같이 날아든 두 인물은 악중악의 신변 가까이 덤벼들더니

 

우뚝 버티고 섰다.

 

노영탄의 존재 같은 것은 아랑곳없다는 것만 같아 보였다.

 

운몽노인이 자못 위엄 있는 음성으로 악중악에게 꾸짖듯 .달래는 듯 천천히 말을 던졌다.

 

 

 

" 이 철부지 녀석아! 듣자하니『숭양비급』이 너의 수중에 있다는데.

 

너는 나이도 아직어린데다가. 도무지 철딱서니 없는생각이지.

 

지금의 이 판국이 어떠한 판국인지도 모르고서 날뛰다니 ..........

 

지금 이자리는 하늘도 막히고 땅에도 그물이 쳐 있듯이 오짝달싹도 할 수 없는 마당이다!

 

날개가 돋쳤다 해도 날 수도 없는 형국이다!

 

보아라! 숭양파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주목하고 너를 붙잡아서 처벌하려 드는 판국이다!

 

내 보건데. 너는 나이도 어리고 또 의탁할 만한 곳도 없는 위인 같으니.

 

단지『숭양비급』만 나에게 선선히 내준다면 내 너를 대신하여 잘 보존하고 절대로 남들이

 

너를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 줄 것이다!

 

내 말을 잘 알아듣겠느냐?"

 

 

 

악중악은 이 말을 듣더니 얼굴에 약간 놀랍다는 빛을 보이기는 했으나.

 

여전히 태연자약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 이 늙은이 하는 말이 가연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군.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친구와 한바탕 근사하게 놀아보고 싶은 판이니까 .....

 

아무리 급하더라도 잠시 경기대 아래로 내려가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게 좋을 거요! "

 

 

 

운몽 노인은 이 말을 듣자 노기가 충천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당장에 악중악에게 덤벼들고 싶다는 기세였다. 그러나 그 순간에 시선이 한 옆에 서 있는

 

노영탄의 얼굴로 쏠렸을 때 이 늙은이는 가슴이 뜨끔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년이 넘는 예전에. 노영탄이 밤중에 금사보에 침범하여 수많은 마귀의 무리들과 일장의

 

격투를 벌려을 때. 그때에는 노영탄이 비록 복면을 해서 얼굴을 감추고있었다고 하지만.

 

그 다음에 앵무주에서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진면목으로 나타났었다.

 

이런 까닭으로 회양방 놈들 속에서 몇몇 늙은 마귀 같은 두목급 인물들은 모두 노영탄의

 

얼굴을 알고 잇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운몽노인으로 말하자면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노영탄의 건곤 혼원장의 술법을

 

알아낸 사람이요.

 

또한 노영탄이 남해어부의 유일한 제자라는 것도 알아낸 사람이었다.

 

이순간에 운몽노인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악중악과 노영탄을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편을 처다보고 또 저편을 쳐다보고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까닭을 알 수 없는 놀라움과 의심을 풀 길이 없었다.

 

그것은 악중악과 노영탄의 얼굴 모습이 한판에 찍어낸 듯이 똑같으며 몸집이나 키도

 

비섯비섯해서 누가 누군지를 얼런 분간해 내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에 이렇게 똑같은 얼굴이? '

 

 

 

운몽 노인은 한참 동안이나 어리둥절할 뿐 입을 딱 벌린채 말이 없었다.

 

운몽 노인은 그들 두 청년을 비록 누가 누구지 똑똑히 분간해 내지는 못하지만.

 

결국 하나는 악중악이요.

 

또 하나는 남해어부의 유일한 제자 노영탄임에 틀림이 없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남해어부의 제자 노영탄으로 말하자면.

 

그 무술의 재간이 놀라워서 자기 자신도 감히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생글생글 간교한 웃음을 몇 번인지 웃고 나더니 악중악을 향하여 또다시 입을 열었다.

 

 

 

" 이철부지 녀석아! 네놈이 영문도 모르고 섣불리 날뛰다가 혼이나더라도.

 

그때에는 나를 원망하지는 말아라! "

 

 

 

운몽 노인이 이렇게 말을 마치고 경기대 아래로 내려서려고 했을 때.

 

한편에서열화천왕 합일기가 불덩어리같이 조급한 성미를 참지 못하고 씨근벌떡.

 

덤벼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열화천왕은 이 청년이 무림의 유일한 지보라는 『숭양비급』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소리를 듣자.

 

두 눈이 금방 뒤집힐 것만같이 엉큼스런 욕심이 동해 가지고.

 

운몽 노인이 경기대 위로 올라섰을 때 전후 생각없이 선뜻 뒤를 따라서 뛰어 올라왔던 것이다.

 

이때. 악중악이 끝까지『숭양비급』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강경히 버티는 말을 듣자.

 

당장에 약이 바싹 올라서.

 

 

 

" 뭣이 어찌고 어째?  으흥! "

 

 

 

괴상한 소리로 짐승이 울부짖듯.

