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29장 해중괴물(海中怪物)

오늘의 쉼터 2013. 12. 13. 22:30

정협지(情俠誌)

 

29 해중괴물(海中怪物)

 

바다속 괴물

 

 

 

남해어부는 긴 이야기를 끝내더니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상 말하기가 자못 괴로운 모양이었다.

훌쩍 한쪽 손을 휘저어서 노영탄과 연자심에게

배를 내려서 육지로 올라가라는 분부를 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스승이 시키는 대로 아무 소리도 못하고

단숨에 강기슭으로 뛰어올라서 말까지 육지로 끌어 올렸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다시 배에 돛을 펴더니.

또 한번 두 젊은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친히 노를 저어 뱃머리를 돌리고 순풍을 따라서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응유산은 본래가 바다를 향해 외롭게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자그마한 섬이었다.

바로 연운항 밖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연운항에서 배를 타면 불과 2. 30리 길밖에 되지 않았다.

섬 위에는 괴상한 형상을 한 바윗돌이 삐죽삐죽 솟아 있어서 여간 올라가기 어려운 곳이 아니었다.

비록 육지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고 하지만 인적이 지극히 드물고.

고작해야 해적이나 유민 따위가 때때로 섬을 찾아 잠시 몸을 숨기는 데 불과했다.

섬 위는 산세가 험준할 뿐만 아니라 고목이 빽빽하게 들어차 숲을 이루었고.

또 하늘을 찌르고 있는 고목 숲에는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쉴새없이 무수한 해구와

큰 매들이 자리를 꾸미고 깃들어 사는 지라 이섬을 응유산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그 당년에 개세천왕 연약파는 아내 되는 백화천녀와 함께 10여 명의 회양방 비도들을 거느리고

비밀리에 보물을 운반해 가지고 아무도 알지 못하게 이 섬 위에 올라갔었다.

그리고 필사적인 힘을 기울여서 간신히 한 군데에다가 보물을 감춰둘 만한 장소를 마련한 것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연약파는 마침내 잔혹한 손길을 뻗쳐서 데리고 갔던

비도 10여 명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비밀이 누설 될 것을 방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까닭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사실이 결국은 회양방 비도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또 강호에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보물을 감춰두었다는 확실한 지점을 똑바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스승 남해어부와 작별한 후 회양 지구로 직행하여

불과 반 달 남짓한 동안에 이미 홍택호 호반에 다다랐다.

둘은 남해어부의 분부대로 적화주로 돌아 들어가서 오매천녀를 찾아 보기로 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한 그루 고목나무를 찾아서 배를 매놓고 나서야 호수로 들어갔다.

막 갈대 숲 가까이 다다랐을 때 벌써 물결소리가 요란스럽게 나더니

과연 숲 속으로부터 자그마한 나룻배 한 척이 불쑥 뚫고 내달았다.

그 위에 타고 있는 것은 대림. 대문 두 아이들이었다.

두 어린 아이들은 노영탄과 연자심을 흘끗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서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못하다가.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린듯 소리쳤다.

 

"영탄 아저씨! 자심 아줌마! "

 

노영탄도 급히 손짓을 하면서 외쳤다.

 

" 대림아! 대문아! 할머니께서는 댁에 계시냐? "

 

" 계십니다 ! 계셔요! "

 

대림이 대답하면서 뱃머리를 돌려 앞장을 서서는 두 사람을 적화주로 안내하며 노를 저었다.

젊은이 둘을 태운 배가 적화주에 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계절이 달랐고 배위에 탄 사람도 달랐다.

어느틈엔지 1년이란 세월이 흘러갔고 이 얼마 안 되는 세월 속에서

이렇게 많은 우여곡절이 생겨난 것이었다.

대림과 대문 두 어린아이들의 철부지 같은 생각에는.

노영탄과 연자심이 갑작스레 나타난 것이 그저 기쁘고 놀랍기만 했다.

두개의 수수께끼 같은 의문이 이 두 어린이들의 가슴속에 뭉쳐져서

아무리 생각해도 좀처럼 풀리지를 않았다.

맨 처음에는 노영탄이 감욱형을 데리고 적화주에 나타났다.

그 다음에는 악중악이 연자심을 데리고 나타났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다시 노영탄과 연자심이 함께 왔다.

그 뿐만 아니라 이들 네 사람은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그 외모가 판에 박은 듯이 비섯한데다가 때없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품이

심히 수상쩍고 보니 두 어린아이들로서는 어리둥절 이들 네 남녀 사이가

어떻게 된 셈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여태까지 두 어린아이들은 노영탄과 감욱형이 한 쌍이요.

악중악과 연자심이 한 짝이라고만 밑어 왔었다.

그런 것이 뜻밖에도 이번에는 노영탄과 연자심이 돌연 다정스럽게 나타나고 보니

두 어린아이들은 무엇이 무엇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인즉. 인간의 감정의심한 변화란 것은

그 어떤 사람도 그것을 똑바로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치 하늘가에 떠 있는 구름과도 같이 무시로 그 형상이 변하기 쉬운 인간의 감정이란 것은.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곤란함은 물론 때로는 당사자 자신들도 그것을 명백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안 되어서.

두 어린아이들은 노영탄과 연자심을 안내하고 섬 언저리 언덕 위로 올라섰다.

넷이서 배를 떠나 섬 위로 올라서자마자.

