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27장 천하제일(天下第一)

오늘의 쉼터 2013. 12. 13. 21:54

 

정협지(情俠誌)

 

27 천하제일(天下第一)

 

숭양비급의 비밀

 

 

 

어떤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좋을지 벅찬 가슴속을 진정키 어려운 노영탄은.

스승의 곁을 떠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공교롭고 아슬아슬하고 위험했던

일들을 대강만 추려서 남해어부에게 보고했다.

남해어부는 꾀 오랫동안 묵묵히 위엄이 가득 찬 얼굴로 노영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너희들 아무래도 아직 나이가 어린지라

경험이 부족하여 저런 놈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내가 마침 이곳을 지나쳐 가다가 회양방 놈들의 화전을 발견하고

놈들이 작은 배들을 집결시킨 품이 수상쩍다 생각하여 빨리 달려와서

정세를 살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그렇지 못했다면 너희들이

어떻게 놈들의 포위망에서 탈출할 뻔 했느냐? "

정말 말로는 하기 쉬운 일이었으나.

기막히게 아슬아슬한 판국이었다.

말을 마친 남해어부는 새삼스럽게 노영탄과 연자심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들 두 젊은이의 전신에서는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었으며.

노영탄은 그때까지도 웃통을 벗어 젖히고 있었다.

남해어부는 걱정스럽다는 듯 급히 이렇게 말했다.

" 애들아. 너희들은 시급히 그 젖은 옷을 벗어라!

내 선창 안에는 아직도 몇 벌의 의복이 남아 있으니 우선 그중에서 아무것이나

갈아 입고 육지로 올라가서 다시 알맞은 옷으로 갈아 입도록 해라! "

노영탄이 그 말을 듣자.

선뜻 대답하는 말이.

"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들도 옷을 지니고 있사옵니다 .

말 잔등의 보따리 속에 넣어두었사온데

물에 젖지 않도록 유지로 단단히 싸기는 했사오나.

그대로 깨끗하게 있을지 그것이 염려되기는 하옵니다만 ....... "

말을 마치자 노영탄은 뱃머리로 걸어갔다.

두 필의 말 잔등에서 보따리를 끌어보았다.

다행히도 유지 속의 물건은 아직도 물에 젖지 않았다.

" 연소저. 빨리 이리 건너와서 옷을 갈아 입읍시다! "

그말을 듣고 연자심이 먼저 선창 속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 다음에는 노영탄도 선창 속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걸어 나왔다.

노영탄과 한빙선자 연자심이 옷을 갈아입고 선창 밖으로 나오자.

남해어부는 떡이며 과자며 마른 음식을 한 뭉텅이 꺼내서

그들 두 젊은이들에게 시장기를 면하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나서야 세 사람은 처음으로 배 위에 마음 편히 각각 자리 잡고 앉아서

피차간의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노영탄은 스승과 작별한 이후의 여러 가지 복잡하고 미묘하고 위험했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일일이 설명해서 남해어부에게 또 한번 들려주었다.

남해어부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머리를 끄덕끄덕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너희들은 이제서야 모든 일을 몸소 겪어보았을 것이다.

강호에서는 얼마나 해괴망측하고 이상야릇하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똑바로 보았을 것이다 .

비단 집단을 이루고 있는 나쁜 놈들만이 아니다.

어떤 한 개인에 있어서도 그 처지나 환경을 포착하거나 추측하기란

심히 어려운 노릇이라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일 년 동안에. 너희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 대해서 적지 않게 견식을

넓히기도 했을 것이다. "

여기까지 말하더니  남해어부는 왜 그런지 유심히 노영탄과 연자심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바라보면서 다시 말을 계속했다.

" 내가 이번에 호수 바깥 세상으로 나온 것도 또한 숭양파와 회양방 쌍방의 분쟁 때문이다.

이제는 쌍방이 다 같이 지난날의 원구를 그대로로는 도저히 풀어버릴 수 없게 되었다.

도리어  그 원구의 도가 나날이 심각해 갈 뿐이요.

동시에 악중악의 반교 행동 때문에 ...........

악중악이 무림의 지보라는 『수양비급』을 몸에 지니고 어디론지 도주해 버렸기 때문에

비단 쌍방에서 똑같이 이 청년의 행방을 수색하고 있을 뿐더러.

이제는 강호가 벌집을 쑤셔놓은 것같이 뒤숭숭하게 되었다.

무림의 온갖 괴상한 인물들이 분분히 때를 만난 듯이 꿈틀거리고 머리를 들고 내닫게 되었다.

이번에 회양방 놈들은 너희들을 잡아보려다가 그들 수중에 뜻대로 넣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놈들이 영탄이를 악중악이라고 알고 돌아간 이상에는 아마 나의 파양호 백로주도 무사하거나

조용하지는 못할 것만 같다! "

여기까지 말하더니.

이번에는 연자심을 유심히 훑어보고 나서야 다음 말을 계속했다.

『수양비급』에 관한 문제 외에도. 연자심의 돌아가신 어르신께서 보물을

어디다 감추어 두셨다는 사실 때문에 강호천지 허다한 인사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인데.

방금 영탄의 말을 듣자니

그것을 오빈기의 몸에서 빼앗아서 자심에게 전해주었다고 했는데.

그래 그것은 아직도 몸에 잘 간직하고 있느냐? "

남해어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연자심도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 소중하다는 지적도가 들어 있는 비단 주머니를 젖은 옷보따리 속에

함께 넣어 두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연자심의 머릿속을 스쳤다.

연자심은 선뜻 몸을 일어키더니

두 볼이 불거스레해지면서 남해어부에게 말했다.

" 이 철부지 후배가 깜빡 잊어버리고 그것을 아직도.

벗어놓은 옷 속에 그대로 넣어두었네요.

제가 가서 찾아내서 보여드릴게요. "

연자심은 말을 마치자.

선창 안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잠시 후 손에 그 귀중한 비단 주머니를 들고 돌아왔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남해어부와 노영탄에게 하는 말.

" 물 속으로 드러갔을 때 이 지적도를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물 속에 있었으니 아마 물에 젖어서 잘 알아볼 수 없을지도 모를 거예요. "

말을 하면서 그 비단 주머니를 두 손으로 공손히 남해어부에게 바쳤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그 것을 들여다 보더니.

과연 물에 흠뻑 젖어 있는지라 급히 주머니를 열고 지적도를 끄집어냈다.

노영탄과 연자심도 남해어부의 곁으로 다가가서 긴장된 눈초리로 그것을 들여다 보았다.

남해어부가 지적도를 펼쳐 들었을 때.

" ! "

" 아니? "

연자심과 노영탄은 깜짝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렇게 감탄사를 연발했다.

남해어부도 까닭을 알 수 없어서 긴장된 눈초리로 두 젊은이들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주시할 뿐 한참 만에야 그 까닭을 들었다.

"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그다지 놀라는 거냐? "

그래도 연자심과 노영탄은 물에 젖은 지적도만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도를 한 번 펼쳤을 때.

노영탄과 연자심은 예전에 둘이서 보던 때와는 딴판으로

그 지적도 위에 변화가 생겼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는 지적도 위에는 도형을 제외하고는 한 자도 없었다.

그런 것이 이제 들여다보니.

깨알같이 수 많은 글자들이 그 위에 나타나 있는 것이었다.

" 그것참. 괴상한 일인데요! "

그제서야 노영탄과 연자심은

그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을 남해어부에게 설명해 주었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두 젊은이들의 말을 듣고 나더니 도리어 껄껄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 너희들은 이런 일을 보지 못했으니 알지 못할 것이다.

