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38장 사생결단(死生決斷) 3

오늘의 쉼터 2013. 12. 14. 10:41

38 사생결단(死生決斷)

 

강호의 고수들(3)

 

 

 

경기대 위에는 삐적 마르고 키가 후리후리한 노인 한 사람이 서 있을 뿐이엇다.

턱 밑에는 무던히 긴 수염을 늘이고 만면에 오만하기 짝이 없는 기상.

바로 회양방의 둘째 수령 운몽노인이었다.

그 맞은편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 바로 숭양파의 송운 상인 파천탁이었다.

운몽노인은 캥캥한 음성으로 억지로 웃음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

 

" 대적하겠다고 나선 자는 누구인가?

유감스런 일이지만 소생은 늙은 눈인지라 시력이 부족하여 누군지 확인할 수 없소. "

 

송인상인은 그 나이 예순 전후. 몸집이 그다지 큰 편은 아니나 운몽노인이 고이로

거만 떠는 것을 보자 얼굴빛 하나 변함없이 태연히 응수했다.

 

" 소생은 파천탁. 그런데 노 선생께선 또 누구시오?"

 

송인상인의 말투는 몹시 부드러웠다.

털끝만큼도 노했다거나 흥분한 기색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흉금을 털어놓고 한담이라도 하자는 듯한 태도였다.

운몽노인은 자기가 던진 말이 반드시 송운상인을 격분시키고야 말 줄로 만 알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이렇게 태연자약하고 점잖게 반문해 오는지라.

운몽노인은 당장에 약이 바짝 올랐다.

 성미가 조급하기로 유명한 사람인데다가 송운상인이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자기의 말투를 흉내내서 의젓한 태도로 반문하는 것이 심히 마땅치 않았다.

운몽노인은 코웃음을 치면서 또 입을 열었다.

 

" 아. 나말인가? 

오랫동안 동정호에 살고 있었으며 세상 사람들이 운몽객이라 일컫는 사람이지!

그대는 출세가 너무나 늦은 위인이니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괴이치는 읺군!"

송운강인은 상대방의 말투가 겸손하지 못한 것을 보자 .

즉각 몇마디 매도해 주고 싶었으나 그것을 꾹 참고 옥신각신해 봤댔자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으로 냉정하게 딱 잘라서 말했다.

 

" 출세를 이찍이 했다는 것은 먼저 썩어빠진 골동품이 됐다는 의미겠지!

이 송운상인 파천탁은 무술대회에 나왔지.

그대와 입씨름을 하러 나온 것은 아니니까 ........... "

 

운몽노인도 토웃음을 한 번 치더니.

손바닥을 흘쩍 뒤집으며 그와 동시에 걸걸한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 철부지 후배! 내. 이 술법을 한 번 맛이나 보고 나서 말을 하지! "

 

그러나 송운상인은 묵묵부담 운몽노인의 손바람 힘을 선뜻 받아들이며 거기 대적할 뿐이었다

장력과 장력이 맞부딪혔다.

송운상인은 그제서야 운몽노인의 무술이 과연 높고 깊다는 것을 께달았다.

쉭! 하고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손바닥을 가볍게 뒤집어서 한 번 뿌리쳤을 뿐인데.

거기서무시무시한 바람의 힘이 일어나는 솜씨를 보면.

그가 무림에 쟁쟁한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사실이 헛소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송운상인은 숭양파 가운데서 제3위라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수급 인물이었다.

철장단심 탁창가와 낭월대사를 제외한다면 그의 무술이 제일 높은 축에 들었고

손바람의 힘도 어지간히 센 편이었다.

그러나 이제. 회양방의 운몽 노인의 장력과 한번 맞닥뜨려보니.

 내심 겁이 나기도 하면서 섣불리 굴어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한편 운몽 노인은 평소에도 거만하고 광기가 이만저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표자인 흑지상인 고비까지도 호락호락 대하지 못하고 보니.

