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26장 수중전(水中戰)

오늘의 쉼터 2013. 12. 13. 21:51

정협지(情俠誌)


제 26장 수중전(水中戰)

 

남해어부. 노영탄을 구하다. 

 

 

 

물 속에서 가만히 두 눈을 뜨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노영탄은 곰곰 생각해 보았다.

' 내가 뱃전에서 곧장 물 속으로 떨어졌으니까.

우리가 타고 있던 나룻배는 응당 나의 머리 위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보다 먼저 물속으로 뛰어든 그 두 놈을 이편에서 먼저 찾아낼 필요는 없다.

단지 우리가 타고온 배만을 제대로 지키고 있으면 될 것이다. '

이런 생각을 하면서 노영탄은 곧 머리를 들고 물 위로 떠올라 보았다.

과연 시커먼 배 밑바닥이 앞으로 움직여 나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순간 급히 두 발로 물을 차고 배 밑바닥을 향해서 뚫고 들어가 보았다.

노영탄이 막 배밑바닥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난데없이 그의 오른쪽 강물 속으로부터 한 줄기의 그림자가불쑥 솓구쳐 올랐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노영탄과 똑같이 배밑바닥을 향해 뚫고 들어올 모양이었다.

이때.노영탄의 두 눈초리에는 평소의 습관대로 점점 물물속의 경물들을 똑바로

분간해낼 수 없었다.

노영탄은 숨소리를 죽이고 두 다리에동시에 힘을 잔뜩 주어 가지고 .

그 시커먼 사람의 그림자를 마주 대하고 달려들어가며 오른 손에 단단히 잡고 있는

보검 금서를 곧장 앞으로 불쑥 찔렸다.

그런데 노영탄이 막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돌연 등들미에서 물결이 심히 흔들리더니 한 줄기의 거센 격랑이 화살같이

빠른 속도로 쏘아 들어왔다.

물 속에서 몸을 쓴다는 것은 제아무리 민첩하다 해도 육지처럼 쉬울 수는 없었다.

노영탄은 그래도 선뜻 몸을 움찔해서 쪼그려 가지고 아래로 깊숙히 가라앉아 들어가면서

급히 자기의 등들미를 살펴보았다.

노영탄이 막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에는 또 하나 다른 시커먼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또 하나의 시커먼 그림자는.

마치물고기같이 날쌘 동작으로 날뜻이 이편으로 덤벼들더니

손에는 한 자루의 무기를 휘두러며 곧장 찌르고 대들었다.

이렇게 되니 노영탄은 먼저앞으로 대들던 시커먼 그림자를 쫓아갈 만한 겨를이 없었다.

몸을 흘쩍 단숨에 돌려서 등들미로 습격해 들어오는 시커먼 그림자와 대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이 가로막는 힘이란 대단했다 손을 쓰고 실력을 발휘하고 재간을 부려보려 해도.

도무지 있는 힘을 제대로 쓰기가 힘들었다.

또한 변화란 것이 육지에서 하는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도저히 민첩할 수가 없었다.

노영탄의 등들미로부터 덤벼드는 시커먼 그림자는 바로 손에 큼직한 쇠갈귀를 잡고 있는

김타주라는 자였다.

이놈은 회양방에서는 제법 존재가 뚜렷한 수로타주의 한 놈으로서.

수갈자(水蝎子) 김육이라고 불리는 자였다.

그리고 노영탄 앞으로 덤벼든 놈은 바로 먼저 물 속으로 뛰어든 그 뱃사공이었다.

이 배사공 놈은 회양방의 수로의 요소인 구강에서 연락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두목급 인물들의 하나로서 그이름을 황유라고 했고 또 별호를 황어(黃魚)라고했다.

그리고 순서로 따져서 동급 인물들 중에서 네 번째에 손꼽히는 지라.

회양방에서는 이놈을 그냥 황노사(黃老四)라고 불렸다.

노영탄과 연자심이 휴녕 부근에 주관에 종적을 나타내게 된 후에.

몇 놈의 회양방 비도들은 일각을 지체치 않고 각 방면 타주에게 급보를 날렸다.

구강 부근 일대의 수로타주인 수갈자 김육이란 놈은 이급보를 접하자

즉각에 대강(大江) 연안으로 명령을 내렸다.

회양방의 모든 방원들은 수하를 막론하고 노영탄을 발견하게 되면

당장에 길을 가로막고 놓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놈들은 다 같이 노영탄 - 놈들은 노영탄을 악중악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 의  무술 실력이 놀랍다는 소문을 잘 알고 있는지라

겁을 집어먹고 감히 함부로 손을 대고 덤벼들지 못했던 것이다.

이때 역시 황어 황노사란 놈이 묘한 계교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노영탄과 연자심이 반드시 강물을 건너서 달아나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대강 양안이나 구강부근 일대에다 물 샐틈없는 경계망을 펼치고 누구든지

그들의 종적을 발견했을 때에는 더불어 싸울 생각은 하지 말고 암암리에 김육에게

연락만 취하라는 작전이었다.

그리하여 노영탄과 연자심이 둘이서 강물을 건너갈 때를 기다려서 물 속에서는

 그 힘을 마음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이니.

그때에는 그들을 실컷 물을 먹여서 꼼짝도 못하게 만들면 마치 재나 먼지를 훅 불어버리듯

힘 안들이고 노영탄과 연자심 둘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어리라는 판단이었다.

수갈자 김육이 생각해 볼수록 거것은 더할 나위없는 묘계였다.

이리하여 즉각 실천에 옮겨 행동을 개시하고 연안 일대에 경계망을 펼쳐서

노영탄과 연자심의 행동과 종적을 엄밀히감시하게 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황어 황노사는 친히 뱃사공으로 변장을 하고 노영탄과 연자심이 산에서 내려오면

반드시 경과할 만한 길목을 지키면서 감쪽같이 그 고장의 뱃사공으로 가장하고 있었다.

과연 놈들이 예상하고 계획을 세운 대로 제대로 들어맞았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난데없이 놈들이 생각했던 길을 그대로 서슴치 않고 들어섰으며

또한 놈들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배에 올라타고야 만 것이었다.

그러나 놈들은 노영탄이 악중악이 아니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고

또한 노영탄이 무술 실력만 놀라운 게 아니라 강물에 대해서도 상당히 정통하다는

점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수갈자 김육과 황어 황노사 두놈은 물 속으로 뛰어든 후에 노영탄이 타고 있는 배 밑으로

뚫고 들어가려고 했을 때 난데없이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그배 위에서 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수갈자 김육과 황어 황노사 두 놈은 비록 강물에 정통하다고는 하지만 칠흑같이 캄캄한

강물 밑바닥에서 거기 뛰어든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판단할 도리는 없었다.

두 놈이 좌우 양편으로 갈라져서 깊숙이 파고들며 어둠 속에서 거기 나타난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려 했으나 그것이 대체 자기편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도무지 분간해 낼 수가 없었다.

한편 노영탄은 갑작스레 시커먼 강물 바닥으로 뛰어들고 보니

밝은 곳에 있다가 돌연 캄캄한 곳으로 냉동댕이처진 것같이 앞이 캄캄할 뿐.

김육과 황노사의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으며 도리어 두 놈에게 자기의 정체만

발각당한 셈이 되고 말았다.

다음 순간 노영탄이 배 믿바닥으로 뚫고 들어가려고 했을 때.

황노사는 이미 거기 나타난 것이 그들의 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리하여 황노사는 일부러 빙글 돌면서 배 믿바닥으로 뚫고 들어가는 척하며

노영탄의 주의력을 자기쪽으로 분산시켜 놓은 것이다.

김육이란 놈은 이 틈을 타서 노영탄 앞으로만 주의력을 집중하고 있을 때 처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노영탄이 강물에도 누구보다 정통할 뿐만 아니라 눈치 빠르고 민첩하여.

물결이 한번 출렁하자 말자 즉각 등들미에서 습격해 들어오는 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재빠르게 몸을 돌려서 그쪽으로 대처하고 덤빌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수갈자 김육은 손에 잡고 있는 쇠갈귀를 빠른 속도로 있는 힘을 다해서

불쑥 앞으로 찌르며 앞으로 헤엄쳐 나갔다.

이놈의 쇠갈귀는 전문적으로 물 속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병기로서.

그 끝에는 뽀족하고 날카로운 발이 세 갈래로 달려 있었다.