오매천녀는 벌써 숲 속으로부터 걸어 나오며 노영탄과 연자심을 바라보더니.

극도의 놀라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노영탄은 오매천녀가 말을 꺼내기 전에 선뜻 앞으로 달려가서

여태까지의 경과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은 오매천녀는 노라운 가운데서도 기쁨을 금치 못했으며.

대문 대림 두 어린아이들은 그 옆에서 정신을 잃고 노영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연자심은 한참 동안이나 서 있다가 마침내 보물을 감춰두었다는 지도를 꺼내 들고

그것을 오매천녀에게 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 이것이 바로  보물을 감춰둔 곳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이모님께서 한 번 자세히 봐주세요! "

 

오매천녀는 지도를 펼쳐들고 한번 유심히 훑어보고 나서

다시 연자심에게 돌려주며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의 옛날 친구인 남해어부 상관 선생께서 너희들 보고 빨리 가보라고 하셨으니.

나는 너희들을 여기 더 머물러 있게 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감윽형의 행방이 몹시 걱정스렸다.

너희들은 둘은 여기서 응유산으로 가는 도중 조심조심 감욱형의 행방을

탐지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오매천녀는 노영탄에게 고개를 돌리며 특히 당부하는 듯

가라앉은 음성으로 차근차근히 덧붙였다.

 

"너는 비록 악중악이란 청년에 대해서.

지난날의 모욕을 씻은 듯이 잊어버리고 원수로 삼지 안고 있다지만

악중악 그 자신은 이번에 당한 일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고 있을 게다.

더군다나 너와 연자심이 그 청년을 내버리고 달아나버린 셈이 되었으니

그 청년은 이것이 뼈에 사무치도록 아프고 원통했을 것이다.

그가 일단『숭양비급』을 터득하고 연마해서 제것으로 만들어 무술이 놀라운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너를 찾아서 복수를 꾀할 것이다.

너의 사부님께서 네게 응유산에 숨어 있으며 무술이나 더 닦으라고 하셨다는 것도.

이렇게 앞을 내다보시는 까닭으로 분부하신 말씀 같으니

너는 이 점에 특별히 유의해야만 될 것이다. "

 

노영탄은 공손히 몸을 굽히고 그 지시에 복종하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오매천녀는 이번엔 연자심에게 당부했다.

 

" 너는 이제야말로 너의 돌아갈 곳을 찾은 것 같으니.

나도 한시름 잊은 것만 같다.

그러나 너는 내가 지금 하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사람이란 자기의 감정을 아무렇게나 희롱해서는 못 쓴다는 것이다.

아차하고 한번 발을 잘못 디뎠을 때에는 이미 그것은 천추의 한이 되는 수가 많은 것이다. "

 

오매천녀의 말을 듣고 난 두 젊은이는 똑같이 얼굴이 새빨개졌다.

둘이 똑같이 머리를 푹 수그린 채 말이 없었다.

오매천녀는 두 젊은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자그마한 보따리 한 개를 꺼내서 노영탄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 너희들은 이번 길을 떠나면 꽤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내가 비제품으로 간직해 두었던 냉향단을 너희들에게 줄 터이니

위급할 때 쓰도록 몸에 잘 지니고 가거라! "

 

노영탄과 연자심은 두말없이 선뜻 그것을 받아넣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마치자.

즉각 오매천녀와 작별하고 호수 밖으로 나왔다.

한여름의 날씨 속에서 연꽃 향기가 가는 곳마다 두 젊은이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언덕으로 올라서자 그들은 서슴치 않고 말을 북쪽으로 향했다.

이틀이 지난 뒤에 노영탄과 연자심은 무사히 연운항에 도착했다.

연운항은 바다로 나가는 어귀에 자리 잡은 부두로서.

인구가 조밀하고 상업이 번창한 고장이었다.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늘어서서 돗대가 하늘을 찌르고 특히 이고장 사람들이

'왜이'라고 부르는 일본인 상선까지 때없이 드나드는 것이 색다른 풍경이기도 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도 줄곧 여태까지의 옷차림이 변하지 않았고.

무기는 몸 깊숙히 감추어 외양만 보면 조금도 사연이 있어서 길을 가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시끄러운 경우를 당하지 않고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이날 전심때쯤 되어서 두 사람은 항구 부둣가에 있는 큰 거리로 들어셨다.

주루를 찾아서 식사를 할 작정이었다.

그들이 찾아 들어간 주루는 이름이 열빈루라 했다.

큰 길거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그 정면은 바다와 항구에 임하고 있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주루로 올라가서 바다에 제일 가까이 접한 창가를 택해서 마주 앉았다.

음식 몇 가지를 되는대로 시켜놓고 둘은 환담을 나누면서 창밖 경치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때는 여름이 한 고비였는지라 날씨가 푹푹 찌는 듯 더웠다.

부둣가에 빽빽하게 들어찬 돛대 사이로 시끄럽고 수선스런 소음이 쉴 새 없이 들려왔고

눈을 멀리 저편으로 돌리면 검푸른 바닷물이 하늘 가의 구름과 잇닿아서.

물이 하늘에 접하고 하늘이 물에 접해서 단지 망망한 한 조각의 남빛 색채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물과 하늘이 서로 연접하는 바로 그 경계선 위에서 깜빡깜빡하며 한 덩어리 육지 같은

그림자가 노영탄과 연자심의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것은 마치 한마리의 큼직한 거북이가 잔등이만 물 위에 드러내고

출렁출렁 몸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흠. 바로 저것이 응유산이로구나! '

 

이렇게 추측하면서 두 사람이 말없이 창 밖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때.

