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38장 사생결단(死生決斷) 1

오늘의 쉼터 2013. 12. 14. 10:37

정협지(情俠誌)

 

38 사생결단(死生決斷)

 

강호의 고수들(1)

 

 

 시간이 거침없이 흘렸다.

여러 사람들이 점심을 끝낸 지도 오래 됐다.

미시가 닥쳐왔다.

여기저기서 호각 소리가 귀가 아프도록 일제히 울렸다.

그 호갓 소리가 끝나자 마자.

징 소리가 요란스럽게 넓은 마당을 뒤흔들었다.

꽝꽝꽝 !

여러사람들은 다시 무술대회가 계속된다는 신호임을 알아차리자

우르르조수처럼 밀려서 경기대 앞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 이번에는 어떤 인물이 등장할 것이냐? '

 

수많은 눈동자들이 조용히 경기대 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노영탄도 군중들 틈에 끼어서.

처음과 같은 좌석을 찾아서 자리잡고 경기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영탄이 앉아 있는 자리는 맨 뒷줄이었다.

번잡한 사람 틈에서는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낼 사람이 없었다.

숭양파 사람들도 회양방 삼들도 노영탄이 이 자리에 나타나 있으리라는 것을

감히 생각할 사람도 없었고 그를 발견해 낸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 시간이 되었소! "

 

" 빨리 시작하시오!"

 

조급한 관중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양편 복도로 부터 쌍방의 인물들이 오전과 같이

죽 늘어서서 열을 짓고 걸어 나왔다.

그들이 나오자 떠들석하던 관중석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흑지상인 고비는 여전히 버티고 앉더니 한쪽 소능ㄹ 높이 쳐들어서 가볍게 흔들었다.

오전 중에 하는 것과 똑같이 시뻘건 의복을 입은 자가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소리를 질렸다.

 

" 이제부터 무술 경기를 재개하겠습니다. "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데없이 괴상망측한 호통소리가 일어났다.

 

" 에에잇! 우후후응! "

 

한 덩어리의 시뻘건 구름 같은 몸이 경기대 위로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을 때.

그 시뻘건 몸은 한손에 큼직막하고 굵다란 선창 지팡이를 움켜쥐고

경기대 한복판에 버티고 서 있었다.

얼굴이 무시무시하도록 흉악망측하게 생겼으며. 몸집이 뚱뚱하면서도 키가 크고 건장한 모습이

웬만한 상대는 그대로 압도해 버릴 만했다.

홍의화상 우람부루였다.

 

" 와하하하! 핫핫! "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경기대 한복판에 버티고 서자마자.

능글맞은 웃음을 호탕하게 웃어젖히며 손에 들고 나온 선창 지팡이를 마룻바닥에 푹 찔러서 세웠다.

입이찢어질 듯 징글징글하게 웃으면서 또 한번 호통을 쳤다.

 

" 이 부쳐님이 오랬동안 살계를 범한 일이 없었는데. 화하하핫핫!

숭양파 가운데서 목숨이 아깝지 않고 죽어도 좋다는 자가 있다면 서슴치 말고 빨리 나오너라!

이 부처님께서 극락 세계로 모셔주마! "

 

우람부루의 미친 듯이 날뛰는 태도는 비단 숭양파 사람에게만 노기가 충천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

경기대 아래 수많은 관중들에게까지 충천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기대 아래 수많은 관중들에게까지 지나치게 거만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 저 작자. 꽤 안하무인인데! "

 

' 괴이하게 생긴 게 중옷을 입고. 어지간히 밉상인데! '

 

" 이놈! 꼼짝말고 게 섰거라! "

 

홍의화상 우람부루가 안하무인격으로 기고만장해서 덤빌테면 덤벼라는

거만한 태도로 선전포고를 하고 있을 때.

그기 응전하겠다는 적수의 호통소리가 더욱 우렁차고 무섭게 터져 나왔다.

그 무서운 음성은 마치 뇌성벽력이 경기대 위 공간으로 뻗쳐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한줄기 시커먼 그림자가 비호같이 경기대로 날아들었다.

머리를 쳐드는 수많은 관중들의 눈초리가 일시에 그 시커먼 그림자에 쏠렸다.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미친 짐승이 울부짖듯이 호통을 치고 있는 판에 난데없이

벽력 같은 무서운 음성이 들리는지라.