순 강철로 만들어진 이 세 발 달린 쇠갈귀에 한번 둟고 들어가기만 하면

그것은 두 번 다시 빠져나올 줄 모르며 그 언저리에 살점이 뭉텅뭉텅 쇠갈귀 끝에

묻어나지 않고는 거기서 몸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병기였다.

또 이놈의 쇠갈귀는 물이 가로막는 힘을 물리치는 데도 여간 편리하지 않았다.

일직선으로 이놈을 쭉쭉 뻗어가면 물결을 헤치기도 쉬웠고 거기 따라서 다른 병기를

쓰는 것보다도 날쌔게 뚫고 들어갈 수 있었으며 아무리 물 속이라 할지라도

전신의 힘으로 이놈 하나만 들고 나가면 앞을 찌르는 힘이 빠르고 무서울 뿐만 아니라

노리는 목표를 가장 정확하게 습격할 수 있었다.

수갈자 김육은 단지 이 한 가지 쇠갈귀만으로 구강 일대의 강물 위에서는 무시무시하게

위력을 떨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강호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는 무림의 인물들이 강물에 정통한 지식이나 경험 없이

이놈에게 무작정 덤벼들었다가는 얼마나 많은 물귀신이 되어버렸는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수갈자 김육은 난데없이 물 속으로  뛰어든 사람이 깊숙히 믿바닥으로 파고드는 것을 보자.

상대방도 어지간히 강물에 정통하다는 것을 대뜸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놈은 자기 이외에는 별로 이 강물에 그다지 정통한 사람이 없으리라고 뽐내며

살아왔고 또 사실 이 강물 줄기 4.50리를 꿰뚫다시피 샅샅히 들어다볼 만한 자신이 있었으며

20여 년 동안에 가히 상대할 만한 적수를 만나본 일이 없는지라  물 속으로 뛰어든

노영탄 역시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노영탄은 이놈이 쇠갈귀가 습격해 들어오면 물결이 갑자기 출렁대고 헤쳐지는 것을 보자

정세가 심히 절박함을 깨닫고 더 한층 정신을 바싹 차렸다.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서 옆으로 살짝 뽑아 물 위로 불쑥 떠오르며 손에 잡고 있던

보검 금서로 그놈의 팔을 겨누고 내리깎듯이 쳐버렸다.

수갈자 김육은 쇠갈귀로 한 번 허공을 찌르고 난 판에 노영탄의 보검이

비호같이 쳐들어오는지라 얼떨결에 역시 물 위로 급히 떠오르며

앞으로 내밀었던 쇠갈귀를 거두어서 간신히 노영탄의 칼날을 막아 냈다.

김육이란 놈은 저의 쇠갈귀가 본시 무겁고 든든한 물건인지라 .

아무리 물 속이라 할지라도 그것하나만 가지고 노영탄의 보검을 막아내고

그 기세를 그대로 뻔쳐서 습격해 들어간다면 상대방은 도저히 이것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노영탄이 보검을 앞으로 당겨서 거두어들여 볼까 하는 순간에.

수갈자 김육의 쇠갈귀는 맹렬한 기세로 뻗쳐 들어오며 그의 칼날을 선뜻 막아버렸다.

그것을 본 노영탄은 칼을 그대로 앞으로당길 수는 없었다.

살짝 팔에 힘을 주어 더 빠르고 매서운 기세로 쇠갈귀를 노리고 쳐들어갔다.

수갈자 김육은 노영탄이 칼을 뻗치고 더욱 맹렬히 덤벼드는 것을 보자.

도리어 내심 기쁨을 금치 못하며 혼자서 입 속으로 욕을 하였다.

' 요놈 ! 발칙한 놈 같으니 ......

내 놈은 죽을 자리를 찾아서 이 물 속에 뛰어들었으니 .........

이 김육 아저씨의 손이 맵다고 원망치는 마라! '

이 순간 김육이란 놈도 한쪽 팔에 힘을 더해서 쇠갈귀로 물결을 헤치고

앞으로 더욱 뻗쳐서노영탄의 칼을 내리누르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왼손으로 넓적다리께를 만지작거리더니

짤막한 비수를 한 자루 뽑아 들었다.

그비수로 노영탄의 칼을 막아내며 노영탄에게 접근해 들어가서

다른 손에 쇠갈귀로 결정적인 마지막 습격을 가해보자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어찌 뜻하였으랴 !

김육의 쇠갈귀가 있는 힘을 다해서 노영탄의 보검과 맹렬한 기세로 맞부딛혔을 때.

김육은 손목이 후들후들 딸리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손아귀의 힘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그것을 느끼는 순 간.

그 무시무시한 쇠갈귀의 대가리가 마침내 노영탄의 칼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두 동강으로 잘려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 이크 !  어지간한 놈인데 ! 무슨 칼을 어떻게 쓰기에 내 쇠갈귀가 ......... ? '

김육이란 놈은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노영탄은 바싹 앞으로 들어갔다.

금서 보검으로 잉어가 물을 가르는 이어천파(이魚穿波)의 술법을 써서

물결을 헤치고 파도를 뚫고 곧장 수갈자 김육의 앙가슴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수갈자 김육은 이쯤 되고보니 극도로 당황하고 조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에 움켜잡고 있는 것은 대가리가 없어지고 두 동강으로 갈라진 쇠갈귀 자루뿐.

어찌해야 좋을지 몸둘 곳을 알지 못하는 판이었다.

그런데도 노영탄의 금서 보검은 눈앞으로 찔러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마침내 수갈자 김육이란 놈은 두 발로 물결을 차버리고 펄쩍 뛰어서.

재빠르게 물 위로 떠올라서 도망질을 쳐버릴 자세를 취했다.

' 흥 !  네 놈을 놓쳐버릴 줄 아느냐 ! '

노영탄도 불쑥 물 위로 솟구쳐 올라가서 김육이란 놈의

뒤를 바싹 쫓아갈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쿵쿵! 펑펑!  

난데없이 요란스런 굉음이 등들미로부터 들려왔다.

그 굉음은 쩌렁쩌렁 울리는 품이 고막이 터질 것만 같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강물 속으로 울려 퍼졌다.

노영탄은 그 굉음을 듣는 순간 .

깜짝 놀라서 김육이란 놈을 그이상 추격할 것을 단념하고 급히 몸을 돌려

연자심과 같이 타고온 자그마한 나룻배를 향해 쏜살같이 헤엄쳐 갔다.

배 밑바닥 가까이 이러렀을 때 과연 거기에는 한 줄기 시커먼 사람의 그림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시커먼 그림자는 배 밑바닥에 기어올라 찰싹 붙어서 무슨 물건인지는 알 수 없어나

어떤 흉기를 가지고 배 밑바닥에 구멍을 내어 뚤어버리려고 맹렬히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바로 황어 황노사 뱃사공 놈이었다.

노영탄은 당황한 가운데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회양방의 비도들은 교활하고 음흉하고 악독한 계교를 써서

마치 호랑이를 산속에서 몰아내려는 것 같은 방법으로 노영탄과 연자심을 떼어놓은 후.

배를 그대로 침몰시켜 버리자는 속셈임을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앗! 배 위에 남아 있는 연자심이 어떻게 되었을까? 물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없는

여자의 몸으로서 배가 가라앉아 버린다면 이 망망한 강물 위에서 몸을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반드시 이 강물 속에서 그 아가씨를 건져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하물며 회양방에서는 몇 놈의 비도들이 이곳에 달려와 있는지

그것도 똑똑히 알지 못하는 판이니....  '

노영탄은 극도로 초조했다.

앞뒤를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덮어놓고 다짜고짜로 보검을 높이 쳐들어서

그 시커먼 그림자를 노리고 미친 사람처럼 찌러고 들어갈 뿐이었다.

배 밑바닥에다 구멍을 뚫고있는 황어 황노사는 수갈자 김육이 노영탄 하나쯤은

거뜬히 해치우려니 하고 아주 대담하게 마음을 놓고 배바닥에 붙어 있었다.

황어 황노사는 도끼를 꺼내 들고 배 믿바닥에 구멍을 뚫어 연자심이 타고 있는

자그마한 나룻배를 물 속에 가라앉혀버릴 작정이었다.

한참 신바람이 나서 황어 황노사가 도끼질을 하며 쿵쿵 배 밑바닥을 들이치고 있을 때.

홀연 발밑으로 왈칵 밀려드는 물결의 파동을 느꼈다 머리를 수그리고 보니

한 줄기 시커먼 사람의 그림자가 쏜살같이 헤엄쳐 들어오지 않는가.

