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20장 용호상박(龍虎相搏)

오늘의 쉼터 2013. 12. 13. 10:34

정협지(情俠誌) 4권


제 20장 용호상박(龍虎相搏)

 

호적수. 노영탄과 악중악 

 

 유수 같은 세월이 덧없이 흘렀다.

꾀꼬리의 울음소리가 간드러지게 산과 들에 울렸다.

하늘하늘 미풍이 나부끼는 버들가지에는 파란 움이 트기 시작했고.

꽃이 피고 나비가 춤을 추고 삼라만상이 소생한 것이다.

부드럽고 가벼운 바람을 타고 눈부시게 밝고 아름다운 춘광이 인간 세상을 다시 찾아든

것이다.

엄동과 혹한도 이미 자취 없이 씻은 듯 사라져버리고 엷은 구름 가벼운 바람 활짝 트인

자연은 계절의 창을 열었다.

모든 사람들의 심정이 한결 가벼워지고 명랑해지는 이른 봄이었다.

그러나 강호 천지의 음산하고 음울한 공기는 날이 갈수록 더욱무거워지기만 했다.

마치 시커먼 흙비가 허구한 날 사납게 퍼붓는 무서운 하늘과 땅 사이같이.

홍택호 호반에서 숭양파와회양방이 일대 결투를 치른 후 그 여파란 것은

흡사잔잔하고 조용한 호수 수면에 던져진 험악한 파문같이 천천히 사면으로 퍼져 나가서

널브러지고 용솟음칠 뿐이었다.

회양방은 새로 방도들을 수습하고 정비하여 개단제맹의 전례를 거행하고 무림의 늙은

괴물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흑지상인 고비가 방주의 지휘를 계승하면서부터 

옛날보다도 몇 곱절 더 악독하고 음흉하게 날뛰며 갖가지 흉계와 활동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숭양파는 회양방의 해골 사령기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회양방을 깨끗이 해산시키지 못했을 뿐더러 도리어 더 크고 무서운 화근의 씨를

뿌려놓은 셈이 되고 말았다.

숭양파와 회양방의 훤한과 복수의 골은 날이 갈수록 심각하고 치열한

도를 더해갈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강호 천지에는 두 가지의 색다른 소식이 각 방면을 떠돌고 있었다.

그 한가지는 스승과 교리를 배반하고 행방을 감춰버린 숭양파를 계승할 대표자인

제자 악중악이 숭양파의 진산 보배요.

무림의 신서(神書)라고 일컫는『숭양비급』까지 훔쳐 가지거 도주했다는 사실이었다.

또 다른 한 가지 소문은 회양방의 예전 방주였던 금모사왕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금모사왕이 회양방을 창설한 초대 방주 개세천왕 연약파가 보물을 숨겨둔 

지도를 지니고 있으니 만일에 그 어딘지 감추어둔 보물만 발굴해 낼 수 있다면 

천하의 어떤 사람도 따를 수 없는 치부를 할 수 있으리라는 소문이었다.

이 두가지 소문은 강호 천지 방방곡곡으로 발이달린 것처럼 빠르게 퍼졌다.

입에서 입으로 그럴싸하게 침소봉대되고 과장되어서 퍼지는 소문이면서도.

그것을 정말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소문은 강호에서 준동하고 있는 여러 이파 인물들의 주의를 끌어서

그들의 엉뚱한 욕심을 자극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야심 때문에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소위 정통파의 고수급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소문을 한 번 듣자.

세상을 등지고 은거 생활을 하던 허다한 무림의 고수급 인물들까지 귀가 번쩍 뜨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떤 야망에 불붙은 나머지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참지 못하게 되었다.

숭양파와 회양방은 표면상에 있어서는 쌍방이 다 같이 아무런 동정을 보이지 않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에있어서는 암암리에 각각 준비하는 바가 있었으며 슬금슬금 남의 눈에 뜨일세라

몰래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탁창가와 숭양파의 선배급 인물 및 사람들도 미산호에서 그들의 활동 계획을 결정했다.

탁창가까지 포함된 숭양파의 모든 선배요. 사장급 인물들은 각각 한 사람 앞에 제자 세 사람씩을

거느리고 여덟 개의 소조를 구성하여 각지로 흩어져서 맹렬한 수색 공작에 착수하기로 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악중약의 행방을 찾아서『숭양비급』을 도로 회수해들이자는

맹세와 결심에서였다.

한편. 철장단심 탁창가는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옛 친구와 지기들에게까지 간곡한 부탁의

통지서를 골고루 발송했다.

누구든지 무릇 악중악의 종적을 알게 되었을 경우에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숭양파의 연락처로

신속히 통고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문이었다.

숭양파는 여덟 군데에다가 각각 연락처를 설치했다.

그 8개소의 연락처는 모두가 수륙양면의 요로요 요새 지대에 속하는 지점이었고

그 범위가 전국 도처에 퍼져 있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낭월대사가 기르고 있는 저 거웅 묵우란 제자가 이 8개소의 연락처를

두루두루 날아단니며 연락을 취하고 서신을 전달하기로 되어 있었다.

노영탄은 천암사에서 이틀을 지냈다.

숭양파 사람들이 대거 출동하여 악중악을 체포하려 드는 것을 알자.

그대로 이곳에 더 머무를 수도 없고 해서 곧 그들과 작별하고 이곳을 떴다.

천암사를 떠난 노영탄은 다시 회양 지구에 도착했다.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회양방 역시 대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종합해 보자니 역시 악중악이『숭양비급』을 훔쳐

가지고 도주했다는 사실과 금모사왕 오빈기가 몸에 지니채 없어졌다는 보물을 감추어둔

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온 천하 사람들의 화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이 두 가지 소문이 강호를 휩쓸고 있는 기세란 노영탄이 생각했을 때.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을 만큼 놀랍기도 하고 가소롭기도 했다.

무림의 패자가 되어보겠다는 욕망 . 보물을 찾아서 치부를 해보겠다는 욕망.

이런 엉둥하고 무서운 인간의 욕망들이 한데 엉클어져서 강호에 갖가지 구구한 억측을

퍼뜨리며 회오리바람처럼 모든 사람들을 호기심과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판이었다.

노영탄이 강호의 정세를 이모저모로 살펴보자니.

그것은 바로 외이내장(外弛內張)의 무서운 판국이었다.

걷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하면서도 기실은 처참한 싸움과 살육의 기회를 노리는

자들이 도처에 은닉하고 매복되어서 일찍이 보지 못한 격렬하고 참혹한 또 하나의 결투가

눈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 싹트며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감욱형의 행방을 찾아내야 하겠는데 ........

하지만 악중악과 연자심을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그들은 결국 어찌 될 것인가? '

노영탄은 두 갈랫길에서 갈팡질팡하는 복잡한 머릿속을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감욱형을 한시바삐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 있기는 하지만.

또 연자심을 빨리 찾아서 아버지 연약파가 보물을 감추어두었다는 

그 지도를 전해주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다.

' 가소로운 놈들 !  왜 까닭없이 남의 보물을 탐내는 것이냐?

 그 지도는 내 수중에 있는데 ............. '

이렇게 생각했을 때 .

연자심의 일도 이만저만 중대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 아가씨들을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을 것이랴!

망망한 인해(人海)와 무변대한 강호의 땅덩어리 위에서 사람 하나를 찾는다는 것은

흡사 망망대해에서 바늘 한 개를 찾으려 드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내가 스승과 작별하고 호수 바깥 세상으로 나온 이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온갖 풍상을 참고 견디며 동분서주 힘써온  것은 무림의잔혹한 살육과 원한 관계를

없애보자는 까닭이었는데 이렇게 있는 힘을 다 기울여 가지고도 결국에는 아무런

소득도 없다니 ........

노영탄은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그는 숭양파 사람도 아니요 회양방 사람도 아니었다.

'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남의 일에 혼자서 근심 걱정하며 뛰어다닐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 어지러운 세상을 멀리하고 관외 지방으로 달려가서 사부님이나 찾아 모시고

세월을 보낸다면 얼마나 한적하고 안일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노영탄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이를 때마다 노영탄의 눈앞에 번개처럼 나타나는 것은 저 장엄하고 엄숙하게 생긴

스승 남해어부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자상하면서도 위엄 있는 음성으로 제자를 꾸짖는 남해어부의 말을.

