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30장 동천복지(洞天福地)

오늘의 쉼터 2013. 12. 13. 22:33

 

정협지(情俠誌)

 

30 동천복지(洞天福地)

 

마침내 보물을 찾다

 

 

 

이튿날 날이 밝아지자 노영탄은 혼자서 부둣가로 달려갔다.

다짜고짜로 배 부리는 사람 하나를 붙잡고 이렇게 말을 꺼냈다.

 

"여보세요. 선주님! 이 부근에서 어디 빈 배 한 척을 팔 만한 사람 없겠소? "

 

그 선주는 이름을 정대라고 했다.

꼭두새벽에 무심코 뱃머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판인데.

난데없이 귀공자같이 생긴 젊은 청년이 나타나 대뜸 한다는 소리가

빈 배를 사겠다고 하니 다소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노영탄의 아래 위를 유심히 훓어보면서 대답하는 말이.

 

"배를 팔 만한 사람이 없는냐고요?

대체 얼마만한 배를 사시려는 겁니까? "

 

노영탄이 선뜻 대답하기를.

 

"그저 팔구백 내지 천 근 정도 싣고갈 만한 자그마한 배 한 척이면 넉넉하겠소! "

 

정대라는 선주는 한참 동안이나 무엇인지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을 하며 물었다.

 

"그런 배를 타고 어디로 가시겠다는 겁니까? "

 

노영탄은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나는 배를 타고 돌아다니며 구경이나 좀 해보려고 그러는 거요. "

 

정대라는 선주는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며 노영탄의 행동이 수상쩍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둟어져라 노영탄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말을 했다.

 

"아니. 그러시면 배를 부릴 줄 아는 뱃사공 한 사람을 구하실 생각은 없어신가요? "

 

이밖에도 정대라는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뚱딴지 같은 수작을 하며.

꼬치꼬치 캐묻는 말에 노영탄은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것을 피하려고 노영탄은 마침내 정색을 하고 음성을 가다듬어 가지고 위엄 있게 말했다.

 

"그런 일까지 걱정해 줄 필요는 없고. 단지 살 만한 배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 알려주시오! "

 

정대라는 선주는 그제서야 상대방이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눈치를 깨달은 듯

대뜸 이렇게 말했다.

 

" 있지요! 있구 말굽쇼!

어떤 것이고 간에 마음에 드시는 배를 얼마든지 골라잡으실 수 있습니다. "

 

말을 하면서 정대는 옆으로 죽 메어 있는 여러 척의 나룻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언덕 위로 벌떡 뛰어 올라가더니 노영탄을 대하고 섰다.

노영탄이 여러 척의 나룻배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들은 어지간히 다부지고 견고하게 만들어진 것들리였으며.

배 위에 마련된 부속품들도 빠짐없이 구비되어 있었다.

노영탄은 서슴치 않고 나지막하게 돛을 단 범선 한 척을 골라잡고

정대라는 선주에게 말했다.

 

"됐소! 나는 이 돛단배를 한 척 사겠소! "

 

정대는 노영탄이 배 한 척을 골라내는 것을 보더니.

빙그레 바보처럼 웃으면서 한쪽 손으로 자기의 이마를 툭쳤다.

그리고 쥐수염처럼 두 갈래로 가느다랗게 갈라진 볼품없는

코밑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 허! 어지간하신데요.

배를 골라내시는 품이 대단하신 분이네요.

단번에 제일 좋은 놈을 골라잡으셨습니다.

이 배는 정말 빠른 놈입니다.

절대로 이 정대가 허풍을 떠는 게 아니굽쇼.

이 항구 안에 이런 작은 배들이 수두룩하게 깔렸지만 .

이 배를 따라갈 만큼 다부진 배는 드물겁니다! "

 

이렇게 말하더니 웬일인지 목을 앞으로 길게뽑으며 노영탄에게 바싹 다가가 서더니

히죽이 웃어 보이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배는 대단치는 않지만 흠이 한 군데 있습죠.

물이 좀 새는 데 ........ "

 

그러더니 다시 정색을 하고 말했다.

 

" 그러나 그다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절대로 물이 새어 들어 오지 않도록 수리해 드릴 테니까요! "

 

그의 말하는 품이우습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솔직해서 좋다고 생각한

노영탄은 쾌히 승낙했다.

 

" 좋소. 이 배를 그렇게 수리만 해준다면 이 배를 사겠소.

그러나 빨리 해주어야만 되오! "

 

정대라는 선주와 노영탄 사이에는 배를 수리해 준다는 계약이 성립되었다.

노영탄은 그제서야 뱃값을 물어봤다.

 

" 그건 그렇고 이 배는 대체 얼마나 받으실 작정이오? "

 

정대라는 선주는 또 한번 히벌쭉 웃더니

이마를 다시 한번 손으로 탁 쳤다.

 

" 그거 뭐 알아서 적당히 주십쇼그려. "

 

노영탄은 한참 동안이나 생각해 봤으나 결국 뱃값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 나야 이 배가 얼마짜리나 되는지 어디 알 수 있소?

받을 만한 값을 솔직히 말씀하시오. "

 

정대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꽤 오랫동안 꾸물꾸물 생각하고 나서야 대답했다.

 

" 그저 은전 팔십 냥만 두십쇼. "

 

노영탄은 품안에서 은전을 꺼내 정대에게 주었다.

 

" 이건 이십 냥인데. 우선 계약금으로 받아두시오.

내일 배를 찾으려 와서 나머지 잔액을 지불하리다. "

 

이리하여 힘 안 들이고 배 한척을 계약해 놓고나서 노영탄은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여태까지의 경과와 형편을 연자심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고 나서.

둘은 넉넉한 시간을 이용하여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수습하며

이튿날 떠날 준비를 차근차근히 했다.

하룻밤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노영탄은 역시 혼잣몸으로 나룻터로 달려갔다.

정대라는 선주는 이미 오래 전부터 뱃머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차 였는 지라.

노영탄이 나타나는 것을 보자 반색을 하면서 소리쳐 불렀다.

 

"빨리빨리 오시오!

배는 아주 단단하게 수리했습니다.

이만하면 어디를 들이받아도 물이 새지 않을 겁니다. "

 

노영탄은 나머지 뱃값을 마저 치러주고 선뜻 배 위로 뛰어 올라가서 돛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쏜살같이 배를 몰아서 나룻터 끝에 다다라 배를 멈추었다.

얼마 안 있어 연자심이 보따리 하나를 옆에 끼고 총총걸음으로 뱃전으로 다가왔다.

 

" 빨리 타요! 일각이라도 지체치 말고 급히 떠나도록 합시다! "

 

노영탄은 손을 휘둘러가며 연자심을 즉시 배에 올려놓자.

닻을 감고 곧장 항구 밖으로 배를 몰았다.

동녁 하늘에는 아침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다.

연운항 항구 밖. 먼 수평선에는 잔잔한 물결이 황금빛 햇살을 받아 반짝일 뿐.

바람 한 점 없이 거울같이 가라앉은 바다 위에는 노영탄과 연자심

한 쌍의 젊은이를 태운 범선 이외에는 다른 배라곤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둘은 배가 일단 항구 밖으로 나서게 되자.

곧장 응유산을 목표로 방향을 잡고 쏜살같이 배를 몰았다.

한 시간 남짓한 동안에 두 젊은이를 태운 배는 벌써 응유산 바로 옆에 다다라 있었다.

사방을 아무리바라보아도 눈앞에 놓인 한 개 섬 이외에는 주변은

인기척이라곤 들어볼 수 없는 적막 속에 파묻혀 있었고 머리를 뒤로 돌려봐도

단지 연운항이 한 조각의 새카만 그림자가 되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바다 위에는 날이 밝아 산뜻한 아침 햇빛이 온통 깔렸는데도.

응유산 일대에는 왜 그런지 음산하고 무시무시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그 주관 심부름꾼 녀석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는지라.

이 바닷속에 괴물이란 놈이 섬 위에까지 기어 올라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시무시하다는 괴물은 지금 물속에 있을 것인가?

혹은 섬 위에 올라가 있을 것인가?

그것을 알아낼 도리는 없었다.

한편 연자심이 물에 대해서는 경험도 자신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들 두 젊은이들은 각각 몸에 지닌 재간만 믿고 대담무쌍하게도

 배를 섬 가까이 들이대고 우선 섬 위로 올라갈 준비를 갖추어 놓고 보자는 것이었다.

응유산이란 섬은 주위가 불과 몇 십 리밖에 안되는 둥그스름한 덩어리였다.

섬 위에는 온통 빽빽하게 수목이 들어차서 무성해 있었으며.

사방 어느 쪽을 보아도 새운 것같이 험하고 날카로운 바윗돌들로 꽉 차 있었으며.

단지 서쪽으로 가까운 곳에 몇 군데 빈틈이 있어서  그곳을 통해 간신히

언덕 위로 기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을 뿐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보물을 감추어둔 지도 위에 지시대로 섬의 서쪽을 끼고 돌면서.

틈을 발견해 내고 그리로 배를 몰아댔다.

이 틈이란 것은 그 폭이 꼭 배 한 척이 가까스로 드나들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돛대를 마음대로 내두르거나 몸을 함부로 돌려댈 수도 없을 만큼 좁디좁은 공간으로서.

마치 배 한 척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게 일부러 좁게 뚫어놓은 골자기 길 같아 보였다.

언덕 위로는 갖가지 고목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하게 서 있었다.

어떤 것은 가지가 휘고 구부러진 채로 자라나고 뻗어서 수면위로 기다랗게 뻗힌 채로

비스듬히 물 위를 뒤덮고 있었으며 또 그 위에는 온통 등나무 덩굴이 칭칭 감겨서.

좁은 골자기 길을 덮어버려 마치 그물이라도 쳐놓은 것 같았다.