주루의 심부름꾼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 올라왔다.

노영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뜸 물어봤다.

 

" 여보게! 응유산엘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자네는 알겠네 그려? "

 

그 심부름꾼 녀석은 노영탄의 말을 듣더니 얼굴빛이 별안간 창백해 지면서

노영탄의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놀랍다는 듯이 반문했다.

 

" 손님께선 응유산엘 가시렵니까? "

 

심부름꾼 녀석의 깜짝 놀라는 기색을 보자.

노영탄과 연자심은 그가 하는 말에 까닭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서로 시선을 흘끗 마주치면서 한동안 우두커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노영탄은 그래도 태연하게 고개를 끄떡끄떡해 보였다.

심부름꾼 녀석은 상대방이 말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연거푸 급히물었다.

 

" 손님께선 거길 뭣하러 가시려고 하시나요? "

 

" 그건 왜? "

 

" 가시지 않는 게 좋으실 걸요! "

 

노영탄은 음성을 나지막하게 가라앉히면서 천연덕스럽게 꾸며댔다.

 

" 흥. 그래? 나는 다른 일이 아니고 집안 노인께서 병환이 나셨는데.

의생이 권하기를 해도에서 나는 약초 한 가지를 구해 잡수시면 제일 좋다고 해서 ..........

그런데 이 약초란 것은 매가 알을 까는 데서 함께구한 풀이야만 되고.

그 의생의 말이 이런 약초는 응유산에 가야만 구할 수 있다고 하며.

또 응유산에는 매가 알을 많이 깐다기에 그래서우리는 여기까지 와서

응유산에 올라가서 그 약초와 매의 알까지 구해볼 작정으로 그러는 걸세! "

 

심부름꾼 녀석은 그 말을 듣더니.

그제서야 무엇인지크게 깨달았다는 듯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네. 그러세요? 그러나 제가 뵙건데 손님께선 외방에서 오신 분이어서.

이 고장 형편을 통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알고보니 그런 까닭이 있으시다니 솔찍히 말씀드립죠! "

 

이렇게 말을 꺼내면서도 심부름꾼 녀석은

자기 자신이 먼저 어떤 무시무시한 공포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는 듯.

괴상한 표정을 하고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계속했다.

 

" 본래. 저 응유산이란 여기서 거리가 그다지 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섬 속이 하도 험준하고 무시무시해서 좀처럼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연 거길 올라가는 사람도 드물고 또 배들이 그 근처를 지나다니면서도

거들떠 보려 하지도 않는 괴상한 섬입니다.

그런데 말씀이죠.

바로 석 달 전에. 한 가지 괴상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 날이 저문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에 한 척의 고기잡이 범선이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이 응유산 동쪽을 지나갈 때.

홀연 바다밑에서 어떤 무시무시한 힘이 배 한 척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듯 하더니

마침내 이 배가 섬 위로 끌려 올라가고 말았습니다.

그 배 위에는 모두 다섯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그때 마침 선창 안에서 잠이 들어 있었고

다른 두 사람은 배꼬리에 있는 갑판 위에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별안간에 배가 어디론지 삼켜져 가는 것을 느끼기는 했으나

하도 당황해서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랐습니다.

두 사람은 노를 똑바로 잡으려고애쓰면서 고함을 질러 선창 안에 있는 세 사람을 불러 깨웠습니다.

그래서 다섯 사람이 힘을 합쳐서 뱃머리를 돌려보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배는 점점 섬을 향해 끌려 들어갈 뿐이고.

물밑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날은 점점 깜깜해지고 섬 동쪽으로는 온통 깍아 세운 것 같이

삐죽삐죽한 절벽들 뿐인데다가 서편에서 희미하게 비치던 햇빛마저 끊어져버려서

시커먼 어둠 속으로만 끌려 들어가고 있으니

이 어선은 그대로 가다가는 갈데없이 절벽에 부딪혀서

파선을 해버리는 도리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다섯 명의 어부들은 어렸을 적부터 연운항에서 잔벼가 굵은 사람들이며

고기잡이의 명수인데도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습니다.

응유산 근처에 물결이 괴상하고 무섭게 맴도는.

그런 위험한 곳을 평소에 본 일이 없는 이 다섯 명의 어부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까닭을 알 수 없었고 또 이 생각 저 생각 해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고기잡이 범선이 시커먼 어둠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면서 아차 하면

바로 절벽을 들이받게 되려는 바로 그 찰나에 이상하게도 흘연 물 밑으로부터

난데없이 십여 장이나 되는 높은 물기둥이 뻗쳐 올라왔습니다.

리고는 그 물기둥의 뒤를 따라서 음충맞고 무시무시하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바다 밑 바윗돌 틈으로부터 울려 나오더니.

무엇인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물건이 불쑥 물 위로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그 괴상한 물건은 얼핏 보면 물고기 머리 같기도 하고 또 사자 머리 같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다섯 명의 어부들은 그것을 똑똑히 보지도 못했고.

또 무엇인지 분간키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단지 얼핏 본 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한 개 커다란 머리뿐인 것 같았는데.

