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22장 절정격투(絶頂激鬪)

오늘의 쉼터 2013. 12. 13. 13:33

 

정협지(情俠誌)

제 22장 절정격투(絶頂激鬪)

천목산의 혈투 

 

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 높은 산꼭대기에도 동이트기 시작했다.

한 줄기 훤한 빛이 동녘 하늘로부터 뻗쳐나기 시작할 무렵.

아침 이슬이 아직도 마르지 않은 서천목산 꼭대기에는 난데없이 몇 줄기

사람의 그림자가 뛰쳐 내달았다.

" 앗! "

무서움과 놀라움에떨려 나오는 고함소리가 산꼭대기의 여명을 깨뜨리면서

처절하게 산울림이 되어서 산 속의 조용한 공기를 흔들었다.

 어슴프레한 새벽 여명 속에서 홀연 나타난 이 몇 줄기의 시커먼 그림자들은

처음에 서천목산 중턱에서 일제히 산꼭대기에 있는 빈터를 향해 달려 올라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 빈터를 찾아서 올라간 그림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엇인지 이리저리 샅샅이 뒤지는 모양이었고 숲속 나무들을 일일이 수색하는 모양이었다.

" 앗! "

별안간 한 개의 그림자가 놀라움과 무서움에 떨리는 고함소리를 지르자.

 다른 그림자들도 와락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아직도 짖은 잿빛 새벽 여명 속에서 그 몇 줄기 그림자들은

극도의 의혹과 놀라움과 긴장에 싸인 눈초리로 땅 위를 쏘아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세 구의 시체가 있었다.

 다리가 없어진 놈. 팔이 부러진 놈. 처참하게 최후를 마친 시체 세 구가 온갖 찹초가

무서할 대로 무성한 가시덤불 거친 땅 위에 되는 대로 나뒹굴어져 있는 것이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시커먼 피가 이미 엉켜붙어서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다.

새벽 햇빛이 차츰차츰 산골짜기로부터 산꼭대기를 향해 쏘아 올라왔다.

 비록 주봉의 제일 높은 꼭대기요.

그것이 뽀얀 안개 속에 휩싸여 있다고는 하지만 .

 밝아오는  새벽 양광 앞에는 차츰 사방의 정경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 밝아오고 안개가 걷히기 시작할 무렵에도이 높은 산꼭대기에는 처참하게

 나뒹굴어져 있는 세 구의 시체 이외에는 인기척이라고는 하나도 더 찾을 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네 줄기의 시커먼 그림자들은 한 곳에 모여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두리번거릴 뿐

그중의 어떤 그림자도 감히 입을 벌리지 못했다.

 거기 죽어서 나뒹굴어진 세 구의 시체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서 이런 결과에 이르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통  까닭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네 개의 그림자들은 바로 숭양파의 낭월대사와 그의 제자인 법명. 법량. 법성 세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항주 연락처에서 날아 들어온 급보를 접하자.

경각을 지체치 않고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숭양파는 천암사에서 감영장의 위령제를 지내고 나서 악중악이『숭양비급』을 절취하여

도주했다는 사실과 감욱형이 실종된 사실을 알고서야 발칵 뒤집혔었다.

『숭양비급』이 도둑을 맞았다는 사실은 실종된 감욱형과 도주해 버린 악중악을 연관시켜서

생각할 때 실로 숭양파 전체의 존망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대표자 철장단심 탁창가가 분노와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즉각에 숭양파 선배 후배 문하생들을

총 동원해서 도처로 물샐틈없는 수색망을 펼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였다.

숭양구우의 옛 도우 중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감영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여덟사람.

그중에서도 탁창가 자신도 끼어서 각각 제자 세 사람씩을 거느리고 즉일로 천암사를 출발했다.

그들은 도둑맞은『숭양비급』을 찾아내서 회수해 들이고 반도 악중악을 체포하여

그와 동시에 감욱형을 찾아내고야 말 것을 서로 굳게 맹세하고 나선 길이었다.

낭월대사도 제자 셋을 인솔하고 각각 배치된 노선을 따라서 곧장 소주. 항주 등지로 달려왔다.

탁창가 자신도 세 제자를 이끌고 숭산 방향으로 급히 달렸다.

낭월대사는 도중에서 샅샅이 뒤지다시피 찾아보고 수색해 봤을 뿐더러.

거쳐오는 연도(沿道)에서 촌락마다 읍마다 모조리 머물러보고.

무슨 소식을 탐지하려고 애섰기 때문에 예정보다 날짜가 늦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노영탄도 그와 똑같은 노선으로 소주 항주 지방에 왔던 것이다

그러나 노영탄은 혼자 몸이였으므로 아무런 거추장스러운 일도 없었고.

 무슨 임무를 띤 몸도 아니었다.

연도에서 큰 성시(城市)에 당도했을 때에도 간단히 요기나 하고 몸을 쉬어가며

더 지체치 않고 길을 걸었다.

그런 까닭으로 낭월대사보다 뒤털어져서 길을 떠나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그보다 앞서서 오게 된 것이었다.

낭월대사는 탐지하고 수색해 낼 책임을 졌을 뿐만 아니라 .

동시에 연락의 중책까지 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키우고 있는 저 거창한 검정 매 묵우란 놈이.

단지 낭월대사 한 사람의 말만 알아듣고 그의 명령에만 복종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밖에 숭양파 제자들도 그 검정 매를 부르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이놈의 행동을 지휘할 수는 없었다.

이런 까닭으로 여러 사람들이 각각 방향을 달리해서 길을 떠날 때.

낭월대사가 연락의 총책임을 지기로 했고 . 그가 검정 매 묵우를 데리고.

이틀 걸러 한번씩 각처의 연락을 빙빙 돌게 해서 아디서든지 무슨 소식이 있으면

즉각 묵우에게 가지고 가게 하고 . 다시 그것을 낭월대사가 묵우에게 알아듣도록

명령해서 각지로 날려 보내 탁창가와 그밖의 여러 사람들에게 긴밀한 연락을 취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날 낭월대사는 스승과 제자 일행 네 사람은 전심을 먹고 호주(湖州) 근처에까지와 있었다.

홀연 묵우란 놈이 하늘 높이 빙빙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즉시로  그놈을 불러 내렸다.

그제서야 묵우의 다리에 급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본래 이 무우라는 검정 매는 낭월대사가 왕년에 서역 땅에 있을 때.

알타이 산중의 빙굴(氷窟) 속에서 구출해낸 한마리의 갓 태어난 새끼 새였다.

그때 낭월대사는 빙곡(氷谷)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설련자(雪蓮子)라는

일종의 식물을 채집하려고 했는데 우연히 한 군데에서 깨어져 거꾸로 박혀 있는

새집을 발견했다.

그 새집은 마치 천 길이나 되는 높은 바윗돌 위에서 떨어져 내려온 것 같았고

둥우리 속에는 도합 세 마리의 갓 태어난 새끼 새들이 들어있었다.

그중에서 두 마리는 이미 깔려 죽었고 나머지한마리도 숨이 할딱할딱 몸뚱이가

꽁꽁 얼어서 얼음장같이 뻗어버릴 지경이었다.

낭월대사는 출가한 몸으로 자비를 생명같이 여기는 사람인지라.

그것들을 자세히 관찰하다가 이 한 마리 새끼 새는 어쩌면 살려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마침 그는 몇가지 새로 만든 영약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약을 조금먹이고 다시 불가에서 말하는 무명진양열기를 써서 그 새끼 새의

전신의 혈액을 차츰차츰 되살아나게 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이 조그마한 새끼 새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극히 이상한 일이지만.이 새끼 새는 어떤 영성(靈性)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정신이 들더니 광체를 쏘듯이 날카로운 한 쌍의 둥그란 눈을 똑바로 뜨고.

아직 잇몸도 생겨나지 않은 조그만 주둥이를 딱 벌리고 낭월대사를 쳐다보며 .

짹짹짹짹 쫑알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갓나온 두 날개를 파드득 몇번 움직이더니

낭월대사의 품속을 쑤시고 들아가버렸다.

낭월대사는 한없이 귀여운 짐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야만야한 빙곡을 휘둘러보자니

영원히 녹을줄 모르는 빙설이  첩첩이 싸여을 뿐이요.

두 날개가 체 돋지 않은 미약한 날 짐승은 그만두고 장정들도 이 빙곡에서

서너 시간만 그대로 있어면 얼음장같이 꽁꽁 얼어서 죽을 것이 틀림없었다.

