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37장 호각지세(互角之勢)

오늘의 쉼터 2013. 12. 14. 10:31

 

정협지(情俠誌)

 

37 호각지세(互角之勢)

 

금사보의 대혈전 

 

 

 흑지상인 고비가 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머리를 좌우 양편으로 휘휘 내두르더니

신변 가까이 있는 인물들을  쭉 훑어보고 나서 걸걸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의 상대방은 이미 두 판을 연거푸 이겼소.

그리고 저편에서 싸움에 내보낸 인물이란 모두 후배 제자급 인물이었소

그러나 내 생각 같아서는 이번에 뛰어나올 인물은 그들의 선배급에서 나올 것이고.

그들이 초청해 왔다는 몇 명의 늙은 무용지물을 제외한다면.

우리와 대결할 만한 위인은 불과 여들 명밖에는 없을 것이오.

우리는 사람의 수효만 가지고 따지더라도 당연히 놈들을 이겨야만 될 것이오!

이제부터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놈들에게 져서는 안 되겠소!

여태까지 놈들이 이겼으니까.

이번에는 놈들이 먼저 사람을 내세워야 할 차례요.

우리는 저편에서 어떤인물을 내보내는지 그것을 보고 나서 대처하기로 합시다 !"

 

고비의 말이 막 끝나자마자.

숭양파편에서 벌써 훌쩍 자리를 떠서 경기대로 날아드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경기대 한복판에 우뚝 서더니.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서쪽 휴게대를 건너다보면서 소리쳤다.

 

"독응구붕이 여기 나왔소! 누구든지 대결해 봅시다! "

 

관람석은 또다시 긴장에 싸여 조용해졌으나.

어느 구석에선지 껄껄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독응구붕 영감의 번쩍번쩍하는 대머리와 떡 버티는 품이 웃음을 자아냈기 때문이었다.

고비는 독응구붕 영감의 말이 떨어지자.

즉시 좌우를 두리번 그리면서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어떤 분이 나가셔서 수고해 주시겠소?"

 

홀연. 목이 쉰 것같이 갈라진 음성이 들렸다.

 

" 소생이 한번 나가서 대결하겠소 ! "

 

흑지상인과 회양방의 전 인원들은. 일제히 소리가 난쪽으로 머리를 쳐들고 바라다보았다.

그것은 50전후의 키가 작달막하고 뚱뚱하게 생긴 작자였다.

회양방을 위하여 세 번째로 싸우겠다고 나선 이 작자는.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몸집이 우락부락하면서도 보기 흉할 정도로 작달막한 땅딸보 였다.

그는 바로 회양방에서 특별히 초청해 온 음면산군 상당이란 위인인데.

무림 변두리 어두컴컴한 뒷골목에서는 제법 명수라고 뽐내기도 하는 자 였다.

고비는 선뜻 생각하기를 음면산군 상당의 무술이면 상대방의 대머리 영감 하나쯤은

문제없이 대적해 내리라고 믿었다.

지극히 대견하다는 표정을 하고 두 손을 맞잡아서 절레절레 흔들며 싱긋 웃어 보였다.

 

"상 선배께서 출전을 해 주시겠다면야. 저런 상대자 하나쯤은 겁낼 것이 있겠습니까?

 자 그러면한번 수고해 주십쇼! 단단히 부탁합니다! "

 

음면산군 상당은 입이 찢어지도록 바보처럼 웃었다.

자못거드름을 부리며 여덟 팔자 걸음거리로 천천히 휴게대 앞으로 나섰다.

경기대까지의 거리는 2. 3장이나 더 돼 보이는데 이 자는 거기서 두 다리에 꿍 하고 힘을 주더니.

흘쩍 몸을 날려 마치 한 마리의 큰 새가 땅 위를 살짝 스쳐가며 날 듯이 쉭 하고 경기대 위를

옆으로 날아들었다.

 

'흠. 어지간히 재간이 놀랍다는 수작이로구나! 호락호락 다루어서는 안 될 놈인걸! '

 

독응구붕 영감은 경기대 한복판에 떡 버티고 서 있다가.

음면산군 상당이 이런 재간을 부리고 날아드는 것을 보자.

정신을 바짝 차리며 긴장하기는 했으나 그에게도 자신만만한 점이 있어서 상대방의

일거수 이투족을 노려보기만 하고 꼼짝하지 않았다.

 

'흥! 네놈이 아무리 하늘을 나는 재간이 있어도 맞닥뜨려보기 전에는 함부로 까불지 마라!'

 

음면산군 상당이 경기대 위에 우뚝 서자 독응구붕 영감은 이놈이 무슨 소리를 지껄일 것인가 하고.

거기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바로 이때 흘연 공중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독응구붕 두우! 잠시 손을 멈추시오!

나는 저 날도둑놈하고 한번 맞서서 따져볼 만한 까닭이 있는 사람이니.

이 싸움은 나에게 맡겨주시기 바라오! "

 

말 소리가 그치자마자 바람소리가 일더니.

동쪽 휴게대 위로부터 목이 비쩍마른 노인 한 사람이 경기대 위로 날아들었다.

머리털이 온통 백발이 되어서 은실처럼훝날리며 그 몸집이 허공에 떴을 때는

마치 바람을 헤치며훌훌 날아오듯. 가볍기가 마른 면화와도 같았다.

단지 이 한 가지 재간만 보더라도 이 노인이 몸에 지니고 있는 무술 실력이

얼마나 놀라우리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찌렁찌렁 울리는 음성으로 위엄 있게 호통을 치는 소리에.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부들부들 떨 지경이었다.

그것은 무술에 정통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자세였다.

정신력의 정화인 내공의 탁월한 힘이 없이는 억지로 호통을 쳐서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것은 용이한 노릇이 아니었다.

상대방을 압도시키는 이 노인의 호통 소리만 들어봐도 음면산군 상당이 대적하기

힘든 인물임을 누구나 대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호리호리한 백발 노인이 허공에서 경기대로 내려서며 자리잡고 우뚝서자.