노영탄은 역력히 귓전에 듣는 것이다.

' 이놈! 그만 일에 풀이 죽어서 힘을 잃다니?

영탄아 . 용기를 내라!

무림의 처참한 싸움을 막고 퇴폐한 무덕을 바로잡아볼 목적이 아니었다면.

내 무엇을 위하여 너에게 심혈을 경주하여 무예를 전수해 주었겠느냐?

그런 정신과 태도라면 네 몸에 백 가지 절예를 지니고 있다한들.

그것이 무림에 무슨 공헌을 할 수 있단 말이냐? '

이를 때마다 노영탄은 전신이 오싹 떨리는 무서운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용기를 내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영탄은 그대로 주저앉거나 도피를 꾀할 수는 없었다.

그는 또 한번 결심을 했다.

만난을 물리치고 온갖 가시덤불. 험악한 길이라도 극복하고 복잡다난한 국면을

해결하고 수습하는데 또 한번 전력을 기울어보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이틀 동안을 천천히 걸었다.

어느 틈엔지 노영탄은 회안부 성 밖에까지 와 있었다.

그는 홀연 생각나는 바가 있었다.

강남 땅에 와 있은 지 이렇게 오래됐으면서도. 여태까지 소주(蘇州). 항주(杭州)

두 고을을 구경하지 못했다는 것이 유감천만이었다.

이제는 몸도 한가로워졌고 도리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지경이니.

이런 기회에 한번 돌아다니며 구경이나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마음을 먹자 노영탄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쉴 생각을 버리고

즉시 시장판으로 들어서서 한 필의 준마를 샀다.

말을 보니 마음과 몸이 한없이 경쾌해졌다.

선뜻 말위에 올라 탔다.

채찍을 가볍게 휘두러며 말의 재갈을 맨 고삐까지 풀어주었다.

산들바람이 부는 화창한 날씨 . 소주. 항주를 찾아서

노영탄은 마음 내키는 대로 천천히 말을 몰았다.

뚜벅뚜벅 ........점잖은 말굽 소리 밑에서도 향기로운 봄바람이 속삭이며 내닫는 것만 같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노영탄은 이렇게 한적하고 유유한 기분으로 말을 타보았다.

이틀도 못 되어 그는 곧장 소주에 도착했다.

노영탄은 소주 에서 한가로운 유람으로 이틀 동안을 보냈다.

명승고적이란 것도 골고루찾아보았고 천하에 유명하다는 호구산에도 올라가보았다.

또 다시 말을 몰아 항주로 향했다.

저 유명한 서호(西湖).

그림같이 아름다고 깨끗한 이 호수의 풍경은 그것을 한번 보는 사람치고 끌려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바라볼수록 가슴속이 활짝트이고 온갖 번뇌와 우수를 씻은 듯 잊어버릴 수 없었다.

산자수명(山紫水明).

호광(湖光). 산색(山色)이 아울러 유아하고 청정한 서호의 풍치는 마치 이 세상 밖

어떤 선경에 몸을 둔 것 같이. 오래동안 소란과 신산함 속에서 시달린 마음과 영혼을

잠시나마 편안하고 조용하게 씻어주는 것 같았다.

노영탄은 항주로 온 후. 서호의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어 다른 일은 전혀 잊어버리다시피 했다.

날이 가는 것도 모르고  그대로 항주에 머물러서 매일같이 서호 호반을 이리저리 산보하며

거니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그윽하기 이를 데 없는 다리. 그림자와 수양버드나무 그늘.

거기 호수의 미풍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저녁놀이 비치는 신비스러운 자연의

풍경은 영원히 바라다보고 있어도 끝날 날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이날도 노영탄은 낮잠을 푹자고 자못 경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매일같이 하는 버릇으로 선뜻 말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도 가볍게 천천히 성안에 있는 여인숙을

나와서 서호를 향해 말을 몰았다.

얼마안 되어서 벌써 호반에 있는 제방에까지 다다랐다.

노영탄은 말을 서호 옆에 있는 어떤 주루에 맡겨 두고 천천히 제방 위로 올라섰다.

수양버드나무 그늘 좁디좁은 길을 끼고 호수의 풍랑을 둘러보면서 발길 내키는 대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홀연 머리 위 하늘 높은 곳에서.

난데없이 푸드득 푸드득! 하는 소리가 두번이나 연거푸 들려왔다.

노영탄은 훌쩍머리를 쳐들고 바라다보았다.

한마리의 무시무시한 매였다.

그 매란 놈이 두 날개를 움츠러 뜨리고 곧장 호수 수면을 향해 화살같이 꽂히듯

떨어져내려오고 있었다.

그 큰 매는 전신에 털이 온통 칠흑같이 새까맣고 잡털이라고는 한 오라기도 없었다.

거기다가 사납고 날쌘 품이 실로 가관이었다.

' 이크! 저놈이 어째서 여기까지 와서 날아다니고 있을까? '

노영탄은 그 매를 보자.

홀연 놀라움과 기쁨을 금치 못했다.

너무나 낮익은 매였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그 매란 놈은 호수 위에서 다시 공중으로 솟구쳐오르더니.

제방 위를 나지막하게 빙빙 돌기 시작했다.

노영탄이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바라보니.

과연 그 매란 놈은 오른쪽 다리에 붉은 빛 헝겁을 칭칭 감아서 단단히 돌려 매고 있었다.

그 매란 놈이 바로 숭양파의 연락병 같은. 우체부 같은 임무를 띠고 돌아다니는 놈인 것을

잘 아는 노영탄은 여간 기쁘지 않았다.

' 흠 !  저놈이 이 근처에 나타나서 다리에 단서를 매고 날아다닐 때에는

필시 무슨 소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

그것은 어쩌면 악중악과 연자심에 관한 무슨 소식일지도 모른다 !'

노영탄은 이렇게 생각하자 .

새삼스럽게 날카로운 안과으로 그 매란 놈을 유심히 관찰해 봤다.

이때. 그 검정 매는 여전히 공중을 빙빙 돌고 날아다닐 뿐.

그곳을 뜰 생각은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노영탄은 그 검정 매를 눈앞에 바라다보면서도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불러 내릴 수 있는지 그방법을 모르고 보니

한동안 안타까워서 쩔쩔맬 뿐이었다.

홀연. 그 무시무시하게 큰 검정 매란 놈은 갑자기 두 날개를 움츠려 뜨리더니

호수 수면을 향하여 또다시 화살처럼 내리 꽂혔다.

그리고는 왼쪽다리를 쭉 뻗더니

발톱 한 개를 가지고 물 속으로부터 무엇인지 흠칫하고 움켜잡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는  또다시 날쌔게 물결을 헤치고 차버리며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고 ......

노영탄은 그 매란 놈이 물 속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를 잡고싶어서 그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노영탄은 급히 호수 물가로 내려가 앉았다.

' 이놈을 어떻게든지 붙잡아야겠는데 ......... '

마음속에 단단히 준비한 바 있는지라.

매를 노리면서 기다려보는 것이다.

이윽고 그 검정 매란 놈이 공중을 몇 바퀴 빙글빙글 돌더니.

과연 또다시 쏜살같이 날쌘 동작으로 호수 수면을 향해 내리꽂히는 것이었다.

마침 노영탄이 몸을 쭈거리고 앉아 있는 물가에는 한 마리의 큼직한 물고기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하게 생긴 검정 매란 놈은 수면 위에 조그마한 파문이 이는 것을 보기가 무섭게

마치 흐르는 별에서 별똥이 튀듯 번개같이 아래로 내리꽂히더니

발톱 한 개로 단숨에 그 큰 물고기를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넓은 날개를 시원스럽게 펼치더니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서 바로 노영탄의

머리 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공간을 날아가고 있었다.

노영탄은 벌써부터 두 손에 온같 힘을 모아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검정 매란 놈이 머리 위 가까운 곳까지 날아들었을 때. 노영탄은 다짐했다.

' 옳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이놈을 잡아야만 ........ '

노영탄은 비호같이 빠른 동작으로 몸을 솟구쳤다.

두 손바닥을 홱 뿌려 가지고 다시 오른손에 있는 힘을 다해서 뒤로 낚아채면서

응금장 수법을 써서 날쌔게 검정 매를 움켜잡았다.

