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34장 재래무림(再來武林)

오늘의 쉼터 2013. 12. 14. 10:24

정협지(情俠誌) 6권

 

34 재래무림(再來武林)

 

돌아온 악중악 

 

 

 연운항에서 회안으로 통하는 한 줄기 강물 위에는 한 척의 자그마한 범선이

잔잔한 물결을 헤치면서 돛을 높이 펼치고 회안 방면으로 질풍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하늘가에는 나지막하게 젖빛 같은 뽀얀 흰 광채가 감돌기 시작했다.

강물 위에는 아직까지도 희미한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뒤덮여 있었다.

양편 언덕은 모두 갈대가 빽빽하게 들어찬 갈대 숲이었다.

이 한 척의 자그마한 범선은 잔잔한 물결을 헤치면서 앞으로 질풍같이 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웬일인지 배속에서는 인기척이라곤 통 들리지 않았다.

이 한 척의 자그마한 범선은 바로 복면한 사나이가 타고 있는 배였다.

그는 백화봉 사이라는 흉한의 손아귀에서 연자심을 구출해 낸 뒤에

이 아가씨를 여인숙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그대로 이 자그마한 범선에다 싣고

곧장 회안 방면을 향하여 있는 속력을 다해서 배를 급히 몬 것이다.

연자심은 좁디좁은 선창 안에 드리누워서 인사불성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에게 끌려서 어디로 가는지.

또 노영탄이 어떤 지경에 빠져 있는지.

얼마나 초조해 하는지 통 알 까닭이 없었다.

선체가 유난히 흔들리는 바람에 연자심은 혼수상태 속에서 희미하게 눈을 떴다.

어리둥절 아직도 꿈속에 있는 것만 같은 감각 속에서 시야 속에 어른거리는 형상이 있었다.

전신을 오싹 떨며소스라쳐 놀랐다.

 

' 내가 여인숙 침상 위에 누워있지 않고 배 안에? 선창 안에 누워있다니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당황하고 초조한 심정에서 눈앞이 팽 도는 것만 같았다.

몸을 일으켜보려고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머리를 똑바로 쳐들어보기는 했으나 몸을 일으켜 앉을 수가 없었다.

손과 발이 시끈시끈 흐늘흐늘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되고보니.

당황하고 초조할 뿐만 아니라 극도의 공포심에 전신이 오들오들 떨렸다.

몸부림을 칠 듯이 사지를 비비 틀고 간신히 몸에 휘감긴 이불자락을 헤처보았다.

더 한층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자기 몸에 걸치고 있는 의복이란 것이

자리옷으로 입은 짧은 속적삼과 속바지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 앗!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 '

 

연자심은 까무러칠 듯이 놀라며 얼른 이불자락으로 도로 앞을 여미었다.

그리고는 조용조용히 정신을 가다듬으며 선창 안을 이 구석 저 구석 살펴보았다.

선창 안은 아주 좁디좁았다.

양편 창문은 단단히 잠겨져 있었으며 새어 들어오는 빛도 희미하여

어느 때쯤 되었는지도 분간키 어려웠다.

연자심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에 애쓰면서 기억을 곰곰이 더듬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하고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을 참다 못하여 덮어놓고 악을 써보았다.

 

" 영탄! 영탄! 노영탄! "

 

그러나 대답할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배가 앞으로 쏜살같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했을 때.

선창 밖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과연 누구일 것이랴?

연자심의 무술이 노영탄을 도저히 따를 수 없다고 하지만.

웬만한 도둑놈이나 흉한 따위쯤은 또 이름깨나 있다는 깡패 두목 따위 몇 놈쯤은

문제 삼지 않을 만한 자신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노영탄이 자신과 동행하고 있었지 않은가?

 

' 노영탄의 ....... 노공자의 무술 실력을 가지고

어떻게 나를 남의 손아귀에 뺏길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인사불성으로 만들고 이지경에 빠뜨릴 수가 있단 말인가? '

 

연자심은 무술의 내공도 남 못지 않았는데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도 손발에 힘이 없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이는 분명히 어떤 놈의 독계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 필시. 어떤 놈이 무슨 흉악한 마취약을 썼을 것이다! '

 

연자심은 차츰차츰 맑은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 나 혼자서 이 지경이 되어서 ......... 짧은 속옷 바람으로?  어떤 놈이 내 몸을? '

 

연자심은 무서운 공포에 떨면서 새삼스럽게 전신을 더듬어보려고 애썼으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눈 앞이 아찔했다.

전신에서 식은 땀이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흘렀다.

벌떡 자리를 박차고 뛰어 일어나야만 되겠는데.

전신이 중풍 환자의 수족같이 비실비실 맥이 빠져서 말을 듣지 않는다.

놀라움과. 무서움과. 분노와 ............

그러면서도 앞으로 또 무엇이 다쳐올 것인가 하는 긴장된 마음에서

연자심은 그저 머리속이 울멍울멍 눈앞이 어질어질 마침내

 그 자리에 그대로 졸도해 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 지도 알 수 없었다.

연자심은 흐리멍텅하고 어질어질한 정신 상태 속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를 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와락 머리속에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어떤 손길이 자기를 흔들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키 어려운 몽롱한 정신으로 두 눈을 가만히 떠보았다.

과연 연자심의 옆에는 사람이 하나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자심의 눈초리가 그 사람의 몸을 스치는 찰나.

연자심은 마치 도깨비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입을 벌린 채 말을 못했다.

 

" 당신은? 당신은 누구이기에? "

 

 한참 만에야 연자심은 온갖 기운을 모아 앙칼진 음성으로 소리를 질렸다.

연자심의 옆에 엉거주춤하고 서 있는 것은 복면을 한 사나이였다.

 전신에 시커먼 옷을 입고 있었다.

시커먼 수건으로 얼굴을 온통 싸매고 단지 두 눈만 드러내 놓고 매서운 안과으로

연자심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수족에 힘이 없어 어쩔 줄 모르는 젊은 아가씨 앞에서

번쩍번쩍 무서운 광채를 발산하는 눈동자로 노려만 보고 있는 괴상한 사나이.