독응 구붕 영감은 자못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 우리 대협객 단 선생께서 저자와 따져야만 되실 연유가 있으시다면.

 이 독응구붕 감히 명령을 어기고 물러나지 않을 도리는 없습니다! "

 

독응구붕 영감은 말을 마치자 선뜻 몸을 가볍게 날려서 경기대 아래로 내려서더니.

동쪽 휴게대 위로 되돌아갔다.

이때 광장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던 수많은 관중 가운데는.

극히 소수의 몇몇 사람들만이 독응구붕 영감이 우리 대협객이라고 부르는 칭호를 듣고.

이 백발 노인이 무슨 연유가 있어서 싸움판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눈치챘을 뿐이었고 이 백발 노인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똑바로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크! 저놈의 늙은이가? '

 

이 백발 노인의 출현은 회양방 쪽에서는 확실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쪽 휴게대에 버티고 앉아 있는 흑지상인 고비를 위시해서 회양방의 모든 사람.

더군다나 음면산군 상당과 천령장 영여석은 극도의 놀라움 속에서

또한 약이 바싹 오르는 것이었다.

음면산군 상당은 분명히 독응구붕 영감을 대적해 볼 생각으로 경기대에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만하다는 어떤 승산을 품고 상대방을 노려보며 긴장해 있는 판국인데

난데없이 생각지도 못한 무서운 화살이 옆구리에서 번개처럼 날아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표면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 같지만 사실인즉 싸움판은 회양방의 음면산군 상당 앞에서

숭양파 쪽의 무서운 강적이 둘 씩이나 교대된 셈이 됐으니 약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디 그뿐이랴.

난데없이 뛰어든 이 백발 노인은 확실히 대적하기 거북한 존재라는 것까지 알게 됐으니 .......

이 노인이야말로 장강 양안의 무림 변두리나 어정그리며 못된 짓을 일삼는 회양방의

악당들에게는 그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존재였다.

그 칭호를 보리수 단무라고 했다.

18년 전에 음면산군 상당은 장강 북쪽 연안을 휩쓸고 돌아다니면서 온갖 악날한 짓을

떡 먹듯이 하고 세상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킨 큰 사건을 저지런 것만도 부지기수였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큰 사건은 최후로 저지런 강탈 사건이었다.

대담무쌍하게도 지부로 부임해 가는 사람의 역마차를 겁탈해 버린 것이다.

그 지부로 부임해 가는 사람은 사실상. 몸에 많은 돈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음면산군 상당은 역마차를 습격하자마자.

이 사람에게는 흐뭇하게 약탈해 낼 만한 돈이란 별로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고.

그 대신 불길처럼 치미는 수심을 참을 길 없어 그 소첩을 노려보는 순간에.

일언반구 말도없이 덥석 미모의 젊은 여인의 가냘픈 허리를 껴안은 채 뺑소니를 쳐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악독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한 음면산군 상당이란 자는.

젊은여인을 겁탈해 버렸을 뿐만 아니라.

거느리고 가던 여러 명의 부하에게 명령하여 지부란 사람의 집을 습격케 하고

그 가족들까지 몰살을 시켜버리려고 했다.

그때 마침. 이렇게 천인공로할 처참한 상황이 벌어진 그 앞길을 지나쳐 가게 된 것이

바로 보리수 단무였다.

단무는 주춤하고 가던 걸음을 멈추고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자.

대뜸 그것이 무슨 소행이라는 것을 재빨리 판단했다.

차마 눈을 뜨고 그대로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잔인무도하고 소름끼치는 음면산군 상당의

소행 앞에서 보리수 단무는 서슴치 않고 정의와 의협의 칼을 뽑아 들었다.

그 당시만 해도 . 음면산군 상당의 무림의 으슥한 뒷골목애서는 어느정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존재이기는 했지만 보리수 단무의 비범한 무술 실력 앞에 일 대 일로 대적하기에는

아직도 힘이 부치는 위인에 지나지 못했다.

 

" 네 이 천하에 흉악무도한 놈!

내 네놈의 목숨을 이 세상에 남겨두지 않을 것이로되 인정상 차마 .............

개만도 못한 네놈의 목숨만은 살려주는 것이니 후일에는 개과천선하고 ..........."

 

보리수 단무는 그대로 마지막 인정을 베풀어주었다.

하나라도 이 세상에 무형적인 원구를 남겨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지부의 집안 사람들을 구해 내자.

음면산군 상당의 왼손에서 손가락 하나만을 잘라버리는 데 그쳤으며.

놈의 목숨을 살려주어 도망치게 하고 죽여버리지는 않은 것이었다.

그 후 몇 해가 지나는 동안에 음면산군 상당은 보리수 단무의 인정 앞에 허물을 뉘우쳤음인지.

잔인무도한 일에서 일시 손을 씻고 그 활동 무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는 했으나.

자나깨나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은 손가락 하나를 잘렸다는 원한이었다.

 

"내 평생 이놈을 그대로 두지는 않으리라 ! "

 

음면산군 상당은 이렇게 절치부심하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자신의 무술 실력이 보리수 단무를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을 뿐더러 그 당시의 보리수 단무를 말하자면.

청룡방의 내향당 당주라는 위치에 있었고 청룡방의 수많은 방도들이 장강 양안으로

구석구석 깔려 있어서 굉장한 세력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음면산군 상당으로서는

감히 보리수 단무를 대적해 볼 용기가 나지 않은 것이었다.

분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참는 도리밖에 없었다.

참기는 하지만. 어느 때고 평생의 기회를 노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복수의 일념에 불타오르는 음면산군 상당은 마침내 무림 변두리에서 은퇴하고

종적을 감춘 다음 오로지 무술 연마에만 전심전력을 기울렸다.

 

"십 년을 참아도 좋다! 그 동안에 나도 놀라운 무술을 몸에 지니고 보리수 단무라는

놈을 찾아서 반드시 손가락을 잘린 보복을 하고야 말리라 ! "

 

비장한 결심과 단련 속에 세월이 흘렀다.