또 생각해 보자니 새끼 새를 다시 둥우리 속에 넣어주고 살아보라고 한다해도

이미 그 어미 새가 간 곳이 없어니 .

이 어린 생명을 빙곡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는다면 얼어서 죽거나

굶어서 죽을 것이 뻔한 노릇이었다.

이리하여 낭월대사는 측은한 마음을 버릴 길이 없어서 이 갓 태어난 새끼 새를

빙곡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집에다 두고 애써가며 키워온 것이다.

이 묵우란 놈은 서역 땅의 대붕(大鵬)과 알타이 산중의 맹취가 혼합된 종자였다.

자라난 뒤에는 몸집이 거대하고 크며 주둥이의 힘이 무섭고 나는힘이 굉장해서

천리 길이라도 순식간에 날아가곤 했다.

10여 년을 열심히 키운결과 마침내 낭월대사와 이 검정 매와는 마음까지 상통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감정까지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묵우는 강호에서 한 마리 날 짐승으로써 굉장한 용맹을 떨치게 되었다.

또 묵우란 이 검정 매는 아무리 먼 곳에 가 있어도. 낭월대사가 있는 곳을 찾아낼 줄 알았다.

그리도 낭월대사를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도 이놈에게 명령할 수 없었다.

 

그때에도 이놈은 항주로부터 급보를 발에 매고 낭월대사의 노선을 따라서 .

곧장 찾아오다가 과연 호주성 밖에서 낭월대사를 발견하자.

저를 부르는 소리를 한번 듣고 당장에 내려앉은 것이었다.

낭월대사는 급보를 풀어서 펼쳐보고 악중악의 종적이 알려졌다는 소식을 알고

내심 몹시 기뻐했다.

묵우에게 명령하여 숭산 방면으로 날아가서 대표자 철장단심에게 이 소식을 전달하고.

또 한편으로는 경각을 지체치 않고 세 제자를 인솔하고 곧장 서천목산으로 달려갔다.

악중악이『숭양비급』을 훔쳐서 교리를 배반하고 도주하여 종적을 감추었다는 사실은

이미 강호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저서 각 방면의 인물들이 다 같이 그의 행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낭월대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만일에 숭양파가 한 걸음이라도 늦어서. 회양방이나 그밖에 이파의 인물들이 먼저

손을 뻗쳐서『숭양비급』을 빼앗아 간다면 그 영향이 중대할 뿐더러 거기 따라서

갖가지 시끄러운 일이 생길 것이고 또 숭양파는 이후부터 그 칭호조차 내세울 수 없을

정도로 면목과 위신이 땅에 떨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들 스승과 제자. 일행 네 사람이 연일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 간신히 서천목산 꼭대기에

당도했을 때에는 뜻밖에도 이렇게 놀라운 광경이 벌어져 있을 따름이었다.

네 사람은 넋이 빠진 사람같이 한참 동안이나 멀거니

서로 쳐다보며 눈이 휘둥그레질 뿐이었다.

제자 법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부님 이 세 구의 시체는 바로 저 장백산 말라깽이 뚱뚱이 땅딸보 형제와

사대타주 중의 하나인 옥면비표가 아닙니까? "

낭월대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무엇인지 혼자서 침중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뒤를 이어서 제자 법량이 또 말했다.

" 이 세 놈은 모두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악중악 사형이 죽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산꼭데기에는 삼면이 똑같이 깍아세운 듯한 바윗돌의 절벽뿐인데.

저희들이 올라온 한 갈랫길로 오르내리는 이외에는 또 다른 길이라곤 있을 수 없는데.

만일 악중악 사형이 이 세놈을 죽였다면 더 오래 이 산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것이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면 절대로 저희들의 눈을 피해서 갈 만한 길은 없었을 것인데

그렇다면 어째서 저희들은 악중악 사형을 발견하지 못했을 까요?  아마어쩌면? "

낭월대사는 법량의 말을 듣고도 멀거니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 머리를 사방으로 휘둘러서 다시 한편 사방을 샅샅이 노려보는 것이었다.

이때 여태까지 어리둥절해서 우두커니 서 있던 제자 법성이 홀연 손가락으로

큼직한 바윗돌을 가리키며 깜짝 놀란 듯이 말했다.

" 아니. 저게 뭘까요? 분명히 사람의 발자국 인데 ............

저 큰 바윗돌 앞까지 가서는 발자국이 유난히 어지러워졌는걸요! "

말을 하면서 그는 단숨에 그 큼직한 바윗돌 앞으로 달려갔다.

바윗돌 위로 선뜻 뛰어 올라서더니 연방 수선스런 음성으로 떠들어댔다.

" 빨리와서 보세요!  여기 굴이 하나 있네요 ! "

이편에 서 있던 낭월대사. 그리고 제자 법명과 법량도 떠드는 소리를 듣자.

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법성이 찾아낸 돋혈(洞穴)을 함께 바라다 보았다.

네 사람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동굴은 입구가 한 사람이 엎드려서 간신히 기어들 정도였고.

그 밖으로는 등나무 덩굴이며 온갖 잡초 따위들로 얼키설키 가리워져 있었다.

큰 바윗돌을 뒤로 돌아가든지 혹은 그 큰 바윗돌 위로 뛰어올라서든지

하지 않으면 절대로 발견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제자 법명이 손에 잡히는 대로 큼직한 돌맹이 한 개를 집어서 등나무 덩굴을

끈어버리고 그 돌맹이를 힘껏 던져보았다.

" 쿵! "

하고 어딘지 부딛히는 소리가 났을뿐. 그어떤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았다.

제자 법성과 법량은 똑갈이 호신용 칼을 뽑아 들었다.

몸을 쭈그렸다가 펼쩍 뛰면서 굴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앞장을 서서 뚫고 들어간 법량이 굴 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안에서 큰 소리로 악을 섰다.

" 사부님! 빨리 이리 좀 오셔서 보십쇼!  사람이 왔다가 나간 흔적이 분명합니다! "

낭월대사는 이 말을 듣자.

선뜻 큰 바윗돌에서 뛰어내리며 법명에게 말했다.

" 너는 밖에서 조심해서 살펴보거라!

내 먼저 들어가서 굴 속을 한번 자세히 조사해 볼 터이니 ........ "

말을 마치자.

낭월대사도 몸을 쭈그렸다가 뛰어서 굴 속을 뚫고 들어갔다. 

굴 속을 들어서 보니처음에는 칠흑같은 어둠이 왈칵 앞을 막을 뿐이요.

도무지 했빛이러곤 없었다.

낭월대사는 눈을 똑바로 뜨고 온갖 시력을 한 군데로 집중해서 한참 동안이나

유심히 쏘아보고 나서야.

그 동굴 속이 두 칸의 석실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앞으로 있는 한 칸 석실에는 석탑이 하나 있을 뿐. 텅 빈 채 아무것도 없었다.

낭월대사는 다시 뒤에 있는 한 칸의 석실로 발을 옮겼다.

법량과 법성 두 제자들은 고개를 숙그리고 땅 위에 찍힌 발자국을 자세히

들여다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낭월대사가 뒤에 있는 석실로 들어가 보니

그것도 형식이 앞에 있는 석실과 똑 걑았으며 역시 한 군데 석탑이 있었다.

그런데 석탑 앞에는 조그마한 불상이 놓여 있고 몇 자루인지 타다 남은

촛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누가 들어와서 촛불을 켰었던 것이 분명했다.

별안간에 제자 법성이 깜짝 놀라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 괴상한 일인데요! 어째서 세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을까요?

이 발자국은 분명히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발자국인데 ........

그럼 또 다른 사람이 악중악 사형과 함께 여기 있었단 말일까요?"

낭월대사는 이 소리를 듣자 빨리그편으로 달려갔다.

머리를 수그리고 땅 위를 내려다보았더니 과연거기에는 세 가지의

각각 다른 발자국이 찍혀 있었으며 그것은 틀림없이 두 남자와 한 여자의 것이었다.

스승과 제자 세 사람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 발자국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을 때.

갑자기 동굴 밖에서 누군지 무서운 음성으로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쥐새끼 같은 놈들아! 감히 여기까지 와서 흉칙한 짓을 하려느냐! "

낭월대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니

그것은 제자 법명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가슴 속이 뜨끔 하는 찰나 낭월대사는 동굴 안의 발자국 같은 것을

더 살펴볼 겨를도 없이 훌쩍 단숨에 몸을 뛰쳐서 동굴 밖으로 몸을 날렸다.