그는 어느 때 어디서나 안하무인. 무림에는 자기를 제외하고는 인물이 없다는 듯.

남을 대하는 말솜씨도 방정맞고 야멸차기 이를 데 없는 경박한 위인이었다.

 운몽 노인은 한 가지 . 두 가지 술법을 써나갈 때마다 싱글벙글 웃으며.

상대방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놀려주려는 것만 같았다.

 

" 철부지 후배! 이런 술법은 어때?  일찍이 구경한 일이 없을 걸 ! "

 

송운상인은 그저 못 들은 체. 묵묵히 상대방의 손바람의 힘을 막아내며 자신의 손바람을

가해볼 뿐이었다.

그러나 피차간 2. 30여 차례나 맞닥뜨렸을 때.

송운상인은 이미 결정적으로 이번 대결이 자신의 뜻과 같이 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자신의 손바람의 공세는 고작해야 허공을 들이쳐서 적중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쏴 들어가도 운몽 노인의 힘 앞에 꼼짝 못하고 풀이 죽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운몽 노인 편에서는 일 장 또 일 장. 시간이 경과되어 나갈수록.

비록 여전히 싱글싱글 상대방을 조롱하고 있기는 하지만 점점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손을 쓰고 있다는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50여 차례나 맞부딪혔다.

송운상인의 손바람의 힘은 이미 운몽노인의 힘을 감당해 낼 수가 없게 되었다.

숭양파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불리한 정세를 간과하자 .

차츰차츰 불안과 초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윽 ! "

 

운몽 노인은 별안간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괴상한 소리를 질렸다.

수법을 돌변하여 전신을 재빨리 놀리며. 손바람의 기세에도 변동을 일어켰다.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손바닥을 놀릴 뿐만 아니라.

홱홱 손바닥을 한 번 쓸 때마다 쉭쉭! 하는 바람소리가 싸늘하고 매섭게 사람의 귓전을 찔렀다.

송운상인은 이미 온갖 힘을 몽땅 쏟아놓았는데도 상대방이 이렇게 완강히 공세를 취하고있으니.

도저히 막아낼 만한 기력이 없게 됐다.

그가 운몽 노인에게 패배당하리라는 것이 결정적으로 되어가는 찰나.

숭양파 편에서는 낭월대사가 싸늘한 눈초리로 싸움의 정세를 응시하고 있었다.

운몽노인의 안광이 유난히 매서운 광채를 발했다.

그것은 분명히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최후의 일격을 가하자는 기색이 틀림없었다.

이 아슬아슬한 찰나에. 낭월대사는 그 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결심을 하고.

전후를 헤아릴 겨를도 없이 흘쩍 경기대 위로 날아 들었다.

과연 운몽 노인의 손은 매서웠다.

치명적인 최후의 일격을 가해서 상대방을 그대로 거꾸러뜨리려는 바로 그 찰나.

이 눈치를 알아챈 송운상인은  할 수 없이 선뜻등에매고 있던 보검을 뽑아 들었다.

 천강검의 술법으로 마지막 단판 승부를 해보자는 각오였다.

이때. 돌연 번쩍하고 번개처럼 경기대에 내려서는 낭월대사.

두 손을 한꺼번에 번쩍 쳐들어서 두 줄기 맹렬한 황소바람을 일어키더니

운몽노인의 공세를 막아내며. 동시에 몸을 돌려 소운상인에게.

 

" 이 친구. 먼저 내려가서 좀 쉬도록 하게! 내가 이 자와 겨루어 볼 테니 ............ "

 

낭월대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요란스런 징소리가 몇 번인지 연거푸 울렸다.

운몽노인이 몇 걸음 슬쩍 뒤로 물러서며 하는 말이.

 

" 이 대머리 친구. 차례차례 모조리 덤벼들 작정인가 ?

유감이지만 규칙이 허락치를 않아서 .........

그렇지만 않다면야 그대 같은 늙은 대머리 하나쯤은 계속해서 혼을 낼 수 있겠지만 ....... "

 

운몽 노인이 승리의 쾌감에 도취하며 자못 거만스럽게 지끌이고 있을 때.