황노사는 그것이 수갈자 김육인 줄만 알았다.

김육이 벌써  노영탄을 처치해 버리고 자기를 거들어 주러 오는 줄로만 생각하고

여전히 고개를 들고 배 밑바닥만 쿵쿵 도끼로 들이치며 안심하고 있었다.

'이키! 이게뭐냐? '

노영탄의 보검 금서가 물결을 헤치며 찔러 들어왔을 때야.

황노사는 뜨끔해서 사태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으로 헤엄처서 몸을 피해볼 생각을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황노사는 극도로 당황한 바람에 무작정 물위로 전신을 솟구쳐 올려 버렸다.

배 밑바닥에서 수면까지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황노사는 있는 힘을 다해서 어째든 물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데 성공했다.

사태가 여간 급박한 것이 아니었으나 마침내 머리를 수면 밖으로 드러 내고

둥둥떠 있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넓적다리에 무엇인지 스치더니

찌르르 하고 시큰시큰한 감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삽시간에 살을 저며내는 것같은 아픔으로 변해서

전신으로 번저 나가는 것만 같았다.

황노사는 그래도 이도저도 돌볼 생각을 하지않고 이를 악물고 물 위로 불쑥 떠올랐다.

노영탄은 손에 보검 금서를 단단히 잡고 황노사의 아랫배를 겨누고 찔러 들어간 것이었다.

그놈이 불시에 물 위로 솟구쳐 오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칼을 가로막는 강물의 힘이 여간 센 것이 아니었다.

아랫배를 노린 칼이 황노사의 넓적다리를 찔러서 한줄기 커다란 상쳐를 내주고 스치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그놈을 물 위로 솟구쳐 오를 수 있도록 놓쳐버린 셈이 되었다.

다시 머리를 돌려 배 밑바닥을 살펴보는 순간 .

노영탄은 자신도 모르게 대경질색 했다.

이때 배 밑바닥은 이미 황노사의 도끼를 맞고 대접만큼이나 큼직하게 구멍이 뚫려 강물이

사나운 기세로 배 안으로 밀려 둘어가고 있었으며 자세히 선체를 살펴보니.

벌써 비스듬이 한쪽으로 기울어져가기 시작했고 배 아래가 적지 않게 물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 아차!  이거 큰 일났구나! '

노영탄은 물 속에 있는 몸인지라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으나 수면 위에서 벌어졌을

사태에 대해서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난처한 판국이었다.

' 배 위에 있는 연자심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기 몸만이라도 어떻게 살 구멍을 찾을까? '

노영탄은 가슴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노영탄은 배 밑바닥에 아무리 큰 구멍이 뚫어졌다 해도 그것만 돌보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급히 숨을 내뿜어며 수면 위로 불쑥 솟구쳐 올랐다.

뱃전을 덥석 닥치는 대로 움켜잡고 머리를 물 위로 불쑥 내밀었을 때였다.

앙칼지게 호통을 치는 여자의 칼끝같이 날카롭고 매서운 음성이 들려왔다.

" 이못된 것들아! 이 이상 못된 수작을 또 한다면 내 아무리 약한 여자의 몸이라 할지라도

네 놈들에게 손톱만한 인정도 남겨두지는 않을 테다! "

이 앙칼진 음성이 끝나기가 무섭게 회양방 놈들이 타고온 배 위로부터

어떤 놈이 징글맞게 웃어젖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능글능글한 음성이 그 뒤를 이어서 들려왔다.

" 한빙선자야! 내 년은 진심으로 우리 방을 배반하겠다는 거냐?

 방의 여러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도 좋다는 배짱이냐? "

노영탄은 두 손으로 뱃전 갑판을 힘껏 움켜잡고 금서 보검을 등에 맨 채로 껑충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서 단숨에 갑판 위로 올라섰다.

힐끗! 비호같이 시선을 옮기니 연자심이 바로 배꼬리 갑판 위에 혼자 버티고 서서

손으로 저편 나룻배를 가리키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연자심은 이때까지도 자기가 타고 있는 자그마한 배 밑바닥으로

물이 밀려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잇었다.

노영탄은 연자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뜸 몸을 가볍게 선창 안으로 뛰어들었다.

급히 선판 한장을 뜯어내고 그 아래를 내려다보니 벌써 물이 가득차 있었다.

뚫린 구멍은 바로 배 밑바닥 한복판이었고 그리로 사나운 물결이 한시도 쉬지 않고

조수처럼 흉흉하게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나룻배의 하체는 이미 한자도 더 되는 깊이의 물 속에 완전히 잠겨버렸다.

배 밖으로 몸을 피해보자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배 밑바닥의 그 큰 구멍을 막아볼 생각을 한다손 치더라도 .

그것을 능히 감당해낼 만한 아무런 물건도 눈에 띄거나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배는 마침내 가라앉아버릴 위급한 사태에 빠지고 말았다.

노영탄은 극도로 긴장되고 황망한 가운데서 다시 머리를 쳐들고 사방을

번개같은 시선으로 휘둘러보았다.

연자심은 그때까지도 배꼬리 갑판 위에 여전히 버티고 서서

손에잡고 있는 보검 자정을 춤을 추듯 휘둘러서 뎅그렁 뎅그렁!

요란스런 소리를 내면서 배 위로 날아 들어오는 회양방 놈들의

갖가지 흉기들을 막아내어 강물 속으로 처박고 잇었다.

홀연. 회양방 비도들이 타고있는 배 위에서

또 한 놈이 심히 거칠고 사나운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 한빙선자야! 내 년이 이래도 순순히 우리 말을 듣지 않고

『숭양비급』을 우리에게 내놓지 않고 우리를 따라가려 들지도 않는다면  .......

그때에는 우리들보고 인정없는 사람이라고 원망했댔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두어라 !

요런 앙큼스런 년이 얼마나 발악을 하나 보자! "

회양방 놈의 호통 치는 소리를 듣고도 한빙선자 연자심은 지지 않겠다는 듯

여전히 앙칼진 음성으로 대꾸를 하고 있었다.

" 듣기 싫다! 그 따위 협박 공갈은 .......

내 놈들 같은 비도들이 무슨 인정이니 의리니 하는 것을 따질 주제가 되느냐 말이다!

내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어디 네 놈들이 얼마나 기막힌 무술을 몸에 지니고 있는지.

한번 구경하고 싶다! "

저편 배 위에서도 더 한층 목청을 높여서 으르렁대는 짐승같이 외쳤다.

" 이년아!  네 년이 타고 있는 배는 벌써 우리들의 손으로 구멍이 뚫렸단 말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배가 가라앉아버릴 것도 모르고 무슨 앙탈을 부리고 까부느냐?

저 숭양파의 반도 녀석도 그 명이 얼마남지 못했다!

우리들의 손에서 그놈도 빠져나갈 수는 없게됐다!

이것도 모르고 철딱서니 없이 고집만 부리고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네 년은 죽어서 땅에도 묻히지 못할 가련한 신세가 되는 수밖에 별 수 없다! "

연자심은 그제서야 배가 가라앉아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꽤 오랫동안 노영탄이 배 위로 다시 올라오는 기색이 보이지 않은 지라.

몹시 당황해지는 모양이었다.

저편 배에서 회양방 놈의 외치는 소리를 다 듣고 나더니.

연자심은 그 이상 대꾸할 생각도 없이 보검 자정만을 여전히 휘둘러서

배 위로 쉴새없이 날아드는 흉기를 막아내고 강물 속으로떨어뜨리려 하면서.

한편 천천히 걸음을 옮겨 선창 안을 향해 한 발 두발 다가가고 있었다.

이때 노영탄은 선봉 속에 몸을 감추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연자심에게 외쳤다.

" 연저! 당황해하실 것 없소!  빨리 선봉 속으로 뒷걸음질쳐서 피해 들어오시오! "

연자심은 그제서야 노영탄이 이미 배 위에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하고

적의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더 한층 앙칼진 결심의 빛이 그 아리따운 얼굴에 싸늘하게 드러나는 순간.

연자심은 보검을 또 한번 단단히 움켜잡더니 날아드는 흉기가 비교적 뜸한 틈을 타서.

비호같이 몸을 날려 선봉 속으로 달음질쳤다.

연자심이 선창 속으로 뛰어내려서 노영탄과 채 입을 열어 말을 주고받고 해볼 사이도 없이.

저편 회양방의 나룻배 위에서는 고함 소리와 아우성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듯이 일어났다.

그 뒤를 이어서.

