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17장 암흑비문(暗黑秘文)

오늘의 쉼터 2013. 12. 12. 23:34

 

정협지(情俠誌) 4권
제 17장 암흑비문(暗黑秘文)

어둠 속의 비문

 

휘바람 소리에 호응하고 내달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철우 독응구붕 영감과 어양검사 단목심곡 두 사람이였고.

그 중간에 금모사왕의 외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이 끼어 있었다 .

오빈기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내심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한편 철장단심 탁창가는 바윗돌 뒤에서 내닫는 독응구붕과 어양검사 두 영감에게 

손을 휘둘러 신호를 보내면서 오빈기를 건너다보고 정중하게 말했다.

" 그대의 영랑(令郞)은 약속대로 이자리에 나타났다!

이제 그대도 싸우기 전의 약속을 지켜서 그 깃발을 나에게 바쳐야 한다 ! "

이말을 듣더니 오빈기는 지극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

소중한 외아들이 적의 손아귀에 든 채로 눈앞에 나타나 있지 않은가.

오빈기는 아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체의 원한도 분노도 참는 수밖에 없다는 듯.

능청스런 태도로 뚜벅뚜벅 탁창가 앞으로 걸어나와서 마침내 해골 사령기를

정중하게 바쳤다.

사령기를 받아든 탁창가는 숭양파 진영을 향해서 몸을 돌렸다.

방곤 영감은 또다시 휘바람을 두어 번 연거푸 불었다.

그제서야 독응구붕과 어야검사 두 영감은 바윗돌 위에서 

팔조독경을 묶은 줄을 풀어 완전히 석방시켜 주었다.

팔조독경 오백평은 이미 그의 아버지가 아래 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발이풀린 그는 쏜살같이 달려서 바위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팔조독경 오백평이 그의 아버지 오빈기의 면전에까지 달려들어 갔을 때.

독응구붕과 어양검사 두 영감도 바위를 내려와서 숭양파 진영의 행렬 속으로 들어갔다.

양쪽의 승부도 완전히 가려졌으며 다년간의 원한과 원수도 이것으로써 깨끗이 청산된 것이다.

그러나 숭양파 편의 모든 사람들이 탁창가를 행렬 속으로 맞이하여 승리의 기쁨에 흥분된

가슴을 진정치 못하고 웅성웅성 떠들고 있을 때.

어디선지 난데없이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가 있었다.

 

우지끈 .........우지끈 ..............

후두둑 ......... 후두둑 .............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였다.

 

그 괴상한 소리는 숭양파 진영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호수 위에서 들려왔다.

모든 사람들이 급히 머리를 돌려 호수의 수면을 바라보았다.

특히 배를 매어둔 나루터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 어찌된 일일까 !

화염이 충천하고 있었다.

숭양파 사람들이 이곳까지 타고 왔던 두 척의 큰 배가 이미 무서운 불더미 속에 싸여서

타고 있었으며. 흉흉한 불길과 짙은 연기가 호수 위 하늘을 뒤덮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되고 보니 .

숭양파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 자빠진 것은 물론 까닭을 알 수 없는 분노의 불덩어리가

수많은 눈초리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 도대채 .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

 

그들은 놀라고 분함을 참지 못하여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된 까닭인지를 그때까지도 똑바로 알지 못했다.

 

이때 홀연.

 

" 에헤헤헤......... 헤헤헤 ! "

 

금모사왕 오빈기가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빈기는 그 징글맞은 음충맞은 목소리를 있는 데로 뽐내면서 호통을 첬다.

 

" 탁창가. 이놈 ! 네놈은 네가 나를 이겼다고 생각했다는 거냐?

어하하하하하 ...................

가소로운 일이다 !

내말을 똑똑히 들어둬라.

오늘 이 땅이야말로 네놈 숭양파놈들이 모조리 뭍혀버릴 땅이란 말이다!

네놈들 가운데서 단 한 놈이라도 이곳에서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

 

금모사왕 오빈기는 이렇게 호통을 치더니

 

팔을 높이 쳐들어 휘두르면서 목청이 터저라 고함을 질렸다.

 

" 자! 들이처라 ! "

 

명령이떨어지자 .

회양방의 진영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 우와 ! "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이 일시에 터젔다.

그들은 막혔던 보가 터지듯이 노도처럼 .

벌떼처럼 숭양파 진영을 향해서 집단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또 오빈기가 초청해 왔다는 고수급 인물들도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훨훨 나는 놈.

깡충깡충 뛰는 놈.

모두들 온갖 재간을 발휘하면서 송양파의 진영을 향해서 육박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변고가 너무나 창졸간에 일어났다.

수양파의 몯든 사람들은 서로 상의하고 대책을 세울 만한 겨를도 없었다.

그들도 역시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 처들어오는 적을 맞이하여 덤벼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빈기가 이다지도 신의란 것을 헌신짝 같이 던져버리는 인물이리라고는 탁창가는

그순간 까지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가 비급하게도 방의 사령기를 낚싯밥으로 삼고 기만적인 수단을 써서

제아들만을 뽑아내 놓고 두번 다시 발생하기를 원치 않았던 무림의 과거의 처참했던

살육 해위를 이렇게 쉽사리 다시 폭발시킬 줄이야.

삽시간에 주변 일대에는 피비린내 나는 잔인하고 처절한 결투가 전개되고야 만 것이다.

탁창가는 두 눈을 지그시 감있다.

지난날 무림에서 일어났던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아프고 스라린 광경.

시체가 땅 위를 뒤덮고 피가 강물을 메울 듯하던 그때 ..........

얼마나 처참한 인간의 지옥이였더냐.

탁창가 혼자만이 아무리 비통한 감회에 싸여서 울분을 참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제 이 평화롭도 조용하던 땅 위에는 광란과 고포와 처절한 함성과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선혈이 꽃잎처럼 사방으로 흩어질 뿐 쫓고 쫓기고 덤비고 막아내고 ...........

어떤 힘으로도 피해볼 수 없는 일대 살육장으로 화해 버린 것이다.

탁창가가 앞만 노려보면서. 자기도 행동을 개시하려고 망설이며 땅을 든든히 디디고

서 있을 때였다.