서쪽 경기대로부터 또 하나 다른 인물이 비호같이 날아들었다.

이 인물은 몸집이 아주 작달막했다.

마치 열두세 살의 어린아이 같은 체구였다.

그런데도 두 볼에는 수염이 한 자 이상이나 기다랗게 늘어져 있었으며.

얼굴 생김생김이 괴상망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난쟁이처럼 작달막한 체구에다 머리통만 바윗돌처럼 큼직막하게 얹혀저 있으며.

그 위에는 온통 누른 털이 덥수룩하게 엉클어져서 덮어 있고얼굴의 오관이 하나도

제대로 박힌 것이 없었다.

조그마한 두 눈은 실발같이 가느다랗고 코는 주먹 같으면서도 들창코처럼 콧대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어서 마치 평탄한 한 덩어리 땅 위에 난데없이 언덕 하나가 되는 대로

불쑥 솟아나온 것 같은 인상이었다.

거기다 또 아래위 입술은 그 두께가 한 치나 돼 보이도록 두툼한 것이.

아래위로 말려나와서 입 안의 누른 이빨을 몽땅 드러내고 있는 품이.

마치 몇 해 묵은 옥수수 알이 박혀 있는 듯했고 더둔다나 괴상망측한 것은.

두 개의 귀가뒤로자빠져 있지 않고 앞으로 구부러져 있는 꼴이었다.

그는 경기대 위로 올라서자마자.

두 손으로 바지 자락을 쳐들어 올리며 찢어질 것만 같은 입을 벌렸다.

 

" 이 늙은 친구! 내려가서 좀 쉬시지 !

이번엔 내가 한번 멋들어지게 놀아볼 테니 !"

 

그 목소리까지 웃는 것인지. 우는것인지 분간키 어려워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오싹 끼치게 했다.

 낭월대사가 경기대 위로 내달은 인물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을 때.

운몽노인 편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 허허 !  천왕이 멋들어지게 놀아보고 싶다면. 그야 또한 무슨 문제가 있겠나! "

 

낭월대사는 거기 나타난 인물더러 운몽 노인이 천왕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자.

자기의 추측이 더욱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한편. 그 인물이 바로 열화천왕 합일기라는 것을 확인 했을 때.

낭월대사는 도리어 내심 깜짝 놀랐다.

 

 ' 이 괴상망측한 늙은 괴물이 어째서 이번 무술대회에 나타났을까? '

 

휴게대에 앉아있는 철장단심 탁창가도 열화천왕이 회양방 편을 거들려고 경기대 위에

내닫는 것을 보자 마음이 적이 침울해졌다.

 

' 낭월대사가 저 노인과 대적한다면 ? '

 

그렇게 생각했을 때. 탁창가는 초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탁창가가 불안한 심정으로 옆에 앉아 있는 인물들과 쑥덕쑥덕 궁리하고 있을 때.

또 하나 다른 인물의 그림자가 번쩍하고 나는 것이 보였다.

누군지 탁창가옆자리에서 경기대 위로 날아 올라간 것이었다.

탁창가는 그제서야 기쁘고 든든한 눈초리로 다시 경기대 위를 응시했다.

낭월대사는 마침 이 괴상망측한 열화천왕과 어떻게 대적할 것인가 하는

궁리를 하고 있는 찰나였는데 홀연 자기편에서 날아드는 인물이 또 있는지라

한옆으로 몸을 비켜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인물은 경기대 위에 발을 붙이고 서자마자.

다짜고짜로 있는 목청을 다해서 웃어젖혔다.

 

" 와하하하 .......... 핫핫핫 ! "

 

까닭도 알 수 없게. 미친듯이 웃어젖히기만 하는 사나이 .

그 괴상한 꼴을 보자

비단 낭월대사 뿐만아니라.

동쪽 휴게대 위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이 인물에게로 쏠렸다.