그 크기가 배 한 척의 절반이나 됨직했고 넓적하고 둥그스름한 머리가

입을 딱 벌리고 있는 품이 마치 큼직한 대문짝을 열어젖힌 것 같았으며

그 속에는 두 줄로 늘어선 무시무시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내다보였고

콧구멍이 등룡(燈龍)만큼이나 큰데

그 콧구멍에서는 쉴새없이 물기둥을 쭉쭉 내뿜고 있었으며

두 개의 둥글둥글하고 무서운 눈깔은 주먹만큼이나 커다란데

번쩍번쩍하는 끔찍한 광채를 발산하며 머리에는 한 무더기의

기다란 털이 덥수룩하게 뻗쳐 있더랍니다.

이것도 물 밖으로 불쑥 솟은 머리를 보았을 뿐인데.

머리에서 목들미까지는 온통 시커멓고 번쩍번쩍하는 가죽으로 뒤덮였으며.

아랫도리 몸뚱어리는 물 속에 잠겨서 보이지 않으니

대체 얼마나 큰 괴물인지 알 수 있었겠습니까?

이 괴물은 그 무서운 입을 딱 벌리고 쉴새없이 어선을 향해서 숨을 들이쉬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어선은 앞으로 빨려 들어가서 눈 깜짝할 사이에

그 괴물의 입술 근처까지 끌려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다섯 명의 어부들은 이 괴물의 형상을 한번 보자마자.

그 징글징글하고 무시무시한 모습에 놀라 자빠져서 어쩔줄 몰랐고.

그와 동시에 지독하게 빨아들이는 힘 때문에 자기네들의 몸이 송두리째

먹혀버리든지 할 것 같아서 다섯 사람은 똑같이 뱃줄을 잔뜩 움켜잡고 버티기는 했으나

하도 당황한 판인지라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다섯 명 어부 가운데서 제일 나이도 젊고 물에도 가장 익숙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이 사람은 침착하게 그리고 머리를 대담하게 써서 정새를 똑바로 내다봤습니다.

배가 이미 이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몽땅 빨려 들어가고 있으니.

이찰나에 재빠르게 몸을 빼지 않으면 배도 사람도 깡그리 그 괴물에게

씹혀버릴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리하여 이 사람은 마침내 생사를 하늘에 맡기고 풍덩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어서

부서진뱄조각 한 개를 닥치는 대로 움켜잡고 있는 힘을 다해서 뒤로 돌아서

헤엄을 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천신만고 끝에 헤엄을 쳐서 불과 얼마 가지 못했을 때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으지끈! 뚝딱! 쏴!

그야말로 도깨비의 장난 같은 갖가지 괴상한 소리가 뒤범벅되어서

천지가 진동하는 듯했고 그 사람이 간신히 머리를 돌려 바라다봤을 때에는

 어찌나 놀랐던지 간담이 터지는 듯 서늘했다고 합니다.

한 척의 어선이 더디어 그 괴물 아가리에 말려 들어가 무시무시한 이빨에 물려서.

처참하게도 두 동강으로 끊어져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같이 배를 탓던 네 사람의 어부들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게 됐으니

갈데없이 그 괴물의 무시무시한 아가리 속으로 삼켜져 들어가서 뱃속 깊숙히

쳐박혀버린 게 뻔한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 어부는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헤아릴 만한 정신도 없이.

또 금세 그 괴물이 자기마져 삼켜버리려고 뒤를 바싹 쫒아오는 것만 같아서.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해서 그저 앞으로 사지를 허우적 거리며 헤엄쳐 나왔다고 합니다.

다행히 천우신조인지 그 괴물이 그 이상 쫒아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자.

다시 몇 장 거리를 멀찌감치 헤엄쳐 나와서 그제서야 다시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때 그 괴물은 수면 위에 몸뚱어리를 드러내고 마치 큼직한 산더미가 하나 둥둥떠 있듯이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어부는 이때 비로소 멀리서나마 괴물의 정체를 어느 정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는데.

전신이 새카만데다가 무슨 끈적끈적한 약이라도 바른 듯 윤기가 번지르르 흐르고 배 밑으로는

짤막한 다리가 네 개.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에는 쇠갈고리같이 괴상하게 생긴 것이

오리발처럼 펼쳐져서 붙어 있었으며 꽁무니에는 한 줄기 기다란 꼬리를 질질 끌면서

저쪽 섬 위로 어슬렁어슬렁. 꿈틀꿈틀. 무시무시하게 기어 올라가더랍니다. "

 

주루의 심부름꾼 녀석이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들창 밖 아래층으로부터 왁자지껄

여러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무슨 괴상한 사건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심부름꾼 녀섯도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어버렸으며.

노영탄과 연자심도 얼떨결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바라다 보았다.

 

"별안간 무슨 일일까요?"

 

연자심의 깜짝 놀라는 눈초리가 샛별처럼 반짝이며 심히 매력적이었으나.

노영탄은 그 매력을 느끼기보다 멀리 앞을 휘둘러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 글쎄요! 이상한데 ....... "

 

이 열빈루라는 주관은 본래 큰 거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으나.

정면이 부둣가로 향하고 있어서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자면 부둣가의

온갖 풍경이 손에 잡힐 듯이 바라다보였다.

바로 부둣가 나루터에서 바다와 잇닿은 제일 가까운

언덕 위에 무수한 사람들이 웅성웅성 들끊으며.