만약에 배를 이 속에다 멈추어 놓는다면 그 골짜기 길 어귀에서 가까스로

바라다볼 수 있을 뿐 다른 방향에서는 도저히 발견해 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배를 언덕 위 큼직한 나무에 매놓고 곧장 섬 위로 기어 올라갔다.

보물을 감추어둔 곳을 표시한 그 지도 위에는 명확한 길이 그려져 있다고 하지만.

이미 20년 이란 긴 세월이 흘러가버린 것이다.

저 개세천왕 연약파가 처음으로 개척했다는 길에는 이미 황초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뒤덮여 있을 뿐이었다.

또 섬이라는 땅덩어리는 오랜 옛날부터 미개한 채로 내려온 고목이 울창한 삼림이고 보니

나무와 나무 사이를 뚫고 간신히 가느다란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 이외에는

일 년 열두 달 가야 햇빛이라고는 구경할 도리가 없었다.

땅 위에는 고목의 부러진 가지와 낙엽 따위가 츰층이 두껍게 쌓여 있을 뿐.

그 틈을 뚫고 고비나 싸리 따위의 식물들이 제멋대로 자라나고 뒤덮이고 했으며.

바윗돌 위에도 이끼가 미끄럽기가 손을 대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대담무쌍하게도 단숨에 언덕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사방에서 일시에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쏴 ....... 후두둑. 퍽퍽. 버석버석. 괴상한 소리가 모조리 한 군데 모여 있기라도 하다는 듯.

차례차례로 혹은 뒤범벅이 되어 잇달아 요란스럽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일 년 열두 달 가야 건드리는 것이 없이 제멋대로 꿈틀거리고 있던

삼림 속의 날짐승들이며 충사 따위들이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일대 소동을

일어킨 것이었다.

그들은 숲속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마치 별안간에 시커멓고 깊숙한 굴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았다.

어두컴컴하고 음산하고 습하고 그러면서도 두 발이 고목 가지와 낙엽을

디딜 때마다 우찍우찍하고 괴상한 소리를 연발 했다.

이런 음산하고 습기가 가득 찬 기운만 하더라도 이미 사람에게는 극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인데 거기다가 또 바다 괴물까지 나타나서 어느 틈에 잠복해 있는지

알 수 없는 판이고 보니

정신은 극도로 긴장하고 만반의 방비 태세를 갖추고 듬벼들지 않을 수 없었다.

노영탄은 물론 자기 자신이 지니고 있는 비범한 재간과 대담한 용기를 밑고

이런 무시무시한 곳엘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어느 정도의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었고 연자심은 더군다나

마음속이 조마조마 가슴이 두근두근 노영탄의 뒤에 바싹 달라붙다시피 하고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천천히 조심조심 앞으로 따라 들어가고 있었다.

노영탄은 한 손에 그서 보검을 힘껏 움켜잡고 등에는 보따리를 짊어지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연자심의 손을 으스러지도록 꼭 쥐고 살금살금 끌면서

지도 속에 지시되어 있는 노선대로 양편의 지형을 더듬으며 길을 찾아서

앞으로 나아갔다.

세 시간 동안이나 길을 더듬어 간 셈이었다.

따져보면 이미 정오 때는 됐음직했을 때 둘은 빠른 걸음으로 산봉우리

맨 꼭대기에서 얼마 멀지 않은 지점에까지 육박해 들어가 있었다.

숲속에 그렇게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도 그제서야 다소 성글어진 듯 했고

그에 따라서 희미한 햇빛이나마 땅 위를 비추어 주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물론 지도 속에 명시된 노선을 따라 차근차근 길을 찾아

올라간다고 하지만 어쨌던 세월이 너무 오래 흘러간 아득한 옛날의 일인지라.

지도에 지적된 지형이란 것은 대부분 변모를 해서 알아볼 수 없었고.

그저 대강 비슷하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그것이 정확한지 어떤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목적하는 지점을 어루더듬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 만에 둘은 큼직한 바윗돌 바로 옆에 다다랐다.

그 바윗돌을 한 바퀴 빙글 돌아 들어가고 있노라니.

흘연 물소리가 콸콸 들려왔다.

사방을 휘둘러 보았다.

과연 오른쪽으로 산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한 줄기 시냇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맑고 깨끗하게 가라앉은 골짜기 시냇물이 졸졸졸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머나! "

 

연자심은 그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자지러질 듯이 놀라운 소리를 질렀다.

 

" 여기 정말 골자기가 있고 물이 흘러 내려가고 있네요! "

 

" 허. 정말이군! "

 

둘은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그 한 줄기 시냇물은 그들이 길을 잘못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도 속에 명백히 지시되어 있는 것과 같이 이 산골짜기를 찾아내기만 하면.

이미 산봉우리 꼭대기까지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똑같이 심오하고 탁월한 무술의 내공을 몸에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닷가에서 산을 향하고 몸을 움직이게 됐을 때.

저 오매천녀가 준 냉향단을 먹었는지라.

전신에 새뜻한 정력이 넘쳐흘러서 털끝만큼도 피로를 몰랐다.

게다가 이제 산봉우리 꼭대기가 눈앞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그들 두 젊은이들은 기쁨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만 했고.

도무지 피곤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산골짜기를 끼고 돌며 그들은 계속해서 위로위로 더듬어 올라갔다.

이때에는 길도 비교적 평탄해진 셈이었고 맨 처음에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처럼

지루하거나 험준하지도 않았고 공기도 매우 맑아진 셈이었다.

한 시간 남짓 더 걸어 올라가자 그렇게 빽빽하던 삼림이 갑자기 딱 잘려져 있었다.

별안간 하늘이 환하게 뜨이더니 넓고 시원하게 트인 곳이 나타났다.

그것은 약 3묘쯤 되는 면적의 땅인데 네모 반듯 했다.

마치 인부들이 계획적으로 깍고 다듬어 놓은 것처럼.

이공지를 사방으로 빽빽하게 둘러싼 삼림은 이 땅덩어리의 높직한 담장처럼 되어 있었다.

 

"됐소.돼어! 이제 제대로 들어섰소! "

 

" 정말! 이 빈터까지 나타났으니 .......... "

 

노영탄과 연자심은 기쁨과 놀라움으로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 공지 위로 서슴치 않고 올라섰다.

이 공지는 바로 당년의 개세천왕 연약파가 몸소 개척한 땅으로

여기까지만 찾으면 얼마 더 올라가지 않은 곳에 주봉의 꼭대기가 나타날 것이오.

그러면 그곳이 바로 보물을 감추어두었다는 지점이 되기 때문이었다.

두 젊은이들은 한없이 기뻤다.

그리고 마음속이 또한 한없이 가벼워졌다.

여기까지 왔으면 한숨을 돌려도 좋았다.

그제서야 등에 짊어진 보따리를 내리면서.

평탄한 땅을 찾아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 자. 이만하면 목적지를 무난히 찾아낸 것이나 다름없으니.

요기나 좀 하고 한숨 돌려 가지고 ........ 누님! 아니 ......... "

 

" 또 ....... 또 ........ 그 누님 소리! "

 

연자심은 보따리 속에서 떡이며 과자며 과일이며 잔뜩 꺼내주는 노영탄의 얼굴을

샐쭉해진 눈초리로 노려보면서 땅에 얌전하게 주저앉았다.

여기까지 만난을 극복하고 오는 도중에 노영탄과 연자심은 뭇수한 추사 따위를

만나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사람을 보기가 무섭게 몸을 피해버렸다.

이런 것들은 두 사람이뚫고 나가는 길에 대단한 장애가 될 리 없었다.

단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방금까지도 그리고 요기를 해가며 잠시 쉬고 있는

순간에도 줄곧 경계를 게을리 해오지 않은 것은 저 바다 괴물 하나뿐이었다.

그 무시무시하다는 바다 괴물이 산 속에 숨었다가 불시에 숲속 어디선지

불쑥 내닫지는 않을까.

그것 한 가지만이 제일 겁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반나절 동안이나 산을 찾아서 험한 길을 걸어왔고 .

바로 눈앞에 목적지가 내다보이다시피 가까운 지점에까지 오도록.

그 괴물은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괴물이란 놈도 낮에는 필시 바닷물 속에 숨어 있겠거니.

둘은 이렇게만 생각해 왔었다.

이미 한나절이 기울어져 가고 있으니.

그 괴물이란 것도 육지로 올라오지는 암ㅎ겠거니 ..........

이렇게 생각하고 여태까지 긴장했던 마음이 차츰차츰 풀어지기 시작했다.

 

" 뭐. 이제야 별일 있겠소? "

 

노영탄은 적이 안심하고 있었다.

 

" 그럼요. 제발 무사해야죠.

그 괴상하다는 놈이 이 산 위에서 덤벼든다면 큰일이에요? "

 

연자심도 이렇게 말하며 둘은 떡과 과자로 요기를 해가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바로 이때 두 사람이 신바람이나서 웃으가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때.

어디선지 갑작스레 괴상하고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벼락을 치는 소리같이  요란스럽게 일어났으며.

그와 동시에 이상야릇한 비린내가 왈칵 코에 끼쳐 들어왔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와도 같고 울부짖는 소리와도 같으며 아우성 소리와도 같은

그 괴상한 소리에 노영탄과 연자심이흘쩍 머리를 돌려 봤을 때.

동쪽 숲속으로부터 언제 어떻게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거대한 괴물 하나가 불쑥 내닫고 있었다.

그 체구가 산더미처럼 거대한 그놈은 성큼성큼 바로 공지를 향해서 걸어 들어오고 있다.

둘이 그 괴물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저 주루의 심부름꾼 녀석이 말하던 모습과 똑같은 것이었다.

 

' 바로 저놈이었구나! 이야기와 조금도 틀림이 없는걸!

  이놈과 마침내 여기서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 '

 

노영탄은 대뜸 한 손으로 연자심의 손을 꽉 움켜잡고 또 한 손으로는 보따리를

재빨리 집어들고 단숨에 서쪽 삼림을 향해 몸을 날려 피해버리고 말았다.