쉬익쉬익!  하고 날카로운 쇳소리 같은 휘바람 소리가 두 번 연거푸 들려왔다.

그 다음에는 휘바람 소리가 아닌 더 요란하고 괴상한 소리가 쏴아 하고 허공으로

높이 울려 퍼졌다.

그소리를 따라서 한 줄기 화광(火光)이 일직선으로 높은 밤하늘을 꿰뚫고 뻗쳐 올라갔다.

그 화광은 시커먼 하늘에 한 줄기 금을 뚜렷하게 그어면서 허공으로 높이높이 쏘아

올라가더니 홀연 허공에서 쾅! 하고 폭탄이 터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더니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폭발된 불똥들은 별을 뿌려놓은 듯이 사방으로 일시에 쫙 흩어져서 바람을 따라

높은 허공에서 휘날리는 품이 어둔 밤중인지라 유난히 사람의 눈을 자극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꼼짝 않고 서서 그 광경을 노려보고 있었다.

회양방 놈들이 화전(火傳)의 방법을 써서 불똥을 하늘 높이 날려 가지고 연락을 취하고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되고 보면 경각을 지체치 않고 얼마나 많은 회양방의 나룻배들이 몰려들어서

노영탄과 연자심의 침몰해 들어가는 작은 배를 포위할지 알 수 없는 판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머리를 수그리고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선창 속으로 밀려드는 물은 이미 배전까지 찰랑찰랑 닿을 지경이었고.

순식간에 나룻배는 완전히 가라앉고야 말 위태로운 형세였다.

이때 저편 배 위에서 또 한 놈이 터져라고 고함을 질렸다.

"『숭양비급』을  지금이라도 당장에 이리 바쳐라! 네 년의 생명만은 부지하게 해주마! "

그 고함 소리의 뒤를 쫓아서 선봉 위로는 난데없이 퉁탕퉁탕 하는 요란스런 소리가

빗줄기가 쏟아지듯이 마구 퍼부어졌다.

갖가지의 흉기가 선봉을 겨누고 날아들었지만 .

노영탄과 연자심은 다행히 든든한 돛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지라.

이편에서 모른 채하고 태연히 서 있을 뿐이었다.

노영탄은 왈칵 연자심에게로 다가갔다.

약속이나 한 것 처럼 두 젊은이들은 상반신을 서로 부등켜안았다.

노영탄의 나지막한 음성이 떨려 나왔다.

" 사태가 이미 위급해졌소!  이는 순전히 나의 실수였소!

놈들의 계교에 속아넘어간 나의 잘못이었소!

이제는 놈들이 화전까지 쏘아서 암호를 보냈으니

회양방의 비도들이 떼를 지어서 쇄도할 것이오.

그리고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배는 순식간에 침몰해버리고 말 것이니 ....... "

노영탄은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 선체가 별안간 왈칵 하고 심한 요동을 일어켰다.

실로 눈 깜짝하는 순간에 배꼬리는 완전히가라앉아들어가고 뱃머리에서는

두 필의 말이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고 괴상한 소리로 쉴새없이 울부짖다가.

쌍쌍이 무렆을 털석 꿇고 갑판 위에 나둥그라져 버렸다.

연자심은 이 위태로운 순간에 처하여 강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고 보니

물론 극도로 긴장하기는 했으나 도리어 겁을 집어먹거나 놀라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시종 침착하게 노영탄의 널쩍한 가슴에 뺨을 부비면서 조용히 그리고 날카롭게

닥쳐올 운명을 응시하면서 노영탄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노영탄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그는 비장한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쳐들어 선창 밖을 세삼스럽게 휘둘러보더니 연자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내 곧 저 두 필의 말을 물 속으로 처박아버릴 터이니

연저는 둘 중에 한 놈을 타시오!

절대로 ........ 여하한 일이 있어도 말고삐를 늦추어서는 안되오 ...... "

선듯 대답을 못하는 연자심의 아리따운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노영탄은 안타깝다는 듯이 떨리는 음성으로 또 말했다.

" 이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소! 파도가 아무리 거세고 사납다 해도  

말의 등에서 떨어지지만 않은다면 절대로 사람이 가라앉게는 되지 않을 거요!

연저! 어떻게 해볼 만한 용기가 있소? "

연자심은 아랫입술을 꼬옥 깨물고 불이뛸 듯한 매서운 눈초리로 칠흑같은 강물만 쏘아보았다.

흉휴한 파도 두럽고 겁이나지 않을 리 없었지만 사태는 이미 위급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연자심은 말없이 아래턱을 까닥까닥해 보이더니

이윽고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 네 무서울 것 없어요! "

연자심은 이렇게 한마디를 마쳤을 때 .

선체에는 걷잡을 수 없이 무서운 기세로 가라앉아 들어갔다.

이순간 이 배 위를 떠나지 않는다면 이제는 배와 운명을 같이하고

강물 밑바닥으로 침몰해 버리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노영탄은 가슴 한복판에 와 있는 연자심의 상반신을 매정스럽게 벌컥 앞으로 떠밀었다.

" 자아 ! 나는 곧 행동을 게시하겠소!

저편 배 위에 있는 비도 놈들을 내 막아내고 있을 터이니.

그틈을 타서

발리 집어타고 물 속으로 내려 가시오 !

내걱정은 추호도 하실 필요가 없으니 ........ "

연자심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조용한 음성으로 급히 물었다.

" 노공자께서는 어떻게 하실 작정이죠? 무슨 방법이 있으신가요? "

노영탄은 차마 그대로 흘쩍 몸을 날리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연자심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극도로 당황하고 긴장되고 초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연자심의 처참한 얼굴

노영탄은 팔을 뻗어 연자심의 가냘픈 손을 꼬옥 쥐어주면서 몹시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 걱정 마시오!  나는 나대로 살아날 구멍이 있을 것이니 ......

단지 부탁하는 것은 말을 타고 물 위에 떨어질 때 한 발자국이라도 멀리 달아나 주기를 .........

배가 완전히 침몰해 버리는 순간에 물결이 회오리 바람처럼 사납게 용솟음쳐 오를 것이니.

거기 휩슬려 들지 않으시도록 .......... "

노영탄은 말을 마치더니

연자심의 손을 슬며시 놓아주고 화살같이 날쌔게 선창 밖으로 뛰쳐나갔다.

오른 손으로 보검 금서를 단단히 잡아서 춤을 추듯 눈부시게 휘둘러 둥거런 광막을 펼쳐서

몸을 가려버리고 왼손을 높이 휘저어 연자심에게 빨리 배 위에서 몸을 뜨도록 지시했다.

연자심은 사태가 긴박함을 알아차리고 마지막 결심을 했다.

경각을 지체치 않고 갑판위로 뛰쳐나와서 보검 자정으로 말 주둥이를 후려갈겨.

먼저 한 마리를 물속으로 몰아버리고 뒤를 이어서 둘째 말까지 물속으로 쫓아버렸다.

두 필의 말은 연자심에게 궁둥이를 얻어맞고 보니 배는 이미 가라앉아버리려 하고

당황해서 어리둥절 했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 강물속으로 텀벙 뛰어들고 말았다.

연자심은 두 필의 말이 텀벙텀벙 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자.

자기도 그 뒤를 따라서 흘쩍 배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말의 등 위를 정확하게겨누고 안장 위로 날아 내려앉아서 고삐줄을

단단히 움켜잡고 말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두 필의 말 들은 물 속으로 떨어지자.

처음에는 몸부림을 치고 미친듯이 날뛰더니.

차차 시간이 경과 될수록 성미를 가라앉히고 나란히 사이좋게 머리를

물 밖으로 불쑥 드러내고 천천히 앞만 바라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연자심은 말 등에 찰싹 달라붙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말이 제멋대로 달리게

내버려두고 닥치는대로 강물 위를 표류하고 있으니

전신이 물에 축축히 젖어서 꼴사납기는 했으나.

말 등을 발판으로 삼고 머리와 얼굴을 높이쳐들 수 있으니

호흡이 조금도 곤란하지 않았다.

노영탄은 연자심이 나룻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달아나는 것을 보자.

그제서야 긴장된 마음을 적이 가라앉히고 두 발로 주춤 하고 발을 굴러서

몸을 악삭빠르게 허공으로 날렸다.

보검 금서를 마음껏 휘둘러 눈부신 검광 속에몸을 감춘 체

3. 4 장이나 떨어져 있는 회양방 놈들의 배를 향해 화살이 꽃히듯이 날아 들어갔다.