무엇인지 물 속을 유심히 들여다보느라고 일대 소동을 일어키고 있었다.

부둣가에서 요란스런 아우성 소리가 일어나고 있을뿐만 아니라.

이편큰 거리에서는 또한 무수한 사람들이 조수처럼 몰리고 밀리고 하면서

부둣가를 향해 달음박질을 치느라고 더 혼잡한 분란을 일어키고 있었다.

거기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그래서 노영탄과 연자심이 주루 2층에서 아무리 고개를 창문 밖으로

휘두르며 바라다보아도 대체 무슨 사고가 발생했는지 정확히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이때 주루에서도 조용히 앉아 있던 여러 손님들이 벌집을 쑤셔놓은 것같이

자리를 뜨고 웅성웅성 제각기 셈을 치르고 아래로 달려 내려가느라고

또한 혼잡을 일어켰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남들이 떠들썩하는 바람에 까닭 모를 호기심이 동하여.

역시 그들을 따라 내려가서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노영탄은 심부름꾼 녀석에게 선뜻 이렇게 말했다.

 

" 우리. 잠깐 내려가서 구경 좀 하고 다시 올라올 테니

술과 음식은 그대로 제자리에 놓아두게나! "

 

심부름꾼 녀석도 어리둥절했다.

하던 이야기를 중간에서 끊어버리고 아래층에서

하도 요란스런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는지라.

녀석 역시 언제 이야기를 했었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창 밖을 내려다보느라고 저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 네! 네! 네! 아무 염려 마시고 ........ 어서 .......분부하시는 대로 ........ "

 

이 녀석도 얼이 다 빠진 놈같이 눈동자는 창 밖으로 쏠려 있으면서

되는대로 턱을 끄덕끄덕하고 대답을 할 뿐이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자면 노영탄과 연자심의 몸차림이 화려한데다가

그 태도가 점잖아서 어디로 보나 부잣집 귀공자와 아가씨의 품격이 뚜렷하게 드러났으니.

심부름꾼 녀석이 아무리 봐도 음식 값을 셈하지 않고 그대로 가버릴 사람들 같지 안았고.

또 설사 셈을 치르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말을 맡아두었고 보따리를 주인에게 맡겨두었으니

추호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이렇게 당부를 해놓고 곧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큰 길로 나서자.

둘은 조수같이 밀리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 한데 휩쓸려서

영문도 모르고 앞으로만 밀려 나갔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눈에 보이는 남녀노소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이.

넓은 거리가 미어지도록 부둣가를 향해서 밀려 나가면서.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알 수 없게 서로 무엇인지

물어보고 대답하고 떠들고 밀치고 고꾸라지고 일대 소동 속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형언키 어려운 극도의 공포와 긴장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사람의 물결 속에 휩쓸려 나가면서도 옆에서

어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한편으로 중년 사나이 둘이 밀려 나가고 있었다.

한 사람은 키가 작달막한데다가 그리 길지 않게 수염을 길렸으며.

또 한 사람은 몸집이 삐적 말랐고 키가 흘쩍 크며 머리에는 꼬리 달린 조그마한

벙거지를 얹졌는데 두 사람이 다 같이 대단치 않은 장사치들같이 보였다.

키가 작달막한 사람이 작은 체구를 연방 흔들고 비비꼬면서.

사람들의 물결 속에 휩쓸려 나가며 숨이 가빠서 씨근씨근 대면서도.

삐쩍마른 키다리 친구에게 계속 떠들어 대는 것이었다.

 

" 허. 그것참! 세상에 살다가 별일을 다 당하네!

장서방네 맏아들 녀석도 바로 그 배를 타고 있었다니!

그때. 그때 말일세. 그배가 떠나려고 했을 때.

장서방은 아들 녀석을 태워 보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쓰면서 말렸다는데 ........

글쎄! 그녀석이 기어이 그 배를 타고 한번 가보겠다고 막무가내로 애비 말을

듣지 않았다내 그려! 그러더니 오늘 이렇게 처참한 꼴을 당하고야 말다니 ........ "

 

꼬리 달린 벙거지를 뒤통수에 얹은 삐쩍마른 키다리 친구도 앞으로 밀려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목을 비비틀고 몸뚱어리를 뒤틀며 맞장구를 첬다.

 

" 그것 참! 그러게 말일세! 장서방으로 말하면 나이가 적은 사람인가?

육십이 내일 모래인 늙은 영감이 아들 녀석 하나 갖고 고생하며 키워가지고.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말년에 와서 이런 괴상한 변고를 당하게 됐으니.

영감의 심정이야 얼마나 기막히겠나! "

 

이러쿵저러쿵. 주거니 받거니 떠들면서  그들은 그대로 사람의 물결 속에

휩쓸려 앞으로 앞으로 조수처럼 밀려 나갔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비록 사건의 내용을 분명히 알 수는 없었지만.

대강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이 갔다.

필시 또 어떤 고기잡이 배가 저 바닷속의 괴물과 맞닥뜨렸다는 이야기 같았다.

얼마 안 되어서 노영탄과 연자심은 부둣가 끝까지 밀려 나왔다.

바로 이 항구 바닷물과 맞닿는 지점이고 보니.

기다랗게 바닷물 속으로 뻗쳐 나간 나룻터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숨이 막힐 듯한 아우성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을 뿐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사람의 틈에 억지로 끼어 있으니.