이런 원수를 금사보에서 맞닥뜨리게 되다니 양쪽이 똑같이 너무나 뜻밖이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원수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보리수 단무도 10여 년  전의 분노가 치밀어올라.

선뜻 뛰어 내달았지만 음면산군 상당은 두 눈에서 원한의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 것만같이

무서운 광채를 발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음면산군 상당 앞에 주어졌다 할지라도 상대방을 어떻게 다루어서

승리를 거두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음면산군 상당은 경기대로 비호같이 날아들어 우뚝 서는 보리수 단무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원한에 불붙는 눈초리 속에서도 가슴이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방을 보지 못한 10여 년 동안에 음면산군 상당은 온갖 고초를 격어가며 무술 연마에 전심전력을 기울렸다고 하지만 과거에 한번 혼이 나본 그로서는 보리수 단무의실력 앞에

여전히 겁을 집어먹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뱀에게 한 번 물린 사람은 10년을 두고 실오라기만 봐도 놀란다는 속담이 바로 지금의

음면산군 상당의 처지나 심정을 말하는 것이리라.

보리수 단무는 역시 태연자약했다.

 

" 아핫! 그대를 이 자리에서 또 만날 줄이야 ................ "

 

그는 음면산군 상당을 똑바로 노려보며 한바탕 호탕하게 냉소를 퍼붓더니 말을 계속했다.

 

"듣자니 그대는 다년간 전과를 뉘우치고 잔약무도한 행동에서 손을 씻었다고 하던데.

어찌하여 그대로 몸을 근신할 줄 모르고 이 험악한 판국에 철없이 뛰어든 건가? "

 

음면산군 상당은 이 말을 듣자.

불길같이 타오르는 극도의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10여 년을 두고 참고 참아온 원한이 가슴속에 용솟음쳐 올라 거친 목소리가 와들와들 떨려 나왔다.

 

"단무! 느........ 늙은 것아. 입을 닥쳐라!

네놈이야 말로 무슨 욕심으로 이 자리에 뛰어드느냐!

십여 년 전의 음면산군 상당이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다.

잘 됐다!

그렇지 않어도 이 자리에 나오면 네놈을 만날 수 있을까 했더니 ...........

이번 기회에는 내 맹세코 손가락 하나를 잘린 과거의 원한을 보복하고야 말리라! "

 

보리수 단무가 이말을 듣더니.

또 한바탕 냉소를 터뜨리며 여유작작한 태도로 말했다.

 

"이놈! 말이면 다 하는 줄 아느냐!  하하핫핫!

알고보니 네놈이 십 년을 두고 보복할 날을 기다렸단 말이지.

그거 참 잘됐다.

네놈이 그동안 어떠한 기예를 몸에 지녔나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

 

음면산군 상당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홀연. 앞으로 한 발자국 선뜻 나서며 자세를 든든히 바로잡더니.

쉭 하는 매서운 소리와 함께 두 손을 한꺼번에 써서 화살같이 손바람을 일어켰다.

그 순바람을 아래위로 교차시켜 가면서 상대방에게 맹렬한 공세를 가해 보자는 것이다.

위로는 보리수 단무의 가슴팍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아래로는 하복부를 노리고

육박해 들어가는 만만치 않은 수법이었다.

 

"이놈! 제법 손을 쓸 줄 아는데! "

 

보리수 단무는 나지막하게 호통을 치더니.

번쩍하고 몸을 움직이는가 하는 순간에 역시 두 팔에 잔뜩 진력을 집중해 가지고

강호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의 독특한 보리수  장법을 전개했다.

여태까지 지나간 두 판의 무술 경기는 말하자면 보잘것없는 서막전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서 물론 승패를 가린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싸움 전체의 대국에 미치는 영향이란

그다지 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되는 싸움부터는 정식이요.

본격적인 대결이 벌어지는 것이니.

그 일승일패가 전체 판세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올 것이었다.

더군다나 경기대에 등장한 쌍방의 인물들이 모두 강호에서 쟁쟁하게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인물들이며 또 쌍방이 다 같이 적어도 남의 싸움에 초청을 받고 거들어주려고 나선 인물들이고 보니.

싸움은 이제야말로 백열전의 가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보리수 단무를 말하더라도.

비록 자신의 무술 실력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으며.

음면산군 상당이 과거에 자기 수하에게 나가떨어진 일개 패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얕잡아본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한번 헤어진 후 10여 년이란 긴 세월이 가로막혀 있었다.

그리고음면산군 상당이 10여 년 동안을 두고 무술을 연마에 전심전력을 기울였다는 사살 등.

여러 모로 생각해 볼때. 음면산군 상당이 첫손을 내미는 품이 벌써 보통이 아니었고.

독특하고 기묘한 바가 있었다.

그것은 이미 18년 전의 서투른 수법이 아니었다.

이 점을 재빨리 간파한 보리수 단무도 어느 때보다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했다.

추호라도 소흘히 다루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했다.

음면산군 상당은 비단 다년간의 원수 앞에서 두 눈이 불똥이 튀듯 뒤집힐 지경일 뿐만 아니라.

목숨을 내걸고 죽는 순간까지 싸워보겠다는 결심으로 이를 악물었다.

 

'네놈이 죽지않으면 내가 죽을 것이고 .......

 내가 죽지 않으면 네놈이 죽을 것이고 .........

 이도 저도 안 될 경우에는 네놈을 죽이고. 나도죽고 .........

 그렇게 되더라도 나는 추호라도 겁날 것이 없다! '

 

무술 실력이 만만치 않은 원수와 원수의 대결.

그것이 비록 무기를 가진 것이 없이 몸과 몸만이 맞부딛히는 싸움이라지만.

이미 지나간 두 판의 싸움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관중들을 극도의 긴장속으로 몰아넣었다.

밧수갈채. 수선스런 아우성 소리. 그리고 손에 땀을 쥐는 흥분과 긴장 속에서 관중들은

또다시 숨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가라앉았다.

음면산군 상당은 결사적이요.

발악적이다.

한번. 또 한번 손을 쓸적마다 전신의 온갖 진력을 송두리째 쏟으며.

