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33장 고난시험(苦難試驗)

오늘의 쉼터 2013. 12. 13. 22:51

정협지(情俠誌) 6권

 

33 고난시험(苦難試驗)

 

시험을 받는 노영탄 

 

 

 이튿날  아침.

노영탄은 일찌감치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곧 성 밖에 있는 금사보를 향해 달려갔다.

맑게 갠 가을 날씨. 계화 향기가 유난히 청신한 아침이었다.

한없이 널버러진 푸른 논밭에는 곡식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길 양편 들국화는 시들어가는 고개를 다소곳이 수그리고 있었다.

금사보로 통하는 대로에는 넓은 길이 미어질 지경으로

사람들이 조수처럼 밀려 나가고 있었다.

강호 천지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인물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신바람 나는 싸움을 한번 구경해 보자는 호기심에 불타고 있었다.

노영탄은 갈피 잡기 힘든 착잡한 심경 속에 한 개의 커다란 의문을 품은채.

가슴속에서 금방이라도 불길이 치밀어오를 것만 같은 조급한 심사였으나.

역시 모든 감정을 꾹 누르고 태연히 군중 속에 휩쓸려서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길을 가다가 말고 유심히 노영탄의 아래위를 흘끔흘끔 훑어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준수하게 생긴 선비 같은 노영탄의 몸차림이 그들에게는 이상하게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노영탄은 시치미를 뚝떼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앞길만 바라보며 일부러 사람들의 물결 속에 몸을 감추곤 했다.

 

금사보 ......

이 난공불락의 아성이라는 회양방의 진지는 주인이 바뀐 뒤에

다시 한번 막대한 토목을 동원하여 개축을 한 다음 안이나 밖이나

그면목을 일신하여 바깥 세상으로 풍기는 기세와 위력이 더욱 굉장해 보였다.

이때 사방 보루의 문이 활짝 개방되었으며 보루를 방비하는 언저리의 강 위에도

구름다리가 모조리 내려앉아 걸쳐졌고 대문마다 오색 찬란한 큼직한 깃발들이

아침 바람에 시원스럽게 나부끼어 그 기상이 자못 삼엄했다.

노영탄은 문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문이란 문은 모조리 회양방의 수많은 방도들이 우글우글 들끊고 있었다.

그 많은 방도들은 모조리 회양방의 세 놈의 두목급 인물들이 각각 인솔하고.

같은 빛깔의 복장을 입고 금사보를 찾아드는 내빈들을 영접하고 있었다.

이름깨나 알려져 있다는 내빈들은 .

문 앞으로 다가서서 이름 석 자를 명부에 기입한 다음 거침없이 안으로

영접을 받아 들어갔으나 이름 석 자가 세상에 뚜렷하게 알려지지 못한

하잘것 없는 위인들은 문 앞에서 가로막혀버리고 말았다.

퇴짜를 맞고 무술이 있을 당일을 기다리며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조급한 나머지 방도들의 안내를 받고 무술의 자격을 인정받고자

시험을 치르러 그 장소로 몰려가는 사람들도 꾀 많았다.

무술의 자격을 검정받고통과된다 해도 겨우시합을 앞둔 하루 전날에야

금사보 안에 들어갈 수 잇도록 되어 있었다.

노영탄이 문 앞에 나타난 것을 보더니.

당장에 방도 한 놈이 덤벼들며 심문을 하는 것이었다.

말을 묻는 그 방도 여석은 사람된 품이 몹시 거만하고 주책없이 보였는데.

거기다가 빗자루같이 생긴 양쪽 눈썹을 씰룩씰룩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개 주둥이같이 험상궂게 생긴 입을 연방 쫄긋쫑긋해 가며 버럭 악을 썼다.

 

" 통성명을 하시오!  누구라는 것을 명백히 대시오! "

 

노영탄은 까닭없이 우쭐거리는 방도 녀석의 얼굴을 한동안 말없이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회양방의 방도 녀석은 노영탄이 나이도 젊은 애송이로 보이는데다가 어딘지 모르게

얌전한 선비나 서방님 같은 티가 날 뿐만 아니라 .