삼림 속으로 몸을 피하자 노영탄은 한 그루 큼직한 고목 밑에 자리잡고 서서.

보따리를 돌려주면서 가쁜 숨소리로 가만가만히 말했다.

 

" 저놈을 어떻게쳐치한다? "

 

마침내 노영탄은 대단한 결심을 했다.

음성을 나지막하게 가라앉히며 연자심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곳에 잠시 머물러 계시오.

절대로 뛰쳐나오시면 안 되오.

듣자니 저 괴물은 입 속에 무시무시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으며.

거기다 또 가죽이나 살이 두껍고 단단하다니 다루기 매우 힘들 것 같소.

내가 먼저 저놈의 신변 가까이 빙빙 돌면서 틈을 노리다가 해치울 터이니.

연소저는 조금도 걱정하실 것 없소! "

 

말을 마치자 노영탄은 연자심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손에 금서 보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몇 걸음을 떼어놓더니 그대로 몸을 허공에 솟구쳐 올랐다.

바다 괴물의 신변 가까이 덤벼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영자심은 노영탄이 이미 몸을 솟구쳐 떠나버린 것을 보자

 내심 근심 걱정을 금치 못하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소리를 질러서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머리만 밖으로 살며시 내밀고 눈앞에 전개되는

사태를 관망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바다 괴물은 산더미같이 거대한 몸뚱어리를 꿈틀꿈틀 흔들면서

숲속으로부터 성큼성큼 기어 나왔다.

무시무시하게 크고 둥근 머리에는 시커멓고 기다란 머리털이 온통 뛰덮였으며.

큼직한 아가리는 마치 대문짝같이 쉴새 없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씨근씨근 기운을 내뿜고 또 공기를 들이마시곤 했다.

산더미 같은 체구가 온통 시커멓고 번쩍번쩍 빛났으며.

마치 미끄러운 액체라도 그 위에 한 겹 바른 것같이 윤기가 번지르르하게 흘렸다.

배 아래쪽에 달린 네 개의 짤막한 다리는 연방 기우뚱기우뚱하면서 앞으로

불쑥불쑥 달려나오고 꽁무니에 달린 기다란 꼬리는 쉴새없이 좌우로 흔들려서

고목들의 가지와 잎사귀를 분분히 땅 위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바다 괴물은 빈 터를 향하고 기어들면서 한편 두 개의 커다란 콧구멍으로

물방울을 푸푸 내뿜고 사납고 무섭게 생긴 두 눈을 번쩍이며 데굴데굴 사방을 살피고.

빙글빙글 돌며 때때로 괴상하고 소름끼치는 음성으로 두서너 번씩 울부짖는 것이었다.

그 무시무시하고 흉악하게 생긴 모습은 한번 보기만 해도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거기다가 또 그 천둥 소리같이 으르렁거리는 부르짖음은 어지간히 대담한 사람이 아니면

한 번만 듣고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 지경이었다.

연자심은 새삼스럽게 숲속을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그러나 노영탄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음이 극도로 초조해지고 불안과 공포와 근심 걱정이 한데 엉클어져서.

바지직 타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한편 노영탄은 그가 지니고 있는 경신법을 최고도로 발휘해 일체의 소리도 내지않고

몸을 날려바다 괴물 등들미에 있는 숲속으로 바람처럼 새어 들어갔다.

큼직한 고목 뒤에 몸을 숨기고 쥐도 새도 모르게 동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바다 괴물은 마침내 숲속에서 엉금어금 기어 나오더니

빈 터 중턱에까지 왔다.

머리를 쳐들어서 높은 하늘을 한번 슬쩍 휘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네 다리를 약간 구부리더니 땅 위에 엎드려서 두 눈을 꾹 감고 씨근씨근.

잠시동안 몸을 쉬는 모양이었다.

이때 노영탄과 이 바다 괴물과의 거리는 불과 10여 장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놈의 정체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노영탄은 숨소리도 죽이고 그 괴물의 모습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바다 괴물은 체구가 거대할 뿐만 아니라.

그 몸에는 온통 시커멓고 큼직큼직한비늘들이 뒤덮여 있었다.

칼이나 창이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꽤 오랫동안 아무리 노려보아도 약하거나 부드럽다거나 할 만한 틈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 흠. 한번 찌르거나 쳐서 단번에 급소를 맞히지 못하고 도리어 이놈을 놀라게 만들었다가는

이놈이 외부에서 침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테고 그러면 더욱 어렵겠다는 걸! '

 

이렇게 생각한 노영탄은 몸을 숨긴 채로 오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기회만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괴물의 몸에서 어느 한 군데라도 비늘이 뒤덮여 있지 않고 아무런 보호가 없다고 판단되는

틈을 포착한 뒤에 일격에 급소를 찌르자는 생각이었다.

반 시간도 못 되어서 바다 괴물은 별안간 그 크고 무서운 아가리를 딱 벌렸다.

콧구멍 속으로부터 두 줄기 물줄기를 힘차게 내뿜었다.

그리고는 거대한 체구를 한번 꿈틀하고 흔들더니.

기다란 꼬리를 수선스럽게 흔들렸다.

그리고 나서는 벌떡 그 산더미 같은 몸뚱어리를 흘쩍 뒤집더니.

이리뒹굴 저리뒹굴 버둥질을 치고나서 네 다리를 하늘을 향하고 벌떡 자빠지더니

배를 반듯이 드러냈다.

 

'옳지. 이놈! 그러면 그렇지! '

 

노영탄은 터질 것만 같은 기쁨을 억지로 누르면서 여전히 노려봤다.

알고보니 그 바다 괴물의 배에도온통 시커먼 비늘이 뒤덮여 있기는 했지만

꼭 한 군데 목 바로 밑 두 다리와의 사이에 사발만큼이나 커다랗고 시뻘겋게 얼룩진 점이 있었다.

그 바다 괴물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마다 이 얼룩진 붉은 점은 불쑥불쑥 부풀어

올랐다가는 쑥 들어가고 또다시 부풀어 오르곤 했다.

노영탄은 여전히 숨소리를 죽이고 그 얼룩진 붉은 점을 노려봤다.

이 괴물의 전신에서 유일하게 이 한 군데만이 가장 부드러운 지점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붉은 점은 괴물의 등이 반듯이 위로 있을 때는 목들미에 파묻혀

가려져버리고 단지 이놈이 얼굴을 쳐들고 하늘을 바라다볼 때.

즉 목을 높이 쳐들 때에만 비로소 나타나 보이는 것이었다.

 

' 저 얼룩진 붉은 점이 바로 이놈의 급소일까?

이 점을 빼놓고는 이놈의 전신은 쇳덩어리같이 단단하니 ........

역시 이 붉은 점밖에 더 부드럽다거나 비늘을 뒤집어쓰지 않은 곳은 없을 게다! '

 

노영탄은 그렇게 판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확정적인 것은 못 된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이 바다 괴물의 얼룩진 붉은 점을 공격하는 것이

비교적 힘이들지 않으리라는 자신을 얻게 되었다.

그 바다 괴물은 이제야말로 그 얼룩진 붉은 점을 똑바로 드러내고 발딱 땅 위에 젖혀져 있으니

이것이 천재일후의 기회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 일발의 틈을 놓쳐서는 ........ '

 

노영탄은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오른 손에 잡고 있는 보검 금서에 온갖 공력을 집중해서 비호같이

몸을 날려 쳐들어가 보려고 몸을 들먹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아슬아슬한 찰나에 돌연.

그 바다 괴물은 갑자기 무서운 음성으로 부르짖고 으르렁거리더니.

몸을 다시 흘쩍 뒤집어버렸다

네 발로 땅을 디디고 다시 서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그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머리를 이리저리 휘두러면서

연방 주봉을 향하고 무엇인지 부르짖고 으르렁거리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 기다란 꼬리도 마구 휘둘러지면서 펄떡펄떡 소리를 냈다.

 

'이런! 이놈이 어지간히 사람을 놀리려 드는데! '

 

노영탄은 몸을 훌쩍 날리려는 바로 그 찰나에 이런 꼴을 당하고 보니

어찌할 도리가 없이 몸을 멈추어버렸다.

 

' 그런데 이놈이 왜 이 따위 괴상한 짓을 할까? '

 

노영탄은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어서 바다 괴물이 바라다보는 주봉쪽으로 시선을 옮겨보았다.

그 바다 괴물이 몸을 뒤집어 한바탕 울부짖고 으르렁거리더니

비린내 나는 사나운 바람이 한바탕 일어서 숲속을 온통 휩쓸었다.

그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주봉 저편 숲속을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서는 나뭇잎과 풀들이 바람에 후들후들 떨면서 또 다른 괴상한 소리와 함께.

풀덤불 속으로부터 물통만큼이나 굵다란 구렁이가 무지막지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거대한 구렁이는 전신이 흑백 두 빛으로 얼룩덜룩 무늬가 져 이었으며.

몸뚱어리를 절반만 풀밖으로드러내고 나머지 절반은 아직도 풀 속에 감추고 있었는데.

발 하나만도 10여 장이나 됨직하게 무시무시하고.

한 쌍의 눈알은 등룡만큼이나 컸으며.

붉은 빛이 번쩍번쩍 하는 무서운 두 눈을 부릅뜨고 바다 괴물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평평하면서도 둥그스름한 구렁이의 머리 아래로는 또한 문짝만큼이나 커다란

아가리가 딱 벌어져 있었다.

구렁이는 바다 괴물을 향해 성큼성큼 기어가면서 입으로는 쉭쉭 하는 괴상한 숨소리를 내고

그와 동시에두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이 1장 길이나 되게 입 밖으로 넘실거리고

들락날락하면서 말리고 휘감기곤 했다.