이 강호에서 왕래되는 문서나 편지 같은 것은 모두 약물을 타서 종이 위에 쓴 것이다.

그 약물들이 마른 뒤에는 곧 글씨의 형적을 깨끗이 감춰버리게 되며 티끌만한 자국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은 불에다 쬐어야 되고 또 어떤 것은 물에다 담가야 비로소 처음에 쓴 글자가

나타나게 된다.

이건 아주 흔한 일이다.

조금도 놀랄 만한 일은 이니다.

이 지적도도 너희들이 봤을 때에는 글자의 형적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나.

차차 글자가 나타나게 된 것은 바로 약물의 작용이다.

그 약물은 물에 담가야만 비로소 다시 글자가 나타나는 것인데.

마침 너희들이 아무 생각도 없이 물 속으로 지니고 들어갔으니

글자가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

" 아하! 그것참. 희안한 일인데요 ! "

노영탄과 연자심은 남해어부의 설명을 듣자 이렇게 말하면서.

물에 젖어서 못쓰게 된 줄로만 생각했던 지적도를 더 한층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 지적도 위에는 오른쪽 한 모퉁이로 붉은 성을 쳐서.

따로 테두리를 만들어 놓았고 그 테두리 속에는 바닷속으로 뻗쳐나간 조그마한 섬

하나를 확연히 구분해서 그려놓았으며 그옆으로는 과히 진하지 않은 푸른 빛깔로

'응유산' 이라고 써놓았다.

그 섬 옆으로는 대륙이 보이며 강물 줄기를 그려놓은 듯 문자로서 표시해 놓지는

안았지만 노영탄과 연자심은 그것만으로도 보물을 감추어둔 지점이 응유산이라는

조그만 섬인 것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응유산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은 역시 분명히 알 수 없었다.

남해어부는 두 젊은이들의 만면에 이상야릇한 빛이 감돌고 있는 것을 보자.

또 한번 입가에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했다.

" 너희들은 이 응유산이 어디 있다는 것을 모를 테지?

또 이 섬 서쪽에 있는 대륙이 어디라는 것도 알아낼 수 없을 테지? "

노영탄과 연자심은 아무리 지적도를 다시 들여다보고 또 보고 해도

응유산의 위치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남해어부는 여전히 껄껄거리고 웃더니.

지적도를 자기 앞으로 잡아 당겨서 손가락으로 그 위에 있는 조그마한 섬을 가리키며

두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 이것을 봐라. 응유산은 서쪽으로 있는 대륙과 단지 강 하나만을 접해 있을 뿐이다.

이 강어귀에 불쑥 솟아나온 것이 바로 강소성 연운항이란 곳이다.

너희들은 아마 거기 가본 일이 아직 없겠지만 ......... "

말을 하는 동안에도 남해어부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지적도 위를 샅샅이 뒤지다시피

들여다 보았다.

" 너희들은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 맨 가운데 큼직한 그림은 응유산의 전도의 형세요.

이편 테두리 안의 약도가 바로 응유산의 지리적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을 ........ "

노영탄과 연자심이 남해어부가 지적하는 점을 따라서 자세히 지적도를 살펴보니.

과연 응유산의 상세한 도면을 찾아낼 수 있었고 거기에는 산 하나 골짜기하나 모조리

글자로 정확한 주석이 붙어 있었다.

또 그 섬의 서쪽 맨 가운데로부터 한 줄기 불거스레한 빛깔로 화살을 그려놓았는데.

그 화살은 꾸불꾸불 돌아서 섬 한복판에까지 직통해있으며.

그것이 다소 북쪽으로 기울어진 한 군데 산봉우리까지 가서 끊어져 있는 것이었다.

화살이 끝난 지점에서부터 다시 한 마리의 제비를 그려놓았고.

또 그 제비의 주변으로는 붉은 선으로 동그라미를 몇 개인지 그려놓았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그것이 바로 보물을 감추어둔 지점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거기 적혀 있는 깨알 같은 글자들을 일일이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바로 거기까지의 연도의 형편과 어떻게 가야 한다는 것.

또 주의해야 할 점까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지적도를 다 보고 나더니.

남해어부는 정색을 하고 두 젊은이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 우리 의협 속에 사는 사람들이란 금은 보화에 대해서 본래부터

그것을 가소로운 것으로 알아야겠지만 속세에서는 인간들의 모든 분쟁과 옥신각신 하는

시끄러운 일들 모두가 돈 대문이 아닌 것이 없다.

내가 강호를 오로지 의협심에 불타며 돌아다녔을 적에도 왕왕 격게 되는

허다한 불평불만들을 보니

이 역시 모두가 금전이라는 것만이 해결할 수 있었고 무술의 공로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전혀 망각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었다. "

남해어부는 여기까지 말하더니.

무슨 까닭인지 연자심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응시하면서

두 젊은이들에게 말을 계속해 나갔다.

" 자심이 너의 어르신네께서도 나와는 여러 차례 서로 만났던 사이였다.

애석하게도 그분은 한 번 생각을 잘못하신 탓으로 당치도 않은 길로 들어서시게 되어서

무림에 일대 처참한 싸움을 일어켜 놓으셧을 뿐만 아니라 비단 자기 자신까지도

마침내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 것이었다.

사실인즉 그분이 비장해 두었다는 이 보배란 것들도 그 대부분이 불의의 방법으로

손에 넣어신 것들이었다.

본래 이 한 장의 지적도란 것이 분실되어 없어지고

그 보배란 것들은 영원히 땅 속에 파묻혀버렸을 것인데

이제 이것이 다시 자심의 손에까지 들어오게 되어

이미 강호의 수많은 인사들이 이것을 노리게 되었으니.

조만간 시끄러운 분규가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그것을 너희들이 즉시 찾아내 가지고

그 보물들을 세상에 유익한 일에 쓴다고 하면.

한편으로는 강호의 다른 어떤 인물들의 수중에 들어가서

그들이 나쁜 짓을 하는데 이용당할 우려도 없어지고

또 한편으로는 자심의 돌아가신 어르신을 대신하여

다소나마 속죄하는 의미도 될 것인데 너의 어르신의 지하에 계신 고혼이

이 늙은 놈의 뜻에 찬성할 것인지 그것을 나는 알 수 없다.

자심아. 너의 생각으로는 어떠냐? "

연자심은 두 볼을 발그스름하게 붉히며 부끄러움이 가득 찬 음성으로 대답했다.

" 노 선배님의 말씀을 이 어린 후배로서야 그대로 쫓을 뿐 다른 생각이 없사옵니다.

저는 이 감추어져 있다는 보물들이 이미 저의 수중에 들어온 물건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요 ......... "

이말을 듣자.

남해어부는 머리를 끄덕거리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 자심이. 너의 그 순우한 마음씨가 가상하다.

알고 보면 너와 나의 사이라는 것도 보통 인연은 아니다.

너의 이모님 되시는 오매천녀께서는 바로 내가 강호를 휩쓸고 돌아다녔던

그 당년의 옛날 친구이시며 너의 어머니 백화쳔녀께서는 그 인품이 지극히

정파에 소하시는 분으로 나하고도 여러번 만난 적이 있어셨다.

이제 너와 영탄이가 이렇게 막역한 사이가 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며.

나는 어디까지나 너를 나의 제자와 똑같이 대하고 싶으니까.

이런 주장을 기탄없이 해보는 것 뿐이다.

손톱만큼이라도 무엇을 사양하거나 어려워 할 일은 없다. "

남해어부의 이 몇 마디 말은 친절하면서도 자애로우며 솔직할 뿐만 아니라.

깊은 함축성을 지닌 말이었다.

그말은 한편으로 노영탄과 연자심.