옷차림이라고 해야 하등 특별히 주의를 끌 만한 점도 없고 또 혼자 몸으로 나타났는지라.

한눈에 이름이 있는 청년이 아니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거만하고 무뚝뚝하기 짝이 없이 말을 건 것이었다.

 

' 원. 세상에 별 아니꼬운 놈을 다 보겠는데!

사람을 몰라보는 것도 좋지만 뭘 이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멋도 모르고

기세가 등등해서 날 뛰는 걸까? '

 

노영탄은 불끈 화가 치밀었으나 쿡 참으면서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 소생은 노영탄이라 하오! "

 

그 방도 녀석은 이 말을 듣더니

유난히 부리부리하고 거친 눈매로 노영탄을 아래위를 세삼스럽게 훑어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싸늘하고 투명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 당신이 지금 당장 우리 금사보 안엘 들어가겠다는 거요?

 당신은 누구를 아시오? "

 

방도 녀석이 누구를 아느냐고 묻는 의미는 두말 할 것 없이 노영탄이

소위 무림에서 이름깨나 있다는 어떤 인물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에 노영탄이 누구든 간에 다소라도 유명한 인물의 이름 석 자를 댈 수 있다면.

그것을 믿고 적당히 입장을 허락하겠다는 의미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노영탄의 대답은 너무나 의외였다.

방도 녀석의 아니꼬운 태도를 냉소하듯.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몹시 날카로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 별로 아는 사람은 없소. 그러나 나는 지금 곧 입장을 해야겠소. "

 

" 뭣이라고?  흥! "

 

방도녀석은 노영탄의 말을 듣더니.

코웃음을 치고 나서야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거 미안하게 됐는 걸! 

지금 우리 금사보 안에는 손님이 꽉 찼소.

당신은 내일 무술대회가 시작될 때 다시 오는 도리밖에 없겠소. "

 

노영탄의 얼굴에 침통한 빛이 감돌았다.

버럭 음성을 높이며 따지고 들었다.

 

" 어째서 다른 사람은 입장을 할 수 있는데 나만 입장할 수 없다는 거요?

  세상에 공개하는 무술대회인 이상 사람의 입장을 거절할 까닭은 뭐요? "

 

노영탄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서 한바탕 떠들었더니.

옆에서 보고 있던 두목급 인물 하나가 무엇에 놀란 것처럼 급히 달려들며 말했다.

 

" 어디서 오신 손님인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오? "

 

그 방도 녀석은 노영탄이 언성을 높이게 된 경위를 급히 설명했다.

두목은 그 말을 다 듣고 나더니 노영탄에게 점잖게 이유를 말했다.

 

" 본래부터 이렇게 돼 있는 것이오.

우리 금사보 안은 면적이 한정돼 있는지라.

방주께서 이런 규칙을 정하시고 무술 시합을 하는 쌍방의 친숙한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사전에 입장을 하려면 반드시 시험을 치르고 통과해야만  허락하기로 되었소.

지금 당장에 입장하시고 싶다면 이런 규칙대로 해야만 될 것이오. "

 

노영탄은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 아하! 알고보니 그런 규칙이 .........

  좋소!  나는 그럼 그 규칙에 의해서 입장 허락을 받겠소! "

 

두목이란 자는 머리를 돌려 방도 녀석을 쳐다보면서

자못 체통을 차리는 체하고 점잖게 명령했다.

 

" 이 젊은 분을 모시고 저편 시험장으로 가서 시험을 보실 수 있도록 안내해 드려라! "

 

방도 녀석은 두말 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저를 따라오라는 의사를 표시하고 앞장을 서더니.

금사보 문 안으로 들어섰다.