또 그가 10여 년을 두고 불철주야 연마했다는 삼첩장(三疊掌)이란 수법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남김없이 발휘해 보는 것이다.

이 삼첩장이란 술법은 정말 괴상하면서도 무서운 손바람이었다.

몸에 지니고 있는 힘을 세 단계로 나누어서 쓰는 술법인데.

뭔가가 그 힘을 가로막을 때마다 그 손바람은 더욱 억세지고 점점완강해지며.

그와는 반대로 가장 강한 힘에 가로막혔다고 인정될 때에는 차츰차츰 약하고 부드러워지면서도

진퇴와 신축성이 자유자재인 장법이었다

이삼접장이란 수법의 독특하고 놀라운 점은 손바람이 한번 상대의 몸에 명중하게만 된다면.

즉각 세 가지의 흔적을 찍어놓는 것이었다.

먼저 제1단계에서 발사된 손바람의 힘은 상대방의 몸에 과히 뚜렷하지 않은 손바닥의 형상을 큼직하게 찍어놓는다.

그 다음. 2단계에서 발사된 손바람의 힘은 비교적 뚜렸한 손바닥의 흔적을 상대방의 몸에 찍어놓는데. 단지 그 범위가 처음 자국보다 훨씬 축소될 뿐이다.

3단계의 손바람의 힘이 찍어놓은 손바닥의 흔적이 가장 뚜렷하며 그 범위가 제일조그맣게

압축된다.

다시 말하자면 세 개의 흔적이 한 자리에 덮쳐서 흡사 세 개의 크기가 각각 다른 손바닥이

차례차례로 도장을 찍어놓은 것이다.

처음으로 그 손바닥의 힘을 쐬었을 때에는 그 흔적이 그다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삼삼은 구. 아홉 날을 경과하게 됐을 때. 거기에 대한 해독제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도장처럼 찍힌 손바닥의 흔적이 변색이 되어서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일 언저리가 큼직한 첫번째 손바닥의 흔적은 엷은 남빛으로 변하며.

그 안으로 제일작게 찍힌 손바닥의 흔적은 시커먼 빛으로 변해 점점 부증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술법을 삼첩장이라고 부른다.

음면산군 상당은 이 삼첩장의술법을 연마할 때 .

맨 처음에는 한 장 한 장 똑바르게 칼로 자른 면지를 높이 쌓아서 약 한 자쯤 두껍게 해놓고.

먼저 손바닥의 힘을 써서 그 종이에 맹렬한 공격을 가하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제1단계의 연습이 뜻대로 성공을 했을 때에는 손에서 발사하는 힘이 한번 종이에 스치기만 하면.

그 단단하게 뭉쳐진 종이 위에  하나의 손바닥의 흔적이 도장처럼 찍혔다.

다시 그 종잇장을 집어들고 가만가만히 흔들어보면 손바람의 힘이 공격을 가한 부분은 마치

불에 탄  종이가 재로 화하듯이 하늘하늘 날아서 떨어지며 칼로 새겨서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은

한 개의 손바닥 형상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2단계에 들어가서는 . 훨씬 떨어진 거리를  앞에 두고 서서 너댓 자쯤 높직한 곳에 단단히 뭉쳐진 면지를 담 위에 꼿꼿이 매달아 놓고 멀리서 손바람을 일어켜서 맹렬한 공격을 가하는 연마를 했다.

오로지 손이 지니고 있는 힘으로만 그 단단한 종이를 건드리는 것이지만.

손바닥 자체는 조금도 종이를 스치는 것이 아니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멀리서 공격을 가해도 그 단단한 면지의 뭉치를 격파할 수 있을 때.

2단계의 술법을 제대로 성공한 것이다.

최후의 단계는 발을 거칠게 짠 형겁으로  면지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종이를 헝겊으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역시 상당히 먼거리를 두고 손바람의 공격을 가하는 것이며.

그 간격을 점점 떨어지게 하는 데서 이 술법은 완전한 성공 단계로 발전되는 것이며.

여기에서 또 한 가지 가장 어려운 최후의 술법을 연마하는 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서는 . 한번에 세 필의 거친 헝겊을 겹쳐서.

그 두께가 한 자 반이나 더 되게 만들어가지고. 역시 처음과 같이 담 위에 걸쳐놓고.

7척쯤 되는 거리를 띄워놓고 서서. 온갖 힘을 집중시켜 가지고 들이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단 손바닥 자국을 찍어놓게 될 뿐만 아니라.

그 헝겁은 종이장같이 부스러져버릴뿐더러.

그와 동시에 각각 다른 세 가지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손바람의 힘이 한번 습격을 가하고 난 뒤에는 헝겊 위의 손바닥 자국은 각각 크고 작은 세 가지로

분별되는 것이며 이래야만 비로소 삼첩장의 술법을 완전히 연마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맨 위 한 필의 헝겊. 바로 밖으로 나온 한 헝겊에 찍힌 손바닥 자국은 제일 크고.

중간에 찍힌 손바닥 자국은 꼭 사람의 손바닥만하게 작아지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이 술법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음면산군 상당은 이 술법을 연마하는데 꼭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으며.

갖가지 괴롭고 눈물겨운 단련을 주야로 쉴새없이 계속하여 마침내 삼접장이란 괴상하고 독특한

재간을 몸에 지니게 되었고 이것만 가지면 비단 옛날의 이가 갈리는 원한을 보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호를 제멋대로 흘겨보며 무림에서 뽐내볼 수 있으리라고 혼자서 생각하며 기회가 오기만

노리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때. 마침 흑지상인 고비가 무림 각 방면으로 의협첩을 발송하고 그에게도 한번 나와서 거들어달라고 초청하는지라.

음면산군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이제야 왔나 보다 싶어서. 불끈 치밀어오르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즉각 행동을 개시하여 천령장 영여석과 함께 강호에 오래간만에 두각을 나타내본 셈이었다.

회안 금사보 안에 와서 무림의 허다한 명수급 인물들을 보게 되고.