난데없이 한 사람의 그림자가 흘쩍 얼굴 앞으로 나타났다.

그것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인물인지 탁창가가 똑똑히 살펴볼 겨를도 없는 찰나에.

그 그림자는 돌연 한쪽 손을 휘둘러 억센 바람을 일어키더니 

탁창가의 앞가슴을 향하고 정면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탁창가는 선뜻 뒤로 몸을 뽑는 수밖에 없었다.

발을 땅에 붙이고 다시 몸을 똑바로 버티고 선 탁창가는 두 팔에 힘을 불러일어켜

즉각 습격해 들어오는 상대방의 힘을 물리처버릴 준비를 했다.

과연 앞에 나타난 그 인물은 거침없이 공격을 가해 왔다.

그리고는 오른쪽 팔을 길게 뽑으면서 마치 어떤 날카로운 새 발톱처럼 탁창가의

어깨죽지을 움켜잡으려 드는 것이었다.

탁창가는 왼쪽 손을 비호같이 놀려 바람을 뽑아내서 상대의 다섯 손가락을 막아내면서

그 인물이 과연 누구인지 똑똑히 살펴보았다.

탁창가가 자세히 보니

그 인물은 다름이 아니라 .

오랫동안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어느 곳엔지 파묻혀 있는 늙은 괴물로 유명한

흑지상인 고비라는 위인이었다.

이 늙은 괴물을 말하자면 무술이 비범하고 고절(高絶)한 바 있으며.

공동산이란 곳에 다년간 깊숙히 들어박혀 칩거 생활을 하면서 강호 땅에

얼굴을 내놓지 않았던 인물이다.

 

'흥. 이늙은 괴물까지 어떻게 이번 결투에 참가 했을까?

흠! 이놈은 이놈되로 속셈이 있어서 오빈기란 놈을 대신해서 나와 대결해 보자는 것이구나!'

 

철장단심 탁창가는 이 흑지상인 이라는 늙은 괴물이 만만히 대하기 어려운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티끌만큼이라도 방심하거나 한눈을 파는 법 없이 대결하고 섰서면서도

이 고비란 늙은 괴물의 공격이 다소 누그러지고 어떤 틈이 였보이는 지라 .

이 위태로운 찰나에도 안광을 번갯불처럼 휘둘러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자기 자신이 흑지상인과 대결하고 있는 외에 숭양파의 모든 사람들도 일제히

회양방의 마귀두목 같은 놈들과 제각기 대결하고 일대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낭월 대사는 운몽 노인을 상대를 하고. 송운상인은 기경객과 접전중이며.

천인대사는 해남인마와어울려서 엎치락뒤치락 .

철기사는 여전히 홍의화상 우람부루 와 그리고 가릉서생 궁문의와 상상조수 영감들은 

각각 땅딸보 형제를 하나씩 맡아가지고 생사를 결판내고자 무시무시하고 

아슬아슬한 육박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제일 먼저 탁창가와 대결해 보자고 덤벼들었던 회양방의 지휘자요.

두령인 금모사왕 오빈기와 그의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이 종적을 감춰버렸다는 사실이다.

싸움터 넓은 광장 안에서는 이미 그들 부자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탁창가는 날카로운 시선을 구석구석에 재빠르게 휘둘러서 싸움터의 형세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파악했다.

문제는 눈앞에 대들고 있는 뜻하지 않은 저 흑지상인을 한시바삐 물리쳐버리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흑지상인 고비의 손바람의 힘이 완전히 철장단심 탁창가에게 뻗쳐 들어오고 있었다.

탓창가도 그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두팔에 있는 힘을 모조리 뽑아내서 위풍당당한 솜씨로 두 손을 동시에 써서 바람 소리도

요란하고 멋들어지게 흑지상인의 힘을 가로막고 대결했다.

실로 눈깜짝할 사이에 양 진영은 제각기 2.30여 차나 맞부딪히는 육박전을 전개했다.

숭양파도 회양방도 벌써 수많은 부상자를 냈다.

앵무주. 이 조그만 섬은 순씩간에 일대 살육의 수라장으로 변한 것이다.

살기등등한 안개와 흉흉한 죽음의 구름만이 감돌고 있는 싸움터 넓은 땅 위에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처절한 비명과 아우성 소리만이 그 전부를 지배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홀연 어디선지 날카로운 휘바람 소리가 쇳소리같이 쨍쨍 울리며 들려왔다.

그휘바람 소리는 넓고 길고 높은 창공을 한 개의 화살로 찔려서 쪼개놓듯이 매섭게 들려왔다.

양쪽 진영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똑같이 놀랐다.

그 휘바람 소리가  너무나 괴상할 만큼 맑고 날카롭게 마치 모진 쇠끝으로 찌러듯이

모든 사람의 귓속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이편도 저편도 싸우는 손들을 멈추었다.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돌려 휘바람 소리가 나는 곳을 멀거니 바라다 보았다.

남쪽 호심(湖心)의 방향으로부터 한 척의 자그마한 나룻배가 이편을 향해 저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그 자그마한 나룻배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두 사람이 네 자루의 노를 저어면서 쏜살같이 물결을 헤치고 배를

움직이기를 마치 나무 잎사귀 다루듯 가볍게 다루면서 이 섬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었다.

배는 점점 가까이 다가들었다.

섬에 있는 사람들은 그 자그마한 배의 정체를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자그마한 나룻배 위에는 깨끗하고 날씬하게 생긴 청년이 한 사람 타고 있었다.

그리고 ㄱ 청년은 지극히 태연한 자세로 뱃머리에 우뚝 서더니 .

멀리 이편 섬 위를 두루두루 휘둘러보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제일 괴상하게 생각한 것은

그 나룻배를 저어서 몰고 들어오는 두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 .

어리디 어린 두 아이들이라는 사실이었다.

하나는 사내아이였고 . 다른 하나는 계집아이였다.