주춤하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왈칵. 눈앞으로 대드는 그림자는 몹시 빨랐다.

마치 한 마리의 크다란 붕새가 화살처럼 내리꽃히듯.

경기대 변두리로 날아들어서 두 팔을 날개같이 평평하게 쭉 펼치고.

두 다리를 움츠러뜨렸다가 한번 벌컥 내지르더니.

가볍고 날쌔게 그리고 아주 유유하게 자리를 잡고 우뚝 서는 것이었다.

우람부루는 날아든 사람의 얼굴을 흘끗 한번 바라보자마자.

가슴이 섬뜩했다.

알고보니.

그 인물은 홍의화상이 일찍이 앵무주에서 맞닥뜨려본 일이 있는 철기사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철기사와 홍의화상이 일 대 일로 대결해서 비록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하지만 철기사란 인물은 천년이나 묵었다는 응황정을 몸에 지니고 있어서 홍의화상의

용연선독을 문제없이 막아냄으로써 홍의화상이 유일한 승리의 법보로 삼고 있는 그 선독조차 효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막아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면. 홍의화상은 어떤 무기나 잔재주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단념해야 하고.

순전히 자신이 지닌 무술 실력을 가지고 본격적인 대결을 해보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홍의화상 우람부루의 무술은 누구도 가볍게 여길 수 없었지만 그가 중원 천지를 횡행하며

무림에서 자웅을 다툴 수 있는 것은 용연선독의 독특하고 무서운 위력 때문이었다.

그가 이 선독을 쓰면서 적수와 대결하게 될 때면. 상대방의 무술 실력이 극도의 경지에 도달해서

정신력의 극치인 내공이 정순한 지경에 이르러 이 힘으로써 선독의 독기를 격퇴시킬 정도가 아니라면 섣부른 내공의 힘을 가지고는 이 선독을 감당해 내기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번에. 홍택호 앵무주에서 우람부루는 철기사라는 의외의 인물과 맞닥뜨리게 되자.

철기사의 천년묵은 웅황정이 비단 자기의 용연선독을 막아낼 수 있을 뿐더러.

또한 능히 독기를 꺼버리고 흩어버리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목격했었다.

그들 둘이 대결했을 때 우람부루는 그 선독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는커녕 도리어 자기의 원기를 이만저만 손상한 게 아니었고. 또 상당히 아픈 타격을 입었었다.

그때의 싸움에서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자신이 발사한 용연선독의 독기에

자신이 부상을 당하고 만 결과를 빚어냈다.

사후에 발견한 일이지만 도리어 자기 자신의 팔 위 혈맥이 격퇴당해 되돌아오는 독기를 쐬고

꽉 막혀버려서 그것이 혈맥 속에서 침전 현상을 나타내게 됐던 것이다.

다행히 일찌감치 그런 결과를 알아내어 냉큼 혈맥을 관통시켰기 때문에 간신히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만약에 그것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우람부루의 팔뚝은 썩어 문들어져서  폐인이 되고야

말았을 것이다.

우람부루는 여기서 자기 자신의 잔제주에 대해서 자신을 몽땅 잃었으며 곰곰이

그 원인을 검토해 봤으나. 그것은 심히 오묘 불가사이한 일일 뿐이었다.

철기사와 대결했을 때 비록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기사의 손바람 앞에 직접 공격을 받은 기억도 없었다.

 

' 그런데 어째서 이런 괴상한 역현상이 도리어 나의 몸에서 발생되었을까? '

 

이 궁리 저 궁리 검토와 연구를 거듭한 결과 우람부루는 간신히 그 까닭을 터득했다.

철기사의 천년 묵은 웅황정의 불가사이한 작용.그것 때문에 자기가 발사한 선독의

독기가 드러누워서 침을 뱉은 격으로 결국 자기의 몸으로 되돌아와서 부상을 당하게

됐다는 이치를 구명하고 난 다음부터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철기사의 웅황정이라면

생각만 해도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홍의화상의 무술 실력도 결코 약한 것은 아니었다.

설사 용연선독의 독기를 발사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역시 순전한 무술의 힘만 가지고도 철기사 하나쯤은 대적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우람부루는 비상한 결심과 각오를 새롭게 하고 징글맞은 너털웃음을

또 한 번 터뜨리는 것이었다.