법량. 법성 두 제자도 그 호통소리를 듣고 깜짝 노라서 스승이 동굴 밖으로

달려나가는 것을 보자 역시 뒤를 쫓아서 급히 동굴 밖으로 뛰쳐나왔다.

낭월대사가 동굴 밖으로 달려나왔을 때에는 법량은 벌써 등에 메고 있던

보검을 뽑아들고 어떤 세 사람을 정면으로 대하고 서 있었다.

그 세 사람이란 바로 회양방의 도당들 중에서 새로 결성된 영도자급에 속하는

이파의 마귀 같은 놈들이었다.

맨 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는 놈은 바로 해남인마.

양편에 서 있는 놈들 중의 한 놈은 호의화상 우람부루 .

또 한 놈은 기경객이었다.

해남인마는 낭월대사를 힐껏 쳐다보자

무엇에 찔린 사람쳐럼 얼굴 빛이 약간 창백해졌다.

그러나 앞으로 한 걸음을 주춤주춤 나서더니

땅 위에 나둥그러져 있는 세 구의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놈의 음성은 침통하게 떨려 나왔다.

" 이 늙은 당나귀 같은 놈아. 마침내 이렇게 악독한 손길을 뻗쳐서 사람을 죽이다니

내 네놈들. 네놈의 당나귀 같은 놈들을 그대로 놓아준다면.

우리 방에 대해 미안해서 견딜 수 없다.

알아차렸으면 어물어물할 것 없이 선뜻 우리를 따라서 가잔 말이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받는 것이 네놈들도 좋지 않느냐! "

낭월대사는 그놈이 말을 마칠 때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얼굴빛이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대답을 하려고 했을 때.

별안간 등들미에 서 있던 제자 법성이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 이 늙은 귀신 같은 놈아 !  칼날에도 영혼이 담겨 있다고 하거늘.

네놈이 또 무슨 미친 짓을 하갰다는 거냐?

살고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저 땅 위에 나둥그러져 있는 세 귀신들을 보아라! 

바로 네놈의 본보기다 ! "

법성은 말을 마치자.

몸을 단숨에 훌쩍 날려 앞으로 쳐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낭월대사는 옴싹달짝도 하지 않고 버티고 선 채로 머리도 돌리려 들지 않았다.

그는 단지 왼손을 한번 뒤로 휘둘러 한 줄기 강기(剛氣)의 힘을 일으키더니.

제자 법성을 가로막아버리고 앞으로 나서지 못하게 했다.

그와 동시에 낭월대사는 부드러운 말투로 해남인마에게 점잖게 말하는 것이다.

" 이 늙은 놈은 불문(佛門)의 제자로서 일찍이 허황된 말을 해본 일이 없다.

또 이것은 무엇을 겁내서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자는 말도 아니다.

단지 나는 이 세 구의 시체가 확실히 우리들의 손으로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만 말해 줄 뿐이다.

내 말을 믿고 안 믿는 것은 그대의 마음대로 할 것이다! "

" 흥 ! "

해남인마는 코웃음을 치더니 냉소를 참을 수 없다는 듯 껄껄대며 또 다시 호통을 쳤다.

" 헤헤헤 ..........헤헤 !  이 늙은 당나귀 같은 놈아.

네놈이 나하고 한바탕 생사를 결단해 볼 것이 겁이 난다는 수작이냐? "

그 놈은 늙은 당나귀라고까지 말을 꺼냈을 때

무엇에 찔린 사람같이 갑자기 말을 중단했다.

늙은 당나귀 소리를 말끝마다 하다 보니.

바로 옆에 홍의화상 우람부루가 서 있지 않은가 !

홍의화상 역시 중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

말끝마다 늙은 당나귀 소리를 해놓고 보니.

그것은 결국 화상들을 모조리 늙은 당나귀라고 욕한 것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너무 심하게 늙은 당나귀 소리를 해서 홍의화상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그것을 겁내는지라.

해남인마는 말을 하다가 말고 중단해버린 것이었다.

낭월대사는 이런 꼬락서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해남인마의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는지라 .

껄껄 한바땅 통쾌하게 웃고 나서 입을 열었다.

" 하하하.......핫 !  늙은 당나귀는 가는 곳마다 있다 !

그대는 어째서 갑자기 그 늙은 당나귀가 가엾게 생각됐다는 거냐? "

해남인마는 낭월대사의 빈정대는 농담을 듣자.

부지중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놈은 한쪽 눈을 날카롭게 홀겨 떠서 홍의화상을 한번 힐끗 바라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리며 얼굴에 노기가 충천하여 호통을 쳤다.

" 이 늙은 도둑놈아! 내 오늘 네놈을 이 천목산에서 그대로 내려보낸다면

나는 너무나 보람없이 억울하게 이 세상을 살아온 셈이 된다!  알아듣겠느냐 ! "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해남인마는 두 손을 벌컥 쳐들었다.

오른손으로 억센 바람을 일어켜 낭월대사의 머리와 얼굴을 노리고 맹렬히 쳐들어갔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쇠갈귀처럼 구부려가지고.

낭월대사의 아랫배를 움켜잡으려고 으르렁거리는 호랑이같이 이를 악물고

육박해 들어갔다.

낭월대사는 소맷자락을 한번 호기 있게 휘둘렸다.

날쌘 동작으로 몸을 선뜻 뒤로 뽑으며 두 손을 밖으로 펼쳐서 양쪽으로 나눈 다음.

아래로 한꺼번에 두 줄기 무서운 손바람을 일어켜서 해남인마의 공세를 멋들어지게

막아냈다.

' 이크! 공연히 섣부른 소리를 해서 이놈의 늙은이를 흥분시켰구나 !

  만만치 않은 늙은이인데 ! '

해남인마는 당장에 겁을 집어먹고 이렇게 후회했다.

낭월대사의 몸을 쓰는 날쌘 품이라든지 손에 일어나는 억센 바람을 보고.

첫눈에 그것을 알아차렸고 섣불리 덤벼들 일이 못 된다는 것을

대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 그런데 옆에 있는 친구들은 무엇을 하느라고 우물쭈물 하는 걸까?'

해남인마는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싸늘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곁눈질을 해서.

옆에 서 있는 제편의 두 사람을 홀겨보았다.

그러나 홍의화상과 기경객도 말없이 해남인마의 얼굴을 응시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해남인마는 원래가 교활하고 음충맞으면서도 간사스럽고 능청맞았다.

그는 낭월대사에게 단지 한번 선수를 써서 싸움을 걸어보려 했는데.

이미 상대방의 실력을 엉큼스럽게 알아차렸다.

낭월대사의 무술이 폭이 넓고 깊은 것이어서 좀처럼 이겨낼 수 없어리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홍의화상이나 기경객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무술 실력은 해남인마의 상대가 될 수 없고 다소 떨어지는 편이고 보니

그들의 힘을 가지고는 더군다나 낭월대사를 감당해 낼 도리가 없을 것이다.

만일에 해남인마가 주제넘게 호통을 치고나서서 선수를 치지 않고.

홍의화상과 기경객이 먼저 나서서 낭월대사와 대적하게되었다면.

해남인마 자신은 세 젊은 제자들 중에 대적하고 아주 쉽사리

가볍고 여유작작하게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낭월대사와 한번 맞닥뜨려 놓고 보니 .

그다지 쉽사리 강약이 가려질 것도같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그대로 몸을

뺄 수도 없는 형세가 되고 말았다.

한편 홍의화상과 기경객은 그들대로 마음속에 엉뚱한 속셈이 있었다.

그것은 회양방이 신방을 결성하고 제명대전을 지냈을 적에 해남인마의

좌석은 그들 두 사람보다 앞서서 자리잡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은연중에 해남인마의 지휘가 그들 두 사람보다

한 급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홍의화상과 기경객은 해남인마에 관해서.

비록 일찍부터 그의 놀라운 명성을 듣고 있었으나 그의 무술 실력이나 재간이

과연 어느 정도 인지는 똑똑히 알지 못했다.

이 몇 놈의 마귀 두목 같은 놈들은 이전에는 다 같이 저희들의 조그마한 지반을

점령하고 그 안에서 제각기 패자(覇者)라 자쳐하고 뽐내고 있었다.

저마다 엉큼스런 야심과 엉뚱한 배짱을 지니고 거물이라 자쳐하는 자들이었다.

이런 야심과 우쭐대고 싶은 욕망 때문에 중원 회양의 땅에까지 나타난 그들이었다.

날뛸 대로 날뛰어보고 거들먹거릴 대로 거들먹거려보고 나서야 그들은

중원의 무림에는 고명한 인물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며 절대로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흉흉한 야심의 불길을 억누르고 있다가 금모사왕이 실종되고

회양방의 신방이 재기하게 되자.