그 검정 매란 놈은 큼직한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아채 가지고 자못 통쾌하고 기쁜 마음을

금치 못했던 모양이다.

물 위에서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하여 불과너댓 길도 못갔을 때.

저를 잡으려고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노영탄이 솟구쳐 올라서 두 손에 온힘을 모아가지고 그 검정 매란 놈을 움켜잡으려고 했을 때

그놈도 깜짝 놀라서 흘쩍 몸을 높이 날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

어떤 무형적인 알지 못할 흡입력이 그놈을 이미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으니.

아무리 사납고 무서운 놈이라지만 노영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끔직하고 크고 사나운 검정 매란 놈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노영탄의 손아귀에 붙잡히고 말았다.

노영탄은 그놈의 날개쭉지를 더듬어서 잔뜩 움켜잡았다.

그놈의 주둥아리는 단단하고 날카롭기 이를 데 없어서 한 번만 물리거나 쪼인다면 그대로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노영탄은 급히 오른손을 써서 그놈의 이마를 탁 쳐버렸다.

정신을 잃고 어지럽게 만든 것이다.

노영탄은 다시 땅 아래로 내려서기가 무섭게 그놈의 한쪽 다리에 칭칭감겨 있는 단서를

급히 풀었다.

펼쳐들고 들여다보니 다음과 같이 간단한 글이적혀 있었다.

 

항주 연락처 근보(謹報)

방금 천목산(천목山) 중에서 악중악의 종적을 발견한 제자가 있다는 보고를 접했습니다.

차후 처리 방법을 지시하시기 바랍니다.

 

노영탄은 그 단서를 다 읽고 나서 처음대로 검정 매의 한쪽 다리에 칭칭 감고 단단히

동여매주었다.

그리곤 손을 물 속에 덤벙 담가가지고 검정 매란 놈의 머리를 적셔주었다.

그놈은 얼마 안 되어서 눈을 번쩍뜨고 정신을 차리더니.

그 넓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나서 푸드득 가볍게 허공으로 날아 올라

순식간에 하늘을 무찌르고 높이 솟구쳐 올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흠. 악중악이 천목산 속에 숨어 있다고? ' 

그 검정 매 다리에서 급보를 보고나니.

노영탄의 심정은 놀라움과 기쁨이 반반이었다.

얽히고 설킨 머릿속의 복잡한 사념 때문에 골이 띵했다.

호수의 풍광에 도취되어 놀고 있을 경황이 없었다.

급히 주루로 돌아가서 맡겨 두었던 말을 찾아 채직질도 무섭게 질풍처럼 말응 몰아

성 안에 있는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노영탄은 곰곰이 궁리해 봤다.

' 그 검정 매란 놈이 날쌔게 나는 품으로 보아 불과 한두 시간이면 이 소식은

숭양파의 대표자가 있는 곳에 도달할 것이다!

숭양파에서는 이 보고를 접하고는 절대로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하다.

모든 사람들이 들끓어서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 뻔한 노릇이다! '

여인숙으로 돌아왔을 때는 막 땅거미가 다가들 무렵이었다.

노영탄은 여인숙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함을 질러서 심부름꾼 녀석에게 재촉했다.

"애!  저녁 밥상을 빨리 가져오너라!  시장해 죽겠다! "

" 예 ....... "

대답을 길게 뽑는 심부름꾼 녀석도 손님의 심중을 안다는 듯.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뜸 저녁 밥상을 차려 내왔다.

노영탄은 이 여인숙에서 그럭저럭 10여 일을 묵었다.

인자해 뵈고 태도가 비범한데다가 돈 씀씀이가 인색하지 않은지라.

몇몇 심부름꾼 녀석들도 자연 이 귀공자 같은 서방님에게는 용의주도하고

극진하게 시중을 들어주었다.

다른날 같았으면 노영탄은 여인숙에서 저녁밥을 먹고 나면 자리에 눕거나.

그렇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서 이리저리 구경이나 하고 돌아다녔지.

심부름꾼 녀석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날만은 저녁 밥상을 차려 들어오는 심부름꾼 녀석에게 정색을 하며 물었다.

" 여보게! 여기서 천목산을 가려면 어떻게 가면 되나? "

별로 말을 거는 일이 없는 노영탄이 이렇게묻는지라.

심부름꾼 녀석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선뜻 대답했다.

" 서방님께서 천목산에 가신다구요?

어떤 천목산인가요?

동(東) 천목산인가요?  혹은 서(西) 천목산 말씀이신가요? "

심부름꾼 녀석에게 이렇게 질문을 당하고 보니 노영탄은 어리둥절했다.

애초부터 노영탄은 천목산이 어디 붙었는지도 몰랐고 더군다나

동. 서 양편의 산이 있다는 데에는 캄캄 소식이었다.

어리둥절해하며 대답을 못하는 노영탄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심부름꾼 녀석은 빙그레 웃고 또 물었다.

" 서방님께서는 천목산엘 통 가보시지 못하셨나요? "

노영탄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을 보더니

심부름꾼 녀석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천목산이란 바로 우리 성의 서북방 쪽에 있습니다.

여기서 불과 백 몇십 리 길밖에 안 되죠.

피서지로서는 아주 경치 좋은 곳이구요.

여름철만 되면 피서객들과 유람객들이 들끌어요 .........

그런데 동쪽과 서쪽 두 산으로 갈라져 있어서 동쪽산이 비교적 낮습니다.

올라가기도 다소 편하죠.

산속에는 초가집. 여인숙. 그리고 별장 같은 것도 많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서쪽 산은 몹시환벽합니다.

괴상한 날짐승들과 땅 짐승들이 출몰해서 인적이 드물죠 ........

자연 유람객들은 모두 동쪽 산을 찾아가서 놀고 옵죠.

서방님께서는 지금 놀러가신다면 길이야 훤한 노릇이지만 아직 좀 시기가 이릅니다.

지금은 올라가보셨댔자 산속이 쓸쓸하기 이를 데 없을 겁니다. "

 

노영탄은 심부름꾼 녀석의 말을 듣자 .

또 한번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그렇게 산에 대해서 정통한가?

그 산에 가본 일이 있나? "

심부름꾼 녀석은 이렇게 묻는 말에. 갑자기 만면의 웃음을 띠더니 싱글벙글 대답했다.

"  원 참. 서방님두 .......... 서방님은 남의 고장에 오신 분이 아니십니까?

저희들이야 향주에서 오래 지낸놈들이니

누가 천목산에 한두 번씩이야 아니 올라가봤겠습니까! "

" 오라! 참. 그도 그렇겠군! "

노영탄은 간단히 한 마디를 대답하더니 무엇인지 자세히 깨달았다는 듯

머리를 수그리고 묵묵히 밥상을 내려다보며 수저를 들기 시작했다.

' 흠! 동쪽 산과 서쪽 산이 그렇게 다르단 말이지! '

심부름꾼 녀석이 방에서 나간 뒤.

노영탄은 저녁밥상을 대하고 앉아서 한 가지 음식을 집을 째마다 무엇인지

곰곰 궁리를 하고 있었다.

' 동쪽? 서쪽? 그렇다면 악중악은 과연 어떤 산 속에 파묻혀 있다는 건가? '

노영탄은 허둥지둥 저녁 밥상을 물렸다.

잠시 쉬고나니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긴 두루마기를 걸치고 금서검을 의복 속에 감추어 지니고 밖으로 나왔다.

심부름꾼 녀석을 앞에 불러 세우고 이렇게 분부했다.

" 내 며칠 동안 어디 좀 다녀서 볼 일을 보고 돌아올 터이니 그리 알고 .........

뭐 . 과히 오래 있지는 않을걸세. 쉬 돌아올 것이니 내가있던 바은 그대로 잡아두고.

내가 타고온 말도 잘 먹이고 돌봐주게! "

말을 마치자 은전 몇 닢을 주머니에서 꺼내 심부름꾼에게 집어주고 급히 여인숙 문을 나섰다.

 

항주란 고장은 부(府)와 성(城)을 갖춘 큰 고을이었다.

밤중인데도 큰 길거리는 여전히 웅성웅성. 상당히 번잡하게 사람들이 오가곤 했다.

노영탄은 성 안에서는 될 수 있는 데까지 걸음을 느릿느릿. 아무 일도 없는 사람같이

행인들의 틈에 끼었다가 일단 성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곧장 교외의 거친 벌판길로 달려들었다.