 

" 으흐흐흐 ..........흐흐.......... 알고 보니 대명이 쨍쨍하신 철기사였군!

 이야말로 하늘이 만들어주신 인연이 있어서 ................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서로 이 자리에 나와서 만나게 됐는데.

 네놈은 몇 차례씩이나 이 부처님 같은 점잖은 사람을 귀찮게 굴고 추근추근 덤벼드니.

정말 이 부처님보고 극락세계로 가게 해달라는 수작이냐!

어디 덤빌 테면 덤벼봐라.

이 부처님이 네놈의 소원을 들어주마! "

 

이 말을 듣더니 철기사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 흥! 이 강아지 같은 놈아! 네놈은 황하 깊은 물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기 전에는

그 거만 스런 입버릇을 고치지는 않을 게다! 좋다!

나는 네놈하고 입씨름을 하자는 것은 아니니까.우리 어디 한 번 피차간의 순전한

실력과 기술을 가지고 사생결단을 내보자! "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철기사는 선뜻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공격할 자세를 가추며

 

"욱! "

 

하고 이를 악무는 순간에 전신에 축적돼 있는 온갖 진력을 한 군데로 집중시켜서

왼 손으로 주머니 속을 더듬더니 열두 골패짝 같은 철기자를 움켜냈다.

그리고도 선수를 쓰지 않고 우선 우람부루의 동정만 살피는 것이었다.

우람부루는 선장 지팡이를 뽑아 삿대질을 하면서 호통을 쳤다.

 

" 이놈 어디 덤벼봐라! "

 

" 이놈.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기만 하면 단 줄 아느냐!  헤헤 ..........."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또 한 번 야비한 웃음을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며.

왼쪽 손바닥을 살짝펴고 선장을 오른손으로 바꾸어 잡더니.

경기대 마룻장을 서너 번 쿵쿵 하고 내리쳤다.

그 지팡이는 또다시 경기대 변두리 마룻장 위에 꽂꽂이 꽂혔다.

지팡이가 마룻장에 꽂히는 순간에 홍의화상은 벌써 왼쪽 손바닥을 홱 뿌렸다.

억센 손바람이 철기사의 가슴과 배를 겨누며 질풍같이 습격해 들어갔다.

철기사는 대뜸 몸을 뒤로 뽑고 가슴을 움츠렸다.

오른손은 본능적으로 손바람을 일어켜서 홍의화상의 습격해 오는 손바람을

막아내면서 그와 동시에 왼손의 다섯 손가락이 일시에 핵 뿌려졌다.

손 안에 움켜쥐고 있던 열두 알의 철기자를 내공의 민첩한 기운으로 발사해서

홍의화상의 머리 위로 뿌려버렸다.

골패짝 같은 쇳조각들은 마치 한 떨기의 모란꽃잎이 뿔뿔이 흩어지듯.

우람부루의 신변을 휩싸버렸다.

우람부루는 눈앞에서 번쩍하고 불똥이 터지는 듯하더니.

열두 개의 골패짝 같은 철기자가 홱 퍼지는 지라.

몸을 날쌔게 옆으로 피했다.

 

' 이놈이 또 이 따위 쇠부스러기를 가지고 사람을 골탕 먹이려고? '

 

우람부루는 거기 굴복할 리 없었다.

비스듬이 몸을 옆으로 뺀 채 두 손을 일시에 써서 보다 더 거센 손바람으로

철기사에게 습격해 들어가면서 아직도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거리를 두고

요격의 놀라운 솜씨로 오른손만 높직하게 쳐들어서 홍의화상을 역습하는 것이었다.

마치 꽃잎처럼 허공에 흩어진 그 열두 개의 쇳조각들을 홍의화상이 서 있는 지점으로

화살처럼 날아들었으나 결국은 홍의화상이 두 손을 일시에 휘두르자.

그 대부분이 뿔뿔이 흩어져서 경기대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열두 개의 쇠붙이 가운데서 용하게 홍의화상의 손바람을 피해 버린 두세 개가

끝끝내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홍의화상의 머리 위로 질풍같이 날아드는 것이었다.

 

" 이크!"

 

홍의화상은 당황했다.

또 한번 손을 휘둘러서 그것을 물리칠 생각을 했을 때에는.

이미 철기사가 신변 가까이 육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다시 손바람을 일어켜서 적을 정면으로 막아낼 만한 겨를이 없었다.