입을 벌려서 무엇을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했다.

한빙선자 연자심은 극도의 공포심에서 전신을 바르르 떨면서 음성도 떨려 나왔다.

 

"  다 ....  당신은?  당신은 누구이기에 나를 이렇게? "

 

그러면서 연자심은 전신을 이불자락 속에 폭 감싸버렸다.

죽어도 이불 자락을 놓지 못하겠다는 듯.

또한 복면한 사나이가 무슨 행동을 할 지 그것을 방비하자는 것이다.

복면한 사나이가 옆에 서서 몸을 약간 구부정한 채 한빙선자 연자심을

노려보는 눈초리는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도 없을 만큼 싸늘하고 매섭기만 했다.

놀라움과 공포 속에서 실신을 하다시피 허우적거리려 하고 몸부림치려고 애쓰는

연자심의 일거수 일투쪽을 똑바로 바라다 보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대해서 추호도 가엾다거나 안됐다는 동정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고.

그저 한 없이 불쾌하고 마땅치 않기만 하다는 눈초리였다.

 

" 흥! "

 

한참 만에야 복면한 사나이는 말 대신 콧소리를 냈다.

연자심을 경멸한다는 냉소의 빛이 역력히 드러났다.

다음 순간.

그는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그러더니 천지가 꺼질 듯한 거친 음성으로 한바탕 통쾌하게 웃어젖혔다.

 

" 어허허허헛! "

 

실성한 사람의 미친 웃음 소리 같으면서도 그 웃음 속에는 얼음장같이 차갑고

서릿발같이 서늘한 칼날이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결코 유쾌해서 웃는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비분함을 참지 못하여 울부짖는 일종의 노후 같은 웃음이었다.

연자심은 어떻게 제정신을 올바로 찾아야 좋을지 몰라서 극도의 공포와 긴장 속에서

가슴이 두근두근 쉴새없이 뛰고 있는 판인데.

이렇게 복면한 사나이의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소리까지 듣고 보니.

몸이 오들오들 떨릴 뿐 자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복면한 사나이의 웃음소리가 딱 그치는 순간.

그는 머리를 푹 수그리더니 오른쪽 손을 천천히 쳐들었다.

 

' 손을 들어서 나를 어찌겠다는 거지?

  이 자는 나에게 기어이 손찌검을 해서 내 몸을 건드리고야 말겠다는 건가? '

 

복면한 사나이가 팔을 뻗는 찰나에 연자심은 퍼뜩 이런 것을 느끼고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에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렸으나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선창 안은 너무 좁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뿐더러 달아나려 해도 달아날 만한 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생쥐와 같이 궁지에 빠져버린 마지막 순간.

연자심은 너무나 다급하고 너무나 겁이나고 긴장된 나머지 꼭 깨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퉤!

앵두 같은 입술로 있는 힘을 다해서 복면한 사나이를 향해 침을 밷어버린 것이다.

복면한 사나이는 이 순간까지도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하더니.

여전히 연자심을 노려보면서 쳐든 채로 있던 오른손을 부채질이나 하듯.

한번 획. 하고 휘저었다.

한번 슬쩍 휘젓는 그 손에서 억센바람이 일더니

연자심이 밷은 침을 간단히 흩어버렸다.

침방울은 밷은 사람에게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연자심도 똑같이 복몀한 사나이의 눈동자를 노려볼 뿐.

그 이상 무엇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복면한 사나이는 다시 한번 손을 높직하게 쳐들었다.

안광이 더 한층 매서워졌다.

그러나 그의 손은 연자심의 몸으로 젖혀지지 않고 자기 뒤통수로 돌아갔다.

왈칵 잡아당기더니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검정 수건을 풀어버리는 것이었다.

복면을 벗은 사나이.

연자심은 복면했던 사나이의 진면목을 똑바로 바라봤다.

 

" 앗! "

 

기절을 할 것만 같았다.

놀라움은 더 한층 컸다.

가슴속은 점점 더 요란스럽게 방망이질을 칠 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두근거리는 가슴속 어느 구석에선지.

갑자기 한 오라기의 기쁨이 샘솟듯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복면을 벗어버리고 나서도 여전히 냉혹하고 매정스럽고 무서워만 보이는

사나이의 표정. 연자심의 긴장된 마음은 쉽사리 풀릴 수가 없었다.

복면을 벗은 사나이.

그는 다름 아니라.

한빙선자 연자심과 노영탄이.

헤어진 후 1년여가 넘도록 소식을 몰라 애태우던 악중악 바로 그였다.

 

" 어허허헛! "

 

악중악은 검정 수건을 풀어 놓고는 또 한번 미친 사람같이 냉소를 했다.

두 눈동자는 여전히 연자심의 얼굴을 집아삼키기라도 할 듯이 노려볼 뿐.

몸을 꼼짝하려 들지도 않고 입을 벌려 무엇을 말하려 들지도 않았다.

이렇게 긴장된 무서운 공기 속에서 연자심은 그 이상 악중악의 날카로운

시선을 견딜 도리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가 수그러졌다.

가볍게 떨리는 음성이 속삭이듯 가만가만히 흘러나왔다.

 

" 악공자! 그대가 내 앞에 이렇게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 "

 

" 아하하하핫! "

 

연자심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악중악은 여전히 미친 사람처럼 까닭 모를 웃음을 웃어젖히기만 하더니.

한참 만에야 침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그대들이 나를 저 황산 깊은 고짜기에 내버렸을 때는.

내가 다시 이 세상에 살아 있지 못할 줄만 알았소?

그리고 아무도 이 세상에서 그대들을 귀찮게 굴 사람이없으리라고 생각했단 말이오?

그리고 그대들 둘이서만 이 넓은 천지를 마음껏 멋대로 소요하면서 영원히 편안하고

행복된 나날을 보낼수 있다고 생각했소? "

 

여기까지 말하고 난 악중악의 음성은 돌변하는 것이었다.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어떤 극도의 분노를 참기 어렵다는 듯.