여기서부터 일각이라도 행동을 민첩하게 서둘러야만 했다.

겉에 입고 있던 긴 두루마기를 흘쩍 벗어버리고 보검 그서검을 등에 단단히 짊어졌다.

두 발로 한번 땅을 쿵 하고 구르기가 무섭게 그는 독특한 경신법을 써서 서북쪽을 향해

비호같이 몸을 날렸다.

허공으로 몸을 날려 옆으로 달려가는 순간에도 노영탄은 팔을 뻗어 품속을 더듬어 보았다.

그 보물을 감추어 두었다는 지도가 들어 있는 비단 주머니가 틀림없이 간직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야 적의 안심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노영탄에게 있어서 정말 무거운 짐이었다.

강호 전체가 떠들석한 이 보물의 지도를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해서 조심조심 신경을 써오는

노영탄이었다.

그리고 이 지도 주머니만 생각하면 거기 관련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노영탄의

머릿속을 어수선하게 해주었다.

' 빨리 이 지도 주머니를 전해줘야 ........... 그러나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우선 가는 데까지 가서 맞닥뜨려보고 나서 ......... '

봄철도 한 고비를 넘어섰음인지 얼굴을 스치고 불어오는 밤바람은 그 차가운 맛이 쌀쌀하게

몸에 스며들었다.

하현의 달이 갈고리같이 구부러져서 잇몸같이 둥그런 현상을 드러내고 몽롱한 광선을

대지 위에 쏘아서 어런어런 희미한 그림자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시간 남짓한 동안을 꾸준히 날았을 때 .

노영탄의 앞에는 멀리 한 조각의 널따랗고 시커먼 그림자가 가로막혔다.

그 그림자는 그의 눈앞을 가로길러 막으면서 우뚝 솟아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오른 두 개의 산봉우리가 거친 바람과 안개에 휘감긴 채

흐릿한 달빛 아래서 구름인지 혹은 안개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노영탄은 무작정 산기슭으로 달려갔다.

산 위로 뻗어 올라간 한 줄기 널찍한 길이 훤히 바라다보일 뿐이었다.

산 위로 뻗어 올라간 그 널찍한 길은 얼마가지 않아서 갑자기

동쪽과 서쪽 두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동쪽으로 갈라진 길은 여인숙 심부름꾼 녀석의 말과 같이 널찍하고 평탄하며.

서쪽으로 갈라진 길은 앞으로 갈수록 점점 폭이 좁아지고 마치 깍아서 내리 밀어버린 것 같은

험하고 좁은 길이 꼬불꼬불 위로 뻗쳐 올라가 있었다.

노영탄은 걸음을 멈추고 서서 또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악중악과 연자심 둘이서 어차피 종적을 감추고 숨어 있는 몸이라면 결코 인적이 빈번한

곳에는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남의 눈에 쉽사리 띄어서 주의를 끌 만한 번잡한 곳을 피해서 반드시황벽한 산봉우리 속에

숨어서 은거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

이렇게 판단을 내린 노영탄은 드디어 서쪽 산을 향해 달려 들어가 보기로 결심했다.

서쪽 산을 자세히 살펴 보니 그쪽에도 본래는 한 줄기 길이 있기는 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길이란 것은 오래동안 인적이 끊어져서 이미 거친 잡초들이 뒤덮어버렸고.

그것을 똑바로 찾아 내기란 거의 어러울 정도였다.

이 잡초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수선스럽게 무성한 희미한 길 옆으로는 한 줄기 꼬불꼬불 하고

좁디좁은 길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나무꾼들이 나무를 하러 산 속에 들어왔을 때.

가까스로 찾아단니는 발자국들 같아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노영탄은 역시 그 나무꾼들의 발자국으로 이루어진 길 같지 않은 다른 길을 더듬어서

올라갔다.

오라가기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여간 초조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 천목산으로 말하자면 한없이 넓고 높게 수백 리 길을 뻗어 올라간 산인데다가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한 고목들과  삐죽삐죽 괴상하게 튀어나온 바위들과 절벽뿐이요.

땅 위에도 역시 칼끝같이 날카로운 잡초들이 사람을 찌를 듯 무성해 있을 뿐이다.

날씨는 점점 더워올 무렵이니 독충이나 괴상한 짐승들이 기어 나와서 산 속을 횡행하며

멋대로 꿈틀거리게 된다면 이 산이야말로 도처에 형극(荊棘)이 깔려서 한 걸음도

옮겨놓을 수 없는 난행의 봉우리가 아닐 수 없다.

' 흥?  이렇게 넓고 높은 험준한 산 속에서 두 사람의 종적을 찾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좋을지 모르겠는 걸 !

그들 둘이서 꼭 이 산 속에 파묻혀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노영탄이 이렇게망설이기만 하고 어떻게 길을 찾아야 옳을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있을 그때.

난데없이 그의 등들미 쪽 산 아래로부터 처절하면서도 날카로운 휘바람 소리가 두번이나

연거푸들려왔다.

쉬익! 쉬익!

그 휘바람 소리는 죽음같이 적막한 산중으로 울려 퍼져 밤 공기를 뒤흔들고 나서 소름 끼치는

산울림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노영탄은 깜짝 놀라서 귀를 기울였다.

심신이 꼭 무엇에 찔린 듯이 뜨끔했다.

머리를 획 돌려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아무런 동정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이 깊은 산 속에. 이 밤중에 무엇이 있다는 건가?

누가 있어서 무엇 때문에 휘바람을 불고 있는 것일까. '

노영탄은 이리기웃 저리기웃 예리한 안광으로 산 아래를 샅샅이 살펴보려고 했으나.

산에는 도처에 고목이 울창하여 시선이 가는 곳마다 가로막혀버리고 애초부터

먼 곳을 살펴볼 도리가 없었다.

노영탄은 또다시 궁리를 해보았다.

' 저 휘바람 소리는 분명히 어떤 뜻을 담고 있는 신호일 것이다.

숭양파 사람들이 벌써 여기까지 달려올 수있었을까?

아니 아무리 그들이 연락이 빠르고 행동이 민첩하다고 해도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

노영탄 자신의 경신법의 빠르기란.

스스로 따져보아도 좀처럼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항주를 떠난 후 한시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날아왔다.

노상에서 불과 두 시간을 경과한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두 시간 동안에 숭양파사람들이 벌써 이곳까지 달려들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숭양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과 이곳과의 거리로 따저보자면

탁창가와 그 주변의 인물들이 항주 부근에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일러야 내일 새벽이나 돼야 이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어찌 되었든 산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밤중에 이 깊고 험준한 산 속을 찾아드는 사람이라면

그 목적이악중악과 연자심 두 사람의 신상에 있다는 결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때 노영탄은 그 이상 무엇을 더 생각하고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사방을 또 한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주변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들밖에 아무것도 없다.

노영탄은 잠시 몸을 숨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땅 위에서 사뿐이 뛰어올라 한그루 제일 키가 큰 나무 꼭대기로

단숨에 날아 올랐다.

다시 산 위로 눈을 쳐들고 세밀히 관찰해 보니.

노영탄 자신이 은신하고 있는 지점은 거창한 고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깊은 숲 속으로.

바로 서천목산 주봉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그 양편을는 비교적 나지막한 산봉우리가 두 개 있어서.

이 깊은 숲 속을 천년적으로 한 개의 골짜기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래도 이 깊은 산골자기의 숲 속을 헤치고 더듬고 해서 길을 찾아 산 위로 통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양편은 온통 깍아지른 것 같은 바윗돌들이 벽을 이루고 있을 뿐.

도저히 산으로 올라갈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노영탄은 산의 지세를 확실히 파악했다.

산 아래에서 휘바람을 분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가 산 위로 올라오자면 반드시 자기가

숨어 있는 이지점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렇게 자신 있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나무 아래로 살금살금 기어 내려와서

조심조심 귀를 기울여봤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봐도. 웬일인지 산 아래서는 털끝만한 동정도 찾아낼 수 없었고

죽음 속 같은 적막이 그대로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퍼뜩. 노영탄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두 말 없이 껑충 뛰어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올랐다.