두 젊은이들의 관계를 은연 중에 묵인한다는 뜻도 들어 있었다.

연자심은 남해어부의 말을 듣자.

내심 부끄러움과 기쁨이 한데 엉크러져서 고개를 갸웃이 수그린 채.

두 볼이 새빨갛게 물들어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 허허허......허허. "

남해어부 상관학은 그 광경을 바라보다 한 차례 부드러운 웃음을 터뜨리더니.

희고 긴  아래턱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노영탄을 쳐다보며 말했다.

" 방금 너의 말을 들어보자면 홍택호 호수 밑바닥의 굴 속에서 그 벽 위에 새겨져 있는

그림과 글씨를 발견했다고 했는데 그게 대체 어찌된 일이냐?

자세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다오. "

노영탄은 공손한 태도로 단정히 섰다.

지난날에 호수밑 굴 속에 들어갔을 때 발견했던 그림과 글씨에 관해서.

남해어부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동시에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배 위 마루청에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도형을 그리기까지 하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노영탄이 네 개의 도형을 그려놓고 난상봉저. 용비어조. 이참규가. 호약원등.

네 가지의 무술의 술법의 명칭까지 말했을 때.

웬일인지 남해어부의 얼굴에는 극도의 놀라운 빛이 떠오르며 노영탄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유심히 정신을 쏟어며 듣고있었다.

이윽고 남해어부는 노영탄에게 선뜻 이런 말을 물었다.

" . 영탄아! 그래서. 너는 이 네 가지 술법의 내력을 아느냐? "

노영탄은 머리를 옆으로 흔들면서 말했다.

" 제가 어찌 알겠슴니까만. 제 소견으로 말씀드리자면.

아마 어떤 분이든 고대에 유명하신 무림의 고인이 계셔.

그분이 임종하실 때에 이것을 새겨놓으신 것인가 합니다. "

남해어부는 이 말을 듣더니.

노영탄을 한참 동안이나 쏘아보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 어떻게 네가 그것을 아느냐

그것이 그가 임종했을 때 새겨놓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이냐? "

노영탄이 곧 대답하는 말이.

" 제가 그것을 봤을 때

그바윗돌 벽 위에 새겨진 도문은 마지막 몇 줄에 가서는 그 심도가 아주 부족했습니다.

마치 진력이란 것이 이미 다 흐트러지고 손가락에 힘이없었던 모양으로 ...........

이런 점으로 보아서 누군지는 모르오나 임종이 닥아드는 마지막 순간에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새겨놓은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

남해어부는 무엇을 생각했음인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에 갑작스레 심각한 빛이 떠올랐다.

한참 동안이나 두 젊은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야 침통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이것도 또한 영탄의 연분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전혀 아무런 계획적이거나 의식적인 까닭도 없이 그야말로 우연한 기회에

이런 천하에 두 번도 있을 수 없는 기연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그것은 지극히 공교롭게도 한 걸음만 늦었어도 물 속에 파묻혀버려서

영원히 호수 밑바닥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며 그 돌벽에 새겨 놓았다는

도형이나 글씨도 두 번 다시 세상 사람에게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니 ........

결국 너는 아슬아슬한 시각에 그 도형과 글씨를 무심중 똑똑히 기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

여기까지 말한 남해어부 상관학은 말을 계속하면서 노영탄과 연자심을 자리 잡아

앉도록 분부했다.

" 아마. 당대의 무림에 있어서 어떤 다른 사람도 그 돌 벽 위에 새겨져 있던

도형이나 글씨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야기를 하자면 장황해지지만 내 천천히 너희들에게 자초지종을 알려주마. "

남해어부는 몸을 일어켜 돛대 아래로 가더니 굵다란 줄을 힘 안 들이고 잡아당겨서

널찍하고 시원스럽게 돛을 펴 올렸다.

늙은 스승과 두 젊은이들은 배꼬리 갑판 위에 자리 잡고 않았으며 돛을 펼친

자그마한 범선 한 채는 순풍과 강물 줄기를 따라서 그림처럼 유유히 흘러 내려갔다.

온 밤을 두고 꽤 오랫동안 갖가지의 싸움과 분란과 기적을 겪은 강물 위에도.

이제는 멀리 하늘가로부터 희미하고 밝은 한 줄기 광선이 뻗쳐 내닫기 시작했다.

강바람이 모질게 불어와서는 세 사람의 얼굴에 정면으로 끼쳤다.

매정스럽게 싸늘한 기운이 바늘 끝같이 찔러 들어오는 찬 바람이었다.

남해어부는 한편으로 점잖게 자리 잡고 앉아서 은빛 같은 수염을 가슴 앞으로

휘날리면서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두 젊은이에게 지난날의 길고 긴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 호수밑 굴길 속 돌벽 위에 도형과 글씨를 남겨놓았다는 이인(이인)

 

바로 무림의 유일한 지보적 존재인『수양비급』의 작자였다.

 

성은 조요 이름은 선이라 했다.

 

바로 송조 황실의 후예로 그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가 북송 중엽쯤 되던 시절이였다.

 

국가가 그럭저럭 태평하다고 할 수 잇을 때였다.

 

그는 천성이 침착하고 조용한 것을 즐겼으며 어렸을 적부터 도술에 취미를 품게 되었고.

 

특히 단약을 만들어내고 정기를 단련하는 일을 무엇보다도 좋아했다.

 

무릇 그 방면에 수련을 쌓는 서적이라면 무슨 짓을 해서든지 찾아보고 또 그래도

 

지나쳐버리려 들지 않았다.

 

그는 점점 자랄수록 그 방면에 대한 취미가 극에 달해서 노상 남루하고 하잘것 없는

 

옷차림을 하고도 오로지 명산대천만 찾아서 유력하고 다니면서 남몰래 가슴속 깊이

 

신선과 도술을 찾아보자는 목적을 품고 있었다.

 

조선이란 사람은 다년간을 드고 드루두루 유력하여 자기가 목적하는 바를 보았으나 .

 

결국에는 그가 이상하는 바와 같은 선도의 인물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날이 갈수록 그에게 권고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것은 이 세상 천지에는 그가 생각하고 찾고 있는 것과 같은 불로장생의 선인도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부질없는 전설로서 사람들의 귀를 거처서 내려온 일종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런 사실을 명백히 깨닫기는 했으나 한편 그가 강호를 쉴새없이 유력하는 가운데

 

한 가지 기이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강호에는 몸에 소위절기라는 기기묘묘한 재간을 지닌 무림의 고사라는 인물들이

 

허다하게 존재한다는 경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몸 속에 축적된 정신력으로 이루어지는 내공이 고절한 경지에 도달한 일부 협사라는

 

인물들은 비록 완전히 칼을 막아내거나 몸을 날려서 다닐 수는 없고 불로장생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내공의 수련을 쌓은 정도에 따라서는 능히 눈을 밟아서 흔적을 남기지 안으며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서 넘어다니고 건너다니며 보통 사람들보다도 장수 할 수 있다는

 

진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리하여 조선이란 인물은 여태까지 마음먹고 있던 방향을 달리하여 무술을

 

연마해 보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마침 그의 양친이 때를 같이하여 세상을 떠나버리고 비통한 심정으로 나날을 보내던 나머지

 

그는 일대 용단과같은  비장한 결심으로 인간의 부귀니 영화니 하는 것을.

 

헌신짝같이 차버리고 또한 어떤 사람에게도 자기의 심중을 말하는 법도 없이 마침내

 

표현히 바람처럼 자기 집을 떠나 천애를 방황하는 괴상한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방량의 가시밭길응 험준하고 괴로울 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천신만고를 무릅쓰고 두루두루 명산과 대천을 편력하다가.