노영탄은 서슴치 않고 그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금사보 안으로 들어서니

바깥쪽 보루 넓은 마당에는 벌써 어마어마하게 넓고 높은 경무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경무대 양 옆으로는 말뚝을 박아서 경계선을 구별했고 귀빈들의 관람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바깥쪽 보루의 모든 건축물들은 칠까지 새로 했고 길도 깨끗이 청소했으며 여기저기 웅성웅성.

강호에서 몰려든 유명지사라는 인물들이 장터처럼 들끓고 있었다.

노영탄은 그 방도 녀석을 따라서 보루의 높은 담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그곳에는 높고 널찍하게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

그 울타리 안으로 드나드는 문 앞에는 또 다른 방도 두 녀석이 서 있더니.

노영탄이 나타나는 것을 보자 선뜻 앞으로 나서면서 노영탄을 영접이라도 한다는 듯.

길을 안내하고 온 방도 녀석에게 말했다.

 

" 여보게. 이분이 시험을 치르러 오신 분인가? "

 

길을 안내하고 온 방도 녀석은 노영탄을 보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자못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 이 친구들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시오.

  내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리다! "

 

노영탄은 쓰다 달다 말이 없었다.

묵묵히 두 방도 녀석들을 따라서 목책 안으로 들어섰다.

그 목책 안은 꽤 넓은 면적인데 광선이 바깥보다는 다소어두운 편이었고.

그 넓은 면적을 몇 군데로 가로막아 한 채씩 따로 떨어진 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두 방도 녀석들은 노영탄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저기 바라다보이는 오른쪽 집으로만 나가시오.

그 속에는 텅 빈 방들이 세 채 있는데. 

그것을 모두 무난히 통과해 나가기만 하면 합격되는 것이오.

방마다 장애물이 마련되어 있으니까.

당신의 무술 실력으로 그것을 물리쳐 나가면 되는 것이오.

앞으로 나가는 길이막히고 그 장애물을 물리칠 만한 힘이 없을 때는 고함을 지르시오.

그러면 시험은 중단되는 것이고 당신은 되돌아서 나와야 하는 것이오!

아시겠소? "

 

노영탄은 여전히 머리를 끄덕끄덕할 뿐.

대답하기도 가소롭다는 표정이었다.

 

' 별 우스광스러운 수작을 다 하고 있구나!

  방 안에 대체 무엇이 있다는 거냐? '

 

방 안은 울타리 안보다 더 어두침침했다.

눈을 크게뜨고 살펴보니

이 방 안의 사면 벽이란 것이 모조리 철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는데 들보 위 한군데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들어옴을 알 수 있었다.

그 조그만 방 안을 두루 살피고 있노라니.

호연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릉!

마치 천둥 소리같이 요란한 소리가 바로 노영탄의 발밑에서 들려왔다.

발밑을 내려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발밑에 깔린 철판이 그 요란한 소리와 함께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틈은 점점 커졌다.

언제까지고 철판에 발을 붙이고 서 있을 수 없게 만든 괴상한 장치였다.

그와 동시에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철판 벽에 큼직한 구멍이 하나 드러났다.

그 구멍은 꼭 한 사람의 몸뚱어리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틈이벌어져 나가는 철판 밑으로 떨어져 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정면으로 보이는 구멍으로 뚫고 나가든지.

양자 택일을 하라는 수작이었다.

 

' 흥! 뚱딴지 같은 놈들이 어린아이 장난 같은 수작을 하고 있구나! '

 

노영탄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그것은 결코 어린아이 장난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발밑에 깔린 철판은 간격이 널찍하게 벌어졌고.

그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기는 무시무시한 낭떠러지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칼 끝이 삐죽삐죽 꽃혀 있는 것이었다.

한번 그 아래로 뒹굴기만 한다면 목숨이 붙어나지 못할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뼈도 추려내기 힘들 만큼 무시무시한 낭떠러지였다.

 

' 이놈들이 무술대회를 한다고 생사람을 잡을 작정이구나!