초상비(草上飛)라는 경신법의 절정에 달한 재간을 부려서 회오리바람같이 날쌘 기세로

 이 산의 주봉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얼마되지 않은 동안에  노영탄은 이미 서쪽 산 주봉에 올라섰다.

이 주봉 맨 꼭대기는 널찍하고 시원스럽게 터진 공지로 되어 있었다.

한쪽은 산 아래 가시덤불 길로 간신히 통해 있었으나.

다른 삼면은 깍아지른 것같이 험준한 절벽과 날카롭게 뽀족한 산봉우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이 산봉우리와 절벽은. 멀리 동쪽 산의 주봉과 마주 쳐다보며 절이라도 하고 있는 듯

서로 대치의 형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고 이상한 일이 있었다.

노영탄이 몸을 날려서 막 산봉우리에 올라선 바로 그 순간.

난데없이 어디선가 억센 바람이 일어나 다짜고짜로 노영탄의 양가슴을 향해 습격해 들어왔다.

그리고는 지체없이 한 개의 시커먼 그림자가 산봉우리 맨 꼭대기에 있는 바윗돌 위에서

흘쩍 뛰어내리더니 역시 노영탄의 얼굴 앞으로 서슴치 않고 덤벼들지않은가 !

노영탄은 이때까지도. 이 지점의 지형을 똑바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또한 난데없이 덤벼드는 시커먼 그림자가 누구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주춤하고 발을 멈추었다.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리는 동시에 왼손으로 주먹을 쥐어가지고 화살처럼 뿌리면서 손을 휘둘렸다.

맹렬히 터져 나오는 손바람으로 앞에서 달려드는 손바람을 막아내며.

그와 동시에 오른손에도 힘을 모아서 다음의 대기 태세를 갖추었다.

노영탄의 손바람이 한번 터져 나오자.

저편에서 덤벼든 시커먼 그림자도 전신의 동작이 둔해지는 듯 역시 주춤하고 한 자리에 섰다.

이편 저편의 손바람이 맞닥뜨렸을 때 .

노영탄은 몸이 약간 흔들흔들했을 뿐이나.

저편의 시커먼 그림자는 비칠비칠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노용탄이 이번에는 오른쪽 손바람을 마저 써서 상대방을 공격해 보려고 노리고 있을 때.

이것은 또 무엇일까?

홀연. 노영탄의 좌측 후면으로 부터 번쩍 하고 이상한 광채가일어나더니 한 줄기 서설이시퍼렇고 삼엄하기 이를 데 없는 검광(劍光)이 질풍같이 빠르게. 그리고 또 가장 정확하게초점을 잡고

노영탄의 허리께를 겨누고 달려들지 않은가 !

' 에잇!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괘심하기 이를 데 없는 놈들이다 !

노영탄은 벌컥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덤벼드는 놈의 얼굴도 똑똑히 보지 못하고. 땅에 발을 확실히 붙이고 자리를 잡기도 전에.

연거푸 정면과 측면으로 동시에 공격을 받게 되니 그는 약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노영탄은 별안간 몸을 슬쩍 왼쪽으로 꿈틀하는 채하더니.

추호도 흔들림이 없이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쳐들어오는 칼을 막아내기 위해 오른손을 높이

쳐들어서 그의 전력을 다해 매서운 손바람을 일으켰다.

왼편 뒤쪽으로부터 갑자기 습격해 들어오던 그 사람은 노영탄이 대담무쌍하게도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손바람의 힘으로 칼을 막아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지간히 사나운 손바람인데 !'

퍼뜩 ! 이렇게 깨닫는 찰나.

그 사람은 다시 칼을 휘두르며 두번째 습격을 가해 보려 했다.

그러나 그 칼은 웬일인지 통 앞으로 찌르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치 한 겹의 장벽이 앞을 가로막고있는 것만 같았다.

' 이상한 일이다! 이건 섣불리 덤벼들 일이 아닌데 ! '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사람은 칼을 거두어들이고는 다른 수법으로 쳐들어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영탄의 매서운 손바람은 그에게 그런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노영탄의 손바람이 한번 그를 향해 와락 덮쳐 들어갔을 때.

"에그머니나 ! "

그 사람은 떨려 나오는 외마디소리를 지르더니.

벌렁 뒤로 자빠져 그대로 땅 위에 쓰러져버리고 마는 게 아닌가 !

그 사람의 괴상한 외마디 소리를 듣자.

노영탄도 깜짝 놀라서 얼른 손을 멈추었다.

그 괴상한 외마디소리가 남자의 음성이 아니라.

뜻밖에도 여자의 음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빙선자 연자심이었다.

' 응? 연자심 아가씨일 줄이야?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군. '

노영탄이 손과 발을 완전히 멈추고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제자리에 우뚝 서 있을 때.

먼저덤벼들던 저편 사나이도 어리둥절해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놀라움과 의심스러움에 손발을 움직일 생각도 없이 멍청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때야 노영탄은 상대방을 똑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몇 번이고 자기 눈을 의심하며 자세히 바라보았으나 그는 틀림없는 악중악이였다.

악중악도 그제서야 거기 나타나 있는 사람이 노영탄이라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아연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똑같은 말이 두 입에서 튀어나왔다.

" 그대는? 바로 ....... "

" 그대는? 바로 ....... "

노영탄은 악중악과 더불어 긴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급히 연자심의 곁으로 달려갔다.

몸을 구부리고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연자심은 이때 두 눈을 꼭 감은 채 땅 위에 졸도하여 손에 들고 있던 자정검까지도

한편에 냉동댕이쳐버리고 있었다.

악중악도 흘쩍 그편으로 달려와서 연자심의 옆에 묵묵히 섰다.

악중악의 표정은 몹시 초조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노영탄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 속에는 이루 형언키 어려운 야릇한

불쾌감과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노영탄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급히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 속에서 몇 알의 설령환을 꺼내서 연자심의 꽉 다문

입을 벌리고 털어넣어 주었다.

노영탄은 연자심을 부축해서 일으켜 놓고. 오른쪽 손바닥을 펼쳐서 몸에 지니고 있는

내공의 진기를 장심으로 모아서 연자심의 등에다 꽉 대고  천천히 문질러주기 시작했다.

옆에 서서 노영탄을 쏘아보는 악중악의 시선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그것이 비록 연자심의 위급을 구출해 주자는 소행임을 명백히 알기는 하지만.

어쨌든 마음속에 서려 있는 불쾌하고 못마땅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노영탄의 태도나 기색이 너무도 심각하고 장엄한지라.

경솔하게 말을 붙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노영탄은 몸에 지니고 있는 순양진기로써 일종의 열기를 손바닥에 움켜잡았다.

그 뜨거운 힘으로 연자심의 등 위를 서너 번 문질러주었더니.

얼마 안 되어서 연자심은 근골과 혈맥이 소생하고 소통되어.

노영탄의 손바람을 쐬고 뭉쳐버렸던 핏덩어리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노영탄이 손바닥을 천천히 떼었을 때.

연자심의 창백했던 얼굴에는 또다시 불그스레한 기운이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연자심은 힘없이 두 눈을 떴다.

그 흑과 백이 분명하고  또랑또랑 날카로운 광체가 도는 맑은 눈동자를 다시 뜬 것이었다.

연자심은 자기 주변을 휘둘러 보았다.

악중악 이외에 또 한 사람 다른 청년이 준수한 모습을 하고옆에 서 있지 않은가 !

그리고 그것은 바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노영탄이 아닌가 !

노영탄과 악중악은 연자심의 옆에나란히 서 있었다.

둘은 똑같이 눈을 크게 뜨고 연자심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힘없이 눈을 뜬 연자심은 그들 두 청년의 모습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어스럼한 달빛 아래서 그들 두 청년은 몸에 입고 있는 의복이 다를 뿐.

한판에 찍어낸 듯이 누가 누구를 닮았는지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얼굴 모습이었다.

깔끔하게 생긴 눈매며 그리고 코. 입. 어느 모로 보나 서로 닮지않은 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두 청년들은 연자심이 정신이 드는 것을 보자 똑같이 앞으로 달려들어서 연자심을 부축해

일으켰다.

연자심은 두 청년들을 한번 쳐다보더니 얼굴이 금세 새빨개졌다.

가느다란 음성으로 가볍게 입을 열었다.