그 이상 더 밀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무엇이 무엇인지.

앞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통 내다볼 도리가 없었다.

바로 이때였다.

 

" 비켜요. 비켜! 길을 틔워요! "

 

난데없이 목청이 터질 듯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그 뒤를 이어서 꽹꽹꽹! 요란스런 징소리가 몇 번인지 연거푸 울렸다.

그제서야 노영탄과 연자심을 양편에서 벽처럼 에워싸고 있던 사람의 떼가 우르르

이편 저편으로 흩어지기 시작하며 그 가운데로 한 줄기 길이 틔워졌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머리를 돌려 바라다 보았다.

 네 사람의 부둣가 인부 같은 사람들이 칼을 뽑아 들고  몸차림도 가뜬히 하고.

양편으로 갈라져서 연방 호통을 치며 길을 틔우느라고 애쓰고 있는 것이었다.

네 사람의 뒤로는 또 여덟 사람이 교자 한 채를 떠매고 앞으로 나오고 있었으며.

교자 뒤로도 다른 여러 인부들이 따르고 있었다.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며 길을 틔우라 고함을 지르는 무리 한가운데

교자 안에는 알고보니 바로 이 고장의 현지사가 타고 있었다.

 

'흠?  별일인데!  현의 지사까지 거동을 하고 ........ '

 

이런 셍각을 혼자 하면서 노영탄은 연자심과 함께 그 틈을 타서

그 현지사가 타고 있는 교자 뒤를 바싹 따랐다.

그리고 보니까. 마침내 사람들의 물결을 뚫고 부둣가 나룻터 앞으로 바로 나서게 되었다.

이렇게 바닷물이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가까운 지점까지 나오게된 노영탄과 연자심은

똑같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둣가 수면 위에는 산더미 같은 물건이 처량하게 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바로 한 척의 어선이 부서져버린 잔해였다.

다른 몇 척의 고기잡이 나룻배들이 그 부서지고 찌그러지고 한 어선의 잔해를

끌어올리고 있는 판이며 그것은 저 무시무시한 바닷속의 괴물이 짓씹어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뱃머리는 어디로 갔는지 잘려져 달아났으며 돛대도 노도 꺽어지고 부서지고 해서

폐물이 돼버린 목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 같을 뿐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방금 주루에서 심부름꾼 녀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까지도

반신반의했었다.

심부름꾼 녀석이공연히 이야기를 보태서 허풍을 떠는 것이겠지 했더니.

이제야말로 처참하게 부서진 어선의 꼬락서니를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게 됐으니.

과연 심부름꾼 녀석의 말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었다.

부둣가 나룻터 언덕 위를 다시 휘둘러보았다.

거기서는 남녀노소 10여 명이 몇은 땅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또 몇은 발을 땅에 붙이지 못하고 미친 사람같이 껑충껑충 뛰면서.

하늘을 우러러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노파 서넛은 얼마나 오랫도안 울면서 악을 썼는지

목청이 터져버린 듯 갈라진 목구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을

그대로 벙어리처럼 입만 딱딱 벌리고 있었다.

나룻터 위에서 구경하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은 이 통곡과 비명 소리에

가슴이 찢기는 듯 땅이 꺼지도록 탄식을 하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 여보게. 그만 진정하게! 아무리 그래봤댔자

죽은 사람이 되돌아 올 수도 없는 일이고 ........ 자. 그만 ...... "

 

친구를 부축해서 일어키며 이렇게 달래는 사람들도 있었다.

 

" 고기를 잡으로 나갔다가 배에서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인 모양이죠? "

 

연자심이 노영탄의등들미에서 나지막한 음성으로 귓전에다 속삭이 듯 말했다.

노영탄은 고개를 몇 번 끄덕끄덕했을 뿐

늙은이. 부인네. 어린것들 ........

생활의 주춧돌이 일조일석에 송두리째 뽑혀버린 그들의 암담한 앞날을 생각했을 때

가엽고 딱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을 뿐이었다.

 

" 아휴! 대체 이게 어떻게 되는 조화야? 생사람을 잡아먹다니 ........ "

 

땅이 꺼지도록 한 숨을 쉬는 젋은이도 있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의 옆에서는 흘연 늙고 힘없는 음성이 구슬프게 들려오기도 했다.

 

" 허! 이런 빌어먹을! 이게 무슨 괴상한 운수란 말인가?

어디서 이 따위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 가지고 ...........

이 몇 달 동안에 우리 항구의 고기잡이 배들이 큰 것 작은 것 벌써 십여 척이나

송두째없어졌으니 이대로 나가다간 고기나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조리 굶어 죽어야지 다른 도리가 없겠는 걸! "

 

머리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니.

수염도 머리털도 눈처럼 하얀 노인이 머리를 정레절레 흔들며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 이렇게 중얼중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에서 또 한 명의 중년 남자가 노인의 말을 받았다.

 

" 그러게 말입죠! 이맘때면 살찐 물고기들이 바다에 깔리는 판이니.

우리들 고기잡이는 이 한 철을 바라고 사는 건데.

어디서 이 따위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서 생사람을 잡아가니 .......

이건. 정말 견딜 수 없는 노릇이죠 ! "

 

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 다른 것은 다 그만 두고. 죽은 사람이 불쌍하다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냔 말이야?

늙은이 어린이들  ........