 

마침내 이 세상 밖의 인물이라고 할 만한 고명한 사람을 한 분 찾아내게 되어서.

 

이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일종의 경이적인 무술을 배워서 몸에 지니게 된 것이다.

 

조선은 무술 공부를 마치게 되어 스승과 작별하고 산에서 내려오게 되었을 때.

 

자기의 이름을 모도인(慕道人)이라고 고쳤다.

 

그리고 이때부터 여전히 강호 천지를 정쳐없이 방랑하고 유력하면서도 입을 꼭 봉해버리고

 

자기의 신세에 대해서는 남에게 한마디도 이야기하려 들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을 두고 이모도인이란 괴상한 인물은 일신에 지니고 있는 신기한 무술로

 

종횡무진 강호 천지를 돌아단녔으나 한 번도 적수라 할 만한 인물을 상대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그가 무술이 탁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

 

그의 무술의 진면목을 제대로 구경한 사람은 없었다.

 

이 조선. 일명 모도인이란 사람은 어찌나 그 행동이 바람같이 빠르고 날쌘지 마치 신룡이

 

머리만 보이고 꼬리를 감추듯이 그가 무술의 재간을 부린다해도 그 정체조차 제대로

 

잡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람과 같이하여 강호에는 또 한 명의 고명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출가한 명승으로 법호를 무아대사라고 했다.

 

그리고 그도 역시 절세의 무술을 몸에 지녀 그 명성이 당대의 무림을 떨게 하고 있었다.

 

이두 인물들의 존재가 강호 무림에 뚜렸하게 드러나면서부터.

 

모도인과 무아대사의 무술 실력이 가히 백중이라 일컬을 수 있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은 두 사람을 똑같이 천하제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모도인은 비록 무아대사의 위대한 명성을 오래 전부터 들어 오기는 했다고 하지만.

 

한 번도 그의 얼굴을 대해본 일도 없어며 둘이 똑같이 무술의 재간이나 실력을 비교해 

 

일도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모도인은 무아대사란 인물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 맞닥뜨려서 그와 더불어 무술을 겨루어 보자는 생각은 물론이었으나.

 

그밖에도 또 한 가지 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승부를 가리자는 식의 그런 단순한 생각이 아니었다.

 

' 나는 절세의 무술을 몸에 지녔으니.

 

응당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고 온 세상 사람들이 천하제일이라고 인정을 해주지만 .........

 

그러나 이건 진정한 천하제일이 아니다!

 

아무리 천하제일이라고 인정해 준다해도 나와 똑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천하제일이 또 있대서야 이게 무슨 천하제일이란 말이냐? '

 

모도인은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치밀어 오르는 마음속의 충동을 누를 도리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무아대사를 찾기 시작했다.

 

무아대사라는 적수를 찾아서 한번 무술의 재간을 비교해 볼 뿐만 아니라.

 

그 우열 강약을 가려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

 

그 중에서 제일 강한 사람을 단지 하나의 천하제일로 인정케 하고.

 

양응을 병존시키지 않도록 하자는 야심을 품고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모도인은 강호를 동분서주하며 돌아다녔다.

 

도처에서 무아대사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날이 갈수록 이런 사실은 강호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이 놀라운 소식은 처음에는 무림을 떨게 했으나 차츰 그것은 일종의 호기심으로 변해서.

 

두 사람이 승부를 겨루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구경하고 싶다는 솔직한 바람이 천지를 휩쓸었다.

 

이런 소문이 무아대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은 무아대사 편에서는 세상에 두각을 드러내거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모도인처럼 무술로 상대방 강적을 없애버리자는 흥분도 없고 그와는 전혀 딴판으로

 

극력 회피하면서 모도인과 만나려 들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모도인은 2년 동안이나 온갖 노력을 다하여 무아대사를 찾아다녔으나 끝내 찾아낼 수 없었다.

 

이때 강호에는 한 가지 풍문이 떠돌았다.

 

그것은 무아대사란 인물이 스스로 모도인을 대적할 수 없다고 인정한 탓으로 감희 모습을

 

드러내고 싸워볼 용기가 없다는 추측이었다.

 

이런 소문이 떠도는 데도 무아대사는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고 통 그 행방조차

 

찾아낼 도리가 없는 지라

 

모도인의 마음속에는 차츰 무아대사를 경시하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모도인은 정말 무아대사가 자기를 겁내서 나타나지 못한다는 단정을 내리게까지 되었다.

 

그런데 어느 해 가을날.

 

모도인은 마침 혼자서 숭산 산기슭을 걸어가고 있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을 따라서 천천히 산꼭데기를 향해서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는 산골자기에 가득 찬 붉은 단풍잎의 찬란한 풍경을 감상하면서 자못 유유자적하는 기분이었다.

 

모도인은 머리를 푹 수그린 채 아무 생각도 없이 산꼭데기를 향해서 휘적휘적 올라가고만 있었다.

 

바로 이때 좁디좁은 산길이  저편으로 꼬부라지는 모퉁이에서.

 

난데없이 번개처럼 내닫는 사람이 있었다.

 

그 괴상한 사람은 모도인의앞을 가로막으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 아미타불. 시주님잠시 걸음을 멈추시기 바람니다! "

 

모도인이 머리를 쳐들고 바라보니

 

산길 모퉁이에는 화상 한 사람이 서 있을 뿐이었다.

 

그 화상은 나이가 6.70세.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말랐으며.

 

얼굴이 깨끗하면서도 수척해 보였고.

 

죽립을 뒤로 젖혀서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몸에 걸친 승복 한 벌은 깁고 또 깁고 해서 누더기가 다 된 것이었으며.

 

발에는 한 컬레 짚신을 신었는데 두 손을 합장하고 .

 

맑은 광채가 매섭게 뿜어져 나오는 눈초리로 모도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도인은 내심 깜짝 놀랐다.

 

놀라우면서도 한편 기뻤다.

 

눈 앞에 나타난 늙은 중이 틀림없이 무아대사라고 단정했기 때문이었다.

 

몇 해 동안을 천애해각(天涯海角)을 샅샅이 뒤지다시피 하고도 찾아내지 못했던

 

무아대사를 뜻밖에도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정말 기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돌연히 눈 앞에 나타난 무아대사가 모도인을

 

여간 놀라게 한 것도 사실이었다.

 

모도인은 극도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아대사는 길 가는 사람을 불러놓더니.

 

옴짝 달싹도 하지 않고 한 곳에 버티고 서서 모도인을 쏘아볼 뿐이었다.

 

모도인은 이때 이미 70에 가까운 고령이었다.

 

몸집이 크고 비대하여 몸에는 푸른 무명으로 만든 도포를 입었고 .

 

산바람이 불어오면 소맷자락이 멋들어지게 표표히 휘날렸다.

 

모도인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무아대사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 바로 무아대사께서 이곳에 내림하신 줄 아오.

 

 이모도인은 오래 전부터 위대하신 협명을 잘 알아 모시고 있었소! "

 

무아대사는 여전히 두 손으로 합장한 채 빙그레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시주님께서는 무술이 초범입성(超凡入聖) 이노승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는 바이나.

 

무술을 비교해 볼 때에는 누구에게나 실수라는 것이 있을 수 있으니.

 

만약에 다소라도 몸을 다치게 된다면 이는 무림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소? "

 

모도인은 무아대사의 말을 듣고보니.

 

그 말은 표면상으로는 겸양의 뜻이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분명히 다른 뜻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섣불리 재간을 겨루어보자고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대를 두려워 함이 아니요.

 

단지그대와 더불어 무술을 겨루어 보기를 싫어할 뿐이니.