" 제가 미안했어요 !  경솔하게도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

감희 칼을 뽑아들고 까불었으니 ........ "

자기의 경솔함을 뉘우치는 부끄러움에 몸둘 곳을 모르는 연자심이었다.

연자심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노영탄은 그것을 가로채듯이 급히 입을 열었다.

" 천만에! 소생의 잘못이었소! 소생이너무나 돌연 중에 이곳에 나타나게 되었으니 .......

아마 두 분께서는 소생이 이곳에 이렇게 나타나게 되리라고는 천만 뜻밖이었을 것이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막아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소.

단지 소생이 불민한 탓으로 똑똑히 보지 못하고 자심 아가씨에게 부상을 입혀드리게 됐으니

미안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오 ! "

노영탄은 여기서 일단 말을 중지하더니 두 사람을 힐끗 한번 훓어보고 이번에는 악중악을

정면으로 대하고 다시 말을 계속했다.

" 본래 소생은 숭양파 문중의 사람도 아니요.

이번 사건에 간섭할 처지도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그 파장이 너무나 중대한 바 있어서.

소생도이런 사정을 알게 된 이상 그대로 모른 채하고 있을 수가 없게 된것 뿐이오 !"

악중악은 노영탄의 말을 여기까지만 듣고도 벌써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

대강 알아차렸다는 눈치였다.

" 흥 ! "

악중악은 코를 들썩거리며 조소에 가까운 콧소리를 내더니.

싸늘한 눈초리로 매섭게 노영탄을 쏘아볼 뿐이었다.

' 대체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냐?  어서 다음 말을 해보아라! '

악중악은 적대감에 찬 냉정한 태도와 표정이었다.

노영탄은 그런 눈치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으면서도 여전히 태연자약한 태도로 말을

이어 내려갔다.

" 현제 귀파에서는 이미 모든 선배 간부 제자들이 총동원이 되었소.

무슨 수단 방법으로든지『숭양비급』을 도로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것이오.

아마 남은 것은 시간 문제뿐인 것 같소 미구에 이곳으로 닥쳐들지도 모르오 !"

말을 마친 노영탄은 힐끗 번개 같은 시선으로 악중악의 얼굴을 더듬었다.

악중악은 이 말을 듣더니 뜨끔 하고  가슴이 떨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 이와 같이 미리 연락해 주고 통보해 준 것은 심히 고마운 일이오!

그러나 그대는 남의 일에 간섭하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이곳에까지 나타낱 것은

무슨 까닭이오? "

노영탄의 번개같은 시선이 이번에는 연자심의 얼굴을 흘끗 스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소생은 귀파와는 오래 전에 세교(世交)의 정의를 맺고 있는 사람이오.

뿐만 아니라 자심 아가씨와도 특별한 연고 관계가 있는 사이고 ........

솔직히 말하자면 소생은 귀파의 사제지간에 내흥이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고 또 자심 아가씨가 하등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몸이면서도

이런 시끄러운 내흥이나 잔인한 싸움 속에 휩쓸려 들어간다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소!

숭양파와 아가씨의 어르신네 사이에 풀어지지 않고 오래동안 맺혀 있는 원구(怨咎)의

관계를 모르실 리는 없으리다! "

악중악은 이 말을 듣더니 별안간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침통한 음성으로 딱 잘라서 말하는 것이었다.

" 이것은 우리들 자신의 문제니까.  그대가 거기까지 걱정해 줄 필요는 없단 말이오! "

너무나 쌀쌀맞은 말투에 노영탄은 깜짝 놀라서 악중악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나 다음 순간 노영탄의 음성은 지극히 침통해졌다.

"『숭양비급』은 무림의 한 가지 진기한 보물로서 지금 강호에 일대 소동을 일어키고 있소.

만일에 악형께서 이것을 섣불리 다루어서 이파의 마귀 같은 악당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 죄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오!"

노영탄이 여기까지 말하자 악중악은 갑작스레 정색을 하고 호통을 쳤다.

" 노영탄! 그대가 천리길을 멀다 하지 않고 이곳까지 찾아온 것은 또한 이『숭양비급』에 

뜻이 있어서였던가?

헤헤헤 ......... 노영탄 아니라. 그어떤 인물이 달려든다 해도 이 악중악의 수중에서

그것을 다시 뺏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말을 불쑥 던지는 악중악의 태도에 노영탄도 불끈하고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것을 꾹 누르고 다시 입을 여는 노영탄의 음성은 유난히 침통하고 엄격했다.

" 악중악 ! 그대는 소인의 편협한 마음을 가지고 군자의 생각하는 바를 억측하지 마오!

『숭양비급』이 아무리 희세의 진보라 할지라도 이 노영탄은 절대로 그다지 비급하게

그것을 빼앗지는 않을 것이오.

자심 아가씨가 안전하기를 바라는 일념이 없었던들 나는 결코 이곳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오!"

노영탄의 내정하면서도 위엄이 가득찬 말을 듣고서야 악중악은 부끄러움과 분함이

한데 엉클어져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수치스러운 말을 듣고 보니.

그것이 연자심의 앞인 만큼 더 한층 참기어려웠다.

" 이런. 아니꼬운 놈이 ....... 어디라고 건방진 수작을 !"

벌컥 악을 쓰는 악중악은 치밀어오르는 분노가 핏줄기 속에서 펄펄뛰고 내닫는 것 같았다.

그는 이때까지도 손 안에 칼을 잔뜩 움켜쥐고 있었다.

번쩍하고칼을 한번 높이 들려는 찰나.

그대로 전후 분별없이 노영탄을 향해 곧장 찌르고 덤벼드는 것이었다.

노영탄은 악중악의 얼굴이 활짝 달아오르며 까닭 모를 분노를 억제치 못하는 꼴을 보았을 때.

이미 자기는 자기대로 암암리에 조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악중악이란 위인이 이다지도 오만하고 편협하게 자기를 대하리라고는 미쳐 예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서슴치 않고 당장에 칼을 뽑아 들고 자기를 찌르려고 맹렬한 기세로 육박해 들어

오다니!

노영탄은 전광석화같이 몸을 움직여악중악이 육박해 들어오는 칼날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등에 메고 있던 금서검을 선뜻 뽑아들고 호통을 쳤다.

" 악중악! 그대가 마침내 잘잘못을 분간할 줄 모르는 혼자만의 야심을 가지고 나를 이렇게

대할 줄이야 !

좋다!  오년전 옛날 . 내가 받은 일검의 원한을 이번 기회에 청산키로 하지! "

노영탄과 악중악 사이에는 무서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이상 말이 필요없었다.

이제는 날카로운 칼 끝만이 서로를 노리며 대결하고 서서.

치열한 싸움을 전개해 보자는 것 뿐이었다.

이 뜻하지 않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서 있는 한빙선자 연자심.

연자심은 처음부터 노영탄과 악중악의 말다툼이 옥신각신 얽혀 들어가고 있을 때.

이미 중간에 나서서 뜯어말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만한 겨를도 없이 악중악은 돌연 칼을 번득이며 싸움을 걸고 덤벼든 것이다.

연자심은 눈앞이 아찔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좀처럼 뜯어말릴 수 없이 격화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연자심은 어쩔 수 없이 몸을 한쪽으로 피하면서 눈이 뒤집힐 듯이 고함을 질렸다.

" 아앗! 이게 무슨 짓들이에요?  손을 멈추세요?  진정들 하세요? "

그러나 두 청년의 귀전에 이런 고함 소리가 들릴 까닭이 없었다.

그들은 각자가 지닌 재간을 뽐내며 각자 지지않겠다고 맹렬한 공격을 가하고 있을 뿐이다.

 노영탄으로 말하자면 아득한 예날의 일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지내왔으며.

또 이 순간까지도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악중악의 태도 앞에서 화염처럼 치밀어오르는 분노는 새삼스럽게

옛날의 원한을 뼈에 사무치게 했다.

활활 타오르는 극도의 분노를 참을 길 없어 노영탄은 저 유명하고 무서운 건곤혼원검의

검법을 쓰면서 수중의 금서검을 단단히 움켜잡고 춤을추듯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칼끝에서 발사되는 싸늘하고 매섭고 새파랗고 기다란 광채.

그 광체의 줄기줄기가 화살처름 악중악을 향해 쏘아 들어가는 것이었다.