앞으로 뭘 먹고 누구를 의지하고 산단 말이야? "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속에서 이런 말도 뛰어나왔다.

 

"바다 위에 이 따위 괴물이 나타나서 지랄을 치는데도.

관부(官府)에서는 어째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는 거야? "

 

먼저 말을 꺼낸 백발 노인이 또 입을 열었다.

 

" 자네들. 관가를 원망할 건 없다네!

그 놈의 괴물의 전신이 철석같이 단단해서 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어야지!

지난달만 하더라도수사(수사)들을 소집해서 이십여 척의 병선을 만들어 가지고

그 놈을 둘러싸고 공격해 보려고 했지만 그놈은 요지부동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도리어 육칠 척의 어선만 그놈에게 물려서 부서져버렸으니

관가에선들 무슨 도리가 있겠나 ?

초조하게 근심을 하고 있을 뿐이지 ........

하! 그것 참! 그놈이 뭣인지는 몰라도 관음대왕(觀音大王)이라도 나타나기 전에는

어떤 사람도 항복시키기 어려울 걸세! "

 

이 사람이 한마디 저 사람이 한마디.

쉴새없이 탄식과 원망이 되풀이 되고 있는 나룻터에서는

별안간 또다시 요란스런 징소리가 일어났다.

현지사가 현장을 조사하고 죽은 사람의 가족들을 거느리고.

교자 위에 올라앉아 현공소(縣公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교자의 뒤를 따라서 긴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거기 따라서 군중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노영탄과 연자심도 사람의 물결 속에 다시 휩쓸려 큰 거리로 나와 영빈루 주관으로 되돌아왔다.

심부름꾼 녀석은 두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보더니.

급히 맞아들이며 이렇게 말했다.

 

" 두 분 손님. 술과 음식은 안으로 들여다가 다시 따뜻하게 데우라고 했습니다!

제가 곧 내다 올릴 테니 천천히 더 쉬어 가십쇼. "

 

노영탄은 아무 말도 없이 머리만 끄덕끄떡하고 연자심과 함께 처음 앉아던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앉았다.

심부름꾼 녀석은 차 두 잔을 나란히 따라놓으면서 연방 다음과 같은 말을 또 꺼냈다.

 

" 이건 정말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기가 막혀서요!

아. 글쌔 두 분 손님을 모시고 막 바다에 있다는 괴물 이야기를 하고 있는 판에.

이런 소동이 또 일어날 줄이야 귀신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꿈엔들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이제는 두 분 손님께서도 똑똑히 보셨을 겁니다.

그 부서진 어선은 바로 오늘 꼭두세벽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배 입니다.

그런 것이 채 반나절도 되기 전에 바로 제가 말씀드린 그 무시무시한 괴물과 맞닥뜨린 겁죠.

그런데 점점 이상해지는 것은 그 괴물이 여태까지는 꼭 날이 저물 무렵애 나타나서

지랄을 쳤는데 이제는 대낮에도 버젓이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가니

이거야 어디 견딜 도리가 있겠습니까! "

 

노영탄은 그 말을 듣고 대뜸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바닷속에 있는 괴물은 응유산 부근에 있다고 하지 안았나?

그란데 저 어선이그 부근에서 괴물에게물려 부서진 것이라면.

어떻게 항구 안에까지 오게 된 것일까? "

 

심부름꾼 녀석이 얼른 대답하는 말이.

 

" 허! 그건 손님께서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번번이 어선이 바닷속의 괴물과맞닥뜨리게 될 때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배까지 송두리째 그놈의 괴물에게 짓씹혀서 부서져버리게 되는 건데.

그럴 때마다 조수가 밀려들게 되면 항구 안으로 다시 표류해 돌아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배들이 발견을 하고 다 부서진 선체를 끌어오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항구 밖으로 멀리 표류한 것을 간신히 발견하게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

 

심부름꾼 녀석은 다시 아래층으로 쿵쾅쿵쾅 거리며 내려가더니.

술상을 차려 쟁반에 받쳐들고 올라와서 주섬주섬 상 위에 벌여놓으면서 

시키지도 않은 말을 또 꺼냈다.

 

" 오늘 이 어선에는 모두 여섯 명이 타고 있었답니다.

모두가 위로는 늙은 아버지 어머니 아래로는 어린 자식들을 거느린 사람들이

이런 괴상하고 까닭을 알 수 없는 화를 입고 보니.

이야말로 얼마나 처참한 일이겠습니까! "

 

노영탄과 연자심은 묵묵히 그 말을 듣고 나서

머리를 옆으로 흔들면서 또 한번 탄식을 할 뿐

 마음속에 치밀어 오르는 가엽고 딱한 생각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둘은 총총히 전심을 끝내고 그 주루에서 나왔다.

 근처에 있는 여인숙에 방을 정해놓고 날이 저물자

저녁밥까지 먹고나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항구의 부둣가 널찍한 길을 끼고 천천히 걸으면서

한담으로 이따분한 기분을 풀어버리려고 애썼다.

비록 여름밤이 찌는 듯이 무덥다고는 하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더위를 쫓아주기에 넉넉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뭇 별들이 총총히 박혀서 깜박깜박 했으며 밀려들고 나가는 파도 소리에

항구 뒷골목의 정서가 촉촉히 쓰며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서 속에서도 무시무시한 광경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밤이었다.