노영탄이 나룻배를 버리고 몸을 날리는 순간에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자그마한 선체는

송두리째 완전히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으며 회오리바람처럼 용솟음쳐 오르는 

물결 속으로 형체도 없이 삼켜져버렸다.

회양방 놈들의 배 위에는 모두 네 명이 타고 있었다.

수갈자 김육과 황어 황노사는 물독에서 뛰어나온 생쥐같이 전신이 흠뻑 젖은 채로

배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 야. 이놈바라 ! "

" 어. 이 놈이 ....... "

그들은 노영탄이 비호같이 날아드는 것을 보자 똑같이 고함을 질렀다.

배를 젖고 있던 두놈의 소두목 놈들도 노를 멈춰버리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나 노영탄은 그때까지도 몸이 허공에 떠 있었다.

어디다 발을 붙이고 내려서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몸을 피할 만한 곳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무수한 흉기들이 빗발치듯 날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노영탄은 필사적인 각오를 했다.

' 어차피 일이 이쯤 된 바에야! '

그는 여전히 추호도 뒷걸음칠 생각이 없이 회양방 놈들의 배를 향해 몸을 던지듯 날아들며.

허공 중에서 가슴을 움츠러뜨리고 위로 뻗쳐던 두 다리 역시 바싹 구부려뜨려서.

마치 한 개의 공처럼 동그랗게 뭉쳐버렸다.

그리고는 금서 보검을 더한층 맹렬히춤을 추듯 휘둘러서

그 검광 속에 자신의 형체를 감추고 보호했다.

 허공으로 날아 오르는 갖가지흉기들도 노영탄의 칼날이 빗발처럼 한번 스치기만 하면

부서지고 갈라지면서 마치 별똥이 떨어지듯 강물속으로 처박혀버렸다.

노영탄의 신형(身形)은 순식간에 돌변했다.

허리에다 힘을 모아 가지고 머리를 아래로 다리를 위로 뻗치고 금서 보검으로 앞을 막으며

마치 바람개비가 눈부시게 돌아가듯 꽃잎이 바람에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면서 회양방의 배를 향해 내려앉기 시작했다.

수갈자 김육과 황어 황노사는 여러가지 흉기를 던져보았으나.

노영탄이 힘안들이고 쉽사리 물리쳐버리는 것을 보자 똑같이 가슴이 뜨끔했다.

' 원 . 천하에 별놈이 다 있네 ....... '

' 저 놈이 어떻게 된 놈이기에?  대단한 놈이다! '

그뿐만 아니라 자유자재로 신형을 변화하는 노영탄의 기기묘묘한 재간에는

이 두 놈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노영탄은 칼날에 매서운 광체를 발산하면서 한 마리 새가 날아들듯.

놈들의 배를 향해 곤두박질처 들어갔다.

보검 금서의 칼끝이 얼마나 예리하며 그것을 막아내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두 놈은 극도로 당황하고 초조했다.

수갈자 김육이 흘쩍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거니 두놈의 소두목을 보고 벌컥 악을 썼다.

" 배를 빨리 몰아 이 자리를 떠라! "

그리고는 배한복판에서 표창 한 자루를 뽑아 들더니 물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황어 황노사도 역시 무시무시한 도끼 한 자루를 손에 움켜잡은 채 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소두목 두 놈은 역시 배를 젖는 데는 노련한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수갈자 김육이 악을 쓰는 소리를 듣더니

즉각에 두 팔로 맹렬히 저어 쏜살같이 배를 뒤로 뽑았다.

단숨에 3. 4 장이나 거리를 흘쩍 떨어져 나갔다.

이때 노영탄의 몸은 이미 배를 향해 가까이 내려앉고 있었다

수면 에서 불과 대여섯 자밖에 안 되는 거리에 떠 있었다 .

흘연 회양방 놈들의 배가 갑자기 3. 4 장 거리나 되게뒤로 물러나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아래로 내려가는 기세를 걷잡을 수가 없는 순간이었고.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아슬아슬한 찰나이니.

도저히 되돌아설 수는 없는 판이었다.

그러나 노영탄은 일찍이 내공 외공 어느모로나 저 유명한 스승 남해어부의

진전(眞傳)을 그대로 계승받은 유일무이한 제자이다.

그의 온갖 무술은 마치 불길이 타고 또 타서 더 탓수 없는 새파란 경지에 도달하듯

오묘 불가사의 한 절정에 들어선 것이었다.

퍼뜩 ! 머리속에서 재빠른 판단을 내리는 찰나 노영탄은 민첩하게도 임기응변의

술볍을 써서 그대로 몸을 아래로 내리꽃히는 대신 수면 위에 우뚝 내려섰다.

이 지극히 짧은 찰나에 노영탄은 암암리에 온갖 진기를 한 개 초점으로  집중시켜서

발끝이 수면을 스칠까 말까 하는 순간.

재빠르게 오른쪽 발끝을 꼿꼿이 뻗어서 마치 제비가 물을 차듯

수면을 가볍게 스치고 나서 다시 허리에 힘을모아 벌컥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올렸다.

노영탄은 두 번이나 연거푸 발이 수면을 스칠 듯 말 듯 한 아슬아슬한 찰나마다.

그의 독특한 재간으로 몸을 하늘 높이 가볍게 솟구쳐 올렸다.

이번에는 몸을 반드시 펴고 여전히 회양방 놈들의 배를 목표로 삼고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그는 배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네 놈을 한꺼번에 모조리 처치해 버리고 놈들의 배마저

빼앗아서 회양방의 인마들이 집단을 이루고 대거 습격해 오기 전에

재빨리 강을 건너갈 작정을 했다.

육지에 발을 붙이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틈을 타서 회양방의 배는 또 다시 3 장 쯤 멀찌감치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노영탄과의 거리가 5 장쯤이나 멀어졌다

그러나 정세가 심히 급박함을 깨달은 노영탄은 이때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필사적인 결심을 하고 몸을 마치 나는 새같이 날쌔게 노리고 전력을 다하여

놈들의 배를 향해 덤벼들었다.

배 위에 있는 네 놈들은 너무나 뜻밖인 사태에 당황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형체를 따르는그림자와도같이 노영탄이 한사코 그들의 배를 노리고

달려드는 데는 아무리 머리를 짜보아도 속수무책이었다.

수갈자와 황노사는 그 이상 망설이고 있을 수 없게 됐다.

배 위에 아무리 오래 버티고 있어 봤댔자.

반드시 달려들고야 말 노영탄을 감당해 낼 만한 자신이 조금도 없었다.

두 놈은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일시에 풍덩풍덩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불상한 것은 배 위에 아직도 남아 있는 소두목 두 녀석들이었다.

극도의 공포심에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두 녀석들은 어찌해야 좋을 지를 몰랐다.

' 배를 그대로 저어 나갈 것이냐? '

' 배를 버리고 물 속으로 뛰어들 것이냐? '

그런 결정적인 태도를 작정할 겨를도 없이 두 녀석은 똑같이 번쩍 하고

그들을 비로 쓸듯이 스쳐가는 매섭고 싸늘한 검광을 신변 가까이 느꼈을 뿐이었다.

" 으아아아악  "

" 으으으으윽  "

두 녀석의 굉장한 외마디소리 같은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영탄의 금서 보검은 한 칼에 두 놈을 간단히 처리하여

강물 속으로 처박아버리고 만 것이다.

노영탄은 회양방 놈들의 배 위에 우뚝 내려섰다.

번개같은 안광으로 사방을 휘둘러보았으나.

이미 수갈자 김육도 황어 황노사도 종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까짓 놈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급히 머리를 쳐들어 먼곳을 샅샅이 휘둘러보았다.

둥실둥실하고 새카만 두 개의 그림자가 먼 시야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분명히

강물 위에 떠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아 ! 연자심이 역시 저기 살아서 떠 있구나! '

그 흥분. 그 감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풍랑이 흉흉한 강물 위에서는 또다른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영탄은 그 이상 수갈자나 황노사를 추격해 볼 생각은 단념해 버렸다.

노영탄은 급히 배 위에 자리잡고 앉아서 선뜻 두 손으로 쌍노를 잡고

연자심이 떠 있는 방향으로 저어가기 시작했다.

노영탄은 일찍이 백로주에서 5년간이나 무예를 연마하는 동안에 배를 부리는 재간도

누구 못지않게 몸에 지닐 수 있었다.

한 번 노를 잡고 전력을 다하여 젓기 시작하니

 나룻배는 날듯이 빠른 속도로 강물을 헤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연자심은 세상에 태어난 후 일찍이 물 속이라고는 한번도 들어가본 경험이 없는 아가씨였다.