이마 위에 검푸른 핏줄이 뚜렷이 드러나며 언성이 버럭 높아졌다.

 

" 내가 아직도 죽지 않고 이 세상 어느 구석엔지 살아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을 거요.

그리고 그대들은 아직도 여전히 나의 손아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생각지 못 했을 거요! "

 

연자심은 악중악의 이런 말을 듣고 보니 가슴이 섬뜩했다.

퍼뜩!  노영탄의 안부가 걱정되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초조한 심정으로 급히 물었다.

 

" 악공자는 그 분을 어떻게 하셨다는 건가요? "

 

악중악은 이 말을 듣더니 무엇에 찔린 사람같이 안광이 더 한층 매서워지더니.

여전히 냉소를 금치 못하는 것이었다.

 

" 헤헤헤! 흥! 그분? 내가 그놈을 죽이려 들면 한쪽 손을 펼치기만 하면 그뿐이지만 ....... "

 

악중악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얼핏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연자심은

여전히 악중악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 연자심은 조급함을 참을 수 없었다.

 

"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

 

" 그렇게 쉽사리 만만하게 간단히 ...........

나는 그놈을 죽이지는 않겠단 말이오.

천천히 천천히 그놈을 처치해서 조금이라도 더 그놈을 들뽂고 괴롭게 하고 ........

그리고 ..........

그꼴을. 그놈이 괴로워하는 꼴을 두고두고 그대 눈앞에 보여주고 싶단 말이오. "

 

서슬이 시퍼런 칼날로 살점을 도려내듯 잔인하고 매서운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말 속에서 연자심은 노영탄이 이 순간까지는 무사히 생존해 있으리라는

사실만은 알아차릴 수 있어서 적이 마음이 놓이기는 했다.

 

' 옳지! 노영탄이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 있기만 하다면.

그리고 악중악의 손아귀 속에 잡혀 있지만 않다면

그는 무슨 수단 방법으로 든지 나를 구출해 줄 것이다!

노영탄의 무술로 말하면 당대에서 그와 어깨를 겨루고 능히 대적할 만한 존재가

그리 많지는 못하다!

악중악이 제아무리 뻐기고 호언장담을 한다 해도 노영탄을 이겨내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

 

연자심은 퍼뜩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에 일찍이 악중악이『숭양비급』을

훔쳐냈다는 사실을 또한 잊어버릴 수 없었다.

 

' 악중악이 이제 이렇게 안하무인격으로 오만불손 험악하고 매정한 소리를 함부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숭양비급』속의 무술을 완전히 터득하고 오랫동안의 연구와 단련으로써

천하무적이랄 만한 놀라운 재간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노영탄이 악중악을 감당해내지 못한다면? '

 

이런 사념들이 머리속을 퍼뜩 스쳐 지나갈 때

연자심은 역시 초조와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지러운 심중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거냐?

노영탄의 행방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노영탄을 악중악이 어디다가 어떻게 해두었는지 그것조차 모르고 이런 생각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또 무슨 방법이 생길 수 있다는 거냐? '

 

눈 깜짝할 사이에 어지러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때문에.

연자심이 입을 꼭 깨물고 있는 순간.

악중악은 연자심의 그 모습을 보자

상대방의 마음을 완전히 제압하고 사로잡아 버렸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연거푸 콧소리를 내며 그 오만한 냉소와 함께 음성이 거칠어지기만 했다.

 

" 단지 그놈 하나만이 아니오!

 깡거리 모조리 무림의 고수니 명인이니 하는 따위들 통틀어서.

하나하나 내 손아귀 속에서 거꾸러지는 꼬락서니를 그대 앞에 똑바로 보여줄 작정이오! "

 

무시무시한 호언장담이었다.

말을 하는 악중악의 얼굴에는 일찍이 보지 못하던 흉흉하고 악독한 기운이 뻗쳐났다.

연자심은 머리를 수그릴 뿐 무엇이라 대꾸할 만한 말이 없었다.

 

" 그들이 이미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숭양비급』을 찾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소 !

이제야 말로 나는 그들 앞에 공개할 것이오.

누구든지 만약에『숭양비급』이 필요해서 손에 넣고 싶은 의양이 있다면.

서슴치 말고 나를 찾아오라고 그러나 누구든 나를 찾아온 이상에는

나와 대결해서 이겨야만 된다고 그뿐이 아니오!

나와 대적해서 이겨내지 못하는 자는『숭양비급』을 수중에 넣지 못할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는 일이고 그보다도 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이 세상에 다시

살아 있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천하에 공개하고 설명할 작정이오! "

 

악중악은 자신만만한 어조로 이렇게『숭양비급』을 찾는 자는 모조리 처치해

버리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연자심에게 거침없이 토로하는 것이었다.

연자심은 오래 전부터 악중악이란 청년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굽힐 줄 모르는 억센 고집과 무뚝뚝한 성미와 오만불손하기 이를데 없는

그의 성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 악중악의 태도와 같은 것은

일찍이 당해 본 일이 없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생각지 못할 연자심이 아니었다.

 

' 악중악은 결국 지난날에 받은 너무나 심한 마음의 충격 때문에 저렇게 ........ '

 

그 당시에 연자심과 노영탄이 간다 온다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악중악의 곁을 도망치듯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지금 회상하자면 연자심의 가슴속도 미어지는 듯 아프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할 때 그때 그 환경 그 정세에서 그밖에 또 무슨 다른 길이 있었을 것이며

어찌 이것이 연자심 혼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랴!

연자심은 지난날의 일들을 혼자서 조용히 회상하면서 간신히 나오는 음성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어요!  그 당시의 형편을 솔직히 말하자면 ........ "

 

연자심이 이렇게 말을 꺼냈을 때.

악중악은 무엇을 생각했음인지 홀연 버럭 악을 썼다.

 

" 닥치시오! 나에게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요! 나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가 아니오!

그대들이 꾸며대고 농간을 부린 연극을 나는 샅샅이 다 알고 있소!

