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28장 흑마 백마(黑馬 白馬)

오늘의 쉼터 2013. 12. 13. 22:27

정협지(情俠誌)

 

28 흑마 백마(黑馬 白馬)

 

스승의 여자

 

 

 

조그마한 나룻배로 수십 리 길을 달렸다.

 

남해어부는 머리를 들어 멀리 밝아오는 동족 하늘을 바라보더니. 

다시 강 언덕 위를 한참 동안이나 응시하고 나서야

노영탄과 연자심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가벼운 미소를 띠고 말했다.

 

"어느 틈에 우리는 벌써 마당(馬當)이란 고장에까지 왔구나!

앞으로 바라다 보이는 것이 바로 화양이다.

내 너희들에게 몇 마디 더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또다시 곧장 파양호로 돌아가야겠다. "

 

이번에는 노영탄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네가 호수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온 지 그럭저럭 일 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에 너는 소위 무림의 고수라는 인물들을 무수히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무술은 비록 적수가 아주 없다고 할 지경은 못 되지만

적어도 아무에게나 쉽사리 넘어가지 않을 만한 든든한 위치에 서 있으며.

또 ..... 이제 와서는 더군다나 기이한 인연으로 네가 그 네 가지의

오묘 불가사이한 술법을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 터득했다.

그것을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철저하게 연마한다면 너의 무술의 위대한 실력은

더욱 무서운 힘을 얻어서 가히 천하를 종횡무진 실로 유래가 없는 무적의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남해어부는 이렇게 말하더니 무엇을 생각했음인지

꽤 오랫동안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말이 없다가 다시 얼굴을 들며 노영탄에게 말했다.

 

"방금 네가 말한 그 네 가지 술법에 관해서는 나는 나대로 그 절반쯤은 터득도 했고

또 연마도 해보아서 비록 그것이 털끝만큼도 틀림이 없는 완벽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 스스로 어떤 현묘한 경지에까지 도달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네가 터득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인지.

네가 생각하는 대로 어디 한번 자세히 이야기해 보아라.

그러면 우리들이 서로 터득했다는 점이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

한층 명백히 알 수가 있을 것이 아니냐? "

 

노영탄도 스승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한참 동안이나 무엇인지

묵묵히 생각하고 나서야 대답했다.

 

" 제가 그 술법을 터득했다는 정도는 그다지 깊지 못하옵니다.

또 그것이 정확한지 어떤지도 알 수 없사오며 ........

단지 금모사왕 오빈기와 더불어 대적했을 때.

비로소 이 네 가지의 술법을 써보고 그 무서운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사옵니다."

 

계속해서 노영탄은 자기가 터득한 내용을 솔직하고 자세하게 남해어부에게 설명했다.

 

남해어부는 정신을 차리고 노영탄의 말을 한마디 한마디 차근 차근히 듣고 나더니.

아래턱을 가볍게 몇 번 끄덕끄덕했다.

노영탄의 설명이 끝나자 남해어부 상관학은 기탄없는 웃음을 통쾌하게 웃으며.

자못 대견하다는 듯 만면에 느것한 기색을 나타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허허허 ........ 과연 너는 총명한 아이다!

이 상관학의 제자로서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인재다.

너의 경지가 이다지도 고명하다는 것은 확실히 놀랄 만한 사실이다.

과연 깊이깊이 파고들어서 샅샅이 통찰했구나! "

 

이때 뱃머리 갑판 위에 있던 두 필의 백마.흑마가 벌떡 일어서서 마구 울부짖었다.

연자심은 깜짝 놀라 급히 앞으로 달려가서 말들을 다시 단단히 매놓고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어서 달래놓았다.

그러는 동안에 노영탄의 시선은

연자심의 일거일동을 놓치지 않으려고 쉴새없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그것을 바라다보고 있던 남해어부는 빙그레 미소를 띠며 또 말했다.

 

" 영탄아. 이제 너의 무술은 가히 무림 전체를 내려다보고 흘겨보아도 좋을 만한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자만심을 갖거나 오만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앞으로 더욱 정진에 정진을 거듭 해야만 놀라운 진보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더니 남해어부의 얼굴은 웬일인지 침통해졌다.

그리고 여태까지와는 달리 엄숙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 이번에 내가 호수 바깥 세상으로 나와본 것은 역시 회양방과 숭양파 양쪽의

정세가 어떠한지 그것을 알아보고자 해서다.

저 흑지상인 고비란 자가 다년간 몸을 숨기고 침거 생활을 하더니

드디어 탐욕에 불타는 마음을 억제치 못하고 회양방을 접수하여

또다시 무서운 풍파를 일어키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자의 목적은 오로지『숭양비급』을 수중에 넣어보자는 데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다년간 보지 못하던 수많은 괴물들도 분분히 때를 만났다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으니.

또 한번 일장의 무시무시하고 처참한 대결투가 눈앞에 다가들고 있는 것만 같아서 겁이 난다. "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 나룻배는 점점 강기슭으로 가까이 다가들고 있었다.

남해어부는 몸을 일어켜 돛을 내리기 시작하며 말을 이었다.

 

" 이제 너희들 둘이는먼저 연운(連雲) 항구로 올라가서 응유산에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

지점을 찾아보아라.

잠시 이쪽의 일은 걱정 말고 보물을 찾아낸 뒤에는 당분간 그곳을 떠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응유산이란 곳은 나도 한 번 가본 일이 있지만 매우 경치가 좋고 조용하며 깊숙하여

속세의 시끄러움을 잊을 수 있는 곳이다.

너희들은 그곳에서 보물을 찾아내서 잘 간직하고 .

또한 이 한적한 때와  장소를 기회로 무공의 길이나 열심히 닦고 있는 것이 좋을 줄 안다. "

 

나룻배는 그때 강기슭을 향하여 바싹 다가들고 있었다.

연자심도 저쪽으로부터 걸어와서 노영탄의 곁에 가까이 서서 남해어부의 다음 말을 들었다.

 

"너희들은 이제 육지로 올라가는 즉시 연운으로 달려가거라.

회양방의 비도들을 걱정할 필요 없다.