경기대 아래 관중석에서는 더군다나 영문을 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

휘둥그레진 무수한 눈동자들이 경기대로 모조리 집중되고 있었다.

숭양파 편에서 뛰어 내달은 이 인물은 몸집이 거창할 만큼 뚱뚱하게 살이 찐 노인인데

키가 후리후리하게 큰 데다 얼굴은 아주 자애로워 보였다.

 백발백미. 턱 아래에는 한 자 길이도 더 되는 흰 수염이 너울거리는데.

키가 작달막한 열화천왕과 두 사람을 한자리에 세워놓고 보니.

이 노인이 머리 세 개 정도는 더 큰 셈이었다.

꺽다리와 난쟁이. 두 사람이 서로 대결하려고 서 있는 꼴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키다리 노인은 껄껄거리고 한바탕 통쾌하게 웃어젖히더니.

머리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찌렁찌렁 울리는 음성으로 지껄여댔다.

 

" 낭월대사님 !  잠시 쉬시고. 이 다음 판에나 나오셔서 한 번 재간을 부려보시오.

여기 나타난 난쟁이 친구로 말하자면 나하고 꽤 오래 전부터 아주 친한 사이니까 .........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도 못했고 .......

이번에는 내가 이자하고 한번 멋들어지게 놀아보겠소 ! "

 

낭월대사는 그 말을 듣더니 그 키다리 노인을 보고 합장하며 말했다.

 

" 여 선배님께서 그렇게 분부하신다면. 소승도 명령대로 후퇴하겠습니다! "

 

말을 마치더니 낭월대사는 몸을 날려 경기대 아래로 내려가더니

동쪽 휴게대 위로 되돌아갔다.

여씨라는 노인은 여전히 버티고 섰을 뿐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낭월대사가 경기대 아래로 내려가고 나서 한참 만에야 이 노인은 또 요란스럽게 너털웃음을 쳤다.

 

" 합일기 ! 

나는 자네가 이 영광된 싸움터에 반드시 나타날 줄 알았기 때문에 불원천리하고 달려왔단 말일세 !

수년 동안이나 자넬 보지 못해서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는데 오늘 참 잘됐군 !

자네와 한번 신바람나게 놀아볼 수 있게 됐으니. 핫핫핫 ! "

 

노인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자.

관중석의 수많은 구경꾼들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 까르르 웃음 바다를 이루면서 아우성을 쳤다.

열화천왕 합일기는 그 소리를 듣더니 입이 찢어질 듯 꼭 울음소리 같은 음성으로 지껄였다.

 

" 여신아! 이늙은 도둑놈아 !  공연히 주둥이만 섣불리 놀리지 말란 말이야 !

나도 역시 여기 오면 그대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단단한 결심을 가지고 나왔으니까 ......... "

 

이렇게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왼손을 무슨 발작이라도 일어킨 사람같이 별안간 훌쩍 높이 쳐들었다.

 

" 우두둑 ! "

 

뼈의 마디마디가 터져나는 것 같은 괴상한 소리를 내더니 .

팔이 한 자 길이나 더 길게 뻗어졌다.

다섯 손가락을 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구부려서여신이라는 노인의 겨드랑 밑과 어깻죽지를

누르고 육박해 들어갔다.

오태진인 여신이란 노인도 몸을 번개처럼 뒤집었다.

키다리 노인 오태진인 여신은 몸을 흘쩍 뒤집으면서 오른손을 홱 뿌렸다.

맹렬한 바람을 일어켜서 열화천왕 합일기의 왼손의 공격을 막아내며.

그와 동시에 자기의 왼쪽 손가락 두 개를 꼿꼿이 세워가지고 합일기의 견정혈 급소를 번개처럼

찔러 들어갔다.

합일기는 한 손으로 손바람을 일어켜놓고 여신이 그것을 막아내는 품이 여간 완강한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자.