홍의화상은 선뜻 다리 아래에다 힘을 썼다.

뒤로 비스듬이 몸을 빼면서 껑충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올랐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홍의화상은 간신히 쇠조각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두 발을 약간 움츠려뜨리고 두 손바닥을 교차시켜 가면서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힘을 이용하여 그대로 화살처럼 철기사의 머리 위에다 쌍장으로 맹렬한 바람의 공격을 가했다.

철기사 역시 두 손을 허공으로 향하고 맹렬한 손바람을 뻗쳐보았으나 위로부터 머리로

내리질리는 손바람의 기세를 막아내기는 힘드는 지라 

재빨리 손을 거둬들여 술법을 바꾸어서 공세를 버리고 수세를 취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홍의화상 우람부루의 손바람의 힘은 본래가 철기사에 비해 침중하며 억세어서 기세가

훨씬 무서웠다.

우람부루는 대적하고 있는 상대자가 철기사라는 점에서.

그의 과거의 쓰라린 타격과 상처를 생각하고 용연선독의 사용을 깨끗이 단념한 반면에.

오직 손바람의 힘만으로 승리를 거두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그가 몸에 지닌 온갖 힘을

손으로만 집중시켰기 때문에 한번 손바닥을 엎치락뒤치락하기만 하면.

쉭쉭! 매서운 쇳소리 같은 음향을 내면서 그 기세가 이만저만 웅장한 것이 아니었다.

철기사는 홍의화상의 손바람의 힘에 압도당하면서도 역시 손을 써서 반격을 꾀하기는 했으나

그 힘이나 바람의 기세가 홍의화상과 비길 때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둘은  30여 차례나 정면으로 대결을 했다.

싸움의 형세는 이미 우열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철기사는 단지 기술과 재치만을 가지고 대항했으나 손바람의 힘에 있어서는

이미 홍의화상에게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 명확해졌으니.

이것만으로도 그는 열세로 기울러져 가는 것이었다.

 철기사는 내심 초조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허공으로 몸을 껑충 솟구쳐 올리는 체하며 옆으로빠져서 두 손을 재빨리 놀리더니

어깨에 메고 있던 두 자루의 갈래창을 선뜻 뽑아 들었다.

한 손에 한 자루씩 휘두르며.

그의 사문의 독특한 음양극법이라는 지천획지의 술법을 전개한 것이다.

이번에는 우람부루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우람부루는 두 손을 한꺼번에 멋들어지게 휘둘러 손바람을 있는 대로 일어켜

철기사에게 습격해 들어가는 판이었고 바로 눈앞에 승리가 환히 내다보이는 찰나 인지라.

내심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이런 순간에 돌연 철기사가 몸을 살짝 빼서 무기를 뽑아 들고 듬비는 지라.

비록 손바람의 힘에 있어서 상대방을 압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승리를 거둘 만한 승산이 서질 않게 되었다.

우람부루는 부리부리하고 험상궂게 생긴 눈을 부라리면서 재빨리 경기대 가장자리로

물러서서 손을 거둬들이고 능글맞은 웃음소리를 한바탕 터뜨렸다.

 

" 네 이놈! 알고보니 철기사쯤 된다는 놈이 겨우 이 따위 비루한 수법을 쓰고 듬비는 거냐?

금사보의 무술대회에 네놈같이 시시하고 너절한 위인이 나타나서 감히 이런 추태를

연출하고 덤벼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헤헤헤 ...........헤헤! "

 

떠들고 너털웃음을 치면서도 우람부루는 오른손으로 재빨리 마룻바닥에 꽂았던

구황용두창을 뽑아 들었다.

그것을 종횡무진으로 휘두르고 춤을 추듯 미쳐 날뛰며 철기사의 가래창을 막아내면서

그의 독특한 반룡장의 술법을 전개했다.

긴장된 관중석의 표정에서도 숭양파의 승리를 바라고 있는 무수한 얼굴들은 초조한 가운데

이맛살이 차츰차츰 찌푸러지기 시작했다.

철기사가 도저히 홍의화상을 감당해 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홍의화상이 한번 그의 독특한 재간인 반룡장 술법을 전개하니

원래가 무지막지한 힘에다가 지팡이 역시 거창한 물건인지라.