 

그대의 몸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현명지책이니라. '

 

무아대사의 말은 분명히 이런 뜻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도인은 이렇게 생각하자 견딜 수 없었다.

 

솔직히 자기의 입장을 털어놓았다.

 

" 대사께서는 너무나 겸손하시오.

 

그러나 옛 사람들도 무술로써 친구를 사귄다고 말했으니

 

모도인은 단지대사와 더불어 무학을 인증해 보자는 데 불과한데

 

이처럼 말씀하신다면 이 모도인이 대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하심이 아니오? "

 

무아대사는 알아들을 만큼 암시를 던졌으나 모도인이 그것을 모른체하고.

 

의연히 무술을 비교해 보자고 고집하는지라.

 

이번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시주님께서는 잘못 생각하시었소.

 

이 일개 노승이 어찌 그것을 감당해 내리까.

 

당대의 무림에서 시주님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 뻔한 노릇이거늘.

 

하물며 노승은 추가인의 몸으로서 이미 다년간 남을 상대하여 싸워본 일이 없는데

 

시주님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이 노승의 패배하는 추악한 꼴을 기어이 보시려 하시오?"

 

무아대사의 이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간곡하고 진실된 것이었다.

 

자기의 실력이상대방을 감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모도인에게 구태여 싸워서 이겨보겠다고 억지로 고집하지 말아달라는 솔직한 표시였다.

 

그러나 어찌 뜻했으랴.

 

모도인은 별안간 얼굴빛이 침통하고 엄숙하게 변하며 서슬이 시퍼런 음성으로 맣하는 것이었다.

 

" 대사가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이 모도인이 고의로 남을 괴롭혀보자는 것처럼 되지않겠소?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날의 무림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이 모도인과 대사 두 사람이백중의

 

위치에 있으며 똑같이 제일인자에 속한다고 인정하고 있소.

 

그런 까닭으로 이 모도인이 적수가 될 만한 위인이 못 된다고 생각하시오? "

 

무아대사는 오래 전부터 만일에 두 사람이 실력을 발휘하여 승패를 겨루어본다면

 

어느 쪽이든 간에 반드시 상쳐를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극력 회피하기 위해 몇 해 동안을 숨어서 살다시피한 것이었다.

 

이러한 자기의 뜻을 상대방이 전혀 받아들일 줄 모르고서 끝까지 한번 싸워볼

 

결심을 하고 나선 길이었다.

 

무아대사는 모도인의 면전에서 솔직담백하게 자기의 힘이 모자란다는 사실과

 

모도인의 적수가 될 수 없다고 선언을 했으며.

 

그로써 끝까지 결투을 회피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모도인 편에서는이런 뜻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기어이 승부를 겨루어보자고 부득부득 덤벼드는 셈이었다.

 

무아대사는 비록 출가인의 몸이라고 하지만.

 

그 수양이나 실력에 있어서 고매하고 심원한 바 있었다.

 

니런 모든 점을 돌보지 않고 또한 자기의 지위까지 생각지 않고.

 

모도인에게 굴복한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마침내 그것으로도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참다 못해서 무아대사도 성미가 불끈 치밀어 올랐다.

 

" 시주님께서 이다지도 노승과 무술을 겨루어보고 싶으시다면.

 

이 노승을 따라 적당한 장소를 택하려 갑시다! "

 

무아대사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산봉우리 꼭데기를 향해서 몸을 날렸다.

 

모도인은 곧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의 무술은 똑같이 초범입성 일개 무인이 아닌 성인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은 숭산 주봉 꼭데기에 다다랐다.

 

한 군데 평평한 공지 위에 올라서서 무아대사는 자리잡고 서더니

 

몸을 돌려 모도인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주님! 이미 이 노승과 무술을 겨루어보기로 작정하신 바에야.

 

우리 피차간에 잠시 푹 쉬고 나서 하는 것이 어떻겠소? "

 

모도인은 머리를 끄떡끄떡해서 무아대사의 제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두사람은 땅 위에 도사리고 앉아서 똑같이 두 눈을 꽉 감고 기운과 정신을 침착하게

 

가라앉히고 조절하고 있었다.

 

심각하고 침중한 표정들이었다.

 

이렇게 두 시간 동안이나 그들은 묵묵히 장님처럼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떴다.

 

똑같이 공지의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두 사람은 5. 6장쯤 되는 거리를 두고 양편으로 떨어져서 서로 마주대하고 섰다.

 

모도인은 두 손을 모아 절레절레 흔들어서 멀리 무아대사에게 예를 표하면서 소리쳤다.

 

" 자 시작합시다! "

 

무아대사도 두 손바닥으로 가슴 앞을 가리더니 합장하면서 대답했다.

 

" 자. 하십시다! "

 

두 사람은 호통을 치고나자.

 

똑같이 몸을 쭈거리더니 힘을 한 곳으로 모어는 모양이었다.

 

잠시후 약속이나 했다는 듯.

 

둘이 똑같은 찰나에 몸을 벌떡 일어키며 손바람을 일어켜서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두 줄기 맹렬한 손바람이 마치 광풍과도 같이 교차되면서 맞부딪혔다.

 

그 무서운 손바람은 땅 위의 조약돌을 휘말아 올리고 모래를 뿌리며 회오리바람처럼

 

매서운 소리를 내면서 하늘을 무찌를 듯이 뻗쳐 올라갔다.

 

두 사람의 손에서 바람이 일어나며 그것이 선후를 분간할 수 없이 똑같은 찰나에

 

허공에서 맞닥뜨렸을 때.

 

두 사람이 버티고 서 있는 신변에도 똑같이 요란스런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쇠소리 같은 바람소리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손바람과 손바람이 맞닥뜨려을 때 두 사람은 똑같은 찰라에 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두 사람이 또한 똑같이 몇걸음인지 뒤로 선뜻 물러섰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실력에 깜짝 놀랐으며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엇다.

 

이 첫 번 손바람에 있어서 두 사람은 똑같이 10분의 6.7도의 힘을 뽑아서

 

단지 상대방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시험해 본 데 불과 했다.

 

어느쪽이든 그 실력에 털끝만한 차이라도 있다면 즉각에 상대방의 손바람 앞에

 

견뎌내질 못하는 것이다.

 

보통 무림에 있어서 제아무리 좋은 적수라 할지라도 한번 이렇게 손바람과 손바람이

 

맞닥뜨리게 되면 털끝만큼이라도 약한 편이면 당장에 2. 30길쯤 멀리 날아가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단한 실력인데! '

 

'지곡한 재간인걸! '

 

무아대사와 모도인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의 무술은 똑같이 천하제일에 속할뿐더러

 

그 밖의 무림의 소위 고수라는 인물들 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났으며.

 

또한 두 사람이 다같이 강호에서 일찍이 10단쯤 되는 무술 실력을 발휘할 만한

 

인물을 상대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그들은 한번 진력을 발휘해서 맞닥뜨려 봤을 때.

 

서로 탄복했으며 상대방의 명성이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은 또한 똑같이 극도의 경계심을 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져서는 안 되겠다! '

 

'결국 누가 조금이라도 더 센가 끝까지 해보자! '

 

양쪽은 필연적으로 투지가 만만해졌으며 굴복하기 싫다는 오기가 불길같이 치밀어 올랐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마침내 그들이 평생을 두고 배운 최고의 무술을 극도로 발휘해서

 

숭산 산봉우리 절정에 서서 과연 어떤 편이 정말로 천하제일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천지를 진동시킬 만한 일장의 결투를 시작했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마침 보름깨였는지라 밝은 달이 중천에 높이 걸렸다.

 

은백색 달빛이 대지를 뒤덮었고 산꼭대기에도 밝게 비쳤다.