대뜸 술법을 돌변해서 미끄러지는 체 하고날쌔게 몸을 옆으로 살짝 뽑아서 여신의 왼쪽 손가락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일진일퇴. 이리하여 결사적이고 치열한 싸움이 관중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본래 이번 금사보의 무술대회를 말하자면.

노영탄의 스승인 남해어부가 일찍이 말한 것과 같이 단순한 숭양파와 회양방의 싸움만은 아니었다.

실로 무림의 고수란 고수가 모조리 몰려들어서 이 얻기 어려운 기회에 저마다 통쾌하게 기염을

토해 보자는 마당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기질이 싸움이나 하러 태어난 사람들같이 두 손이 심심해서 오랫동안

견디기 어렵다는 까닭도 있었고 또 한펀으로는 개인 간에 쌓이고 쌓였던 원한을 이번 기회에

풀어서 깨끗이 사생결단을 내버리자는 비장한 결심들을 가지고 몰려든 것이었다.

엄격히 따져본다면 이 허다한 무림의 고수들은 어느 한 편을 진심으로 거들어주려고 몸을 바치고 싸운다기보다는 상대방과 맞닥뜨리자 한번 자웅을 겨루어보겠다는 배짱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오태진인 여신과 열화천왕 합일기는 서로 원한을 풀지 못해서 기회만 노려오던 사이였다.

오태진인 여신은 바로 오태파의 영도자로서 서강 고로등에 살고 있는 열화천왕 합일기와 원수를 맺은이래 벌써 세 번이나 맞닥뜨려서 싸워봤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한 사이었다.

합일기란 인물은 비록 키는 작달막하지만 그 성미가 열화와 같았다.

몹시 조급하고 난폭하고 손끝이 매섭기로도 유명해서 어떤 사람하고든지 한 마디만 자기 의사에 어것나는 행동을 하는 자가 있으면 역시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독한 손을 써서 없애버리고야 마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어느 해 오태진인 여신은 높고 깊속한 산 속에 들어가서 영약을 캐고 있었다.

우연히 천년이나 묵은 하수오(何首烏)란 괴상한 짐승이 요정으로 화신하여 한 마리의 산토끼 모습을 하고 산 속을 함부로 뛰어 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태진인은 이 산토끼를 쫓아다니며 잡으려고 무척 애를 섰다.

사흘 밥낮을 쉴새없이 쫓아다니고 나서야 겨우 산토끼의 근거지를 찾아냈다.

그가 바로 손을 써서 이 산토끼를 붙잡으려는 순간에 공교롭게도 열화천왕 랍일기와

맞부딪치게 됐으니 합일기 역시 그와 똑같은 목적으로 이 산토끼를 찾아서 온 산을 샅샅이 뒤지고 헤매던 판이었다.

오태진인 여신과 열화천왕 합일기는 이 한 가지의 영약을 손에 넣기 위해서 깊고 높은 산속에서

결사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양쪽이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을 뿐더러 잡았어야만 될 하수오라는 괴상한 짐승은 도망쳐버리고.

그 짐승이 벗어버린 껍질은 당장에 시들어 말라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순간부터 두 사람은 서로 잡아먹고야 말겠다는 원수가 되어서 몇해마다 만나는 기회만 있으면

한 번씩은 각자의 온갖 재간을 발휘해서 싸웠다.

그러면서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승패를 가리지는 못했었다.

이런 특수한 관계에 있는 두 인물이 오늘 이 자리에서 맞닥뜨리게 됐고.

그들 사이에는 헤어진후 5년이란 세월이 가로막혀 있었다.

서로 만나지 못한 5년 동안에 합일기란 위인은 밀종라마를 만나게 되어서 한 가지의 신출귀몰한 무술을 배우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폭골공(爆骨功)이라는 괴상한 술법이었다.

이 괴상한 술법의 특징은 한 번 쓰기 시작하면. 팔과 손이 즉각 기다랗게 늘어나고.

거기서 뻗쳐나는 손바람이 날쌔고 억셀 뿐더러 뜨겁기가 불덩어리 같아서.