그맹위를 떨치는 품이 두 눈이 빙빙 돌아갈 지경이었다.

철기사의 가래창 역시 비록 중무기 축에 들 수 있는 물건이라고는 하지만.

홍의화상의 구황용두창과 맞서게 되고 보니 그것은 마치 새끼무당이 어미무당 앞에 나서서

수선을 떠는 격밖에 돼 보이지 않았다.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사실인즉 이 몇 해 동안에 주색잡기에 몸을 함부로 굴러서

그 원기가 적지 않게 소모되어 있었다.

그렇디만 않았다면 그는 더 흉악하고 억척스런 기세를 부려서 단숨에 상대방을 압도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지만 이렇게 김이 빠진 홍의화상의 기운 앞에서도 철기사는

차츰차츰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일진 일퇴. 둘은 각각무기를 손에 잡은 뒤에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3. 40차례나 서로 대결했다.

철기사의 기력도 그대로 지속해 나가기는 한다지만 홍의화상의 끈덕지고 억센 힘 앞에서는

도저히 비할 바가 못 되니 어찌할 수 있으랴!

또 철기사는 감히 무기를 일 대 일로 맞닥뜨리고 쳐들어가지 못하고 단지 상당한 거리를

띄어놓고 술법을 쓸 뿐이니.

공격과 수비 모두 다 같이 약해져 가는 것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동쪽 휴게대 위의 숭양파의 여러 사람들은 다 같이 손에 식은 땀을 쥐었다.

 

' 흠! 형세가 아주 불리한 걸! 저대로 계속해 나가다가는 아무래도 ............ '

 

누구보다도 초조한 것은 대표자인 탁창가였다.

철기자로 말하자면 그가 두 번째로 초청해 싸움을 거들어달라고 한 가장 가까운 친구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한 파의 종주라는 탁창가의 입장에서는 만약에 제삼자가 자기 문호의 일 때문에 부상을 당하거나

혹은 불구자가 돼버리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체면도 위신도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심중이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탁창가 보다도 몇 배 더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은 바로 그 옆에 있는 낭월대사였다.

두 눈을 쉴새없이 깜박깜박. 입을 꾹 다문 채로 경기대 위만 노려보고 있는 품이

어떤 비장한 각오와 결심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철기사 저놈을 감당해 내지 못한다면 어찌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

 

낭월대사는 철기사를 위해서 경기대로 내달아 응원을 해주고 싶은 생각에 들먹들먹하는

궁둥이를 억지로 누르고 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 설사. 이번 한 판 점수를 빼앗기고 지는 한이 있더라도 철기사가 홍의화상에게

  얻어맞거나 부상을 당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

 

낭월대사의 결심은 점점 굳어져 갔다.

그것은. 철기사가 비록 숭양파의 초청을 받고 싸움을 거들어 주려 나타난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낭월대사의 남달리 두터운 사교 관계를 생각하고 순전히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서 출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숭양파 쪽이 이렇게 긴장과 초조 속에 빠져 있을 때.

그와는 반대로 서쪽 휴게대에서는 요란스런 박수 소리가 폭풍같이 일어났다.

회양방 쪽의 인원들은 기쁘고 신바람이 나서 어쩔 줄 모르며.

몇 놈의 소두목 녀석이 선두에 서서 전원을 충동시켜서 홍의화상 우람부루를 위하여

맹렬한 박수소리를 보냈다.

경기대 위에는 격렬한 싸움이 최고조에 달해 가고 있는 판인데 들려오는 박수소리가

회양방 사람들이 응원을 하느라고 아우성을 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들은 홍의화상은 

내심 더 한층 의기양양해져서 신바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난히 우쭐우쭐 기고만장한 채를 하면서 반룡장 술법 가운데서도 가장 멋들어지고

기기묘묘하다는 이산도해(移山倒海)의 술법을 전개했다.

구환용두장이 쌩쌩하는 매서운 쇳소리를 내면서 곧장 철기사의 머리통을 겨누고

내리치며 습격해 들어갔다.

한편 철기사는  홍의화상을 응원하는 회양방 사람들의 박수 소리를 듣게 되자.

내심 더욱 수치스럽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하여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맥이 풀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찰나를 노리고 홍의화상의 구환용두장은 극히 험악하고 맹렬한 기세로

철기사의 머리를 노리며 쳐들어간 것이었다.