내가 만약에 그 노가란 녀석을 그대의 눈앞에서 내 손으로 거꾸러뜨리지를 못한다면

나는 한평생을 아무 보람도 없이 산 놈이 될 것이고 사나이 대장부로서

평생을 헛되이 굴욕을 참고 벌레처럼 살아온 하잘것없는 너절한 위인이 될 것이오! "

 

연자심은 기적적으로 만나게 된 악중악에게 지난날의 환경이나 형편이나.

극도로 핍박했던 모든 미묘한 정세를 상세히 설명하고 해석해 주어서

악중악의 원한을 풀어주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악중악이 악을 버럭 쓰는 바람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묵묵히 고개를 숙이는

도리밖에 없었다.

한참 만에야 연자심은 다시 조용히 고개를 쳐들었다.

연자심의 음성은 이제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다.

가느다라면서도 싸늘한 음성이었다.

 

" 이제. 악공자께선 저를 어찌하시겠다는 거죠? 저의 의복은 어디 두셨나요? "

 

한마디를 간단히 하고 난 연자심의 두 볼은 무안을 당한 사람같이 새빨갛게 타올랐다.

그러나 악중악은 그 말을 듣더니.

더 한층 거만한 태도를 역력히 나타내며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는 말투였다.

 

" 내가 그대를 어쩌겠느냐고? 그건 그대가 상관할 바 아니오.

나 혼자 할 탓이니까.

그대의 의복을 내가? 어디다? 천만에.

그대의 의복이 어디 가 있는지. 나는 그런 것은 전혀 모르오! "

아닌게 아니라.

악중악은 사실대로 솔직히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듣고 보니

연자심은 부끄러운 심정 속에서도 발끈 하고 악이 치밀어올랐다.

일종의 분노로 변하는 앙칼진 음성이 참다 못하여 꼭 찌르듯이

악중악에게 매서운 화살을 던졌다.

 

" 알고 보니. 악공자께선 남에게 원한을 갚는 방법으로 애초부터.

  이 따위 너절하고 야비한 수단을 쓰실 작정이었군요? "

 

이 말을 듣더니 악중악의 언성은 무엇이 폭발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활활 타오르는 노기를 참을 수 없다는 무서운 음성이었다.

 

" 말을 삼가하시오! 아무 소리나 다 하는 게 아니오!

내가 만약에 그대가 말하는 것 같은 야비하고 너절한 수단을 쓰고 싶은 생각을

털끝만큼이라도 먹었다면.

오랜 옛날에 그대와 저 노가라는 녀석의 목숨은 이 천지에 붙어나지 못했을 거요!

또 무엇을 이렇게 가타부타 따지고 말할 것까지도 없었을 거요!

명백히 말해 두지만 이 악중악은 그렇게까지 비굴하고 야비한 인간은 아니오!

나는 본시 그 따위 깡패나 망나니 따위들이나 쓸 줄 아는 야비한 수단이나

방법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오!

자. 그런 오해를 품는다면 내. 여기까지 오게 된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리다.

내 설명을 듣지 않는다면 그대는 영원히 이 악중악이란 인간에게 어떤 음충맞은

야심이라도 있었다고만 생각할 것이니까 .......... "

 

여기서 악중악은 백화봉 사이라는 흉한을 죽이게 된 일과 한빙선자 연자심을

구출하게 되기까지의 경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간에.

연자심은 여태까지와는 딴판으로 한없는 감격이 북받쳐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에 악중악이 이번에 이렇게 기적적으로 나타나 주지 않았다면.

자기는 벌써 사이란 놈의 독수에 걸려 무슨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던가!

사람이란 결국 감정에 사는 동물이다.

비록 이 순간에 두 젊은이들이 적대시 해야만 될 입장에 서 있다고는하지만.

이번에 지나온 아슬아슬하고 미묘한 경과를 명백히 알게 됐을 때.

연자심의 미움은 적이 누그러지지 읺을 수 없었다.

하물며 두 젊은이들은 과거 한때에는 어떤정에 이끌려 행동을 같이 했었음에랴.

연자심은 그제야 마음이 훨씬 누그러졌지만 역시 초조한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우선 무엇보다도 다급한 문제는 언제까지고 이렇게 이불자락 속에

몸을 파묻고만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의복이 없고 보니 어떻게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랴.

거기다 또 전신에 힘이 없고 손발조차 까딱할 수 없으니.

연자심의 난처한 표정은 이루 형언키가 어려웠다.

악중악은 한참 동안이나 한빙선자 연자심의 표정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아가씨의 심정이무엇을 호소하고 싶어서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자면 악중악은 사람의 얼굴을 구경할 수 없는 황산 속에 파묻혀서

나날을 보내는 동안에도 이 아가씨를 하루 한시라도 저주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 어떻게 하면. 연자심을 찾을 수 있을까?

눈앞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단숨에 손바람 한번에 없애버리고 말 것이다! '

 

이것이 그동안 악중악이 연자심에 대해 품었던 감정의 전부였다.

나를 배반하고 깊은 산 속에 처박아버리고 다른 녀석과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이

뺑소니를 쳐버린 못된 여자.

그러나 이제. 막상 그 얼굴을 눈앞에 마주 대하고 보니.

가슴속 깊이 치밀어오르던 원한과 저주와 증오의 불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며시 누그러지는 것만 같았다.

겉으로는 여전히 무서운 낯을 하고 싸늘한 음성을 들려주고 있지만.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출렁거리는 감정은 이미 그 옛날과 같이 극도의 증오와

저주로 불붙은 것은 아니었다.

한빙선자 연자심의 얼굴에 떠도는 부끄러움과 후회와 난처해 하는 표정을 바라보면서.

악중악은 여태까지의 흥분과 분노와 증오의 빛을 어느 정도 가라앉히며 이렇게 말했다.

 

" 앞으로 가는 도중에는 여기저기 읍이나 마을이 적지 않을 것이니.

  거기 가게 되면. 내 당신을 위해 의복 한 벌을 사드리리다. "

 

이렇게 말하면서가슴 앞을 뒤적이더니.