현재. 흑지상인을 비롯한 여러 마귀 두목 같은 놈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숭양비급』과 보물을 찾기에만 눈이 뒤집혔고 금사보 안은 텅 비었을 것이다.

너희들은 그곳을 잠자코 지나쳐 갈 것이며 이편에서 고의로 건드리거나

알은체를 할 필요는 없다.

또 너희들은 적화주에 들러서.

자심이 너의 이모님이 너무 걱정하시지 않도록 안심시켜 드려야만 된다. "

 

남해어부 상관학은 말을 마치자 두 사람에게 곧 떠나도록 분부했다.

노영탄은 스승과 떨어져 있은 지 어언 1년.

가까스로 공교로운 기회에 그를 만나게 되었으나.

또다시 이다지도 섭섭하게 헤어져야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애틋한 심정을 억제할 길이 없는 노영탄은 선뜻 배와 스승을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려 들지를 않았다.

연자심도 너무나 뜻밖이었다.

남해어부는 그들 두 사람을 어서 떠나가라고 하며 응유산으로 가서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는 하지만 두 젊은이들의 그 뒤 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시도 없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두 젊은이들의 심정을 꿰뚫고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띠고 말했다.

 

" 허허허 ....... 그 밖의 일들은 그다지 걱정할 게 없다.

핫핫핫 !  뭘 망설이는 거냐? "

 

남해어부 상관학은 또 한번 통쾌하게 웃었다.

 

" 우리들은 모두 세속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너희들 둘이는 이미 위태로운 환난을 같이 겪었고 서로 감정이 투합하는 바이며.

또 여태까지의 경과를 이 스승 앞에서 상세히 말했으니.

그만하면 한데 합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냐?

이 늙은 몸더러 너희들을 위하여 화촉을 밝히고 화고를 두드리며

혼인 잔치를 베풀라는 것은 아니겠지?  하하하 ! "

 

고개를 푹 수그리는 노영탄의 두 볼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남자의 입장은 그것만으로 아무 허물이 없을 것이나 브끄러움을

어디다 감추어야 좋을지 몰라 한편으로 갸웃이 고개를 돌리는

연자심의 탐스러운 두 볼은 연지를 찍은 듯이 새빨개졌다.

노영탄은 스승을 따라서 일찍이 5년 동안이나 기거를 같이하는 동안에.

이렇게 통쾌하게 웃는 남해어부의 얼굴을 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 오늘은 스승님이 확실히 이상하신데? '

 

노영탄은 도리어 까닭을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남해어부릐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점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남해어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순간에

노영탄은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그렇게 명랑하고 통쾌한 웃음을 금치 못하던 남해어부의 얼굴이.

순간 어느 틈엔지 지극히 우울하고 침통한 얼굴로 변해버린 것이다.

남해어부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무엇에 넋을 빼앗긴 사람같이

강물 위 저편 수평선의 멀고 아득한 어떤 한 개의 초점만을 노려보며 말이 없었다.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이 그의 얼굴에 비치기 시작했고.

수면을 스치는 아침 바람이 가슴앞에까지 늘어진 은백색 긴 수염을 휘날리고 있건만.

이 늙은 스승은 꼼짝도 하지 않고 먼 곳을 넋을 잃고 바라다보고만 있는 것이다.

노영탄은 놀랍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해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머리를 돌린 연자심도  남해어부의 안색이 갑자기 심각하게 변한 것을 깨닫기는 했으나.

역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 어째서?  무슨 까닭으로 이다지 안색이 돌변하시는 걸까? '

 

두 젊은이들은 똑같은 의문에 사로잡혀 서로 얼굴을 흘끗 쳐다보았으나.

당황한 눈초리가 맞부딪혔을 뿐이었다.

이윽고 노영탄은 공손히 허리 굽혀 예를 갖추고.

갑갑함을 못 견디겠다는 듯 이렇게 물었다.

 

" 사부님! 무슨 불쾌하신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이 제자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러서 사부님을 불쾌하시도록 해드린 것은 아니옵니까? "

 

남해어부는 이 말을 듣더니.

그제서야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고개를 돌려 두 젊은이들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더니.

머리를 옆으로 몇 번 흔들렀다.

 

" 내 얼굴이 불쾌해 보인다고?

그러나 이것은 너희들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다.

내 평생에 뒤를 이을 만한 아들 하나 없다가 너를 골육처럼 여기고 또 너희들 둘이 마치

아들 머느리같이 생각되어서 기쁘기 이를 데 없는데 무슨 불쾌함이 있겠느냐? "

 

남해어부 상관학은 무슨 까닭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긴 한숨을 땅이 꺼질 듯이 내쉬었다.

그리고 나서 두 젊은이들에게 말했다.

 

" 나는 너희들을 앞에 놓고 보자니.

갑작스럽게 과거지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수년 전 일을 돌이켜 생각해볼 때 내가 너희들의 사모되는 여인과 한 쌍이 되어서

강호를 주름잡으며 의협심에 불타서 동분서주 하던 때 ........

그때의 정경이 꼭 오늘날의 너희들과 같았다.

너희들의 사모가 내 곁을 떠나간 지 어언 이십여 년!

하! 인생의 과거지사란 마치 한 줄기 연기와도 같으니 어찌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랴! "

 

노영탄과 연자심은 이 말을 듣고서야.

늙은 스승이 자기네들의 젊은 모습을 눈앞에 놓고 먼 옛날의 감회를 참을 길 없어서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러나 노영탄은 늙은 스승이 이다지도 우울하고 침통한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는 것을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지극히 심각한 마음의 충동을 받으신 모양이다!

사모님께서는 오랜옛날에 세상을 떠나셨고 사부님께서는 단지 혼자서 외롭고

쓸쓸하게 백발을 휘날리며 만년에 이러시기까지 강호를 동분서주 하였으니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생각하시고 애닮아 하시는 것이겠지! '

 

노영탄이 이렇게 혼자서 생각해 봤을 때 더 한층 애틋한 심정에 사로잡혀

스승의 곁을 떠나기가 더욱 싫어졌다.