이 몇 놈의 마귀 두목 같은 자들도 어쩔 도리가 없어 서로 협력한다는

허울 좋은 이유 아래 또 다시 한 덩어리로 뭉쳐진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놈도. 본래부터 품고 있던 야망이나 배짱을 내버린 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 피차간에는 쇠갈귀같은 구부러진 마음과 황소 뿔같이 싸우고 싶은 생각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슴 깊숙히 숨어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엉큼스런 판국인지라.

어떤 놈도 다른 사람에게 복종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단지 흑지상인이란 자의 명성이 비교적 뚜렷했고 .

무술도 상당히 뛰어났다고 무림 사람들이 알아주는 지라.

이 몇 놈들의 마귀 두목들도 어쩔 수 없이 겸양의 체통을 차리는 체하고.

그들 회양방의 새 방주로 삼은 것이었다.

그러나 두목급이라고는 흑지상인이 하나 있을 뿐.

그 밑에는 어떤 놈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회양방의 신방이 개단제맹의 대회를 열었을 때에.

그들은 명단의 순서와 자리의 차례 때문에 상당히 옥신각신 했다.

최후에는 역시 흑지상인의 제안으로 연령의 많고 적은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되어.

운몽노인과 해남인마가 맨 앞에 자리잡게 되었고.

홍의화상과 기경객은 간신히 장백산 뚱뚱이 말라깽이 땅딸보 형제의 앞에

설 수 있을 뿐이었다. 이리되자.

두 놈은 내심 불평이 대단했으나 그대로 체면이란 것을 생각하고 잠자코 있었다.

세 놈이 산꼭대기 절정에까지 올라와 보니

낭월대사와 제자 일행 네 사람 그리고 세 구의 시체가 나둥그러져 있을 뿐.

다른 사람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놈들은 제각기 엉뚱하고 교활한 생각들을 하는 것이었다.

해남인마가 제멋대로 뻐기고 미친 듯이 함부로 호통을 치고 나섰을 때.

벌써 홍의화상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낭월대사와 맞닥뜨려본 결과 양쪽의 실력은 뚜렷이 드러났다.

낭월대사의 무술의 탁월한 재간은 이미 조화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것이어서

해남인마의 실력을 가지고는 아무리 보아도 감당해 낼 것 같지 않다는

약점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자식! 아무 데서나 끄떡거리는 ......... 잘됐다. 좋은 기회다!

네놈도 이 높은 산 절정에서 만만치 않은 임자를 만났으니.

어디 한번 톡톡이 혼나봐라 ! "

홍의화상은 엉큼스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남의 재앙과 화를 옆에서 즐기며 구경하자는 악독한 심보였다.

실력이 확실히 딸리는 해남인마를 위해서 걱정한다는 마음은 털끝민큼도 없었다.

홍의화상은 도리어 해남인마가 낭월대사의 손아귀에 나가떨어져서 혼이 나는

꼬락서니를 보고 싶다는 속셈이었다.

한 개의 목적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겠다는 의협심 같은 것이

그들에게 추호라도 있을 리없었다.

기경객 앞에서 남에게 패배하고 쩔쩔매는 해남인마의 창피한 꼬락서니를 구경하면.

그야말로 홍의화상은 가슴속이 후련할 것만 같았다.

동시에 홍의화상은 자신만만한 생각이 있었다.

' 설마 나까지야? 하다 하다 안 될 때에는 용연선독장을 휘둘러보면..........

  제아무리 대단한 놈이라도 ....... '

해남인마가 맥을 못 추게 된 다음에 자기의 독특한 무기를 휘두러면 그야말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술이란 것이 얼마나 독특하고 무서운 위력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랴 !

이렇게 교활하고 엉큼스런 배짱으로 돼가는 꼬락서니만 방관하고 있는 홍의화상이었다.

한편 기경객은 기경객대로 딴 속셈이 또 있었다.

그가 멀리 회양 지구까지 와서 회양방에 가담한 이유는 오로지 저『숭양비급』을 노려

보자는 데 있었다.

치열한 격투를 여러번 겪고도 그는『숭양비급』그림자라곤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 반면에 억울하게 혼이 나본 것도 한두 차례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가슴속에 북받쳐오르는 불평. 불만. 불쾌를 억지로 참아온 것이다.

회양방의 신방이 개단한 뒤에 가만히 정세를 살펴보자니.

이 우글우글 들끓는 마귀 두목 같은 놈들은 저마다 흉흉한 야심을 품고 있으며.

어지간한 무술을 가지고는 놈들을 대항해 내기 힘들다는 사실을 명백히 파악했다.

『숭양비급』이 현제 어디가 있느냐?

그 행방만 밝혀진다면 놈들은 반드시 일장의 수습키 어려운 일대 분규를 일어키고야

말 것이 뻔히 내다보였다.

여기서 기경객은 곰곰이 궁리해 봤다.

' 내 무술의 실력이나 재간만을 내세워 이 어지러운 싸움판에 휩슬려들어갔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않겠는 걸!

그렇게 경거망동을 하다가는.

심지어 일신의 생명을 헛되이 내던져야만 될 가능성도 충분하였다.

이것을 깨달은 기경객은 표면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하고 마음속애만 엉큼한

흉계를 품고 어물어물 놈들을 따라단니고 같이 몰려 지내다가 일단 사태가 불리하다고

관측됐을 때에는 두말 없이 민첩하게 뺑소니를 쳐버리자는 배짱이었다.

이때 기경객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묵묵히 옆에 서서 수수방관할 따름이었다.

해남인마가 제아무리 뽐내고 날뛰고 호통을 쳐봤댔자.

낭월대사의 놀라운 무술을 감당해 낼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홍의화상. 기경객 두 놈은 입을 꾹 다물고 한 옆에 목석같이 선 체로 옴싹달짝도

하지 않았다.

홍의화상과 기경객의 음흉한 배짱은 은연중 일치된 셈이었다.

그러나 해남인마도 바보는 아니었다.

소위 바을 같이 한다는 놈들이 이렇다는 것을 눈치 채자.

분노가 절정에 달했다.

두 눈은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광체를 발했다.

이를악물고 입술을 깨무는 것이었다.

법명. 법량. 법성 세 제자들도 홍의화상과 기경객이 앞으로 대들어 저희들 편을

거들고자 하는 기색이 없고 또 자기네들에게 싸움을 걸고 덤벼드는 기색도 없는지라.

역시 낭월대사의 신변에서 가까운 곳에 조용히 서서 해남인마와의 싸움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 흠!  네놈들의 배짱이 그렇고 구랬구나! '

해남인마는 주위의 정세를 재빠르게 파악하자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히려고 애섰다.

' 좋다!  내 혼자서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이 늙은 놈과 대적해 보겠다! '

그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호락호락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물론 해남인마는 낭월대사와불과 한번 맞닥뜨렸을 때.

이미 그가 자기로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임을 알아차리기는 했으나.

최소한 이런 생각은 했었다.

자기가 낭월대사를 상대하고 있는 동안에 홍의화상과 기경객이 세 젊은 제자들에게

싸움을 걸고 덤벼들면 젊은 제자들은 도저히 그들 둘을 감당해 내지는 못할 것이고 

그러나 너무나 큰 오산이었다.

홍의화상과 기경객은 비단 해남인마가 받고있는 공격을 덜어서 협력해 줄 눈치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세 젊은 제자들에게 싸움을 걸지도 않고 손 하나 까딱하려 들지도

않는 것이다.

판국이 이쯤 되고 보니.

비장한 결심 속에서도 점점 더 초조하고 당황해지는 것은 해남인마요.

그 반면에 마음을 착 가라앉히고 여유작작하게 해남인마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은

낭월대사였다.

이 절정 공지의 면적은 그다지 넓지 못했다.

해남인마는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대면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낭월대사는 그 낭떠러지를 등 뒤에 두고 서 있었다.

부여된 면적과 공간이 똑같이 아슬아슬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긴장된 판국이었다.

쌍방은 똑같이 암암리에 각자가 지니고 있는 힘을 어떤 한 개의 초점으로

총집중시키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도 상대방의 일거일동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가장유리한 기회를 노리다가 털끝만한 틈이라도 벌어지기만 하면 즉각 공격을 

가하자는 것이었다.

해남인마의 시퍼렇게 노기를 띤 얼굴이 극도의 긴장과 흥분으로 두 볼에 처참한

경련을 일으켰다.