사슴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 하나를 꺼내서

거꾸로 들고 단약 두 알을 쏟아내서 연자심에게 주었다.

 

" 당신은 백화봉이란 놈의 독약 냄새에 중독이 되었소.

비록 정신이 들어서 깨어났다고는 하지만 체력이 감퇴되어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이오.

내 환약 두 알을 드릴 것이니 이것을 잡수시면 당장 회복이되리다.

이 환약은 내가 직접 만든 것인데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할 것이니

안심하고 드시오! "

 

악중악이 두 알의 환약을 연자심의 얼굴 앞에 내밀어 주었을 때.

웬일인지 갑작스레 안색이 또 변했다.

환약을 연자심의 이불자락 위에 흘쩍 던져주더니.

두 발을 들기가 무섭게 선뜻 머리를 돌려 선창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사실. 이때 이 손간의 악중악의 마음속은 극도의 모순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연자심을 미워하고 저주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난 날의 두 사람의 아기자기하던 감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분명히 애정이였다고 한다면 그 애정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속해 버린지

오래라는 사실을 악중악은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자심의 맑고 또랑또랑하게 반짝이는 큼직하고 시원스런 두 눈동자가.

초조하기 이를 데 없는 가엾은 표정을 하고 그를 바라다봤을 때.

악중악은 마음의 호수에 용솟음치는 파도를 가라앉힐 도리가 없었다.

선창 밖으로 걸어 나온 악중악은 두 눈으로는 강물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송두리째 연자심의 신변을 칭칭 감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빙선자 연자심을 생각하면 또한 어쩔 수 없이 노영탄이라는 청년을 연상하게 되었다.

노영탄을 연상하게 되면 대뜸 눈앞에 어른거리며 사라지지 않는 것은

감욱형이라는 아가씨의 존재였다.

 

' 욱형이! 너는 나와 똑같이 가장 불행한 존재에 지나지 읺는다! '

 

악중악은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감욱형의 노영탄에 대한 감정.

그것은 이미 오랜 옛날에 보통 감정을 넘어서서

일종의 애정의 길로 발전되어 나가는 것을 악중악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도 노영탄은 감욱형을 배반했고  내버리다시피 한 것이 아닌가.

 

' 욱형이 노영탄과 연자심의 여태까지의 경과를 알게 되는 날에는 어떠한 태도로 나올 것인가?

  욱형이는 대체 어디 가 있단 말인가? '

 

악중악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불끈 솟구쳐 오르는 동병상련의 감정을 억재할 길이 없었다.

간장이 끊어질 것만 같은 괴로움에 똑같이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천애 어느 곳엔지

살아 있다는 생각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서걸픈 감상에 젖는 것이었다.

 

' 불쌍한 계집아이!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계집아이!  욱형이!  그리고 나 자신은? '

 

강물만 바라다보는 악중악의 심정은 정말이지 덤벙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으리만큼

서글픈 것이었다.

정오가 가까워 올 때였다.

배가 달리는 속도는 여전히 느린 편이 아니었다.

한편 언덕 위로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항시(港市)의 모습이 그림처럼 나타나서

차츰차츰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악중악은 역시 대장부였다.

이런 부질없는 감상에만 젖어 있을 때가 아니라고 퍼뜩 느끼게 되자.

다시 선창 문을 밀치고 위엄있게 들어섰다.

연자심은 여전히 이불자락으로 하반신을 휘감고 일어나 앉아서 간신히 상반신을 쳐들고

선창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창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악중악은 꾹 다물었던 입을 아주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음성도 여태까지와는 딴판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 저편 언덕 위로 시가지가 한 군데 보이는데 내 나가서 당신 의복을 한 벌 사 오리다.

나간 김에 먹을 만한 음식도 몇 가지 사 가지고 올 태니 .........

그러나 이 틈을 타서 여기서 도망칠 궁리를 해서는 안 되오.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내가 어떤 매정한 짓을 하든 이후에라도 나를 원망치는 마시오! "

 

일종의 협박과 같은 말투였다.

그러나 사실인즉 악중악은 연자심이 감히 도망치지 못하리라는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연자심은 몸에 옷을 제대로 걸치고 있지 못하니.

이 밝은 날에 어찌 여자의 몸으로 함부로 선창 밖으로 내닫을 수 있을 것이랴.

그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한번 협박처럼 다짐을 해두는 말이었다.

 

" ............ "

 

한빙선자 연자심은 악중악의 협박적인 언사를 듣고도 묵묵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머리를 쳐들어서 한번 흘끗 쳐다봤을 뿐이었다.

악중악은 순종인지 반항인지 분간키 어려운 연자심의 태도를 보고도 두말 없이 선 뜻

밖으로 나왔다.

배를 강기슭 가까운 곳에 매어두고 흘쩍 단숨에 시가지를 바라다보며 걸음을 빨리 했다.

악중악이 없어진 뒤에. 선창 안에서 환약 두 알을 먹고 난 연자심은 정신이 새뜻해졌고.

팔다리도 마음대로 말을 듣게 되었다.

체력도 이미 완전히 평소와 같이 회복된 것이다.

 

' 이 틈을 타서 달아나버리고 말까? '

 

연자심은 이런 생각을 했다.

악중악의 협박적인 언사가 그다지 겁나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몸에 걸친 옷이 괴상망측하여 한 발자국도 떼어놓기 어럽다고는 하지만 .

악에 받친 심정을 가지면 악중악이 없는 틈을 타서 도망치기가

그다지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것이 현명지책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노영탄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노영탄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그 행방을 모르는 이 판국에서.

역시 악중악과 함께 있어야만 언잰고 간에 노영탄을 만나볼 날이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노영탄은 결국 자기를 찾아서 쫒아 올 것만 같이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이 궁리 저 궁리 착잡한 생각에 젖어 있는 동안에 악중악은 벌써 배 위로 다시 돌아왔다.

선창 안으로 들어오면서 의복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연자심에게 던져주며 이렇게 말했다.