 

' 세상 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사부님 슬하에서 만년의 허전하고 쓸쓸하신 심정이나

위로해 드리며 세월을 보낼 수 있다면 나 자신도 얼마나 마음이 편한 일일까! '

 

노영탄도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 홀연 남해어부 상관학의 힘없던 음성이 또랑또랑해졌다.

 

"영탄아!  너는 너의 사모에 관한 일을 알고 있느냐? "

 

노영탄은 황급히 대답했다.

 

" 저는 단지 사모님께서 이미 이십 년이나 되는 먼 옛날에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음을

알고 있을 뿐 사부님께서 그 이상의 자세한 말씀을 해주신 일이 없으시니 ......... "

 

남해어부는 또 한번 처참하리만큼 허전한 미소를 띠면서 노영탄에게 말을 꺼냈다.

 

" 하!  이 일이 아무도 모르게 파묻혀버린 채로 어언 이십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구나!

이세상에서 단지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 한 사람은 나요. 또 한 사람은 바로 오매천녀다.

그 밖의 또 한 사람은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 있는지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 내 이제 너희들에게 과거지사를 솔직히 이야기해주마! "

 

노영탄과 연자심이 남해어부의 이 말을 듣고 그의 표정을 살펴보자.

이 늙은 스승이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그 심정의 절반은 알아맞힐 수 있을 것 같았다.

 

'흠. 오매천녀와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으셨구나! '

 

노영탄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감히 무엇이라 입을 벌릴 수는 없었다.

두 젊은이들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또 한번 물끄러미 두 젊은이들을 바라보더니.

여태까지의 침통하던 얼굴빛이 적이 가라앉는 모양이었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강호 모든 사람들 사이에 너의 사모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고.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인즉 아무도 사실을 똑바로 알고 있지는 못하다.

심지어 허다한 사람들이 당초에 너의 사모라는 여인을 보지 못했으면서도.

그저 이 사람의 입에서 저 사람의 입으로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풍문이 퍼져서.

그것을 정말인 줄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한 가지 사건은 나에게 있어서는 필생의 가장 커다란 심적 타격이라고 할 수 있으니.

과연 언제나 이 사실이 나의 가슴속에서 깨끗이 풀릴런지 그것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다. "

 

남해어부는 또 한번 긴 한숨을 쓸쓸하게 내쉬었다.

 

" 아득한 옛날 이십오육 년 전 일이었다.

바로 숭양파와 회양방이 일대 격투를 했을 때.

나와 너의 사모는 마침 서북 지방에서 돌아왔었다.

이런 놀라운 소식을 듣게되자

급히 달려가서 정통파의 여러 옛날 친구들을 구원해 줄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우리가 홍택호까지 달려갔을 때는 양쪽의 정세가

이미 도저히 구출할 수 없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극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간신히 자심의 이모 되시는

오매천녀 한 사람만을 구출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나와 너의 사모 사이에는

풀기 어려운 오해가 싹터나기 시작한 것이다.

너의 사모 되는 사람은 바로 이때 발끈하고 치미는 성미를

참지 못하고 토라져서는 내 곁을 떠나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 여인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날까지 두 번 다시 나를 절대로 대면치 않겠다고 맹세했다.

세월이 여류하여 어언 이십여 년이란 세월이흘러갔구나!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강호를 두루두루 유랑해 다니면서

어느 때 어디서나 혼자서만 가슴속에 맺혀 있는 이 여인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려고 애썼으나.

그것은 모두 허사였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고 아하 ........ "

 

이렇게 해서 드디어 이야기의 실마리는 풀려 나오기 시작했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마치 자기 자신이 아득한 20여 년 전의 과거 속에 살고 있는 사람같이

헝언키 어려운 감회에 그 표정까지 쓸쓸함과 어떤 안타까운 그리움에 파묻혀서.

노영탄과 연자심에게 20년 동안의 자세한 경과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십오 년 전이었어니까.

내 나이 마흔 대여섯 살. 너의 사모 되는 사람은 삼십여 세의 여인이였다.

모종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 둘이는 변경 밖 먼 고장으로 나갔다가.

신강성에 삼 개월 이상이나 머무르면서 일을 마치고 나서야 다시 중원 땅으로 돌아왔다.

우리들이 길을 떠났을 때는 바로 칠팔월쯤 되었다.

하남 지방까지 갔을 때는 벌써 숭양파와 회양방이 결투를 준비하고

각각 허다한 무림의 고수들을 집합시키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날짜를 꼽아보자니. 겨우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강호는 이런 놀라운 소문이 방방곡곡에 퍼져서.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 웅성웅성 야단법석이었다.

이런 소문을 듣게 되자.

나와 너의 사모는 하도 기가 막혀서 몸둘 곳을 알 수 없었다.

그때에도 나는 이미 건곤혼원장의 술법으로 무림에 있어서 다소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고 하지만 내공. 외공의 재간이 지금에 비하자면 역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또 너의 사모의 무술 실력이란 것도 제법 일가를 이룰 수 있는 정순한 경지에 도달해 있지

못했으니 우리 두 사람의무술의 힘을 가지고 이 일장의 대결투를 가라앉혀본다는 것은

확실히 용이한 노릇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소문을 듣고 제일놀란 점은 회양의 방주인 개세천왕 연약파가

매복 작전을 써 가지고 정통파의 고수들을 깡거리 몰살해 버릴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와 너의 사모는 수많은 옛 친구들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들은 모두 숭양파의 초청을 받고 이번 결투를 도와주려고 가담하고 있으니.

그들이 정말로 회양방의 매복 작전에 넘어가서 몰살을 당한다면.

그것은 실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와 너의 사모는 서로 상의한 결과 비록 이 일장의 처참한 결투를

우리의 힘으로 가라앉힐 수 없다손 치더라도 즉각 싸움터로 달려가서

최소한이런 무서운 사태를 옛날 친구들에게 통지라도 해주어서 

만반의 경계와 대비책이라도 차리도록 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즉각에 경신법을 써서 홍택호를 향해 달려갔던 것이다.

그러나 결투장인 홍택호 호반에 이르렸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벌써 화염이충천하고 짙은 연기가 천지를 뒤덮었고 결투장은 완전히

한 개의 화굴로 변해 있었으며 호수 수면에까지 온통 석유가 뿌려져서

동서남북이 모조리 불바다로변하여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이미 퇴로란 있을 수 없었다.