 

이를 악물더니 그대로 오른쪽 팔을 홱 뿌려서 악중악의 머리 위를 움켜잡을 것같이 뛰었다.

 

 

 

" 흥! 주제넘게 섣불리 굴지 마라!"

 

 

 

악중악은 열화천왕이 소능 쓰고 덤벼드는 것을 알아채자.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다음 순간. 악중악은 몸을 흘쩍 날쌔게 솟구쳐 올랐다.

 

손하나 발하나 움직이지 않고 바람처럼 표연히 뒤로 펄쩍 날아 물러서면서

 

열화천왕 합일기의 손바람의 힘을 가볍게 피해버렸다.

 

그리고 몸을 다시멈추고 서는 순간에 악중악은 무서운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 이런 늙은 괴물들이!  꼴사나운 줄도 모르고서 ! 이자리를 비켜달라는 것 뿐인데.

 

어째서 내 말을 듣지 않는단 말이냐?

 

정말로 내가 손을 써서 네놈들을 경기대 아래로 몰아내야만 속이 시원하겠느냐? "

 

 

 

악중악이 말을 마치려하는 순간에 열화천왕은 두 번째 손을 쓰려고 들먹들먹 하고 있었다.

 

악중악의 얼굴 빛이 갑작스럽게 셀쭉해졌다.

 

서리발 같이 싸늘한 빛이 얼굴 한복판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악중악은 껄껄거리고 냉소를 참지 못하더니.

 

목청이터지라고 악을 썼다.

 

 

 

" 멋도 모르고 날뛰는 주제넘은 늙은 것들아! 얼른 내려가 달라니까! "

 

 

 

악을 쓰고 있는 순간에.

 

악중악의 오른손은 벌써 가슴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구부렸던 팔을 홱 하고 펼치는 순간에 화살같이 빠른 일장에서 거창한 손바람이 마치

 

회오리바람이 미쳐서 휘몰아치듯 합일기를 향하여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열화천왕도 거기 지지 않겠다는 듯 대뜸 일장의 반격을 가했다.

 

거창한 손바람과 손바람이 허공에서 맞닥뜨려졌다.

 

그러나 마침내 합일기의 팔이 꺾어진 듯이 움츠러들며 몸이 흔들흔들 두 다리를 지탱해

 

서지 못하고 비칠비칠 너댓 걸음 뒤로 물러나서야 가까스로 몸을 가누었다.

 

합일기는 결국 악중악의 일장에 격퇴당하여 우두커니 넋을 잃고 한참 동안이나 서 있을 뿐이었다.

 

경기대 아래 관중석에서는 요란스런 박수갈채 소리가 일시에 우뢰같이 터졌다.

 

박수 갈채는 물론 악중악의 놀라운 무술을 찬양하는 의미에서 터져나오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경기대 위에 남아있는 운몽 노인과 노영탄까지도 남몰래 놀라고 탄복할 만한

 

기막힌 재간이었다.

 

악중악의 얼굴에는 또다시 웃음의 빛이 떠올랐다.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경기대 아래를 향해 선언을 하는 것이었다.

 

 

 

" 누구를 막론하고 소생과 싸워보고 싶은 의사가 있다 할지라도 우선 잠시 기다려주시오!

 

그렇지 않다면 소생은 인정사정없이 무자비하게 해치울 뿐이오!"

 

 

 

말을 마치고 나니 경기대 아래 관중석이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비단 일반관중들만이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 청년이 무슨 재간을 어떻게 부리려 하는가

 

그것을 빨리 구경하고 싶어서 조급해졌을 뿐만 아니라.

 

숭양파와 회양방의 당사들까지도 찍소리 못하고 조용해져서 경기대 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악중악은 경기대 아래에다 말을 마치고 나더니.

 

시선을 다시 이편으로돌려서경기대 위에 있는 열화천왕 합일기와 운몽 노인을 슬쩍 훑어보았다.

 

합일기는 그제서야 이 청년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무술이 이다지도 놀랍고 보니 자신이 절대로 이 청년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깨닫고 악중악의 호렬소리를 듣자

 

두말없이 운몽 노인을 따라서 경기대 아래로 내려가는 도리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면서도 자신의 창피한 꼴을 얼버무리고 허세를 부려보려고

 

우물쭈물 지껄이는 말이 있었다.

 

 

 

" 이런. 철부지 녀석아! 그래. 어디 네 멋대로 먼저 실컷 놀아보아라!

 

 그러나 결국은 내 손아귀에서 호락호락 빠져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아둬야 해 !"

 

 

 

그 소리를 듣자. 관중석에서는 수군수군. 쑥덕쑥덕.

 

합일기의 뻔뻔스런 태도를 조소하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왔다.

 

운몽 노인과 열화천왕이 아래로 내려간 다음에 경기대 위에는 두 청년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얼굴이 한판에 찍어낸 것같이 똑같은 청년.

 

마치 한 사람의 화신같이 서로 닮은 두 젊은 얼굴들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다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