 

" 의복 두 벌을 마련해 왔으니 우선 입어보시오.  몸에 맞나 안 맞나 .......... "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또다시 흘쩍 선창 밖으로 나가버렸다.

연자심은 얼른 보따리를 풀었다.

보따리 속에는 두 벌의 새뜻하고 깨끗한 옷이 들어 있었다.

옷감이며 그 빛깔이며 제법 상등품들이었다.

빛깔이 좀 짙은 것을 한 벌 골라 입어보니 자로 재서 맞춘 것처럼 몸에 알맞게 어울렸다.

옷을 제대로 입고 나자 연자심도 선창 밖으로 나왔다.

악중악은 배 뒤편에 있는 갑판 위에 앉아서 얼이 다 빠진 사람처럼 강물만 멍청히

바라다 보고 있었다.

그 태도며 얼굴 표정이 노영탄을 그대로 갖다 앉혀놓은 것같이 조금도 다른 점이 없었다.

연자심은 까닭 모를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감개가 무량했다.

 

' 이 세상에 어쩌면 이다지도 똑같이 닮은 청년들이 있을까?

그러면서도 둘은 목숨을 걸고 싸우려 드는 적과 적의 입장에 서 있으니 ...........

그것이 또 바로 나 때문이라니? '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 악중악과 노영탄을 알게 된 동기나 경과를 돌이켜 생각해 보자니

연자심의 심정은 엉클어진 실마리처럼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돌이켜 생각하자면.

그들이 서로 알게 되고 기묘한 운명 속에서 허덕이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악중악이나 노영탄이나 똑같이 연자심을 감욱형인 줄로만 오인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연자심은 감욱형이란 아가씨가 자기와 한판에 찍어낸 듯이 닮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

끝끝내 한 번도 대면해 보지는 못했다.

연자심의 머릿속에 언재나 떠돌고 있는 감욱형이라는 아가씨의 존재는.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지극히 친숙한 친구와도 같이 생각되었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한낱 인연도 관계도 없는 딴 세상의 아가씨같이도 여겨지곤 했다.

지난날의 갖가지 기구하고 공교로운 인연과 사연을 회상하면서 넋이 빠진 사람같이

멍하니 있는 연자심의 표정에서 악중악은 뭔가를 읽은 듯 얼른 머리를 이쪽으로 돌려

한번 흘끗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 이 한 벌 옷이 이렇게 당신에게 잘 맞으리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소. "

 

" 고마워요! 그리고 죄송해요. 적지 않은 돈을 낭비하게 해서 .......... "

 

연자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악중악이 대뜸 물었다.

 

" 이만 일쯤을 낭비라고까지 생각하실 것은 없소.

내 한 가지 알고 싶은 일이 있는데 저 백화봉 사이란 놈에게 납치당해서 여인숙을 나오셨을 때.

그놈은 진기한 보물을 한 보따리나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었소? "

 

연자심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 그래요. 제 것이었는데. 그놈이 사람을 납치하는 김에 함께 휩쓸어 낸 모양이죠. "

 

" 흠! 그 진주와 보배들은 모두가 비범한 물건들이던데 그런 것들을 어디서 얻으셨소. "

 

연자심은 한동안 말없이 망설이고만 있었으나 결국 악중악에게 숨겨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영탄과 함께 응유산 속에 깊숙이 들어가서 진주와 보배를 찾아내게 된 경과를

악중악에게 대강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난 김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아야겠다고 생각한 연자심은

스슴치 않고 다음과 같이 덧붙여서 이야기를 꺼냈다.

 

" 악공자께서 저와 노영탄을 몸시 미워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들도 벌써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주셔야만 돼요.

저와 노영탄과의 관계는 차치하고 만약에 제가 언제까지나 악공자의 곁에 있었다면

저 개인의 신세나 처지를 생각할 때 .

또 숭양파와의 관계나 인연을 고려할 때.

악공자께선 당신의 스승과 어른들이 이 연자심과 숙명적인 매듭 속에서

능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셨나요?

만약에 악공자와 제가 그때처럼 강호를 쫒겨다니며 유랑 생활만 계속하고 있었다면.

악공자께선 영원히 스승을 배반한 사람이 되셔야 했고.

무림 사람들의 조소와 멸시를 면치 못하셨을 거예요.

저 역시 남을 유혹했다는 죄를 씻을 길이 없었을 것이고 ........

당신께선 아직도 스승의 문하로 돌아가실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만 같아서 ....... "

 

" 흥! 흐흐흐! "

 

악중악은 연자심의 말을 듣더니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 알고보니까 내가 공연히 연자심이란  아가씨를 오해하고 나대로의 어리석은 괴로움 속에서

나날을 보내온 데 대해서 나는 도리어 노영탄이란 녀석에게 응당 감사해야만 될 판이구려! "

 

악중악의 얼굴빛이 갑자기 침통해졌다

그러나 음성은 더 한층 또랑또랑해 지면서 흥분을 참지 못하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 당신은 그만두고 승양파를 영도한다는 대표자나 또 어떤 선배라는 인물들도

  이제는 나를 숭양파로 되돌아가게 하지는 못할 거요!

나는 온갖 고생을 맛 볼 대로 맛 보면서 일년이란 세월을 세상에서 버림을 받고

혼자 살아오면서 무술을 단련했소.

나는 이제야 말로 무림의 명수니 고수니 하고 거들먹거리는 위인들을 모조리 때려눕힐 작정이오!

그래서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 줄 작정이오!

나 같은 무방무파의 청년도 강호에서 영웅이 될 수 있나 없나 하는 것을 말이오! "

 

악중악은 단숨에 거침없이 여기까지 떠들고 나더니.

안색이 점점 더 침통해지면서 다음 말을 계속했다.

 

" 그리고 그 노가란 녀석으로 말하면 당신과의 관계가 어떻게 됐든 간에 나는 그 놈을

만나고야 말겠소!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놈을 무너뜨려야만 내 가슴속에 사무친 원한을 풀어버릴 수 있을 것이오! "

 

그리고는 고개를 쳐들더니

쏠 듯한 안광으로 연자심을 노려보면서 언성을 더 한층 거칠게 높였다.