타기 쉬운 무명이나 비단 같은 것은 스치기만해도 불을 일어키고 마는 것이었다.

본래. 이 폭골공이라는 술법을 연마할 때 팔이나 손을 유황초석수(硫黃哨石水) 속에 절여가면서

오랜 시일을 두고 연마했기 때문에 손바람을 일어키기만 하면 즉각 불덩어리같이 뜨거워지곤 했다.

또 열손가락 사이사이마다 불을 일어킬 수 있는 약가루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손바람을 쓸때.

손가락 사이사이를 비벼대기만 하면 당장에 불을 뿜듯이 뜨거워지고 불똥이 사방으로 튀게 되는 것이었다.

오태진인 여신은 합일기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술법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단지 합일기의 재간이 그 전보다는 훨씬 단련되어 있으리라는 생각뿐이었다.

50여 합을 서로 대결하고 났을 때. 열화천왕은 별안간에 우두둑 하고 팔에서 무서운 소리를 냈다.

당장에 팔이 기다랗게 뻗어지더니

손바람이 불덩어리같은 괴상한 열기를 띤 채 오태진인의 신상으로 질풍같이 습격해 들어갔다.

그제서야 여신은 괴상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다음 순간 팽! 하는 매서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마치 폭죽이 터지듯이 후두둑 후두둑 여신의소맷부리며 옷자락에 합일기의 손바람이 스친 곳에서 불이 일어나며 타기 시작했다.

오태진인 여신은 당황했을 뿐만 아니라 약이 바싹올랐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의복에 불이 후두둑 후두둑 점점 타오르기 시작하니.

그것을 꺼버리지 못한다면. 삽시간에 온 몸뚱어리가 타버리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러나 강적이 앞에 노리고 서 있으니 어느 겨를에 불을 꿀 수 있을 것이랴 !

오직 한 가지의 방법이란 패배를 승인하고 경기대 아래로 내려서는 도리밖에 없게 되었다.

 

" 이히히히 .......... 이히히 ............. "

 

열화천왕 합일기는 여신의 당황하고 초조해하는 꼴을 보자.

울음소리같이 괴상한 음성으로 한바탕 웃어젖혔다.

관중석의 수많은 사람들은 열화천왕의 괴상망측한 웃음소리에 따라서 웃으면서도.

그 무시무시한 술법에 너나 할 것 없이 소름이 오싹 끼칠 지경이엇다.

오태진인 여신은 눈물을 머금고 경기대에서물러나는 도리밖에 없었다.

흘쩍 몸을 날려 아래로 내려가면서 합일기를 쏘아보고 호통을 치는 말이.

 

" 합일기! 우리들의 원한이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둬 !

앞으로 언제던지 네놈을 다시 볼 날이 있을 개다!

이번에는 내가 네놈에게 양보해 주기로 하지만."

 

이렇게 호통을 치면서도 제일 급한 것은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길이다.

어디가서 어떻게 이 괴상한 불길을 꺼버릴 것인지 하는 것 때문에 뒤도 돌아볼 겨를없이

넓은 마당 한 구석으로 뺑소니를 처버리는 것이었다.

이때. 날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관중들은 웅성웅성 끼를 쓰고 끝장을 봐야겠다는 듯이 한 사람도 물러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회양방의 흑지상인 고비가 또다시 경기대 위로 날아들더니

쟁쟁 울리는 목소리로 사람들 앞에 선포를 하는 것이었다.

 

"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오늘의 대회는 여기서 일단 중지하기로 합니다.

앞으로 있을 여러 고수님들의 경기는 내일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며 시작하는 시간은 오늘과 같습니다."

 

말이 끝나자 도 흘쩍 몸을 날려 경기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숭양파의 모든 사람들도 자리를 떠서 각각 숙소로 돌아갔다.

보루안에 머무르지 않은 여러 관중들은 조수처럼 밀려서 보루 밖으로 흩어졌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