 철기사는 두 자루의 갈래 창을 불쑥 앞으로 내밀고 있는 판이엇는지라.

그것을 재빨리  거둬들이고 몸을 피해볼 생각을 했으나  그러자면 자연 전신의

움직임이 느려질 것을 면치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다가 이번에 쳐들어오는 홍의화상의 일격이야말로 변화무쌍한 술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니 섣불리 그것을 피해보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대로

그의 제압권 내에 빠져서 두 번 다시 역공의 형세를 회복하기는 도저히 어려울 것만 같았다.

이런 판국이 퍼뜩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자 철기사는 암암리에 내공의 온갖 힘을

두 팔에 집중시켰다.

이를 악물고 두 다리를 버티며 두 자루의 갈래 창을 교차시켜서 번쩍 위로 높이 쳐들고

그대로 육박해 들어가려고 했다.

그것은 철기사로서는 최후의 일격이 되는 중대한 공격이다.

무기로써 상대방의 무기와 맞딕뜨려서 즉각에 승부를 판가름하자는 막다른 순간에

직면한 것이었다.

낭월대사는 휴게대 위에서 이 아슬아슬한 광경을 노려보고 있다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 안되겠는걸! 대세가 이미 기울어져 가기 시작하는데! '

 

낭월대사는 이렇게 판단을 하자 즉각 몸을 날려 뛰어나왔다.

마치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덤벼들 듯 화살같이 경기대 위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낭월대사가 몸을 흘쩍 날리는 순간에 경기대 위에서는 벌써뚜렷한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과연 철기사가 무기로써 무기를 가로 막고 듬벼들었을 때 홍의화상은 이제야말로

자기 뜻대로 돼어간다는듯 징글맞은 웃음소리를 또 한번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 헤헤헤........ 이놈이 기어이 죽여달라고 덤벼드는 수작이로구나!"

 

홍의화상은 그대로 주춤주춤 앞으로 다가들면서 두 팔을 맹렬히 휘둘렸다.

구환용두창을 날쌔게 써서 여전히 매서운 쇳소리를 내며 철기사의 갈래 창을 겨누고 내리쳤다.

그의 술법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으며. 맹렬한 공세가 추호도 수그러지는 기색이 없었다.

 

" 쨍 ! "

 

매서운 쇳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을 터뜨릴 듯이 울려 펴졌다.

별과 같이 눈부신 불똥이 사방으로 반짝반짝 튀었다.

철기사의 갈래 창과 홍의화상의 구환용두창이 드디어 맞닥뜨리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철기사가 지탱을 하지 못했다.

쨍소리가 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는 벌써 발을 떼어놓는 품이 비칠비칠. 꿋꿋이 버티지 못하고

몸까지 흔들흔들하면서 두 팔에 맥이 탁 풀어져서. 두 자루의 갈래 창을 그 이상 손에 잡고

있기가 힘에 부치는 자라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알고보니 철기사는 갈래 창과 지팡이가 맞닥뜨리는 순간에 벌써 첫째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

사이에 찢어져서 두 손이 똑같이 시뻘건 피로 물들게 되었고 이렇게 되고 보니.

전신의 진기가 일시에 몸땅 새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홍의화상 편에서도 그것은 결사적인 최후의 일격이었다.

전신에 간직되어 있는 온갖 힘을 전부 털어내서는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려고

육박해 들어갔으나 철기사도 죽을 힘을 다해서 끝까지 버티는 지라.

홍의화상도 두 팔이 후들후들 떨렸고 그대로 비비 꼬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역시 홍의화상의 꿋꿋하고 억척스럽고 줄기찬 힘은 이만한 타격 앞에 끄떡도 하지 않았다.

다소 당황한 듯한 기색이 알굴에 떠돌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나 다음 순간에는 마치 아프지도

않다는 듯 여전히 구환용두창을 휘두르며 철기사를 정면으로 들이치면서 육박해 들어갔다.

바로이때. 낭월대사가 비호같이 경기대 위로 날아들어서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딱 버티고 섰다.

그는 왼쪽 소맷자락을 약간 흔들흔들하고 오른쪽 손바닥을 가볍게 뿌리더니.

홍의화상을 향해서 일장을 발사했다.