노영탄은 깜짝 놀라기는 했으나 한편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흠. 이 섬 속에는 이 따위 괴상하고 무시무시한 구렁이도 있었구나!

어디 네놈들 끼리 한바탕 격투를 해봐라! 어떤놈이 이기나 구경좀 하자! '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는 장면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바다 괴물과 거대한 구렁이 두 놈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품이

일대 결투가 벌어질 것이 뻔한 노릇이고 보니.

그렇게 되면 최소한 어떤 놈 하나는 꺼꾸러지고 말 것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두 놈이 함께 부상을 입고 나자빠질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만 된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노영탄의 힘을 여간 덜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노영탄은 눈앞이 환해진 것 같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놈들의 싸움이 끝장이 날 때까지.

 들키지 말고 구경을 해봐야겠다! '

 

이렇게 마음을 든든히 먹고 노영탄은 급히 몸을 돌려 땅에 배를 착 깔고 살금살금 기어서

연자심의 신변 가까이 되돌아왔다.

연자심은 그때까지도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서서 초조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퍼뜩! 노영탄의 돌아오는 그림자를 발견하자.

연자심은 그제서야 다소 마음을 놓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쉬! "

 

" 쉬! "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가벼운 암호를 서로 주고받았다.

여전히 숨을 죽이고 나무 뒤에 찰싹 달라붙어서 두 괴물들이 서로 싸우는 꼴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바다 괴물은 본래 빈 터에 누워서 눈을 꾹감고 햇볕을 쬐고 있었다.

편안하고 기분 좋게 제멋대로 뒹굴며 한동안 태양 아래서 즐겨볼 생각을 하고 있던

이괴물은 ㅎ홀연 강렬하게 코를 찌르는 괴상한 비린내를 맡은 것이었다.

 

' 밖에서 어떤 놈이 침범해 왔구나! '

 

이런 것을 느끼는 순간 바다 괴물은 한번 우렁차고 무시무시하게 울부짖어보고.

몸을 벌떡 뒤집어 비린내가 나는 쪽을 향해 힘을 모아  한번 맞닥뜨릴 준비와

태세를 갖춘 것이다.

한편 우악스럽게 생긴 구렁이는 본시 주봉 꼭대기에 몸을 칭칭 휘감고 앉아서

평소에는 좀처럼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이몇 달 동안에는 바다 괴물이 출현하게 되어 섬 위의 생물들을

어지간히 잡아먹었다.

생물이 점점 그 수효가 줄어든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참에.

웬일인지 요 며칠 동안은 잡아먹을 것도 찾을 겸 어슬렁어슬렁 주봉아래

숲 속으로 기어 나와 본 것이다.

바다 괴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자.

구렁이는 당황하기도 했고 한편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풀 속을 빙빙 돌다 못해서 풀 밖으로 불쑥 나와본 것이다.

두 놈의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치는 순간 제각기 으르렁거렸다.

 

"어흐흐흐흥! "

 

"쉬이이이익! "

 

그러면서도 양쪽이 다 같이 감히 경솔하게 먼저 덤벼들지는 못했다.

서로 사이를 두고 노려만 보는 시간이 꾀 오래 지속되었다.

 

" 어흐흐흐흥! "

 

한참 만에 그 바다 괴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

또 한번 괴상한 소리를 질러댔다.

네 발로 땅을 힘차게 구르더니.

덥석 구렁이에게 덤벼들었다.

그 무서운 아가리를 딱 벌리고 구렁이를 한 입에 깨물어버릴 작정을 했다.

그러나 구렁이도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벌써 힘을 모아 가지고 대기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상반신을 풀덤불 속에서 발딱 일어켜 세웠다.

그리고는 독살스러운 두 눈으로 바다 괴물을 노려보았다.

상반신을 여전히 꼿꼿이 버티고 있을 뿐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이 숨막히는 찰나 구렁이는 아주 가볍게 그리고 아주 노련하게

힘 안 들이고 슬쩍 몸을 옆으로 꿈틀하더니

그대로 바다 괴물의 공세를 번개처럼 날쌔게 피해버리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구렁이는 꼬리를 신바람나게 흔들었다.

홱 바람이 일듯이 그 긴 꼬리를 한번 쓸어버렸다.

바다 괴물은 한 입에 구렁이를 깨물어버리려다가 .

그 초점이 어긋나고 도리어 구렁이의 꼬리가휩쓸고 덤벼드는 것을 보자.

앞으로 빨리 뚫고 들어갈 겨를이 없는지라.

그 찰나에 목을 찔끔하고 움츠러뜨렸다.

등을 불쑥 일어켜 세우고 그 두껍고 단단한 껍질로 구렁이의 날카롭고 매서운

꼬리를 막아낼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구렁이는 긴 꼬리를 둘러서 바다 괴물이 모믈 움찔하고 움츠러뜨리는 바람에

정통으로 쓸어버리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

그 꼬리릐 제일 뽀쪽한 끝은 역시 바다 괴물의 등을 정확하게 후려갈겼다.

찰싹 !

꼬리에서 일어나는 소름 끼치는 매서운 소리에 바다 괴물은

몸집을 한번 꿈틀하고 진저리를 치듯 떨기는 했으나.

그 태도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태연자약했다.

그러나 바다 괴물은 구렁이에게 한번 얻어맞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것이 분한 모양이었다.

노기가 충천하는 듯 콧구멍으로부터 물방울을 요란스럽게 급히 내뿜어며.

그 무서운 아가리를 딱 벌렸다.

 

" 어흐흐흐흥! "

 

천지가 진동하도록 소리를 질렸다.

구렁이의 목들미를 노려보면서 펄쩍 땅 위에서 몸을 솟구치더니 벌컥 덮치고 대들었다.

구렁이는 한번 꼬리로 쓸어보기는 했으나 바다 괴물이 여전히 끄떡없는 것을 보자.

이놈이 호락호락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바다 괴물이 펄쩍 뛰면서 덤벼드는 것을 보자.

구렁이는 날쌔게 목을 움츠러뜨리고 땅에다  찰싹 붙어서 살짝옆으로 몸을 꽈버리더니

전광석화와 같이 바다 괴물의 공세를 피해버렸다.

바다 괴물은 본시 너무나 거대한 몸집인지라 움직이는 품이 빠르지 못했다.

바다 괴물은 그 힘이 무지무지하게 억세고 몸을 쓰는 품도 상당히 빠른 편이기는 하지만.

연거푸 두 번이나 덮치고 달려든 것이 두 번 다 적중하지 못하고.

도리어 구렁이의 꼬리가 놀리기나 한다는 듯이 쓸고 지나갔으니.

약이 오르고 조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어흐흐흐흥! "

 

괴성을 연발했다.

꽁무니에 달린 기다란 꼬리도 이리 뒤치락 저리 뒤치락 꿈틀거리며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후려갈기겠다는 듯 마구 휘둘러졌다.

그러나 구렁이는 엉큼스럽고 대담했다.

바다 괴물의 습격을 재빠르게 피해서 한 옆으로 몸을 피하는 체하더니.

그 짧은 순간에 날쌔게도 힘을 모아 가지고 바다 괴물의 몸뚱어리에 슬쩍

달라붙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기다란 꼬리가 빙글 하고 돌아가는 찰나에.

마침내 바다 괴물의 전신을 통째로 휘감아버렸다.

이렇게 바다 괴물의 전신을칭칭 감아버린 구렁이는 전신의 힘을 써서

바싹 죄여 들어가면서 한편으로는 머리를 쳐들고 아가리를 크게벌려서

바다 괴물의 목들미를 꽉 물려고 했다.

한번 물기만하면 그것으로 상대방이 무엇이든 간에 치명상을 줄 수 있고.

거기 따라서 승리는 제편에 있으리라는 자신을 가졌다.

그러나 괴상한 일이었다.

결과는 전혀 반대로 나타났다.

보통 동물이라면 그 거대한 구렁이가 한번만 달라붙어서 칭칭 감고 힘을 써서

죄여 들어가기 시작하면 당장에 질식하여 죽어버리고 마는 것인데.

바다 괴물의 경우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 괴물은 일종의 이물로서 비단 전신에 깔린 비늘이나 껍질이 강철같이 단단할 뿐만 아니라.

그 호흡 기관도 보통 생물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본래 이 바다 괴물의 이름은 ' 원영(원영)' 이라고 했다.

일종의 상고시대의 파충류로서 그가 살아나온 시기는 아마 용보다도 오래일 것이다.

맨 처음에는 다른 동물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또 지각 변동이 생기고 기후가 돌변한

까닭으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마치 고래와 같이 육지로부터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생활하게 된 것이다.

본래가 육지에서 태어난 몸인지라 물론 폐를 가지고 호흡을 하지만.

물 속에 오래 있게 되면 호흡기관도 점점 변화가 생겨서 능히 물 속에서도.

그대로 호흡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원영이란 괴물은 보통 아가리를 다물고 숨을 들이쉬면 반시간 동안은

숨을 쉬지 않더라도 끄떡도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구렁이가 전신을 칭칭 휘감아도 아랑곳없다는 듯이 도리어 제편에

유리하다는 기색을 보이고 천연스럽게 있을 뿐이었다.

구렁이가  끝까지 이 바다 괴물과 어떤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바다 괴물 원영도 구렁이에게 접근할 도리가 없게 되고 양쪽이 똑같이

피해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구렁이가 원영이라는 바다 괴물의 몸뚱어리에 칭칭 감겨버리면서부터

대세는 큰 변동을 가져왔고 그것은 도리어 구렁이에게 불리하게 되고 말았다.

바다 괴물 원영은 몸이 한번 구렁이에게 휘감기자 다소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강철같이 단단한 껍질과 비늘이 버티고 있으니 그다지 아플 것은 없었다.

머리를 슬쩍 돌려서 살펴보았다.