노영탄은 여름 밤 하늘 먼 곳을 언제까지고 넋을 잃은 사람처럼 바라다보고 있더니

문득 연자심에게 이렇게 말했다.

 

" 허. 그것 참! 우리들이 이 고장에 도착하자마자

이따위 바다 괴물이 나타나다니.

이건 정말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소! "

 

연자심은 아래턱을 약간 까딱까딱하더니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꾸했다.

 

"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이 땅을 두드리며 아우성을 치는 광경은

정말 눈을 뜨고 볼 수 없더군요!

가엽고 딱하고 ....... 그런데 이 괴물이란 것이 이대로 난리를 친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어야 할지 모를 일이 아니겠어요? "

 

" 흐음! "

 

콧소리인지 대답인지 분간키 어려운 말로 입을 꽉 다문 채.

노영탄은 무엇인지 혼자서 궁리에 젖은 듯 한참 만에야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 그런데 말이오.

우리들이 이 고장에까지 오게 된 목적은 물론 응유산을 가자는 데 있는 것이지만

바다 괴물이 나타난다는 소리를 듣고 사실을 확인하게 되니

얼른 그곳까지 가보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간절하오.

첫째로는 우리들의 일도 봐야겠지만 겸사겸사해서 남을 위해

이런 흉악한 괴물을 처치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소! "

 

연자심은 그 말을 듣더니 왜 그런지 몹시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갸우퉁하고 심히 근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듣자니. 그 바다 괴물은 지독하게 무시무시한 놈 같은데요.

우리들이 섣불리 손을 댔다가 뜻과 같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큰일이 아니겠어요? "

 

노영탄은 자신만만하다는 말투였다.

 

" 뭘! 이고장 사람들의 말로는 그 괴물이란 것이 흉악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지만.

내 생각 같아서는 고작해야 그놈이 몸집이 무지무지하게 크고 힘이 또한 세다는

말에 불과한 것 갔소.

보통 사람의 힘을 가지고서야 물론 다루기 어렵겠지만 .

우리들이 한번 힘을 써본다면 십중 팔구 그놈을 처치해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소."

 

연자심은 역시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들이 어떻게 그곳까지갈 수 있다는 거죠? "

 

이 말을 듣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그 점이 바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노영탄은 한참 동안이나 말을 못하고 이 궁리 저 궁리 하는 모양이었다.

 

" 지금 배를 한 척 잡아탄다 하더라도 가겠다고 선뜻 나설 사람이 있을 리 없고 .....

또 우리는 남에게 우리 행동을 알려서도 안 될 것이니 .......

그렇게 되면 공연히 의심을 사게 될 것이고 ........어떻게 한다? "

 

연자심은 흘끗 노영탄을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푹 수그리면서 부끄럽다는 듯 조심조심 말했다.

 

" 어차피 우리들이 어디 가서 오래 머물러 있을 계획이라면.

숫제 배 한 척을 아주 사 가지고 한동안 소용되는 물건이나 많이 싣고.

우리들 끼리 배를 저어서 마음놓고가보는 게 훨신 낫지않을까요? "

 

그 말을 듣더니 노영탄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손벽을 탁 쳤다.

 

" 그건 정말 꿈꾸고 있는 사람도 번쩍 깨어나게 할 수 있는 근사한 생각인데 ......

됐소! 됐소! 대단한 기지에서 나오는 묘안이란 말이오. 핫핫핫! "

 

대견하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너털웃음을 치는 노영탄의 옆에서

연자심은 도리어 두 눈이 샐쭉해지더니

바늘 끝으로 꼭 찌르듯이 노영탄을 흘겨보았다.

 

"싫어요! 자꾸만 그렇게 놀리려만 드시면 ......

두 번 다시 그런 소리를 하시면 난 따라가지 않을 테에요! "

 

" 하하하 ..... 핫핫 ! "

 

노영탄의 웃음은 더 한층 커졌다.

 

" 소제(小第)가 어찌 감히 .....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리다! "

 

"그 소제. 소제 하는 말 듣기 싫어요! "

 

연자심의 눈에는 더욱 샐쭉해지면서 이렇게 한마디를 톡 쏘아 붙였다.

그들 둘은 정말 때로는 흉허물없고 철없는 오누이 사이 같기도 했다.

노영탄이 연자심보다 나이가 한두 살 아래라는 탓으로 노영탄의 입에서

누님이니 동생이니 하는 소리가 짖궂게 나올 때마다

연자심은 이떻게 딱 질색을 하는 것이다.

 

" 다시는 ........ 다시는 ..... 안 그러리다! "

 

" ................. "

 

연자심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말없이 노영탄과 어깨를 날란히 할 뿐이었다.

어느듯 나룻터에까지 와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항구 안을 두루두루 살펴보니.

나룻터 주변에는 작은 배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고

배 위의 등불이 수면에 비치고 어른거려서두 젊은이들의 청춘이 거기에 흔들리고.

설레고 있는 듯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였다.

항구 밖으로 먼 곳을 바라다보면 거기에는 반짝거리는 별빛 아래 그들이 찾아가야만 될

응유산의 그림자가 바닷물 속에 우뚝 솟아서 아득하게 바라다 보이면서도.

왜 그런지 음침하고 무시무시해 보이기만 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한동안 바닷가에 서서 경치를 구경해 가면서 전략을 상의한 뒤

이내 여인숙으로 되돌아 왔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