조그마한 나룻배는 이 섬 기슭에서  4. 50장쯤 떨어진 지점까지 몰고 들어서더니 

웬일인지 그대로 속력을 내어 직선으로 배를 몰지 않고 오른쪽 왼쪽으로

이리돌고 저리빠지고 하면서 길을 돌아 다가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말할 것도없이  배를 젖는 두 어린아이들이 호수 물 밑의 암초의 위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리저리 피해 가면서 길을 돌아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이들의 배를 젖는 날쌔고 익숙한 품이란 실로 수성(水性)에 정통한 늙은 뱃사공도

당하지 못할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순식간에 그 조그마한 나룻배는 섬에서 불과 10여 장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까지

접근해 들어왔다.

뱃머리에 서 있던 청년은 두 발로 가볍게 땅바닥을 구르는가 싶더니 흘쩍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마치 한 마리의 날짐승이 단숨에 10여 장의 거리를 날아서 넘듯이

거침없이 섬 위로 올라서는 것이었다.

그 청년의 경신법의 재간에는 싸움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해서

넋을 읽고 경탄할 뿐이었다.

숭양파와 회양방의 수많은 고수급 인물들도 일제히 손을 멈추었고 .

백여 쌍의 눈초리들이 어리둥절해서  그청년의 몸으로 총집중되어 화살 처럼 꽃힐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건곤취객 방곤 . 독응구붕 두 영감과 어양검사는 청년의 모습을 확인하자.

내심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청년이야말로 바로 무림의 제1인자 남해어부가 가장 아끼는 유일한 제자 노영탄이었기

때문이다.

회양방 편에서도 노영탄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홍의화상 일당들은 일찍이 노영탄과 맞닥뜨려본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어두운 밤중이었고 또 노영탄이 복면을 했는 지라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바람처럼 이 처참한 싸움터에 나타난 노영탄.

홍의화상은 이 괴상한 청년의 출현을 보자 .

다소 의아한 점도 없지는 않았으나 결국은 이 청년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어서

얼빠진 사람처럼 극도의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바라다볼 뿐이었다.

모래사장에 우뚝 내려선 노영탄은 딱 버티고 서서 오른쪽 팔을 높이 쳐들더니

양쪽 진영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한꺼번에 비로 쓸 듯이 훓어보고 음성을 높여

입을 열었다.

 

"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지극히 위험한 지경에 빠져 있소!

회양방의 방주인 금모사왕 오빈기는 이미 이 섬에서 종적을 감추어 버렸소!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이 섬의 땅 속에다 기막히게 무서운 위력을 가진 화약을

파묻어두었소!

아마 지금쯤 벌써 그 화약에는 인화가 되었을 것이오 !

시간이 몹시 촉박하오 !

일각을 다투어야 할 때요.

여러분들은 경각을 지체함이 없이 시급히  무슨 방법으로든지 이곳을 떠나서

동서 양쪽에 있는 조그마한 섬으로 올라가도록 하시오 !

그리하여 그 섬에 몸을 피하고 숨으시오.

화약이 한번 폭발하기만 한다면 이 앵무주 모래섬은 바람에 날리듯 뒤집혀서

꺼져 들어가고 말 것이오 !

그때에는 천지를 뒤엎을 무술을 지닌 사람들이라도 일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오! "

 

노영탄은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몇백 배 더 초조 하고

당황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말을 마치더니 사람들이 자기말을 믿건 말건 

그런 것을 헤아릴 겨를도 없다는 듯 대뜸 숭양파 사람들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방곤 영감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간곡한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 소생은 응당 좀더 일찍이 이곳에 당도했으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의치 못한 사정이 있어서 시간에 대서 오지 못했습니다 .

방금 우리 스승님의 긴급한 편지를 받고 서야 .

오빈기란 자가 이와 같은 악독한 계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놈은 이번 기회를 틈타 정파고 사파고 없이 모든 고수급 인물들을 도매금으로 

함정에 빠뜨리려 한 것입니다.

우리 스승님께서는 이런 악독한 사실을 눈앞에 보시게 되자 

그것이 우리 무림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함을 깨달으시고 .

그대로 보고 계실 수 없어 마침내 소생으로 하여금 이곳에 달려와 정보를 전달하도록

수배하신 것입니다 !

여러분께서는 시급히.

일각이라도 주저하시거나 지체함이 없이 곧 이 섬을 떠나셔야 합니다.

시간을 놓치시면 여러분들의 생명은 건질 길이 없습니다! "

방곤 영감은 당황하고 긴장된 순간에도 탁창가를 위시하여 여러 고수급 인물들에게 

간단하나마 노영탄이 누구라는 것을 소개했다.

탁창가는 그제서야 노영탄이라는 청년이 남해어부의 유일한 수제자라는 것을 알게 됐고.

또 남해어부가 이다지 걱정하고 달려보낸 정보라면 절대로 거짓이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리하여 탁창가는 추호도 주저할  까닭이 없이 즉각 숭양파의 모든 인원을 거느리고

서쪽에 있는 조그만  섬을 향해 행동을 개시하기로했다.

이때 노영탄은 새삼스럽게 숭양파 제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았다.

감욱형의 모습을 그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리 없었다.

노영탄은 가슴이 철썩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 어째서 감욱형만은 이들 숭양파 제자들 틈에 끼어 있지 않을까?

  혼자서 어디로 가 있다는 것일까? '

노영탄은 이 시점에서 감욱형의 소식을 알려고 애쓴다는 것이 다소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망설이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태는 급박하고 실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넌지시 방곤 영감에게 물어봤다.

 

" 감씨댁 아가씨는 이번 결투에 참가하지 않았나요 ? "

 

노영탄이 이렇게 묻자 .

방곤 영감은 깜짝 놀랐다.

 

' 감욱형이 어째서 보이지 않을까?'

 

영감도 그제서야 불현듯 감욱형이 제자들 틈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노영탄이 이렇게 깨우쳐주지 않았던들 감욱형이란 아가씨의 존재는. 

싸움에만 정신을 빼앗긴 그들에게서 언제까지나 잊혀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대사(大師) 형님! 감욱형이 어째서 보이질 않소? "

 

방곤영감은 낭월대사에게 급히 물었다.

방곤 영감이 이렇게 묻는 말을 듣자.

비단 낭월대사만이 아니라 .

곁에 있던 여러 사람들도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당황해했다.

여러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그제야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혼란과 긴장과. 원한과 분노가 얽히고 설켜서 처절하게 전개되는 결투의 도가니 속에서.