구렁이란 놈이 핏덩어리같이 시뻘겋고 커다란 아가리를 딱 벌리고 목들미를 물려고

듬비려는 판이었다.

 

" 어흐흐흐흥! "

 

바다 괴물 원영은 또 한번 괴상한 음성으로 울부짖었다.

그러나 몸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옴짝 달싹도 하지 않았으며

머리만 아래로 움츠려뜨려서불거스름한 무늬의 반점만을 사수하면서

마침내 아가리를 딱 벌렸다.

구렁이의 머리를 겨누고 덥석 깨물려고 덤비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뱃속에서는 꾸르르륵 하는 소리가 일었다.

구렁이의 머리를 통째로 들이마서버리자는 빼짱이었다.

구렁이는 원영의 거대한 머리가 한번 접근해 들어가자.

흘연 이상하게 무시무시한 흡입력을 느꼈다.

 

'이키! 이게 무슨 힘이냐? '

 

구렁이는 움찔하고 머리를 움츠려뜨리고 원영을 새삼스럽게 자세히 살펴보았다.

문짝 만큼이나 커다란 머리가 딱 벌어지면서 당장에 집어삼킬 듯이 덤벼들고 있지 않은가!

구렁이는 꾀가 있고 눈치가 빨랐다.

퍼뜩 정세가 제편에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모가지까지 움츠려뜨리고 전신에 힘을 다하여

처음보다도 더욱 야무지고 매섭게 원영의 전신을 죄어 들어갔다.

원영은 그 구렁이를 덥석 한 입에 물어버리려는 판에 구렁이가 살짝 몸을 빼는 체 하더니.

도리어 칭칭 감겨서 죄어 들어오는지라.

몸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약이 올라서 견딜 수 없었다.

또 한번 괴상한 음성으로 울부짖고 몸을 옆으로 꿈틀하고 뒤집어서 칭칭 감긴 구렁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보려고 했다.

한편 구렁이는 바다 괴물 원영을 칭칭 감아버리기는 했으나 그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원영이 꿈틀하고 몸을 굴리게 되자 이놈도 발끈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두 갈래로 갈라진 핏줄기같이 새빨갛고 기다란 혓바닥이 쉴새없이 이 밖으로 넘실넘실거리며.

입 속에서는 쉭! 쉭! 하고 매서운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마리의 거대한 괴물들은 하나는 씨근씨근 또 하나는 흘레벌떡.

울부짖고 으르렁거리고 씨근거리면서 엎치락뒤치락 나뒹굴고 몸부림을 치며 야단법석이었다.

어떤 놈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결사적인 결투가 벌어진 것이다.

빈 터가 문질러지고 쓸리고 근처에 있는 나무며 풀이 모조리 잘리고 꺽이고.

땅바닥 위의 모래까지 휘말려서 천지가 뒤집혀 엎어질 지경이엇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서서.

두 괴물이 격투를 전개하는 광경을 노려보고 있다가.

그 무시무시하고 험악한 싸움이 도리어 흥미진진해서 정신을 잃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연자심은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사람같이 새정신이 드는 것처럼.

속삭이는 듯 가만가만히 노영탄에게 이렇게 말했다.

 

" 우리들이 이렇게 두 괴물의 싸우는 꼴만 구경하느라고 정신을 팔고 있으면 아떻게 해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 얼마 안 있으면 해가 떨어지겠는데.

이틈을 타서 우리는 산봉우리 꼭대기로 올라가야지 않겠어요? "

 

노영탄은 그래도 그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빈 터만 노려보고 있었다.

두 마리의 거창한 괴물들이 결사적으로 물고 뜯고 하는 싸움은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았고

점점 더 맹렬히 공지의 땅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 흐음! 그놈들. 아주 근사하게 싸우는데. "

 

노영탄은 흥미진진한 구경을 버리기 아깝다는 듯 그제서야 이렇게 입을 열었다.

 

" 우리는 이놈들이 싸우고 있는 틈을 타서 산봉우리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되지만.

그 보다도 중요한 일은 두 놈들이 격투끝에 결국 어떤 놈이이기게 될지

그것을 감시하고 있다가 살아남는 놈을 깨끗이 처치해 버려야만 나중에 후환이 없을 것이오. "

 

이렇게 말하더니 여전히 공지 위에서 발버둥치는 두 괴물들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이었다.

 

" 저놈들의 싸우는 꼬락서니가 한 시간이나 반 시간 동안에 끝장이 날 것 같지 않소.

그러면우리는 먼저 산봉우리 꼭대기로 올라가서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아놓고

다시 내려와서 어떤 놈이고 간에 처치해 버리도록 합시다.

내 생각 같아서는 그때까지도 저놈들은 승부가 나지 않을 것만 같소! "

 

둘은 말을 마치자 경신법을 부려 손과 발을 살짝살짝 바람처럼 움직여서.

살며시 나무 뒤를 빠져나와 산봉우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불과 반 시간 밖에 안 되었을 때  노영탄과 연자심은 삼림 속에서 빠져나와서.

응유산 꼭대기에 올라서게 되었다.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어느 쪽을 바라보아도 무변대하게 널버려진 하늘과 거기 잇닿은 벽파(劈波)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발아래를 굽어보면 울창한 삼림이 휘감겨 있을 따름이었다.

땅을 디디고 서 있는 산봉우리 꼭대기 위는 불과 2.3묘의 면적밖에 안 되는 평지이며.

이곳이야말로 보물을 감추어두었다는 지도가 명시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산봉우리 맨 꼭대기에 올라서자마자.

단번에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했다.

괴상하리만큼 하늘로만 높이 뻗어 올라간 이 고목은 단지 혼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산봉우리 꼭대기를 지키고 있었다.

가지나 잎사귀가 성기면서도 잔뜩 하늘을 가리고 있으며 울퉁불퉁한 몸집이

열 사람이나 손을 합쳐도 껴안을 수 없을 만큼 굵어고 키도 백여 장이나 돼 보였다.

그 한 그루의 고목을 바라보고 있던 노영탄과 연자심은 퍼뜩 한가지 의심스러운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물을 감추어두었다는 지도가 표시하고 있는 대로 그 정확한 지점을 찾자면.

그것은 응당 바로 이 고목 뿌리 밑에 들어 있어야 만 된다.

 

'그런데. 이 거대한 고목을 어떻게 뽑아서 옮겨놓고 그것을 파낼 수 있단 말인가? '

 

대뜸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점이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그 고목의 주변을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이 얼마 안 되는 면적의 평평한 지면 위에는 아무것도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한 거루의 고목을 제외한다면 목표를 삼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나무 옆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못이 한 군데 바라다 보일 뿐이었다.

그 못의 둥그스럼한 언저리는 겨우 4. 5장밖에 더 되어 보이지 않았다.

못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담뿍 괴어 있었다.

그리고 쉴새없이 그 밑바닥으로부터 꾸루루 꾸루루 소리를 내면서 물방울이 수면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좀더 자세히 그 못 속을 들여다보니.

그 못은 깊이가 불과 서너댓 자밖에 되어 보이고 밑바닥 한가운데도 사발만큼이나

커다랗고깊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수면으로 올라오르는

물방울은 바로 이 구멍에서 쉴새없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그제서야 이 못이 한 줄기 샘물의 근원을 이루고 있으며.

가득 차 있는 물이 넘쳐흘러서 산골짜기까지 흘러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사방을 휘둘러보며 샅샅이 살펴보아도 이 평평한 면적에는

그 이외의 특수한 지점을 찾아낼 도리가 없었다.

지도위에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보물이 이 근방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거의 결정적인 사실이었다.

노영탄은 한참 동안이나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더니.

흘쩍 그 큰고목 밑으로 가서 나무 밑둥을 한 바퀴 돌면서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나무 뒤까지 완전히 돌아간 노영탄은 별안간 소리를 질렸다.

 

" 이것 봐요! 여기이런 것이 있소! "

 

어떤 표적을 발견했던 것이다.

 

" 빨리 이리 좀 와서 봐요! "

 

노영탄은 손을 흔들며 연자심을 불렀다.

그 고목 밑둥에는 한 쌍의 제비가 물을 차고 나는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은 연대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끼가 두껍게 끼여서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도저히 찾아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런 도형을 발견해낸 노영탄과 연자심은 보물이 바로 이 고목 뿌리 밑에

파묻혀 있으리라는 확실한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파내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는 아무런 묘안도 떠오르지 않았다.

 

' 흠.그렇다면 ......... '

 

번개처럼 어떤 영감이 노영탄의 머릿속을 스쳤다.

 

' 이 나무에는 어딘지 또 다른 문자가 새겨져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

 

노영탄은 서슴치 않고 금서 보검을 손에 잡고 그 제비가나는 도형이 그려져 있는

나무 밑둥 근처에 뒤덮여 있는 이끼를 살금살금 헤쳐 보았다.

얼마 안 되어서 고목 밑둥에는 이끼가 깨끗이 벗겨진 빤빤한 면적이 더러나기는 했으나.

무슨 문자의 흔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제비가 나는 그 도형의 언저리에 톱으로 썰어서다시 맞추어 놓은 것 같은

이빨 자국이 드러났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그 톱날의 이빨 자국을 따라가면서 나무껍질을 그대로 벗겨보았다.

과연 거기에 톱니로 뾰족뾰족하게 이루어진 테두리선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것은 길이가 대여섯 자 폭이 서너댓 자쯤 되는 장방형의 테두리였다.

노영탄은 보검 끝으로 한번 쿡 찔러보았다.

마침내 거기서는 퉁퉁하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

그 나무 밑둥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 톱날이 선을 치고 있는 장방형의 선이 바로 이텅 빈 나무 밑둥 속의 문짝일 것이고.

보물이 바로 이 나무 속에 들어 있다는 단정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보검 끝으로 그 자국 틈을 찌르고 좌우 양평으로 흔들어 보았다.

한참 동안 흔들어 보니 어느 정도의 동요가 없는 것은 아니였으나.