각 방면의 소식과 전해지는 말을 듣고 보니 음면산군은 그제서야 사태가 그가 생각하던 것과 같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10년 동안이나 온갖 고생을 무럽쓰고 쌓아올린 실력이나 재간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다지 대단하거나 놀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리하여 음면산군 상당의흥분한 기세도 그 절반은 꺾여버린 셈인데.

그때 마침 경기대에 뛰어든 것이 바로 독응구붕 영감이었다.

이 기회에 음면산군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약삭빠르고 꾀 있게 그리고 과히 힘 안 들이고 두각을 드러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아직까지 회양방과 숭양파 쌍방의 주요한 인물들이 싸움터에 나서지 않았으며.

독응구붕 영감이 그다지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대단치 않은 늙은 것 한 놈쯤을 쉽사리 때려눕혀서.

 한번 내 재간을 뽐내보면 상대방을 다루기도 수월하고 또 나를 초청해 준 사람에게

 면목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뉘 알았으랴! 감연히 뛰어든 싸움터에. 다년간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보리수 단무가

나타나서 호랑이 등에 업힌 사람처럼 내려설 수도 없는 형편이 돼버릴 줄이야.

음면산군 상당은 약이 오를대로 올랐으며 가슴속에서 불길이 훨훨 타올랐다.

마침내 그는 독특하고 잔인한 술법인 삼첩장을 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둘은 벌써 2. 30번이나 맞닥뜨려서 대결을 했다.

보리수 단무는 과히 남에게 빠지지 않는 재간을 가지고도 호락호락하게 넘어뜨릴 수는 없는 적수였다.

싸움은 소위 평수의 위치를 쌍방이 사수하면서 좀체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고보니 보리수 단무 쪽도 내심 뜨끔해서 극도의 경계심과 긴장 속에서

바늘 끝간이 날카로운 신경을 쓸 뿐만 아니라.

동서 양편의 사람들과 무수한 관중들 까지도 손에 땀을 쥐고 두 사람의 움직임을 노려보고 있는

판이었다

보리수 단무로 말하자면 강호에 이름을 떨친 지 이미 오래되는 인물이었다.

내공 외공 어느 모로 보나 그의 무술은 이미 오묘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상대방을 처음부터 멸시하고 덤벼드는 판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대단한 존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단지 상당이란 자가 자기보다 힘이 다소 세리라는 점에 특별히 유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것이 2. 30번이나 맞닥뜨려보고 나서야 비로소 음면산군의 손을 쓰는 품이 확실히 명장에 들 만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음면산군의 손바람의 힘은 딱딱하지도 그렇다고 부드럽지도 않았으나 그러면서도 질풍처럼 빨랐다.

진력을 모조리 뽑아서 완강히 맞닥뜨리면 그 손바람은 살그머니 미끄러지듯 피해버리고.

그렇다고 진력을 쓰지 않고 만만히 맞부딪히면 그 손바람은 도리어 완강하고 급격한 힘과 속도를 가지고 육박해 들어오는데 도무지 무슨 장법인지 분간해 내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좀체로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게 되니 보리수 단무도 상당히 당황했다.

 

'이놈이 옛날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는 걸! 만만치 않겠는데 ............ '

 

보리수는 그제서야 상대방의 대한 인식을 달리하면서.

저신을 바짝 차리고 자기도 전신에 축적되어 있는 온갖 진력을 두 팔에 집중시켜.

그만의 독특한 보리수의 술법으로써 상대방을 노려보며 듬벼들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양쪽이 다같이 손과 발의 힘을 다소 늦추고 서로 얼굴과 얼굴을 노려보며.

똑같이 숨을 돌려서 일격을 어떻게 가할 것인가 하고 잡아먹을 듯이 눈동자가 살기등등한 찰나.

경기대 아래의 수많은 관중들은 모조리 숨을 죽이고 넓은 마당 전체가 숨이 끊어진 듯이

조용해 졌다.

동편 휴게대 숭양파의 인물들 속에서  누군가 늙수그레하게 가라앉은 걸쭉한 목소리로 흥분해서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양관(陽關)이 투철하지 못하니. 삼첩 헛수고다! "

 

소위 '양관이 투철하지 못하다'는 것은 무술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선천적인 어떤 현묘한 경지를

철저히 관통하지 못했다는 뜻이니.

다시 말하면 정신적인 내공의 진력이 상대방의 살이나 맥을 뚫고 들어갈 힘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호통소리에 경기대 위의 두 사람은 똑같이 놀랐다.

동서 양쪽 휴게대 위에서도 철장단심 탁창가와 흑지상인 고비 두 대표들은 물론.

여러 고수급 인물들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는 넓은 마당에서도 이 호통소리를 무슨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알아들은 사람은 불과 몇 사람 뿐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그 호통 소리가

대담하고 괴상해서 좋은 구경거리라고 느꼈을 뿐 무슨 깊은 뜻을 포함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고

생각하려 들지도 않았다.

어쨌든 모든 사람의 시선은 그 호통소리가 나는 한 개의 지점으로 총집중 되었다.

단지 서로 잡아먹을 듯이 상대방의 허를 노리며 마주 쏘아보고 있는 보리수와 음면산군 두 사람의

시선만이 호통소리의 주인공을 살펴볼 수 없었다.

높은 음성으로 소리를 벽력같이 지른 것은 바로 탁창가의 신변에 가까이 앉아 있던 늙은이였다.

머리가 훌렁 벗겨진데다가 백설 같은 긴수염을 휘날리며 몸에는 조각조각 헝겊을 기워서 만든

도포를 입었는데 목들미에는 말꼬리털로 만든 털이개 한 자루를 푹 찔러 꽂았다.

몸집이 그다지 크지도 않지만 그 모습이며 사람된 품이 점잖고 조용해 보여서.

몸에 걸친 옷이 알맞지 않은 노인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터에 몰려든 수많은 강호의 호걸 협객들은 대부분 이 노인의 내력을 잘 알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조리 모리를 맞대고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한데 .......  저 노인이 돌았군!