누구도 남을 생각하거나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감욱형을 싸움터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떼매어 간 후.

바웃돌 위에 편안히 드러뉘고 약을 먹이고 나서 낭월대사도 그다지 대단한 일이

잇을 것 같지 않은지라 그 이상 주의를 기울리지 않았으며 얼마 안 가서 정신을 차리면 

다시 깨어나 싸움터로 나오려니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장의 치열한 결투를 치러는 동안에 .

모든 사람들은 감욱형이 아직도 바웃돌 위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제서야 감욱형이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는지라.

그들은 비로소 깜짝 놀라서 어리둥절하며 다른 사람의 얼굴만 쳐더보는 판이었다.

 

" 허어. 그거 참 . 그 아이가 어떻게  된 일일까? "

 

" 아까 저편으로 떠메어 간 채 .......... "

 

" 그 후에 누가 가보지도 않았나 ? "

 

고작해야 이정도 싱거운 말들을 주고받을 뿐.

아무리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아도 감욱형의 그림자가 있을 리 없었다.

회양방 편을 바라보자니 그들 역시 저쪽에 있는 조그만 섬으로 철수하기 바빠서

제각기 도망치기에 정신이 없어며 감욱형이란 아가씨의 존재는

그들의 머릿속에서도 깨끗이 사라져버린 모양이었다.

낭월대사는 그제서야 허둥지둥 감욱형이 누워 있던 바웃돌 옆으로 급히 달려갔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티끌만한 종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단지 바웃돌 한쪽 옆에 풀어놓았던 감욱형의 보검 녹악검도 사람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노영탄은 여러 사람들이 당황하는 광경을 보자.

감욱형이 이 섬에까지 오기는 했으나 이상하게도

이 섬에서 실종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그의 놀라움과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곰곰 시간을 따져보자니

그 이상 지체한다는 것은 도저히 어려운 일이었다.

노영탄은 대뜸 결심을 했다.

숭양파의 여러 사람들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 여러붕들은 빨리 이 섬을 떠나서 저편 섬으로 올라가시오 !

소생이 혼자 이곳에 남아서 수색해 보겠소.

오빈기란 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로 미루어 생각할 때

놈이 감욱형이란 아가씨를 어디론가 납치해 갔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오.

저편 동쪽 섬이 아무레도 수상스러운 점이 있더니 .........

하여간 소생이 이제부터그편으로 건너가서 샅샅이 뒤져보고 탐색해 보겠소 !"

 

말을 마치자.

노영탄은 여러사람들의 대답도 기다리지않고 두손을 한데 모아서 흔들흔들 .

작별의 인사를 표했다.

발끝으로 땅을 몇 번 구르는가 싶은 순간.

노영탄은 몸을 흘쩍 허공으로 날았다.

마치 바다의 물결을 스치고 뒤로 차버리는 제비와도 같이  몇 번인가  몸을 펄떡펄떡 날리더니

금세 섬을 한 바퀴 두루두루 돌아서 곧장 동쪽 섬 위로 날아 들어가는 것이었다.

철장단심 탁창가 편의 여러 사람들은 노영탄의 경신법의 절묘한 재간을 눈앞에 보자.

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찬사를 연발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 흐음.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흉내도 내지 못할 성인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재간인데 ! '

' 경신법이 저만하다면. 그의 무술의 재간이야 이루 말할수 없는 조화의 경지에 도달했겠지 ! '

' 무림에서 첫손을 꼽는 고수 남해어부의 수재자고 보면 저만하다는게 이상할 리도 없군 ! '

 

그러나 노영탄이 놀라운 재간에 언제까지나 감탄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숭양파의 여러 사람들도. 그 이상 우물쭈물하며 생명 같은 시간을 놓쳐버릴 때가 아닌지라.

급히 서쪽 섬을 향해 몸을 피하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앵무주 위는 일체의 음향이 딱 그치고 죽음같은 적막만이 온 섬 안을 휩쓸었다.

단 한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조금전까지 처참한 살육의 도가니 속이 되어서 미친 듯이 아우성을 치던 광경과는

전혀 딴판으로 어떤 인간의 실오라기 같은 숨소리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일각 . 또 일각 . 그것은 여태까지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 이상으로 처참하고 악독한

광풍폭우가 일어나려는 ..........

그 바로 직전의 소름 끼치는 적막이 아닐 수 없었다.

노영탄은 동쪽 섬 가까이 날아들자 .

마음을 앙칼지게 먹고 기운을 뽐내어 입 속에서 무엇인지 중얼중얼 몸 안에 축적되어 있는

진력(眞力)을 불러일어켜 천 리를 떨어진 먼 곳까지라도 음성을 전달할 수 있는 재간을 부렸다.

남쪽 호수 위 조그만 나룻배속에 있는 대문. 대림 두 어린아이들에게 말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 너희들 둘은 발리 배를 몰아 이 섬을 떠나거라 !

화약이 폭발되면 호수에는 굉장한 파도가 일어날 것이고 섬이 가라앉아버릴 때는

더군다나 회오리바람같이  무서운 물결이 용솟움쳐 오를 것이다 !

빨리 달아나지 않으면 꼼짝 못 하게 될 테니.

그리알고 일각을 다투어서 급히 배를몰아라 ! "

 

두 아이들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노영탄이 전달하는 말을 재빠르게 알아듣고 거기 답해서 손을 높이 흔들어 보였다.

조그만 나룻배는 즉시 노를 저어그 자리를 떴다.

두 어린이들이 배를 몰고 달아나는 품은 화살이 날 듯 십 분도 못됨직한 사이에

벌써 앵무주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두 어린아이들이 멀리멀리 배를 몰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서야 .

노영탄은 적이 마음이 놓였다.

그제서야 다시 섬 위를 두루두루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그가 보기에 이 섬은 서쪽 섬 보다 크고 높게 호수 가운데로 우뚝 솟아 있으며.

차지하고 있는 면적도 상당히 넓어 보였다.

섬 위에는 온통 이끼와 잡초가 뒤덮혀 있었으며 바윗돌들은

오랫동안 호수의 물결에 씻기우고 깍기고 닳아. 뽀족하고  미끄럽고 울퉁불퉁 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회양방 일당 들은 이미 그 섬 위로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가 섬 위의 뒷편에 있는 바웃돌 위에 숨어있었다.