여전히 그것을 열어젖힐 도리는 없었다.

노영탄은 한참 동안이나 또 곰곰 살펴보았다.

점점 이 고목 밑등에 만들어서 닫아놓은 문짝이 어떻게 되어 있다는 것을 추척할 수 있었다.

마치 상자 뚜껑 같은 장방형의 문짝은 톱니 같은 것이 그 테두리가 되어 나무에 꼭 끼어 있으니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거의 녹이 슬었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노영탄은 금서을 다시 톱니바퀴 같은 틈으로 깊숙히 찔러 가지고 내공의 힘을 써서

힘껏 내리쳐보았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그제서야 나무 밑둥에있는 문짝은 덜컹 밖으로 나자빠지고 마는 것이었다.

둘은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대문짝만한 그 뚜껑이 열어젖혀진 나무 밑둥 속은 또한 큼직한 한 칸의 방이었다.

비록 그 속이 어두컴컴하고 광선이 새어 들어갈 틈이 없어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이 괴상한 방을 거대한 고목의 밑둥을 깍아내고 그 속에다 만들어 놓았다는 것만은 당장에

알 수 있었다.

노영탄은 한동안 다소 망설이는 것 같더니.

선뜻 금서 보검을 높이쳐들고 그 방안으로 불쑥 뛰어 들어갔다.

연자심도 곧 뒤를 쫓아서 들어갔다.

방안으로 들어서서 자세히 살펴보니.

이 나무 밑둥 속의 방은 아주 정밀하게 이루어졌으며

방안의 시설도 의자며 상이며 골고루 배열되어 있었고.

또 방 전체에 습기같은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 밑둥을 파서 만들어진 방은 그 주위가 약 두 길이나 되는 둥그스름한 것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부서버린 문짝 외에도 사면 벽에는 또 세 개의 들창까지 뚫려져 있었다.

그 들창의 하나하나가 모두 방안에서 열고 닫고 하게 마련됐는데.

아마 다년간 열어본 일이 없는 탓인지 들창 틈마다 먼지가 수북수북 쌓여 있었다.

나무 밑둥 속에 이런 방이 있다는 것은 실로 기적에 속하는 일일뿐더러.

안으로 들어서서 머리를 돌려 자세히 살펴보니.

출입구인 문짝 옆으로는 위로 올라가게돼 있는 조그마한 층층다리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 흠. 구조가 묘하게 돼 있는데! 이런 데다가 층층다리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 "

 

노영탄은기뻐서 혼자 중얼거리며 선뜻 그 층층다리 위로 올라섰다.

과연 그 위에도 방이 한 칸 더 있지 않은가!

오밀조밀하고 깔끔하게 다듬고 꾸미고 한 품이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모든 설비가

아래층 방과 흡사했다.

노영탄이 호기심과 흥분에 가득 찬 미소를 띠고 막 연자심을 불러 올리려고 했을 때.

어느 틈엔지 연자심은 벌써 노영탄의 등들미에서 그와 똑같이 방그레 웃고 있었다.

 

" 이것 좀 보시오! 이 방은 아래층 방보다도 훨씬 아기자기하고 단아하게 꾸며졌는걸! "

 

연자심도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경이에 가까운 심정으로

그 맑은 두 눈이 둥그레지면서 방안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이 방안에는 양탄자까지 깔려 있었으며 벽에는 역시 삼면으로 들창이 뚫여져 있었다.

서쪽으로 면한 벽 아래로는 장식을 화려하게 한 큼직하고 시원스런 침상이 하나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는 갖가지 비단 이불과 요까지 얹혀 있었다.

방바닥에는 여기저기 간단한 의자 식탁 책상 같은 도구들이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고

놓여져 있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한편에 있는 조그마한 책상 위에 올려놓은

색채와 무늬가 찬란한 비단 상자였다.

그리고 또 침상이 놓여 있는 벽 모퉁이에는 높이가 석 자나 돼 보이는 큼직한 상자가

한 개 있었는데 그것은 무지막지하게 굵다란 쇠줄로 칭칭 감아서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놓았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먼저 조그마한 비단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는 융과 비단이 겹겹이깔려 있었으며.

맨 가운데 한 개의 큼직한 열쇠가 잠을 자는 듯 조용히 놓여져 있었다.

연자심이 대뜸 그 열쇠를 손으로 잡아들며 노영탄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게. 아마 보물이 들어 있는 상자의 열쇠겠지요.

저 쇠상자가 바로 보물이 들어 있는 상자고요 ......... "

 

노영탄의 표정은 묘해졌다.

감개무량하달지.

극도의 흥분이랄지.

목적을 달성한 통쾌함이랄지.

그 모든 감정이 한데 얽히고 설킨 것 같은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 허. 이건 기적만 같소! 이십여 년이란 기니긴 세월이 흘러간 오늘날.

당신 아버님께서 이렇게 물샐틈도 없이 단단히 간직해 두신 보물들이

고스란히 당신의 수중에 들어올 수 있게 됐으니.

지하에 계신 아버님께선들 오죽이나 만족해 하시겠소! "

 

두 젊은이들은 희색이 만면했다.

그 큼직한 쇠상자 앞으로 걸어가서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집아넣고 비틀어보았다.

약간 손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뻐면서도 긴장된 네 개의 눈동자들이 자물쇠만 노려보고 있었다.

덜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는 마침내 열ㄹ리고야 말았다.

쇠상자 뚜껑을 열어젖혔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찬란한 보광(寶光)이 두 젊은이들의 얼굴을 활짝 비추어주며.

머리가 돌 지경으로 눈앞을 어지럽게 했다.

고개를 수그려 쇠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거기 넘칠 듯이 꽉 차 있는 것은 모조리 진기하기 이를 데 없는 보물들 뿐이었다.

세밀한 기교를 부려서 깍고 다듬고 한 몇 개의 금원보(金元寶)를 제외하고도

그 밖의 것들은 대부분이 진주 마노 비취 호박 또 갖가지의 보석들

오팔 금강석 같은 것들이 무수하게 들어 있었으며.

몇 개의 야광주도 섞여서 모든 보석들이 마치 큼직한 용의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것같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찬란해 보였다.

 

"흠. 대단한 보물들이군! "

 

" 어쩌면 세상에 이렇게 많은 보석들이? "

 

노영탄과 연자심은 비록 의협과 정의에 살고 죽는 비범한 젊은이들로써.

인간의 부귀니 영화니 재물이니 하는 것을 먼지만큼도 대수롭게여기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역시 인간인지라 눈앞에 이렇게 진기한 보물들을무수하게 놓고 보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은 점점 컴컴해졌다.

난데없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처참하고 소름 끼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노영탄의 눈동자가 번쩍 하고 이상한 광채를 발산했다.

처참하게 울부짖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노영탄은 정신이 번쩍 든 것이었다.

 

" 아차! 너무 정신을 잃고 있었소.

단지 이편 일만 생각하느라고 자칫했으면 저두 괴물들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릴 뻔 했소!

내 빨리 뛰어가볼 터이니 당신은 이곳에 남아서 얼른 보물들을 수습해 주시오! "

 

그 말을 듣더니 연자심이 얼른 대답했다.

 

" 위험해요! 조심하세요! 필요하시다면 제가 함께 가드려도 좋구요. "

 

노영탄은 빙그레 웃었다.

 

" 그럴 것까지는 없소! 안심하시오! 내. 잘 알아 힘 자라는 데까지재주껏 해보리다! "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노영탄은 금서 보검을 단단히 손에 잡고 층층대를 내려서서.

나무 밑둥 방을 뛰쳐나와 단숨에 산봉우리 아래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노영탄은 다시 숲속 빈 터로 되돌아갔다.

 

 

멀찌감치 뒤떨어진 곳으로부터 천지가 무너질 듯이.

무시무시하게 씨근벌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형언키 어려운 고약하고 메스꺼운 비린내가 왈칵 코에 끼쳤다.

노영탄은 처음에 몸을 숨기고 서 있었던 나무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빈 터를 바라보다가 그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영탄이 자리를 떠나서 그 두 괴물들이 싸우는 광경을 보지 못한지

겨우 한 시간 밖에 더 되지 않았는데 그 동안에 두 괴물들의 결사적인 결투의

정세는 놀라운 변화를 가저온 것이었다.

그 무시무시하게 굵다랗고 기다란 구렁이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이루 헤아릴 수 없도록 많은 곳이 이미 바다 괴물 원영의 날카롭고

사나운 이빨에 물어뜯겨 흐물흐물 녹아버린 것처럼 되었고.

한 군데는 얼마나 지독하게 물렸던지 가죽만이 가까스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거의 두 동강으로 잘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구렁이는 여전히 그 매섭게 생긴 머리를 휘두러며 씨근씨근 핏빛같이

새빨개진 독살스런 두 눈을 끔찍하게 딱 부럽뜨고 원영의 목을 칭칭 감은 채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떨어지려 들지 않는 것이었다.

바다 괴물 원영의 몸뚱어리도 역시 구렁이와 똑같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리고 등이며 배며 그 단단한 비늘도 적지않게 부스러지고 떨어져버렸다.

구렁이의 몸이 아직도 전신에 칭칭 감겼을 뿐만 아니라.

목까지 감겨버리고 말았으니.

그 아픔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세상에 이처럼 발칙하고 괴씸하게 저에게 도전하고

덤비는 놈이 이 숲속에 있을 수 있느냐는 불덩어리 같은 분노 때문에.

그 무서운 아가리를 딱 벌려서 좌우로쉴새없이 휘저어며.

구렁이의 머리가 입에 물리기만 하면 그냥 통째로 한 입에 깨물어

으스러뜨려버리겠다는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노영탄은 이 두 괴물의 결사적인 결투가 그 기세나 힘이 이미 처음 들러붙었을 때와는

딴판으로 멀지않아 둘 다 기진맥진하여 나둥그라져버릴 것만 같은 정세를 보자.