결투에 가담한 양쪽의 고수들은 이미 처참한 사상자를 무수하게냈으며.

생명이 붙어 있는 몇몇 인물들도 몸을 피해볼 구멍이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최후의 무시무시한 순간에 처해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한 사람이라도 구출해 보고 싶은 생각에 극도로 초조했다.

수성에 남보다정통하다는 나 자신만 믿고 닥치는 대로 자그마한 나룻배 한 척을 잡아타고 

단신으로 타오르는 불길을 무릅쓰고 싸움터 불바다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그때 나는 단지 몇 사람이라도 사지에서 구해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너의 사모는 호반 언덕에 남겨두고 거기서 연락을 취하도록 하고

나 혼자서만 뛰어든 것이었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을 무릅쓰고 

나는 마침내 불기운이 비교적 약한 한 줄기 노선을 찾는 데 성공했다 .

나는 화살처럼 앞으로만 뚫고 들어갔다.

호수 수면에 뒤덮인 석유가 나의 지그마한 나룻배를 둘러싸고 휘감겨 들어왔으나.

나는 그런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만 뚫고 들어갔다.

얼마 안 되어서 내가 탄 배는 불바다 함복판에 서 있었다.

눈을 들 수 없는 시커멓고 짙은 연기 속에서 간신히 앞을 내다보자니.

결투장 땅 위에는 이미 뻗쳐나는 한 줄기 치열한 화여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서야 나는 극도로 초조했고 또한 극도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결투장이라는 넓은 지점이 초토화됐을 뿐만 아니라.

호수의 수면까지 모조리 불바다로 변해버렸으니

결투장까지 접근 한다는 것도 절대 불가능 했고 오래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느냐 하면

그것조차 도저히 불가능 해졌기 때문이었다.

호수 수면을 뒤덮고 있는 석유는 나의 나룻배를 휘감고 몰려들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쉴새없이 나룻배를 출렁거리고 또 한편으로는 노를 휘저어서

물결을 일어키며 필사적으로 나의 나룻배에 불이 붙지 않토록 방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결투장인 섬으로 빙빙 돌아 들어가서 채 한 바퀴도 돌기 전에

내가 타고 있는 자그마한 나룻배는 이미 덤벼드는 불길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이상 어물어물하며 이 불바다에서 뛰쳐나가지 않는다면 나의 배 역시 불 속에서

타버리는 운명을 면할 길이 없고 또 눈앞에 전개된 정세를 살펴보니.

결투를 한 양쪽 모두 생존해 있는 인물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비록내가 아는 친구 가운데는 수성에 정통한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절대로 그 불바다에서 헤음쳐 빠져나가지는 못했을 것만 같았다.

숨을 죽이고 물 속으로 잠입해서 불덩어리가 되어버린 호수 수면을

피할 수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 불바다의 면적이란 것이 엄청나게 넓고보니.

도저히 물 속을 뚫고 그 테두리 밖으로 빠져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호수 수면에는 어디로 머리를 들어봐도 짙은 연기가 뒤덮여 있고 화광이 충천하고 있으니.

부근 일대의 호수도 온통 불에타고 꿇고 해서 제아무리물 속으로 잠입을 잘하고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라도 뜨거운 기운을 견디지 못해서 마침내는 질식해

죽지 않았으면 타 죽을 도리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 시커먼 연기 속에서 어던 사람이 남아있는지 없는지

그것조차똑바로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하다하다 못 해서 나는 무작정 고함을 두어 번 질렀다.

만약에 내 고함소리에 응하는 아무런 소리도 없으면 나는 그 이상 망설이고 있을 게 아니라.

즉각 불바다 테두리 밖으로 배를 몰아서 몸을 피할 결심을 했다.

그러나 어찌 뜻했으랴!

바로 그때.

내가 무작정 고함을 두어 번 지르고 났더니.

천만 뜻밖에도 그 고함소리에 응하는 지극히 가느다란 음성이 은은히 들려왔다.

그 음성이 간신히 들려오는 지점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는 곳 같지는 않았다.

그 순간 정말로 그 순간에는 나는 그것이누구이든.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거를이 없었다.

그것이 숭양파 사람이든 혹은 회양방 사람이든 그런 것을 돌볼 수는 없었다.

어느쪽 사람이든 간에 내겐 단지 사람의 목숨을 사지에서 건져낸다는 것만이 소중했다.

 

" 여. 여.여 ! "

 

나는 목청이 터져라고 연거푸 고함을 지르며.

그 가느다란 사람의 음성이 들리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리고 쏜살같이 몰아 들어갔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번에는 내 고함 소리에 응하는 아무런 음성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더욱 초조하고 조급하고 당황했다.

 

' 사람의 목숨이 살아 있어서 가느다란 음성이나마 입 밖에 내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어찌 그것을 모른체 할 수 있으랴! '

 

그저 맹목적이었다.

눈이 뒤집힌 사람같이 그 음성이들려오던 방향으로 무엇이 닥쳐올지도 모르면서

배를 몰아갔을 뿐이었다.

불과 삼사십 장쯤 되는 거리를 달려갔을 때 과연 물 위에서 한 줌밖에 안 돼 보이는

새카만 그림자는 쉴새없이 수면 위로 떴다 가라앉아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배를 더 한층 급히 몰아서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니.

그것은 과연 어떤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

이미 정신을 완전히 잃고 물 속으로 그대로 삼켜져 들어가서 송장이 되어버리는

바로 그런 아슬아슬한 찰나에 있는 한 사람의 몸뚱어리였다.

나는 그것을 자세히 보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만 확인하자.

다짜고짜로 선뜻 움켜잡고 끌어올렸다.

다시 사방을 휘둘러보았으나 그밖에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때 호수의 불기운은 더 한층 치열한 기세가 마치 광풍이 이는 것만 같았다.

본래는 어떤 지점은 불기운이 비교적 약하고 어느 정도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물 위에 뿌려진 석유 방울이 사방으로 확 퍼져 가지고

엉겨붙어서 털끝만한 틈도 찾아낼 수 없었으며 또 사방의 공기란 흐릴 대로 흐려졌고

 어지러울 대로 어지러워져서 나는 그 사람을 배 위로 끌어올린 다음.