그런데다가 칠흑같이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어둔 밤중에 망망한 강물 위를 정처없이

표류하게 됐으니 비록 말을 타고있어 가라앉을 걱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

파도가 거세게 출렁대고 강물 줄기의 빠른 흐름 속에 휩슬려서 일찍이 경험해 보지못한

놀라움과 긴장 속에서 두 손으로 말 고삐를 잔뜩 움켜잡고 말의 등 위에 찰싹 붙어 앉아서

옴짝달싹할 용기도 없었다.

또 한편으로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노영탄의 안부였으나 끝닿은 데를 알 수 없도록

시커멓게 널버러진 강물 위에서 그것을 알아볼 도리는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또 무엇을 자세히 볼 수도 없었다.

두 필의 말도 강물 위에 뜬 채로 극도의 공포심을 집어먹고

그저 앞만 바라보면서 허우적거리고 헤엄을 치기는 하지만 .

결국은 급격한 물줄기에 휩쓸려서 일각 또 일각 어딘지 모르고 흘러 내려가고만 있었다.

노영탄이 연자심의 등들미 가까이까지 배를 저어 들어갔는 데도

연자심은 아무것도 모르고 필사적으로 말 등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 연저! 연저! "

노영탄이 이렇게 목청이 터져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연자심은 귀에 익은 음성에 깜짝 놀라

몸을 움직이고 고개를 돌려 외마디 소리같이 부르짖었다.

" 노......노 ...... 노공자 ....... "

너무나 벅찬 기쁨과 감격에 연자심은 이렇게 반벙어리처럼 외쳤을 뿐.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오열로 변했다.

노영탄은 그 정경을 바라보자니 가엽고 딱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두말없이 배를

연자심의 신변 가까이 들이대고 선뜻 부축하여 배 위에 올려놓았다.

노영탄은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연자심의 모습을 묵묵히 아래위로 훓어보고만 있었다.

연자심은 말할 것도 없이 전신의 의복이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새까만 머리에서는 쉴새없이 물방울이 주루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맑은 눈동자 속에서 꽉 차 있던 눈물이 노영탄을 한번 바라보는 순간에

왈칵 북바쳐오르며 쏟아져서.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함쎄 두 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억울하다는 듯 말할 수 없이 기쁘다는 듯 울고 싶다는 것도 같고.

웃고 싶다는 것도 같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운 연자심의 표정이었다.

노영탄은 두 필의 말을 배 위로 끌어올려 한편에 매 노으면서

한편 으로는 침착한 어조로 연자심에게 말한다.

" 우리는 빨리이 강물을 건너야만 되겠소!

회양방 놈들은 집단적으로 인마를 동원하여 미구에 이곳으로 달려올 것이오! "

노영탄이 말을 마치는 순간 뜻하지 않은 놀라운 사태가 벌어졌다.

쿵쾅 !

난데없이 요란한 음향이 천지를 진동하여 울려 퍼지더니

한줄기 불빛이 화살처럼 허공으로 뻗쳐 올라갔다.

 

펑!

 

다음 순간.

그 급한 속도로 뻗쳐 올라간 불줄기는 허공에서 폭발 되면서

다섯 개의 불덩이로 갈라지더니 공중을 빙글빙글 돌면서

차츰차츰 아래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엇다

그 다섯 개의 불덩이는 공중에서 눈부신 광채를 발사했다.

갑자기 강물의 수면이 환하게 밝아졌고 위에 있는 경물이 샅샅이

형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불덩어리들이 광체를 발사하자

두 필의 마말과더불어 배를 빨리몰고 있던 노영탄과 연자심의 정체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깜짝 놀라서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똑같이 대경질색했다.

쥐도 새도 모르는 틈에 10여 척의 회양방의 나룻배들이 소리도 없이 몰려든 것이다.

불덩어리가 번쩍번쩍 광체를 발사하는 순간마다 노영탄은 점점 더 뚜렷이

그들을 바라 볼 수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회양방의 수많은 인마가 대거 습격하여 노영탄과 연자심이 타고 있는

나룻배를 포위하는 것이었다.

형체가 길고 . 작고 .거기다가 속력이 기막히게 빠른 이 10여 척의 나룻배들은

노영탄과 연자심이 타고있는 배를 향해 접근해 들어오더니.

갑자기 뿔뿔이 흩어져서 원진을 펴면서 노영탄과 연자심 두 사람을 그 맨 가운데로

몰아넣자는 기세를 보였다.

노영탄과 연자심이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싸여 있을 때.

또 한번 쿵쾅 하는 요란스런 소리가 일어났다.

처음과 똑같이 한줄기의 불빛이 하늘을 쏘면서 뻗쳐 올라가더니

역시 허공에서 폭발되면서 다섯 덩어리의 조명탄으로 변하여 두 사람의 정체를

또 한번 뚜렷이 불빛 속에 드러냈다.

이때. 동쪽으로부터 달려드는 한 척의 배 위에서 괴상한 몸차림을 한 장정 한 놈이

노영탄과 연자심을 향해 사나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 네. 이놈! 악가란 놈아! 이제는 우리방이 이미 이 큰 강 양안을 물샐 틈 없이 봉쇄해 버렸다.

지금이라도『숭양비급』을 선선히 내놓는다면 한줄기 살아날 구멍을 틔워주겠지만 .

그렇지 않다면 네 놈은 이자리에서 물귀신이 되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

노영탄이 자세히 바라보니 그놈은 바로 기경객이었다.

위태로운 지경에 빠질수록 침착하고 냉정하려고 애쓰면서도 노영탄은 꼼짝도 않고 서서

사방을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놈들의 배에는 한 척마다 활쏘기의 명수란 놈들을 두 명씩 배치시켜 놓았으니.

이놈들이 포위하고 화살을 쏘기 시작한다면 목숨은 배앗기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상처를 입을 것만은 확실한 일이었다.

'어떻게 한다? 나 혼자 몸이라면 한번 맞닥뜨려 보겠지만 ....... '

사실 노영탄은 단지 혼자 몸이라면 회양방 놈들 몇 십 명쯤이야 대적하고 사우기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자신이 만만했다.

그러나 강물에는 전혀 경험도 지식도없는 아가씨 한빙선자 연자심을 거느리고

놈들과 대적하여 싸운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그가 지니고 있는 무술이 아무리 절세의 놀라운 것이라 할지라도

지금같은 이 경우에는 그것을 마음껏 발휘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노영탄은 기막히게위태롭고 난쳐한 지경에 빠져서 그저 말없이 연자심의 

얼굴을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무엇이라고 어떻게 하자고 말도 할 수 없는 딱하고 기막힌 순간이었다.

이때 연자심이 먼저 입을 열었다.

 

" 혼자서. 먼저 몸을 피하세요! 

저는 설사 놈들의 손아귀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설마 저를 어쩌기야 하겠어요?

먼저 이곳에서 몸을 피하시어 일단살길을 찾으신 다음 다시 저를 구출해 주실

방침을 세우세요!

이렇게 우두커니 서 계시기만 하면 가만히 앉아서 놈들에게 붙잡히고 말게 아니예요? "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 하늘 높이 떠올랐던 다섯 개의 불덩어리는 이미 강물에

떨어져서 꺼져버리고 말았다.

수면에는 또 다시 처음의 칠흑같은 어둠만이 감돌았다.

홀연 기경객의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 악가란 놈아!  네 놈이 여기서 도망칠 생각을 한다는 것은

네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

노영탄은 이를 악물었다.

금서 보검을 더 한층 힘있게 움켜잡고 두 어깨를 으쓱 하더니

당장에 몸을 날려 배 위를 뜨려고 했다.

연자심의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리며노영탄의 소맷자락을 왈칵 붙잡고 매달렸다.

" 그만두세요! 어쩌려고 이러시는 거예요?

아무리 무술이 고명하시다 해도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저렇게 많은 화살을 대적하고

싸우실 수 있겠어요?

지금 바로 이 컴컴한 틈을 타서 ...... 어서 빨리 제 말대로 ........ 몸을 피하세요 ......."

노영탄은 연자심에게 이렇게 가로막혀버리고 마니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라

두 눈을 날카롭게 뜨고 배 한복판에 우두커니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바로 이때

그들 둘을 포위하고 있던 회양방의 여러 나룻배 위에서는

괴상하고 요란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아야야야야야.....! "

 

" 이쿠! 쿠쿠쿠 ......."