' 이놈의 늙은 것을 어떻게 하면 때려눕힌다? '

그도 강호에서 일류 고수급에 드는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해남도에 은거하면서 10여 년 동안이나 기이하고 억센 무술의 재간을 연마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 다시 중원 땅을 밟으면서 더욱 독특한 갖가지 무술을 연마한 것이었다.

눈앞에서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존재. 그는 비록 한낱 늙은이에 불과하지만.

해남인마에게는 일찍이 맞닥뜨려보지 못한 대적임이 틀림없었다.

일각 일각 숨이 꽉 막히는 것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 이놈의 늙은이를 어디를 먼저 들이친다? '

해남인마는 또 한번 이를 악물고 낭월대사에게 꽂은 화살 같은 시선을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았다.

 

낭월대사로 말하면.

숭양의 옛 도우 중에서 제일 나이도 많고 또 입문한 지도 가장 오랜 인물이다.

본래의 위치로 따지자면 응당 숭양파를 계승하여 대표자가 되어야 할 존재였지만.

단지 신분이 불가의 제자로서 이미 속세를 던지고 출가한 몸이라는 까닭으로

그 자리를 양보한 것뿐이었다.

또 그의 성격이 깨끗하고 깔끔한 것을 즐기며 속세의 시끄러운 일에 간섭하기를

꺼려하는 지라.

이미 대표자를 선발했을 때에 그는 선배인 사장들에게 솔직히 자기의 심정을

고려하고 대표자의 위치를 계승할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무술 실력의 고결함은 숭양파 사문 안에서만 연마한 것이 아니요.

외부에서 허다한 이인들의 가르침을 받아 이미 그 폭이 누구보다 넓으면서도

정수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숭양파 중에서 굴지의 고수의 한 사람으로서 강호 무림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었다.

고수와 고수가 서로 대결할수록 그들의 일거일동은 침착하고 조심스러우며

또한 느리고 무거웠다.

손을 간단히 한번 쓰는 데도 갖가지의 변화가 숨어 있는 법이니.

왕왕 단지 한 가지의 동작을 잘못한 까닭으로 앞으로의 대결에 허다한 약점을

초래하는 수가 있으며 몸의 일부분을 단지 한번 경솔하게 놀린 것이 항시

상대방의 견제와 공격을 면치 못하게 되어 마침내는 실패로 돌아가고 마는 수가

많은 것이다.

돌연 해남인마는 몸을 솟구치더니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왼손으로는 자기 가슴을 방비하고 오른손으로는 내리칠 듯. 무엇을 움켜잡을 듯.

곳장 낭월대사의 가슴과 배를 사이를 노리며 육박해 들어갔다.

" 이 ........ 이 늙은 놈이 . 끝까지 덤빌 작정이라면 어디 한번 ............ "

사나운 짐승이 무섭게 부르짖는 것같이.

으러렁거리는 것같이 부르르 떨리는 음성으로 호통을 치면서.

그의 온 몸뚱이는 마치 그 마디마디가 무서운 광풍으로 변한 듯이 회오리바람 같은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낭월대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얼굴빛이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가라앉았으며.

무형중에 깊숙히자리잡혀 있는 정신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해남인마가 육박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선뜻 몸 안에 축적되어 있는 불가의 무명순양진기(無名純陽眞氣)를 두 팔에 총집중시켜서

두 손바닥을 한 곳으로 모아 합장을 했다.

낭월대사가 버티고 있는 등 바로 뒤는 천야만야한 낭떠러지였다.

아무리 날쌔게 몸을 움직일 수있다 해도 뒤로 피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맞부딪히며 쳐나가는 도리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해남인마가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육박해 들어갔을 때.

낭월대사는 합장했던 두 손을 별안간 활짝 펼치더니 한쪽 손을 홱 뿌리치고.

또 한 손은 앞으로 탁 치면서 억센 힘을 뽑아내어서한편으로 무명순양진기를 장심으로

집중시켜서 순식간에 눈에 보이지 않은 무형의 장벽을 만들어 그것을 사방으로

펼쳐놓으면서 해남인마의 육박해 들어오는 거센 힘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대결하는 자세는 민첩하기 비길 데 없고 행동 하나하나가 번갯불같이 통쾌했다.

그것은 산꼭대기의 면적이 지극히 좁다는 이유가 제일컸다.

뒤로 물러나갈 여유도 없었으며 앞으로 함부로 쳐들어 갈만한 넓은 면적도 없는 것이었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단지 두 갈랫길이.

그들을 이 좁은 면적 위에 몰아넣고 생사를 결단하는 격투를 전개시킨 것이다.

섣불리 싸우는 대결이 아니었다.

양쪽이똑같이 전력과 진력으로써 대결하는 치열하고 처참한 싸움이었다.

하나가 위에서 내리치면 하나는 선뜻 그것을 아래에서 받아넘기고 막아내고.

숨막히는 백열전이 계속되고 있을 때.

" 팽! "

별안간 크고 날카로운 소리가 일어났다.

그 순간 낭월대사의 얼굴이 온통 시뻘겋게 타오르고 혈맥의 줄기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는 두 발로 땅을 힘차게 한번 굴렀다

" 쿵! "

하는 소리와 함께 낭월대사의 다리는두 발등이 한꺼번에 땅 속에 파묻히는 것 같았다.

전신의 승포 자락이 무서운 회오리바람에 휩슬리듯이 자락자락 휘날리며.

" 쏴! "

하고 무서운 음향을 내면서 모조리 허공으로 날아 올라갈 것같이 펄럭거렸다.

해남인마는 팽. 하는 소리를 한번 듣자마자 금방 두 다리에 맥이 탁 풀렸다.

사람의 전신이 마치 줄이 끊어진 연(鳶)처럼 돼버렸다.

갑자기 흘쩍 바람처럼 뒤로 몸을 피해보았다.

흔들흔들 주춤주춤 몇 번인가 쓰러질 듯 마치 술이 취해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앞을 내닫는 방벽에 부딪친 것 같았다.

비칠비칠흔들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서너 장이나 되는 거리를 뒤로 물러나서야 간신히 있는 힘을 다해서 다시 버티고 섰다.

그러나 해남인마의 얼굴에는 죽음같은 회색빛 구름이 내리덮이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그것은 다시 푸르고 누런 빛깔로 변해서 얼굴 전체를 스치고 나갔다.

두팔이 흐늘흐늘해지며 허리께로 처젔다.

해남인마는 불과 이 한 판 싸움에 전신의 모든 힘이나 기운이 몽땅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그것은 시간을 지연시킬 여유 있는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양쪽이 똑같이 한번 맞부딪쳐서 손을 쓰고 대결했을 때.

그것은 순수한 진력을 가지고 마치 막다른 골목에서 불덩어리와 불덩어리가 맞닥뜨리듯

피할 도리가 없는 아슬아슬한 판국이었다.

물론. 그들은 지극히 조심조심 천천히 한번 또 한번 여유를 두려고 애쓰면서 .

그들의 힘을 뽑아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대결하는 긴장된 형세란 그기에 임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똑같이 숨을 제대로 못 쉴 뿐더러 이편과 저편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해남인마의 무술 실력은 이만하면 두드러지게 낭월대사보다 떨어지는 점이 보였다.

만일. 이 순간에 낭월대사가 한 걸음 앞으로 더 다가 들어서 그대로 계속해서 일격을 가했다면.

그는 절대적인 열세의 위치에서 달리 손을 써볼 도리도 없이 주저앉아야만 될 판이었다.

그러나 낭월대사는 지극히 온건하고 점잖은 태도로 버티고 섰을 뿐.

그 이상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숨을 돌려 잠시 몸을 쉬고 그가 본래 지니고 있는 평화스러운 모습을 회복하자는 것 같았다.

낭월대사가 바로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할 듯 했을 때.

" 으흐흐 ........ 으흐흐흐 "

징글맞은 냉소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여태까지 한 옆에 서 있던 홍의화상 우람부루의 웃음소리였다.

이를 악물고 두 눈을 부릅뜨고 사람을 집어삼킬 것같이 음흉한 얼굴을 하고.

홍의화상은 비호같이 몸을 날리더니 단숨에 해남인마와 낭월대사 중간에 우뚝 섰다.

천천히 오른손을 높이 쳐들며 이죽이죽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 흠! 중원 땅에는 무술의 고수들이 많다더니 과연 그것은 거짓말은 아니넜구나!

숭양파에도 제법 쟁쟁한 인물들이 있어 뽐낸다는 거지?

흥! 그것을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 눈으로 본 셈이다!

하지만 이 늙은 것아!