노영탄은 이 따위 마귀 두목 같은 위인들을 겁내는 것은 아니였으나.

어째든 그들은 숫자가 많고.

거기 따라서 집적거리고 덤벼들 손이많을 뿐더러 장소가협소한곳이고 보니

노영탄은 되도록 그들을 피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영탄은 몸을 살금살금 가볍게 날려서 바윗돌 맨 꼭대기로 올라갔다.

회양방 일당이 몸을 숨기고 있는 다른 한쪽으로 돌아서 들어가자는 것이다.

노영탄은 내심 여간 수상스럽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앵무주가 이 홍택호 가운데 고립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을 때.

그 밖에 있는 이 두 섬을 제외하고는 달리 몸을 숨길 만한 곳은 없는 것이다.

노영탄이 이곳으로 달려들었을 때에는 호수의 수면은 고요하고 잔잔했으며.

배 같은 것이 지나단니는 그림자라고는 털끝만큼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금모사왕 오빈기는 도저히 배를 타고 달아나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

 

' 그러면 금모사왕 오빈기는 어떻게 이 앵무주에서 탈출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 조그만 섬 안에 어떤 비밀 통로라도 있다는 건가?

그렇지도 않다면 몸을 피해 숨어 있을 만한 비밀 장소라도 있다는 건가?'

 

노영탄은 이 궁리 저 궁리 머리를 짜보았으나.

그를수록 의심스러운 생각만 들고 초조한 마음이 앞을 가려 감욱형이

갈 데 없이 금모사왕 오빈기의 손아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마침내 놈에게 납치당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만 드는 것이었다.

십중팔구 그렇게 괸 것이 틀림없으리라는 판단을 내리자 .

노영탄은 일각도 지체할 수 없었다.

당장에 경신법을 전개했다.

그리하여 그 바윗돌 위에서 감욱형의 종적을 찾을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아볼 도리가 없을까 해서 빙빙 돌며 구석구석 샅샅히 살펴보았다.

과연 노영탄의 줄기차고 예리한 탐색의 시선 앞에 마침내 한 줄기 수색의

선(線)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노영탄이 흘쩍 몸을 날려 바윗돌 꼭대기로 치올라가려고 번쩍번쩍하는 절벽 위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 절벽은 끈적끈적하고 미끄러운 이끼 투성이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ㅟ에 희미하긴 하지만 어떤 발자국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여간 세밀히 주의를 해서 들여다보지 않고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을 만큼 희미한 것이었다.

노영탄은 이 발자국을 찾아내자 .

내심 무엇에 가슴을  찔린듯 놀라지 않을 수없었다.

급히 그런 절벽으로 몸을 날려서 자세히 관찰해 봤다.

한 군데 약간 두드러져 보이는 바윗돌 아래로 등나무 덩굴이 잔뜩 깔려 있었다.

그 등나무 덩굴은 바윗돌 언저리를 칭칭 감고 뒤덮어.

마치 넓다란 그물처럼 절벽을 온통 싸고 있었다.

노영탄이 더욱 신경을 날카롭게 하고 세밀히 관찰해 보니 

그 덩나무 덩굴은 그 절벽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 같지 않았고.

때로 그것을 건더리고 지나는 사람이 있는 것같이 보였다.

이런 사실은 그 지점까지 접근해서 세심히 관찰한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이 지나쳐버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 흐음. 이런 등나무 덩굴이 있다? 이건 아무래도 이상한 일인데 ........ '

노영탄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굴리 저 굴리 한 끝에 .

선뜻 오른손을 날쌔게 놀려 등에 메고 있던 금서검을 뽑아 들었다.

오른손이 훌쩍 쳐들어지는 찰나.

금서검은 번쩍하는 광체를 발산하면서 그 등나무 덩굴을 걷어올렸다.

등나무 덩굴이 걷어 올려진 곳에 한 개의 커다란 굴이 더러났다.

그 굴 속은 온통 어둠침침하여 그 속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재대로 보이지 않았다.

'흐음.매우 괴상한 동굴이다! 이런 곳에 이렇게 괴상한 굴이 뚫려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 '

이렇게 생각한 노영탄은 왼쪽 팔에 힘을 주어서 높게 쳐들어 가지고 조약돌 두개를

집어서 힘껏 던졌다.

두개의 조약돌은 동굴 속을 꿰뚫고 들어갔다.

한 바탕 펑펑 하고 조약돌이 부딛히는 소리가 동굴 밖으로 진동해 나올 뿐.

여전히 적막만이 주변 일대에 감돌며 나무 잎사귀 하나 바삭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영탄은 자신의 재간을 믿는 바 있으니 대담무쌍해지기도 했지만 감욱형을 생각하는

초조한 마음을 참을 길이 없어 당장에 보검을 높이 휘두르며 다짜고짜로 동굴 안으로

몸을 던지듯 뚫고 들어갔다.

노영탄이 막 동굴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섰을 때 .

홀연 동굴 밖으로부터 천지가 뒤집어질 듯이 거대하고 무서운 소리가 들려왔다.

쿵쾅 !!!

그 무서운 소리는 노영탄의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요란스럽고 무시무시하게 울렸으며.

그 바람에 동굴 바윗돌들도 적지 않게 부서져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한 개의 섬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것같이 놀라운 굉음이었다.

 

' 이크 ! 기여코 ....... 폭발하고 말았구나 ! '

 

그렇게 대담무쌍한 노영탄도 가슴이 철석 하고 내려앉았다.

화약이 폭발하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힐끗 !

머리를 동굴 밖으로 돌려 멀리 저편을 바라보았다.

단지 천지를 진동하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굉음 속에서 앵무주 위로는 흙과 모래가

빗발처럼 내리덮이고 호수에도 또한 이 불의의 변고에 놀라서 미친 듯이 날뛰는 

거대한 파도가 길길이 뻗히면서 섬 위로 용솟음쳐오르고 있는 광경이 보일 뿐이었다.

앵무주는 본래 뜬 모래가 패어진 곳에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진 섬이었다.