 

" 아아악! "

 

갖가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화전이 하늘 높이 뻗쳐 올라가더니.

수면이 또 다시 불빛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깜짝놀라서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회양방의 배들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여태까지는 질서정연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여러 배들이 웬일인지 갑작스레 뿔불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또 배 위에 있던 회양방의 비도들 중에는 텀벙텀벙 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놈들도 많았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돌발적이요.

괴상한 사태였다.

10여 척의 회양방의 나룻배 위의활쏘기 명수란 놈들은 어떤 힘에 밀려서인지 알 수 없으나

순식간에 그 절반 이상이 강물 속으로 떠밀려서 빠져버리고 말았다.

비단. 노영탄과 연자심 두 사람만이 이상하고 놀랍게 생각한 것이 아니요.

기경객 과 그 밖의 여러 회양방의 비도들도 까닭을 알 수 없어서

얼빠진 놈들같이 어리둥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와하하하하.......핫핫핫! "

 

난데없이 어디선지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너털웃음 소리가

모든 사람들의 귀전을 진동시키면서 들려왔다.

그 너털웃음 소리는 분명히 강줄기 상류로 부터 들려왔다.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척의 자그마한 범선이 널찍한 돛으로 거센 바람을 무난히 막아내며 천천히.

바로 기경객이 타고있는 나룻배 뒤로 다가들고 있지 않은가!

뱃머리 갑판 위에는 늙은 어부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사립을 썼고 턱밑의 은빛 긴 수염이 강바람에 나부끼는 품이

몹시 태연스럽고 유유자적해 보였다.

강물 위에서 웅성대고 있던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이 늙은 어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무술이 제법 놀랍다고 제딴에는 뽐내고 있는 기경객 자신도.

제 등들미에 다른 배가 접근해 들어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회양방 의 여러 배 위에서 갑자기 물 속으로 떠밀려 떨어진 몇 놈들 또한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어던 거센 힘이 그들을 휩쓸듯이

물 속으로 몰아 넣는다는 것을 느꼈을 뿐 그밖에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기경객이 타고 있는 자그마한 나룻배에서는 비록 물 속으로  밀려 떨어진 놈이

한 놈도 없다고 하지만 그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배 위에서는 여러 놈들이

물 속으로 처박혔으니 만일 누가 이 여러 배에다가 손을 썼다면 그것은 반드시

기경객의 배를 지나쳐갔을 터인데도 기경객 자신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또 다시 회양방의 배들이 진을 치고 늘어선 둥그런 테두리의 범위를 살펴보면

그것을 한 바귀 돌기만 한다 해도 수십 장의 거리가 되는지라.

기경객은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이다지 귀신같이 재빠르게 손을 쓰고 덤벼들리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못했다.

그 자그마한 범선과 늙은 어부는 과연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다.

회양방의 여러 비도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쪽만 바라보고 있을 뿐.

노영탄과 연자심이 타고 있는 배는 돌볼 생각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노영탄은 미쳐서 날뛰고 싶도록 기뻤다.

목청이 터지도록 고함을 지르고도 싶었다.

이때 홀연 가느다랗고 지극히 가라앉은 음성이 노영탄의 귓전을 스치고

또렸하게 흘러 들어왔다.

" 너는 꼼짝 말고 있거라!  내가 다 해치울 테니 ........ "

노영탄은 배 한복판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얼굴에는 회색이 넘처 흘렀다.

연자심은 노영탄의 태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또 저편 범선 위에 있는 늙은 어부를

건너다보니 자기도 그만하면 알아차렸다는 듯 놀라움과 기쁨에 어쩔 줄을 모르는

노영탄에게 이렇게 물었다.

" 노공자 사부님께서 나타나신 게 아녀요? "

노영탄도 급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 맞았소! 바로나의 은사 노인께서 이 자리에 나타나신 거요! "

두 사람은 말을 마쳤을 때.

저편 범선 위에서는 남해어부가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여유작작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 어리석은 꿈에서 결국 누가 먼저 깨어나느냐!

나는 평생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었노라!

의로운 돛을 달고 강호를 편력하니 어리석은 자들의 소행이 진실로 가소롭도다! "

이렇게 유유히 읊고 나더니 남해어부는 또 한바탕 너털웃음을 쳤다.

그리고 몸을 일어켜 배 한복판에 우뚝 섰다.

기경객은 가슴이 칼끝으로 찔린 듯 뜨끔했다.

이 늙은 어부가 누구라는 것을 곰곰 생각했을 때.

그는 얼빠진 놈같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남해어부 상관학을 바라다보고만 있을 뿐.

감히 입을 벌릴 용기도 없는 모양이었다.

한 동안 거칠던 강물 위를 죽음같은 침묵만이 지배하고 있었다.

회양방의 수많은 비도들도 감히 숨소리를 크게내지 못하며 한곳으로 정신을 쏟고 

남해어부를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남해어부는 뱃머리로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우뚝 섰다.

고개를 위엄있게 쳐들어서 번갯불 같은 안광으로 사방을 휘둘러보면서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점잖게 외쳤다.

" 회양방은 끝까지 강호에서 혼자 패권을 잡아보겠다는 야망을 버리지 못하느냐?

이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 어둔 밤중 파도가 흉흉한 강물 위에서 감히 떼를 지어서

한 사람을 해치려 하고 있다니 ...........

네 놈들은 강호 땅 무림의 규칙도 아랑곳없단 말이냐? "

기경객의 바로 옆에 있던 두목급쯤 되는 자 한 놈이 남해어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살며시 활을 잡아 들더니 남해어부를 겨누고 화살 한 개를

꽂아서 슬그머니 쏘아버렸다.

남해어부가 말을 마쳤을 때에는공주에떠돌던불덩어리들이 모조리 꺼져버렸는데.

난데없이 한 줄기 시커먼 광체가 기경객의 바로 옆에서 날쌔게 일어나는지라.

남해어부는 벌써어떤 놈이 도습을 하려고 활을 쏘고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흥 !  별 아니꼬운 놈들이 ....... "

 

남해어부는 코웃음을 치더니 왼쪽 팔을 흘쩍 쳐들어 대뜸 억세고 매서운

손바람을 일어켜서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냈다.

얼굴 앞으로 날아들던 화살은 남해어부와 한 장쯤 떨어진 거리까지 와서는

더 맥을 못 추고 그대로 강물 속으로 꽂혀버리고 말았다.

남해어부의 신형이 갑자기 변하더니.

몸을 쭈거리고 혼원신공의 술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두 발을 한번 쿵하고 구르니까.

당장에 작은 배는 뱃머리를 빙글 돌면서머리는 바깥쪽을 꼬리는 안쪽을 향하고 돌아들었다.

그러더니 몸을 불끈 솟구쳐 올려 배꼬리로 날아가서 우뚝 버티고 섰다.

이때 마침 회양방 놈들은 화전을 또다시 발사하기 시작했다.

강물 위가 온통 훤하게 다시 밝아졌다.

기경객의 신변 가까이 있던 소두목 녀석은 화살 한 개를 맹렬히 솨보았으나

그것은 마치 돌맹이가 큰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버리듯 과녁을 똑바로 맞히지 못하고

전혀 다른 지점에 떨어지고 말았다.

강물 위가 훤하게 불빛에 밝아지며 남해어부가 더욱 가깝게 다가들어오는지라

그 소두목 녀석은 살며시 여러 사람들의 뒤로 물러서서 화살을 들고 남해어부를

겨누며 또 한번 쏘려고 했다 .

남해어부는 소맷자락을 호기 있게 휘둘렀다.

그리고 아직도 3. 4장이나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손바닥을 뒤집더니 .

그 소두목 여석을 향해손바람을 가볍게 보내면서.

굵직하면서도 나지막한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 네 이놈! 물러가지 못할까! "

이상한 일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텀벙하는 소리가 강물 위에서 일어나는가 하는 순간.

그 소두목 녀섯은 그대로 물 속으로 곤두박질을 쳐서 떨어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기경객은 그제서야 뭐라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해어부를 바라보면서 두 손을 맞잡고 절레절레 흔들어 인사를 표시하며 입을 열었다.

" 상관 선배님!

선배님과 저희들은 마치 강물과 우물물 같아서 서로 침범할 아무런 이유도 없사옵고

이것은 단지 회양방과 숭양파의 싸움이온데 어찌하여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손을 대심니까? "

남해어부 상관학은 이 말을 듣더니

자못 가소롭다는 듯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 네 놈의 말에는 일리가 있는 듯도 하다만 그러면 네 놈은 어찌하여

먼저 네 자신을 생각하지는 못하느냐?