 

두 사람은 맹렬히 싸웠다.

 

시간 가는 지도 모르고 오직 결투를 계속할 뿐이었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 않은 채 꼬박 이틀 낮 이틀 밤을그칠 새 없이 싸웠다.

 

사흘째 되던 날 저녁때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마침내 정력이 소모 되었고.

 

전신이 피로해졌다는 것을 느꼈으나 그 반면에 싸움은 최고조에 달할 뿐이었다.

 

처음 이틀낮 이틀 밤 동안에는 모도인이 한번 공격하여 들어가면

 

무아대사가그것을 쉽사리 받아넘겼고 또 무아대사가 공격해들어가면

 

모도인도 또한 그의 독특한 재간을 부려서 문제없이 막아내고.

 

그야말로 일진일퇴 어느 편도 기울어지지 않는 적수였으며 털끝만한 약점이나

 

파탄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이 저물며부터 한편으로는 두 사람이 똑같이 피로를 느끼게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연 이틀 동안의 싸움에서 양쪽이 다 같이 상대방의 재간이나 술법을 똑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상대방의 약점이 어느 곳에 있다는 것도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똑같이 눈 하나 깜짝하지않고 온갖 힘과 정신을 한 개 초점으로 집중시켜서

 

상대방의 허를 노려서 한 번에 마지막 일격을 가해버리려고 무척 애썼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또한 똑같이 자기 자신니 어떤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지는 못했다.

 

모도인 편에서도 이번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면 무아대사가 반드시 패하리라 생각했고

 

또 무아대사 편에서도 자신만만하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면 승리는 자기의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와 같은 결사적인 싸움판에서 제일 미묘한 것은 두 사람의 약점이 똑같이

 

그들이 맹렬한 힘으로 상대방을 고격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드러난다는 사실이었다

 

눈 깜짝하는 동안에 둥근 달이 산꼭대기까지 기어 올라와서 싸움터를 한층 밝게 비추어 주었다.

 

지극히 짧은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공세를 약간 늦추었다.

 

그것은 전신의 진력을 상대방에게 눈치채이지 않도록 팔에다 집중시켜 가지고

 

재빠르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여 일거에 승리를 차지해 보자는 꾀였다.

 

모도인은 무아대사를 노려보았다.

 

무아대사의 얼굴빛은 침통하고 심각했다.

 

몽을 공중으로 껑충 솟구쳐 오르려는 눈치였다.

 

그것은 술법을 달리하여 또 한 단의 다른 재간으로 상대방을 공격해 보자는 것이 뻔했다.

 

모도인 편에서 보자면 이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이 틈을 놓치다니 될 말이냐? '

 

모도인은 두 다리에 힘을 다하여 몸을 길게 뽑으면서

 

두팔에 온갖 진력을 경주하여 곧장 무아대사에게로 육박해 들어갔다.

 

그러나 무아대사 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온갖 힘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잇던 판인지라.

 

모도인이 기선을 제압하며 먼저 쳐들어 오는 것을 보자.

 

자기도 똑같이 일격을 가해버리겠다 생각하고

 

전신의 진력을 팔에 집중시켜 비호같이 앞으로 대들어 모도인의 약점이 드러나는 곳을

 

노리고 맹렬히 쳐들어가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비록 이틀 동안늬 결투에서 이미 정력이 다 빠졌다고는 하지만.

 

전신의 진력을 이 일격에다 몽땅 쏟아 놓는 판인지라.

 

그 무서운기세는 오히려 극에 달했다.

 

이때 두 사람은 떨어져 있는 거리는 불과 8장쯤밖에 되지않았다.

 

두 사람이 다 같이 온갖 재간을 뽑내며 자웅을 겨루는 판이고.

 

또 결사적으로 힘을 쏟아놓고 있는지라.

 

이정도의 가까운 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져버리고 양쪽이 똑같이 육박해 들어가니

 

이제야 말로 산도 움직여 놓고 바다도 뒤집을 만큼 무서운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대결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승산이 자기 편에 있다고 자신만만한 지라.

 

단지 공격만을 생각했을 뿐 수비는 잊고 있었다.

 

양쪽이 다 같이 추호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쳐들어가는 판이고 보니.

 

두 번 다시 되돌아설 곳이라곤 없는 것이었다.

 

또 두 사람의 동작이나 손을 쓰는 품이 어찌나 빠른지.

 

털끝만큼도 그것을 피해보거나 뒤로 물러설 만한 틈을 찾을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이 한 쌍의 나비처럼 공중으로 몸을 솟구쳐 올렸을 때에는

 

서로 떨어진 거리가  2장밖에 안 되게 접근해 있었다.

 

그제서야 두 사람은 똑같이  자기 자신늬 약점을 깨닫기는 했으나.

 

이때에는 이미 두 사람의 손바람의 힘은 또한 똑같이 상대방의 머리위를 휘감고 있었다.

 

만일 이때에 두 사람이 빨리 손을 멈추고 각각 몇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섰던들 .

 

비록 양쪽이 똑같이 상대방의 힘 때문에 전신을 부들부들 떨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나.

 

그래도 그들의 대결은 이 정도로 일단락을 짖고 그 이상의 대단한 피해를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양쪽이 똑같이 치명적인 상쳐를 입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아대사도 모도인도 똑같이 이 급박하고 초조하고 긴장된 형세에 처해서.

 

손바람을 거두어들이고 몸을 뒤로 뽑을 만한 겨를이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의심이란 것이 이런 대담한 짓을 감행케 하지 못했던 것이다.

 

피차간에 상대방을 무서워했다.

 

피차간에 상대방의 마음속을 알 수 없었다.

 

상대방이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손바람을 거둬주고

 

몸을 뒤로 빼준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을 것이랴.

 

'만일 자기 혼자만이 관대한 채를 하고 아량을 보여서 이 위기일발의 위험한 찰나에

 

손을 멈추고 힘을 거두어들인다손 치더라도 상대방이 여전히 최후의 일각까지

 

모질고 앙칼진 경계심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육박해 들어온다면.

 

그때에는 이편은 도저히 목숨을 건질 수가 없는 것이다. '

 

'어차피 이 지경에 이런 바에야. 역시 양쪽이 똑같이 최후의 일장까지 싸워서.

 

둘이 다 같이 부상을 당하든지 둘이 다 같이 죽어 없어지든지 하는 수밖에 없다! '

 

똑같은 생각이 두 사람의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마음은 똑같이 아프고 처량하고 무서우면서도.

 

여전히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상대방을 한번에 찔러버릴

 

틈만 노리는 것이었다.

 

누가 옥이든 누가 석이든 함께 타버리고 말자는 처참한 결심을 하고

 

점점 더 이를 악물며 죽을 각오를 하고 육박해 들어가려 할 뿐이었다.

 

이무서운 찰나에 별안간 한 가지 놀라운 생각이 전광석화와 같이

 

무아대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디선지 난데없이 그의 옛날 스승이었던 원적시의 말소리가 너무나 똑똑하게

 

무아대사의 귓전을 후려갈기고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 무아 제자야! 내 스승의 몸으로서 너에게 꼭 한마디만 일러줄 것이니.

 

너는 이 말을 각골명심. 언제 어디서나 절대로 잊어버리서는 안 된다.

 

부쳐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누가 지옥에 들어갈 것이랴!

 

이 세상이란 무중생상(無衆生相) 이요. 무아상(無我相)이니라! " 

 

그 놀라운 음성은 마치 무아대사의 머리속을 회오리바람처럼 휩쓸며.

 

쏴 하고 얼음장같이 차디찬 물 한 통을 그의 머리 위로부터 뒤집어 씌우는 것만 같았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두 사람의 손바람은 이미 맞부딪혀 있었다.