이렇게 한 바탕 화약이 폭발되어서 뒤집어 엎어 버리게 되면 수면위로 노출된

땅덩어리가 폭파대고 분쇄되어 모랫가루로 변해 버릴 뿐만 아니라

섬의 중심에도 크다란 구덩이가 패어져서 섬은 송두리째 고스란히 물속으로 허물어지고

가라앉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화약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뜬 모래는 하늘을 치밀 듯이 소용돌이쳐 올랐고.

섬 밖의 호수변에서는 거대한 물결과 노한 파도가 일제히 섬 위로 용솟음쳐서 덤벼들었다.

호수의 수면 아래로 흐르던 물줄기들도 동시에 이 모래섬의 밑바탕을 들이쳤다.

모래섬은 본래 그 믿바탕이 든든치 못한데다가 이렇게 물과 불의 협공을 받고 보니

제자신을 주체할 힘이 없어 돌연 위아래로 꺼저 들어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눈 깜짝할 동안에 앵무주라는 한 개의 섬은 형체도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이

호수 믿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앵무주가 호수 믿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린 다음에 거기에 남은 것이란 산더미처럼

거대하게 용솟음치고 회오리바람처럼 매섭게 맴돌고 휘감기는 소용돌이가 있을 뿐이었고.

섬이가라앉은 다음에는 동쪽과 서쪽의 두 개의 조그만 섬들은 서로 대치하는 형세를 이루었다.

그 가운데를 통할 수 있는 길이란 없는 것이다.

노영탄이 올라가 있는 섬은 동쪽 섬이었다.

그리고 회양방 진영의 모든 인물들도 이 섬  안에 모여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노영탄이란 청년이 그들과 같은 섬 위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영탄은 모래섬이 폭파돼 버리는 광경을 보고 나서

곧몸을 다시 돌려 지척을 분별할 수 없을 만큼 어둠침침하고 꾸불꾸불한 동굴

깊숙한 곳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두 눈을 날카롭게 움직여서 자세히 관찰해 보니.

우선 이 동굴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폭도 상당히 넓고  높이도 사람의 키만큼은 되어서 족히 두서너 명쯤은 나란히 서서

드나들만 했다.

또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동굴은 아래로 뻗어 내려갔다.

인공적으로 파고 쌓고 한 동굴 같았으며 천년적으로 형성된 바위 속의 동굴같지는 않았다.

노영탄은 손에든 보검을 다시 한번 잔뜩 움켜쥐었다.

살살무엇을 더듬듯이 손과 발을 놀리면서 살금살금 곧장 앞으로 뚫고 들어갔다.

불과 열 몇 발자국을 옮겨 놓았을 때 무언가 담벼락처럼 앞을 꽉 막는 것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에는 층층대로 된 돌 계단이 있으며.

그계단은 아래로 통해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광선은 아직도 어둠침침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디선지 습기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찬 후덥지근한 기운이 왈칵

코를 찌러며 끼처왔다.

노영탄은 다시 한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더욱 조심조심 금서검의 칼자루를 코 밑에 바싹

들이대면서 그 후덥지근하고 더렵고 곰팡내 나는 기운을 막아내면서

한 발자국 두 발발자국 그대로 돌계단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갔다.

가면 갈수록 그 동굴은 더욱 깊어지고 . 어둡고 캄캄해질 뿐이었다.

그기다가 그 안의 공기는 더 한층 후덥지근해지고 탁해지고 습해지기만 했다.

노영탄은 여기서 또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봤다.

' 어지간히 걸어 들어왔으니 . 이미 수면 이하의 깊숙한 곳에 와 있을 것이다! '

습기가 가득 찬 동굴 속의 후덥지근한 공기로 보아서.

이련판단이 틀림없음을 깨달았다.

 

' 무슨 동굴이 이렇게 아무리 들어와도 끝이나질 않을까? '

 

도대체 이 동굴은 얼마나 되는 길이를 가지고 있는지 노영탄은 도무지 아 수가 없었다.

또 어느 방향으로 어느 곳으로 통하는 동굴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비록 노영탄은 무예의 연마에서 얻은 독특하고 날카로운 시력을 가지고 있어서.

캄캄한 곳에서도 능히 물체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하지만 .

마침내 그 강력한 시력이란 것도 소모될 대로 소모대어서 맥이 빠지게 됐으니

이 동굴이 어디가서 끝이 나는 것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 그렇다고 해서 이 동굴이 막혀버린 것은 아니겠지.

인력으로 뚫어 놓은 동굴이라면 반드시 나갈 구멍을 마련하고 뚫었을 테니까 ...........'

 

노영탄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 동굴에 절대로 나갈 구멍이 뚫려 있지 않다고 믿지 않았다.

' 반드시 나갈 구멍이 있을 것이다! '

이런자신을 버리지 않고 더욱 용기를 내며 수상쩍고 의심스럽게 생각되면 돨수록

그 까닭을 차근차근 히 규명해 보려고 애섰다.

이때. 홀연히 마치 횃불이 타고 있는 것 같은 이상야릇한 냄새가 앞으로부터 왈칵 끼처왔다.

노영탄은 가슴이 섬뜩해지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자.

흘쩍 몸을 솟구쳐 허공으로 뛰어올라서 아래를 향하고 다시 몸을 날렸다.

두 발로 땅을 디디고 내려섰을 때.

거기 나타난 것은 한 칸의 석실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동굴은 입구에서부터 곧장 아래로 향하여 경사가 져 있어으며.

이석실까지 와서는 갑자기 돌 층계가 중단되어 버렸는 데 동굴의 형세도 바뀌어서

한 줄기 평탄한 굴길을 이루었고 그굴길이 다시 오른쪽으로 구부러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횃불이 타는 것 같은 그 이상야릇한 냄새는 바로 이 석실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노영탄은 또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세히 관찰해 봤다.

둥그스름한 언저리가 3장이나 됨직한 널따란 석실은 텅 빈 체로 아무것도 없었다.

당바닥에는 타다남은 잿더미가 쌓여 있었으며 아직도 연기가 완전히 꺼지지 않아 퀴퀴하고

이상야릇한 냄새를 풍겨내고 있었다.