악중악은 금사보에서 감욱형을 구출하려다가 한빙선자 연자심을 잘못 알고 구출해 낸 이후

두번이나 노영탄에게 구명의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악중악은 심히 못마땅했다.

일종의 창피한 마음을 금치 못 했었다.

심지어 극도의 굴욕감까지 느껴오던 차이다.

그러던 것이 또다시 이 자리에 노영탄이 나타나서 말끝마다 자심 아가씨니

자심 아기씨를 위해서 찾아왔다느니 하는 말을 듣게되니.

마음속에 오래동안 사무쳐 있던 굴욕간이 불길 같은 분노로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흥! 아니꼬운 자식! 자심 아가씨를 위해서? '

' 흥 오년 전에도 나에게 그렇게 모욕을 주더니 오늘 이 자리에서도 여전히? 건방진 자식! '

두 청년은 이렇게 옛날의 새로운 원수로 변한 것이다.

물불을 겨를이 없는 두 청년에게 연자심의 고함 소리가 귀에 들어갈 리 없었다.

악중악은 칼을 높이 쳐들어 하늘을 한번 찌르는 채하더니.

더 한층 단단히 움켜잡으며 마침내 저 무서운 천강검의 검술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악중악의 손에 힘있게 움겨잡은 옥룡검은 위아래로 쉴새없이 번뜩였다.

그의 발은 십육 방위를 정확하게 디디면서 한 단 또 한 단 손을 휘두를 때마다

쌩쌩 하는 날카롭고 매서운 쇳소리와 함께맹렬한 기세로 상대방을 향해 육박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둥그렇게 퍼지는 두 무더기의 무시무시한 검광만이 높고 높은 공지에서 엉클어지고

휘감기고 맞부딪히는가 하면 다시 번개처럼 번쩍 흐트러지곤 했다.

두 사람의 그림자는 그 매서운 칼빛 어느 틈에 파묻혀 있는지 그것조차 분간키 어려웠다.

혼비백산해서 한 옆으로 비켜 선 채 이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연자심의 표정은

무엇이라 이름 붇여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딱 벌리고 있으나 아무런 음성도 나오질 못했으며

가슴이 두근두근 거센 물결처럼 파도치고 있을 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청년은 이미 피차간에 열몇 단이나 되는 검술을 전개했다.

이때 악중악은 그의 독특한 검술인 추운언월십이식을 쓰기 시작했다.

칼을쓰는 품이 갑자기 돌변하더니.

그 속도가 차츰 차츰 느려졌다.

옥룡검에서 울려 나오는 매서운 쇳소리도 점점 낮아졌다.

그러나 그 반면에 불쑥 앞을 향하고 찌르는 칼의 기세는 더 한층 맹렬해지면서

곧장 노영탄을 노리고 육박해 들어갔다.

노영탄은 이것이 바로 숭양파의 절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절대로 상대방을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또 한번 단단히했다.

이리하여 노영탄도 차츰차츰 몸을 쓰는 속도를 늦추면서 팔괘의 남쪽 방위를 정확하게 디디며

정신을 한 개의 초점으로 날카롭게 집중시켜서 정으로 동을 제압할 준비를 단단히하고

상대방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서서히 버터보자는 수법으로 대항했다.

목석과 같이 꼼짝도 못하고 옆에 서 있던 한빙선자 연자심은 두 사람이 몸을 쓰는 품이

갑자기 느려지며한 단 또 한 단 무술을 전개해 나갈때마다 있는 힘을 모조리 기울이려고

하는 모습을 보자.

선뜻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똑같이 몸에 축적되어 있는 내공의 진기로써 대결해 보자는 눈치임에 틀림없었다.

즉. 그들의 싸움은 점점 치열함을 더해가고 양쪽이 똑같이 보통 무술이 아니라.

지니고 있는 온갖 실력을 다해서 자웅을 겨루고야 말겠다는 형세였다.

연자심은 노영탄의 무술이 고명하고 탁월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또 한편 악중악의 무술도 잘 보아왔다.

이제 두 청년을 맞붇혀놓고 보니 도대체 어느 쪽의 무술이 더 뛰어난지 혹은 떨어지는지

통 분간해 낼 수가 없었다.

두 청년의 싸움은 실로 백중지간이었다.

우열을 가려낼 수 없었다.

노영탄도 악중악도 몸에 지닌재간과 온갖 힘을 기울려서 대결하고 있는 판이니

과연 그 기세는 놀랍고 무시무시할 뿐이었다.

따라서 옆에서 보고 있는 연자심으로서는 도저히 고하를 가려낼 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 싸우고 있는 당사자들끼리는 피차간에 상대방과 자신을 명백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노영탄은. 악중악이 추운언월십이식의 검술을 한번 시작했을 때.

이미 그의 내공의 힘이 지독하게 강하다는 데 깜짝 놀라기는 했으나.

그때 벌써 그의 실력이 어느정도라는 것을 재빠르게 파악했고 자기의 적수로서는

모자라는 점이 많으며 시간이 조금만 더 길어지면 악중악은 제풀에 지쳐서 맥을 못

쓰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한편 악중악은 상대방을 똑똑히 알아보았다.

노영탄이 자기와 더불어 싸우고는 있지만 .

그의 태도가 지극히 침착하고 일거일동이 놀라울 만큼 자리잡혀 있으며.

한 단 또 한 단 싸워나갈 때마다 어떤 눈에 보이지 않은 여유와 여력을 지니고

육박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악중악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으면서도 점점 자신을 잃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흠! 나는 벌써 상당히 기운을 소모시켰는데 !

이놈은 추호도 힘드는 빛이 없으니

노영탄이란 놈은 과연 내가 대적하고 싸우기에 만만찮은 존재이구나! '

추운언월십이식의 검술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악중악의 이마 위에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번득였다.

그러나 노영탄은 도리어 아직도 여유작작하게 숨을 돌리고

다음 순간을 대비하고 있었다.

' 내가 이놈에게 만일 패배한다면? '

악중악은 시간이 경과될수록 풀이 죽어갔다.

그러나 자신이 도저히 상대방의 적수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을수록

그는 분노의 불길이 치밀어오랐으며 초조해지는 마음속에서도 이를 악무는 것이었다.

'이놈에게 지다니! 그게 어디 될 말이냐? 만일 연자심의 면전에서 내가 패하게 된다면?

이 창피한 꼴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랴!

최후의 일각까지 온갖 힘을 다해서 최소한 내가 부상을 당한다면

저놈에게도 똑같이 부상을 입히고야 말리라! '

이렇게 앙칼지게 마음을 먹은 악중악은 별안간 전신에 지니고 있던 진기를 일시에

뽑아냈다.

그것은 악중악의 최후의 힘인지도 몰랐다.

온갖 힘을 팔 위로 모았다.

발로는 정북방을 디디면서 왼손을 휘둘러 맹렬한 손바람으로 노영탄의 앙가슴을 향하고

육박해 들어가더니 오른쪽 발이 앞으로 쏜살같이 미끄러져 들어가나 싶은 찰나.

허리를 구부리고 어깨를 내려뜨리더니 오른손을 갑작스레 거두어들이고 칼끈으로

땅을 짚고 몸을 비호같이 날려서 노영탄의 검광의 테두리 속으로 살짝 뚫고 들어갔다.

불쑥 내미는 옥룡검.

노영탄의 앙가슴을 겨누고 찔러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악중악의 발악적이요. 자포 자기적이요. 또한 결사적인 최후의 공격이었다.

' 내가 죽는다면 네놈도 같이 죽어야만 하리라 !'

이런 비장한 심정으로 노영탄과무작정 맞닥뜨려서 설사 노영탄의 검광의 위력에

휩쓸려버린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노영탄으로 하여금 그의 매서운 칼 끝을 피할 수 없도록

만들자는 작전이었다.

노영탄은 악중악의 왼손과 다리가 은연중에 변화를 나타냈을 때 .

벌써 어떤 엉뚱한 음모를 꾀하고 덤벼든다는 것을 재빠르게 알아채고내심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과연 악중악은 왼손을 쳐들어 손바람을 일어키는 체 하고 허세를 부리더니

오른쪽 칼을 거둬들이는 채 하다가 홀연 자세를 바꾸어 그대로 앞을 뚫고 돌진해 들어오지

않은가.