 

모도인은 두 손바람을 동시에 앞으로 뻗쳐놓고 .

 

무아대사 편의 손바람의 방향을 기다리느라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땅위 아무데로나 훌쩍 날아버릴 작정을 하면서 이렇게 되면 자기는 그 순간부터

 

 이미 이땅 위에 살아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결과가 나타났다.

 

모도인이 그의 마지막 손바람을 결사적으로 내뽐어서 상대방에게 공격을 가했을 때.

 

별안간 뜻밖에도 무아대사 편의 손바람이 힘없이 맥이 풀어져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만큼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도록

 

갑자기 힘이 탁 풀어져버리는 것이었다.

 

모도인은 도리어 당황해져서 두 눈을 떴다.

 

상대방을 노려봤다.

 

아 이게 무슨 놀라운 일인가!

 

이때 무아대사는 마침내 얼굴에 미소를 띠고 손바람을 거둬들이고 있지않은가!

 

그뿐이랴!

 

무아대사는 이미 모도인의 최후의 손바람을 막아내지 못하고

 

뒤로 흘쩍 나자빠져버려야만 될 위태로운 순간에 처해 있었다.

 

모도인은 놀라우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모도인의 최후의 손바람은 이미 무아대사를 정통으로 찔렸으니.

 

그것을 다시 거둬들일 만한 겨를도 없었으며 무아대사는 벌써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어질어질 정신을 잃고 10여 장이나 떨어진 지점으로 쓰러지고 있지않은가!

 

모도인은 두 발로 땅을 가볍게 굴렸다.

 

단숨에 무아대사의 신변 가까이 날아들어서 몸을 굽히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아대사는 두 눈을 꽉 감고 있었다.

 

얼굴빛이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입술 한 귀퉁이로는 이미 붉은 핏줄이 뻗쳐 나오고 있었으며

 

맥박도 숨소리도 지극히 미약했다.

 

비록 상대방을 쓰러뜨리기는 했으나 이 순간의 모도인의 심정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부끄러움으로 꽉 차지 안을 수 없었다.

 

땅 위에 나둥그러져버린 무아대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유심히 내려다 보았다.

 

무아대사가 도저히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것은 외견상으로도 알 수 있었다.

 

비록 무아대사가 자기 몸 속에 지니도 있는 깊고 깊은 내공의 힘과 몸 안에

 

감돌고 있는 강기의 힘으로써 혈맥을 막아버리고 눈. 코. 입. 귀로 피가

 

흘러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어서 당장에 죽어버리지는 않는다손 치더라도.

 

그의 내부는 이미 흔들릴 대로 흔들리고 터질 대로 터져서

 

맑은 정신을 들게 해서 살려놓는다 해도 고작해야 반시간 동안 밖에 살아 있지 못할 정도였다.

 

그가 받은 마지막 타격은 그만큼이나 치명적인 것이었다.

 

모도인은 한참 동안이나 깊은 생각에 젖어 있었다.

 

이윽고 주머니 속을 더듬어서 길이가 두 치쯤 되는 조그만 옥병 한 개를 꺼냈다.

 

마개를 뽑아 가지고 한 손으로 무아대사의 꽉 다문 두 입술을 가볍게 벌리면서.

 

또 한 손으로는 그 조그만 약병의 아가리를 무아대사의 목구멍까지 깊숙히

 

틀어넣고 병에 담긴 약물을 쏟아넣었다.

 

그리고 나서 모도인은 전신의 순양진기(純陽眞氣)를 두 손끝으로 불러내 가지고.

 

두 눈이 시뻘겋게 타오를 지경으로 열기를 일어켜서 무아대사의 가슴팍을

 

가만가만히 문질러주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무아대사는 눈을 떴다.

 

맑은 정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모도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숨을 돌리는 무아대사를 뚫어져라 내려다보면서 목이 멘 소리로 말을 이었다.

 

" 대사! 이 모도인은 대사에게 부끄러울 뿐더러 두 번 다시 무림에 나설 면목조차 없게 되었소.

 

나도 또한 이대로 대사의 뒤를 따라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할 것 같소.

 

감히 이 세상에 혼자 남아서 구차스런 삶을 꾀하고 싶은 생각은 없소. "

 

무아대사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의 얼굴빛은 지극히 편안하게 가라앉았으며 한없이 자상해 보였다.

 

대사는 모도인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머리를 옆으로 가만가만히 흔들었다.

 

가느다란 미소가 입가에 떠돌며 이렇게 말했다.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런 바에야 . 시주님은 조금도 자책을 느낄것은 없소.

 

그러나 사실인즉 이 노승이 스스로 최후의 일장을 ......

 

잘 알면서도 그대로 달게 받은 것이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시주님은 지금쯤 아마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됐을 것이오! " 

 

말을 하는 동안에 무아대사의 얼굴에는 불그스레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가쁜 숨소리를 애써서 가다듬으며 또 말했다.

 

" 시주님은 모르실 것이오. 

 

무엇 때문에 이 노승이 최후의 일장을 달게 받아들이고 나의 공세를 거둬버렸는지 .......

 

그 까닭을 모르시리다! "

 

모도인은 얼빠진 사람같이 머리를 옆으로 흔들 뿐.

 

묵묵히 무아대사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무아대사는 얼굴을 반듯이 바로잡으며 지극히 엄숙하고 침중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 노승은 결코 스스로 자랑하는 바는 아니지만 .

 

무림의 사람들은 시주님과 노승을 똑같이 그 무술이 천하제일이라고 인정해 왔던 것이

 

사실이었고 시주님과 노승은 또한이런 인정을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했소.

 

노승은 오래 전부터 시주님의 심중을 잘 알고 있었소.

 

이 노승과 더불어 자웅을 가리고 고하를 겨루어보고 싶다는 뜻을 잘 알고 있었소.

 

그러나 출가인의 몸으로 어찌 명리만을 소중히 알리까!

 

이런 까닭으로 이 노승은 시주님과 대면하기를 피해왔던 것이었소."

 

무아대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로 머리를 천천히 쳐들더니.

 

상반신을 일어켜 앉아보려고 했다.

 

모도인은 급히 꿇어앉아서 두 손으로 그의 등을 부축해 무아대사의 상반신이

 

자기의 가슴 한복판에 기댈 수 있게 해주었다.

 

무아대사는 또다시 서너 번 눈을 꿈벅꿈벅하면서 말했다.

 

" 이번에 노승이 세상 밖에 나와서 시주님을 대면하게 된 것도

 

오로지 권화(權化)해 보자는 일념뿐이었소.

 

그러나 뉘 알았으리오?

 

마침내 욱 하고 치미는 심정을 걷잡을 새 없이 시주님과 대결하게 될 줄이야 ........ "

 

무아대사는 싱긋 웃어 보였다.

 

억지로 두 볼의 근육을 잡아당기는 것같이 쓰디쓴 웃음이었다.

 

한없이 처참한 웃음이기도 했다.

 

그는 천천히 말을 계속했다.

 

" 방금 이 노승이 갑작스레 공격의 손을 멈추어 버린 것은 ...........

 

그것은 단지 한 가지 ........

 

별안간에 우리 선사님의 교훈이 퍼뜩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소!

 

한 편으로 또 생각하자면 .......

 

우리들은 전력을 다하여 결사적으로 연거푸 사흘 밤낮을 두고 싸움을 계속해 왔소.

 

그러나 어느 쪽도 상대방에게 굴할 기세는 보이지 않았고 피차간에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낼 수가 없었소.