노영탄은 사방을 자세히 두루 살펴보았으나  잔뜩 쌓여 있는  잿더미 외에는 다른 아무런

물건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여기서 노영탄은 어둠컴컴한 동굴을 정면으로 대하고 턱 버티고 서서 전신에 지니고 있는

힘을 모조리 불러 일어켰다.

그 힘을 오른쪽 팔로 집중시켜서 한쪽 팔을 천천히 쳐들었다 .

동굴을 똑바로 겨누고 흘쩍 힘을 써서 손바람을 일으켜  동굴을 향해 화살같이 쏘아 들어보냈다.

노영탄이 일으킨 손바람은 산만하거나흐트러지는 손바람이 아니었다.

모든 힘을 한 개의 초점에 온통 집중시킨 빠르고 날카롭고 억센 손바람이었다.

한 줄기 빠르고 날카로운 손바람이 화살같이 어두컴컴한 동굴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러나 노영탄은 손바람을 쭉 뻗쳐서 손바람을 쏘아 들여보내고 나서도 장심을 뒤로 물리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손바람의 힘을 막아내는 어떤 다른 힘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장심을 뻗친 채로 버티고 서서 앞에서 무엇이 닥쳐올 것인가를 기다려보자는 것이었다.

' 길이 뚫릴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막혀버릴것이냐? 둘 중에 하나다! '

노영탄의 손바람으로 동굴의 길을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다.

결국 이 동굴에는 뚫고 나갈 길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

노영탄의 쏘아 들려보낸 손바람은 당장에 막혀버리고 거기서 생기는 어떤 진동이나 반향이

장심으로 되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와 반대로 만일에 이동굴에 뚫고 나갈 길이 틔어 있다고 하면.

노영탄의 손바람은 곧장 동굴을 꿰뚫고 차츰차츰 흩어져버릴 것이다.

길이 틔어서 손바람이 그것을 헤치고 앞으로 나갈 때에도 장심은 거기에 대한 감각을

즉각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쏴 !

노영탄이 쏘아 보낸 화살 같은 손바람은 순식간에 시커먼 동굴 속을 꿰뚫고 들어갔다.

그것은 요란스런 한 줄기 바람소리까지 내면서 곧장 앞으로만 뚫고 나갔다.

되지 않아서 노영탄은 손의 힘이 점점 풀리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한번 손을 뒤로 거둬들여보고 힘을 늦추어 봐도. 앞에서 가로막는 아무런 힘의 진동이나

반향을 느낄 수가 없었다.

 

' 흐음. 그러면 그렇지! '

 

노영탄은 이 동굴에 나갈 구멍이 뚫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내심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이리하여 노영탄은 다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굴속의 지형도 평탄해졌으며 굴길의 폭도 점점 넓어지고 있으므로 노영탄은 서슴치 않고.

그의 재간을 써서 앞으로 무작정 날아 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노영탄은 이미 5.6리나  되는 거리를 무난히 뚫고 나갔으나 .

그 어두컴컴한 동굴은 역시 끝닿은 데를 알 수 없이 앞으로만 뻗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 이상한 곳인데! 이만큼이나 들어왔으면 끝이 날 법도 한데 ........'

 

노영탄은 또다시 이상스런 생각이 들고 까닭을 알 수 없게 되자.

걸음을 멈추고 한 곳에 우뚝 서서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처음과 같은 방법으로 한쪽 팔을 쳐들어 힘껏 손바람을 일어켜가지고 다시

앞으로 뚫고 나갈 길을 찾아보았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당장에 저편에서 되돌아오는 반향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노영탄이 두 번째 쏘아 보낸 손바람은 .

어떤 무겁고 두꺼운 담벼락을 떼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거리는 그다지 먼것 같지 않았으며.

길게 잡아도 1. 2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지점에서 손바람이 더 뚫고 나가지 못하고 

무언가에 막혀버리는 감각이 분명히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 흐음? 이건 더욱 이상한데 .......

이를 리가 없을 덴데 ........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었일까? '

 

노영탄은 안타깝고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재빨리 손을 거두어 들이고 다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다시 몸을 흘쩍날렸다.

 

' 아무리 막다른 골목이라 하더라도 갈데까지 가보자! '

 

눈깜짝할 사이에 노영탄은 동굴의 맨 끝까지 무작정 달려와 있었다.

과연 그 동굴은 마지막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있었으며.

그 이상 앞으로 뚫고 나갈 만한 길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노영탄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리둥절한 채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고 우두커니 시커먼 공간 속에 한참 동안이나

넋 잃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무심코 고개를 퍼뜩 쳐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오른쪽 동굴 벽 위에 따로 뚫린 자그마하고 둥그란 굴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자그마한 굴의 입구를 살펴보니 겨우 사람 하나가 기어서 드나들 수 있는 정도였다.

 

' 흐음. 이건 또 무슨 굴이냐? '

 

이때 노영탄은 무엇을 더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선뜻 오른쪽 손으로 보검 금서검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욱!

입을 꽉 다물고 기운을 모으는 순간 .

왼쪽 손과 다리를 동굴 벽에다 찰싹 붇이고 유룡술을 술법을 써서 .

전신이 동굴 벽 위를 살살 기면서 천천히 위만 바라다보고 올라가서.

그 자그마하고 둥그란 동굴 가까이 접근해 들어갔다.

자그마한 동굴 속으로 무작정 뚫고 들어간 노영탄은 전신을 땅에 찰싹깔고.

금서검 하나만을 앞장세워 몸을 보호하면서 날카로운 시력을 한 군데로 집중시켜서

조심조심 차근차근히 굴 속을 살피면서 앞으로 깊숙히 들어가 보았다.

그 자그마한 동굴 속으로 는 또 하나의 다른 굴길이 뚫려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한 줄기 좁디좁은 굴 속의 방향은 큰 길의 방향과 직각을 이루고 오른쪽을 향해서 

똑바로 구부러져 있었다.

더군다나 괴상한 것은 이 좁디좁은 굴길이 앞으로 뻗어 나갈수록 그 지형이 점점 높아져서

어떤높은 곳을 향하고 기어올라가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노영탄은 여기까지 뚫고 들어와서 또다시 주춤하고 한 걸음을 물러서서 행동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이 좁디좁은 굴길 저편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

 

아무리 머리를 짜보아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도록 괴상한 굴 속이었다.