회양방도 그렇게 만만하고 호락호락하다고만 생각지는 말아라.

어디 오늘은 나라는 사람을 좀 알아보는 것이 어때? "

말을 마치고 몸을 한번 가볍게 꿈틀거리더니

전신의 뼈 마디마디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일어났다.

" 우두두둑......... 우두둑! "

" 으으으응! 에에에에 ..........."

홍의화상은 짐승 같은 음성으로 이렇게 으러렁거렸다.

다음순간. 그는 오른쪽 팔을 홱 뿌리쳤다.

억세고 무서운 바람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바람은 한 줄기 은은하게 보이는 검은 기운을 띠고.

곧장 낭월대사에게 습격해 들어가며 말아버릴 듯이 주변을 휩싸는 것이었다.

그러나 낭월대사는 그가 입을 놀리고 있는 동안에 그의 행동을 유심히 주목하고 있었다.

그가 말을 마치고 뼈마디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를 냈을 때.

이미 그것이 용연선독장의 수법을 쓰려는 것임을 알아챘다.

낭월대사는 경각을 지체치 않았다.

재빠르게 소맷자락 속으로부터 조그마한 주머니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 주머니로부터 누르스름한 가루를 한 웅큼 쏟았다.

그것을 오른쪽 손바닥 위에 올려놓더니 코에다 대고 문질렀다.

그리고는 가만가만히 그 가루를 들이마셨다.

그가루는 삽시간에 모조리 콧구멍 속으로 흡수되어 들어갔다.

낭월대사는 그 조그마한 주머니를 뒤에서있는 세 제자들에게 흘쩍 던져주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고 가라앉은 음성으로 외쳤다.

" 주의해라! "

그리고는 몸을 떨쳐 와락 앞으로 뛰어나서더니 한쪽 손을 번개처럼 뿌리쳐서

사나운 손바람을 일어켜 홍의화상의 공격을 막아냈다.

법명. 법량. 법성 세 제자들은 스승이던지는 조그만 주머니를 받아들고.

또 스승이 나직하게 외치는 소리를 듣자.

그들 역시 급히 그 주머니 속에서 누런 가루를 쏟아 낭월대사가 하던 것과 똑같이

 콧속으로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서는 그 조그만 주머니를 목에 걸고 세 제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정신을 바짝 차리며 여전히 낭월대사의 등들미에 자리잡은 채 버티고 섰다.

그 조그만 주머니 속의 누런 가루는 바로 철기사가 천년 묵은 웅환을 정밀히 갈아서

만든 웅황분이었다.

낭월대사는 오래전부터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홍의화상 우람부루와 맞닥뜨리게 되어 그가 용연선독의 독기를 쓰게 될 때

철기사의 웅황정으로 막아내는 방법만 그 이외에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철기사가 떠나갈 때.

낭월대사는 다년간의 우정 관계가 깊은 지라.

그것을 좀 빌려 쓰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철기사는 물론 빌려줄 수도 있는 처지였으나 공교롭게도 자기 자신 또한 그것이

소용되는 때였는 지라 한 가지 비상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었다.

결국. 철기사의 천년 묵은 웅황정에서 그 가루를 조금 갈아내서 낭월대사에게 준 것이다.

낭월대사는 이것을 다시 여들 개의 조그만 주머니에 나누어 담아 숭양파의 각 조에게

한 주머니씩 간직하도록 용의주도한 준비를 해두었던 것이다.

철기사의 천년 묵은 웅황정은 오리알보다도 더 컸다.

거기서 가루를 조금 갈아낸다고 해서 그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가루의 효과도 웅황정의 효과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 이크! 저놈의 늙은 것이 어지간한데! 하지만 나한테야! '

홍의화상은 해남인마가 당해내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자.

적이 겁을 집어먹었으나 한편으로는 역시 자신만만했다.

' 이놈의 늙은 것을 이번에는 요절을 내버려야만 ........... '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자기의 무술 실력이 반드시 낭월대사를 대적해서

월등히나으리라는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용연선독의 무서운 힘을 믿고 있었다.

이 선독을 한번 뿌리면 제아무리 무술의 재간이 놀랍다 하더라도 도저히

그것까지는 막아내지 못하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공로를 세워서 한번 우쭐대보자는 은근한 생각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차제에 해남인마의 기를 죽여서 놀려보자는 엉큼한 속셈이었다.

그래서 덤벼들자말자 대뜸 기고만장한 소리를 함부로 지껄여서 은연중에

해남인마를 한번 풍자하고 조롱해 주고나서 즉각 용연선독을 뿌려본 것이다.

낭월대사를 거꾸러뜨리기만 한다면 비단 강호에 위명을 떨칠 수 있을 뿐더러.

한번 통쾌하게 뽐내보고 또 회양방 놈들을 얕잡아봐도 좋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 해남인마를 아무 소리도 못하게 눌러버릴 수있으리라.

이런생각을 하면서도 우람부루는 낭월대사에게 용의주도한 방비가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우람부루의 손바람이 쳐들어 왔을 때.

낭월대사는그 억센 바람속에 한 줄기 거무튀튀하고 뿌연 연기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고 벌써 그것이 틀림없이 용연선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웅황정 가루를 콧속에 마셔두기는 했다지만 그 효력이 모자라기라도 하면

큰일인지라 낭월대사는 어디까지나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상대방을 경솔히

다루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낭월대사는 몸을 불끈 솟구쳐 올려 껑충 위로 뛰면서

홍의화상의 손바람을 피하는 순간 오른쪽 다리를 홱 뻗어 비운출수의 술법으로

화살같이 빠르게 홍의화상의 대머리를 걷어 찼다.

홍의화상은 한쪽 손바람이 이미 허공에서 습격해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찰나.

그와 동시에 낭월대사가 껑충 뛰어 오르며 그 오른쪽 다리까지 쳐들어오는 것을

깨닫자 선뜻 고개를 수그리고 불쑥 앞으로 나서며 몸을 한번 호되게 꿈틀거리더니.

홱 돌이키며 낭월대사와 마주 대결했다.

낭월대사가 땅에 다시 내려서는 찰나에 홍의화상은 이틈을 놓치지 않고 급히

또 한번 손바람을 일어켜 낭월대사의 하복부를 겨누고 맹렬한 습격을 가했다.

두 사람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쳤다.

그들은 이미 세번이나 불이뛸 것같이 맞닥뜨려 보았다.

그러나 낭월대사는 털끝만큼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반면에 홍의화상은 마음속으로 점점 불안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 흥! 이놈의 늙은 것은 어째서 용연선독 앞에서도 끄떡없을까? '

정말로 까닭을 알 수 없는 기막힌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 낭월대사는 적이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웅황정의 효력이 넉넉히 홍의화상의 용연선독을 막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한번 온갖 진기를 뽑아내 가지고 팔의 뼈와 근육 속에 간직되어 있는 독기를

모조리 두 손의 장심으로 집중시켰다.

두 손을 급히 휘둘렸다.

전광석화같이 낭월대사의 전신을 향하고 습격을 가했다.

그러나 낭월대사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머리카락한 올이라도 놓치지 않을 듯이

상대방의 정세를 관찰하고 있었다.

우람부루의 얼굴빛이 갑자기 이상하게 변했다.

암암리에 전신의 온갖 기운을 한 군데로 집중시키려는 모양이었다.

손을 쓰는 품이 유난히 빨랐다.

손바람도 점점 더 억세졌다.

그리고 그 손바람 속에서 풍겨나는 시커먼 독기가 점점 더 검어지고 짖어지기 시작했다.

'흥. 이놈이 독기를 전부 털어놓아 보자는 거로구나! '

이런 눈치를 알아챈 낭월대사는 차근차근히 숨을 돌리고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한층 몸을 침착하게 가라앉히면서 자기의 위치를 꿋꿋이 지키고 있었다.

낭월대사의 무서운 눈초리는 홍의화상의 두 팔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도 또한 온갖 전력을 두 팔로 집중시켜서 상대방에 대적할 준비를

든든히 하고 있었다.

과연 10여 차나 숨막히도록 서로 육박하고 서로 맞닥뜨리고 난 다음 홍의화상은

그 초조함이 점점 극에 달하는 모양이었다.

거기 따라서 홍의화상의 손바람이 극도로 사납고 억세지기는 했지만.

속은 텅 비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죽을 힘을 다해서 최후의 한 개의 화살을 뜅겨보자는 그런 막다른 골목에 몰려 들어가고

있음을 역력히 알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은 또다시 10여 차례나 맞닥뜨렸다.