본래는 멀리 숭명 바다 위에 있어야할 네 놈은 무슨 연유로 현재 회양방에 가담해서

이곳에 와 있느냐?

네 놈들이 전심전력 숭양파와 승부를 겨루어보겠다는 것은 내 상관할 바 아니로되.

단지 현재 이 강물 위의 사태에 만은 내가 간섭하지 않을 수없다! "

기경객이 남해어부의 말을 듣고 채 대답도 하기 전에 그의 등들미에 서 있던

또 하나 다른 수로타주 이름을 장인이라고 하고 별호를 백무상(白無常)이라고 하는

놈이 무서운 음성으로 눈이 뒤집힐 듯이 부르짖었다.

" 늙은 것이 무슨 지랄을 하고 남의 일에 덤벼드는 거야?

이 서방님이 네 놈하고 한번 겨루어 보겠다!

그렇게도 남의 일에 나서기를 좋아 한다면 어디 한번 견뎌봐라! "

그놈은 말을 마치더니 손에 낭아곡상봉이라는 몽둥이를 들고.

억센 손바람을 일어켜서 남해어부의 범선을 향해 맹렬히 쳐들어갔다.

멋도 모르고 날뛰는 놈의 오만불손한 말을 듣자.

남해어부의 얼굴빛은 어두워졌다.

점잖으면서도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추상같이 호통 쳤다.

" 네 무지하고도 발칙한 녀석아! 머리에 피도 마르지않은 젊은 녀석이 감히

이 남해어부의 면전에서 그게 무슨 버리장머리냐? "

그놈이 몸을 날려 이쪽으로 결사적으로 날아드는 것을 보자.

남해어부는 그 이상 참고 있을 여지가 없다고 결심한 모양이었다.

선뜻 오른손을 높이 쳐들어서 그놈의 손바람을 막아내며 그와 동시에

자기의 손바람을 저편으로 슬쩍 뿌렸다.

풍 !

단지 한번 요란스런 소리가 들렸을 뿐.

그 백무상 장인이란 놈은 마침내 남해어부의 건곤혼원장의 손바람의 힘을 못이겨.

전신이 한 개의 조약돌처럼 높은 허공에서 강물 속으로 곤두박질을 치듯 떨어져버리는 것이었다.

남해어부의 위엄 있고 날카로운 눈초리가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 회양방 향비들을 비로쓸듯이

훑어나갔다.

그 싸늘한 안광은 다시 기경객에게로 가서 멈추면서 준엄한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 이 늙은 놈은 오랫동안 강호와 전혀 인연을 끊다시피하고 살아왔다.

본래부터 쓸데없이 시끄러운 일은 원치 않는 사람이다.

오늘 이 강물 위에서 만일 네 놈들이 이 늙은 사람의 체면이나 위신이란 것을 한번 생각해

 줄 만한 아량이 있다면 이 늙은 놈도 네 놈들과 어느정도 타협을 할 만한 의사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당초부터 네 놈들의 이 따위 어린아이들같이 섣부른 장난이란

내게는 눈에도 차지 않는 일이다! "

기경객은 이 말을 듣더니.

내심 깊이깊이 느끼는 바가 있고 여태까지의 생각을 돌이키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남해어부라는 한낱 노인의 존재가.

당대 무림에서 제1인자라 할 만한 거물이요.

고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으며 또 오랫동안 강호에서 발길을 끊다시피 하고

있던 이 노인을 이 강물 위에서 맞닥뜨리게 됐으니 아무리 자기가 죽을 힘을 다해서

대항해 봤댔자.

결국 이 노인은 한 쌍의 젊은 남여 즉 노영탄과 한빙선자 연자심을 구출해 내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긴장된 순간에도 기경객은 저 혼자만의 약싹빠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남해어부란 노인은 은혜니 원수니 하는 것을 분명히 가리기로 강호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이런 기회에 순순히 그의 말을 듣고 배를 뒤로 물려서 아량과 인정을 베풀어둔다면 .........

지금은 무림이 살기등등하여 가는 곳마다 위험한 일뿐이요.

일신의 안전을 꾀하기란 심히 어려운 판국이다.

나는 공연히 이런 시궁창 물에 휩쓸려든 셈이 되었지만.

지금 남해어부 이 늙은이에게 인정을 베풀어둔다면 .

후일에 무림에 처참한 결투가 있을 때 그는 반드시 나 하나쯤은 돌봐주리라! '

기경객은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돌아섰다.

그제서야 선뜻 대답했다.

" 노 선배님께서 이처럼 친히 나타나셨으니 소생이 어찌 감히 명령에 거역하리까! "

말을 마치자 기경객은 즉각 명령을 내렸다.

" 모든 배들은 이편으로 총집합하라! "

명령일하.

회양방의 수많은 배들은 기경객이 손으로 가리키는 강물위 지점에 두 줄을 짓고

일제히 몰려들어 질서정연하게 늘어섰다.

포위망을 철거해 버린 것이다.

기경객이 다시 한 번 오른팔을 높이 쳐들어 신호를 보내자.

그 수많은 배들은 두말없이 구강 방면을 향해 서서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배들이 다 떠나갔을 때.

기경객은 자기가 탄 배의 뱃머리에 혼자 서서 두 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비굴하리만큼 공손하게 남해어부를 향해 절을 했다.

' 변변치도 못한 놈이 천둥벌거숭이처럼 함부로 날뛰다니 ....... '

남해어부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빙그레 입가에 미소를 띠고 점잖고 우렁찬 음성으로 기경객을 보내주었다.

" 그렇게 선선히 아량을 보여주니 다행이다.

  다음 기회에 또 만날 때가 반드시 있으리라 ! "

회양방의 수많은 배들은 떼를 지어서 멀리멀리 강물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남해어부는 그제서야 머리를 이쪽으로 돌리고 노영탄을 앞으로 불렀다.

"영탄아! 이리 가까이 오너라! "

노영탄과 연자심은 두말없이 남해어부가 타고있는 범선 위로 성큼 뛰어올랐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만면의미소를 띠고.

" 저 두 필의 말들이 사람보다 희한한 놈들이다!

이런 싸움판에서저렇게 애를 썼으니 ........... 가만 있거라 !

저놈들을 빨리 끌어올려 주어야겠다! "

하고 말을마치자.

뱃머리로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목을 아래로 굽히고 두 필의 말을 끌어올리려 했다.

두 필의 말들은 꽤 오랫동안 물 속에서 허덕거렸는지라 몸이 얼고.

또 극도의 공포심으로 뱃전 가까이 이러자 당장 숨이 넘어갈 듯이 씨근거렸다.

남해어부는 다리를 다소 구부정하게 움츠려뜨리고 갑판 위에 쭈거리고 앉더니

머리를 돌려 노영탄을 건너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영탄아! 너는 조심해서 배가 평온한 위치를 유지하도록 버터라.

나는 이두 필의 말을 어떻게든지 끌어올려 주어야 겠다! "

노영탄은 급히 머리를 끄덕끄덕하고 스승이 하라는 대로 그의 자세를 그대로 흉내내서

정신을 차리고 배꼬리로 달려가 두 다리에 있는 힘을 다해서 선체를 꾹눌렀다.

남해어부는 노영탄이 이미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자 .

두 팔을 평평하게 죽 뻗더니 허리를 아래로 구부려서 두 손으로 말의 목들미를 움켜잡았다.

그리고는그의 독특한 진력을 움직여서 큼직한 음성으로 호령을 했다.

" 이리 올라서라! "

호령소리 한마디에 한 필의 흰 말이 거뜬히 물 속에서 배위로 끌어 올려졌다.

백마는 남해어부에게 끌려서 뱃전으로 올라오자마자.

네 다리를 후들후들 떨더니 마침내 기진맥진해서 갑판 위에 나동그라져버리고 말았다.

남해어부는 처음과 같은 방법으로 검정 말 한 필도 마저 배 위로 끌어올렸다.

그 검정 말도 역시 뱃전으로 올라오자마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갑판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두 필의 말을 배 위로 끌어올려 놓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배꼬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감격스럽다 해야 할지.

기쁘다 해야 할지.

놀랍다 해야 할지.

그 모든 감정이 한데 엉클어진 형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노영탄과 연자심은 비로소 경건한 마음으로 공손하게

이 대선배 앞에서 절을 했다.

 

 

<다음 27장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