 아무 까닭도 없이 벽력같은 소리를 혼자 지르고 있으니 ................ "

 

"하! 저 백납노도(백납노도)는 평소에도 광기가 있단 말야 .............

 아마 또 무슨 영감이 발동해서 소리를 지르는 모양이군! "

 

"숭양파에서는 어째서 저 따위 미치광이 노인을 초청해 놓고. 싸움을 거들어달라는 걸까? "

 

"흥. 그래도 저 노인의 무술 실력 앞에서는 아마 지금 무림에서 능히 대적하고 나설 만한

인물이 그다지 많지는 않을 걸세! "

 

"천만에! 그걸 누가 믿어? 내눈으로 봤어야 말이지! 사람들의 입으로 그저 전해지는 말이겠지. "

 

"아니. 그래도 제법 무슨 믿는 재간이 있기에 저렇게 호통을 치는 것이겠지! "

 

넓은 마당에 꽉 찬 관중들은 제멋대로 노인의 괴상한 호통소리에 대해서 쑥덕공론이 분분했다.

그러나 이런 관중들은 또 한편에서 숭양파와 회양방의 소위 고수요 명수급 인물들이

그 호통소리에 당황해서 수군수군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판이었다.

철장단심 탁창가는 고개를 그편으로 돌리고 넌지시 물어봤다.

 

"도우께서는 호통을 치셨는데. 그말씀이 사실인가요? 틀림없는 판단이신가요?"

 

이런 질문을 받은 백납노도 늙은이는 싱긋하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소리 없이 띨 뿐이었다.

백납노도 늙은이는 자못 위엄 있는 표정을 하고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단무 도우에게 어떤 계기를 암시해 주려는 것이오.

내가 보건데 단무 도우는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갈 우려가 많소.

아직도 상대방 기술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거요!

이러다가 실수라도 한다면 어쩌겠소?

탁 도우도 아직 그 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계시오? "

 

탁창가가 선뜻 대답하는 말이.

 

"나는 저놈이 쓰고 있는 술법이 삼첩장이라는 것은 간파했습니다만.

저놈의 실력이나 재간에 양관이 아직도 투철하지 못하다는 것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

 

백납노도는 빙그레 웃으며 또 말했다.

 

"그런데 저놈이 강호 무림에서 오랫동안 구경할 수 없던 삼첩장의 술법을

제법 기특한 경지에까지 연마했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인걸!

하지만 가석하게도 아직도 양관이 투철한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니.

제 목적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오!"

 

이편에서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수군수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저편에서도 흑지상인 고비가 신변에 가까이 있는 고수급 인물 몇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흥! 저 백납노도란 늙은 것이 다년간 강호에 얼굴을 나타내는 법이 없었는데.

이번에 숭양파에서 저 늙은이를 초청해 오리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는걸!

확실히. 저 늙은 것은 다루기 힘들고 시끄러운 존재인데 거기다 또 한술 더 떠서 남의 일에 주책없이

나서서 경기대 위의 삐쩍 마른 눍은이에게 무슨 암시를 주고 있으니 ................."

 

그리고는 좌우 양편의 얼굴을 번갈아 훑어보면서 다음 말을 계속했다.

 

" 상 선배의 삼접장은 나도 이번이 처음인데 여태까지 나는 도무지 깜깜 무소식이었단 말야.

저분이 저렇게 독특하고 놀라운 재간을 연마 했으리라고는 너무나 뜻밖인걸.

비록 아직도 양관이 투철하지 못한 게 가석하기는 하지만 그러면 그런대로

저 정도만 가져도 상대방 늙은 것에게 그다지 만만한 적수는 되지 않겠군! "

 

흑지상인 고비가 자못 든든하다는 듯 좌우 양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자.

여러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경기대 위로 집중되었다.

백납노도가 한번 호통을 쳤을 때 보리수 단무는 그 노인이 자기에게 어떤 암시를 주려고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선뜻 알아차리고 내심 놀라움과 기쁨을 금치 못했다.

 

' 흠.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음면산군이란 놈이 십년을 두고 단련했다는 것이.

 바로 강호에서 오랫동안 구경할 수 없던 삼첩장이었단 말이지?

 손바닥의 힘이 괴상망측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

 

결국. 백납노도의 '양관이 투철치 못하다' 는 말이 자신에게 깨우쳐 주는 말임을

대뜸 알아차린 보리수 단무는 음면산군의 삼첩장이 만만치 않은 술법이긴 하지만.

그다지 겁낼 것은 못 된다는 생각에 자신이 만만해졌다.

보리수 단무가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절예 보리수를 말하면.

상대방의 급소를 멀찌감치 떨어진 공간 속에서도 능히 찌를 수 있는 위력을 지닌 술법이고 보면.

음면산군 같은 존재를 조금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음면산군 상당은 백납노도가 호통을 치는 바람에 일종의 수치스런 생각이 왈칵 가슴 한복판에

치밀어 올랐고  그와 동시에 약이 오를 대로 올랐다.

두 팔이 한꺼번에 엎치락뒤치락 쉴새없이 쭉쭉 뿌려지면서.

맹렬한 손바람의 보리수 단무를 상 중 하 삼로로 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보리수 단무는 이때 이미 가슴속에 어떤 승산이 서 있는지라.

상당의 손바람을 정면에서 막아내며 역시 두 손을 동시에 써서

수공 양면의 작전으로 꿋꿋하게 손바람을 일어켜서 육박해 들어갔다.

두 사람의 손사람이 맞닥뜨렸을 때. 결국 보리수 단무의 힘이 억센 것이 사실이었고. 

또 그 힘은 진력이 충만해 있는 순수한 양강의 힘인지라.

도저히 음면산군의 삼첩장의 힘이 감당해 내기 어려웠다.

바람과 바람이 맞닥뜨리는 찰나에. 무서운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쳐 일어났다.

두 사람은 동시에 디디고 서 있는 발밑이 불안해져서.

똑같이 뒤로 비칠비칠. 흔들흔들했다.

그러나 역시 보리수 단무가 먼저 발을 딱 붙이고 서서.