  에이. 괘심한 놈들! '

 

노영탄은 벌어져가는 철판을 아슬아슬하게 두 발로 디디고 껑충 뛰어서

몸을 나지막하게 솟구쳤다.

그대로 정면 벽 위에 뚫린 구멍으로 뚫고 들어갔다.

눈을 크게 뜨고 또 살펴봤다.

또 하나 다른 방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 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을 할 작정이냐?

  두 번째 나타날 장애물이란 뭐냐? '

 

노영탄이 그 시커먼 공간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지나온 방에서 나타났던 것과 똑같이 이먼에도 앞으로 바라다보이는

정면 철판 벽에 구멍이 하나 드러났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구멍에서는 이상하게도 새파랗고 매서운 광채가 발사되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광채를 확인하는 바로 그 찰나에.

그 구멍으로부터 마치 버드나무잎새 같은 칼날이 노영탄의 얼굴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 아무튼 별 시시한 수작을 다 하는 놈들이구나! '

 

노영탄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손을 펼쳐서 식지와 중지 사이에 날아드는 칼날을 꼭 끼어버렸다.

날아드는 칼날을 집게로 꼭 집듯이 가볍게 힘 안 들이고 막아낸 것이다.

그러나 칼날은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난데없이 오른쪽. 왼쪽. 양쪽 측면에서 똑같은 칼날 두 개가 동시에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노영탄은 몸을 주춤하고 살짝 구부렸다.

왼쪽 손가락 사이에 끼었던 칼날을 홱 던지며 그 칼자루를 재빠르게 손에 잡아서는 왼쪽에서

날아드는 칼날을 탁 쳐버렸다.

그와 동시에 오른쪽 식지에 힘을 주어서 오른쪽에서 날아드는 칼날을 똑바로 겨누고 탁 퉁겨버렸다.

노영탄으로서는 장난이나 하듯 간단한 일이었다.

쟁그렁! 쨍쨍한 쇠소리와 함께. 두 줄기 매섭고 싸늘한 광채가 번쩍!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노영탄의 초조한 정신을 자극하면서.

두 자루의 칼날은 완전히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 정면 철판 벽으로 세 번째 구멍이 또 드러났다.

그 속으로 다시 뚫고 들어가보니.

지나온 것과 똑같은 굴 속같이 어두침침한 조그만 방이었다.

그런데 이번 방 안에는 높직한 들보에 세 가닥의 굵직한 쇠줄이 늘어져 있엇다.

그 쇠줄 끝에는 한 가닥마다 사람의 머리만큼이나 큼직한 철구가 한 개씩 매달려 있었는데

그 세 개의 철구에는 모조리 날카로운 가시가 돋쳐 있었다.

노영탄이 그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세 가닥의 쇠줄은 번쩍번쩍하고 광체를 발사하더니.

빙빙빙빙 돌아가기 시작했다

거기 따라서 그 끝에 매달린 가시 돋친 철구도 방 안을 닥치는 대로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마치 방 안을 바로 쓸 듯이 샅샅이 구석구석 휩쓸고 돌아다녔다.

쇠줄이 더 빠르게 돌아갔다.

세 개의 철구도 미친 듯이 날아다니면서 때로는 저히들 끼리 맞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불똥을 번쩍번쩍 날리곤 했다.

 

' 아하! 이놈들이 어지간히 괴상한 궁리를 해내서 구경온 사람들까지 골탕을 먹일 작정이구나! '

 

노영탄은 점점 가소롭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두 번을 돌파하고 난 장애물이니 난관이니 하는 것은 정말 노영탄에게는

어린아이의 장난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고  이 세 개의 철구가 덤벼들 때에야

이것 한 가지만은 어지간히 해볼 만한 장난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철구 세 개가 춤을 추듯이 방 안을 휩쓸고 있을 때 방안에서는 이미 빈 틈이나.

어떤 공간을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노영탄이 한번 경신법을 전개하고 그 예리한 안광으로 세 개의 철구를 노려봤을 때.