또 어떤 다른사람이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로 물 위에 떠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을 살펴볼 만한 겨를은 전혀 없었다.

그저 미친 듯이 배를 몰아서 이 불더미 속에서 빠져나갈 생각밖에 없었다.

마침내 나는 맹렬한 불길과 시커먼 연기 속을 헤치고 물리치며 온갖 힘을 다해서

불바다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자그마한 나룻배를 간신히 불바다 밖으로 저어 나왔을 때.

내뱃전은 벌써 군데군데 불에 그슬리고 탔으며 내 몸에도 무수한 화상의 흔적이 드러났고.

두 손의 피부도 완전히 불에 데어서 껍질이 벗겨졌으며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꼴이 되어 있었다.

머리를 돌려 다시금 그 불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불기운은 여전히 극성을 떨치고 있었으며.

호수 전체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죄없는 물고기 떼까지 불에 타고 물에 삶아져서 분분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다시 하늘을 우러러보니.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고 불바다가 되어버린 호수 위로도 황혼이 다가들고 있었다.

나는 몸이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배를 빨리 몰아서 호반 언덕 근쳐로 달려들었다.

언덕 위만 바라보면서 너의 사모를 목청이 터져라고 불렸다.

그런데 이런 일이 또 있을 줄이야 어찌 뜻했으랴!

연거푸 몇 번이나 고함을 질러서 아무리 사모를 불러보았으나.

대답하는 소리는 통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언덕 위 사방을 두루두루 보았으나 단 한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머리를 수그리고 그때까지도 나의 배 안에 나둥그라져 있는

그 사람을 흘끗 바라다 보았다.

아! 그것이 내가 구출해 낸 사람이 여자였다는 사실을

그 순간에야 간신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충천하는 화광과 눈을 가로막는 시커먼 연기 속에서

내가 구출하고 있는 것이 단지 한 인간의 몸뚱어리라는 것만 인식하고.

그것을 물 속으로부터 끌어올려서 배 안으로 내던져버렸을 뿐이었다.

그때까지도 내가 구출해 냈다는 그 여인의 몸뚱어리는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엎드린 채로 배 한복판에 나동그라져 전신은 물에 젖어 있었고 .

등에는 한 자루의 보검을 비스듬히 메고 있었으며 머리털도 의복도 불에 그슬리고 타서

형언키도 어려운 처참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순간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한편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 여인이야말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년간 친하게 지내던 무림의 옛친구

오매천녀였기 때문이었다.

나를 태운 자그마한 배가 완전히 호반 언덕에 가까워졌을 때 불에 데고 연기에 그슬린

내 몸의 상처는 더 한층 쑤시고 아파서 견딜 수 없어 괴로웠다.

오매천녀의 모습을 다시 내려다보니 두 눈을 꼭 감고 얼굴빛은 썩어빠진 석회와 같았다.

몸에 걸쳤던 옷도 갈가리 찢어지고 불에 탔으며 피부에도 화상을 입은 자국이 한두 군데가

아니였고 완전히 정신을 잃은 품이 쉽사리 깨어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날은점점 어두워왔다.

그때까지도 너의 사모의 종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나는 화상의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가면서.

오매천녀를 배 안에서 두 팔에 안고 마침내 언덕 위로 뛰어올랐다.

아무 데나 닥치는 대로 다소나마 평평하고 널찍한 바윗돌을 찾았다.

그 위에 오매천녀를 내려놓고 내품속을 더듬더듬 뒤져보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약주머니가 그때까지도 내 몸에 간직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급히 단약을 꺼내서 당장에 목구멍으로 삼키고 화상을 입은 피부마다 고약을 발라보았다.

나의 상처는 견디기 어렵게 아팠으나 한 번 약을 먹고 고약을 바르고 났으니.

얼마 안 되어서 아픔도 가라앉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서야 오매천녀의 상처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오매천녀의 신상에는불에 덴 화상 이외에는 등들미 어깨죽지에 한 군데 시커먼 상처가 찍혀 있었다.

무엇인지 알수 없으나 어떤 악독한 흉기에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밖에 없는 것이 회양방이 초청하고 매수해 들인 소위 고수라는 위인들 가운데는

허다한 놈들이 모질고 악독한한 흉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그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깨죽지의 시커먼 상처가 어떤 놈이 때려서 그토록 멍이 든 것인지.

그것을 똑바로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 상처의 흔적을 여러 모로 살펴보아서 시간이 상당히 오래 경과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바로 이 타격 때문에 오매천녀는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며.

단지 불에 데었다는 까닭만은 아닌 성 싶었다.

나는 급히 오매천녀에게 환약을 먹이고 또 화상을 입은 흔적마다 내가 한 것과 똑같이 고약을

발라주었다.

한참 만에야 오매천녀는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오매천녀는 마침내 눈을 떴다.

눈 앞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자 씽긋 웃었다.

슬픈 웃음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 상관 도우님! 당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구해주다니 이건 정말어려운 일이었소!

그러나 .......나 ....... 나는 이미화산일괴란 자의 백골차라는 독기에 쐬고 ........

이미 두 시간이나 경과됐으니 .........

한시간만 더 지나간다면 그 독기가 나의 전신에 골고루 펴저서......

그 자신의 해독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 살아날 가망은 없을 것이오! "

 

오매천녀는 이렇게 말하더니 이를 악물었다.

몸을 오싹 떨기도 했다.

얼굴빛이 갑작스레 백지장같이 창백하게 변하면서.

쉴새없이 몸을 뒤털고 발버둥을 치면서 나를 보고 또 하는 말이 있었다.

 

"우리 바깥 양반은 이미 호수 속에서 순사하시었소!

나의 목숨도 얼마 더 남아 있지 못할 것이오!

도우님에게 단지 한 가지 바라는 것은 ........ 나의 고아 ...........

그것 하나만 장성하도록 잘 돌봐주시고 키워주신다면 죽어서 구천 아래 누워서라도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으리다! "

 

오매천녀의 이런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말의 희망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또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여인을 위로해 주었다.