우선 홍의화상의 공세를 막아 머리를 돌려 철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도우! 잠시 휴게대로 돌아가서 쉬시오! 저놈은 노승이 대신 맡아서 쳐지하리다! "

 

철기사는 그 말을 듣더니 두 볼이 부끄러움으로 새빨갛게 타올랐다.

그러나 부끄러움도 아픔도 참아가며 낭월대사에게 부탁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소생은 무능한 탓으로 대사님에게 신세를 지게 됐으니 ..........

잘 부탁드리고 우선 물러나 겠습니다! "

말을마치자 철기사는 땅에서 두 자루의 갈래 창을 주워들고 부끄러움이 가득 찬

처량한 얼굴로 표연히 경기대 아래로 내려 서 버렸다.

 

" 심히 면목이 없게 됐소이다! "

 

동쪽 휴게대로 돌아간 철기사는 철장단심 탁창가에게 이렇게 단지 한 마디를 힘없는 목소리로

 남겼을 뿐 즉각 그자리를 물러나고 사라져버렸다. 

 

" 여보시오 ! 우리도우. 용감히 싸워주셨소 !

이대로 가시다니 몸이나 잠시 쉬시고 서서히 행동을 하신들 .............. "

 

탁창가는 대표자의 입장에서 극히 위로하고 만류하려고 애썼지만 철기사는 끝끝내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았으며 잠시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표연히 경기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철장단심 탁창가는 무림의 쟁쟁한 인물들이 이 자리에 모였고.

또 수많은 관중들이 아우성을 치는 이 넓은 마당에서 두 번 다시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무안하고

 창피한 꼴을 눈물을 머금고 참는 도리밖에 없었다.

철기사라는 인물을 생각할 때 그 역시 당대에 명성을 날리고 있는 훌륭한 무인이다.

이런 인물이 우정과 의협심에서 숭양파를 거들어주겠다고 이 싸움터에 용감히 나타났다가

홍의화상 우람부루의 공세를 물리치지 못하고 꼴사납게 패퇴하고 말았으니.

탁창가의 가슴속은 미어질 것만 같았으며 극도의 비분강개를 참기 어려웠다.

강호를 활보하는 협객과 호걸은 명예를 생명보다도 더욱 소중히 여긴다.

철기사는 비록 이번 무술대회에서 손에 피를 흘리며 어디론지 바람처럼 이 자리를 떠나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몇 해 후가 될지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장래에 다시 홍의화상을 찾아서

오늘날의 원한을 보복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으로 이를 악물고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대회장을 뜨고 말았다.

철기사의 이런 비장한 심정을 추측하고도 남음이 있는 탁창가는 그를 그 이상 더 옆에 잡아두려

하지 않았고 철기사 자신도 이미 무용지물이 돼버린 패장의 몸으로서 추태를 더 드러내기 싫었기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탁창가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비분강개도 소용이 없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패자의 모습이란 어느 때 어디에서나 항시 쓸쓸하고 처참하고 거엾어

보일 뿐이었다.

 

' 철기사를 생각했으라도 이번 싸움에 져서는 안 되겠다! '

 

자기 시양속에서 멀리 사라져 가는 철기사의 쓸쓸한 뒷모습을 뜨거워지는 눈시울로 혼자서

전송해 주면서 탁창가는 남몰래 이를 악물었다.

 탁창가가 다시 경기대 위로 시선을 옮겼을 때에는. 낭월대사는 여전히 한복판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이미 경기대를 떠나고 없었다.

경기대 위에는 다른 인물이 홍의화상을 대신하여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저 유명한 해남인마 였다.

낭월대사가 홍의화상의  공세를 가로막고 철기사를 경기대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있었을 때.

그리고 우람부루가  또다시 구환용두장을 휘두르며낭월대사에게 덤벼들려고 하는 그 순간에.

난데없이 등들미로부터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우리 대사부. 잠시 뒤로 물러나시오!

 저따위 늙은 놈은 내가 대신 처치하리다! "

 

홍의화상은 그 말을 듣자 선뜻 머리를 뒤로 돌려봤다.

그때 바로 해남인마가 경기대 위로 비호같이 날아들고 있는 판이었다.

홍의화상은 사실인즉. 좀더 뽐내보고 우쭐거려보고 싶은 평소의 그의 심술궂은 성격에서

이런 응원을 달갑게 생각하기는 커녕 적잖이 불쾌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했을때. 이것이 바로 경기대에서 내려가기에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응큼스런 판단을 한 홍의화상은 . 못 이기는 체하고 대뜸 구환용두장을 신바람 나게 흔들면서 낭월대사를 향해 소리를 질렸다.