남몰래 기쁨을 금치 못했다.

 

' 이놈들! 꼬락서니 잘돼 간다! 어서어서 끝장들을 내거라! '

 

이렇게 입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며 여전히 노려보고 있노라니.

별안간 날카로운 휘바람 소리같기도 하고 소름 끼치는 쇳소리 같기도 한 괴성이 귓전을 찔렀다.

 

" 쉭 쉭! "

 

바다 괴물 원영은 더디어 구렁이의 목을 정통으로 물어버린 것이다.

 

" 우지직! "

 

금찍한 소리가 터져 나오는 찰나.

구렁이의 물통만큼이나 굵다란 몸집이 원영의 날카로운 이빨에 깨물려서 두 동강이 나고 만 것이다.

구렁이의 머리는 마침내 땅에 딩굴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씨근씨근 혓바닥을 내밀었으며 새빨간 두 눈에서는

쉴새없이 핏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구렁이의 몸뚱어리는 비록 머리가 없어졌을 망정 여전히 원영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머리가 떨어지고 몸이 두 동강이 나 가지고도 악착스럽게 원영을 놓아주지 않겠다는

구렁이의 발악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러나 머리가 없어진 구렁이의 몸은 바다 괴물의 몸에 칭칭 감긴 채

그다지 쉽게 풀려 나갈 것 같지 않았다.

사실 바다괴물 원영이 구렁이에게 몸을 감긴 시간은 너무나 오래 되었다.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록 이제는 구렁이의 목을 물어 두 동강으로 잘라 던져버렸다고는 하지만 .

여전히 구렁이가 몸에 칭칭 감겨서 끄떡도하지 않으니.

초조와 분노와 피로를 참을 길 없는 바다 괴물은 있는 힘을 다해서 또 한번 울부짖었다.

 

" 어흐흐흐흥 ! "

 

마침내 원영은 땅바닥에 풀석 나자빠지더니.

떼굴떼굴 몸부림을 치고 엎치락뒤치락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몸뚱어리에 칭칭 감겨 있는 구렁이의 쇠사슬 같은 결박에서

해방되어 보자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실컷 몸부림을 치고 흘쩍 몸을 또 한번 뒤집었을 때.

바다 괴물 원영은 마침내 그 목 아래에 있는 얼룩덜룩한 붉은 무늬의 커다란 반점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원영은 괴씸하고 초조한 바람에 또 워낙 오랫동안 결사적인 결투를 해서 기진맥진한 몸인지라

이때 이 자리에 이 깊은 숲 속에 사람의 그림자가 있어서 제놈을 노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노영탄은 이 순간의 기회를 재빠르게 포착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한번 놓쳐버린다면 또다시 이놈을 정복할 만한 기회란 없겠다는 결정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순간. 그의 절묘한 재간인 경신법을 전개했다.

쿵!

두 발로 땅 위를 한번 구르는 순간.

노영탄의 몸은 벌써 공중에 나는 새처럼 떠 있었다.

쉭!

화살같이. 노영탄의 몸은 바다 괴물 원영의 머리를 노리고 전광석화처럼 날아들었다.

손에 단단히 잡은 금서 보검의 뾰족한 끝으로 단숨에 원영의 붉은 반점을 정확하게

푹 찔러버릴 작정이었다.

원영이 몸을 벌떡 뒤집고 하늘을 쳐다보며 드러누웠다가 다시 몸을 엎어보려는 바로 그 찰나였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한 개 인간의 그림자가 날아드는 것을 재빨리 깨달았다.

그러나 몸뚱어리를 다시 엎어버리기에는 시간이너무 촉박했다.

그만한 겨를이 없었다.그대로 아가리를 더 크게 벌리고 맹렬한 흡인력을 발휘해서

사람의 몸뚱어리를 그대로 송두리째 입 안으로 빨아들이는 도리밖에 없다는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노영탄은 벌써부터 이 원영이란 놈의 빨아들이는 입김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몸을 날렸을 때부터 오른손의 금서 보검은 이놈의 붉은 반점을 노렸고.

왼손에도 힘을 비축해 가지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덤벼드는 것이었다.

노영탄은 바다 괴물 원영의 신변으로 가까이 접근해 들어갔다.

날카로운 안광이 이 거대한 괴물의 급소를 노리고 슬쩍 스쳤을 때.

이놈은 그 무지막지한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훅 하는 괴상한 숨소리와 함께 천지를 집어삼킬 듯 맹렬한 흡인력을 발휘하여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물론. 노영탄을 단숨에 삼켜 버리자는 배짱이었다.

노영탄은 몸을 나지막하게 착 가라 앉힌 다음 경각을 지체치 않고 재빨리 왼손을 썼다.

한번 맹렬한 위력을 떨치면 그 어떤 힘이든 간에 그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저 건곤론원장의 무서운 장법으로 거센 바람을 일어켜서 이편에서도 맹공을 가했다.

노영탄의 손바람은 넉넉히 원영의 흡인력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오른손에 쥐고 있는 금서 보검은 여전히 원영의 치명적인 급소인

붉은 반점을 겨누고 세차게 육박해 들어갔다.

손바람으로 흡인력을 막아놓으면서그놈의 배 위로 비호같이 날아들었다.

뱃가죽에 발끝을 대고 살짝 디디는가 하는 찰나 노영탄은 다시 몸을 약간 솟구쳐서

허공에 뜬 채로 보검을 아래로 향하고 단단히잡았다.

번쩍!

한줄기 새파란 검광이 뻗쳐나는 순간.

팍 하는 예리하면서도 짧은 소리 ..........

노영탄의 보검은 마침내 원영의 급소인 붉은 반점을 화살이 과녁에 꽂히듯 정확하게

그리고 다부지게 찔러버린 것이다.

과연 그놈의 붉은 반점은 부드럽고 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쇠를 찌르기를 흙덩어리같이 쉽사리 해치울 수 있는 신기 금서 보검이고 보니.

이렇게 연한 짐승의 가죽이나 살쯤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보검은 이미 반자 깊이나 그놈의 반점을 찔러버린 것이다.

노영탄은 팔과 손을 약간 좌우로 흔들었다.

놀라서 달아나는 새의 동작과도 같이 칼끝을 원영의 몸에서 민쳡하게 뽑아낸 노영탄은

몸을 번개처럼 뒤로 날렸다.

괴물의 몸에서 재빨리 몸을 빼버린 것이다.

불과 서너 번 솟구쳤다 내려앉았다를 반복한 끝에.

노영탄은 벌써 숲속으로 날아들어 처음에 있던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다시 머리를 내밀어

그 빈 터를 건너다 보았다.

바다 괴물 원영은 노영탄의 한 칼에 그의 치명적인 붉은 반점을 찔리고 말자.

광성(狂聲)이 하늘을 무찌를 듯 치밀어 올랐다.

 

" 어흐흐흐흥! "

 

어느 때보다도 무섭고 처참한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콧구멍으로는 두 줄기 물방울이 분화구같이 뻗쳐 나왔다.

마지막 발악인 것 갔았다.

한번 아가리를 벌려서 깨물면 고기잡이 배도 두 동강이 나버리고

사람마저 단숨에 삼켜버리는 이 무시무시한 원영이란 놈에게도.

그 생명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드는 모양이었다.

노영탄의 칼에 찔린 그 붉은 무늬의 반점에서는 마치 샘물이 솟아나듯

시뻘건 핏줄기가 밖으로 뻗쳐서 콸콸.

막혔던 보가 터진 것처럼 빈 터의 땅 위를 피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그 상처의 아픔이 이제는 극에 달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원영이란 놈은 별안간 그 거대한 체구를 또 한번 벌떡 뒤집었다.

짤막한 네 다리를 뻣뻣이 버티더니.

자신이 기어나왔던 숲속 길로 되돌아서서 미친 듯이 줄달음질을 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지막 몸부림이요. 발광이었다.

눈앞에 거추장스러운 존재를 머리로 마구 들이받았다.

우지끈! 뚝딱! 쿵쾅!

사람의 두 팔로는 도저히 꺼안아볼 수도 없을 만큼 굵다란 고목들이 부서지고 넘어지고

천지를 진동하는 소란한 굉음 속에서 이놈의 울부짖는 처량한 소리는 점점 공지에서 멀어져갔다.

 

' 이놈! 어지간히 아픈 모양이지! 정통으로 급소를 찌르기는 했지만 .

  이놈이 그래도 죽지 않고 또 살아난다면? '

 

노영탄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또다시 경신법을 부려서 몸을 허공으로 솟구쳤다.

흘쩍! 단순에 빈터를 넘어서 원영이란 괴물이 달아나는 방향으로 뒤를 쫒았다.

2. 3리쯤 되는 거리를 단숨에 날았다.

그제서야 바다 괴물 원영은 달아나는 품이 갑자기 느려졌다.

비틀비틀 기우뚱기우뚱 여전히 앞으로 무작정 들이받으며 달아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기진맥진해서 더 버텨볼 힘이 없는 것이 확실했다.

노영탄은 머리를 쳐들고 앞을 바라다보았다.

앞으로는 그 이상 더 나갈 만한 길이 없었다.

그것은 깍아지른 것같이험준한 절벽이 끝닿은 곳이었다.

그 아래는 망망대해였다.

그런데도 원영이란 놈은 이 낭떠러지 맨끝까지 와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을 들이받는 황소의 뿔과도 같이 이놈은 그냥 앞으로만 머리를 뻗치고.

물인지 불인지 헤아릴 정신도 없다는 듯 몸뚱어리를 집어내 동댕이치는 것이었다.

숨이 끊어져가는 마지막 순간에 거대한 체구를 물속으로 자진해서 집어 던져버렸다.

노영탄은 그 절벽 끝까지 쫒아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강기슭을 후려갈기는 파도소리.