홍의화상은 이제야말로 당황해졌다.

' 알 수 없는 일이다!  선독이 맥을 못 쓰다니? '

그는 애초부터 자기의 무술이 낭월대사를 정면으로 대적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계산에 넣고 있었으나 용연선독만은 믿고 있었으며 틀림없이 상대방을 때려눕힐 수 있을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렇게도 이 무서운 독기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일찍이 경험해본 일이 없었다.

그는 이미 용연선독을 쓰느라 온갖 진력을 몽땅 쏟아놓았다.

전신의 힘이란 힘은 모조리 발휘해 보았다.

기진맥진한 판이었다.

그런데도 정면에서 대결하고 있는 낭월대사는 비록 그 역시 온갖 정신을 한 곳에 쏟아가며

소흘히 구는 눈치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기력에 아직도 여유 작작한 점이 있고

안정된 기세와 왕성한 정신으로 조금도 벅찬 기색이 없는 것이다.

' 그러면 그렇지! 네놈이 아주 뻐기더니 돼가는 꼬락서니가 ............ '

옆에서는 해남인마의 싸늘한 눈초리로 홍의화상의 쩔쩔매는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해남인마는 낭월대사의 손바람을 견딜 수 없어서 뒤로 물러서지않을 수 없게되었을 때.

홍의화상에게 풍자와 조소의 화살을 받고 가슴속에서 불끈 치밀어오르는 불길을

참을 수 없었으나 그것을 분풀이할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이제 홍의화상이도저히 낭월대사를 감당해 낼 수 없다는 기세가뚜렷이 드러나자.

추호도 그를 위해서 조급하다거나 초조하다는 기색이 없을 뿐더러.

도리어 남의 재난을 잘되었다고 재미있게 바라보는 밉살스러운 감정에 젖어 있었다.

한편. 기경객은 이런 위태로운 싸움판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지켜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멋도 모르고 선수를 쓰고 덤벼들어서 감당도 못하고 쩔쩔매는

해남인마와 홍의화상의 꼬락서니를 남의 일이니 아랑곳없다는 듯.

멀지감치물러선 채 묵묵히 입을 봉하고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 흥! 이놈들이 ......... 세 놈이 똑같이 딴 속셈을 가지고 있구나! '

낭월대사는 연거푸 두 놈을 대적했지만 여태까지 공세다운 공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시종일관 수세를 지키며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 온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에 낭월대사는 이 세 놈의 마귀 두목들이 각각 딴 속셈을 잦고 있으며.

서로 힘을 합쳐서 상대방과 대적해 보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자.

내심 적이 안심도 되었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낭월대사는 자기의 무술로 이 세 놈 중의 어떤 놈과 대결해도 넉넉히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세 놈이 한꺼번에 협력해서 모조리 덤벼든다면?

그리고 세 놈이 동시에 자기 하나만을 공격한다면?

그는 이것을 겁낸 것이었다.

중과부적. 그때에는 어떤 힘이나 재간으로도 그놈들을 한꺼번에 당해 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법명 등 세 제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

이들 젊은 제자는 도저히 마귀 두목 같은 놈들과 겨를 만한 실력이 없었다.

이런 까닭으로 낭월대사는 이모저모를 궁리하다가 .

결국 어떤 한 놈만을 호되게 찔러서 다른 놈들로 하여금 겁을 집어먹고 저절로

물러나게 해서 양쪽이 적당히 이 상황을 수습하는 작전을 구사한 것이었다.

그러지 못하고 양쪽이 다  같이 목숨을 내걸고 난투극을 벌였다가는 또한 양쪽이

똑같이 희생자를 내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리하여 낭월대사는 손을 쓰는 데 있어서 몇 번이나 상대방에 대한 공세를 늦추고

 방비의 태세만을 취해왔다.

30여 차나 서로 육박하고 다시 떨어지고 한 끝에 마침내 홍의화상은 몸과 정신이

들뜨기 시작했다.

이마에서는 벌써 구슬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낭월대사는 볼두덩에다 힘을 주고 별안간 뇌성벽력같이 호통을 첬다.

" 이놈!  아직도 견딜힘이 있거든 한 발자국이라도 비급하게 물러서지 마라! "

훌쩍 몸을 솟구치는 순간.

낭월대사는 마침내 수세에서 공세로.

홍의화상의 허를 노리며 맹호같이 공격해 들어갔다.

무림에서 거물급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낭월대사.

그가 지니고 있는 비범하고 고절한 무술의 실력.

그것이 한번 공세를 취하기로 결심하고 육박해 들어가는 품은.

그야말로 땅이 흔들리고 산이 떠는 듯 하늘의 별이 곤두박질을 치며.

벼락을 치는 번갯불이 사방으로 확 퍼지는 듯했다.

홍의화상은 허둥지둥 손과 발을 어떻게 놀려야 좋을지를 모르면서

눈앞이 핑핑 돌아갈 뿐이었다.

당황하고 위급한 찰나 홍의화상은벌컥 몸을 뒤로 뺐다.

그와동시에 두 손을 한꺼번에 써서 가슴 앞에서 교차시키면서

있는 힘을 다해 맹렬히 쳐들어오는 힘을 막아보려고 최후의 발악을 했다.

낭월대사는 한번 호통을 치고나서 즉각 몸을 솟구쳐 올랐다.

오른쪽 손바람으로는 홍의화상의 머리를 들이치고 왼쪽 손바람으로는

그의 오른쪽 허리를 측면으로 잘라버릴 듯이 찌러고 들어갔다.

상반신은 앞으로 육박해 들어가고 하반신은 단단히 땅을 디디고 서서.

왼쪽 다리 하나로만 버티고 오른쪽 발을번쩍 앞으로 내지러며.

두 손이 동시에 맹렬한 손바람으로 상대방에게 육박했다.

다음 순간에는 왼쪽 발까지 벌컥 앞으로 내질렀다.

발끝은 화살같이 홍의화상의 아랫배를 정통으로 차버렸다.

낭월대사의 이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은 단숨에 세 군데 급소를 습격한 것이다.

손바람과 다리의 힘.  그것은 마치 우지끈 뚝딱 하고 벼락을 치는 것과 같았다.

회오리바람같이 걷잡을 수 없는 무서운 손바람이 홍의화상 을 휘몰아버리는

것이었다.

홍의화상은 가슴이 뜨끔하고 눈앞이 아찔아찔했다.

' 도망을 치는 수밖에 없구나! '

급박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몸을 피해 버릴 구멍을 찾았다.

그러나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사태는 어느 방향으로

몸을 어떻게 피해야 할지 그것조차 판단할 만한 정신이 없었다.

' 몸을 어떻게? '

그런 것을 생각할 만한 겨를도 없었다.

천지를 뒤집어엎을 것만 같은 낭월대사의  무서운 손바람이 이미 쳐들어와 있는 것이다.

놀랍고 당황하고 초조하면서도 화가 치밀고 홍의화상은 미친 짐승처럼 어르렁거렸다.

" 으으응!  어차피 이리 된 바에야 .......... "

두 팔을 활짝 펴서 좌우 양편으로 홱 뿌리치더니.

낭월대사가 버티고 서 있는 지점을 향해 몸뚱이 전부가 한 개의 화살이 된 것처럼

무작정 덮치고 들어갔다.

비장한 결심이었다.

죽음 속에 몸을 던져서 삶을 구해 보겠다는 마지막 자포자기의 공격이기도 했다.

' 이렇게까지 한다면 늙은 놈이 제아무리 힘이 세고 재간이 있다해도 .......... '

홍의화상은 몸뚱이를 송두리째 던져서 낭월대사의 앙가슴을 들이치고.

상대방의 총역량이 간직되어 있는 심장부에 맹격을 가해 보자는 것이었다.

마지막 온갖 힘을 다하여 한번 이렇게 육박해 들어가면 비록 낭월대사가 당장에

쓰러지지는 않는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몇 걸음 쯤은 뒤로 물러설 줄로만 알았다.

정말 이상한 순간이었다.

홍의화상의 몸뚱어리를 한 개의 탄환처럼 냉동댕이치고상대방을 들이받듯이

덤벼들었을 때 마치 날카로운 칼날로 무엇을 쳐버린 듯이 온갖 힘을 다 뽑아내서

일어킨 손바람이 일시에 딱 끊겨버렸다.

그가 아무리 두 손에 맹렬한 손바람을 일어켜봐도.

그것은 마치한 개의 돌맹이가 맥없이 넓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버리는 것같이

푸시시 김이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허공을 공연히 혼자서 휘젖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그 손바람 앞에 걸리는 것도 부딪히는 것도 없었다.