 

" 이 대머리 도둑놈아! 이 부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이번 무술대회에서 정한 규칙대로

행동하고자 하기 때문에 네놈을 이대로 내버려두고 물러나는 것이다 ! "

 

홍의화상 우람부루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자 경기대 아래 관중석에서는 까르르 요란스런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것은 우람부루 자신도 화상이면서 상대방을 대머리 도둑놈이라고 매도했으니.

결국은 자기 얼굴에 자기가 침을 밷는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낭월대사는 어디까지나 점잖게 응수했다.

웃음소리의 물결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서 낭월대사는 두 손으로 합장하면서 침착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나무아미타불 ! 그런 죄스러운 말을 함부로 하지 말지어다 ! "

 

맞음편에 나타나 있는 해남인마가 그 말을 듣더니

언성을 높여서 몇 마디를 쏘아붙였다.

 

" 이 늙은 화상아 !

그대는 저 천목산에서 우리가 만났던 일을 아직도 잊어버리지는 않았겠지?

내 오늘이야말로 그대의 탁월하다는 무술을 하나도 빼지 않고 깡거리 구경하고 싶단 말이다!"

 

낭월대사는 여유작작하게 웃어 넘겼다.

 

" 허허허 ........ 그야 물론이지 !

이번 무술대회에서는 승부가 가려지지 않을 때까지는 누구든 그대로 경기대 아래로 내려갈 수는

없을 터이니까.

이 노승도 몸에 지닌 온갖 재간을 발휘해서 싸워볼 각오이거니와 그대는 이 몇 해 동안에 무슨

신출귀몰한 놀라운 재간이라도 연마했다는 건가?

어디 그것을 이번 기회에 이 노승에게 아낌없이 충분히 구경시켜주었으면 ............. "

 

낭월대사의 이런 말은 표면상으로는 지극히 점잖은 말 같았지만 한편으로 따져보자면

어디까지나 해남인마를 깔보고 하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 네깟 놈의 무술 실력이 몇 푼어치나 된다는 거냐?

 감히 나에게 덤벼들 만하다는 거냐?

 예전에 천목산에서는 끝까지 관대한 인정을 베풀어서 네놈에게 양보해 주고 놓아 보낸 것이다! '

 

이런 의미를 암암리에 포함하고 있는 멸시의 말이었다.

그 말의 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는 해남인마였다.

당장에 두 눈을 부럽뜨더니 부들부들 떨리는 음성으로 버럭 악을 썼다.

 

" 맞았다 ! 잘됐다 ! 네놈의 말대로 얼른 사생결단을 해보잔 말이다 !

 이런 늙은 중녀석이 주둥아리로만 그럴듯하게 지껄어대고 있다니 .......... "

 

해남인마가 말을 마치고 즉각 손을 쓰려고 한쪽 어께를 들먹거리고 움직이려는 찰나에.

홀연. 숭양파 쪽으로부터 전혀 예기치 못한 또 다른 인물이 경기대 위로 날아들었다.

그 인물도 우렁찬 음성으로 소리를 질렸다.

 

" 대사 ! 잠시 쉬어주시오 ! 내가 대신 옛날 친구와 한번 맞닥뜨려서 대결해 보겠소 ! "

 

낭월대사가 흘쩍 머리를 돌려보니.

그것은 선비의 몸차림이 날아갈 듯이 깨끗하고 단정한 어떤 중년의 사나이였다.

둥근 달 같은 얼굴. 반짝이는 별 같은 두 눈 태도가 태연자약했다.

이 사나이야 말로 강호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대파산 가릉서생 궁문이였다.

난데없이 날아든 협객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차린 낭월대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첬다.

 

" 허허허헛! 그것 참 심히 공교로운 일이로군!

그러나 궁대협이 이자와 옛날부터 풀어야만 될 인연이 맺혀 있다고 하신다면.

이노승이 어찌 감히 그 명령에 복종치 않을 도리가 있겠소 ! "

 

낭월대사는 말을 마치자 두 손을 한데 모아 절레절레 흔들어서 인사를 표시하고

몸을 날려 경기대 아래로 내려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