 

"도우! 그다지 비관하실 것은 없소!

사태가 반드시 절망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으니까 ......"

 

꽤 오랜 침묵이 흘렀다.

이 이상 나는 이 여인을 위로해 줄 말이 선뜻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만에야  나는 또 물었다.

 

" 그 화산일괴란 자는 지금 어디 있소? "

 

오매천녀는 내 말을 듣더니 힘없는 음성으로 간신히 대답했다.

 

"화산일괴란 자는 우리 바깥 양반의 손바람을 맞고 급소를 찔렸으나.

아마 지금쯤은 저 무서운 불바다 속에 송장이 되어서 둥둥 떠 있을 것이오.

도우는 그자의 신변에서 해독약을 구해내실 생각을 하시는 거죠? "

 

나는 선뜻 대답했다.

 

" 도우! 너무 조급히 굴지 마시오.

화산일괴의 백골차란 것은 그 독기가 천하에 드문 것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도 한 가지 방법이 있소.

효력이 발생할지 어떨지는 장담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한 번 시험해 볼 수는 있소.

사태가 이미 이처럼 급박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결과는 운명에 맡기고 한 번 대담하게 시험해 보는 것뿐이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도우는 내가 하는 대로 마음을 턱 놓고 몸을 나에게 맡겨주셔야

될 것이오. "

 

오매천녀는 내 말을 듣더니.

어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두 볼이 발그스레하게 타올랐다.

 

" 도우는 나를 구해주시려는 데 뭣을 그다지 꺼리실 게 있소?

내 이대로 죽는다 해도 감격할 따름인데 ......... "

 

그 당시 오매천녀는 비록 마흔 전후의 여인이기는 했으나.

내공의 정순한 힘으로 얼굴에도 독특한 술법을 써서.

불과 이십여 세의 젊은 아가씨같이 보였다.

 나 자신으로 말하자면 그 당시에 나이가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천성이 호탕하게 놀기를 즐기고 또한 나 역시 연안법을 쓸 줄 아는 까닭에

언뜻보면 서른 전후의 젊은이 얼굴에 가득 차 있었다.

허다한 사람들은 나의 별명이 남해어부라는 것만을 알았지.

나의 진면목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호호백발의 늙은이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한 번 내 얼굴을 보면 깜짝 놀라곤 했으며.

나는 나대로 이렇게 남을 놀라게 하는데 적지 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뜻밖에도 이 공교로운 운명의 장난 속에서

풀기 어려운 기막힌 오해가 싹터난 것이었다.

 

오매천녀는 말을 다 하고나더니

두 눈을 꼭 감고 바윗돌 위에 엎드린 채로 몸을 쭉 뻗었다.

자기의 몸을 어떻게 치료해 주든지 마음대로 해달라는 표시임에 틀림없었다.

오매천녀의 어깨에 걸쳐진 옷은 이미 불에 타고 갈가리 찢겨져서 상쳐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지만

나는 치료를 위해 그것을 말끔히 벗겨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화산일괴란 자가 곧잘 쓰는 백골차라는 독기는 본래가 남부 산림 지대에 꽉 차 있는 장기

즉 악질 습기에서 생기는 무서운 병균을 뽑아다가 만든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독기가 제아무리 무섭다 해도 내공이 순정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사람이 몸 안에

간직해 있는 진기를 운용해서 순양강기를 장심에 집중시켜 상처 언저리를 문질러주고

안마를 해준다면 능히독기를 밖으로 몰아내고 최소한 혈맥을 따라 심장으로

침범하려는 독기를 막아낼 수는 있는 것이다.

나는 한번 모험을 해서 이 방법을 써볼 결심을 했다.

성공이냐 실패냐 그것은 나 자신도 단언할 수 없었으나.

한 여인이 생사의 기로를 오락가락하고 있는 이 긴박한 순간에.

그런 것을 더 망설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선뜻 일어서서 바윗돌 옆에서.

내가 몸 안에 간직하고 있는 진기란 진기를 모조리 한 곳에 뭉쳐 보았다.

그리고 모든 잡념을 물리쳤다.

나 스스로 인정하는 순양강기란 것을 오른쪽 손바닥에 총집중시켰다.

이 강기가 손 안에 꽉 차기를 기다렸다.

손바닥이 불덩어리같이 뜨거워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극히 짧은 순간.

나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으나 결국 대담하게 그 불덩어리같이 뜨거운 손길을 뻗어

오매천녀의 등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혈맥의 줄기를 더듬어서 상처를 향하고 문질러 들어가자니.

한 줄기 가늘기는 하지만 음산하고 차가운 기운이 오매천녀의 상처로부터

내 장심으로 빨아 올려지는 것 같았다.

과연! 얼마 되지 않아서 오매천녀의 시커멓고 푸르팅팅한 상처에서는

한두 줄기 땀방울이 솟아나듯 까무잡잡한 물방울이 솟았다.

그리고 형언키 어려운 일종의 괴상한 비린내가 끼쳐지며 오매천녀는

극도의 아픔을 참기어렵다는 듯 몸을 오싹오싹 떠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선 채로 맹렬히 그리고 정신없이 문지르기만 했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손을 번갈아 쓰면서 안마의 술법을 최대한도로 발휘했다.

이것은 이만저만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몸 안에 축적되어 있는 순수한 진기를 다 쏟아 놓아야만 이루어지는 것이고.

내공의 단련이 정순치 못하다든지 혹은 피차간에 교분이 두텁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는

도저히 경솔히 쓰기 어려운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오매천녀의 상처에서 솟아나는 까무잡잡한 물방울은 처음에는 땀방울같이 무수하게 솟더니.

차차 그것이 줄어들고 얼굴빛도 거기 따라서 점점 뽀얗게 가라앉았다.

나는 이것으로 효력이 나타났음을 알아차렸다.

그 까무잡잡한 물방울이 솟아나와버리고 오매천녀의 상처의 독기는 완전히 몸 밖으로

빠져나갔으며 이로써 이 여인은 되살아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두 손은 여전히 번갈아 안마를 해주느라고 필사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단지 상처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기만 한다면 나의 이술법은 성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찰나에. 난데없이 바람 소리가 수선스럽게 일어났다.