 

" 당신은 이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섣불리 내 겯에서 도망칠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시오!

이 악중악은 언제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담백하고 깔끔하다고 자부하오.

과거지사는 일체 말하지 않겠소!

나는 그대에 대해서 이제 실오라기만큼도 딴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소!

단지 나를 따라서 회안 까지만 가주시오!

거기서 내가 어떻게 무림의 고수니 명인이니 하는 따위들을 대하는지

그것을 구경만 해달라는 것뿐이오!

내 말을 알아들으시겠소? 

 와하하핫! "

 

악중악은 말을 마치더니 한바탕 마음에도 없는 너털웃음을 쳤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잡지 못하고 미쳐 날뛸 것만 같은 거칠고 무시무시한 웃음소리 였다.

연자심은 조용히 고개를 쳐들어 그 시원스런 눈을 크게떠서 악중악의 일거일동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을 뿐 입을 열어 무엇을 말하려들지도 않았다.

악중악의 말을 들어보면 이 청년의 가슴속에 깊이깊이 서려 있는 원한이란

마치 뭉치고 뭉친 쇳덩어리처럼 강고해서 웬만큼 권고를 해봤댔자

좀처럼 풀어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이제는 별 도리가 없다!

아무도 악중악을 말릴 만한 사람은 없다!

갈 데까지 가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

그리고 나면 그는 저절로 자기의 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렇게 단념하면서도 연자심에게는 또 한편으로 커다란 근심 걱정이 있었다.

 

' 만약에. 악중악의 무술 실력이 이미 천하무적의 경지에까지 올랐다면 ............

무림의 모든 고수라는 인물들이 어떤한 사람도 감히 그를 감당해 낼 수 없을 정도라면.

악중악은 그의격하기 잘하고 오만불손하며 안하무인격인 성품으로 횡포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는 무시무시한 마군이 될지도 모른다!

그와는 반대로. 그가 또 다시 더 무서운 고수를 만나게 되어서. 패배했을 때에는!

그는 이럴 경우 극도의 충격을 받고 미쳐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제 생명을 제 손으로

끊어버릴지 모른다! '

 

연자심은. 이렇게 이모 저모로 생각해 봤을 때 도리어 악중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자기 자신의 입장이나 처지까지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강물 위에는 배들이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다.

평온한 수면 위를  또한 순풍이 가볍게 더듬고 있으니.

두 젊은이들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에 배는 꽤 먼 곳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강물 줄기가 갑자기 좁아지고 꾸불꾸불해지고.

거기 따라서 양편 언덕이 어수선해지는 것 같았다.

두 젊은이들의 심정은 똑같이 일종의 모순된 정서로 꽉 차 있었다.

각자가 각자의 심정을. 한마디로 꼬집어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머리속이 복잡했다.

둘이 다 같이 입을 다물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시 악중악이 어색하게 감도는 침묵을 깨뜨리고 먼저 입을 열었다.

 

" 아무것도 잡수신 게 없다면 시장하시겠구려? "

 

연자심은 이렇게 오랫동안 뜻하지 않은 분란을 겪고 있는 판에.

뱃속이텅 비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너무나 복잡하게 엉클어진 심정인지라 시장하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다가.

악중악의 이 한마디를 듣고 보니 불시에 시장기가 참을 수 없이 치밀어올랐다.

 

" 말씀을 듣고 보니 갑자기 좀 시장한 듯 하군요. "

 

악중악은 젖고 있던 노를 연자심에게 맡겨두고 선창 뒤로 걸어갔다.

금방 이것저것 먹을 것을 듬북 안고 나타나더니

다시 선창 속에서 찻잔과 그릇 몇 개를 꺼내서 연자심 앞에 벌여놓고 .

음식을 먹고 물을 좀 마시도록 권했다.

배는 전속력을 다해서 달렸다.

땅거미가 다가들었을 때 벌써 회안성 밖까지 와 있었다.

악중악은 배를 강기슭에 가까이 대놓고 머리를 돌려 연자심을 바라보며 말했다.

 

" 저기. 저걸 좀 보시오!  저게 무엇인지 알아보겠소? "

 

연자심은 악중악이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강기슭 위 언덕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연자심이 막 머리를 그쪽으로 돌렸을 때.

악중악은 웬일인지 재빠른 동작으로 팔을 길게 뻗더니

선뜻 연자심의 뒤통수 혼수혈을 가볍게 찔러버리는 것이었다.

연자심이 뒤통수에 뭔가 스치는 ㄱ감각을 느꼈을 때에는.

이미 머리를 다시 돌릴 겨를도 없이 어질어질.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지에서 구출해 낸 연자심을 다시 혼수상태에 빠뜨려버리는 악중악의 소행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악중악은 악중악대로 무슨 계획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연자심을 번쩍 두 손으로 안아서 선창 안으로 떠메고 들어갔다.

처음 누워 있던 자리에 조요히 내려놓고는 다시 살며시 선창 밖으로 나왔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회안성 안에는 벌써 등불이 깜박깜박 켜지기 시작했다.

악중악은 한참 동안이나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방금 자기가 한 행동을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을 확인하자.

그제서야 마음을 놓은 듯 단숨에 몸을 날려 강기슭 위 언덕으로 올라섰다.

역시 악중악은 자기가 없는 틈을 타서 연자심이 달아나는 것을 미리 방비하려고 한 것이다.

생각다 못하여 마침내 이런 방법을 쓰기로 작정한 것이며 이렇게까지 해놓고 배를 뜨면.

절대로 안전하리라고 믿은 것이다.

배를 강에 매놓고 언덕 위로 올라간 악중악은 한참 만에 되돌아왔다.

두 손에는 먹을 것들을 가득 들고 있었다.

 배를 어떻게 내려야 할 것인지.

연자심을 데리고 안전한 길을 찾기 위해서 육지의 정세를 살피고.

먹을 것도 구하고 할 겸 잠시 언덕 위에 올라갔다 돌아온 것이었다.