 

' 처음에 이 동굴 속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따져보자면.

그 동안 벌써 두 시간이나  쉴새없이 돌진해 왔으니

적어도 2. 30리 길은 걸어 들어왔다고 봐야 할 터인데 .......... '

 

노영탄은 정말 이 동굴이 이다지도 길고 깊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동굴의 거의 전체가 호수 밑바닥으로 깊이깊이 파묻혀 있는 셈이었다.

'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

이 동굴은 천연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는데 .......

그렇다면 이동굴은 어느 시대의 유적일까?

또 이런 괴상한 동굴을 뚫어놓은 사람은 무슨 목적이나 소용이 있어서 이런 것을 했을까? '

 

이 궁리 저 궁리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었다.

노영탄은 이렇게 머릿속으로 골똘이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걸음을 빨리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또 이 좁디좁은 굴길은 처음보다 그면적이 심히 좁아지는지라

더욱 조심조심 차근차근히 앞을 향하고 발을 떼어 놓았다.

계속 걸어 들어가던 얼마쯤 뒤.

노영탄은 홀연 발밑이 미끄러워지더니

전신이 왈칵 앞으로 쏠리며 당장에 꼬구라질 것만 같았다.

숨을 길이 들이쉬었다.

앞 가슴을 딱 버티면서 두 다리가 디디고 서 있는 몸의 위치를 더 한층 든든히 잡았다.

그와 동시에 자신도 생각지 못한 사이에 왼쪽 손을 동굴 벽을 어루만지면서 더듬었다.

동굴벽을 어루만지고 있던 노영탄은 일종의 이상야릇한 감각을 느꼈다.

손이 동국 벽을 슬쩍 스첬을 때.

그 동굴 벽 위에는 오톨도톨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똑바르고 고르게 새겨진

무늬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무늬들은 마치 고르고 바르게 배열된 글자의 형상같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노영탄은 여기까지 뚫고 들어오는 동안에 비록 어둠 속에서도 물체를 분간해 낼 수 있는

재간을 가졌지만 동굴 벽까지 주의해 보지는 못했다.

또 이 동굴의 벽이란 것은 습하고 미끄럽고 물기은과 이슬이 끈적끈적하게 서려 있어서

여간 가까이 서 자세히 보지 않고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절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뿐만아니라 거기 새겨진 글자의 형체들은 몹시 세밀하게 새겨져 있어서.

만일에 노영탄이 미끄러지지 않아 그것을 스쳐보지않았다면 그것을 눈으로 보았다 해도

무심결에 그대로 지나쳐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저 돌맹이의 우툴 두틀한 무늬가 드러나 있다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동굴 벽 위에 새겨진 글자를 발견하자

노영탄은 한편으로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신기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급히 머리를 쑤욱 디밀고 안광을 날카롭게 놀리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세히 주의해 보았다.

노영탄이 손을 스치게 된 동굴 벽 위에는 넉 줄의 전서체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鸞翔鳳躇 난상봉저

龍飛魚조 용비어조

이참규가 이참규가

虎躍猿登 호약원등

 

난새가 날개를 폎날아들며.봉황이 높이떠오른다.

용이날고. 물고기가 뛰논다.

교룡(蛟龍)이 참마(참馬)가 되고. 규룡(규龍)이 멍에 메고 달린다.

범이 날뛰고. 원숭이 뛰어오른다.

 

그 옆으로는 몇 줄의 조그만 글자들이 따로 새겨져 있었다.

그 조그만 글자들은 예서(隸書)의 필법으로 씌어져 있었으며.

자세히 세어보니 모두 열여섯 줄로 사행일단(四行一段) 도합 사단으로 되어 있었다.

노영탄은 그 글자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훓어보고 나서 뒤에 따로 새겨진 

사단의 예서가 바로 앞에 새겨져 있는 넉 줄의 전각문을 해설하고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으나 결국 이 넉 줄의 글이 무슨 깊은 뜻을 지니고 있는지는 얼핏 알 수가 없었다.

노영탄은 한편으로는 곰곰 생각해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동굴 벽 위를 다시 한번 자세히

관찰해 봤다.

날카로운 안광을 아래로 내리깔고 자세히 살펴보았을 때.

노영탄은 펄쩍 뛰고 싶을 만큼 놀라움과 기쁨을 금치 못했다.

본래 그 몇 줄의 글귀 아래 동벽에는 따로 네 폭의 도형까지 세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대가 몸시 오래된 모양이며. 또 새겨진 것이 그다지 깊지 못해서 

겨우 은은히 흐릿하게 드러나 보일 뿐이었다.

노영탄은 급히 머리를 구부리고 칼집으로 조심조심 그 바윗돌 위에 끼어 있는

이끼와 잡초들을 벗겨버리고 다시 차근차근히 들여다 보았다.

그제서야 노영탄은 그 몇 줄의 글자와 도형 모두가 어떤 사람의 손가락에 간직되어 있는 

내공의 힘으로 한 획 한 획 새겼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지 그 도형만은 새긴 품이 다소 어지러웠으며.

손가락의 힘이 여기 와서는 적의 감퇴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마 그것을 새긴 사람이 최후로 도형을 새겼을 때에는

이미 온갖 힘이 다 소모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글자와 도형을 대조해 보면서 노영탄은 이 궁리 저 궁리 머리를 짜보았다.

마침내 이넉 줄의 전각문은 바로 그 네 폭의 도형의 명칭이며

또 그 사단의 예문은 바로 네 폭의 도형을 해설하고 있는 글임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이때 노영탄은 자신이 지금 굴 속에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또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온갖 정신을 한 군데로만 집중해서

그 동굴 벽 위에 새겨져 있는 글자와 도형만을 바라보며 어떤 사색과 연구에 잠겨 있었다.

도형과 글자를 상세히 연구해 봤을 때.

그것이 이 세상에서 좀체로 보기드문 네가지 무술의 수법과 자세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노영탄은 그 글과 도형을 머리속에 똑똑히 기억해 두기로 했다.

 

 

 

<다음18장에 계속>