노영탄은 마음속으로 약간 놀라기는 했으나 급히 몸을 움츠려뜨리고 주춤 뒤로 물러서서

가슴 앞으로 금서검을 당기며 지천획지(指天劃地)의 술법을 써서 휘둘러 나가면서.

닥쳐드는 악중악의 칼 끝을 가로 쳐버리고 그와 동시에 몸을 빙글 돌려버렸다.

악중악의 칼 끝이 맹렬한 기세로 찔러 들어왔을 때.

노영탄은 이미 몸을 돌렸으며 동시에 금서검도 급히 거둬들였다.

노영탄이 왼손을 써서 허가 생겨 있는 악중악의 오른쪽 팔을 두 손가락으로 슬쩍 찌르니

뎅그랑! 요란스런 쇳소리와 함께 악중악의 옥룡검은 마침내 땅 위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결국 칼 끝으로 허공을 찌르게 된 악중악은 너무나 어긋나는 상대방의 세련된 방비에

가슴속이 뜨끔했다.

급히 술법을 바꾸어서 대항해 보려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너무나 가까이 접근해 있었기 때문에 그럴 만한 겨를이 없었다.

단지 사람의 그림자가 눈앞에 번쩍하더니 오른쪽 팔이시큰하다는 것을 느끼게된 찰나

벌써 옥룡검은 땅 위에 떨어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계속해서 검광은 한번 번쩍하더니 전광석화같이 악중악의 앙가슴 앞을 스쳐 지나갔으며.

악중악이 눈을 꿈뻑 감았들 때에는 가슴이 선뜻했다.

" 에잇 !"

하는 날카로운 상대방의 음성이 들려오는 찰나에 악중악은.

"쉿 ! "

하고 자기 가슴과 배 사이에서 일어나는 괴상한 소리를 들었으며.

서늘하고 차가운 기운이 입 밖으로 토해져 나오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악중악은 급히눈을 떠서 앞을 바라보았다.

악중악의 눈앞에는 어느 틈엔지 자기 신변으로 달려든 연자심이

만면에 공포의 빛이 가득 차서 어리둥절 자기를 바라다보고 있었으며

노영탄은 칼 끝을 당을 짚고 한편에 서서 묵묵히 말이 없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머리를 수그려 자기 자신의 위아래를 훑어본 악중악은

가슴팍의 의복이 노영탄의 칼 끝에 을(乙)자 형으로 큼직하게 찢겨 있는것을 발견했다.

5년전. 낙양 숭양표국 뒤뜰에서 악중악이 노영탄의 의복을 찢어놓았던 것과 똑같이.

노영탄은 그것을 악중악에게 갚아준 것이었다.

악중악은 노영탄이 그래도 칼 끝에 어떤 관대한 인정을 남겨 두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노영탄은 고도의 기술로 옛날의 그 수치스럽던 일검만을 복수하는 데 그친 것이다.

'만일에 노영탄이 칼 끝에 털끝만큼이라도 힘을 더 주었으면 나는 벌써 시체가 되어서

땅 위에 나둥그러지고 말았을 것이 아닌가? '

생각하면 아슬아슬한 찰나였다.

이것을 명백히 알고 있는 악중악이었다.

그러면서도 악중악은 이런 모욕이야말로 죽음보다도 참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연자심의 공포에 가득 찬 애타는 표정을 바라보자니

도저히 그대로 참기 어려웠다.

악중악의 두 눈동자는 불길처럼 시뻘겋게 타올랐다.

전신에서 뜨거운 피가 용솟음쳐 오르는 것 같았다.

악중악은 5년 전 그 옛날에 노영탄이 자기에게 받은 모욕이 자기와 똑같이 참기

어려웠으리라는 것은 추호도 생각지 못하고 단지 자기가 이런 모욕과수치를

당했을 때의 분노와 괴로움만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 우흥 ! "

별안간 악중악은 목구멍 속으로 으르렁거리는 사자와 같이 나지막하면서도 굵직한

음성으로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다음순간 악중악은 흘쩍 몸을 뒤채더니 그대로 노영탄을향해 이번에는 두 손을

한꺼번에 써서 맹렬한 손바람을 일으키며 육박해 들어갔다.

노영탄은 너무나 뜻밖이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악중악이 이런 태도로 나오리라고는 천만 뜻밖이었다.

노영탄은 비호같이몸을 날려서 그 손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쉭 ! "

처절하리만큼 날카로운 휘바람 소리가 난데없이 산 속에 울려 퍼지며 들려왔다.

그 휘바람소리는 바로 이 산봉우리 주봉 근처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휘바람 소리를 듣자.

노영탄과 연자심은 똑같이 깜짝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나 악중악의 귓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치 미쳐서 눈이 뒤집힌 사람같이 결사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 노영탄에게

육박해 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흠. 심상치 않은 히바람 소리구나! '노영탄은 대뜸 그것을 깨달았다.

정세가 급박해지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먼저 깨달은 노영탄은 아무것도생각지 안고 

무작정 덤벼드는 악중악의 태도가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그 이상 멈칫하고 있을 구는 없었다.

노영탄은 급히 몸을 솟구쳐 올랐다.

그리하여 동굴 속애서 터득한 저 네 가지의 독특한 술법을 전개하여.

그 제1단인 난상봉저의 술법으로 악중악의 공세를 막아내며 손바람을 일어켜

격퇴시키기 시작했다.

과연 노영탄이 이 절묘한 기술을 부리자 악중악은 갑자기 노영탄이 어떻게 몸 쓰는 법에

변화를 일어키고 있는지 그것조차 분간해 낼 수가 없게 되었다.

노영탄은 털끝만한 틈도 보이지 않으며 연거푸 두번째 묘기인 용비어조의 술법을 전개했다.

노영탄이 이 술법을 한번 쓰자 악중악은 점점 더 노영탄의 모습을 찾아낼 도리가 없게돴다.

그저 닥치는 대로 허우적거리며 함부로 동서남북을 더듬을 뿐.

머리 위에도 다리 아래에도 노영탄의 그림자가 온통 빙빙 돌고 있는데도.

어떤것이 진짜요. 어떤것이 가짜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노영탄은 두번째 묘기를 전개해서 악중악의 주변을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면서도

 사실은 자기 정신이 아니었다.

싸움보다도 더 급박한 정세가 시시각각 닥쳐오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그 혼자만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영탄은 그 이상 더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불쑥. 팔을 뻗어서 악중악의 혼수혈을 찔러버렸다.

악중악이 노영탄의 손가락이 찔러 들어오는 것을 깨닫고 흘쩍 몸을 돌려 그것을 막아보려고

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지난 뒤였다.

머리가 갑자기 어질어질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 악중악은 벌렁 땅 위에 나자빠지고 말았다.

노영탄은 급히 악중악을 번쩍쳐들어 한옆에 끼고.

" 어서. 소생을 따라 오시오 ! 어서 ! 어서 ! "

안타까운 음성으로연자심을 부르고는 옆에 있는 바의 동굴 속으로 날듯이 뛰어들어

몸을 감추어 버렸다.

" 쉭 ! "

날카롭고 처절한 휘바람 소리가 또 한번 칠흑같은 어두운 공간으로 울려 퍼졌다.

소름 끼치도록 음산한 바람이 산봉우리를 휘감고 지나가니 우수수 낙엽이 시커먼 허공으로

춤출 뿐이었다.

서 천목산 주봉 맨 꼭대기에는 난데없이 네 줄기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네 줄기 그림자는 봉우리 맨 꼭대기에 있는 빈 터로 뛰어오르더니

사방을 휘둘러보고 깜짝 놀라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 그림자들은 사면으로 흩어졌다.

무엇인지 수색해 내자는 눈치였다.

바로 이때. 어디서 나타났는지커다란 바윗돌 위에 우뚝 서는 또 하나의 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복면을 한 사나이였다.

그는 바윗돌 위에 떡 버티고 한바탕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 아하하하 .........하하 ! "

그 웃음소리는 산봉우리 위를 감도는 칠흑같이 어둡고 조용한 공기를 진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뛰어올라서 기웃거리고 있던 네 개의 시커먼 그림자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네 개의 그림자들은 깜짝 놀라서 선뜻 무기를 뽑아 들고 몸을 돌려 바라보았다.

그 네 개의 시커먼 그림자야말로. 바로 회양방의 인물들이었다.

 

 

<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