한 줄기 사람의 그림자가 그 바람을 타고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극도로 놀라는 외마디소리가 들려왔다.

 

" 앗 ! "

 

오매천녀는 몸을 한 번 꿈틀하고 움직이더니

그대로 일어서려고 했다.

나는 극도로 당황했다.

나의 술법이기적적으로 성공하려는 이 중대한 찰나에.

이 최후의 순간에 어찌 손을 멈출 수 있을 것이랴.

한번손을 멈춰버린다면 그때까지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백지로 돌아가고 말 테니.

나는 그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주인공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음성만 듣고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너의 사모였다.

그래서 나는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오매천녀를 문질러 주면서 왼손으로는

버떡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꽉 눌러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나의 온갖 정신과 힘도 오로지 일개 여인을 사지에서 구출해야겠다는 생각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입을 벌려서 너의 사모를 불러야만 된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 아하하하핫! "

 

바로 이때 너의 사모가 미친 사람처럼 냉소하는 웃음소리가 칼끝으로 찌르는 것같이

매섭게 들려왔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듣고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까닭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오매천녀의 몸에서 손을 뗄 수 없어서

여전히 온갖 정신을 사람 하나를 살려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최후의 수술을 가하고 너의 사모를 돌아다봤을 때에는 .

너의 사모는 만면에 지극히 불쾌한 기색을 띠고.

마치 우리들이 무슨 더러운 짓이라도 하고 있어서.

차마 바라보기에 흉하다는 듯 괴상한 눈초리로 오매천녀를 바라보더니

이 여인은 그때 벌써 몸을 일어켜 바윗돌 위에 앉아 있었다.

본래 옷이갈가리 찢겨졌지만 이때에는 전신이 숫제 나체가 되다시피드러나 있었으며.

나의 순양강기의 뜨거운 힘으로 안마를 격고난 이 여인은 얼굴이그제서야

새빨갛게 타올랐으며 사지에는 맥이 탁 풀려서 몹시 피곤해 보였다.

 너의 사모라는 여인은 어려을 적부터 부모의 지나친 총애 밑에 자라났고.

거기다가 또 무술도 남만 못지않은지라  성격이몹시오만했고 자존심이강하며.

나이는 나보다 아래인지라 앙칼진 성깔을 부릴 때면 걷잡을 수가 없었다.

한번 토라져버리면 좀처럼 돌아설 줄 모르는 여자였다.

나는 너의 사모가 성미를 부릴 적마다 그것을 일소에 붙이고 같이 상대가 되어 

잘잘못을 가려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이 여인으로 말하자면 나이가 비록 삼십여 세라 하지만 언제나 어린아이 같은 

성미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오매천녀와 내가 서로 알고 지낸 것은 퍽 오래된 일이었다.

오매천녀의 남편인 천룡검은 바로 상강파 무인 중에서는 이름 있는 인물로서

나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그들 둘이 부부가 되기 전부터 나는 오매천녀를 알게 되었으며.

또한 언제나 강호를 함께 분주히 돌아다닌 탓으로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나와 오매천녀가 특수한 관계나 맺고 있는 것처럼 

얼토당토 않은 낭설과 풍문을 퍼뜨리기도 했었다.

이러한 사실은 너의 사모도 누구보다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너의 사모는 평소에 단 한번도 여기에 관해서 나에게 묻는 일이 없었고.

나도 이런 터무니없는 억측에 관해서 구차스런 변명을 한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사실 나와 오매천녀의 관계는

어떤 깊은 감정이 서로 소통되고 있었다고 하지만 냉정히 말할 때.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숭고한 우정 관계를 계속해 온 것이며

그 이상의 특수한 점이라곤 티끌만큼도 없었다.

나는 너의 사모가 심히 불쾌한 얼굴빛을 나타내는 것을 보자.

이것은 분명히 이 괴상한 장면을 보고 엉퉁한 오해를 품게 된 것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 티끌만한 부끄러움이 없었고 나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광명정대한지라

부드러운 웃음을 띠고 너의 사모에게 말했다.

 

" 당신은 어디를 가 있었소?

아무리 목청이 터져라고 악을 쓰며 찾아봐도 종적도 알 수 없었으니 ....... "

 

너의 사모는 싸늘하고 매정스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 회양방의 두목 한 녀석이 호수 밖으로 살금살금 도망질을 치러 들기에 뒤를 추적했지요.

그랬더니 이놈이 마지막에는 흉기를 쓰려 드는 지라 나는 치미는 분노를 참을 길 없어서

단숨에 그놈의 한쪽 팔을 쳐버리고 한쪽 눈을 멀게 해서 도망치게 내버려두었지요. "

 

이렇게 말을 하는 동안 너의 사모의 독살스러운 눈초리는 오매천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이런 말을 쌀쌀스럽게 던졌다.

 

" 이분은 누구시기에 나한테는 인사도 시켜주시지 않는 거예요? "

 

나는 너의 사모의 이런 말투 속에 극도의 불쾌감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천연스럽게 너털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 허허허 ......... 이분이 바로 오매천녀.나와는 다년간의 도우로서.

이번에 천만 뜻밖에도 회양방 놈들의 음모에 빠져 하마트면 영영 무서운 불바다에서

헤어나질 못할 뻔 했소. "

 

또 한편으로 오매천녀에게도 소개를 했다.

 

" 이 사람이 바로 나의 내자요.

피차에 알고 보면 오래된 친구 같은 사이니 조금도 거북하게 여기실 게 없소! "

 

너의 사모는 나의 말을 듣고 나더니 더 한층 쌀쌀스럽게 말했다.

 

"아하. 알고 보니 이분이 바로 오매천녀셨군요.

정말. 위대하신 명성은 오래 전부터 익히 들어왔습니다.

우리 바깥 양반과는 옛날부터 친하신 도우시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조금도 거리끼시는 것들이 없으셨군! "

 

오매천녀는 너의 사모의 말을 듣더니 얼굴빛이 이상하게 변했고.

뭐라고 대답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두 여인 사이에 혹여 싸움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급히 입을 열었다.