그 앞으로 한없이 널브러진 강물 이외에는 티끌만한 형체도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꾀 오랫동안 노영탄은 강물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극성을 떨던 바다 괴물 원영은 마침내 깊은 물 속에서 그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으리라!

노영탄은 곧 돌아서서 빈터로 돌아왔다.

빈터 땅 위는 온통 시뻘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단지 목이 잘린 구렁이의 머리와 만신창이가 되어서 깨물린 구렁이의 몸뚱어리만

아직도 그 피바다 속에 나둥그라져 있었으며.

사방으로는 시커먼 어둠이 다가들고 있을 뿐이었다.

노영탄은 손으로 주머니 속을 뒤적이더니 소골환 한 병을 꺼내서

그 구렁이의 머리와 몸뚱어리에다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구렁이의 머리와 몸뚱어리는 소리도 없이 차츰차츰 녹아버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홀연. 그 구렁이의 머리 속에서 두 줄기 파랗게 희미한 광채가 뻗어 나오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 구렁이의 머리와 몸뚱어리가 완전히 녹아버리자

질펀하게 땅바닥을 적시고 있던 구질구질하고 끈적끈적한 액체 속에서.

반짝반짝 광채를 발하는 두 알의 큼직한 구슬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날은 완전히 어두웠다.

빽빽하게 고목이 들어차 있는 숲 속은 말할 것도 없고.

빈 터 역시 지척을 분간키 어려웠다.

이어둠 속에서 단지 두 알의 둥그런 구슬만이 눈부신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노영탄은 칼끝으로 그 두 알의 구슬을 풀더미에 굴려 가지고 손으로 집어

다시 나무 잎사귀로 깨끗이 닦았다.

번쩍번쩍 눈이 부실 지경으로 찬란한 광채를 발산하는

그 두 알의 구슬은 크기가 큼직한 복숭아씨만큼이나 컸다.

손에 쥐고 보니.

주변이 마치 등불이라도 켠 것처럼 환하고 밝았다.

모든 난관을 이미 깨끗이 물리쳤고 목적한 일도 이만하면 완전히 끝난 셈이다.

숲속으로는 칠흑 같은 어둠이 닥쳐오기만 했다.

노영탄은 두 알의 구슬을 허리에 찬 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단숨에 몸을 날려서 주봉 꼭대기에 있는 나무집으로 돌아왔다.

나무집 문 앞에 이르렸을 때 연자심이 벌써알아채고 급히 뛰어나와서 맞아들였다.

노영탄은 문 앞에 선 채로 말했다.

 

" 하하! 이제 마음 턱 놓으셔도 좋소! 기어이 그놈을 처치해 버리고 말았으니 ......... "

 

하면서 바다 괴물을 퇴치하기까지의 자세한 경과를 이야기해 주고 나서.

머리를 기웃이 디밀어 나무 방 안을 기웃거리더니 만면의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했다.

 

" 방안이 이렇게 캄캄한데 무습지 않소? "

 

연자심도 방그레 웃었다.

 

" 무섭기야. 이까짓 것쯤 ..... 하지만 햇빛이라곤 통 구경할 수가 없어서 몹시답답했어요!

  완전히 장님이되었군요 ! "

 

"그런 걱정하실 필요는 없소!  내. 곧 빛을 보실 수 있도록 해드리리다. "

 

이렇게 말하면서 노영탄은 몸을 돌리더니

어슬렁어슬렁 나무집 옆에 있는 못가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 어디로 또 가시는 거죠? "

 

연자심은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이렇게 물었다.

노영탄은 싱글싱글 웃기만 하면서 못가에 쭈거리고 앉더니

주머니 속에서 그 두 알의 구슬을 꺼냈다.

 

"가만 계시오! 내. 세상에 드문 기적을 만들어서 보여드릴 터이니 ....... "

 

하면서 물에다가 구슬을 깨끗이 씻는 것이었다.

그 두 알의 구슬은 물에 씻기고 또 노영탄이 손으로 물기를 문지르고 닦고 하니까.

처음에 보았을 때보다 더 한층 눈부신 광채를 발산했다.

또 광채가 강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파란 하늘 빛깔 같아서 눈에는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을 만큼 보드라웠고 어두침침한 등불 같은 것은 비길바도 아니었다.

연자심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건너다보고만 있더니

놀라움과 기쁨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단숨에 못가로 달려들었다.

 

" 대체. 이게 뭐라는 거예요 ? 이렇게 굉장한 광채를 발산하다니 ........ "

 

" 그러기에 내 기적을 나타내 보여드린다고 하지 않았소 !

 하하하 ..........알고보면 우연이기는 하지만 대단한 물건이오 ! "

 

노영탄은 그 두 알의 구슬을 잘 매만져서 한 손에 한 알씩 들고

연자심과 함께 나무집 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본래부터 절벽 같은 어둠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노영탄이 구슬을 손에들고 들어서자마자

방안에는 당장에 눈부신 빛이 충만했으니

밝고 훤한 품이 마치 몇 자루의 큼직한 촛불을 일시에 켜놓은 것만 같았다.

두 젊은이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연자심은 방안에 있는 조그마한 상 위에서 두 자루의 촛대를 찾아서 하나에 하나씩.

그 두 알의 명주를 조심조심 모셔 올렸다.

그렇게 위층에 한 대 아래층에 한 대씩 배치해 놓으니

방안 전체가 낮이나 다름없이 밝아졌다.

아래층 문짝이 아직도 나둥그라져 있었다.

노영탄은 그 문짝을 주워 모아서 다시 달고 톱니 같은 테두리까지도

감쪽같이 도로 끼워서 단단히 안으로 잠가버렸다.

구렁이의 머리에서 나온 두 알의 구슬이 밝고 부드러운 광채를 발산하여.

두 젊은이의 얼굴에 감격과 희열과 평화와 행복을 던져주었다.

아직도 어떤 경계선의 이편 저편에서 서먹서먹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노영탄의 감격이나 행복감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 세상에 남겨두고 간 유물을 무사이 찾아낸 연자심의 심경과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연자심의 두 볼은 구슬이 던지는 파란 광채 속에서

어느 때보다도 유난히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여자의 븎러움과 수줍음이 왈칵

노영탄의 가슴팍에 몸을 던지게 하지는 못했다.

노영탄의 가슴에 간신히 파묻은 고개를 갸웃이 쳐들고 부끄러운 미소를

입가에 방그레 띨 뿐이었다.

두 젊은이들은 꽤 오랫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밤을 새워서 나무 속 방안을 깨끗이 수습했다.

아담하게 새집이 꾸며진 셈이었다.

두 젊은이들이 은거하면서 마음 편히 무술이나 연마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환경이 이루어졌다.

이튿날 날이 밝아지자 노영탄은 연자심과 잠시 작별하고 혼자서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더듬어서 섬 서쪽에 나룻배를 매어둔 곳으로 되돌아갔다.

배 안에 싣고 온 일용품들을 떠매고 나무 속 집으로 돌아왔으며.

나룻배도 강기숡에 있는 큼직한 바윗돌 위로 끌어올려서

근처에 있는 굵직한 나무 밑둥에 단단히 잡아매 두었다.

두 젊은이들은 마치 신혼 부부와도 같았다.

노영탄이 방 앞까지 돌아왔을 때.

연자심은 문 앞에 서서 초조하게 앞만 바라다보고 있다가

노영탄이 돌아온 것을 보자 허둥지둥 앞으로 달려들어 일용품을 방안으로 들여놓는 데

힘을 합쳐서 분주하게 거들었다.

2층으로 된 이 자그마한 나무 속 집은 두 젊은이들이 하룻밤 정돈을 하고 나니

구석구석이 처음과는 딴판으로 아주 새로워졌으며 노영탄이 나갔다 돌아온 반나절 동안에

연자심은 방안의 배치에 더욱 오밀조밀하게 신경을 썼다.

이불이며 요며 양탄자며 모두 밖으로 끌어내어 빨 것은 빨고 말릴 것은 말리고.

방안에 있는 모든 도구도 셈물을 길어다가  모조리 깨끗하게 씻고 딲고 했다.

화병 두 개를 찾아내서 새뜻한 꽃들을 담뿍 꽂아놓았다.

방안에서는 생생한 기운이 넘쳐흘렀으며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두 젊은이들의 청춘을 행복과 희열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이 배에 타고온 일용품은 그 가지수가 제법 많았다.

양식이며 의복이며가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고 또 방안에서 임시로 장만한

여러 가지 밥짓는 도구며 접시 대접 사발 같은 것이 그만하면

두 사람이 그날 그날을 지내기에 과히 아쉬운 것이 없을 만 했다.

 방문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서면 땅에는 온통 과일나무요.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렸으니.

아무리 따먹어도 없어지는 줄 모르겠고.

갖가지 산짐승들이 야미육식(野味肉食)을 맛보기에 충분했으므로.

두 젊은이들의 생활에는 조금도 근심 걱정이 없었다.

노영탄이 또 손재간을 부려서 방의 창문들을 말끔하게 수리하여.

언제나 임의로 열고 닫고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방안에는 밝은 광선과 맑은 공기가 충만하여 지상에 둘도 없는 낙원이요.

별천지만 같았다.

산봉우리를 흔드는 바람소리 파도치는 물결과도 같이 출렁거리고 속삭이는 나무가지들.

때로 매들이 산봉우리 위를 빙빙돌다가 어디론지 훨훨 날아가버릴 뿐이었다.

이곳에 은거하는 두 젊은이들은 마치 동천복지(洞天福地) 속에 사는 한 쌍의 신선 갔았다.

그 즐거움이 무궁무진해진 속세의 시끄러운 일들을 벌써 깨끗이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석 달 너 달 만에 한 번씩 두 젊은이들은 산을 내려와서 배를 타고 연운항에 나가

일용품을 구입해 가지고 돌아오곤 했다.

 

<다음 개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