제아무리 무서운 철구라 할지라도 철구와 철구 사이에 어떤 틈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노영탄은 마치 총알이 어떤 틈을 뚫고 들어가듯이 그 벌어진 틈을 노리고 몸을 비호같이 날려.

철구와 철구 사이를 헤치고 몸을 피했다.

이세개의 철구가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은 최소한 몇백 근의 중량이 눈부시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것들을 섣불리 건드리거나 스쳐놓고 몸을 피할 만한 재간이 없다면.

그때는그것으로 마지막 철구에 맞아서 딴딴한 고깃덩어리가 되어 나둥거러져 버리든지.

그렇지 않고 살아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 무수한 가시에 찔려서 전신에 몇 군데는

무시무시한 구멍이 뚫리고 마는 처참한 꼴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이 한 가지 난관만 가지고라도 멋모르고 금사보 안에 덤벼드는 시골뜨기들을 골탕 먹이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영탄에게는 그까짓 것쯤은 대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철구의 틈을 헤쳐버리자 늘어졌던 쇠줄도 원상태로 돌아가 속도를 늦추고

거기 따라서 세 개의 절구들도 약속이나 한 듯 정지해 버렸고 노영탄도 한쪽에 우뚝 섰다.

밖으로 나갈 구멍이 없이 사방이 막힌 줄로만 알았던 철판 벽이 별안간 한 군데가 스며시

벌어지더니 두 짝의 문이 되어서 열어젖혀졌다.

그리고 그 밖에서 어떤 놈인지 제법 점잖은 음성으로 소리를 질렸다.

 

" 젊으신 손님! 솜씨가 과연 비범하시오! 어서 이리 나오셔서 우선 쉬시오! "

 

노영탄은 두말 없이 뚜벅뚜벅 걸어서 태연히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보니.이 문은 방금 뚫고 들어갔던 조그만 방의 출입구가 아니라.

괴상한 장치를 해서 목책의 뒤편으로 나오게 돼 있는 것이었다.

 

' 흥! 제놈들 딴에는 신출귀몰한 재간을 부렸다는 거지? '

 

노영탄은 혼자서 입가에 냉소를 띠고 우두커니 서 있노라니.

처음에 이곳으로 안내하던 방도 녀석이 어디선지 급히 달려들며 말했다.

 

" 젊으신 손님! 이제 시험에 완전히 통과되신 거요.

규칙대로 우리 금사보 안에까지 모셔다 드리겠소.

내 뒤를 따라오시오! "

 

노영탄은 몸에 지니고 있는 보따리 하나밖에 아무것도 맡겨둘 물건도 없었다.

서슴치 않고 방도 녀석의 뒤를 따라서 금사보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마당 한복판에 마련되어 있는  경무대를 빙글 돌아서 방도 녀석은 안내하고

한 군데 높고 큼직한 2층 누방 문 앞에 이르렸다.

그 문 앞에는 무수한 인물들이 웅성웅성 무슨 이야기인지 주고받고 지끌이고 하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물을 것도 없이 강호에 이름깨나 떨치고 있는 위인들로서 우뚝한 콧날에 치올라간 눈썹이며

하나하나가 모두 험상굿고 사납게 생긴 얼굴들 뿐이었다.

문 위에는 큼직한 편액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경현관이라는 석 자가 굵직하게 씌여 있었다.

방도 녀석은 다시 노영탄을 안내하고 그 누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서 웅성그리고 있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는 흘끔흘끔 노영탄의 모습을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으나 노영탄은 그까짓 것쯤은 아랑곳없다는 듯 태연히 고개를 쳐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경현관 안에서는 손님을 접대하는 다른 몇 놈이 방도 녀석들이 이 시험에 무난히 통과한 진객이

 무섭기라도 하다는 듯 허둥지둥 노영탄이 머물러 있을 만한 방 한 칸을 치워주면서

무술대회가 끝날 때까지 편히 유숙하라고 했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