추호의 틈도 주지 않으며 보다 더 강렬한 일격을 가해 버렸다.

음면산군 상당은 결사적이었다.

자세를 뚜렷이 하고 발을 디디고 서기도 전에 보리수 단무의 일격이

눈앞으로 육박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전신의 힘을 두 팔에 모아서 몸을 비스듬히 뽑는 체하면서도 역시 삼단의 손바람의

힘으로 집중 공격의  술법을 써서 털끝만한 빈 틈도 드러내지 않고 습격해 들어갔다.

 

'이놈이 이번에야 거꾸러지고 말리라. '

 

보리수 단무는 이렇게 자신만만한 일격을 가한 것이었고.

음면산군 상당이 도저히 반격해 오지 못할 줄로만 알았다.

그런것이 뜻밖에도 음면산군은 생사를 돌보지 않고 지쳐 자빠진 짐승이 최후의 발악을 하듯

잡아먹겠으면 잡아먹으라는 듯이 날뛰며 덤벼드는 품을 보니.

단무는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됐다.

또 보리수 단무의 편에서도 공세가 너무나 강했고. 워낙 전력을 기울인 일격이었기 때문에

다시 손바람을 거두어들인다거나. 혹은 걸음을 멈춘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고.

그를 만한 겨를도 없었다.

 

'이놈! 어차피 이리 된 바에야! '

 

보리수 단무는 두 팔에 힘을 더 한층 강렬하게 집중시킬 뿐이었으니.

점점 가까운 거리에서. 쌍방이 다 같이 몸과 몸이 맞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최후의 일각으로 육박해 들어가는 판이다.

한쪽은 뚱뚱하고. 또 한쪽은 삐쩍 말랐고.

이두 강호의 명수들이 옛날의 원한에 불덩어리같이 노기 충천해서.

결사적으로 몸을 내던지고 있는 싸움판은 실로 공개된 무림의 경기장에서

생사존망을 결정짓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싸움이 이렇게 백중지세를 나타내게 되자.

수많은 관중들은 눈동자들이 놀라움에 꽉 차서 휘둥그레졌다.

비단 일반 관중석에서만 극도로 긴장한 것이 아니요.

동서 양쪽 휴게대의 쌍방의 인물들은 실로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이 두 사람의싸움이야 말로 그 승패가 쌍방에 미치는 체면 문제도 클 뿐더러.

더군다나 두 사람이 다 같이 초청을 받고 온 고수이고보니.

어느 편이든 아차 하고 쓰러지는 순간이면 어떤 대표자고 간에 지극히 난처한 입장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쌍방이 똑같이 결사적인 일격으로 두 사람의 손바람의 힘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맞부딪히는 순간 승패의 대세는 결정되고 말았다.

그렇게 발악적인 형세로 삼접장이라는 무시무시한 술법까지 최후로 발휘해 보려고 무진 애를 쓰던 음면산군 상당이 두 팔을 흐늘흐늘 마비된 것처럼 맥을 못 추더니.

허리께가 휘청하고 흔들리는가 하는 순간에 두 다리마저 후들후들 떨면서.

 

" 찰싹! 쿵! "

 

하는 처참하고 요란스런 소리를 내면서 경기대 위에 나둥그러져버리고 만 것이다.

 

" 우아아악! "

 

비명을 지르며 딱 벌린 큰 입에서는 왈칵 시뻘건 피가 뽐어져 나와서얼룩얼룩 옷을 물들였다

 

'그러면 그렇지. 제깐 놈이 ! '

 

" 와 ! "

 

숭양파 편에서는 기세를 올렸다.

요란스런 아우성 소리에 경기대가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광경을 보고 있던 백납노도 늙은이는 남몰래 탄식하면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허! 저 단무란 친구가 결국은 조급한 성미를 참지 못하고서.

마지막 판을 침착하게 수습하지 못하고 ...........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로군! "

 

늙은이의 이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숭양파 쪽에서 별안간 수많은 사람들이 자지러지며

벽력 같은 함성이 일어났다.

 

" 아아앗 ! "

 

경기대 위에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서 있던 보리수 단무가 순식간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두 다리를 몇 걸음인지 휘청하더니.

두 손으로 아랫배를 잔뜩 움켜쥐고 당장에 쓰러질 것같이 몸을 쭈그리고 매글 못 추는 것이었다

독응구붕 영감이 대뜸 경기대 위로 올라갔다.

두 팔로 보리수 단무를 부축해 경기대 아래로 간신히 내려와서 잠시 쉬도록 했다.

저편. 회양방의 휴게대에서도 사람을 내보내서 음면산군 상당을 떠메어 내려왔다.

 

꽝꽝꽝!

 

규칙대로. 징소리가 또 세 번 요란란스럽게 울렸다

제3회전의 무술 경기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징소리ㄹ였다.

이때. 서쪽 경기대에서는 흑지상인 고비가 참다 못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쪽 휴게대 위에 있는 탁창가에게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서 예의를 갖추며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이번 제3회전에 있어서는 쌍방이 똑같이 부상을 당하고 또한 쌍방이 동시에 패하여 물러났으니 승패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됐소!

단지 무성부라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탁 도장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

 

철장단심 탁창가도 그 말을 듣더니

벌떡 일어서서 위엄 있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 이미 쌍방이 동시에 기진맥진하여 물러나간 이상 승부를 명백히 가리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오!

 고 방주의 의사는 어떠하시오?

이대로 무술경기를 계속해 나갈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잠시 휴식했다가 계속할 것이오?"

 

흑지상인 고비가 그 말을 듣더니

머리를 쳐들어 하늘빛을 살펴보았다

어느덧 해는 중천에 걸려 있었다.

하늘을 멀이 바라다보던 흑지상인 고비는 자못 점잔을 빼면서휴게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넓은 마당. 차일도 없는 관람석에서 서 있는 수많은 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뙤약볕 아래 서 있었는지라 머리가 익어지고 이마가 녹아날 지경으로.

마치 볕에 말리는 생선처럼 몸이 배배꾀어 들어가고 있었다.