' 응?  이건 또 무슨 까닭이냐? '

홍의화상이 눈이 뒤집혀서 앞을 내다봤을 때에는 낭월대사는 이미 어느틈에

어떻게 됐는지 그림자도 찾을 길이 없었다.

' 이크!  이게 어떻게 된 늙은 것이냐! '

홍의화상은 놀랍기보다 미칠 것만 같았다.

홱!  시선을 다른 초점으로 돌리고 몸을 그편으로 돌이켜볼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난데없이 위엄 있는 음성으로 나지막하게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 네. 이놈! 이래도 모르겠느냐? "

그 점잖은 목소리는 홍의화상의 등들미 쪽에서 들렸다.

그 순간 홍의화상은 등들미가 시큰시큰하고 비비 꼬이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어느틈엔지 낭월대사의 한쪽 손바람이 가볍게 한번 스치고 지나쳐간 것 같았다.

" 우후후후 ...........후후 ......... "

입도 벌리지 못하는 .

공포 같기도 하고 비명 같기도 한 브르짖음에  홍의화상의 두 볼이 씰룩씰룩했다.

창피하다느니 부끄럽다느니 그런것을 헤아릴 만한 여유도 없었다.

홍의화상은 너무나 당황했다.냉큼 몸을 옆으로 뽑아서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머리를 좌우 양편으로 휘둘러보았다.

낭월대사는 두 팔을 척 늘어뜨린 채 어느 틈엔지 홍의화상의 바로 옆에 점잖게 서서

노려보고만 있지 않은가!

홍의화상은 극도의 부끄러움과 분함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 또다시 감히 경거망동을 할 수 있을 것이랴 !

우두커니 선 채로 입을 벌릴 만한 용기도 없어졌다.

한 옆에 서 있는 기경객도 어리둥절 얼떨떨해졌다.

가슴이 뜨끔하고 찔리는 것 같았다.

방금 낭월대사가 쓴 술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똑바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구궁착위대섬나법(九宮錯位大閃邏法)이라는 놀라운 술법으로.

무예계에서 터득하고 쓸줄 아는 인물은 몇 사람 되지 못했다.

기경객도 이 술법을 한두 번 구경한 일이 있었을 뿐.

낭월대사의 무술이 이런 무서운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아닌데! 이건 잘못 걸렸는걸 ! '

보고만 있던 기경객은 그것을 당하고 있는 홍의화상 이상으로 몸을 떨었다.

낭월대사가 한번 발휘해 본 구궁착위대섬나법도 사실인즉 그 중에서 가장 간단한

1. 2단의 초보적인 것에 불과했다.

구궁착위대섬나법이란 술법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서 무림 전체를 털어봐도 이에

정통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숭양비급』이라는 책자 가운데는 비록 명칭은 다르다고 하지만.

이술법에 관한 상세한 보법이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낭월대사와 철장단심은 그들의 절정에 도달한 무술 실력으로 이 술법에 대한

지극히 초보적인 것을스스로 터득하고 다시 다년간 수련을 쌓은 결과.

겨우 열 몇 자국의 보법을 쓸 줄 알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을 가지고도 이 두 사람은 강호 천지에서 2. 30년 동안을 두고

무수한 강적을 물리칠 수 있었고 무림의 거물들로서 흔들림이 없었으니.

이술법이 과연 얼마나 무섭고 신출귀몰한 것인지는 불문가지의 일이다.

그러나 낭월대사도 초조해졌다.

이 일장의 결투를 되도록 빨리 수습해 버리고 무의미한 분쟁을 오래 끌지 말고

시급히 이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낭월대사는 홍의화상이급박한 위기일발의 정세 속에서 억지로 버틴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즉각 구궁착위대섬나법을 전개하여 홍의화상의 뒤로 돌아들어

무명순양진력으로써 단지 한번 가볍게 그의 어깨를 스쳐본 것이었다.

이때. 해남인마와 홍의화상은 이미슨 맛을 볼 대로 다 보았다.

거기다 또 낭월대사의 무서운 실력과 비범한 재간을 눈앞에 보고 나니

그 이상 대적해 볼 용기가 없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찾고자 하는 목표는『숭양비급』에 있었는데

그것은 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고. 낭월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 그럴 바에야 목숨을 내걸고 싸울 필요가 있을까? '

홍의화상과 해남인마는 마침내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낭월대사는 세 놈이 다 같이 한편에 우두커니 서서 찍소리도 못하고 있는 꼴을 보자.

그제서야 두 손을 한데 모아 쥐면서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 그대들 셋이서 이곳까지 달려온 목적이 어디 있는지.

내 그것까지는 알 수 없으나 만일에 우리 숭양파에 대한 원한이 아직도 깨끗이

씻어지지 않았다면 이후에 다시 공적인 장소에서 판가름을 하는 것이 어떠할까? "

해남인마와 홍의화상은 낭월대사의 말을 다 듣고도 그저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다시 기경객과 시선이 마주쳤으나 그 역시 망설이고 우물쭈물하며 대답이 없었다.

마침내 해남인마가 입을 열었다.

" 늙은 놈이. 엉큼스런 소리를 하지 말란 말이다.

네놈이나 우리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각자가 다 마음속으로 뻔히 알고 있는 게 아니냐!

숭양과 회양의 원수 관계가 그렇게 쉽사리 풀릴 줄 알고?  네 이놈 !  어디 두고 보자 ! "

큰소리는 탕탕 치기는 하지만 해남인마의 말에는 꽁무니를 빼려는 눈치가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이런 눈치를 알아차린 낭월대사도 그 이상 가타부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도포의 소맷자락을 한번 훌쩍 휘두러며 세 제자들 편으로 머리를 돌리며

나지막한 음성으로 한 마디 했다.

" 그만 가자 ! "

스승과 제자. 네 사람은 세 놈의 마귀 두목 같은 놈들을 다시 쳐다볼 생각도 없이

펄쩍 몸을 날려 단숨에 바위 아래로 내려앉아 다시 가시덤불을 헤치고 좁은 길을 찾아서

비호같이 어디론지 사라져버렸다.

홍의화상과 해남인마는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체면이니 뭐니 하는 것을 더 찾다가는 일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판이니.

그 이상 낭월대사에게 덤벼들 용기는 없었다.

명청히 서서 이제야 살아났다는 다행한 생각으로 어리둥절 낭월대사 일행의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세 놈은 아무리 서로 쳐다보아야 뾰족한 수는 없었고.

어떤 놈 하나도 입을 열지않았으며 약속이나 했다는 듯 .

산 아래로 꼬리를 감추어버리는 것이었다.

 

서천목산은 다시 서쪽으로 뻗어 나가서 백장봉 높은 봉우리를 지나면 산세는 더욱 험준하고

날카로웠다 낮과 밤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빽빽하고 시커먼 산림이 황산산맥까지 연결되어

뒤덮어 있는 것이었다.

이 유구한 세월을 두고미개지로 있는 산림 속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본 일이 없는

가시덤불 속에 오직 독충과 맹수들만이 때없이 출몰하였고 몇몇 나무꾼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도 아래의 산기슭에 오락가락할 뿐.

어떤 사람도 감히 이 밀림 속에 깊숙히 들어가지는 못했다.

만일에 한번이라도 이 험준하고 빽빽하고 캄캄한 밀림 속에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

설사 독사나 맹수의 밥이 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결국은 어디로 어떻게 몸을 돌려야 좋을지

그것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하는 시커먼 밀림의 암흑 속에서

목숨을 버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산의 주봉은 깍아 세운 것 같이 날카롭고 험준한 절벽들로서 구름과 안개가 언제나 서리고

감돌고 있는 깊숙한 하늘 속에 우뚝 솟아 있었다.

단지 안휘성 경계선 안으로 뻗어나간 황산의 일부분만은 많은 나무꾼들과 사냔꾼에 의하여

간신히 길이 트여져 있어서 얼마간 올라가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역시 산 초입에서 기웃거려볼 정도요 결코 깊숙히 올라가볼 수는 없었다.

요컨데. 천목산맥이 황산산맥으로 통하는 일대의 지점은 겨우 날짐승들이 날아다니는

이외에는 자고 이래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라곤 없었다.

주봉. 꼭대기 빽빽하고 캄캄한 밀림 속에는 한 군데 신기롭게도 제법 평탄한 공지가 있었다.

그 공지에는 푸릇푸릇 짤은 풀들이 보자기를 씌운 듯이 골고루 덮여 있었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