 

그러나 오늘 밤이 되어서 이 노승은 비로소 시주님의 한 군데 치명적인 약점을

 

알아낼 수있었고 또 거것을 발견해 낸 순간 자신만만하게 승산이 섰었소!

 

그러나 냉정히 생각하자면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겠소.

 

남의 약점만을 알았지.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의 파탄이 상대방에게 드러나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으니.

 

우리들은 정말 똑같이 우매한 인간들이었소!

 

결국은 세속적인 헛된 명예 때문에 상대방을 모르고

 

어리석은 불집을 건드린 바보 같은 인간이 었소! "

 

무아대사의 음성은 점점 침통하게 가라앉았으나 .

 

그 한마디 한마디는 점점 더 심각하게 모도인의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다.

 

" 노승이 최후의 결사적인 손바람으로  공격해 드러갔을 때.

 

시주님도 똑같이 나를 공격하고 있었으니

 

아마 양쪽이 똑같이 지극히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셨을 거요.

 

만약 이 순간에 노승이 공격의 손을 멈추지 않았다면 우리 두 사람은

 

지금쯤 똑같이 뻗어버리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오.

 

이 찰나에 노승은 퍼뜩 생각을 돌이켰소!

 

우리들의 무술 실력은 이 정도까지 연마하기가 그리 쉬운 노릇은 아니오.

 

수십 년 동안을 두고 애써온 공든 탑이 이렇게 일조일석에 무너져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소!

 

둘 째로 노승은 또 이런 생각을 했소.

 

우리가 비록 양쪽이 똑같이 천하제일이라 일컫지만 .

 

결국은 둘이서 대결해 본 결과에는 양쪽이 똑같이

 

각자의 약점과 헛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소.

 

만약에 노승이 스스로 시주님의 최후의 공격을 달게 받고

 

이번 싸움에서 먼저 손을 땐다면.

 

그리고 시주님을 이 세상에 생존케해둔다면 시주님은 우리들이 대결해 봤다는

 

소중한 경험을 간직하시고 거기서 나타난 약점을 똑바로 인식하게 되며.

 

거기 따라서 그것을 미리 막아낼 만한 술법을 연구해 내게 될 것이오.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무술의 법식을 새로 수립할 수 있게 될 것이 아니겠소! "

 

무아대사의 얼굴빛이 갑자기 불그스레해졌다.

 

음성도 약간 높아지면서 일종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도인은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얼굴 위로 혈기가 솟아오르는 것은 일종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모도인의 슬픔은 이루 형언키 어려웠다.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 세상에서 가히 자기와 대적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존재라고 인정해 오던

 

무아대사가 닥쳐오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처럼 침통하게 하는 말에.

 

모도인은 무엇이라고 감히 한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다.

 

무아대사는 억지로 정말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마지막 힘을 쓰듯이

 

싱긋 처참한 미소를 보이면서 또 말했다.

 

" 시주님! 그다지 슬퍼하실 것은 없소.

 

단지 이 노승의 말을 명심해 두시오!

 

그것 ....... 그것만 약속해 주신다면 이 늙은 몸은 감사해 마지 않겠소.

 

바라건대 시주님은 오늘 이 순간부터 무술의 길에 더욱 정진하시어.

 

일신에 지니고 계신 탁월하고 따를 사람이 없는 그 놀라운 재간을 믿을 만한

 

휼륭한 인재를 구하시어 전수해 주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그것을 어김없이 후세에 유전시켜주시면.

 

이노승은 몸은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웃으면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오!

 

우리 두 사람의 이번 이 처참한 결투는 그래야만 우리 무림 전체에 남겨두는

 

보람 있는 싸움이 될 것이오!

 

부디 노승의 말을 알아들으시겠소?

 

시주님은 이 노승의 뜻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

 

이말을 듣자 모도인의 침통한 음성은 떨려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 무아대사! 안심하시오! 이 모도인은 기필코 지시하신 대로 실천하리다.

 

우리들의 이 원대한 뜻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이 모도인도 또한

 

순사하여 대사의 덕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것을 맹세하오! "

 

무아대사는 모도인의 이 말을 듣자마자 .

 

별안간 눈매가 스르르 풀리며 입을 크게 벌리고

 

무언가 말하고 싶어 애를 쓰는 눈치였으나.

 

그저 웅얼웅얼 아래위 입술을 떨고만 있을 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무아대사는 두 눈을 힘없이 스를 감았다.

 

머리가 풀석 뒤로 젖혀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목구멍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쿡 찌르듯이 한 번 들렸을 뿐.

 

무림 일대의 기인 무아대사는 영영 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모도인은 무아대사의 시체를 부등켜안고 대성통곡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지 뒷수습을 빨리 하는 것만이 남은 문제였다.

 

모도인은 무아대사의 시체를 숭산 절정에 그대로 매장하고.

 

동시에 평평하고 널찍한 바윗돌 한 장을 구해 한 편의 문장을 새겨서

 

이 결투의 내력과 경과를 기록해 두었다.

 

이런 사실이 있은 후에 모도인은 강호에서 종적을 감추어버렸으니.

 

어디 가서 어떻게 은거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게 되었다.

 

또다시 2. 3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렸다.

 

이때에야 모도인은 다시 강호 천지에 나타나서 제자 한 사람을 물색해

 

무술을 전수해 줄 생각을 했다.

 

그때의 모도인의 나이 백 살에 가까웠고 바로 남송의 말엽이었다.

 

모도인은 강호 넓은 땅을 궉구석 뒤지다시피 돌아다니며 제자를 구해보고자.

 

애썼으나 그의 이상에 맞고 그의 뜻과 재간을 계승할 만한 인재를 얻지 못했다.

 

그는 마침내 제자를 구해보겠다는 생각을 단념하고 그가 일신에 지니고 있는

 

탁월하고 놀라운 무술의 술법을 한 권의 책자로 기록하여.

 

내공의 불가사이한 술법을 단련하는 비급을 만들어 후세에 유전시킬 결심을 했으니

 

이것이 바로 그 후에 숭양장로가 우연한 기회에 손에 넣게 된『숭양비급』이었다.

 

그런데 모도인은 이 비급 가운데 네 가지의 특수한 술법까지 완전히 기록해 넣지를 않았다.

 

그것을 이 한 권의 비급 속에 완전히 기록해 넣지 않는 데는 그를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 네 가지의 독특하고 오묘 불가사이한 술법까지이 비급 속에 기록해 넣을 경우에

 

만약에 이 비급을 손에 넣는 인물이 선량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그와 반대로 약독하거나 야비한 인간이라면 그것은 그런 위인의 흉악한 야심이나 악행을

 

조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에 불과하리라는 생각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지닌 일체의 무술의 정화를 어떤 한 사람에게 송두리째 물려주는 것이

 

도리어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런 까닭으로 모도인은 그 네 가지의 절법이란 것을 전혀 다른 곳에 남겨둘 생각을 하고

 

『숭양비급』만을 숭산으로 가지고 올라가서 예전에 글자를 새겨둔 그 바윗돌 아래에

 

감추어두었던 것이다.

 

숭양장로는 우연한 기회에 숭산 절정에 올라갔다가.

 

그 새겨놓은 글자를 발견하는 동시에『숭양비급』까지 입수하게 되자.

 

바로 그 곳에 벽송관을 짖고 자신의 본거지로 삼았으며 그 후에 그곳에서 숭양파까지

 

창립하게 된 것이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숭양장로와는 일찍이 교분이 두터운 친구로 언젠가 벽송관에

 

유람차 갔었을 때 숭양장로에게서 이런 사실의 내력을 자세히 들은 바 있었다.

 

남해어부가 이런 긴 이야기를 다 했을 때는 이미 동쪽 하늘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