 

" 이 오매 도우는 불행하게도 화산일괴란 놈의 백골차에 쏘이고 중독이된 채로 꾀 오랜

시간이 경과되었소. 시간이 몹시긴박했고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위급한 판인지라.

나는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 몸소 손을 써서 독기를 뽑아냈소.

다행히 나의 술법이 성공했으니 말이지 하마터면 영영 구출할 수 없을 뻔 했소! "

 

너의 사모는 이런 말을 듣더니 얼굴빛이 유난히 심각하고 침통해졌다.

오매천녀를 번개같이 흘끗 처다보는 눈초리는 서릿발처럼 싸늘했고.

서슬이 시퍼런 칼날같이 매서웠다.

그러면서도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듣자니. 화산일괴의 백골차라는 독기는 무시무시한 기독으로서 세 시간 이내에

그놈 자신이 쓰는 해독약을 얻지 못하면 절대로 살아나지 못한다는데.

당신에게는 그것보다 더 휼륭한 구급법이 있으셨군요! "

 

"허허허 ....... 허허........ "

 

나는 웃어넘기는 도리밖에 없었다.

 

" 정말 기적적이었소 나는 무의식 중에 순양진기를 써볼 생각을 하고

독기를 뽑는 술법을 썼더니 과연 그 효력이 발생했소! "

 

너의 사모는 여전히 냉소할 뿐이었다.

 

" 흥! 정말 천하에 있을 수 없는 기적이었군요!

당신은 불원천리하고 여기까지 오시더니 오매 도우를 구출하시게 됐는데.

애석하게도 천룡검 대(戴)선생까지는 사지에서 건져내시지 못했으니

그게 일대 유감이 아니에요? "

 

너의 사모의 이렇게 비꼬는 말을 듣자.

나는 내심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 어려웠다.

이때 오매천녀는 얼굴빛이 갑자기 창백하게 변하여 발딱 몸을 일어키더니

너의 사모에게 말했다.

 

" 상관 부인! 그런 말씀은 그렇게 경솔히 하실 말씀이 아닙니다!

두분 부부께서 여러 사람의 생명을 구하러 와주신 줄 알고 감격해 마지 않았을 뿐인데.

상관 도우가 단지 나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이 무서운 불바다에 뛰어드셨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너무나 지나친 오해입니다! "

 

"흥! "

 

너의 사모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매정스럽게 말을 던졌다.

 

" 뭐라고?  우리 부부의 일이 오해라니?

그러면 제3자인 당신이 우리들 부부 사이를 더 잘 아신다는 말씀인가요? "

 

오매천녀는 너의 사모의 말을 듣자마자. 

치밀어 오르는 모욕감과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백지장 같이 하얀 얼굴에 새파란 핏대를 일으켜 세우며 한참 동안이나 상대방을 쏘아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돌연 오매천녀는 바윗돌 위를 더듬더듬 하더니 손에 잡히는 보검을 선뜻 뽑아 들고

자기 목을 가로 질러서 찔러버리려는 것이었다.

나는 흘끗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전후를 헤아릴 겨를도 없이 다짜고짜로 맹렬한 손바람을 일어켰다.

쨍그렁! 하는 쇠소리와 함께 그 보검한 자루는 내 억센 손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오매천녀의 손에서 땅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오매천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했다.

구슬픈 음성으로 오장이 끊어질 듯한 말을 했다.

 

" 기구한 운명과 박복한 신세가 구차스럽게 잔명을 보전해 볼 생각을 한 것이 잘못이었어요!

오로지 그것 때문에 현부현처께 오해를 생기게했으니

차라리 내 한 몸이 없어져서 두 분의 미묘한 감정과 오해를 풀어드리는 편이 ........ "

 

나는 오매천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오매 도우. 목숨을 끊다니 ..........

그런 경솔한 생각은 하지 마시오!

단지 나와 그대의 마음만이 광명정대하다면 무엇 때문에 남의 하찮은 말을 겁낼 필요가 있으리까?

시비곡절이나 우리들 사이의 진상이 언젠고 간에 자연 밝혀지는 날이 있을 게 아니겠소. "

 

나는 노기에 가득 찬 음성으로 너의 사모에게 말했다.

 

" 당신. 당신도 어린아이가 아닌 바에야 어찌 그렇게 옹졸한 마음을 먹을 수 있단 말이오.

이래도 당신의 남편인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거요?

이 쑥스러운 꼴을 외부의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무림의 웃음꺼리밖에 더 되겠소? "

 

너의 사모는 끝까지 자기 성미와 고집을 버리지는 못했다.

여전히 독살스런 말투로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 흥! 그럼 지금까지 당신의 하신 짓은 남들이 보아도 무림의 웃음꺼리가 되지 않는단 말씀인가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살을 맞비벼대고 어떤 행동을 서로 주고받고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은 정말 모르신단 말씀이오? "

 

나는 이 엄청난 말에 대답할 바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치미는 분노를 참기 어려워서 호통을 쳤을 뿐이었다.

 

" 당신은 어째서 이다지도 억지 소리를 함부로 하는 거요? "

 

너의 사모는 극도로 흥분했다.

 

" 상관학! 나는 오늘에야 그대라는 한 인간을 똑똑히 안 셈이야!

좋아! 우리는 이대로 헤어지는 것이 .........

그대가 누구를 사랑해서 따라 가든 ........

또 내가 누구를 좋아해서 쫓아가든 .........

서로 상관할 것이 없이 ........

어쨌든 나는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두 번 다시 그대 얼굴을 보지 않을 테니까. "

 

말을 마치자.

그 이상 아무 변명도 듣기 싫다는 듯.

사모는 발길을 돌리더니 그대로 날듯이 어디론지 사라져버렸다.

그자리에 단둘이 남게 된 오매천녀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얼빠진 사람같이 한동안 어리둥절했을 뿐.

멍하니 서로 대하고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어떻게 수습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나와 오매천녀는 두 번 다시 주안술을 써서

얼굴을 젊게 하는 것은 단념하고 본래에 지닌 면목을 회복하고.

각각 은거 생활을 하며 절대로 강호에 발을 디디지 않키로.

피차간에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