악중악은 선창 문을 한 손으로 가만히 밀어봤다.

그 순간. 악중악의 가슴속은 뭉클하는 것도 같았고 뜨끔하는 것도 같았다.

 

' 연자심을 깨워 놓고 뭐라고 변명을 한다? '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면 반드시 자신의 이런 소행을 못마땅히 여기고 공격해 올

연자심을 생각하고 그것을 구슬릴 계략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악중악이 선창 문을 가볍게 밀어봤을 때.

그는 더 큰 놀라움에 전신이 오싹하고 떨리는 것 같았다.

조금 전에 선창 문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분명히 선창 문을 단단히 닫고 돌아섰는데.

지금은 한번 슬쩍 밀기만 했는데 쉽사리 문이 움직여지기 때문이었다.

 

' 누가 문을 열었던 것 같은데?  연자심이 기어이 도망쳐버린 것일까? '

 

퍼뜩 이런 생각이 들자.

악중악은 왼쪽 손바닥을 가볍게 내밀어서 선창 문을 벌컥 열었다.

선창 문은 맥없이 아무 힘도 들지 않고 열려졌다.

선창 안은 어두침침하다고는 하지만 역시 그 안의 풍경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조그마한 들창 구멍 아래 놓인 침상 위에는 아직도 연자심이 혼수상태에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고 누워 있었다.

 

' 그러면 그렇지! 제가 어디를! '

 

그제서야 악중악은 자기가 신경이 너무 과민해져서 놀라지 않아도 좋은 일에

놀랐다는 것이 어리석고 우습게 생각되었다.

 

' 공연히 긴장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  바람에 문짝의 틈이 벌어졌던 모양이지! '

 

악중악은 구해 가지고 온 음식들을 상 위에 내려놓고 등불을 켜려고 했다.

바로 이때 홀연. 침상 위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바싹바싹 꿈지럭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고.

마치거기 누워 있는 연자심이 상반신을 일어커서 자리에 일어나 앉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 아니?  이럴 리가 없는데! '

 

악중악은 가슴속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끼자.

즉각에 몸을 구부리고 침상 위를 쏘아보았다.

두 손을 당장에 홱 뻗쳐볼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연자심이 그에게 혼수혈을 찔린 채 인사불성으로 누워 있으니.

그가 다시 손을 써서 그 혈도를 풀어놓아 주지 않으면 그렇게 쉽사리 정신을 차리고.

깨어날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악중악이 다시 머리를 돌려 침상 위를 유심히 살펴봤을 때에는.

연자심은 벌써 저절로 상반신을 일어키고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 이게 어떻게 된 셈이냐?  절대로 제 힘으로 깨어나지 못할 터인데 .......... '

 

악중악은 선창 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보다 더 한층 놀라자빠졌다.

그뿐이랴.

몸을 일어켜 자리에 앉은 연자심은 악중악을 쳐다보며 생글생글 미소를 띠고 있지 않은가.

악중악은 대뜸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 당신은 ....... 당신은 어떻게 혼자서 몸을 일어켰소? "

 

연자심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상냥스럽게 대답했다.

 

" 내가 왜 혼자서 일어나지 못해요?  호호호 ........... "

 

이런 대답 소리와 웃는 음성을 들렀을 때

악중악은 또 한번 입을 딱 벌리고 놀라 자빠졌다.

알고보니 그것은 연자심의 음성이 아니었다.

분명히 연자심이 아니었다.

 

" 너 ....... 너 ....... 너였구나!  그 아가씨는? 그 여자는 어찌 되었느냐? 어디로 갔느냐? "

 

침상 위에 일어나 앉은 여자는 또 한번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 호호호 ........ 아가씨가 누구예요? 그 여자가 누구예요?  누구를 나한테 맡긴 일도 없는데. "

 

악중악의 음성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욱형아! 네가 ....... 네가 ........ 여길 ...... 정말 너는 그 아가씨를 못봤니?

  이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

 

침상 위에 앉아 있는 여자는 바로 감욱형이었다.

악중악의 얼굴에서는 감욱형을 만나게 된 놀라움이나 기쁨보다도.

연자심을 잃어버린 초조하고 당황한 빛을 감출 수 없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는 악중악에게 감욱형은 여전히 생글생글

미소를 띠면서 누구를 놀리기나 하듯이 깜직스럽게 말했다.

 

" 오빠! 지금까지도 오빠는 여전히 그 아가씨를 자나깨나 한시도 잊지 못하시는군요? "

 

악중악은 그 말을 듣더니.

초조한 심정에서도 두 볼이 금세 화끈 달아오르며 시뻘개졌다.

음성이 거칠어지며 어쳐구니없다는 듯 감욱형을 꾸짖었다.

 

"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욱형아. 너는 나를 놀릴 셈이냐? 빨리 말해라!

대채 그 아가씨를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 "

 

감욱형은 악중악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정색을 했다.

얼굴빛이 약간 침통해지는 것도 같았다.

여테까지와는 전혀 딴판으로 아주 침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찬찬히 말하는 것이다.

 

" 나는 그 아가씨를 봤을 뿐만 아니라.

바로 내가 그 아가씨를 이 선창 안에서 놓아 보내주었어요! "

 

" 뭣이라구? "

 

악중악은 하도 어쳐구니가 없어서 한참 동안이나 어리둥절하더니.

감욱형을 노려보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 바로 네가 그 아가씨를 놓아 보냈다구?

너는 대체 어떻게 우리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았니? "

 

감욱형도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악중악을 쳐다볼 뿐이었다.

웬일인지 긴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대답을 했다.

 

" 오빠! 오빠가 배를 매놓고 언덕 위로 올라가기 전에 그 아가씨를 혼수혈을 찔러서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것을 나는 벌써부터 이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어요.

얼른 오빠를 찾고 아는 체를 하고 싶었지만 ..........

오빠와 그 아가씨와 또 노영탄이란 청년 사이에 이렇게 복잡한 우여곡절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에 .......

이야기를 하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고 .........

어디서부터 해야 좋을지 몰라서 .......... "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