고비는 그 광경을 묵묵히 내려다보더니.

이윽고 아래턱을 끄덕끄덕. 걸걸한 음성으로 점잖게 선포했다.

 

" 이미 때가 정오에 가까웠으니 쌍방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미시에 다시 계속해서 경기를 시작하기로 합시다! "

 

흑지상인 고비는 말을 마치자.

처음과 같이 두 손을 맞잡아 흔들어서 인사를 하고 경기대 아래로 내려갔다.

회양방 쪽의 인원 전체가. 대표자 고비의 뒤를 따라서 안쪽 보루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으며.

탁창가 역시  숭양파의 전체 인원을 거느리고 회양빈관으로 돌아갔다.

넓은 마당에 모여 있던 관중 가운데서 금사보 안에 머무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빈관으로

점심을 먹으러 제각기 돌아갔다.

임시로 금사보 안에 들어왔던 구경꾼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금사보 밖에 있는 술집 밥집을

찾아들어 음식을 사먹고 있었다.

노영탄도 사람의 물결 속에 휩쓸려서 숙소로 지정돼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거기에는 벌써 점심상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아서 앉아 있었다.

 

" 역시 근사해! "

 

" 아슬아슬한 판에 한쪽이 또 넘어가다니! "

 

" 승부는 이제부터지 ! "

 

전심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신바람이나서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다는 듯.

입에다 음식을 잔뜩 틀어넣고도 무술 경기에 관한 이야기를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그러나 노영탄만은 그런 이야기에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입을 꾹다문 채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음식을 입에 떠넣고 있을 뿐.

옆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든 말든 손가락질을 하겠으면 하라는 듯.

통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인즉.

노영탄은 그렇게 많은 관중들 중 그 어떤 사람보다도 긴장되고 흥분된 마음을 부등켜안은 채.

이 반나절을 지내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 흥분과 긴장이 그들과는 달랐다.

오전 중의 무술경기의 형세가 점점 최고조에 달해 가고 있어서.

그것이 무림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올 판가름을 하고 있다든지.

어느 쪽이 결국 승리를 차지하게 되느냐 하는 따위의 일들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긴장과 흥분이었다.

 

' 도대체 신룡검이란 인물이 언제쯤 나타날 것이냐? '

 

그가 초조하게 가슴 태우며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지 이 한 가지 뿐이었다.

그리고 더욱 걱정스러워서 견딜 수 없는 것은 연자심의 행방이었다.

이두가지 일만이 노영탄에게는 온 정신을 긴장시키는 것이 었고 또 그것은 너무나 돌발적인 변고였기 때문에 다른 일에 신경을 쓸 만한 겨를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 신룡검쯤 된다는 위인이 종이 쪽지까지 남겨놓고 금사보로 쫓아오라고 가버렸는데

어디 숨어 있으면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아니. 나를 이렇게 골탕을 먹여놓고 다음 기회에 어디서던지 남몰래 암살을 하려는 계획인지도 .....

그렇지도 않으면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그대로 멀리 뺑소니를 쳐버렸을 지도 ........... '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생각에  노영탄의 머릿속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 신룡검이란 인물은 종이 쪽지를 남겨놓고 자기 의사를 명백히 표시했을 뿐만 아니라.

 연자심까지 빼앗아 가지 않았나?

두말 할 것도 없이 연자심을 인질로 삼아서 어디론지 납치해다가 감추어놓고.

노영탄이 찾아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노영탄은 이렇게 생각했을 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와 약속한 장소에 신룡검이란.

인물이 꼭 나타나고야 말 것이며. 그것은 단지 시간 문제에 불과 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했을 때.

 

' 이번 무술경기 대회란 두말 할 것도 없이 숭양파와 회양방의 싸움이다.

비록 무림의 허다한 고수급 인물들이 참가하고  일찍이 어떤 편에든지 원한을 품고 기회를 노리던 많은 인물들이 모조리 참가한다고는 하지만. 대회의 정세란 것은 저절로 명백해져 있는 것이다!

흑이 아니면 백이요. 백이 아니면 흑이라는 두 개의 입장 뿐이다.

숭양파를 돕느냐! 그렇지 않으면 회양방을 돕느냐! 신룡검이란 자가 나와의 약속 장소를 바로 이 무술대회 장소로 결정한 이상 결국은 쌍방 중 어느 한편과 다소의 인연이나 관련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괴상한 인물의 입장이란 것은 통 추측할 수 없지 읺으냐? '

 

흥미 없는 무술대회를 구경하고 있는 노영탄의 머릿속은 이 한가지 문제를 석연히 풀 수없어서

다른데 신경을 쓸 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신룡검이란 자는 이미 연자심이란 아가씨를 수중에 넣었으니.

 그가 다소나마 회양방과 인연이 있는 인물이라면. 이것으로써 만족할 것인데.

어째서 이미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 일을 가지고 또다시 사건을 확대시켜서

굳이 노영탄과 금사보에서 만날 까닭이 있단 말인가?

또 노영탄의 무술 실력이란

회양방의 인물치고 혀를 내두르지 않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해졌고.

직접 목격한 인물들도 허다한데 노영탄을 다시 이 자리에 불러내어서 일을 시끄럽게 만들

이유가 있다는 건가?

그것은 스스로 신룡검 자신의 입장을 불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또 신룡검이란 자가 숭양파와 인연이나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영탄은 숭양파와 남달리 두터운 인연과 친분 관계가 있는 터이니

그들이 연자심의 신세를 알았다손 치더라도  노영탄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단지 그런 이유로.

노영탄을 괴롭게 굴 리는 만무한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이상한 일은 신룡검이란 자가 마치 노영탄의 실력이나 재간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추호도두려울 바가 없고 자신만만하게 고의로 노영탄과 맞닥뜨려서 승패를 겨루오보자는 듯이

날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노영탄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짜봐도 신룡검이란 대체 어떤 인물인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참고 또 참고 흥미도 없는 무술경기를 구경하면서 이 괴상한 인물이 나타날 때만 기다리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